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타이페이에서 개최된 “제2회 월드컵태극권대회”에 참가하기 위해 2008년 10월 16일 목요일 아침에 인천 공항을 출발했습니다. ‘제 보다 젯밥에 관심 갖기’를 추구(^^)하는 저에게 대만에 도착해서 연이틀 동안의 관광은 참으로 즐겁고 행복한 시간이었지요. 그러나 관광에 관한 글은 이번 대회의 금메달리스트인 김태우씨가 쓰기로 하여 저는 대회에 참가한 경험을 적어보려고 합니다.
대회가 시작되는 10월 18일 토요일 아침,.. “Taipei Arena"에 도착하니 그 넓은 경기장에는 30여개 국가에서 천 명 정도, 본국인 대만에서 만 명 정도 참가해 2만명이 넘는 사람들로 가득 차 태극권의 국제적인 위상을 말 해주고 있었습니다. 그러니 ‘즐기기’ 위한 대회라기보다 ‘긴장감’을 주는 대회라는 느낌이 드는 건 어쩔 수가 없더군요.
출전수속을 밟고 가까스로 빈자리를 찾아 앉으려는데 입장식이 막 시작되고 있었습니다. 우리 팀은 ‘KOREA' 피켓을 들고 있는 학생을 보고서야 부리나케 달려 나가 행렬에 합류하였는데, 느긋하게 걸어서 입장하는 다른 나라 팀들과는 다르게 날렵하게(?) 뛰어서 입장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입장식 행사는 축사 등이 지루하게 이어졌는데, 그 사이에 가뭄의 단비 같은 이찬 선생님의 짧고 명쾌한 인사말이 있었고, 일본 친구인 코미네와의 재회도 이루어졌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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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의 마지막에는 참가했던 모든 사람들을 카메라가 360도로 돌며 한 컷에 담는 사진찍기 시간이 있었는데, 갑자기 옆에 서있던 한 여자가 중국어로 말을 걸어 왔습니다. 중국어를 몰라 영어로 짧은 대화를 했는데, 그 여자는 말레이시아에서 태극권을 10년 이상 공부한 사람이었답니다. 제가 태극권을 시작한지 2년 반쯤 됐다고 하니까 단번에 “아! 초보자군요” 그러는 거였어요. 일침을 놓는 듯한 말이었지요.
곧이어 시작될 단체전에 앞서 우리 팀은 13식을 연습하게 되었는데, 이찬 선생님과 국제대회에 많이 다녀보신 조원혁 전 회장님이 감독이자 코치로서 빛을 발하기 시작했습니다. 사실 한국에선 시간이 잘 맞지 않아 함께 연습했던 적이 거의 없었던 터라 걱정이 되었지만 예상외로 호흡이 잘 맞아 서로를 더욱 신뢰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한국팀의 차례... 바로 앞 순서에서 코미네가 들어있던 일본팀의 훌륭한 시연에 기가 눌리긴 했지만 우리도 최선을 다하리라 맘먹고 떨리는 가슴과 다리를 진정시키고 서로를 믿으며 하나하나 동작을 연결해 나갔답니다. 결과는 만족할 만 했었지요. 그러나 우리 팀의 성적은 아쉽게도 4위에 머물렀습니다. 지난 대회와는 달리 13식에 출전한 팀이 무려 27팀이나 되었고, 외국인 내국인 구분없이 상을 주었으니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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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경기장 앞쪽에서는 명가시연이 있었는데, 이찬 선생님이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보여주신 태극권37식과 태극검은 아레나에 모인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집중시키고도 남은 것 같습니다. 우리 선생님이 세계무대에서 이처럼 빼어나게 시연을 하시는 것을 현장에서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참 뿌듯한 일이었지요.
그 뒤에 자신감을 얻어 출전한 37식에서도 우리 팀은 잘 했던 것 같습니다. 그러나 단체전이라는 게 동작의 정확성뿐 아니라 일단 동작이 똑같이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라 전신등각 뒤의 파도처럼 시간차로 떨어지는 다리를 어쩌지 못했답니다. 우리팀의 점수가 깍였다면 바로 이 부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결과는 5위... 메달을 받지 못하는 등수였고, 과정을 즐기는 것에 만족해야했지요.
아쉬운 마음을 접고 연맹에서 주최한 만찬장으로 발길을 옮겼습니다. 중국요리의 진수를 보여주는 음식들이 차례차례 나왔는데, 식문화에 공을 들인다는 중국 사람들다운 정말 맛있는 요리들이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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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쉬웠던 경기의 첫 날이 지나고 둘째 날이 되었습니다. 그동안의 여독으로 좋은 컨디션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이 날을 위해 그동안 한국에서 벼락치기 공부한 것이 아까워 최선을 다해 집중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예상과는 달리 남자들의 37식 개인전이 오랫동안 진행되어 제 순서는 점심시간 후에나 시작된다고 했습니다. 한국 선수들 중에서는 김태우씨가 37식에 맨 처음으로 출전했는데, 옆에서 같이 하던 중국인 고수에(당시에는 아무도 그 사람의 정체를 모르고 있었으나, 대만에서 1위를 거의 독차지하는 고수라는 것을 나중에 알았음) 뒤지지 않는 훌륭한 동작을 보여주어 외국인으로서는 1위, 통합해서는 2위를 했습니다.
한편으로 저는 정상 컨디션이었으면 여유 있게 다른 분들의 경기도 봐 가면서 즐겼겠지만 마음과 달리 몸은 따로 놀고 있었지요. 마침내 차례가 되어 자리에 서니 정말 정말 많이 떨렸습니다. 옆의 선수들도 보이지 않고 우리 팀원들의 “빨리 하세요” 하는 소리도 들리지 않았습니다. 이처럼 많이 긴장해본 건 생애 처음일 듯 싶었지요. 결국 5초라는 시간을 초과하여 점수가 많이 깍였는데 끝나고 나서야 정신이 들면서 ‘왜 그렇게 밖에 못 했나’ 하는 후회가 밀려왔습니다. 그래도 유일한 여자 국가대표(^^*)로 출전한 세계대회였는데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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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남은 건 제가 출전하는 태극선과 남자 팀원들의 태극검 부문이었습니다. 한번 경험을 해봐서인지 별로 긴장되지는 않았습니다. 오직 배웠던 동작을 정확히 해야겠다는 생각만 했고, 나름대로 집중하여 실수하지 않고 잘 했다고 생각합니다. 37식 때는 안 계셨던 이찬 선생님도 옆에서 지켜보시곤 잘 했다고 박수까지 쳐 주셨구요. 이렇듯 ‘초보자’ 수준으로서는 최선을 다했다고 생각했으나 이것도 4위에 머물고 말았습니다. 부채가 포함되는 병기부문에서는 여러 문파가 섞여서 경합을 벌이기 때문에 보기에 화려한 다른 투로들에 견주어 빼어나게 잘하지 않으면 메달권에 들기가 힘든 것 같았습니다.
남자개인전에서는 김태우씨가 37식에서 금메달을 땄고, 최환 회장님은 13식에서, 안찬호씨는 37식에서 각각 은메달, 오승목 군은 동메달을 목에 걸었습니다. 역시 전 대회에 참가한 경험으로 능숙한 모습들을 보여준 것 같습니다.
무슨 일이든 마찬가지겠지만 끝나고 나니 아쉬웠습니다. 조금 더 치밀하게 많은 시간을 투자해서 연습했더라면 더 좋은 결과를 가져 왔을 텐데... 그러나 한편으론 평상시의 생활과는 너무 다른 무림의 중심에(?) 들어와 본 색다른 경험을 해서 좋았습니다. 물론 예전의 무림 세계와는 다르겠지만요.^^ 그리고 태극권을 배우는 여자들이 많다는 것, 남녀를 불문하고 10년 이상 수련한 고수들이 많다는 것도 알게 되었지요. 우리나라에도 더 많은 여성들에게 태극권이 보급되어 오래오래 건강을 지켜주는 운동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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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날. 태극권을 시작 한 뒤 알게 되고 존경해 오던 정만청 선생님 기념관을 방문했습니다. 여러 가지 재주를 가지셔서 오절노인으로도 불리웠고 태극권을 세계적으로 널리 알리신 분,... 그 분이 사용하던 물건과 사진, 영상물들을 보며 그 분의 숨결을 느껴보았습니다. 그리고 작게나마 저도 태극권을 널리 알리는 대열에 설 수 있는 바램을 가져봤습니다.
무엇보다 이번 여행에서 가장 기뻤던 일은 좋은 분들과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저의 짝꿍이자 필요한 걸 열심히 날라다 주시고 짐을 지키는 지루한 일을 맡아주신 후원자 정춘자 회원님, 우리 선수들의 버팀목이 되어 주셨던 최환 회장님, 조원혁 전 회장님, 이영돈 부회장님, 긴장감과 협동심을 동시에 공유했던 우리 팀원들, 사진담당 해주시고 지루했을 법한 자리를 꿋꿋이 지켜주시던 다른 동료분들... 그리고 한결같이 옆에서 챙겨주시던 영원한 총감독 이찬 선생님... 이 모든 분들과 함께 했기에 너무나 즐거웠습니다. |
첫댓글 감사드립니다... 자상하신 글 솜씨로 마치 현장에 함께한 것 같은 생동감이 느껴집니다... 출전팀원 모든분들이 아쉬워했던 말씀이 떠오르네요... "한봉예님이 참 잘하셨는데, 시간 초과로 메달을 타지 못하셨다" 는... 다음 출전땐, 올해의 경험을 바탕으로 꼭 금메달을 따실것으로 믿습니다... 수고많으셨습니다!! 감사드립니다!!....... _()_
정말 수고 많으셨습니다. 언젠가 저도 한 번 대회에 나가보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