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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중권이 안내하는 모더니즘 예술의 세계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의 성공과 위대한 좌절
<2008년 발간한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고전예술 편>에 이어 최근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을 펴냈다. 그는 얼마 전 방송통신위원회의 음란물 검열을 비판하며 트위터에 마르셀 뒤샹, 에곤 실레 등이 여성의 누드를 소재로 그린 작품들을 올리기도 했다. 미학자 진중권의 눈에 비친 정부 관계자들의 미적 기준이 꽤나 촌스러웠던 듯 하다. 그가 말하는 현대예술이란 예술의 정의 자체를 뒤집는 것이기 때문이다.>
신간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은 그렇게 동시대인들의 예술 관념을 바꾸고 새로운 예술 사조를 탄생시킨 20세기 초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을 소개한다. 모더니즘이 탄생하고 2차 세계대전이 일어나기까지, 유럽에서는 수많은 예술가들이 저마다의 강령을 발표하며 새로운 미학을 세상에 내놓았다. 그래서 현대예술의 지형도는 매우 복잡하다. 적절한 지침이 없이 이곳에 발을 디뎠다간 길을 잃기 십상이다. 입체주의, 절대주의, 다다이즘을 거쳐 바우하우스까지 약 12개의 유파를 다룬 이번 책은 ‘들어가기’에서 모더니즘을 이해하기 위한 네 가지 틀을 제시하고, ‘나가기’에서 다시 한번 모더니즘 미학이론을 정리해 독자들의 이해를 돕는다.
<미학 오디세이>로 스테디셀러 작가가 된 진중권에 대한 대중의 호응은 여전히 뜨거웠다. 이번 책은 예약판매 된 것만 1,400여권이다. 덕분에 예약 구매자에게 ‘저자 사인 인쇄본’을 약속했던 진중권 작가는 아예 인쇄소에 출동해 1,400여 번의 사인을 해야 했다. 손꼽히는 논객답게, 그는 매우 빠른 속도로 이야기하면서도 정연한 어휘와 문장을 사용했다. 그와 함께 나눈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에 대한 이야기를 소개한다.
진중권 작가가 이번 책의 원고 작업을 진행한 것은 꼬박 네 달. 1년 치 일을 네 달 만에 집중해서 하느라 조금 지쳐 지친 상태라고 했다. 그가 ‘진중권’만의 서양미술사를 집필하게 된 계기는 무엇일까.
“현대예술이 시작된 지 이제 100년쯤 됐고, 이 시점에서 현대예술을 회고하는 작업이 많이 이뤄지고 있죠. 저도 현대미술을 다시 한 번 조망해봐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이번 ‘모더니즘 편’은 미술사에서 가장 짧았지만 위대했던 시대를 다뤘죠. 현대미술이 진행돼 온 100년 중 앞의 30년, 예술활동이 가장 활발하고 가장 위대했던 시대를요. 모더니스트들의 성공과 좌절의 드라마를 펼쳐 보이고 싶었고, 모더니즘 운동을 어떻게 볼 것인가에 대한 다양한 시각도 전달하고 싶었어요.”
<진중권의 서양 미술사 : 모더니즘 편>은 단번에 술술 읽을 수 있는 책은 아니다. 다양한 현대 예술 사조를 압축해서 담았기 때문에, 독자들은 두뇌가 빠르게 회전하는 경험을 하게 된다.
“제 책은 한 번 읽고 끝나는 책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그런 책을 쓰고 싶지도 않고요. <미학 오딧세이>가 그랬듯, 이번 책도 독자들이 읽을 때마다 다른 의미를 전달받을 수 있게끔 썼어요. 집필할 때 정보를 강하게 압축하거든요. 남들이 열 페이지에 쓸 내용을 두 세 페이지에 요약해서 읽을 때마다 또 다른 의미가 나올 수 있게끔 쓰는 것이 제 방식이에요. 독자들이 처음 이 책을 봤을 때 읽기 쉽지는 않을 거예요.”
쉽게 읽히면서도 쉽지 않은 글을 쓰는 것. 그것이 진중권 작가가 중요하게 생각하는 글쓰기의 기술이다.
“어깨에 힘을 다 뺀 것처럼 편안해 보이지만 실제로는 많은 내용이 농축된 글을 쓰는 것이 중요한 테크닉이죠. 늘 그 점을 염두에 두고 글을 써요. 정보량을 떨어뜨려서 글을 쉽게 쓰는 것은 쉽지만, 정보량을 떨어뜨리지 않으면서도 쉬운 글을 쓰려면 테크닉이 있어야 하거든요. 논문 수준의 정보량을 손실 없이 담아내면서도 대중서처럼 읽힐 수 있도록 책을 쓰는 것이 중요하죠.”
진중권 작가는 이번 책에서 독일의 미술사학자인 한스 제들마이어의 미학이론을 비중 있게 소개했다. 한스 제들마이어는 현대예술의 근원적 충동을 ‘순수성의 추구, 근원을 향한 열망, 광기에 대한 호기심, 기술적 구축의 의지’ 등으로 정의한다. 이 4가지 키워드는 복잡한 현대예술의 흐름을 이해하기 위한 실마리다.
“굳이 문화보수주의자 한스 제들마이어의 눈을 빌렸던 것은, 그의 시각이 현대미술을 접했을 때의 충격을 드러내는 데 적합할 것 같아서 에요. 현대미술에 대한 보수적이고 적대적인 시각을 제외하면 그의 분석 자체는 굉장히 탁월하거든요. 특히 현대예술에 내재된 논리적 모순을 정확하게 잘 짚어낸 사람이에요. 현대미술을 찬양하는 사람보다 현대미술을 비판하는 사람이 현대미술을 보다 더 예리하게 볼 수 있죠.”
흔히 사람들은 ‘예술’하면 자연, 아름다움, 숭고함 등을 떠올린다. 그런데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에는 이러한 보편적인 예술 관념을 전복하는 다양한 개념이 소개돼 있다.
“보통 ‘예술’하면 아름다움을 얘기하잖아요. 그런데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이 가장 먼저 깨고자 했던 것이 그런 생각이에요. 그들은 그런 생각을 부르주아적 예술관념이라고 비판했죠. 실제로 이미 19세기 말에 추의 미학이 나왔고, 보들레르 같은 사람이 시체가 썩어가는 모습을 시로 남기기도 했어요. 쿠르베의 사실주의도 민중들의 비참한 삶을 꾸밈없이 그대로 드러냈고요. 그러다 보니 예술에 대한 관념이 조금 난해해졌죠. 보통 사람들이 이해하지 못하는 작품들이 나오니까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그렇게 대중들의 미적 취향을 파괴해서 늘 창조적인 상태로 몰아넣으려고 했어요.”
이 같은 예술관념의 변화는 시대의 변화를 반영한 것이기도 하다. 진중권 작가는 독일의 사상가 아도르노의 미학을 소개면서 ‘현대예술이 추한 것은 현대 사회가 추하기 때문, 현대인의 고통을 체험으로 나타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우리 부모님만해도 농촌에서 사셨는데, 농촌에 사는 사람들은 누구네 집에 숟가락이 몇 개인지 까지 다 알았어요. 종교, 가치관도 모두 공유했고요. 그런데 지금 아파트에 살고 있는 저는 옆집에 누가 사는지도 몰라요. 농촌 공동체에서는 사람 하나가 죽으면 마을 사람 전체가 나서서 장례를 치르지만, 현대사회에서는 사람 한 명이 죽어도 누가 죽었는지 모르죠. 이게 모던이에요. 철저한 익명성이 현대인의 실존적 조건이고, 이것을 반영한 것이 현대예술이라는 거죠.”
빠르게 변화하는 시대, 그리고 그 시대를 앞서가는 예술가들의 창조적 시도들. 그래서 대중들은 당대에 만들어지는 예술작품의 의미를 직관적으로 이해하기 힘들다.
“과거에는 바로크나 르네상스 같은 예술양식이 200년에 한 번씩 등장했어요. 그런데 현대에 오면서 아침에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예술양식이 등장하게 되죠. 현대 예술은 당대에는 이해가 안 되지만 2~30년이 지나면 이해가 되는 예술이에요. 처음에는 대중의 반발을 일으켰던 기하학적인 디자인이 오늘날 MP3 같은 일상 용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처럼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 역시 ‘나는 오늘날 대중들의 이해를 받지 못하고, 또 이해를 받지 못해야 한다. 나중에 내가 간 길을 따라 대중들이 쫓아 올 것이다’라고 생각하죠.”
<진중권의 서양미술사 : 모더니즘 편>에는 표현주의, 야수주의처럼 대중들이 익히 들어본 예술 사조도 소개돼 있지만 구축주의, 미래주의 등 조금은 낯선 예술 양식도 소개돼 있다.
“구축주의 이론을 다시 조망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했어요. 러시아 구축주의가 가장 유물론적인 미학이거든요. 삶과 예술의 경계를 없애고자 하는 시도, 작품이 생활 속에서 실질적으로 삶에 도움이 돼야 한다는 생각, 형태라는 것은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물질의 본성에서 나온다는 개념 등이 굉장히 현대적이죠.”
기술적, 기계적 진보를 중시했던 미래주의 예술가들의 시도도 새롭다. 진중권 작가는 이들에 대해 ‘의외로 미래주의자들의 화면에서 현대적인 기계나 기술의 이미지는 그리 많이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말한다.
“러시아의 구축주의나 바우하우스 같은 경우 예술창작에 공장생산의 방식을 도입했어요. 앤디 워홀은 회화에 실크 스크린 기법을 도입했고요. 장인정신을 표현할 수 있는 마지막 영역인 예술의 영역에 기계적 생산방식을 도입하는, 굉장히 과격한 선택을 한 거죠. 그런데 미래주의자들은 기술을 찬양했지만, 실제로 그들이 그림을 그린 방식은 굉장히 전통적이에요. 그들의 회화에도 미래적인 모습이 없고요. 실제로 그들이 꿈꾸던 미래적인 모습은 이탈리아보다는 뉴욕에 있었을 거에요.”
진중권 작가는 20세기 초 일어난 현대예술운동을 ‘모더니스트들의 성공과 좌절 스토리’라고 표현한다. 정치적 진보와 미학적 진보를 함께 이루고자 했던 예술가들의 시도가 활발히 일어났던 시대이기 때문이다.
“당시 모더니스트들은 미학적 진보와 정치적 진보를 동시에 이룰 수 있다고 믿었어요. 그래서 어떤 예술가는 파시즘에, 어떤 예술가는 공산주의에 복무하려 했지만 모두 배반당했죠. 파시스트들은 대중선동을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키치를 선호하는데, 아방가드르드 예술가들은 키치와 싸워야 하는 입장이거든요. 또 공산주의자들의 입장에서는 예술가들이 쓸데 없는 존재들이거든요. 아방가르드 예술가들은 소수 엘리트들이지만, 공산주의자들은 대중을 포섭해야 하니까요. 대중에 취향에 맞는 예술을 하다 보면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예술을 할 수 밖에 없거든요. 그래서 짝사랑으로 끝나고 만 예술적 시도가 많아요. 그것이 현대 예술의 위대한 좌절이죠. 하지만 완전한 좌절은 아니에요. 그 때만큼 예술활동이 왕성하고 창조적인 시대는 없었거든요.”
이러한 모더니스트들의 좌절에 대해 그는 필연적인 결과라고 말한다.
“한스 제들마이어가 지적한 것이기도 해요. 모더니스트 예술가들이 추구했던 목표 자체에 모순이 내재하기 때문에 필연적으로 좌초할 수 밖에 없다는 거죠. 또 정치적 진보와 미학적 진보가 같이 간다는 것이 논리적으로 힘들거든요. 모더니스트들이 미학적으로는 부르주아 예술을 비판하고, 정치적으로도 부르주아 체제를 비판하는데 결국 이들을 먹여 살리는 것은 부르주아거든요. 그들의 작품을 사주는 것도 부르주아고요. 그 모순을 피하기 위해 사회주의로 가는 예술가들은 관료, 공무원이 되는데, 거기서 혁명적인 예술의식이 나올 수가 없죠. 그러니 아방가르드의 정치적 기획, 미적 기획 안에 모순이 내재돼 있어서 필연적으로 좌초할 수 밖에 없죠.”
미학적 진보와 정치적 진보의 동반. 현대 한국 미술계에서는 이러한 시도가 이뤄지고 있을까.
“현대미술과 정치의 관련은 거의 끊어졌다고 봐도 좋아요. 1950~60년대 이후에는 현대예술의 주도권이 유럽에서 미국으로 넘어갔거든요. 그러면서 정치성은 없어지고 미적 현상만 남게 됐죠. 특히 우리나라는 미국의 영향을 많이 받았기 때문에 미술에서 정치적인 영역이 거의 남지 않았어요. 안타깝죠. 예술에서 위대함이 없어졌으니까요. 그래서 미학적인 것과 정치적인 것이 결합했던 모더니즘 예술이 위대한 거죠.”
<진중권의 서양미술사>연작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진중권 작가는 다음 편에서 네오모더니즘과 포스트모더니즘에 대한 이야기를 담을 계획이다.
“네오 모더니즘은 전쟁 이후 5~60년대에 일어난 모더니즘 부흥운동인데, 이것을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지에 대한 의견이 분분했어요. 말레비치가 처음 캔버스에 검은 사각형을 그린 것은 예술이지만, 애드 라인하르트가 다시 그것을 반복했을 때도 예술로 인정해야 하는가의 문제죠. 어떤 사람들은 그것을 쓸데없는 반복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칼 포스터 같은 사람은 ‘하나의 외상은 항상 두 개의 외상으로 이뤄져 있다’면서 네오 모더니즘을 ‘두 번째 외상’으로 정당화 하죠.또 한편으로 모더니스트들은 정치적으로 굉장히 급진적인 좌파였어요. 피카소, 마그리트도 공산당이었고 구축주의 예술가들은 볼셰비키 당이었죠. 그런데 60년대에는 그런 정치성이 사라지고 예술만 남았어요. 그렇게 정치성이 탈각된 예술은 어떻게 바라봐야 할 것인가의 문제가 남죠. 포스트 모더니즘과 관련해서는 키치와 아방가르드의 구분이 사라지는 현상을 어떻게 볼 것인지에 대해서 이야기할 거에요. 포스트모더니즘이 모더니즘의 반대인가, 아니면 연속인가에 대한 논쟁을 다루게 될 거에요.”
진중권 작가의 취미가 비행기 조종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상업용 비행기 면허장을 취득하기 위해 필리핀으로 가서 남은 50시간의 비행을 채울 예정이다. 독서취향에 대해서 묻자, 보르헤스, 카프카 등 일부 작가들의 소설을 제외하고는 소설은 잘 읽지 않는다고 했다.
“소설은 허구라서 재미가 없어요. ‘이건 거짓말이다’라고 까놓고 시작하는 거짓말이잖아요. 그보다는 자신을 현실로 착각하는 허구, 자신을 현실이라고 주장하는 허구가 재미있어요. 그래서 소설보다 논문, 철학을 좋아하죠. 철학이야말로 황당한 허구거든요. 자기 자신을 현실이라고 착각하는 허구잖아요. 그 착각, 그 거대한 정신병이 매력적이에요. 그래서 TV드라마도 별로 안 좋아하고 다큐멘터리나 뉴스를 좋아해요. 뉴스도 사실 다 허구거든요. 현실에서 일어나는 무수한 사건 중 한 꼭지만 특정 관점에서 골라서 보여주면서 자기가 현실이라고 주장하잖아요.”
<미학 오디세이>를 비롯해 많은 베스트셀러를 집필한 그는 독자들의 어떤 반응을 들을 때 가장 기쁜지 물었다.
“’진중권의 책을 읽으니까 그 동안 읽었던 수많은 책들이 무슨 말을 한 건지 이해가 됐다’는 얘기를 가끔 듣는데, 제가 의도한 것이 바로 그거에요. 더 나아가서는 독자들이 저처럼 책을 읽었으면 해요. 저는 책을 읽어주는 남자가 되고 싶지는 않아요. 독자들이 스스로 주체적이고 능동적인 독해를 했으면 좋겠어요. 사실 미술사는 100가지 방식으로 쓸 수 있는데 저는 그 중 한 가지를 보여주는 것이거든요. 독자들도 책을 읽을 때 나름대로 자기만의 틀을 잡았으면 좋겠어요.”
대표적인 미학자인 그도 전문서적을 읽을 때는 여전히 어렵다고 한다.
“저도 지금 전문서적을 읽으면 첫 번째 독해에서 전체 내용의 2~30%밖에 이해하지 못해요. 책을 읽어서 완벽하게 이해가 된다면, 그건 읽을 필요가 없는 책인 거에요. 오히려 책의 내용이 이해되지 않고 어렵다면 그게 두뇌가 가장 활발히 작용한다는 증거죠. 어려운 책을 읽고 이해가 안 된다고 좌절할 필요는 없어요. 그리고 책을 읽는다는 것을 하드디스크에 파일을 저장하는 것이 아니라 프로세서를 훈련시킨다는 개념으로 생각해야 해요. 필요한 지식은 인터넷에서 찾으면 되니까, 책의 내용을 저장하는 것보다 자신만의 관점을 세우는 것이 중요해요.”
마지막으로 진중권 작가에게 감명을 준 예술작품에 대해 물었다.
“제 개인적 취향을 알고 싶으면 <교수대 위의 까치>를 보시면 돼요. 개인적으로 감명을 받았던 작품들을 담은 책이거든요. 위대한 작가의 작품들도 있지만 전혀 알려지지 않은 작가의 작품, 위대한 작가의 거의 알려지지 않은 작품들 등에서 감명을 받는데, 그 감명은 정서적이라기보다 지적인 거에요. 예술작품은 영감의 원천이죠. 오늘날 우리가 누리는 상당히 많은 것들이 다 현대예술에서 나왔잖아요. 들뢰즈, 데리다, 푸코 등의 철학도 사실 초현실주의, 다다주의 작품들에서 나왔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