<수필>
성공한 인생
심 영 희
얼마 전 경암 선생님 문학관 개관식에 다녀왔다. 26년의 인연이란 참으로
긴 세월이었나 보다. 나도 나이를 많이 먹었지만 경암 선생님도 어느새 팔십 대에 접어들었다. 십여 년 전 방배동에 문학관을 개관하였을 때는 그렇게 성공한 인생이란 생각이 들지 않았다. 다만 평범한 사람은 아니고 특별한 사람이라는 생각만 했다.
그러나 이번에 충북 증평군 도안면 화성리 450번지에 세워진 문학관을
보고는 참으로 대단한 분이라는 생각을 했다. 우선 소월 김정식 선생님과 함께 문학관을 건립했다는데 대단한
의미가 있다. 경암 선생님이 ‘수필과 비평’ 발행인일 때 그 문학지를 통해 내가 수필가가 되었다는 것과 선생님께서 제정하신 “소월문학상”을 제6회에
수상하였다는 인연은 문학관과도 대단한 인연이다.
또 내가 소월문학상을 탄 것을 좋아하는 이유는 소월 선생님의 시 때문이다. 학창시절
“진달래꽃”보다 “산유화”를 좋아하고 즐겨 외웠던 것은 ‘갈.
봄. 여름’이라는 말에 정감이 갔기 때문이다. 평범한 사계절 봄 여름 가을 겨울이 아닌 “갈봄 여름 없이 꽃이
좋아 산에서 사노라네”하고 시를 외우면 내가 그냥 시인이 된듯한 착각을 일으키며 마음이 설레었다.
그렇게 학창시절부터 좋아하던 소월 선생님과 문학 인생에서 처음 만난 경암 선생님 호를 따서 문학관을 개관했으니
내 평생 가슴에 담고 갈 이름이다. 더욱 경암 선생님의 유년시절과 청소년시절의 가정환경을 알게 되면서
지금의 현실을 어찌 성공한 인생이라 말하지 않겠는가.
그 모진 고난의 길을 이겨내고 부를 얻었고, 한의사와 시의원 또 문학회
이사장이라는 명예도 얻었지만 지금도 쉬지 않고 일하시는 성실함은 후배 문인들에게 귀감이 되고도 남을 것이다.
각고의 노력 끝에 좋은 땅을 구입하여 건물을 짓고 문학관을 꾸미어 드디어
2019년 여름 성공한 인생으로 우뚝 선 경암 선생님 참으로 대단하다. 절친했던 문인도
소원疏遠 했던 문인도 함께 불러들여 ‘황동판 손도장’을 만들어 벽에 전시하면서 공유하려는 마음에 넉넉한
여유가 보인다. 보통 성공하는 사람들은 부를 축적하여 물질로 성공을 하는데 비하여 선생님께서는 정신적인
성공으로 미래를 위한 기틀을 마련하셨다.
개관식 날 참석한 문인들도 많았고 또 문학관 비품구입비에 힘을 보탠 사람들이 많다는 것은 그만큼 다른 사람들에게
베풀어온 보답이라고 생각하니 이것 또한 성공한 인생이다.
지나간 세월들이 손을 흔들며 지나간다. 주위사람들로 하여 큰 상처를
입기도 했지만 거센 파도를 이겨내고 잔잔한 모래밭에 서서 보니 황금돼지해처럼 누런 금빛이 빛을 발하고 있음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과연 우리의 삶에서 성공한 인생이 얼마나 되며 성공의 척도는 무엇을 기준해야 될지는 모르지만 지금의 경암 선생님은
성공한 인생이다. 본인이 살아온 흔적들을 후세에 물려 준다는 것은 참으로 대단한 일이다.
내가 수필가가 된 후 문학관 개관식에 세 번째 참석이다. 첫 번째는
춘천 실레마을에 있는 ‘김유정문학촌’과 강화군에서 개관한
‘조경희문학관’ 그리고 이번에 소월. 경암 문학예술관’이다. 저마다
특징을 가지고 살아오신 삶만큼 자랑할 것도 많은 분들이다. “호랑이는 죽어서 가죽을 남기고, 사람은 죽으면 이름을 남긴다”는 말처럼 네 사람 모두 이름 알리기에
충분하다.
김유정! 조경희! 김정식! 이철호! 문단의 선배들이 자신의 삶을 여러 사람에게 알리게 되었으니
후배 문인으로 내 마음도 흐뭇하다. 물론 전국의 문학관마다 훌륭한 선배문인들의 업적을 칭송하는 행사가
많이 있고 훌륭한 선배문인들이 많지만 조금의 성의를 표하며 개관식에 참석했던 선배님들 이름만 불러본다.
춘천시와 강화군처럼 지방자치단체에서 만들어 놓은 문학관이 아니라 반대로 사비를 털어 문학관을 세우셨는데 사후에는
증평군에 기증하기로 한 경암 선생님의 마음 씀씀이도 감동이 아닐 수 없다. 이 모든 것이 재력이 있었기에
가능했고 글을 쓸 수 있는 능력이 있었기에 가능하다. 누구는 존경하고 누구는 시기와 질투를 하고를 떠나서
팔십 세에 접어든 선생님의 인생은 성공이다.
‘소월.경암문학예술관’이 날로
발전하여 후배문인들의 등불이 되어준다면 이보다 더 큰 영광이 있겠는가. 문학관 개관식을 다녀온 후 줄곤
‘성공한 인생이’란 단어가 머릿속에서 맴을 돌고 있다.
(2019년 한국수필 8월호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