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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시놉시스
SBS 특별기획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가제)
제작 고스필름
극본 손황원
마진원
조윤영
연출 이승렬
<마지막 춤은 나와 함께> (가제)
<작의>
어느 날 갑자기 나의 인생에 교통사고처럼 다가온 그 사람, 그 사랑-
진심으로 사랑했지만,
어느 날 갑자기 사라졌다 다시 나타난 그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한다면?
<잊혀진 기억 속의 사랑>때문에 시리도록 아파하는 여자,
늘 자신을 <익숙하게 바라보는> 낯선 여자에게
새로운 사랑을 느끼는 남자.
둘의 사랑은 다시 시작 됐지만
운명은 그들 앞에서 또다시 잔인해지는데...
사고로 기억상실증에 걸려 강원도의 작은 펜션 <꿈꾸는 숲>에
몸을 의탁하게 된 <메이플>그룹의 후계자 현우와
그런 그를 구해주고 사랑에 빠져버린,
알프스 소녀 하이디처럼 싱그러운 여자, 은수가 펼치는
슬프도록 아름다운 은백색 러브스토리.
( *이 드라마는 기독교방송에서 들은 어느 부분기억상실 장애인의 이야기를
토대로 픽션화한 것임.)
<등장인물>
강 현 우
20대 중반 / B형
전국 곳곳에 호텔과 리조트, 스키장, 골프장 등을 운영하는
굴지의 관광레저그룹, 메이플 인터내셔날의 후계자.
현재 한국대 경영학부 학생이자 학교 하키팀인
<실버 이글스>의 골게터다. 태어나면서부터 귀공자로 포장되어 살아
왔지만 잘 닦인 길로 얌전히 걸어 들어가는 건 마이 웨이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룹 후계자의 정해진 삶보다는 길 밖의 세상, 오프로드로의 질주처럼
늘 자신이 모르는 세상을 향한 반란을 꿈꾼다.
무슨 일이든 마음먹은 일은 바로 진행 시키고 그러기 위해서 규칙을 깨는 것 따윈 아무렇지도 않게 생각하는 성격. 이기지 못할 승부 따윈 시작하지 도 않지만, 일단 시작한 일에서 지는 건 죽어도 용서치 못하는 탓에...
이 악다물고 끝까지 덤빈다...너무 심하게 덤비니까 상대가 지레 겁먹고
져주는 경우도 가끔 있다.
평소에 하는 행실이 허랑방탕해 보여서 못마땅해 하는 강 회장이
그래도 현우에게 한 가닥 큰 기대를 갖는 구석이 바로 이 부분이긴
하지만...
지나칠 정도로 호불호가 분명해 휘지 않고 부러지는 면도 있지만
좋아하는 덴 이유가 있다는 게 그의 지론이다.
좋아하니까 가진 건 다 줘도 된다는 무모함을 지적받아도 있으니까
퍼 준다는 가진 자의 소양이 갖춰져 있기에 미움까진 사지 않는다.
어머니 정 여사를 사랑하는 동시에 불쌍하게 생각한다.
돈 타낼 땐 ‘사랑하는 어머니’요, 애교 부릴 땐 ‘이봐요, 정 여사’ 라 부르고,
누가 자기 앞에서 ‘조강지처와 첩 어쩌구’ 한다거나 ‘메이플 家 구미호’
하는 얘기만 들리면 바로 주먹을 날려 버린다.
정 여사에게 당당하게 고개 쳐들고 살라고 말하곤 한다.
어차피 전처 살았을 때 연애 시작해서 이혼 시키고 들어앉았으면
남들이 찍 소리 못할 정도로 제대로 살아내야 하고,
그 만큼 강 회장한테서 받을 거 다 받고 살아야 한다고-
같이 연애했는데도 온갖 똥물은 혼자 다 뒤집어쓰면서도 살아주고,
대 이을 아들까지 낳아준 공덕을 잊지 못하도록
제대로 챙겨 받으라고 어머니한테 말해주는 것이다.
정 여사가 윤아를 며느리로 삼으려는 이유 또한, 누구나 탐내는 뻑적지근한
여자를 보란 듯이 집안에 들여 자신들 모자의 입지를 확실하게
굳히려는 의도임을 너무나 잘 안다.
어차피 ‘메이플 그룹 후계자’ 딱지가 등 뒤에 붙어 있는 이상,
<강현우=돈> 이라는 공식을 떼고 사랑해줄 여자는 대한민국에
없을 테니, 그럴 바엔 차라리 똑같이 돈 있고, 똑같이 집안 빵빵한
윤아가 낫다는 생각이다.
아이스 하키경기 결승전이 있는 날 아버지에게 지갑, 핸드폰, 차 키까지
모든 소지품을 뺏기고 갇혀있던 자신에게 태민이 건넨 차 키를 받아들고
경기장으로 향하던 중 태민에 의해 조작된 교통사고에 휘말려 기억을
잃고 만다.
그리고 그 여자, <은수>와 운명적으로 만난다.
아무 것도 알 수 없어 불안한 나날...은수만이 유일한 세상과의 통로였다.
아무리 구박을 받고 잔소리를 들어도 은수가 옆에 없으면 불안하기만 했다.
가끔씩 느끼는 두통, 특히 억지로 기억을 되살리려 할 때마다 느끼는
두통도 은수와 함께면 씻은 듯이 사라졌다. 그렇게 은수와 사랑에 빠져
들었다. 도대체 뭐하며 살던 놈이었는지 세상 물정이라곤 모르고, 일 할 줄
모르고, 손만 커서 물건만 샀다하면 시장을 통째로 살 것처럼 구는 날
등짝 때려가며 사람으로 만들어주는 여자, 그러면서도 우연하게 스친
손길에 귓불까지 빨갛게 물들이는 여자...진심으로 은수를 사랑한다.
어떻게 살았는지, 혹시 결혼이라도 해서 애라도 있는 건 아닌 지...
사랑하기엔 불안하기만 한 날 아무 조건 없이 감싸준 은수와 죽어도
떨어질 수 없다고 결심한다.
그러나 불량배 패거리들에게 보복을 당해 쓰러지고 정신을 차렸을 땐
결승 경기를 위해 속도를 내던 1년 전 현우로 돌아와 있다.
그리고 왜 이곳에 있는지, 그 동안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것도 모른 채 집으로 돌아가야겠다는 본능으로 정신없이 지나가던 차를 얻어 탄다.
서울 본가에서 현우는 이미 1년 전에 죽은 사람으로 되어 있었다.
그렇게 살아 돌아온 현우는 대대적인 환영을 받지만,
조각조각 떠오를 뿐 도무지 떠오르지 않는 지난 1년 여의 기억이 계속
현우를 괴롭힌다. 얼굴이 떠오르지 않는 누군가를 생각할 때마다
가슴 한 구석은 시려오고-
주변의 소문을 잠재우고 치료를 받을 겸 학업을 계속한단 핑계로 서둘러
출국해 3년 후 다시 돌아와 호텔에서 경영수업을 쌓기 시작한다.
예전과는 달리 낭만적인 워커홀릭으로서의 변모를 보여주는 현우를
강 회장은 흡족해하고, 윤아와의 결혼도 집안끼리 진행되어 가지만...
왠지 윤아와 함께 있는 순간이면 도무지 기억나지 않는 <누군가>가 떠오른 다. <누군가> 와 이렇게 차를 마셨던 기억....<누군가> 와 이렇게 웃었던
기억...<누군가>와 이렇게 밤하늘을 바라봤던 기억까지....
그렇게 기억의 편린들은 현우와 윤아 사이를 가로막는데,
그 때 나타난 여자가 바로 ‘지 은수’ 였다.
그녀와 함께 있는 순간엔 윤아도, 그 <누군가> 도 생각나지 않았다.
현우 주변의 어떠한 여자와도 닮지 않은 그녀.
예전, 은수와 사랑했던 기억을 까맣게 잊은 현우는
운명적으로 다시 한 번 은수를 마음에 담기 시작한다...
지 은 수
20대 초반 / 0형
유리공예가인 아버지의 요양 차, 강원도 치악산에 펜션 <꿈꾸는 숲>을
지어 서울에서 내려온 이래 10년 넘어 펜션의 안주인 노릇을 하고 있다.
산을 탈 때는 다람쥐 같고, 계곡에서 놀 때는 연어처럼 팔딱거린다.
그만큼 건강하고 싱그럽다.
가뜩이나 씩씩한 성격에 환자인 아버지와 쉴 새 없이 들락거리는
손님들 뒤치다꺼리를 하던 습관 때문에 누구에게나 잔소리를 달고 살고
자기가 정해 놓은 룰에서 벗어나는 걸 싫어한다.
하지만, 속정은 깊어서 입으로는 싫은 소릴 하면서도 벌써 몸으로는
남을 위해 움직여주는 타입이다.
무례하거나 껄렁대는 사람들을 인간으로서, 손님으로서 가장 싫어한다.
더군다나 제일 싫어하는 건 취소 전화 없이 펑크 내는 예약손님들이다!!!
얼마나 미운 지 그럴 때면 밤하늘을 보면서 가끔 귀여운 저주를...하기도
한다....‘ 오늘 밤엔 그 손님, 변비나 걸리게 해주세요..’
늘 씩씩하게 잘 사는 듯 싶지만, 그래도 스무 살에서 얼마 지나지 않은
은수에게 산 생활이란 가끔 무료함을 안겨줘서 도시를 꿈꾸기도 한다.
대학에 다니기 위해 잠시 펜션을 떠나 있었던 적도 있지만,
아버지의 병세가 악화되면서 결국 휴학계를 내고 다시 돌아왔기에 더욱
그렇다.
공부를 멈춘 것에 대해 단 한마디도 아쉬운 소리를 꺼내지 않을
정도로 효녀지만, 보던 책 한 권도 아직 버리지 않았고, 학기가 바뀔 때면
동기들에게 전화를 걸어 이번 학기의 커리큘럼을 받아 놓곤 한다.
언젠가는 다시 공부를 시작하겠다는 은수만의 의지인 것이다.
비록 그 동기들조차 이젠 학교에 남아있는 사람이 드물 정도지만...말이다.
특유의 낙천적인 성품으로 펜션의 손님들에게 멋진 여행이나
추억을 선사한 덕분에 늘 북적거리진 않아도 늘 때가 되면 오는
단골손님 리스트가 제법 길다. 첫 눈 내리는 날 오는 연인, 아이 생일에
맞춰 오는 가족, 결혼기념일을 지내는 부부...
그렇게 오는 손님들마다 은수 같은 여자라면 얼마든지 소개를 하겠다며
이상형을 말하라지만...손님, 우체부, 천사가 아닌 이상 강원도 산에 틀어
박혀 살아야하는 은수와 소개팅을 할 사람은 없다는 걸 잘 아는 지라
웃음으로 거절하곤 해왔다.
그러다가 정말 ‘천사’처럼 뚝 떨어진 그 사람, ‘인성’을 만났다.......
처음부터 인성이 천사는 아니었다.
아버지와 함께 터미널에 예약손님을 데리러 나갔다가 펑크 맞고
돌아오던 길에 국도변에서 엉망진창이 된 한 남자를 살짝 차로 건드렸고,
비록 은수네 때문에 다친 건 아니었지만 병원으로 실어다 줬다.
연락처를 쓰라기에 번호를 남겼더니 삼일 후에 병원에서 연락이 왔고,
아무 연고도 모를 그 남자의 병명은...<엠네시아:기억상실증> 이라 했다!
경찰에서 왔다 갔다지만, 실종신고 중에서 그 남자와 일치하는 건
아무 것도 없었고...현재 상태로 보호자는 은수뿐, 게다가 잦은 두통을
호소하던 남자가 신기하게도 은수만 보면 고통이 뚝 멈춘다는 것이다.
갓 태어난 새끼오리가 어미를 기억하듯이, 그 남자는 은수를 보며 안정을
얻는 것 같았다. 결국 당분간 은수가 남자를 데리고 있기를 의사는
권유하고...단기적 기억상실일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어느 순간 갑자기
옛 기억을 되찾을 지도 모른다는 친절한 설명까지 덧붙이지만,
은수에게 있어 남자의 존재는 짐덩이, 그 자체였다.
점잖기 이를 데 없는 아버지는 도의상 책임을 져야한다며 짐덩이 맡기를
자처하고....
가뜩이나 단풍철이라 손이 모자라는 판국에, 남자는
도대체 어떤 과거를 가졌는지 할 줄 아는 거라곤 아무 것도 없었고,
은수를 졸졸 쫓아다니면서 훼방만 놓기 일쑤였다.
이름도 없어 작은 일 하나도 시키기 힘들었던 차에 에라 모르겠다, 싶어
아무 이름이나 하나 붙여서 부른 게 바로 ‘인성’ 이였고,
그 이후로 헤어지던 그 날까지 그 남자는 <인성>으로 은수의 가슴에
자리 잡는다.
아무 이름이나 붙여줬다지만, 실은 자신이 유일하게 좋아하는 배우의 이름 임을 떠올리며 혼자만의 비밀처럼 키득거리는 은수.
그렇게 서서히 서로에게 물들어가며....은수는 인성을 사랑하게 된다.
손님도, 우체부도, 천사도 아닌, <운명의 남자> 와 사랑에 빠졌음에 은수는
행복하다. 처음엔 인성의 과거가 의심스러워 불안하기도 했지만,
사랑에 빠지고부터는 오히려 과거를 알게 되는 게 더 불안해져 버린다.
기억을 되찾은 인성이 자신을 떠나 버릴까 두려워진 것이다.
그리고, 막연하기만 했던 그 두려움은 언약식을 치른 다음 날
읍내로 나간 인성이 행방불명되고 그런 인성을 찾아 나선 은수가 펜션을 비 운 사이, 은수부가 불타는 펜션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면서 일련의 저주처럼 은수를 절망으로 몰아넣는다.
아버지의 장례식까지 미뤄가며 기다렸지만 인성은 돌아오지 않았고....
그 때부터 은수의 기다림은 시작된다.
아버지를 잃고, 빚에 쫓겨서 펜션을 잃고, 나날이 지쳐 웃음을 잃었어도
기다린다....1년...2년...3년...
이미 주인이 바뀌어 버린 펜션에 붙어살면서 혹시 인성이 다시 돌아올까
싶어 기다리지만 사랑은 돌아오지 않고, 기다림의 상처는 깊어져만 갔다.
돌아오지 못할 이유가 있었던 건지, 돌아오기 싫어진 건지...
그 이유라도 속 시원히 알고 싶었다.
그러다 대학 동기들 모임이라며 오랜만에 올라온 서울, 친구 장미를
만나기 위해 찾았던 호텔에서 인성을 다시 찾아낸다.
고급 세단에서 아름다운 여자와 팔짱을 끼고 내리는,
한 눈에도 귀티가 넘치는 우아한 매너의 그 남자-
보고, 다시 봐도 은수의 ‘인성’ 이 분명한데.....사람들은 그를 ‘강 현우’라고
부르고 있었다 !
한 태 민
20대 후반 / A형
국내 굴지의 종합 레져 그룹인, 메이플 인터내셔널의 고문변호사.
젊은 나이에 빠른 출세를 하고 있는 엘리트로 한 치 빈틈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완벽주의자다.
주 업무가 그룹 관련 분쟁을 해결하는 법률업무지만 강회장의 권유로
경영학까지 수료한 이력을 십분 살려 강회장의 오른팔 노릇까지 해내는
경영 참모이기도 하다.
부드럽고 늘 여유 있어 보이는 분위기를 연출하지만
실상은, 날카롭고 냉정한 지략가로 포커페이스에 능하다.
외삼촌 필두와 짜고 중학생이던 현우의 납치사건을 조작해 현우의
은인인 척 강회장의 눈에 들어 강 회장 일가로 흡수된 과거가 있다.
당시 고3인 태민에 대해 알아 본 강 회장은,
성적이 우수함에도 불구하고 집안 환경이 안 좋아 진학을 포기한다는 말에
후원을 결심하고, 보답으로 대학시절 내내 장학금을 받는 성실한 모습을
보여준 태민을 회사로 불러들인다.
태생적으로 남보다 하나를 더 타고난 촉수 때문에 사소한 친절에도 촉각을 곤두세울 정도로 의심이 많다.
그래서 은수와 만난 초기에, 은수가 보여주는 작은 친절을
확대 해석하면서 날카롭게 반응하곤 한다.
작은 실수는 너그럽게 용인하는 듯 하지만 차곡차곡 쌓아서 활화산처럼
터뜨리고 마는 욕구불만형.
강 회장과 전처가 허울뿐인 부부생활을 유지하던 당시,
강 회장은 젊은 혈기를 주체치 못하고 몇몇 여자들과 문란하게 지냈고,
그 중 한 명이 태민의 생모였다.
하지만, 결국 강 회장을 낚아챈 건 당시 비서로 있던 현우의 생모,
정 여사였고... 태민 모자는 비참하게 버림 받았다.
그리고 그 충격을 이기지 못한 태민의 생모는 지금까지도 정신병원
신세를 지고 있는 상태.
덕분에 태민은 외삼촌 호적에 올라 ‘한 태민’ 으로 불리면서 강 회장 일가를
향한 복수심 하나만을 갈고 닦으며 자랐다.
복수는 인간의 능력을 극대화 시켜, 한 번도 일등을 놓쳐본 적이 없고,
본심을 숨긴 채 필요한 사람과 얼마든지 친구가 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해주었다.
덕분에 태민은 메이플 그룹 비서실에 입성할 수 있을만한 학력과 인맥,
모든 걸 갖추게 된다.
그리고 만약 정 여사가 아니라 자신의 생모가 강 회장과 결혼하는 데
성공했다면 자신의 것이 되었을 모든 것을 가지고 있는 라이벌이자
이복동생인 현우를 지켜보며, 태민은 날마다 뜬 눈으로 밤을 지새운다.
대학 시절, 현우와 함께 윤아를 만나고, 윤아가 현우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눈치 챈 후로는 더구나 현우를 향한 질투를 억누를 수가 없었다.
윤아는 정신을 놓기 전, 사진 속 태민 어머니와 닮아 있었고,
탐이 날 정도로 고운 여자였으니까.
그래서 현우를 쳐내고 강 회장을 무너뜨릴 준비에 가속을 더한다.
한 치의 실수도 없도록 현우의 성격까지 제대로 파악해 구린 일이라면
얼마든지 처리해 줄 외삼촌과 짜고 사고를 조작해내는데-
악어의 눈물까지 짜내며 새카맣게 탄 현우의 시체를 직접 눈으로
확인했건만 죽은 줄 알았던 현우가 다시 나타난다!
다행히 사고가 계획적이었음을 잊고 살아 돌아오지만,
그 기억도 언제 돌아올지 미지수였기에 일단 사태의 추이를 지켜
보기로 하는데....그 때 나타난 여자가 바로 은수였다.
자신이 현우와 윤아 근처에서 맴돌 때 똑같이 맴도는 여자가 은수였고,
처음엔 현우의 배경에 혹해서 부나방처럼 덤벼드는 그렇고 그런
여자들 중에 하나인 줄 오해한데다 현우가 의외의 관심을 갖자
자기편으로 끌어들여 이용해보려 한다.
그런 와중에 현우의 잊혀진 기억 속의 여자가 은수임을
먼저 알게 되고, 그 점을 십분 활용 자신의 계획을 진행시켜 나가는데...
그렇게 은수를 가까이하기 시작하면서 그녀 특유의 해맑음에 저도 모르게
끌리기 시작한다.
처음엔 은수의 친절이나 미소를 의심하지만, 곧 그런 친절에 목말라하는
스스로를 깨닫고 놀란다. 어느 새 자신 안에 스며들어온 은수의 존재가
상상 외로 커져 있었기에...
설 윤 아
20대 중반 / AB형
우리나라 제 1여당 <한국당> 총수를 부친으로 둔 정계 명문가 집안의 딸,
어느 모로 보나 기품 있는 요조숙녀다.
상류층 자제로서 기본적으로 갖춰야 할 최고 학벌은 물론이요,
요리는 옥수동 선생, 꽃꽂이는 청담동 선생에게서 사사 받은 것은 물론,
다도와 미술품감상까지 마스터했다.
모든 일에 있어서 재주가 있고, 눈썰미가 있어 어디 내놔도 빠져본 적이
없기에 부모의 총애를 한 몸에 받고 자란 데다, 부와 명예 어느 하나
빠지는 데가 없기에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하다.
다시 말해서.....
입 밖으로 뻥긋만 안할 뿐 대단히 콧대 센 여자다!
자긍심, 자부심, 자존심...죄다 둘째가라면 서러울 정도로 강하다.
다만 일찌감치 예의범절을 갈고 닦은 데다 굳이 말로 안 해도 남들이
먼저 충분히 아는 척을 해줘왔기 때문에 내세울 필요를 못 느꼈을
따름이다.
평소에는 어떻게 저런 여자가 이렇게 할까...싶을 정도로
자기보다 신분이 낮은 사람에게까지 친절하고 저자세라
상대방을 황공하게 만든다. 누구에게나 미소 짓고, 누구에게나
친절한 스스로의 모습을 즐긴다고나 할까?
하지만 이 모든 모습은 윤아가 여태까지 누려왔던 모든 걸 그대로
누려왔을 때에만 해당된다.
더할 나위 없는 약혼자로서 사랑했던 현우가 불의의 사고로
시체조차 찾을 수 없을 때, 너무나 당황한 나머지 죽음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태도로 일관했고, 워낙 유나를 예뻐하던 정 여사는 그런 태도마저
현우에 대한 특별한 사랑으로 착각해줬다.
그리고, 역시 하늘은 윤아에게만은 너그러운 지 현우를 돌려주었고,
윤아는 그 누구보다 기뻐하지만...
그가 예전과는 다른 모습을 보이는 것에 놀란다.
그리고 현우의 잊혀진 기억 속에 어쩌면 다른 여자가 있었을지도 모른다는
여자로서의 직감 이면엔 미칠 듯한 질투가 들끓기 시작하고...
그 주인공인 은수의 등장은 스무 해 동안 윤아가 보여줬던 모든 모습을
일순간에 뒤엎어 버린다.
지순했던 사랑만큼 몇 배로 <독하게> 비틀려가고....
스스로에게 이러면 안된다, 안된다, 하면서도 한 번 흔들린 정서적 불안감은
제자리를 잡기 힘들어진다.
단 한 번도 이런 위기를 맛 본 적이 없는 인생이기에 더욱 그 타격이
큰 것이다.
완벽한 인생에 우연히 튄 작은 먹물 한 점....
그 한 점의 먹물이 서서히 스며들기 시작하면서 윤아의 인생 또한
엉망으로 꼬여간다. 착한 여자에서 나쁜 여자로, 순한 여자에서 독한
여자로...
그리고, 그렇게 자신을 망쳐 버린 <은수> 가 너무나 밉다!
강 만 철 회장
50 후반 - 60대 초반.
메이플 인터내셔날 그룹의 회장.
선대에서 시작한 호텔사업을 지금의 종합 레저 그룹인 <메이플> 로
키워낸 경영의 귀재.
불도저 같이 뚝심 있는 성격에 비즈니스에 있어서는 잔인할 정도의
승부근성을 갖고 있다. 누군가를 판단할 때 제일로 치는 것도 바로
<승부근성> 이고 의외로 공정하게 평가한다.
그런 반면에 비서 출신의 젊은 아내, 은숙 앞에선 꼼짝 못하는
약한 면도 있어서 베갯머리에서 은숙이 속닥대는 말에는 그저 응,응,하며
죄다 들어준다.
첫 결혼에서 허울뿐인 부부관계를 겪으며 호되게 데었고,
전처와 이혼한 후 비서였던 지금의 아내 은숙과 결혼했다.
그렇게 결혼했기에 하나뿐인 아들, 현우를 끔찍이 아끼지만,
강한 아버지들이 대개 그렇듯이 아들이 하는 짓은 매사가 못마땅하다.
하지만, 아들이 탔던 차가 완전 소실된 채 현우가 시체로 발견되자
순식간에 10년은 늙어 버린다....그만큼 아들에 대한 사랑을 감춰뒀었다.
믿었던 태민이 자신의 등에 칼을 꽂고 덤비면서 사생아라 나서자
자신만이 알고 있는 비밀을 털어 놓는다.
정 은 숙 여사
49세
스물 둘에 시작된 강 회장 비서생활 사년 만에, 그의 재취로 들어간다.
강 회장과 전처가 허울뿐인 부부관계였다고는 해도
유부남과 연애를 했다는 사실은 변함없어서 지금도 정 여사를
첩이나 세컨드, ‘메이플 구미호’ 로 부르는 사람들이 종종 있다.
정 여사의 애교 있는 성격은 그런 싸늘한 눈길들에
더욱 힘을 실어줘 왔고...
‘평민’ 출신이라는 태생적 한계를 극복하기 위해 무던히도 노력해왔다.
재벌가 사모님들이 한다는 건 모조리 다 따라했고,
배워야 될 모든 걸 머릿속에 꽉꽉 채워 넣었지만,
돌아온 건 <재벌가 따라쟁이> 라는 되도 않은 별명뿐이었다.
하지만 지지 않고 도예품을 전시하고, 다도를 가르치는 <도예랑>을 열어
고고한 품위를 내세우려 노력한다.
그리고 그 곳에서 처음 본 ‘설 의원’ 댁 큰 딸 윤아를 며느리 감으로
점찍어 놓고 물밑 작업에 들어간다.
결국 자신에게 끝까지 든든한 힘이 되는 건 나이 차 많은 남편 강 회장이 아니라 아들인 현우였으니까.
그리고, 윤아야 말로 현우의 이름을 더 확실하게 빛내줄 장식임에
분명한데...느닷없이 아들이 사랑하는 다른 여자가 나타나자
도저히 용납할 수가 없다.
여태까지 어떻게 벗어나려 애쓴 인생인데...고부가 나란히 ‘구미호’ 소리
들어가면서 살 순 없지 않은가!!
강 현 정
20대 후반
강회장과 본처사이의 유일한 혈육이자 장녀다.
어린시절 본처에 냉담했던 부친에 대한 기억은 후처로 들어 온
정 여사와 이복동생 현우에 대한 끊이지 않는 미움으로 분출된다. 메이플 가의 주식을 증여받아 특별한 직업 없이 돈만 굴리며
사치스런 생활을 일삼으며, 아버지, 강회장이 맘대로 낳았으니 자신이
원하는 대로 길러줘야 할 의무가 있다는, 나름의 가치관을 주장한다.
이렇듯 단무지(단순 무식 지랄)성품으로 비롯된 현정의 당돌함에
가끔 당황하는 강회장이지만 계집애가 거친 세파 속에서 살아남으려면
저 정도 배포는 있어야 한다며 현정의 대포근성을 가장 높이 사는 사람
역시 강회장이기도 하다.
캐쉬와 카드가 없이는 단 하루도 살 수 없기에 영악함을 100% 발휘,
결정적으로 강회장의 심기를 불편하게 할 짓은 절대 하지 않는다.
9도짜리 와인을 음료수처럼 달고 있어야만 정 여사와 이복동생 현우에 대한 냉소를 그나마 자제할 수 있는 아픔도 있지만 비틀린 시선 끝에 들어온
태민을 만나면서 어느 순간, 기형으로 살아온 자신을 깨닫게 된다.
천하의 강 현정이 교과서에서도 배운 적 없는 사랑을, 그것도
짝사랑에 빠지면서 현우와 은수의 운명은 새로운 국면을 맞게 된다.
안 장 미
20대 중반
은수의 고향친구.
평소엔 서울말투를, 급할 땐 독특한 강원도 사투리를 풀어낸다.
정도 많고 눈물도 많고 오지랖도 넓은 아가씨지만 급한 성격으로
늘 사건 사고를 저지르는 트러블 메이커로
메이플 호텔의 리셉셔니스트로 일하고 있다.
서울에 올라온 은수의 사연을 듣고 한 집 살림을 하면서
절대적으로 지지하고 도와준다.
은수부
47세
인사동에 작은 화랑을 운영하던 도예가 였으나
은수엄마를 사고로 먼저 보내고 딸 하나만 바라보고 살아왔다.
자신의 지병(기관지 확장증) 때문에 강원도 숲에서 도예품으로 꾸민 펜션을 세워 산다.
젊은 나이에 산 속에서 외롭게 살아야 하는 은수에게 늘 미안해하고,
은수가 행복하기만을 기도한다.
낯선 현우와 은수의 사랑을 처음에는 경계하지만,
인간의 본질을 들여다볼 줄 아는 예술가의 눈으로 현우의 속을
꿰뚫어본다. 그리고...현우에게 은수를 부탁한다.
현우와 은수의 사랑이 예쁘게 무르익어 가는 걸 생의 즐거움으로
알지만, 어느 비바람이 거센 가을 날, 끔찍한 화재로 운명하고 만다.
오 여사
50대 중반 / 윤아모
외교관 집안에서 태어나 정치가한테 시집 가 장차 퍼스트레이디가
되겠다는 야심만만한 사모님.
늘 남편의 내조에 전력을 다하고 있는 조신한 모습이지만,
윤아와 똑같이 위급 상황이 닥치면 완전히 평소의 페이스를 잃고
속내를 그대로 드러내 보인다.
재벌가인 강 회장댁과의 혼사가 나쁘진 않지만,
현우의 생모인 정 여사가 < 첩 출신>이라는 것이 끝끝내
맘에 걸릴 정도로 마음 속 깊이 신분차별...같은 걸 갖고 있다.
현우에게 여자가 있다는 것을 알고 <집안끼리 자존심>에 상처를 입자
누구보다 잔인해진다.
한 필 두
50세
태민의 양아치 외삼촌.
태민이 그룹 후계자 자리에 앉기만 한다면 자신이 그룹을 좌지우지할 수 있을 거란 욕심으로 가득 찬 인물.
기타.......
태민생모, 정규(은수의 짝사랑 상대)
펜션 <꿈꾸는 숲> 사람들 / 손 아줌마,
손님들(후에 은수의 호텔 생활에서 다시 마주침)
메이플 호텔 사람들 / 장미를 좋아하는 대리(현우, 은수와 더블데이트 즐기는),
은수를 시기하는 여직원, 현우를 따르는 남직원...
재벌가 사람들 / 부인들 모임원(정 여사, 유나모와 만나는 두어 명 정도)
1부
짙은 어두움이 깔린 방 안.
누군가의 잠든 숨소리만이 들리는 방 안으로 낯선 남자의 발이 들어선다.
세상모르고 잠이 든 은수를 향해 서서히 드리워지는 침입자의 그림자...
잠시 걸음을 멈추고 탐스러운 듯 은수를 바라보는 남자의 손길이 흥분으로
부들부들 떨려오고...마침내 침대 위의 은수를 와락 덮치면,
그 순간 이상한 낌새에 잠이 깬 은수는 하이 소프라노의 비명을 끝도 없이
질러대기 시작한다!
길게 울려 퍼지는 은수의 비명소리 위로,
관중석의 여자 응원단들의 환호성 역시 울려 퍼지고 있었다.
여기는 목동 아이스 링크-
현우가 속한 한국대와 신라대의 전국 아이스하키 대회 준결승이 한참 진행 중이다.
미친 듯이 돌진해 샷을 성공시키는 <강 현우>의 저돌적인 파워와 스피드!
그의 퍽은 언제나 정확하게 골 텐더의 등 뒤로 꽂힌다.
환호하는 현우를 지켜보는 상대 선수들의 의기소침한 눈빛과는 달리,
관중석에 <설 윤아>는 시합이 진행될수록 눈빛을 반짝거리기만 한다.
하지만, 그런 그녀의 존재를 아는 지 모르는 지 현우는 바로 윤아 코앞을 지나쳐 가면서도 결코 눈길을 주는 법이 없는데...
같은 팀 정훈이 연신 옆구리를 지르며 눈치를 주는데도, 자신 쪽으로 고개 한 번 돌리지 않는 현우를 씁쓸하게 지켜보는 윤아 곁에 메이플 그룹의 고문변호사인
<한 태민>이 자리 잡는다.
저녁에 있을 윤아 부모와의 식사 약속에 반드시 현우를 끌고 오라는 강 회장의
지시 때문이었다.
윤아 앞에서는 언제나 예의바르고 매너 좋은 ‘오빠’인 태민은
현우에게서 시선을 떼지 못하는 윤아의 모습에 질투를 느끼지만, 그런 감정을
결코 밖으로 드러내진 않는다. 윤아에 대한 욕심을 드러내 강 회장일가와의 관계를 망치기엔 너무도 아까운 계획이 아직 반도 진행되지 않았으니까-
그렇게 태민이 묘한 웃음을 입가에 다는 순간,
거세게 팁 인(문전 쇄도)을 시도한 현우의 뒤를 따라오던 상대 팀 선수가 교묘하게 밀착하면서 현우의 약을 올린다.
밀치며 앞서 나가려는 현우가 마치 엘 보잉(팔꿈치 가격)이라도 한 듯 바닥으로
뒹구는 상대팀의 헐리우드 액션에 주심은 현우에게 경고를 주고...
퍽을 뺏기고 씩씩대던 현우를 향해 방금 전의 ‘헐리우드 액션’ 이 느물대는 웃음과
함께 가운데 손가락을 올려 보이자 마침내 폭발한 현우는 상대팀을 향해 주먹질을 시작한다.
주심의 휘슬소리가 요란하게 울려 퍼지는 가운데 경기장은 순식간에 난투극으로
아수라장이 되어 버리고, 한 두 번 본 일이 아닌 듯 태민은 익숙하게 윤아를 데리고 경기장을 빠져나간다. 오늘도 저녁시간엔 늦겠다는 예상을 하면서-
펜션 앞에 익숙하게 승합차를 갖다 댄 은수는,
어젯밤의 실수 때문에 자기 앞에서 얼굴도 들지 못하는 신혼부부를 보며
슬며시 웃음을 깨문다.
기분에 취해 평소 주량보다 더 들이키던 새신랑은 결국 자기 방인 줄 알고
은수의 방에 들어와 새색시가 아닌 은수를 덮쳤고,
결과적으로 눈에는 시퍼런 멍이 들어있는 상태였다.
밤에 놀란 걸 생각하면 괘씸하지만, 그래도 손님인지라 멍이 잘 빠지는 약이라며
날계란을 건네주는 은수.
멋쩍게 계란을 받아서는 새색시에게 문질러 달라는 되도 않은 ‘앙탈’을 부리며
새신랑은 ‘ 이런 데서 평~생 살았음 좋겠다...’ 며 너스레를 떠는데..
그 말을 듣는 은수는 혼자 피식 웃고 만다.
만약에 저 남자한테 여기서 평생 같이 살자고 하면 그럴까?
휴양지란 가끔 오는 사람들에겐 파라다이스지만, 늘 그 곳을 지켜야 하는 사람에겐
따분하기 이를 데 없는 일상이었다. 그걸 너무도 잘 아는 은수였기에,
못내 떠나기 아쉬운 듯 머뭇대던 커플이 소개팅을 해주겠다며 이상형을 대보라고 주문하자, 싱긋 웃으며 세 종류의 이상형을 불러 준다.
...우체부, 돈 많은 손님, 천사..라고.
은수의 재치에 손님들은 폭소를 터뜨리지만, 옆에서 듣는 은수 아버지의 속내는
씁쓸하기만 하다. 스물 두 살의 미혼 여자가 강원도 산 속 펜션에서 사랑을 만날 수 있는 확률이 그 만큼 낮다는 뜻이었으니까.
하지만, 지병으로 인해 공기 좋은 이곳에서 꼼짝도 못하는 아버지로서는
씩씩하게 웃으면서 손님들을 승합차에 태우고 가는 은수를 보며,
아직 첫사랑도 해본 적 없는 딸이 모쪼록 좋은 사람을 만나기를 기도하는 것이다.
디너 테이블을 마주 하고 앉은 강 회장 내외와 설 의원 내외의 표리부동한
대화는 계속되고 있었다.
겉으로는 웃음을 머금었지만, 현우의 생모 정 여사가 첩에서 시작해 지금의 조강지처 자리를 꿰찼다는 걸 잘 아는 윤아 어머니 오 여사는 말끝에 저도 모르게 비웃음을 담기 일쑤였다. 요새처럼 정치자금 내놓기에 인색한 시대에 강 회장만한 전주를 잡는 일은 남편의 앞길에 아주 중요했지만, 요조숙녀로 한 평생을 지낸 오 여사에게 애교가 철철 넘치는 게 딱 애첩기질인 정 여사가 영 맘에 안 차는 건 사실
이었으니까.
정 여사 역시 안 그런 척 하면서 할 말 다 해버리는 오 여사가 마음에 안 들긴
매한가지였다. 그래도 장차 대통령 출마설까지 도는 설 의원네와 사돈을 맺어
두는 건 금쪽같은 아들, 현우의 장래를 위해서나 정 여사 자신의 태생적 콤플렉스
극복을 위해서나 반드시 필요한 일이었다. 그렇기에 오 여사의 비아냥을 못 알아들은 척, 하면서 넘어가는 정 여사의 속은 활활 타오르는 장작터만 같다.
...산전수전 다 겪은 내가 참아야지....윤아만 시집와봐라, 그 땐 게임 끝이야,
이 아줌마야...
그렇게 열 받은 속을 달래는 정 여사 앞에 기다리고 기다리던 아들이 등장하지만-
가뜩이나 늦은 현우의 얼굴은 엉망진창으로 터져 있었고, 그 뒤를 졸졸 쫓아 들어오는 윤아의 안색 역시 밝지만은 않았다.
현우를 보자마자 잔뜩 일그러지는 강 회장을 눈치 채고 애써 분위기를 무마시키는
정 여사. 그런 정 여사를 지원 사격해 윤아는 현우를 변명해주고,
양가 어른들은 곧이어 치러질 두 아이들의 약혼이며 동반 유학..등를 의논하기 시작한다. 그렇게 부모가 결정짓는 자신의 미래를 들으며 심드렁한 표정으로 창 밖만 쳐다보기 시작하는 현우를 훔쳐보는 윤아의 속은 안타깝기만 하다.
한편, 펜션 옆에 차린 공방 가마에 장작을 넣으며, 은수 부는 오랜 친구인 장미를
만나러 서울에 간다며 장미에게 줄 유리공예품을 만들고 있는 은수의 모습을 찬찬히 살펴본다.
선머슴처럼 커다란 셔츠에 장화차림, 화장기 없이 말갛게 순수한 얼굴...
자신 때문에 다니던 대학까지 포기하고 이 산 속에 들어와 펜션을 돌보며 사는
딸이 안타깝기만 한 은수 부는 넌지시 복학 의사를 떠보지만,
은수는 완강하게 거절한다. 아버지가 학교 교수님들보다도 실력 있는 공예가
인데 뭐 하러 비싼 돈 내며 학교를 다니냐며 큰 소리 치지만,
막상 방으로 돌아와서는 책장에 가지런히 꽂힌 전공 서적을 흩어보며
씁쓸한 얼굴을 짓는 은수다.
아버지 앞에서 말은 그렇게 했지만, 아직 전공책 한 권을 안 버렸고, 학기가 바뀔 때마다 커리큘럼이며 교수진 체크까지 마쳐 놨다.
언젠가는 학교로 돌아가 캠퍼스 생활을 다시 누려봤으면 하는 아쉬움을
마음 저 편으로 밀어 놓으며 은수는 서울에서 호텔 인턴사원을 하고 있는
장미에게 전화를 건다. 며칠 후, 장미가 일하는 호텔 <메이플>에서 만날 약속을 정하며 오랜만의 해후를 기대하는 두 사람이었다.
정 여사의 강권에 못 이겨 윤아와 따로 단골 bar로 향하는 현우.
이미 와 있던 태민은 못마땅한 윤아를 눈치 채고 합석을 피하려 하지만,
현우는 막무가내다.
자존심이 상한 윤아는 자신과의 결혼을 취소하고 싶으면 지금이라도 늦지 않았다며
넌지시 현우의 마음을 떠보지만, 현우는 결혼은 반드시 윤아와 하겠다는 의외의 말로 그녀를 깜짝 놀래킨다.
게다가 현우에게 은근슬쩍 몸을 기대오는 섹시녀의 헌팅까지도 약혼녀가 함께
와 있다며 거절하자 윤아의 서운함은 한 번에 사라져버리는데...자못 너그러운 마음이 된 윤아는 현우와 태민, 두 사람만의 술자리를 위해 먼저 일어서준다.
자신의 생일 파티에는 반드시 참석해 달라는 다소곳한 초대를 남긴 채 사라지는
윤아의 뒷모습을 보며, 태민은 결국 윤아를 사랑한 거였냐고 묻는다.
“ 사랑? 그런 감정따윈 몰라. 누구한테도 느껴본 적 없어.
어차피 거기서 거기끼리 하는 결혼, 윤아 정도면 훌륭하잖아.
똑같이 돈 있고, 똑같이 빽 좋구- 안 그래? ”
“ .........다 좋은데, 착한 여자 울리지만 마라. ”
자신만만하면서도 어딘지 시니컬한 현우의 대답에 태민의 기분은 더러워진다.
자신이 그토록 탐을 내도 가질 수 없는 여자, 그 여자를 저렇게 가볍게
말하는 현우의 태도라니-
하지만, 그 순간 윤아는 엘리베이터에 같이 탄, 현우에게 찝쩍대던 섹시녀의
뺨을 야멸치게 갈기고 있었다.
낯선 여자에게 뺨을 맞고 얼떨떨한 섹시녀에게 윤아는 차갑게 쏘아 붙인다.
“ 그깟 몸 하나로 버티려면 앞으론 사람 잘 골라!
아무한테나 까불다 큰 코 다치지 말구.”
윤아 역시, 겉보기처럼 마냥 착한 여자만은 아니었다...
다른 날, 메이플 호텔 로비.
지나다니는 세련남, 미끈녀들과 확연히 구분가는 차림의 은수가 제법 큰
짐 보퉁이를 든 채 어정쩡한 자세로 장미를 기다리고 있다.
지금껏 자신이 꾸려온 펜션과는 하늘과 땅 차이가 나는 초특급호텔의 정경을
둘러보며 내심 기가 팍 죽지만,
잘 곳을 빌려주는 거야 다 똑같지, 공기 좋고 눈 구경도 실컷 할 수 있으니까
우리 펜션이 더 좋다...며 센 척도 해보는데-
한 무리의 체격 좋은 남자들이 호텔로 우르르 들어오자 로비가 잠시 소란해진다.
놀란 쫓아 나온 직원은 무리의 맨 앞에 선 현우를 보며 머뭇거리자,
현우는 친구들과 놀러온 것뿐이니 신경 쓰지 말라며 직원을 안심시키고
다시 무리들을 끌고 간다. 하키팀 전원을 끌고 온 게 아무래도 불안한 정훈은
현우에게 자꾸만 돌아가자고 권하지만, 아랑곳 하지 않는 현우.
작은 소동의 원인이 궁금해 살그머니 구경하던 은수는, 등을 돌리고 서 있는 현우
에게 호텔 직원들이 쩔쩔 매는 걸 보며 흥미로워 하는데,
때마침 나온 장미가 뒤에서 와락 은수를 껴안는다.
오랜만에 보는 친구와 부둥켜안고 팔짝팔짝 뛰다가 현우네가 이미 사라져버린 걸
깨닫고 좋은 구경거리를 놓친 것 같아 아쉬워지는 은수.
그런 은수에게 장미는 초특급 호텔의 커피 맛을 보여주겠다며 커피숖으로
데리고 간다.
같은 시간, 호텔 가라오케 룸에서는 윤아의 생일파티가 벌어지고 있었다.
새로운 손님이 들어올 때마다 번번이 실망하던 윤아는 이번에도 기대하던 현우가
아닌 태민이 들어오자 서운함을 감추지 못한다. 그런 윤아의 기색을 모르는 척
준비한 선물을 내미는 태민. 태민의 그런 정성에 윤아는 좀 전의 자기 태도를 미안해하며 선물을 풀어 보는데, 룸 밖에서부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리며 현우와
하키팀원들이 일시에 룸으로 들이 닥친다.
당황한 윤아에게 팀 회식이 있는데 주머니가 비어서 생일잔치에 얻어먹으러 왔다며 넉살을 풀어놓는 현우.
그런 현우 일행을 다른 손님들과 태민이 못마땅하게 쳐다보고, 윤아는 하키팀에게
억지로 웃는 얼굴을 지어 보인다. 진탕 먹고 마시기 시작하는 현우네를 보며
간신히 평정을 유지하던 윤아는 결국 태민에게 집에 데려다 달라는 부탁을 한다.
그렇게 빠져 나가는 두 사람을 보며 씁쓸하게 미소 짓는 현우.
그런 현우에게 정훈은, 잘 닦인 길과 완벽한 마누라 감을 그렇게 싫다는 현우를
이해할 수 없다며 이유가 뭐냐고 묻는다.
“ 남이 닦아 놓은 길을 가는 게 무슨 재미냐?
너무 준비되어 있는 여자두 피곤하긴 마찬가지야. “
“ ...배부른 소리하구 자빠졌네. 허긴 그래서 니가 좀 덜 아니꼽긴 하지만. ”
현우와 정훈이 그렇게 털털한 웃음을 나누는 순간, 윤아의 손님 중 몇몇이
현우를 욕하는 소리가 들려온다. ‘첩의 자식’ ...‘메이플 구미호’ ...
이런 단어가 귓가에 울리자마자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현우는,
그 말을 한 당사자에게 주먹을 휘두르기 시작하고,
순식간에 파티장은 전쟁터로 변하는데-
장미와 함께 커피숖에 앉아 있던 은수는 장미 어머니가 전해 달라던
장미의 짐과 입사에 필요한 서류들을 건네준다.
같이 학교를 다녔으면 지금쯤 룸메이트가 되서 캐리어우먼의 독립생활을
근사하게 해봤을 거 아니냐며 장미는 안타까워 하지만,
은수는 애써 아무렇지 않은 척 한다.
그렇게 은수의 과거며, 앞으로의 계획을 재잘대기 시작 하는데,
장미의 선배직원이 도끼눈을 하고 쫓아온다.
지금 가라오케 쪽에서 난리가 났는데, 팔자 좋게 커피나 마신다며
혼쭐이 나는 장미를 보다 못한 은수가 먼저 일어서자,
장미는 말썽꾸러기 사장 아들이 또 뭔가 사고를 친 것 같다며 미안해한다.
서둘러 가라오케 쪽으로 가는 장미를 배웅하고 씁쓸한 얼굴로 돌아서는 은수.
그런 은수 뒤로, 한바탕 싸움 끝인 현우와 일행들이 ‘모셔져’ 나온다.
그렇게 스쳐 지나가는 은수와 현우-
둘의 운명이 어떻게 엮일 지는 아직 알지 못한 채 그렇게 멀어져 가는데....
윤아를 데려다 주는 길에 강을 보고 싶다는 윤아의 바램에
고수부지로 차를 돌린 태민은 윤아에게서 넋두리 같은 말을 듣는다.
“...차라리 오빠가 현우였음 좋겠어.
그런 자식 만나지 말구 첨부터 오빨 만났다면.....
그랬으면 이렇게 가슴 아플 일두, 힘들 일두 없었을텐데... ”
운전대를 쥔 태민의 손에 힘이 들어간다. 그건 태민의 마음도 마찬가지였으니까-
처음부터 현우의 어머니 정 여사가 아니라, 자신의 어머니가 강 회장의 눈에 들었다면, 강 회장이 그 잘난 재벌가의 체면 따위 때문에 자기들 모자를 버리지만
않았다면....그랬다면 여태까지 현우가 가졌던 모든 건 다 내 것이었을 텐데.
지금 옆에 앉은 윤아까지도 말이다.
아직 자신의 진짜 정체를 모르는 강 회장 일가가 진실을 알게 되면
과연 어떤 반응들을 보일까....
그런 생각에 잠겨 있던 태민의 핸드폰이 갑자기 요란하게 울리기 시작한다.
현우가 싸움 끝에 경찰서에 들어와 있다는 연락에 소스라치는 태민과 윤아.
싸움을 한 양쪽 모두 만만치 않은 집안이었기에 변호사들끼리의 합의를 마친
태민은 경찰서에서 현우를 데리고 나온다.
그리고 현우를 태워 한남동 본가로 향하는데...
엉망이 되어 들어오는 현우를 보고 정 여사는 기함하지만,
현우의 이복누이 현정은 드러내놓고 비웃기만 한다.
“ 말 막힌다고 주먹부터 휘두르고...역시 출생은 속이기 힘들어.
이번엔 또 무슨 일야? 누가 또 느이 엄마 첩이냐 그러디?
너무 그러지 마라, 너. 사실을 말한다구 자꾸 패면, 남들이 더 입방아
찧는 것두 모르니? ”
죽은 전처의 자식인 현정은 전처가 살아 있을 때부터 강 회장과 관계가
있었던 정 여사를 대놓고 무시하기 일쑤였고, 현우와는 견원지간 이었다.
일찌감치 메이플 그룹의 주식을 증여 받아 그룹의 대주주 중 한 사람이었지만, 경영엔 별 관심 없이 날마다 밖으로 돌아다니며 돈 쓰는 취미만 가진 현정이었다. 현우 모자의 일이라면 이부터 갈며 나서는 데다 장차 현우가 메이플 그룹을
이어 받는데 가장 큰 힘이 될 지도 모르는 윤아와의 결혼을 못마땅하게 여기던
참이기도 한 현정이 한껏 정 여사와 현우의 속을 긁어놓고 사라지자,
정 여사는 이제 그만 강 회장 눈에 들도록 노력하라며 현우를 다그치지만,
현우는 들은 척도 하지 않는다.
세상에 자기 눈에 들어야만 자식을 이뻐 하는 부모가 있냐는 현우의 말에
말문이 막히는 정 여사.
철들면서부터 첩의 자식이란 말에 상처 받아 온데다 불같은 강 회장의 성격을
나름대로 견뎌온 현우임을 잘 알기에 더 이상 잔소리도 하지 못한 채
얼른 현우를 자기 방으로 올려 보내려는 정 여사.
그러나 하늘도 무심하게 강 회장과 정면으로 마주친 현우는 그대로
끌려와 아버지와 마주 앉게 된다.
하키팀에서 당장 탈퇴하고 유학 준비를 하라는 강 회장의 지시에 강하게 반발하는
현우. 이제 결승전 한 게임만을 앞두고 있는데 지금 하키를 그만 둘 수는 없는
일이었다. 하지만, 현우가 하키를 그만 두지 않으면 바로 하키팀을 해체시켜
버릴 수도 있다는 강 회장 앞에서는 당할 재간이 없고...
강 회장은 태민에게 현우의 경영권 승계를 위한 주식 증여와 유학 일정을
돌봐줄 것을 지시한다.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는 현우의 뒤를 따르던 태민은
왜 태민을 꼭 현우와 한 자리에 앉히냐는 정 여사의 불만을 엿듣는다.
태민을 한 식구처럼 대해야 나중에 현우의 진정한 수족이 될 거라며,
태민이 강 회장네와 인연을 트게 된 사건 - 몸값을 노리고 납치된 현우를 구해낸-
을 들먹이며 태민에게 잘 대해 줄 것을 당부하는 강 회장의 말은 태민을
고깝게 만든다. 그런 태민의 속내를 알지도 못한 채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는 현우.
“ 형이 우리 영감 아들이었음 좋았을 텐데”
“ 뭐? ”
“ 난 말야. 다시 태어남 바람이 될꺼다.
한 곳에 매이지도, 머물러 있지 않고... 내 맘대로 하고 살 수 있으니깐“
“ 지금두 충분히 맘대로 하고 살잖아?”
“ 글쎄, 그럴까...사랑두 인생도 다 정해져 있는데..이게 정말 맘대로
사는 걸까... ”
하지만, 그런 현우의 고민조차 태민에겐 배부른 투정으로만 비칠 뿐이다.
방금 도착한 커플에게 펜션을 소개하고 있는 은수.
헐렁한 셔츠차림인 자신과는 달리, 잘 차려입은 또래의 남녀커플을 보며 부러움도
약간 느낀다.
“여긴 창이 세 개예요. 노을이 아주 멋있죠. 이름하여 선 라이즈 룸. 아침은 토스트가 무제한 제공 되구요, 요 아래 공방에선 유리공예 체험도 할 수 있어요”
열심히 설명하는 은수의 말에 아랑곳없이 왜 호텔에 안 묵냐며 툴툴대는 젊은 여자를 보며 은수는 성질을 꾹꾹 눌러 참는다.
한대 쥐어박고 싶은 마음을 누르며 근처의 명물 플라잉 낚시와 가까운 도시에서 내일 열릴 전국 아이스하키 결승전에 대한 안내까지 마치고 방을 빠져 나오던 은수는
곧 방안에서 들려오는 여자의 찢어질 듯한 비명을 듣고 서둘러 돌아간다.
그리고 잠시 후, 조심스럽게 손 안에 귀뚜라미를 싸서 펜션 밖으로 나온 은수는
의아하게 지켜보는 아버지 앞에서 벌레를 놓아준다.
“서울사람들은 정말 이상해.
아무런 해꼬지두 안하는 벌렐 무서워한단 말야. 정말 무서운 건 벌레가
아니라 사람인데...그지 아버지? “
그 순간, 서울 교외의 어느 한적한 요양소에 면회를 온 태민.
굳게 닫힌 병실 안에서 태민이 지켜보는 줄도 모른 채 얼굴에 열심히 화장을
하고 있는 50대 초반의 여자 환자를 지켜보고 있다.
울긋불긋 온 얼굴에 색칠을 하며 거울을 보고 있는 그녀..바로 태민의 생모였다.
곱기만 하던 자신의 어머니를 저렇게 만든 강 회장을 결코 용서할 수 없다는
생각에 주먹을 불끈 쥔 태민은, 어느 샌가 자기 옆에 나란히 선 외삼촌 한 필두에게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을 건넨다...
“계획을 좀 앞당겨야겠어요. 주식증여가 되버리고 나면 피곤하니까.”
아직도 방 안에서 혼자 무슨 말인가를 중얼대는 어머니를 쳐다보는 태민의
눈빛은 날카롭게 빛나고 있었다.
은수가 준비한 특별 이벤트에 결혼기념을 위해 펜션을 찾았던 부부는
감동하고, 내년치 예약까지 미리 한다.
그런 은수에게 손씨 아줌마는 타고난 펜션 주인이라며 칭찬을 하지만,
겉으로만 웃는 은수의 마음은 씁쓸하기만 하지만, 주변에 돌아볼 만한 게 뭐가 있냐고 묻는 손님들에겐 얼른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안내를 한다.
관광지는 물론 재미있는 명물 장터와 사진 찍기 좋은 포인트까지 일사천리로
불러주며 혹시 아이스하키를 좋아한다면 아이스하키 대항결승전이
열린다는 얘기도 덧붙이고.
예약 확인을 하며 저녁에 올 손님들을 터미널로 데리러 나간다는
은수에게 은수부도 시내에 나갈 일이 있다며 동행하겠다 말한다.
윤아는 자신의 방에서 유화에 마지막 터치를 하고 있었다.
하키를 하고 있는 현우의 모습...
그림 속 질주하는 현우를 바라보는 윤아의 얼굴에 저절로 미소가
지어지지만, 그런 딸을 보는 오 여사는 아무래도 현우가 마땅찮아 불평을 한다.
하지만, 윤아는 그런 어머니의 불평을 ‘내가 현우를 좋아해, 아주 많이’ 라는
말로 한 번에 잠재워 버린 채 나갈 채비를 시작한다.
집안에 갇혀 유학 준비를 하고 있을 미래의 남편을 위로 방문하기 위해서.
식구들 몰래 집을 빠져 나가 하키장으로 가려던 현우는
결국 강 회장에게 들켜 차 열쇠며 지갑, 전화기까지 통째로 뺏긴 채 방에 감금된다.
그나마 자유롭게 드나드는 태민에게 결승전을 앞둔 자신의 답답한 속내를
털어놓고 도움을 청한다.
“ 하키가 그렇게 좋냐.”
“ 꿈을 가지라고 한 건 형이었잖아?”
“ 내가 말한 꿈은 메이플 그룹 경영자를 말한 거였어. ”
“난 말야 늘 엄마랑 영감님이랑 시키는 대로 살았다구.
내 번호가 왜 11번인줄 알어? ... 11은 새로운 시작이래.
이제까지 떨어져 살던 나랑 하키란 놈이랑 만난거거든... 그건 운명이야”
“ .......그래, 그렇다면 할 수 없지. 운명이니까. ”
마침내 태민의 도움으로 무사히 집에서 빠져 나간 현우는
마지막으로 태민을 돌아보며 신나게 손을 흔들어 보인다.
배웅하는 태민의 눈빛이 야릇하게 빛나는 건 알아채지 못한 채...
“ 잘 가라, 강 현우.
니가 말한 그 운명을 한 번 시험해 봐라... ”
태민의 차를 빌려 타고 춘천 아이스 하키장을 향해 질주하는 현우는
서울에서부터 자신의 뒤를 조심스럽게 따르는 검은 차를 눈치 채지 못한 채
휴게소에 들려 목을 축이려 한다.
그런 현우의 뒷모습을 눈으로 쫓는 검은 차 속의 사내...
콜라를 하나 집어든 현우는 계산을 하려고 주머니를 뒤지다 아차, 싶어
자기 이마를 친다. 지갑을 아버지에게 죄다 몰수당한 채 그냥 빠져나왔던 것이다.
아쉽게 입맛을 다시며 콜라를 제자리에 가져다 놓으려는 현우에게 뒤에 서 있던
인상 좋은 남자가 콜라를 선물한다.
혹시 한국대 강 현우 선수가 아니냐며 팬이라는 말에 왠지 으쓱해지는 현우.
비인기 종목인 하키를 좋아하는 사람도 드문데 팬이라니, 아무래도 결승전은
운이 팍팍 터질 것 같은 예감에 현우는 기분 좋아지는데...
다시 차에 타려던 현우는 좀 전의 팬이라던 남자가 고장 난 차 앞에서
발을 동동 구르는 걸 발견한다.
춘천까지 급하게 간다는 남자에게 카 풀을 제안하는 현우.
결승전을 앞두고 신경을 좀 쉬고 싶다며 운전을 대신 해준다면 춘천까지
태워 주겠다는 현우의 제안에 남자는 얼른 오케이 하는데,
내내 현우의 뒤를 눈으로 쫓던 검은 차 속의 남자는 마침 차를 빼라며
요란하게 경적을 울리는 관광버스에 가려 현우가 조수석으로 옮겨 타는 걸
보지 못한다.
길이 막히고 날은 어두워지는데, 얼른 숙소에 합류해야지만 작전회의에도 참석할 수 있단 급한 마음에 국도로 돌아가기로 하는 현우와 히치 하이커.
한적한 국도를 달려가며 남자와 통성명을 한 현우는 잠깐 눈을 붙이겠다며
양해를 구하는데, 남자가 차의 시계가 고장 나 정확한 시간을 알기 힘들다고
말하자 자신이 찼던 시계를 풀러준다.
급커브가 심한 도로를 타면서, 운전을 하던 히치 하이커는 뒤에서 쫓아오는 검은 차 때문에 불안해하기 시작한다.
잠든 현우를 흔들어 깨운 남자가 뒤 따르던 검은 차가 아무래도 운전이 이상하다는
말에 뒤를 돌아보는 현우.
그런 현우의 시야에 자신들의 차를 향해 무섭게 돌진하기 시작하는 검은 차가
똑똑히 보이면서 강렬한 헤드라이트 불빛이 덮쳐 오는데-!
사전 연락도 없이 펑크를 낸 손님들 덕분에 터미널에서 하릴없이
시간만 축내다 펜션으로 돌아가게 된 은수는 아버지와 함께 툴툴대며
운전을 하고 있다.
그러다 갑자기 도로변에서 차 앞으로 뛰어든 물체에 놀라 급정거하고...
자신이 사람을 치었을지 모른다는 사실에 놀라 차에서 뛰어내린 은수는 피투성이인 채 정신을 잃은 한 남자, 현우를 발견한다.
죽은 듯 미동도 않은 남자....
놀람과 당황함에 우왕좌왕하던 은수는 아버지와 함께 현우를
차에 태워 병원으로 데려 간다.
현우가 극심한 골절상과 함께 신원을 파악할 만 한 건 아무 것도 지니지 않았다는
사실은 은수를 당황시키고, 결국 보호자의 신분이 되어 현우를 지켜보게 만든다.
한편 윤아를 데리고 현우 방을 찾은 정 여사는 방주인이 간 곳 없자 적잖이
당황한다.
늘 엉뚱한 현우기에 아무렇지 않은 듯 돌아오리라 믿는 정 여사지만,
핸드폰마저 불통인 것이 못내 마음에 걸리는데...
역시 초조한 척 연신 현우에게 연락을 취해 보는 태민이지만, 현우의 거취는
오리무중이다. 그렇게 모두가 현우를 기다리는 가운데....
현우가 탔던 태민의 차가 강원도로 향하는 한 국도에서 완전히 소실된 채 발견됐다는 소식이 전해지며 집안은 풍비박산이 난다.
당장 태민을 대동하고 시체가 안치된 병원을 찾은 강 회장 내외는
도무지 형체조차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불에 탄 시체에서 발견됐다는
현우가 애지중지하던 시계를 보자 그대로 혼절하고...
그렇게 드러나는 현우 죽음의 증거에 유나 역시 망연자실해진다.
남몰래 필두에게 계획 성공을 치하하는 전화를 거는 태민이지만,
그토록 오랜 시간을 함께 했고, 자신의 이복동생인 현우의 죽음 앞에서 마냥
태연할 수만은 없었다.
...그래도 어쩔 수 없잖니, 강 현우....이게 니가 말한 바로 운명인 걸.
한편, 삼 일만에 병원에서 겨우 눈을 뜬 현우는 자신의 이름조차 기억해 내지 못한 채 여기가 어디냐는 말만 되풀이한다.
정밀검사 끝에 단기 기억 상실 판정을 받은 현우의 처리 문제를 두고
병원에선 왈가왈부가 계속되고, 경찰에서 연락이 올 때까지 우선은 은수 부녀가
현우를 책임지라는 말에 은수는 화를 내고 만다.
아닌 밤중에 홍두깨라고... 하마터면 차 앞으로 뛰어든 그 남자 때문에 인사 사고까지 낼 뻔 했는데, 집도 절도 모르는 남자를 도대체 왜 내가 책임져야 한다는 거지?
분한 마음에 씩씩대며 현우를 찾은 은수는, 정말 기억이 안 나냐며 현우를 다그치기 시작한다. 괜히 쇼하는 건 아닌지, 혹시 범죄자나 그런 건 아닌지...급한 마음에 현우를 닦달하는 은수에게 온 병원이 떠나갈 듯한 고함을 질러대는 현우-
깜짝 놀라 자신을 바라보는 은수에게 현우는 묻는다.
“ 내가...누구지? ”
그렇게 서로를 마주 보는 두 사람의 날선 눈빛에서....엔딩.
<2부>
삼 일만에 병원에서 겨우 눈을 뜬 현우가 자신이 누구냐며 소동을 일으키자
은수는 웃어야 할지 울어야할지 모를 지경이다.
지갑이라도 주웠으면 당신은 어디어디에 살던 누구라고 대꾸라도 해 줄텐데
정작 은수조차 현우에 관해 아무것도 알지 못하니....
지금까지의 모든 기억을 잃어버린 <기억상실>로 판명 받는 현우.
놀란 병원 측에서는 현우의 존재를 경찰서에 신고하지만
강원도 작은 읍의 파출소에선 일 년의 행불(행방불명)인 인원만 하더라도
천명이 넘는다며 쉽지 않을 거란 말만 전한 채 미온적으로 대응할 뿐이었고,
조급한 마음으로 이루어진 지문조회 역시 어긋나기만 한다.
외국 시민권자거나 주민증 갱신 과정에서 누락된 경우 지문조회가 어렵다는
경찰 측의 말에 은수는 한숨만 내쉬며 돌아오는데...
의사인 정규(은수가 짝사랑해 온)는 현우가 심신이 불안정하기 때문에 의지할 수 있는 보호자가 필요하다는 것과 병원에서 계속 현우를 보호할 순 없다는 이유를 들어 은수부에게 현우의 임시 보호자가 되어줄 것을 권유한다.
정에 약한 은수부는 은수를 설득해 보지만 은수는 자선사업이나 하자고 신분도 알 수 없는 현우를 맡을 순 없다며 구해 준 죄밖에 아무런 법적 책임이 없단 이유를 들어 딱 잘라 거절한다.
그러나 마지막 인사를 하기 위해 병실에 들른 은수와 은수부는
현우가 사라졌다는 걸 알게 되고 어쩔 수 없이 발목이 잡혀
또 다시 간호사들과 함께 현우를 찾아 나선다.
그리고 멀지 않은, 병원 앞 버스 정류장에서 오가는 버스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앉아 있는 현우를 발견한 은수.
눈뜬 직 후부터 날 생선처럼 파득거리던 기개는 간 데 없고
길 잃은 어린 애처럼 두려움을 품고 앉은 현우를 보며 은수는 조용히 다가선다.
“멀리 가지도 못할 거면서 도망은 왜 나왔어요?”
“병원 사람들이 다 짜고 그러는 줄 알았어요...거기서 나오면 모든 게
거짓말처럼 다 기억날 줄 알았는데... 저 많은 사람들이 다 갈 곳이 있는데
나만 갈 데가 없더라구요....”
“이러구 청승떨면 뭘 해요. 갈 데 있으니까 잔말 말고 따라와요”
부녀는 어쩔 수 없이 낯선 남자를 자신들의 펜션으로 데려오고
아버지의 지시에 따라 은수는 현우가 쓸 방과 입을 옷을 마련해주지만,
신분을 알 수 없는 현우에 대한 경계심만은 늦추지 않는다.
이런 은수의 맘을 알 리 없는 현우는, 자신의 처지도 망각한 채
어둠 속에서 냉장고를 열다가 목욕하고 나오던 은수를 놀래 키기도 하고,
남녀 커플이 묵고 있는 방을 은수의 방으로 잘 못 알고 열어젖히기도 한다.
도대체 어떤 배경을 지닌 사람인 지,
욕실 수건을 한꺼번에 여러 개씩 쓰고 나와 아무데나 버려두질 않나,
산나물 반찬 따윈 입에도 대지 않고, 같이 나선 시장에선 분수도 모르고
통 큰 모습까지...생전 힘든 일이라곤 안 해 봤는지 전구 하나 갈아 끼우는
것조차 제대로 해내는 게 없는 현우를 보며 이건 환자가 아니라 상전이라며 은수는 급기야 폭발하고 만다. 그리고 보호 대상자가 아니라 경계 대상자로 분류되어 은수의 통제 감시를 받게 되는 현우.
특유의 낙천성으로 은수의 구박을 피해 좌충우돌하는 하루하루를
보내는 현우였지만, 자신의 이름조차 모른다는 현실은 버겁기만 하다.
그런 현우의 아픔을 엿본 은수는 <인성>이라는 이름을 붙여준다.
이름이 없으니 심부름도 시키기 힘들다며 툴툴대는 은수에게 ‘인성’이라는 이름이
특별한 의미라도 있냐며 내심 기대를 갖고 묻는 현우였지만,
그저 갑자기 생각난 이름이라며 대꾸 않고 사라지는 은수.
인성이란 이름을 되뇌며 나름대로 이름에 여러 가지 의미를 부여해 보려는
현우의 등 뒤에선 조인성이 나오는 TV드라마가 한참이다. 어이없이 웃음 짓는
현우.
어느 날, 은수와 은수부 앞에 펜션 일대의 땅을 사 모으려는 투기꾼들이 나타난다.
아무리 회유를 해도 은수 부녀가 말을 들으려하지 않자,
투기꾼들은 이 근방이 곧 골프장으로 밀리게 될 것이라며 수행비서(조폭)를 동원해 헐값에 팔리느니 좋은 값에 내 놓으라는 반 협박을 가한다.
수행 비서들의 난폭한 행동을 저지한 현우 때문에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쑥대밭이 된 펜션 뜰을 보며 망연자실하는 은수부녀.
부러진 의자와 파라솔을 정리하던 현우는 차라리 제 값 쳐줄 때 얼른 팔아 치우고 좀 더 편한 장사를 하는 게 약은 일이라며 인근에 왜 펜션이 여기 하나겠냐, 는 둥 특유의 건방진 말들을 서슴없이 내뱉는다. 그리고 그런 현우의 뺨을 때리는 은수-
놀라 눈이 둥그레진 현우에게 은수는 눈물 가득한 눈으로 소리친다.
“니가 얼마나 잘 먹구 잘 살던 사람인진 모르겠지만
세상엔 돈으로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들이 있어!“
은수의 말에 반박할 만한 아무런 기억조차 가지지 못했지만,
기억과 상관없이 자신이 아무렇게나 내뱉은 말에 은수가 상처 받았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현우는 마음이 아파오는 걸 느낀다.
그 일이 있은 후, 은수 부로부터 은수 엄마 무덤이 뒷산에 있다는 얘길 전해들은
현우는 은수에게 더욱 미안해지는데...
현우의 시체가 발견되면서 가족과 윤아의 신임을 얻기 위한
태민의 계획은 본격적으로 진행되기 시작한다.
무엇보다 현우가 없어진 틈을 타, 태민이 확실하게 마음을 사로잡아야할 대상은
윤아였다. 윤아가 기대야 할 어깨는 현우가 아니라 자신의 어깨임을,
이젠 현우가 아니라 자신이 윤아 앞에 서 있게 될 것임을 인지시키려는 태민.
그러나 윤아는 아직도 현우 사진을 보며 환청에 시달리기까지 하는 자신의 고통은 무시한 채, 현우의 죽음을 잊게 하기 위해서라도 윤아를 데리고 무작정 달리며 슬픔을 달래주려는 태민.
태민은 언젠가, 지금 윤아가 흘린 이 눈물의 상흔을 도려내 줄 사람은 다름 아닌,
한 태민... 자신이 될 것임을 되뇌이며 윤아의 눈물을 닦아준다.
또한 윤아만 보면 목 놓아 통곡하는 정 여사의 슬픔까지 위로해야 하는 것도
태민의 몫이었다.
실의에 빠진 강 회장을 달래가며 그룹의 중요 사안을 알아서 처리해 나가는가 하면
강회장의 입지를 보호한다는 명분 하에, 끊이지 않는 세간의 구설수와 메이플가를 둘러싼 가십거리들을 살펴 대외적 이미지까지 철저하게 관리하는 것도
용의주도한 태민이 강회장가의 관리인으로써 도맡은 일이었다.
한편 현우는 하루가 다르게 펜션 생활에 적응해 나가고 있었다.
펜션에 관한 간단한 잡무며, 보일러 고치기, 무너진 지붕 올리기, 주저앉은 매트리스 옮기기 등 몸이 안 좋아진 은수 부를 대신해 은수가 힘겹게 해내야 했던 일들을 분담해 나가기 시작한 것이다.
현우가 오기 전까지만 해도 아무리 들여다봐도 구조를 알 수 없는 보일러실에서, 혼자 보일러를 손보다가 터져나온 물줄기에 온몸을 홀딱 적신 생쥐꼴이 된 적도 있었던 은수였다. 그러나 이젠 그런 자신을 밀치고 단 몇 분만에 일을 끝내고 손을 터는 현우를 보며 은수는 약이 오르기도 하지만 기실, 현우의 도움이 필요하단 생각을 하게 되던 터였다.
펜션 어딘가에 문제가 생겨도 성격상 뭐 좀 도와달라고 쉽게 손 내밀지 못하는
은수를 밀치고 알아서 일을 해결하는 현우. 은수는 그런 현우에게 꼴에 남자라고... 라며 무시어린 혼잣말을 하기 일쑤지만 점점 현우에게 의지해 가고 있는 자신을 속일 수는 없었다. 이런 은수를 볼 때마다, 꼴에 여자라고...라는 혼잣말로
결국엔 은수를 약 올리고 마는 현우.
그러던 어느 날, 장을 보고 돌아오는 길에 병원에서 부친의 기관지 약을 받아 오려던 중 의사인 정규 앞에서 유난히 수줍어하는 은수을 보게 된다.
처방전을 받는 은수의 손이 가늘게 떨리는 모습까지...
“내숭두 아니고 얘가 안하던 짓을 하구 그래?” 라며 툭- 하고 은수의 등을 치는 현우. 은수는 그런 현우의 태도에 부끄러워하며 도망치 듯 약국을 뛰쳐나온다.
순간, 은수가 정규를 좋아하고 있단 걸 알게 되는 현우였다.
“취향 참 독특하네... 샌님같이 생긴 의사선생이 니 타입이었어?”
“정규씨가 샌님이면 넌 머슴이야. 왜, 사람 생긴 거 같구 그래?!”
“...그래도 아니란 말은 안 하네? 의사 선생은 암 것두 모르는 거 같던데,
고백은 해 본거야?”
현우의 건들거리는 말투에도 풀이 죽어 대꾸하지 못하는 은수. 그저 혼자만 간직해 오던 짝사랑의 감정을 다름아닌 현우에게 들킨 것이 자존심 상해 씩씩거리며 앞서 걷는 은수를 보며 현우는 잠시나마 여자로써 다가온 은수의 모습을 각인시킨다.
그 날 이후, 현우에겐 선머슴 같은 동년배인줄만 알았던 은수가 수줍어하며 얼굴을 붉히던 모습이 머리에서 떠나질 않는다. 은수 생각만 하면 피식- 하고 웃음이....
같은 시간 베갯머리에서 잠을 설치며 정규 앞에서 당한 망신을 떠올리며 천번 만번 현우를 욕하는 은수. 아무리 생각해도 욱- 하고 화가 치미는데....
“지 은수...너도 여자였어?”
“조 인성...나두 여자야.
니 눈엔 보잘 것 없는 펜션지기 같겠지만 나두 엄연한 여자라구!”
그 날부터 은수를 정규 앞에 당당히 서게 하기 위해,
현우는 틈이 날 때마다 정규를 공략할 짝사랑 고백법을 코치하기 시작한다.
갑자기 우호적으로 변한 현우의 태도를 이해할 수도 없을뿐더러, 자기가 누군 지 기억도 못하는 녀석의 연애 기술이라니... 은수는 도통 믿을 수가 없다.
그러나 듣거나 말거나 하루 종일 따라다니며 세뇌하듯 고백법을 주입시키는 현우의 말에, 어느 순간 그럴 법하다며 귀를 기울이고 있는 은수.
첫째, 반드시 공적인 업무를 들어 자주 부딪히라.
현우에게 등 떠밀려 병원 문을 열지도 못하고 뒷걸음치지도 못한 채
안절부절 못하는 은수에게 파이팅을 해 보이는 현우. 열 번 찍어 안 넘어가는 남자가 없다며 은수를 격려하지만 정규 앞에만 서면 그 씩씩하던 은수도 말을 더듬어가며 실수만 연발할 뿐이다.
괜히 왔다며 매번 주눅 들어 돌아서는 은수에게 어깨를 두르며 2단계를 강행하는 현우. 처음엔 팔부터 치우라며 목소리 높이던 은수지만 나중엔 고분고분 듣고 있는 모양새가 되고 만다. 현우는 그런 은수를 사랑스럽게 보고...
“가만있어 봐... 근데 내가 왜 니 말을 다 들어야 하는데?”
“니가 행복해져야 내 생활이 편해지니까... 파이팅 지 은수!”
둘째... 매일 보이다가 어느 날 자취를 감출 것.
어설픈 모습으로 매일 정규 앞에 나타나던 은수의 습관 같은 방문을 기대하던
정규는 은수가 자취를 감춘 날, 생전 병원 밖으로 나오지도 않던 전례를 깨고 병원 밖으로 나와 하루 종일 골목 어귀를 서성이며 누군가를 기다린다.
발소리가 날 때마다 반색하며 돌아봤다가 은수가 아닌 걸 알고는 돌아서는 정규.
골목에 숨어 마치 현우의 사주라도 받은 듯, 누군가를 기다리는 정규의 모습을
지켜본 은수는 정말 정규가 자신을 기다리는 것인지에 대한 의문을 갖지만
다음날 병원에 들렀을 때, 왜 어제는 오지 않았냐며 먼저 안부를 묻는 정규를 보며 은수는 현우의 공략법이 효과가 있었음을 인정하고 만다. 현우의 말이라면 무조건 반발부터 하고보던 은수도 현우가 제법이란 생각에 정규와 있었던 일을 시시콜콜 의논하기 시작한다.
“니가 들고 있는 짐을 들어주겠다면 그러라고 해. 그건 니 손을 잡고
싶단 뜻이니까...”
“소, 손을 잡아?! 그걸 보고만 있으라구?”
“넌 남자랑 키스도 안 해 봤냐?! 수녀도 아닌데 손잡는 거 갖구
오바하구 그래?”
시간이 지나면서 남자와 키스 한 번 못해 봤다는 순진한 약점까지 들키고마는
은수. 현우는 야생마 같던 은수의 첫인상과 나날이 달라져가는 지금의 모습을 비교하며 양파 같은 은수의 매력에, 정규가 아니라 현우 스스로가 빠져들고 있음을 부정할 수 없는 없게 된다.
정규와 처음으로 개인적인 안부를 주고받았다며 뛸 듯이 기뻐하는 속없는 여자 아이, 은수를 보며 현우도 덩달아 미소하지만 이 미소가 정말 저 여자의 행복을 위한 것일까 아니면 내 마음을 감추기 위해 가면을 쓰고 있음일까에 대한 혼란은 점점 커져간다.
그러나 정규에게 빠져있는 은수에게 섣부른 감정을 표현했다가 서로 어색한 사이가 될까 두려운 현우는 두 눈을 질끈 감고 3단계를 강행한다.
셋째, 이젠 그 앞에 자신의 감정을 언급하라...
그러나 이제까지의 자신감과는 달리 보잘것없는 자신의 모습 때문에 결정적으로는 정규 앞에 나서기를 꺼리는 은수.
현우는 그런 은수를 마주 앉히고 은수에게 자신감을 불어넣어준다.
“니가 물론 예쁘지도 않고 상냥하지도 않긴 해.
그렇다고 착하지도 않고 여성스럽지도 않지. 어디 그 뿐이겠어?
드세고 말 안 듣고 고집 세고 게다가 불같이 화도 잘 내고....
그치만 녀석도 알게 될 거야.
널 한번 눈 안에 담아두면 너 외엔 아무것도 볼 수 없단 걸...
넌 그런 여자야, 지 은수...“
얘기를 끝마친 현우와 무심히 듣고 있는 은수 사이에 묘한 침묵이 흐르고....
은연중에 자신의 감정을 고백해버리고 만 현우는 당황해하는 은수를 보며 장난을 걸어 순간의 어색함을 모면한다. 그러나 은수 역시 어느 순간부턴가 정규가 아니라 현우 때문에 웃고 기뻐하는 자신을 느껴왔던 혼란스러운 감정 때문에 현우와의 서먹함을 쉽게 지울 수가 없다.
이 후, 한 공간에서 티격태격하면서도 아무런 사심이 없었던 두 사람은
은수 부가 잠시라도 펜션을 비우거나, 둘만 식사를 하게 되는 자리에서는
어색함을 피하려 먼저 자리를 뜨며 후회하는 일을 반복하게 된다.
어미를 잃은 새끼오리가 눈 앞에 있는 누구에게라도 모성애를 느끼듯
은수에 대한 감정이 그러한 것이라고 치부하며 사랑을 부정하려는 현우....
기억을 되찾으면 언젠가 펜션을 떠나 언제 그랬냐는 듯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게 될 현우를 그려보며 현우에 대한 자신의 감정을 애써 부정하려는 은수.....
두 사람의 어색한 침묵이 이어지던 어느 날,
상을 당한 은수 부의 친구를 조문하기 위해 은수와 은수부가 펜션을 비우자
두 사람은 처음으로 떨어져서 하룻밤을 보내게 된다.
아무리 티격태격하더라도 아침부터 밤까지 잠시도 눈앞에서 사라진 적이 없었던
두 사람은 아주 잠시 동안이지만 손닿는 곳에 서로가 없다는 현실을 처음 접한다.
미치도록 그립다는 감정에 일손조차 제대로 잡지 못하는 현우.
밤을 새는 은수부를 놔두고 상가를 나와 멍하니 밤하늘을 보던 은수도
알 수 없는 공허함, 가슴이 터질 것만 같은 그리움을 느끼는데....
망설이다 펜션으로 전화를 건 은수는 몇 번의 신호 끝에 활기찬 목소리로 전화를 받는 현우의 목소리를 들으며 자신이 느낀 그리움이 무색해진다.
그러나 현우 또한 자신의 안부나 빨리 돌아오겠다는 한마디 없이 펜션의 일상적인 잡무만 점검하는 은수에게서 말할 수 없는 서운함을 느끼는데....
결국 서로에게 하고 싶은 말은 숨긴 채 불필요한 말들로 대화를 채워버리는 두 사람. 서로의 감정을 떠 보고 싶어 사소한 말들로 자극하던 두 사람은 결국 말도 안 되는 한마디 때문에 말다툼까지 벌인다.
“햇빛방 손님들, 보일러 올려 드렸어?....”
(날 추운데 아빠 방에서 자... 니 방은 우풍이 들어서 춥잖아)
“어....”
(언제오는데? 아니,내가 지금 달려라도 갈 수 있다면.....)
“보일러 고치란 건 다 고쳤구?.....”
(매일 힘들 일만 부탁해서 미안해....)
“그 딴 거 물어 보려면 끊어. 나 지금 하던 일 있었어.”
(니가 없어서 아무것도 할 수가 없어... 반나절이 왜 이렇게 긴건지)
“넌 어쩜, 사람이 걱정이 되서 전화를 했으면 좀 친절히 받을 수 없냐?”
(넌 나 없이도 괜찮은가 보구나... 난 아닌데....)
“니가 어디 내 걱정해서 전화했냐? 니네 펜션 잘 있으니까 걱정 꺼”
(이게 아닌데... 보구싶단 한마디면 되는데 이게 왜 이렇게 힘드니?)
“잘났어, 조 인성...딴엔 걱정돼서 전화했더니. 알았어, 끊을께”
(이렇게 끊긴 싫은데...나 잔돈 이거밖에 없단 말야...)
“끊지 마!................... 보구 싶다, 지 은수! ”
(미친 척 한번 질러 봐?!)
“뚜뚜뚜뚜----------------------”
어느 날, 펜션 숙박객들에게 경치 코스를 소개하기 위해 산으로 향한 은수가
숙박객들이 돌아온 저녁시간에도 혼자 돌아오지 않자, 은수부는 은수를 찾아 나서려 한다. 산 중턱에서 발목이 안 좋다는 은수를 억지로 먼저 내려 보냈다는 숙박객의 말에 몸이 안 좋은 은수부를 대신해 산으로 향하는 현우.
그러나 현우가 산으로 떠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은수는 양손 가득 장을 봐 가지고 돌아온다. 자꾸만 사고 싶은 게 많아져 큰일이라며 짐을 풀던 은수는 현우에게 줄 벙어리장갑을 보며 흐뭇해한다.
그런 줄도 모르고 너를 찾아 산으로 갔다며 현우를 걱정하는 은수부.
은수는 산길에 익숙치 않는 현우를 걱정하며 사람들을 동원해 현우를 찾아 나선다.
은수야! ...........인성아!
두 개의 메아리가 몇 분 간격으로 교차되며 근접하는 두 사람이지만
칠흙 같은 어둠 속 산길은 코앞에서 두 사람을 갈라놓는다.
마치 그들의 운명을 예견하는 듯이.....
산속에서 점점 탈진 상태가 되어가는 은수... 내가 이런데 인성인 어떨까 싶어 다시 힘을 내던 은수는 예전, 자신이 길을 잃었을 땐 정상으로 가라고 했던 말을 떠올리며 혹시나 하는 희망으로 산길을 오르기 시작한다.
미끄러지고 까지고 엎어지며 죽을힘을 다해 산 정상에 오른 은수는
파랗게 질려 덜덜 떨고 있는 현우를 본다.
괜찮아 질꺼야...따뜻해 질꺼야....하나도 안 추워..
스스로에게 주문을 걸며 입조차 얼어붙어 가는 현우를, 달려가 끌어안는 은수-
무의식중에 현우에게 줄 벙어리장갑을 가슴에 품었던 은수는 현우에게 장갑을
끼워주며 눈물을 흘린다. 울다가도 속상하고 억울한 맘에 현우의 가슴을 내리치는 은수...오히려 초연한 미소로 그런 은수를 안아주는 현우.
“너...! 니가 산에 대해 뭘 안다고 날 찾아나서?!
정말 죽고 싶어서 환장했니?!“ “난 오히려 니가 어떻게 됐으면 가만 안 두려고 했어! 너한테 못한 말이
얼마나 많은데 니가 잘못 됐으면 나두 억울해서 단명했을지 몰라. “
“.................”
“내일이 없을 지도 모르는 데 너무 망설였어... 사랑....한다 지 은수 !”
현우의 뜻밖에 고백, 그러나 너무 기다렸던 고백에 은수는 현우를 더욱 꼬옥
감싸 안는다. 서로의 체온으로 추위를 잊은 채 첫 키스를 나누는 두 사람.
오랜 시간 서로를 힘들게 하던 오해를 지워버리고 서로의 사랑을 확인한
은수와 현우는 다시는 말 못할 오해로 어긋나지 말자며 약속한다.
그리고, 현우는 둘만의 편지를 주고받을 수 있는 편지함을 만들기로 한다.
직접 나무를 자르고 색을 칠하고 둘 외엔 아무도 열어볼 수 없도록 양 옆으로
자물쇠까지 채워 각자 열쇠를 나눠가진 은수와 현우는 각자의 목에 열쇠 목걸이를 만들어 걸어준다.
다신 오해 때문에 멀리 있지 말기.....
다신 서로를 위해 거짓말하지 말기.....
사소한 한 마디도 쪽지로 적어 편지함에 넣어두고 열어보며
둘만의 비밀스런 사랑을 키워가는 현우와 은수.
그러나 아직은 마을 회관에 경찰들이 나타나 실종자 명단을 바꿔 달 때마다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명단을 훑어봐야 하는 상황과 현우와 은수를 걱정스런 눈길로 바라보는 은수부의 시선 앞에서 두 사람의 사랑이 당당할 수만은 없다.
자신조차 확신할 수 없는 자신의 신분 때문에 떳떳하게 은수를 책임질 수 없는
현실이 답답한 현우.
은수부는 자신의 눈치를 살피며 조심스러워 하는 은수와 현우의 사랑이
불같은 사랑임을 알면서도 하나뿐인 딸에게 언젠가 상처를 입고 떠나게 될 지도
모를 현우를 염려해 두 사람을 위한 악역을 맡기로 결심한다.
고즈넉한 산길을 함께 걸으며 깊은 한숨으로 말문을 트는 은수 부.
어느 정도 정상적인 생활은 할 수 있을 만큼 적응이 된 것 같다며
현우에게 아는 친구의 목장 일을 소개하겠다고 말한다.
인적 드문 산속에
꽃 같은 딸 아이를 가둬두고 키웠네...
혼자 크고, 혼자 배우고, 혼자 위로하면서 자란 아이야...
산은 알지만 상처는 모르지...
언젠가 제 짝을 만난다면 그 땐 사랑부터 배울 수 있지 않겠나...
이후 며칠이 지나도록 편지함엔 쪽지 한 장도 남아 있지 않고, 매번 실망으로
편지함을 닫던 은수는 짐을 싸들고 나오는 현우를 보며 그 이유를 알게 된다.
한마디 상의도 없이 현우 혼자서 모든 결정을 내려버린 것에 대한 서운함과
예상과 한 치도 다름없이 홀연히 떠날 준비를 마친 객지사람에 대한 배신감으로
현우를 붙들지 않는 은수.
그 어떤 해명과 기약도 없이,
차갑게 헤어지는 두 사람의 머리위로 빗방울이 한 두 방울씩 떨어지기 시작한다.
밤이 늦도록 떠나는 기차만 바라볼 뿐 이미 시간을 놓친 기차표만 만지작거리고 있는 현우... 그리고 은수부 앞에서 아무 일 없었단 듯 태연히 웃고 밥 먹고 TV
보면서도 머리 속은 현우에 대한 생각으로 하얗게 변해버린 은수....
빗줄기가 굵어지면서 펜션을 두드리는 거센 노크소리가 들린다.
혹시, 현우가 돌아온 건 아닐까 싶어 후다닥 뛰어나간 은수는 비에 젖은 사내들의 출현에 움찔 뒷걸음 치고 만다.
어릴 때부터 동네에서 유명한 양아치 짓만 일삼다 집을 나간 봉길이 비에 젖은 그의 친구 두 서넛과 함께 서 있었던 것이다.
문을 닫으며 코앞이 집인데 왜 여기로 왔냐며 숙박을 거부하는 은수부의 손을
가로막은 봉길은 진창에 차바퀴가 빠졌다며 마을까지 20분인데 비라도 그치면
돌아가겠다며 방으로 밀고 들어온다.
겁에 질려 물러서 있는 은수를 보며 음흉한 미소까지 흘리는 봉길 일행.
방에서 몸을 말리며 시간을 죽이던 봉길 일행은 비에 젖은 디카프리오(개)를 찾아
펜션으로 데리고 들어오는 은수를 보며 같은 생각이라도 한 듯 묘하게 히죽거린다.
수건을 찾아 돌아서던 은수는 방금까지 보이던 디카프리오가 보이지 않자
다시 빗속으로 찾아 나서고...공방 옆 창고부근에서 사내들에게 맞으며 깨갱거리는 디카프리오의 소리를 듣고 경악하는 은수!
왈칵 창고 문을 열어젖히며 그만두라고 소리치지만, 곧 봉길 일행에 의해 둘러싸인 은수는 창고에 쌓인 물건들을 던져가며 뒷걸음치는데...
습한 기운 때문에 유난히 콜록거리며 누워 있던 은수부는 은수도 디카프리오도
없어진 것을 알고 창고로 달려온다.
한편, 펜션으로 다시 돌아왔지만 차마 벨을 누르진 못한 채 서성이던 현우는
의외로 빈 펜션을 발견하고 뭔가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졌음을 직감한다.
창고로 달려간 은수 부는 궁지에 몰린 은수와 디카프리오를 잡아둔 봉길 일행에게 곧 경찰이 올 거라고 소리치지만, 이 비에 언제 짭새들이 오겠냐, 며 낄낄거리던
사내 하나가 각목을 다잡아 들며 위협적으로 다가온다.
마른 침을 삼키며 뒷걸음치던 은수부는 또 다른 사내의 발에 걸려 넘어지고
은수부를 붙잡은 사내가 사인을 보내자 봉길은 몸부림치는 은수의 따귀를 날린다. 그 모습을 목격한 은수부가 거친 기침을 내뱉으며 호흡곤란을 느끼며 쓰러지는데...
울부짖는 은수의 얼굴과 정신없이 은수를 찾아 헤매는 현우의
얼굴이 교차하며.....엔딩.
3부
극심한 기침과 함께 가슴을 쥐어뜯으며 쓰러진 은수부.
“뭐야 죽은 거 아냐?” “왜 이래, 저 꼰대”
놀라 은수부를 바라보는 봉길 패거리 앞에서 은수는 아버지를 부여잡고 절규한다.
“아빠 정신 차려. 숨쉬어 봐!!!” 그러나 은수부는 꼼짝도 하지 않는데....
그런 은수부를 보던 패거리들 사이로 당황스러움이 돌며
겁에 질린 한 놈이 뒷걸음치기 시작하는데, 봉길은 아무래도 일이 커진 것 같다며
입막음을 위해 은수에게 다가선다.
눈빛엔 잔뜩 날을 세운 채 은수가 입도 뻥긋 못하게 만들라는 봉길의 지시에
패거리는 은수에게 덤벼들고-
놀란 은수가 옆에 든 유리 화병을 들고 발악하지만 거센 남자들의 힘에는 당할 수가 없다. 바닥에 내동댕이쳐지며 흐릿해지는 은수의 눈에 무언가에 머리를
얻어맞은 패거리 중 하나가 뒹구는 게 들어오고...
그 곳에 여행 가방을 들고 선 독기 찬 얼굴의 현우가 있었다!
쓰러진 은수부와 입술이 터져 피가 흐르는 은수를 보며 어금니를 꽉 깨문 현우는
1대 3의 가망없는 싸움을 시작한다. 그러나 독이 오를 대로 오른 현우의 매운 주먹과 집요함에 되려 패거리가 하나 둘 나뒹굴고....마침내 봉길 패거리는 도망친다.
이젠 걱정할 거 없다며 자기 이마에 흐르는 피는 모르는 체 은수의 피 묻은 입가를 닦아주는 현우 앞에서 은수는 그제야 펑펑 눈물을 쏟고 만다.
처음으로 맞닥뜨린 은수의 울음에 아까까지 거칠 것 없이 싸우던 현우는
어쩔 줄 몰라 하고...
읍내 작은 병원의 응급실에 누운 부친의 손을 꼭 그러쥔 은수에게 정규가
걱정스레 말한다.
“기관지 확장증이 더 심해지셨어요. 서울서 수술 받아보시라구 그렇게 권했는데.
유리 공예두 절대 하시면 안 됩니다. 입으로 부는 게 폐에는 치명적이거든요.
객담으로 기관지가 막혀 돌연사 하실 수도 있어요.”
그저 좋은 공기 쐬고 요양만 하면 좋아질 병이라고, 아버지의 말을 곧이곧대로
믿었던 자신을 탓하며 은수는 흐느끼기 시작한다.
한편, 읍내 파출소에 봉길 패거리들을 신고한 현우는,
자신의 뒷모습을 향해 끝까지 이를 가는 봉길을 모른 채 안도의 한숨을 내쉰다.
곧바로 병원으로 찾아온 현우 눈에 아버지의 손을 잡은 채 어깨를 떨며 울고 있는 은수의 야윈 등이 보이고, 은수에 대한 안쓰러움에 그 뒷모습을 오래 지켜본다.
...저렇게 여린 몸으로....강한 척 했었구나, 지 은수... 널 놔두고 이젠 아무데도
갈 수가 없어...
그리고, 옆에 다가온 현우에게 은수는 떨리는 목소리로 하소연한다.
“나 늘 아빠의 모든 걸 알고 있다구...
잔소리에...잘난 척만 했는데...정작 아빠 그렇게 아픈 것도 몰랐어.
나 정말 나쁜 딸이야... 내 생각만 하고 내 행복만 찾는 나쁜 딸....“
울어 눈이 퉁퉁 부은 은수를 현우는 마침내 꼭 끌어안아 준다.
“넌 나쁜 딸 아냐. 이 세상에서 가장 사랑스럽고 예쁜 딸이야. 내가 보증해”
서서히 정신을 들던 은수부는 서로 끌어안고 위로하는 은수와 현우를 보고
다시 눈을 감아 버린다.
엉망으로 터진 현우의 얼굴에서 대충 상황을 짐작했지만, 딸의 앞날을 생각해야만
하는 아버지의 마음...그 복잡한 심경을 감추기 위해서였다.
그날 밤, 잠이 든 부친의 방문을 살그머니 닫은 은수는 엉망이 된 펜션을
치우고 있는 현우를 돕기 시작한다. 가라앉은 은수의 기분을 풀어줄 농담을 던지는 현우.
“야, 너 그러구 있으니깐 펜더 같다”
“ 넌 터진 호빵 같애”
“넌 기집애가 어떻게 남자들한테 이겨 보겠다구 덤벼들구 그러냐? ”
“그럼 당하고 있어?”
“백마 탄 기사가 나타날 때 가지 기다려야지”
“그러는 너야 말로 간다드니 왜 돌아왔어? 여기가 느이집 안방이야!”
좋은 내심을 감추고 툴툴거리는 은수의 파랗게 멍든 얼굴이 마음 아픈 현우는,
부드럽게 은수의 상처를 매만져주는데...그런 현우의 눈빛을 바라보는 은수의
마음은 혼란스럽기만 하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를 사랑하는 사람...
그러나 자신의 맘을 숨기기 위해 되려 현우의 피멍을 꾹 눌러 버리는 은수였다.
눌러도 거길 꼭 다친 델 누르냐며 인상 쓰는 현우를 약 올리고 가는 은수 뒤로,
현우가 나직하게 마음을 드러낸다...
“너한테 손 댄 놈들....죽여 버리구 싶었어. ”
“......”
“ 다신 그런 거 보이지 마. 맞은 너보다 내가 더 아프니까. ”
“ ...... ”
한편 은수 아버지는, 현우와 은수의 사랑 앞에서 갈등한다.
어쩌면, 현우가 아무도 지켜줄 사람 없는 은수의 인생을 돌봐 줄 남자일지
모른다는 생각....울던 은수를 따뜻하게 안아주던 현우의 모습이 은수 아버지의 머릿
속에 오버랩 되며 과연 딸을 맡겨도 좋을지 고민하는데-
유리는 물론이요, 어린이 손님에게 불어주는 풍선 쪼가리조차 가차 없이 뺏어가며
잔소리를 늘어놓는 은수를 보며, 자신의 앞에선 현우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눈치를 살피는 딸아이가 마냥 안쓰럽기만 한 것이다.
그러던 어느 날 밤,
공방에 들린 은수부는 자신의 자리에서 유리공예를 하고 있던 현우를 발견한다.
엉망이지만 그래도 제법 꼴을 갖춰가는 공예품을 든 거칠어진 현우의 손과
옆에 쫙 늘어 선 기괴한 모양의 유리알들을 찬찬히 살펴보던 은수부는
현우에게 남자 대 남자로서 선언한다.
“난 말이다, 아침에 밥을 먹을 수 있고 저녁에 쉴 수 있는 집이 있는
남자라면 꽤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한다.
기다려 주는 사람이 있다면 더 괜찮은 놈이라고 생각하고-
할 일이 있다면....그래서 열심히 살아간다면... 그 이상 바랄 게 없지.
...우리 은수... 너한테 맡겨도 되겠냐? “
“...혹시 기억이 돌아와도, 아님 기억이 영영 안 돌아오더라도
은수랑 끝까지 함께 할 겁니다.
죽어도...은수는 지키겠습니다.... 아버님. “
그렇게 마주보는 두 남자의 입가에 미소가 감돌고, 그 날 이후부터 은수 아버지는
현우를 아들로 생각하기로 마음먹는다.
한편, 달력을 체크하던 은수는 현우가 자신의 집에 온 지 일년이 되는 날임을
기억해 낸다. 예약 손님에게도 만석이라는 거짓말로 하루를 비운 은수는
현우를 위한 작은 <생일파티>를 마련해 준다. 겨울풍광이 아름다운 펜션의 안뜰에
모닥불과 함께 차리는 점심식사.
요즘 따라 현우와 부친 사이엔 따뜻한 기류가 도는 것도 반갑고, 디카프리오
(대형견) 역시 은수의 맘을 아는 지 신나게 뛰어다니며 즐거운 분위기가 만들어지는데... 초 한 개를 꽂은 케이크 앞에서 은수의 씩씩한 생일 축하 노래가 끝나자,
“내가 줄 선물은...” 하고 말문을 연 은수부는 천천히 결심을 내뱉는다.
“인생은 짧지만... 한 사람을 사랑하기엔 충분히 긴 시간이다.
인성아, 은수야, 사랑하고, 또 사랑해라... ”
그토록 고대했던 아버지의 허락이 떨어지자 은수는 차오르는 눈물을 감추며
괜히 애꿎은 디카프리오만 구박하고, 현우는 그런 은수의 손을 따뜻하게 잡아준다.
그리고 현우의 손에 이끌려 간 꽁꽁 얼어붙은 호숫가.
현우가 낡은 스케이트를 신고 빙판 위에 올라서는 걸 놀란 눈으로 바라보는 은수에게 현우는 빙판 위의 재주를 선보인다. 스케이트를 탈 줄 아는 걸 그제야 알았다는 현우의 웃음 뒤로, 순간 스케이트장을 가득 매운 전구에 불이 들어오기 시작한다.
현우가 밤마다 몰래 만든, 찌그러지고 울퉁불퉁한 유리알들이 무지개 빛으로 빛나고....
깜짝 놀라는 은수를 보며 빙긋 웃던 현우는 품에서 무엇인가를 꺼낸다.
자신이 만든 유리병, 그리고 그 안에서 꺼내는 편지. 큼큼대며 무안해 하던 현우는 마침내 편지를 천천히 읽어 내려가기 시작한다....
“ 나, 조 인성은 지 은수에게 맹세 합니다
설사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도,
아니, 기억이 돌아와 낯선 현실로 돌아가야 한대도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외롭게 하지 말 것, 절대 혼자 놔두지 말 것..
우리 사랑을....의심하지도, 비교하지도, 확인하지도 말 것..
그리고 운명에.... 맡길 것...을
맹세..합니다. “
촉촉이 젖은 은수의 눈가에 살포시 입을 맞추는 현우.
일전에 은수가 손님들을 데리고 바다에 갔을 때 ‘ 병속의 편지 ’를 부럽게 바라보던
걸 기억해낸 현우는, 산속이라 물에 흘려보낼 수는 없으니 두 사람의 맹세가 담긴 유리병을 타임캡슐처럼 커다란 느티나무 밑에 묻자고 제안한다.
함께 유리병을 묻으며 은수 역시 현우에게 맹세한다.
“ 니가... 아무리 어둔 곳에서 길을 헤매더라도
내가 잡고 있는 이 손을 놓지 않을께...절대로. “
한편, 서울근교의 한 가족묘지에선“천하의 후레자식”이란 넋두리가 울려 펴지고
있다.
현우의 일주기 날, 아들의 무덤가에 주저앉아 통곡하는 정 여사와 굳은 얼굴로
그 옆에 선 강 회장의 한풀 더 깊어진 주름살 역시 흔들리는데...
검은 정장 차림의 윤아 또한 공허한 얼굴로 묘비명만을 읽고 있다.
그런 강 회장 일가와 윤아의 얼굴을 살펴보는 태민의 차가운 낯빛.
집으로 돌아온 강 회장은 태민 앞에서야 겨우 아들에 대한 그리움을 표현한다.
.....이럴 줄 알았으면... 그깟 하키 따위 실컷 하게 해줬을 텐데...
아들의 죽음을 자초했다며 가슴을 치는 자신을 묵묵히 위로하는 태민을 보며,
강 회장은 지난 일년을 돌이켜 본다.
자신의 삶의 희망이자 후계자였던 현우를 잃고 근 일년간 흔들려 왔던 강 회장을 대신해 회사의 고문변호사로서 궂은일을 도맡아 해결해 온 태민 이었다.
하루가 다르게 필요성이 늘어가는 태민을 놓치고 싶지 않은 마음에 강 회장은
마침내 현정과의 결혼을 제안한다.
현정에겐 회사를 안심하고 맡길 수 없는데, 그 옆에 태민이 있어주면 안심이 될 거 같다, 는 강회장의 의외의 제안에 깜짝 놀라 조심스레 고개만 숙이는 태민-
회장을 무너뜨리고 강회장의 친 아들임을 밝히는 순간을 떠올려본다.
자신의 손으로 하나뿐인 딸과 사생아 아들을 결혼시키려 했던 강회장의 말로를
생각하며 쓴 웃음을 짓지만, 그러나 아직은 쓴 미소조차 조심스러운 때였다.
속내를 감춘 채 현정과의 결혼을 생각해 보겠다는 말로 강 회장을 안심시킨다.
강회장 서재의 문을 닫고 나오는 태민 앞에 현정이 냉소적인 태도로 선다.
씀씀이 헤프고 직선적인 여자 강 현정..
여자로 바라본 현정은 자신에게 별 매력이 없었지만, 현우에 대한 태생적인 경계심을 볼 때면 좋은 파트너가 될 수 있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던 태민 이었다.
현정 역시 크레믈린처럼 도통 속을 알 수 없는 태민에게서 현우와는 다른 적개심을 품고 있던 차, 난데없는 강회장의 결혼권유는 코웃음거리밖엔 안 되는 것이었다.
“우리가 결혼을 하면 어떤 모양이 될까요? 세몰까요, 네몰까요, 아니면...
핑크빛 하트일까요?”
“하지도 않을 결혼인데 어떤 모양이면 어때서요....
알아서 상상하시죠, 좋으실 대로”
“.....아버지 앞에서도 그렇게 잘난 척 하지 그랬어요?
왜 이 결혼에 호의적인 척 했죠? ”
“ 당신도 회장님 재산 앞에선 호의적이잖아요. 아닌가?”
현정은 난생 처음 남자에게 받아 본 모욕에 부르르 치를 떤다.
게다가 아무 일 없었다는 듯 아버지, 강 회장 앞에선 다시 예의 그 성실한 모습으로 돌아가 직무를 수행하는 태민을 보며 현정은 저 남자가 제대로 된 적수임을
느낀다. 그러나 자신을 모욕했던 그 남자,
한 태민에게 자꾸만 시선이 가는 건 왜일까...
한편, 현우의 무덤가에 다녀 온 후론 아예 앓아누워 버린 정 여사를 수발들며
곁을 떠나지 않는 윤아였다.
“요즘 세상에 열녀비라도 세워줘야겠다”는 현정의 가시 돋친 말에도 꿈쩍 않은 채
자신의 손을 부여잡고 현우의 이름을 헛소리처럼 부르는 정 여사를 아프게 바라
보는 윤아의 속내 역시 바짝 타오르긴 마찬가지였다.
거칠 것 없이 살아왔고, 앞으로도 그러리라 생각했는데...
약혼을 앞둔 상대가 죽는 일 따윈 윤아 인생에 결코 일어날 수 없는 일이었기에
윤아는 더군다나 지금, 정 여사의 곁을 지키는 것이었다.
스스로도 아직 현우의 죽음을 믿을 수 없었기에-
한편 그런 강 회장 네의 비참한 상황과는 달리 펜션 <꿈꾸는 숲속>은
매일 매일이 활기차고 즐겁다.
늦잠 자는 현우를 이젠 포부도 당당히 흔들어 깨우는 은수의 시끄러운 잔소리도,
은수 대신 차를 몰고 손님들 픽업을 나가는 현우의 행동도 이젠 자연스럽고 당당한 데... 은수와의 사이를 인정받은 현우는 더욱 활기차게 손님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려 농담도 하고, 언제 준비했는지 작은 마술로 분위기를 돋우는,
펜션지기로서의 일당백을 해 낸다.
양푼 가득한 밥을 씩씩하게 먹어대는 현우를 사랑스럽게 바라보는 은수.
현우 역시 자신의 땀에 전 셔츠를 몰래 빨아 다리미로 다리던 은수,
자신이 지나가는 말로 읍내 결혼식장에서 먹었던 잔치국수가 맛있다고 하자
저녁 내내 식당에서 국수국물을 내느라 용을 쓰던 그 뒷모습을
바라보며 행복해 한다.
이렇게 살 수만 있다면 기억이 돌아오지 않다 하더라도 행복하리라...
아니 차라리 기억 따윈 돌아오지 않길.... 바라기까지 하는 현우.
겨울로 접어들면서 부친이 기침이 잦아지는 걸 느낀 은수는 걱정이 가득이다.
그런 은수와 은수부를 위해 현우는 언약식(일종의 약혼식)을 제안한다.
그리고 가능하다면 결혼 또한 내년 봄에 하고 싶다는 말까지 덧붙이는 현우.
그런 현우가 든든하기 그지없는 은수부는 흔쾌히 허락하고.
일주일 후 펜션 뜰 자락에서 아버지와 손 아줌마 등을 모셔놓고 언약식을 하기로 결정되자 처음엔 쑥스럽기만 하던 은수도 날짜가 다가올수록 기대와 행복감에 충만하다.
..나 사랑하는 사람이 생겼어, 로 시작해서 크리스마스 때 내려오면 소개시켜 줄게, 로 끝나는 이 메일을 장미에게 쓰며 은수는 해맑게 미소 짓는다.
다음 날, 은수를 찾아 온 손 아줌마가 준비해 놓은 선물을 내놓는다.
명색이 약혼식인데 선머슴처럼 하고 있을 거냐며 자신이 직접 천까지 골라 맞춘
눈처럼 흰 원피스란다.
한편, 은수부 역시 내년 봄이면 결혼할 현우와 은수을 위해 창고 다락방을
몰래 꾸미기 시작한다.
매일 아침 제일 먼저 해를 볼 수 있고... 매일 밤 제일 먼저 별을 볼 수 있는 곳...
딸을 위해 준비하는 애비의 마음은 기쁘기만 한데...
한편 태민은 계열사 사장인 오 사장과 호텔 일식집에서 밀담을 갖는다.
강회장의 측근으로서 같이 회사를 일궜고 그 공로로 현재 계열사를 맡아 꾸려나가던 중, 태민을 필두로 한 감사팀의 내사로 인해 방만한 자금운영이 밝혀진
주주 가운 데 한 사람인 오 사장은 아들 뻘인 태민에게 고개를 조아리며
한번만 봐달라고, 아직 관련 자료가 강 회장에게 보고되지 않았으니 이번 일만
눈 감아 준다면 무슨 일이라도 하겠다고 읍소한다.
오 사장의 말에 “무슨 일... 이라도?” 라고 반문하는 태민의 미소-
오 사장의 약점을 잡은 채 호텔 로비를 가로질러 나오던 태민은
커피숍에 웬 남자와 앉아 있는 윤아를 발견한다.
보나마나 집안에 의해 끌려 나온 선 자리겠지...
윤아에게 폭 빠진 듯 적극적인 남자 때문에 곤욕스러운 표정으로 앉아 있는
윤아를, 기지를 발휘해 데리고 나온 태민은,
“또 오빠네. 언제나 날 구해주는 건...” 이라며 씁쓸하게 말하는 윤아가 아직도
현우에 대한 사랑 때문에 괴로워하는 걸 느낀다.
태민이 데리고 간 바에서 술을 들이키던 윤아에게서
“현우는... 살아서도 죽어서도 날 괴롭혀. 눈을 떠도 감아도 생각이 나는 걸 보면”
이란 고백을 들으며, 태민은 죽은 현우에게 질투를 느낀다.
그건 사랑이 아니라 가질 수 없는 것에 대한 집착이고 오기, 라며
태민은 현우의 가정교사로서 있던 대학시절부터 차올랐던 윤아에 대한 감정을
내비치지만...
놀란 마음을 숨긴 채 윤아는 일언지하에 태민을 거절한다.
“만약 오빨 먼저 만났다면 오빨 사랑했을지도 모르지...
그렇지만 내가 먼저 만난 사람은 현우였어. 오빠가 아니라...”
“ 그렇지만 지금 니 곁에 있는 건 현우가 아니라 나야.”
“!”
차갑게 거절하고 돌아선 윤아였지만, 늘 조심스럽게 자신을 대하던 태민이 보여준
뜻밖의 진심은 마음에 적잖은 파란을 몰고 온다.
집에 돌아오자마자 모친에게 <망친 선 자리>로 타박을 들은 윤아는
자신의 방 캔버스위에 아직도 놓여져 있는 현우의 그림을 내던져 버리고
울음을 터뜨리고 만다.
“강 현우... 7년 동안 너만 바라봤어. 내 사랑에 대한 보답이 이거야?
겨우 이거였냐구!!!” 울부짖는 윤아...아직은 현우에 대한 마음을 접을 수가 없다.
그 시각, 현우는 펜션에 묵었던 손님을 역까지 배웅하고 돌아오던 중,
도로를 지나가던 들고양이 때문에 급브레이크를 밟고 만다.
유리창에 머리를 부딪치는 현우. 순간적으로 낯선 여자와 남자(윤아와 태민, 부모)의 얼굴들이 일그러져 지나치는 걸 느낀다. 혼란스러운 듯 머릴 흔드는 현우,
기억 날 듯 말 듯한 무언가로 답답함을 느끼나 더 이상 아무것도 떠오르지 않는다. 한숨을 내쉬며 차를 천천히 출발시키는 현우.
그리고 마침내 그렇게 고대하던 현우와 은수의 언약식 날,
두 사람을 축복하든 하늘은 눈이 부시게 푸르고 맑았고 겨울 날씨 같지 않는 따스한 햇살이 넘쳐난다. 아버지와 손 아줌마, 동네 지인 몇 사람을 모시고 언약식 겸 식사자리를 마련한 현우와 은수.
괜히 눈시울을 찍는 손 아줌마와 티를 안내려 하지만 이제야 마음을 놓는 듯한
부친의 미소를 보는 두 사람의 마음 역시 축제의 풍선마냥 들뜨고 가벼워진다.
겨울이 지나고 새봄이 되면 결혼식을 올리자는 약속을 하는 현우와 은수-
행복한 언약식의 하루가 그렇게 저물어 간다.
며칠 후, 아침 일찍 펜션 내 필요한 식료품을 사기 위해 읍내에 나서는 현우는
손 아줌마 가게에서 이것저것 구입한 물건을 차에 싣다가,
밀가루를 빠뜨린 걸 기억하곤 급히 가게로 돌아가던 중 구두 가게 앞에
멈춰 선다. 늘 은수의 낡은 장화가 맘에 걸렸던 현우의 눈에 쇼윈도에 놓인
예쁜 부츠가 들어오고...
은수 몰래 모아 놓은 팁으로 부츠를 산 현우가 기분 좋게 가게 문을 나서는 데
순간 앞을 막아서는 남자들이 있다.
별렀다는 듯 날선 표정으로 현우를 노려보고 선 봉길 패거리들은
이 날을 기다렸다는 등 산기슭으로 현우를 끌고 간다.
그리곤 미리 준비해 놓은 각목으로 현우에게 폭력을 가하기 시작하는데...
불시에 끌려간 현우는 자신의 앞에 쏟아지는 각목을 피하려 하지만 역부족,
마침내 일방적으로 당하고 만다.
쓰러진 현우에게 침을 뱉으며 가버리는 봉길 패거리 뒤로
피투성이가 된 채 인적 없는 산길에 쓰러진 채 의식을 잃어가는 현우.
은수의 이름을 부르려 하지만 나오지 않는다... 점차 가물거리는 의식....
한편, 저녁을 준비한 은수는 현우가 늦도록 돌아오지 않자 걱정된다.
핸드폰마저 불통이자 더욱 의아한데... 펜션 앞쪽의 정거장에서 까지 기다리던 은수는 손 아줌마에게 전화를 걸지만 현우가 점심쯤에 물건을 사갔다는 대답만 돌아온다. 아무래도 안 되겠다 싶어 은수부에게 현우랑 읍내에서 저녁 먹기로 했단 거짓말을 하고 읍내행 버스에 오르는 은수.
한편 비틀거리며 산기슭에서 기어 내려 온 현우는 국도에서 쓰러진다.
갑작스럽게 쓰러진 현우로 인해 급정거한 트럭 운전사가 놀라 현우를 일으키자,
서서히 정신 차린 현우는 지끈거리는 머리를 누르며 여기가 어디냐고 묻는다.
강원도 횡성께 라는 운전사의 황당한 대답에 놀란 현우는
자신을 서울까지 데려다 준다면 충분한 돈을 주겠단 말을 거듭한다.
현우의 행색이 수상하지만 어차피 서울로 가는 길, 돈까지 준다는 말에 운전사는
현우를 차에 태운다. 한남동 75번지...주소를 읊조리며, 트럭 운전사에게
오늘이 며칠이냐고 묻는 현우.
뜨악한 표정으로 트럭운전사가 날짜를 일러주자 현우가 혼란스럽기만 하다.
“일년 동안의 일....아무것도... 기억나질 않아요.... 아무 것도...”
한편, 그 시각 근처 공터에 세워진 차를 보고 놀라는 은수.
읍내 곳곳을 이 잡듯 뒤지며 현우를 찾지만 현우는 흔적조차 없다.
점차로 불길한 마음에 미친 듯이 현우를 찾아 헤매는 은수.
자주 가는 길은 물론 산 정상까지 뛰어 올라가지만 현우는 간 곳이 없다.
한편, 은수가 없는 시간을 이용해 다락방 꾸미기에 여념 없던 은수부는
아직 등이 안 들어오는 다락방에서 손전등을 든 채 구슬땀을 흘리며 일하고 있다.
금방 전지가 바닥나 버린 손전등 대신 양초를 가져와 여기저기 탁자 위에 세워놓고
벽지 바르는 것을 시작하는 은수부.
몸은 고되지만 작은 탁자위에 놓인 은수와 현우의 언약식 사진만 보아도
절로 콧노래가 나올 것만 같은 데...
순간, 은수부의 발작적인 기침이 터져 나온다.
급히 아래층의 약을 먹으러 내려가기 위해 몸을 일으키지만
천식 같은 기침과 객담은 기관지를 막아오고....
꺽꺽대던 은수부는 숨마저 차오르자 마침내 가슴을 움켜쥐며 탁자를 잡고 넘어진다. 그 바람에 탁자 위의 촛불들이 온통 바닥으로 떨어지고....
널려 있는 종이와 잡동사니들에 옮겨 붙는 불.... 불...
...저 불을 꺼야 하는 데..
그러나 숨은 제대로 쉬어 지질 않고... 은수부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간다.
현우를 찾지 못한 채 힘없이 집으로 돌아가던 은수 눈앞에 펜션 다락방이
타오르는 게 보인다.
놀라 뛰어간 은수가 미친 듯이 다락방 문을 두들기지만 무언가에 막혀 있는 듯
꼼짝도 하지 않고...쓰러진 아버지의 몸이 막고 있는 방문 너머로 불길 치솟는 소리가 들리는 가운데 끅끅거리는 기침소리가 섞여 있는 것을 알아챈 은수는
“아빠! 아빠!” 를 소리쳐 부르는데-!.
넘실대는 불길 사이, 자신의 죽음을 감지한 은수부는
바닥에 뒹굴던 현우와 은수의 사진을 가슴에 품는다.
“... 우리 은수... 부탁한다... 부탁...한다...”
은수의 피를 토하는 절규와 함께 그 위로 어른거리는 불길....
그리고 바로 그 순간, 한남동 자신의 본가(대저택) 앞에 멈춘 트럭에서
내린 현우가 황망한 눈길로 집을 바라보고 있었다.
현관 앞에 다가가는 현우, 벨을 누르려는 순간,
누군가 자신을 부르는 듯한 소리에 뒤를 돌아보지만 아무도 없고-
심호흡을 한 채 초인종 위에 다시 손을 올리는 현우의 혼란스러운 얼굴에서...
엔딩.
4부 이후
죽은 줄 알았던 현우가 1년 반 만에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강 회장 네는 축제 분위기를 맞는다.
비록 지난 1년 반 동안의 기억이 깡그리 사라진 채 발견되긴 했지만,
차차 정신적인 안정을 되찾으면 지금은 조각조각 난 채 있는
기억들이 모두 꿰맞춰 질 거라는 의사의 말에 가족들은 안심하고,
윤아 역시 그토록 그리던 약혼자가 살아 돌아왔다는 사실에 날듯이 기뻐한다.
현우의 품 안으로 뛰어들며 다시는 놓치지 않겠다고 되새기는 윤아였지만,
문득 예전에 알던 강 현우의 느낌이 아니란 사실을 깨닫고 긴장하기 시작한다.
문득문득 창 밖으로 긴 시선을 던지는 모습에서 느끼는 누군가의 자취...
현우가 기억조차 하지 못하는 1년 반의 시간과 잠든 현우의 목에 걸린
열쇠 목걸이를 보며 본능적으로 다른 여자가 있었음을 깨닫는 윤아였다.
그렇다면 밝혀내지 않는 게 훨씬 낫다는 판단을 한 윤아는,
강 회장 내외를 설득해 기억을 잃었던 1년 여 동안 현우가 요양소에서 있다가
며칠 전에 없어졌단 거짓말을 하도록 만든다.
그리고 은수에게로 돌아갈 수 있는 열쇠 목걸이를 현우의 목에서 떼어내
감추는데...
한편 같은 날에 아버지와 연인을 모두 잃고 넋이 나간 은수는 도무지 정신을 차리지 못한다. 하루하루 최대한 아버지의 장례식을 미뤄가며 현우를 기다리지만
고장 난 승합차만 발견되었을 뿐 현우의 종적은 묘연하기만 하고...
마침내 현우가 없는 아버지의 장례식을 치르며 흐르는 눈물을 눌러 참는 은수였다.
손씨 아줌마에게 몸을 의탁한 채 한없이 추운 겨울을 아프게 견뎌내야 하는 은수.
잠조차 깊이 들지 못한 채 바람소리에 놀라 뛰어나가기도 하고, 누군가 지켜보는 것 같아 문득문득 뒤를 돌아보곤 하지만, 사라진 현우는 돌아오지 않는다.
정규의 위로가 힘이 되기도 했지만, 한 때의 짝사랑은 이제 은수에겐 아무 것도
아니었다. 이제 은수를 웃음 짓게 할 수 있는 사람은 현우, 하나뿐이었으니까-
태민 역시 다시 돌아온 현우를 환대하지만, 속내는 불안하기 짝이 없다.
외삼촌 필두에게 현우를 싣고 온 트럭운전사의 번호를 건네주며 지난 1년여를
추적하도록 지시하는 태민.
예전과는 다른 현우의 모습이 걱정스런 강 회장 내외는
현우에 대한 소문을 잠재우고 치료를 받을 겸 예정대로의 유학을 진행시키기로
결정한다.
윤아까지 따라 나선 출국길이지만, 왠지 누군가를 놓고 가는 기분 때문에
자꾸만 뒤를 돌아보는 현우... 비행기가 떠오르는 그 순간까지도 그런 생각은
사라지지 않는데...
.....혹시 내가 뭔가 소중한 걸 잊고 가는 건 아닐까...?
그렇게 3년의 시간이 흐른다.
반 이상 타버린 펜션을 혼자 힘으로 재건할 힘이 모자란 은수는 결국
펜션터를 다른 사람에게 팔고, 새로 증축된 펜션의 관리인이 되어 있다.
단 한 순간도 떠나지 못한 채 관리인으로서 펜션을 지키는 이유는 역시나
현우가 돌아올지 모른다는 작은 희망 때문이었다.
혹시 기억을 되찾아 자신의 집으로 되돌아간 건 아닐까, 그렇다면 왜 나를 도로 찾아오지 않는 걸까...돌아오지 못할 이유가 있었던 건지, 돌아오기 싫어 진 건 지...
그 이유라도 속 시원히 알고 싶은 은수는 현우가 너무 그리운 날이면 산 정상에
올라선다.
시월의 바람소리는, 네가 불어주던 휘파람 소리 같아.
그 소릴 다시 듣고 싶어. 인성아...
내 말 듣고 있니? 조 인성!
그 날도 변함없이 손님들을 배웅하고 하루를 마감하던 은수는
늘 그렇듯이 경찰서 행불자관련 소식란을 살펴보지만 현우에 대한
아무런 실마리도 없는데, 때마침 친구 장미의 전화가 걸려온다.
은수에게 그렇게 혼자 강원도 시골에 박혀 있지 말라는 충고와 함께 동기들 모임이 있으니 이번 주말엔 서울에 올라오라며 강요하고, 옆에서 그 전화를 같이 듣던
손씨 아줌마 역시 텅텅 빈 예약 리스트를 들이밀며 은수에게 나들이를 할 것을
권한다.
결국 은수는 서울행 버스에 몸을 싣고...
몇 년 만에 올라온 서울의 화려함에 정신없어하던 은수는,
장미가 일하는 메이플 호텔을 먼저 찾아 간다.
로비에서 장미와 만난 은수는 몇 년 전, 이렇게 장미와 만났던 추억을
생각해내며 슬며시 미소 짓는데,
이젠 제법 호텔리어 티가 나는 장미의 모습에 부러움 반, 서글픔 반이 된다.
그렇게 오랜만에 만난 두 친구 앞에 장미의 추종자인 ‘무대리’까지 나서
은수를 웃음 짓게 하고... 오랜만의 서울 나들이가 제법 즐거운 은수는
장미와 호텔을 나서는데, 세련된 미인을 대동한 채 고급 세단에서 내리는
한 남자가 눈에 띈다.
...꿈에서도 잊을 수 없던 얼굴...이었다.
행여나 돌아오는 걸 놓칠까봐 단 한 순간도 마음 놓은 적이 없던
지난 3년 이었다....
그렇게 뜻밖의 장소에서 현우를 발견한 채 그대로 굳어 있는 은수를 끌고
서둘러 자리를 피하는 장미.
“ 윗사람들 눈에 뜨이는 거 안 좋아, 얼른 피하자. ”
“ 저...사람....잘 아는 사람이야...? ”
“ 그으럼~ 아주 유명한 양반이지. ”
“ 이름...이 뭔데 ? ”
“ 강 현우. 우리 그룹 사주 아들이야. 저 여잔 아마 약혼녀일걸?
알잖니, 끼리끼리 얼키구 설키는 거. “
“ 강.......현.........우.......”
윤아와 팔짱을 낀 채 환하게 웃으며 호텔로 들어가는 현우를 망연자실 보고 선
은수는 인성에게, 아니 강 현우란 남자에게 완벽하게 버림 받았음을 깨닫는다.
아마도 잃어 버렸다던 기억을 되찾고 나니 나 따위 보잘 것 없는 시골뜨기와의
사랑은 부담스러워진 거겠지...그래서 손에 닿지도 않을 곳으로 날아가 버린 거겠지...내가 하는 말 따위 아니라고 우기면 믿어줄 사람은 한 명도 없을 테니까.
하지만 그보다 더 참을 수 없는 건....그리움이었고, 건강하게 살아있음을 알게
되어 고마운 눈물을 흘리는 은수였다.
장미의 집에서 밤새 뒤척이던 은수는, 마지막으로 현우를 만나 임종의 순간까지
아버지가 현우를 걱정했음을 전하고 뺨이라도 한 대 올려붙이겠단 결심을 한다.
그리고 강원도로 다시 내려가 자신의 마음을 정리하겠단 맘을 굳히지만,
이제 곧 회사의 대표이사가 될 재벌 2세를 아무 배경도 없는 은수 같은 여자가
만나기란 의외로 어려운 일이었다.
아무리 사무실을 찾아가고, 전화를 걸어보려 하고, 로비에서 사정을 해도
정신 나간 여자나 잡상인 취급을 할 뿐, 아무 관계도 증명할 수 없는
은수를 현우에게 데려다 줄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집 주소라도 알려달라는 말에 스토커 취급까지 당하자 생각다 못한 은수는
마침내 장미에게 모든 자초지종을 설명하며 현우를 만날 수 있도록
도와달란 부탁을 한다.
그렇게 간신히 장미의 도움으로 은수는 현우와 단둘이 같은 엘리베이터에
올라타지만, 일부러 그러는 것처럼 눈길 한 번 제대로 주지 않는 현우였다.
“ 아버지가...돌아가셨어. ”
“ ..... ”
“ 아버지가 돌아 가셨다구! ”
“ ...그거 정말 안 된 일이네요...”
건조한 얼굴로 남 일처럼 외면해 버리는 현우의 태도를 참지 못한 은수는
엘리베이터 비상벨을 눌러 세우고, 눈물 그렁한 채 현우를 붙잡고 소리치기
시작한다.
“ 안된... 일이라구....? 조 인성, 너 이 정도 인간이었어?
나한테 한 약속 같은 거... 다 장난이었다구 쳐!
그래두 우리 아빠한텐 그럼 안 되는 거잖아!
우리 아빠한텐...적어두...적어두...“
“ 도대체 조 인성이 누군데 이래요? ”
차가운 말투와 함께 자신의 손목을 떼어내는 현우의 태도에서,
그리고 경비원들에 의해 억지로 열린 문을 통해 끌어내진 자신에게
아직도 이런 고전적인 수법으로 접근하는 여자들이 있다며 비웃는 직원들의 말을 들으며...그렇게 은수는 깨닫는다.
‘강 현우’로 되돌아온 ‘인성’이 자신을 완전히 잊어 버렸단 걸-
단풍 곱게 물든 산책길을 함께 걷던 추억도, 둘만의 ‘꿈꾸는 숲’ 도,
둘이 함께 굽던 유리공예도.. 일출을 바라보던 산 정상도....
아니, <지 은수> 란 여자 그 자체를....
강 현우는 기억 속에서 완전히 지워 버린 것이다.
이상한 여자에 의해 현우가 엘리베이터 안에 갇혔단 말에 놀라
상황실을 찾았던 태민은 CCTV를 통해 보이는 은수의 태도가 남다르단 걸
눈치 챈다.
은수와의 이상한 만남이 자꾸 마음에 걸린 현우가 자신이 기억을 잃었던
1년 동안 요양소에서 지낸 게 맞냐고 태민에게 확인을 해오자,
은수야말로 현우의 1년간을 알고 있는 여자임에 확신하게 되는데...
은수에게서 앞 뒤 상황을 들은 장미는
이왕지사 이렇게 된 거 기억을 잃었던 재벌집 아들 구해준 생색이나
톡톡히 내고 보상금이나 두둑이 타내라고 은수의 옆구리를 찌르지만,
원망마저 사라진 지금 은수의 마음 가득 차오르는 건. 그리움과 애절한 사랑
뿐이었다.
그리고 펜션에서 둘만의 추억을 되새기며 몇 날 며칠을 고민하던 은수는
마침내 결심을 굳힌다.
메이플 호텔의 ‘강 현우’가 아닌, <꿈꾸는 숲>의 ‘조인성’과의 약속-
설사 기억이 돌아오지 않아도, 아니, 기억이 돌아와 낯선 현실로 돌아가야 한대도
영원히 함께 하겠다고, 외롭게 하거나, 다시는 혼자이게 놔두지 않겠다고 했던
약속을 지키기로-
“ 나, 그 사람을 다시 찾을 거야.
그냥 떠나가도록 놔두지 않을래...정말 사랑하니까,
그 사람이 나중에 알면, 왜 자길 잡아주지 않았냐고 할 게 분명하니까-
사랑은, 먼저 포기하는 게 아니잖어....“
<꿈꾸는 숲> 으로 돌아온 은수는 짐을 꾸리기 시작한다.
손씨 아줌마의 따뜻한 배웅을 받으며 상경해 장미의 집에 둥지를 튼 은수는
장미의 추천으로 신입사원 면접기회를 얻고,
마침내 면접날 잘 차려입은 고학력자들 사이에서 어색하게 앉아 있는데...
신입사원 면접을 위해 들어서던 현우는
장미가 억지로 입힌 정장과 하이힐이 갑갑해 자꾸만 뒤척이는 은수가
엘리베이터 안의 그 여자임에 놀라고, 은수의 대학 중퇴란 보잘 것 없는 경력에
쓴 웃음을 흘린다. 역시 입사를 위해 쇼를 한 번 벌인 거였나...
잠시나마 은수를 떠올리며 마음 흔들렸던 스스로가 우스워진 현우는,
‘요즘 사회적으로 이슈가 되는 소파 승진에 대해 같은 여성의 입장에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며 자신과의 만남을 되새기는 질문을 은수에게 던지고,
현우가 자신을 오해하고 비웃는다는 걸 깨달은 은수는 모멸감을 참고
꼿꼿하게 대답을 해낸다.
그리고, 펜션을 직접 운영해 봤다는 독특한 경험과 <손님을 대하는 건 기술도,
매너도 아니라 진심>이란 은수의 말은 계획에도 없이 그 자리를 지켜본
강 회장의 관심을 끌고... 현우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은수를 채용하라는
지시가 내려진다.
그렇게 현우 곁에 머물게 되는 은수지만,
첫 인상 때문에 결코 은수를 좋게 봐주지 않는 현우였다.
귀국과 동시에 메이플 그룹의 젊은 이사로 등극한 현우는 호텔 여직원들의
관심거리가 되기에 충분한 조건이었고, 현우에 관한 얘기들은 은수의 심기를
어지럽히기만 한다. 같은 호텔에 근무하게 되면서 우연과 필연이 섞인 만남은
더군다나 은수의 마음을 찢어놓기 충분하고-
게다가 윤아라는 약혼녀는 은수를 더욱 힘들게 했다.
자기와는 도저히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아름답고 능력 있는 여자...
그런 생각이 들 때마다 그냥 현우를 포기해 버릴까, 하는 심정도 들지만
현우가 걸어준 열쇠 목걸이와 <사랑해>란 고백을 떠올리며
사랑을 되찾겠다는 결심을 되새기곤 하는 은수였다.
그러나 자신을 늘 훔쳐 바라보며, 의식하는 은수가 <너무나도 이상한> 현우는
은수를 노골적으로 피하고, 그런 현우의 태도는 더욱 은수를 좌절하게 만드는 데....
그러던 어느 날, 호텔 내 단합대회가 열린다.
인근 겨울 산으로 산행코스에 참석하는 직원들
우연히 같은 조원이 된 은수와 현우는 몇 명의 팀원들과 함께 그날따라 펑펑
눈 내리는 겨울 산을 힘겹게 오르는 데, 순간 같은 팀원이었던 여직원이
비탈 밑으로 미끄러져 다치고 만다.
심하게 다친 여직원을 인근 산장으로 데려온 현우일행. 그러나 눈발은 거세지기만 하고.... 고통스러워하는 여직원의 다리에 판자로 부목을 받치고 일반인들은 알지 못하는 간단한 응급조치를 쉽게 해내는 은수가 놀랍기만 한 현우는 은수에게 어디서 배운 솜씨냐고 묻는다.
“산에서 자랐거든요. 근데....그거 아세요?
산에서 누구나 한번씩 길을 잃는단 거...
“걱정 말아요 난, 절대 길 같은 건 잃지 않으니까.”
“안 믿어요. 예전에도 한번 속았으니깐요”
“누구한테요? 혹시 나랑 닮았다는 그 사람?”
“....”
“그 사람 많이 좋아했나부죠?”
“네. 첫사랑이거든요. 지금은... 헤어졌지만”
<이상한 여자>라고 치부했던 은수의 내면 속에 사랑의 상처가 있었구나 생각한
현우는 왠지 부러 씩씩한 채 하는 은수가 안쓰럽게 느껴지기 시작하고...
그녀에 대한 오해를 거둬들이기로 한다.
치마정장도, 하이힐 걸음도 어색하기만 하지만, 말단직원이 하는 룸 판매에도
열과 성을 다하는 은수의 모습은 점차로 현우의 맘속으로 서서히 들어오지만,
끝끝내 진실을 밝힐 수 없는 은수의 마음은 답답하기만 하다.
왜 진실을 밝히지 않냐, 는 장미의 닦달에도 은수의 대답은 한결 같았다.
“ 사랑했었다고 말하면........그 사람이 돌아올까?
그냥 그렇게 말해 주면, 날 다시 사랑해줄까? “
현우가 잃어버린 은수의 기억을 되찾아 사랑을 깨닫기 전까진,
백 마디 진실도 아무 소용이 없을 테니까....
한 편, 태민에 대한 자신의 감정이 남다른 것을 느끼게 된 현정은 혼란스러워진다.
자신의 인생에 일어날 것 같지 않던 짝사랑, 그 감정을 숨기고자 부러
<상하관계>로만 태민을 대해 버린다.
곤란에 처한 척하며(쇼핑 후 지갑을 잃어 버렸다는 거나 술에 취한 후
대리 운전사처럼 부르거나) 일부러 태민만을 찾는 현정.
말끝마다 태민이 지금의 위치에 도달할 수 있었던 건
바로 자신의 아버지인 강회장과 메이플의 후광이란 말로서 당당히 희생을 요구하는 현정의 당돌함에 태민은 때때로 기가 차지만,
언젠간 현정 역시 자신의 계획에 힘이 될 수 있단 것을 알기에
묵묵히 받아들인다. 현정의 그런 태도가 사랑을 할 줄 모르는 여자의 서글픈
발악인 건 상상도 못한 채-
도리어 지금 태민의 관심을 끄는 건 ‘지 은수’ 라는 여자였다.
분명히 현우의 잊혀진 과거를 밝혀낼 수 있는 열쇠를 쥐었다고 생각했지만,
입사를 위해서 은수가 쇼를 벌였었다는 현우의 말은 태민을 혼란스럽게 한다.
언제나 현우의 뒷모습을 남몰래 지켜보고 있는 은수의 모습에서
태민은 자신이 윤아를 지켜보던 모습을 떠올리고....
은수란 여자가 현우를 통해 신분상승을 꾀하려는 그렇고 그런 여자라는
생각을 가진다.
하지만, 은수와 태민 역시 뜻하지 않은 우연을 거듭하며 남다른 만남을 갖게 되고..
태민은 은수에게 신선한 매력을 느끼기 시작한다.
처음엔 현우의 잊혀진 1년을 아는 게 아닐까, 싶어 만났지만
태민의 마음 깊숙한 곳에 감춰진 상처를 알게 모르게 보듬어 주는 은수에게
저도 모르게 위안을 받기 시작하고...
어머니의 병세가 깊어졌단 말에 뛰쳐나가는 자신을 가로막고 직접 만든 죽이라며 건네던 은수... 어머니에 관한한 누구와도 공유하지 않았던 기억들... 그 아프고 외롭던 기억들을 어린애처럼 은수 앞에 털어놓는 태민이었다.
은수 또한 이젠 아버지조차 계시지 않은 자신의 현실과 닮은 태민에게 가족 같은 위로를 서슴지 않는다.
그 날 이후, 태민의 호의를 자상함이라고 치부하는 은수와 달리 태민의 사랑은 집요하게 타오르기 시작한다.
어느 날, 현정은 술에 취해 자신의 숨겨 온 감정을 태민에게 고백한다.
하지만, 사랑 고백조차 너무나 당돌하고 어이없이 해버리는 현정에게
태민은 “내가 지금까지 현정씨의 모든 투정을 받아준 건 현정씨의 말처럼,
강 회장에 대한 은혜를 갚기 위한 것이었을 뿐“ 이라며
차갑게 거절한다.
난생 처음 해본 사랑 고백이 철저하게 무시당한 현정은 그 날 이후,
태민의 주변을 샅샅이 뒤지기 시작한다. 자신이 무시당한 이유는 분명히
다른 여자가 있어서지, 또 다른 이유는 아닐 거라는 이유 때문이었다.
그렇게 상처 입은 자존심과 떼를 써도 받아들여지지 않는 외사랑에
서서히 뒤틀려가던 현정은,
우연히 태민이 자신에겐 한 번도 보인 적이 없는 다정함으로 은수를 대하는 모습을 목격하고 충격을 받는다.
유일하게 맘을 터놓고 지내는 윤아에게,
“태민이 보잘 것 없는 강원도 촌년한테 맘을 두고 있는 것 같다”
는 말을 하며 참을 수 없는 질투를 폭발시킨다.
그 날 이후, 강 회장에게 부탁해서 계열사인 골프장으로 출근을 시작하는 현정.
은수를 아랫사람으로 끌어와 부리며 모멸감을 주기 시작한다.
어차피 가지지 못할 사랑, 너 같은 애한테 줄 순 없단 날선 마음으로 가득한 현정.
은수 역시 처음엔 안하무인격에 대포근성으로 무장한 현정의 행동에 불쾌하지만
현정이 현우의 누나임을 알고 나선,
아무리 부당한 대우에도 꾹 눌러 참고 만다.
한 겨울의 라운딩에 캐디로 불려 나가 꽁꽁 언 손을 녹여야 하고,
사우나 청소까지 해내야 하지만 은수는 결코 웃음을 잃지 않는다.
그렇게 아무리 밟아도 아무렇지 않은 척 열심히 살아가는 은수에 대한
현정의 미움은 겹겹이 쌓여만 가는데...
호텔에서 사라진 은수가 자꾸만 궁금해진 현우는,
현정이 은수를 데려 갔다는 정보를 입수하고 우연을 가장해 컨트리 클럽을 찾는다.
태민, 윤아, 현정, 현우로 이뤄진 팀의 캐디를 맡게 되는 은수.
현정은 태민 앞에서 은수가 보잘 것 없다는 걸 강조하려 하지만,
그런 현정의 노력은 오히려 태민과 현우, 두 남자 모두에게 은수를 더 부각시키는
결과만 낳는다.
현정에게 당하는 은수를 더 이상 참지 못한 채 눈에 띌 정도로 나서서 은수를
감싸는 태민...
그런 태민의 모습은 다른 세 사람을 놀라게 하기 충분한데-
현우는 은수를 감싸는 태민의 모습에서 강렬한 질투심을 느끼는 스스로에 깜짝
놀란다. 어느 새 ‘지 은수’ 라는 여자가 차지해 버린 마음...
도저히 은수를 그냥 놔둘 수 없었던 현우는 결국 호텔의 직원이 부족하다는
이유와 은수가 낸 아이디어를 기획안으로 발전시키겠다며 다시 은수를
호텔로 출근시킨다.
은수를 바라보는 현우의 시선이 특별해 진 것을 느낀 윤아.
게다가 한 때 자신을 사랑한다던 태민조차 은수를 각별히 챙기는 듯 싶자
윤아는 난생 처음 자존심이 상하는 경험을 한다.
누구도 이렇게 윤아를 불안하게 한 적은 없었다.
단 한 번도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 아닌 적은 없었다.........
그렇게 은수라는 여자에게 예민해지기 시작한 윤아는
매일같이 현우가 일하는 호텔에 들락거리며 식사를 같이 하고,
출장길에 동행하고, 면세점 새 단장을 도우며 우아한 약혼녀로서
최선을 다하지만, 좀체 현우와의 벽은 넘기 힘들고...
자신과의 결혼식 말이 나올 때마다 일을 핑계대곤 하는 현우의 태도란
윤아를 더욱 불안하게 하기 충분했다.
그러던 어느 날, 호텔 50주년 개관행사의 하나로, 가장 무도회 파티행사가 열린다.
호텔 VIP 고객들로 가득한 연회장, 장미의 손에 이끌려 구경을 하던 은수는
홀 가운데 춤을 추는 그림 같은 윤아와 현우의 커플이 보자 상한 맘 끝에
슬며시 테라스 밖으로 나가는데,
그러나 그 순간, 가면을 쓴 현우가 싱긋 웃으며 춤을 청한다.
주저하다... 마침내 그 손을 잡는 은수였고, 그렇게 테라스에서 춤을 추기
시작하는 두 사람이었다.
“...하늘엔 별이 있어 아름답고 땅엔 꽃이 있어 아름답고...
그리고 사람에겐 사랑이 있어 아름다운 거랍니다.
이젠 새로운 사랑을 찾아봐요, 지 은수씨.”
다정한 위로를 하는 현우 앞에서 은수의 가슴은 무너지지만,
아무 대답도 못하고 만다.
춤을 추는 두 사람을 보고 윤아는 참을 수 없는 질투심에 호텔 복도의 비상벨을
누르고 마는 데...
요란한 비상벨소리로 인해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는 파티, 은수 역시
급히 나가려다 오히려 손님들 사이에 치여 넘어지고 만다.
그리고 태민, 윤아 두 사람은, 자신이 다칠 수 있는 위험에도 불구하고
손님들의 구둣발 사이에서 은수를 감싸 안는 현우를 목격한다.
자신의 불안함이 현실이 되어 버린 듯한 충격에 휩싸인 윤아는
침착을 가장한 뒤로 반드시 은수를 곤란에 빠뜨리겠다는 결심을 하고...
마침내 영어 한 마디 제대로 못하는 은수에게 외국인 VIP 자제들을 돌보도록
현정을 부채질한다.
윤아의 생각대로 은수에게 감당 못할 일을 맡기는 현정.
하지만, 은수는 말 한마디 안 통하는 아이들을 데리고 산에서 익힌 대로
벌레 관찰, 나무 관찰은 물론 간단하게 유리공예까지 보여주며 제대로 ‘놀아’ 주고...
VIP 들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강 회장 내외의 눈에까지 드는 뜻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다.
현우는 은수가 놀아준 그대로 호텔 내에 키즈 클럽을 운영해 보자는 기획까지
세워 곧바로 실행에 옮기고... 은수와 한 팀이 되어 밤낮으로 붙어 다니는 현우를
못마땅해 하는 윤아지만, 자신이 자초한 일이기에 쉽게 수습하지 못한다.
일하는 중간 중간 현우는 어쩔 수 없이 은수에게 향하는 자신의 시선을 느낀다.
은수 역시 현우의 기억을 되살리려는 무언의 노력을 계속한다.
둘만이 아는 추억을 옛 애인과의 일인양 들려주기도 하고,
자신과의 한 때를 그대로 재현해내며 현우의 기억을 살려내려 하지만...
번번히 기억해내지 못하면서도 현우는 그런 순간, 순간들
다시 한 번 은수와의 추억으로 차곡차곡 쌓아 나가기 시작한다.
그렇게 은수와의 추억이 만들어지면서 도저히 은수를 놓치기 힘들다는 사실 또한
깨달아가는 현우-
은수는 연말 내내 호텔에 매달려 있느라 뒤늦게 <꿈꾸는 숲> 으로 설 휴가를
떠난다. 열차표도 버스표도 없이 무작정 터미널로 가보겠다는 은수를 현우가
자신의 차에 태운다.
터미널까지만 데려다달라는 은수의 말에 현우는 가고 싶은 곳을 말하라고 한다.
은수는 현우가 펜션을 다시 보게 된다면 기억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에 펜션으로 가자고 부탁하고, 마침내 <꿈꾸는 숲>을 향해 거침없이 달리기
시작하는 현우의 차였다.
그러나 체인도 달지 않고 험한 산길을 올라야 하는 현우의 차는 결국
중간에서 멈추고, 휴대폰도 불통인 가운데서 두 사람은 차 안에 고립된다.
눈은 점점 쌓이고 추위에 떠는 은수를 보다 못해, 손을 맞잡고 비벼주는 현우.
은수는 길 잃은 현우가 산 정상에 혼자 앉아 있었을 때 지금처럼
현우의 손을 비벼주었던 옛일을 떠올리며 잠시 멍해지지만....
아무것도 기억해내지 못한 채 연신 지나가는 차만 살피는 현우를 보며
야속하기만한 은수였다.
“참 이상해요... 은수씨가 낯설지가 않아요.
마치 예전에도 이렇게 내 손을 따뜻하게 만져줬던 거 같은데...
은수씨의 그 사람 대신, 나한테 기횔 줄 수 없을까요?
그 순간, 마치 주문에라도 걸린 듯 고백하는 현우의 손을 비벼주며 은수의 눈에는 눈물이 가득 찬다.
기억을 되찾지 못했지만 다시 한 번 사랑은 되찾았다는 생각에 은수는 행복한데...
한편, 메이플 호텔을 자신의 것으로 만들기 위한 태민의 야심은 점차로
본색을 드러낸다.
예전에 자기에게 비리 사실을 감춰줄 걸 부탁했던 오 사장을 이용,
현우가 오 사장과 결탁, 개인적인 이익을 챙기고 있다는 증거를 만들어 놓는다.
라이벌 기업을 이용, 메이플 그룹의 채권 수집에 나선 태민 덕택에
메이플 그룹 위기설이 증권가에 나돌기 시작하고...
이런 소문들을 일거에 불식시키기 위해 몇 년간 거액을 투자해 온 어드벤처 리조트(디즈니랜드 같은?)의 건립 계획에 박차를 가하는 강 회장은
현우에게 전적으로 그 일을 맡긴다.
결국 자금줄이 조여오던 강 회장은 대규모 증자를 실시하고,
결과적으로 대주주였던 강 회장 일가의 주식 지분이 축소되는 결과가 된다.
배당금이 줄어들자 노골적으로 불만을 표시하는 현정에게서
시세보다 훨씬 높은 가격으로 주식을 매입하는 태민.
앞 뒤 사정을 알지 못한 현정은 평가손 되어 있던 주식을 고가에 매집한 사람이
있다는 말에, 어차피 쥐고 있어봐야 내 것도 되지 못하는 그룹 따위 팔아 버리고
블루칩을 사겠다는 허황된 말로 3대 주주 자리를 포기한다.
그 모든 주식들이 생모 이름을 앞세운 태민의 손으로 들어가고 있다는 사실은
꿈에도 모른 채-
마침내 어드벤처 리조트의 설계도가 완성되고, 현우는 외국 유명 투자회사들과의
계약을 서두르지만, 태민은 메이플 그룹의 비자금 형태와 윤아네 쪽으로 흘러
들어간 정치자금에 대한 소문을 흘리기 시작한다.
금융감독원의 은밀한 내사를 받기 시작하는 메이플 그룹이었지만,
강 회장 쪽은 그 사실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데...
때마침 은수에게서 현우와의 만남을 엿들은 태민은 일부러 윤아를 그 자리로
이끌어 내고,
현우와 은수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을 확인한 윤아는 분노를 가눌 길이
없다. 금감원의 메이플 내사 소식을 미리 알려주려는 자신의 부모를 말리며,
코너에 몰아넣은 현우를 다시 되찾아 오겠다는 계산을 하는 윤아.
그리고, 윤아는 정 여사에게 현우와 은수의 만남을 눈물로 호소하는데...
부모에게 사실 추궁을 받은 현우는 강 회장 내외에게 자신이 사랑하는 여자는
윤아가 아닌 은수임을 당당하게 밝힌다.
현우의 폭탄선언에 기함하는 회장 내외....
그 와중에 태민이 현우의 계좌를 추적한 결과 개인 비자금을 조성했단
증거를 잡아냈다는 연락을 해오자 정 여사는 그대로 주저앉아 버린다.
강 회장 역시, 사랑 때문에 경영권도 포기하겠다던 현우가 돈이 필요했던 것
같다는 태민의 속닥임에 분을 참지 못하고...
임시총회를 소집한 주주들은 태민의 대리인으로 나선 필두의 선동으로
현우의 이사 해임건을 가결시켜 버린다.
금융법 위반으로 경찰의 조사를 받으며 현우는 막막하기만 하다.
그 사이 윤아는 은수를 찾아 간다.
도대체 현우를 위해 뭘 해줄 수 있는 지 얘기해 달라며 교양 있게 은수를
설득하는 윤아 앞에서 은수는 막다른 골목에 몰리지만,
결코 현우를 포기할 수 없는 은수는 질끈 눈을 감은 채 윤아 앞에 무릎을 꿇는다.
“ ...나요, 현우씨 못 떠나요...
힘들구 괴로워도 포기 못 할 정도로....나한테 강 현우란 사람이 너무 커요.
미안해요...정말 미안하구...
내 사랑 때문에 누가 맘 다치는 거 정말 싫은데-
이기적이라구 욕하겠지만 나도 상처 받는 게 무섭거든요.
이젠 너무 무서워서 도저히 떠날 수가 없거든요... ”
그런 은수에게서 도저히 자신은 따라 잡을 수 없는 현우에 대한 사랑을
깨달으며 윤아는 두려워진다. 저런 여자한테 이렇게 져야 하는 걸까?
그 순간, 눈물을 참으려 애쓰는 은수의 목에서 찰랑거리는
열쇠 목걸이를 눈치 챈 윤아는 자기 눈을 믿을 수가 없다.
분명히...실종 됐다가 다시 나타난 현우의 목에 걸려 있던 것도
저 것과 똑같은 목걸이였는데....
그렇다면....그렇다면.....!
현우와 은수 사이에 얽힌 운명적 사랑을 깨닫고 스무 해가 넘도록 지켜온
평정심을 순식간에 잃어버리는 윤아였다.
이렇게 무너질 수는 없었다.
세상 어떤 여자도 나, 설 윤아에게서 사랑을 뺏어갈 수는 없었다-!
은수와 현우의 사랑이 운명이란 걸 깨달은 윤아에게 오기가 생긴다.
너희들의 그깟 운명 같다는 사랑, 내가 산산히 부숴주마-!
애원하는 은수에게서 싸늘하게 등을 돌린 윤아는
그 길로 태민을 찾아간다. 각자 원하는 사람을 차지하자는 윤아의 말에
씁쓸한 웃음을 짓는 태민-
하지만 두 사람 다 태민을 유혹하기 위해 찾아왔던 현정이 은수가 현우의
잊혀진 기억 속의 여자라는 윤아의 말을 들었다는 건 모르는데...
결국 윤아 집안의 도움으로 겨우 감옥행만은 면한 현우였다.
그러나, 풀려 나온 현우를 맞아주는 건 변함없는 미소를 보이는 윤아와
깊은 한숨만 내쉬는 정 여사 뿐....그 어디에도 은수는 보이지 않았다.
호텔에도 사표를 낸 채 사라진 은수의 행방을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고,
장미조차 입을 다물어 버린다.
현우를 평소에 따르던 직원들은 윤아를 통해 호텔 구석구석에 퍼진,
현우가 돈을 노리고 접근한 은수에게 된통 걸렸던 거란 소문만을
전해줄 뿐이었다.
게다가 강 회장에게서 더 이상 네 놈 같은 아들은 없단 말로 의절 당하고
쫓겨나기까지 하자 더욱 막막해진 현우는, 이렇게 힘들 때 곁에 없는 은수가
서운하기만 하고, 결코 믿고 싶지 않았던 소문에도 날이 갈수록 귀를 기울이게
된다.
그런 현우에게 윤아는 변함없는 사랑을 고백하며 메이플과 별개로
다른 일을 시작해 볼 것을 권하지만, 이렇게까지 자신을 모함한 게 대체 누군지
알 길이 없어 답답하기만 한 현우였다.
현우를 내쫓고 태민과 늦은 밤까지 술잔을 기울이던 강 회장은
급기야 촉촉이 젖은 눈가를 내보인다.
사자는 새끼를 벼랑에서 떨어뜨려가며 키운다는데...
자신의 마음도 그렇다는 걸 현우가 알아주는 날이 반드시 올 거라는
늙은 아버지의 회한을 부드럽게 위로하는 태민이었지만,
그 사람 좋은 웃음 뒤론 <이따윈 전초전에 불과하다>란 복수심이 불타고 있다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는 강 회장이었다.
태민의 알선으로 인사동의 작은 도예점에 취직한 은수는 좋아하는 공예품들에
둘러싸여 작은 행복이라도 찾으려 애를 쓰고 있었다.
현우를 빼내기 위해서 윤아네의 도움이 간절하며,
현우 또한 은수를 만나기 바라지 않는다는 태민의 이간질 때문에 호텔을
떠났지만, 이제 은수를 받아주는 곳은 아무 데도 없다.
손씨는 다시 <꿈꾸는 숲>으로 내려오라 성화였지만, 지금 그 곳으로 돌아가면 평생 현우를 잊기 힘들 것만 같았기에 우선은 태민의 권유를 받아들여
서울에 머무는데...
작은 원룸과 갤러리를 오가는 단조로운 일상에 잊지 않고 찾아오는 태민의
다정하고 따뜻한 방문은 위로가 되곤 했다.
하지만, 아주 작은 일에서도 현우를 생각해내며 그리움에 가슴 저미는 은수였다.
현우 역시 배신감과 상처로 은수를 잊지 못하지만, 자신이 준 상처까지도
모두 받아들이겠다며 기다려주는 윤아를 점점 더 저버릴 수 없게 되는데...
그런 윤아의 생일날, 현우는 고급 레스토랑을 예약한다.
한 때, 은수와 즐거운 시간을 보냈던 그 곳-
은수 역시 태민이 식사 초대를 하자 현우를 생각나게 하는 그 곳으로 가자는
부탁을 하는데...
은수와 마주 앉은 태민은 반지를 내밀며 조금만 더 기다려 준다면 세상 누구보다
행복하게 해줄 자신이 있단 프로포즈를 한다.
놀란 마음에 반지를 만지작거리며 마음 속으로 거절의 말을 고르던 은수와
윤아와 함께 들어서던 현우의 눈길이 부딪힌다!
자신을 피해 뛰쳐나가는 은수를 따라가 팔을 낚아채는 현우.
결국 그렇고 그런 여자였냐, 자신에겐 형 같은 태민까지 넘보는 건 용서할 수 없다며 분노한 현우의 서슬에 은수는 계단 아래로 구르고, 당황한 현우가 급히 은수를 일으켜 세우려 하지만 현우의 손을 뿌리친 은수는 조용히 태민에게 손을 내민다.
“ 그래요, 나...그렇구 그런 여자 맞아요.
별 볼일 없어진 강 현우씨한테 이제 관심 없어진 것두 사실이구요. “
그렇게 태민의 손을 잡고 가버리는 은수를 보며 배신감과 아픔에
몸서리치는 현우였다.
윤아는 그런 현우를 지켜보며 은수에 대한 미움에 피가 나도록 입술을 깨물고...
손을 잡고 걷는 은수가 소리 없이 오열하는 걸 눈치 챈 태민 역시,
은수만은 결코 현우에게 뺏길 수 없다는 다짐을 한다.
그렇게 네 사람의 사랑은 어긋나기만 하는데...
사람을 시켜 은수의 소재를 파악해낸 윤아는 우연을 가장해
정 여사를 그 곳으로 이끈다.
은수와 맞부딪친 정 여사는 아들을 망친 주범이 바로 가까이에 있다는 사실에
새파랗게 질리고, 은수 앞에 돈 봉투를 던지며 더 이상 현우의 앞길을 방해한다면 가만 두지 않겠다는 엄포를 놓는다.
결국 정 여사와 윤아 덕분에 갤러리에서 해고당한 은수는,
정 여사의 차가운 얼굴을 되새기며 현우를 만난 것도 운명이었다면
잊어야하는 것도 운명이라며 장미 앞에서 눈물짓는다.
마침내 메이플 그룹의 야심 찬 계획이 발표되는 날,
성황을 이룰 거라 예상되던 발표회장이 썰렁하자 관계자들은 술렁대기 시작한다.
좌불안석이던 강 회장에게 급히 달려온 직원은
라이벌 한울에서 똑같은 컨셉과 더욱 업그레이드 된 설계, 기획을 가지고
기자들을 끌어 모았음을 알려준다.
이미 메이플보다 한 발 앞서 투자자들까지 끌어들였다는 한울 측 발표에
망연자실한 강 회장 앞에 휠체어에 탄 한 여인을 앞세운 태민이 다가온다.
자신을 보자마자 교태 섞인 말소리를 내며 정신병 환자 특유의 태도를 보이는
여인을 알아보고 경악하는 강 회장에게,
모든 일을 자신이 꾸몄다며 의기양양한 미소를 짓는 태민-
현우의 자리를 대신하던 태민이 설계도와 기획서 모두를 상대 기업으로
빼돌렸다는 사실에 강 회장은 극심한 충격을 받고, 뇌출혈로 쓰러진다.
병원 머리맡에서 얼굴이 돌아가 말도 못하는 강 회장을 향해 분노를 퍼붓는
태민의 입을 통해, 태민 스스로를 강 회장의 사생아로 믿고 있다는 걸 알게 된
강 회장은 뭔가를 말하기 위해 입을 달싹이지만, 소리가 되어 나오지 않는데...
은수는 현우에 대한 그리움을 이기기 위해 고된 일과를 자청하고,
결국 심한 열병에 걸린다. 헛소리로도 현우만을 찾는 은수를 보다 못한 장미는
현우를 찾아가고, 은수가 현우 곁을 떠난 것은 정 여사와 윤아의 반대
때문이었다며 은수는 아직도 현우를 사랑한단 말을 전한다.
장미의 집을 찾아 열에 들떠서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은수를 끌어안는 현우-
은수를 자신 소유의 아파트에 옮긴 현우는 이젠 정말 은수를 놓치지 않겠단
굳은 결심을 하는데...
도무지 연락이 되지 않는 현우에게 강 회장의 뇌출혈 소식을 전하기 위해
찾아온 윤아는, 외부와의 연락을 끊고 은수와 정다운 시간을 갖고 있는 현우를
발견하자 어이가 없다.
결국 급격한 정서적 불안을 보인 윤아는 음독을 시도한다.
병문안을 핑계삼아 찾아온 태민 덕분에 현우에게 다른 여자가 있다는 것과
사랑하는 딸이 천대 받았다는 사실을 알게 된 윤아 부모의 분노는
하늘을 찌른다.
그리고, 윤아네의 권력에 의해 정치자금 사건에 연루된 강 회장은
주주 총회에서 경원권을 제 3자에게 뺏기게 되고...
라이벌 기업 측에 제공한 리조트 기획안과 메이플의 채권, 주식을 교환,
현정의 주식까지 매입해 어느 새 제1 주주로 올라선 태민이 새로운 경영자로 나서자 이미 돌이킬 수 없는 상황까지 갔다는 사실에 현우와 정 여사는
넋을 잃을 뿐이었다.
한편, 신문을 통해 현우집안의 일을 알게 된 은수는
현우에 대한 걱정으로 노심초사 하던 끝에 태민을 찾아가 현우를 부탁하지만,
은수가 자신에게 온다면 고려해 보겠다는 말에는
망설임 없이 거절한다.
자신의 사랑은 거래 하는 것도, 남에게 휘둘리는 것도 아니라는 말과 함께
이제 다시는 현우를 놓치고 싶지 않다는 은수의 태도에
더욱 격렬한 질투를 느끼는 태민이었다.
무기력하게 누워 있는 강 회장의 모습을 아프게 바라보며 태민의 손에 놀아난
자신의 무능력함을 탓하던 현우는 메이플 그룹을 되찾기 위해 노력하기 시작한다.
윤아의 부모를 찾아가지만 문전박대만 당하고...
윤아는 자신과 다시 결혼하겠다는 약속만 해준다면 메이플 호텔의 경영권을
다시 내주겠다는 제안을 정 여사도 같이 있는 자리에서 함으로써
현우를 곤경에 빠뜨린다.
곤경에 빠진 건 윤아네 역시 마찬가지여서, 자존심을 건드린 본보기로
강 회장 일가를 쳐내긴 했지만 이미 정치자금 건에 휘말려 설 의원의 위치 또한
바람 앞에 낙엽이었던 것이다.
대표이사로 앉은 태민은 메이플을 조각조각 나눠 외국 기업에 팔려는 계획을
진행시킨다. 자기 모자의 인생을 망친 강 회장 일가가 꾸려온 메이플 그룹을
도저히 남겨 두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삼고초려로 윤아 부모와 마주한 현우는, 다시 투자자들을 끌어 모은다면
메이플에도 충분히 승산이 있다는 말로 설득하기 시작한다.
결국 메이플의 생존 전략을 개발해내면, 경영권을 돌려주겠다는 언질을
받아내는 현우....
은수 역시 그런 현우를 열심히 돕기 시작하는데, 문득 고민하던 현우는
<왜 우리나라엔 한옥호텔이 없을까?>란 <누군가>의 질문을 떠올린다.
그래, 한옥호텔을 만든다면 어떨까?
한옥 호텔 아이디어가 준호였던 시절에 자신이 현우에게 한 말임을 알아챈
은수는 다시금 희망을 갖기 시작하지만, 역시 현우는 그 때를 기억해
내지 못한다.
홍보팀 정훈의 도움을 얻어 시장조사를 완료한 현우는
마침내 외국 투자 회사의 사장(외국인)을 찾아가 새로운 제안을 내민다.
<어드벤쳐 리조트>에 새로운 컨셉인 <오리엔탈>을 넣겠다고...
한옥호텔부터 남다른 오리엔탈 리조트..
동행한 은수는 자신이 직접 구운 한옥호텔 모양의 도자기를 선물로 내 놓고,
기획안만 그럴싸했을 뿐 아무 진척도 보이지 못하는 ‘한울’에게 질려 있던
투자자는, 최종 싸인 만을 남겨둔 ‘한울’과의 계약을 철회하겠다고 선언한다.
(현우의 호텔 쪽 아이디어는 추후 보강됩니다)
한편 태민의 뒤를 캐던 현우는, 자신이 예전 태민을 처음 만났던 그 때
자신의 유괴범인 필두와 태민이 만나는 걸 목격하고 소스라친다.
필두와 태민의 관계를 흩어 내기 시작하며, 그 지독한 미움의 실마리를
찾아내는 현우.
태민의 생모가 과거 강회장의 연인이었으며, 어쩌면 태민이 자신의 형일지도
모른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는 현우는 다시 찾아간 병석의 아버지 앞에서 눈물을
흘리는데...그런 현우를 본 강 회장 역시 안간힘을 쓰며 말문을 열려 하지만,
소용없는 일이었다.
모든 것이 자신의 뜻대로 되고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던 태민에게
투자자들이 계약을 거둬들인다며 배신을 의심하는 한울 사장의 노기 띤 전화가
걸려온다. 한울이 아니라 메이플과 계약하겠다며 나서는 투자자들이 태반이라며
명백한 계약 위반이라 소리치는 한울 사장-
뜻밖의 일에 급히 간부회의를 소집하는 태민 앞에 현우가 나타난다.
태민의 모든 불법적인 행위의 증거와
현정이 가져온 태민의 모발을 이용한 친자 확인 서류를 들이밀며-
태민과 강 회장의 유전자가 일치하지 않는다는 현우의 말에
엄청난 충격에 휩싸인 태민이 거짓말이라며 소리친다.
현우의 뒤를 따른 현정이 담담한 어조로 태민의 생모에 대해 알고 있는 사실을
전한다.
현정의 어머니가 죽고, 강 회장의 옆자리를 노린 몇몇 여자들이 있었다며
그 중 한 여자는 심지어 다른 사람의 아이를 데리고 와서 강 회장의 아이라고
우겼었다며...어린 나이에도 그 여자의 욕심이 너무 더럽고 무서워서 아직도
똑똑히 기억한다는 현정의 말에 태민은 미친 듯이 사무실을 뛰쳐나간다.
한 달음에 요양소를 찾아간 태민은 생모의 어깨를 붙잡고 흔들며 자신의 출생에
대해 묻지만, 여전히 다른 말만 하는 태민모였다.
하지만, 그 말 끝에 흘러 나온 진실을 태민은 똑똑히 알아 듣는다.
“ 어머, 회장님...얘가 회장님 아들 맞다니까요? 왜 절 안 믿으세요? ”
그렇게 자신의 인생을 여태까지 지탱해 왔던 복수심의 뿌리가 흔들리는 순간,
태민의 모든 의지는 무너져 내리기 시작한다...
결국 태민을 물러나게 한 현우는 다시 경영권을 맡는다.
태민의 불법적인 주식 매입 증거는 메이플의 경영권을 다시 강씨 일가에게 돌려준 것-
그렇게 현우는 제자리를 찾았지만, 윤아는 더 이상 현우를 욕심내지 않는다.
막으려 해도 막지 못했던 현우와 은수의 운명에 패배를 느끼며,
정말 운명적인 사랑 같은 게 있다면, 이젠 자신에게도 주어졌으면 좋겠다는
말을 현정에게 남기는 윤아...
그리고 윤아는 감춰뒀던 열쇠 목걸이를 다시 현우에게 돌려준다.
자신이 현우에게 줄 수 있는 마지막 배려라며 궁금해 하는 현우에게
마지막으로 운명을 시험해 보라며 윤아는 출국장으로 들어간다.
끝까지 강 현우-지 현수...둘의 운명이 어긋나길 바라는 자신의 비겁함에
씁쓸해지면서.
윤아가 남긴 열쇠목걸이의 정체가 궁금해 갸웃거리는 현우에게 마침내 현정은
모든 사실을 일러준다. 조각조각 떠오르던 기억의 주인공, 늘 꿈에서나
보이던 그 얼굴의 주인공은 바로 <지 은수>였다고-!
한 편, 경찰의 수사망을 피해 숨어 지내던 태민은 나날이 현우에 대한 비뚤어진
증오를 키워만 간다.
아무리 해도 태민의 것이 되지 않았던 모든 것...메이플...윤아...부모...그리고 은. 수.
결국 잘못된 상대를 향한 증오는 태민으로 하여금
은수를 만나러 달려가던 현우를 향해 미친 듯이 차를 돌진하도록 한다.
하지만, 현우보다 한 발 먼저 태민을 발견한 은수는
현우를 대신해 차 앞으로 뛰어든다.
은수가 피투성이가 된 채 쓰러져 있다는 걸 모른 채 현우의 뒷모습은
멀어져만 가고....
태민은 쓰러진 은수를 붙들고 오열한다.
자신의 헛된 욕망이 결국은 사랑하는 여자를 다치게 만들었다는 사실에
태민은 결국 무너져 내리고 마는데....
다행히 목숨은 건지지만 두 다리를 못 쓰게 된 은수 곁을 지키는 태민.
충혈된 눈으로 용서를 구하는 그에게 은수는 마지막 부탁을 한다.
한편, 백방으로 뛰어다니지만 아무리 해도 은수의 흔적을 찾을 수 없는 현우는
미칠 지경이 된다. 아직 기억은 완전히 돌아오지 않았지만, 현정의 말이
사실이란 걸 은수의 입으로 직접 들어야만 했다.
기억을 뛰어넘어 다시 사랑하게 된 사람이 은수란 게 얼마나 다행인지,
자신이 은수를 얼마나 사랑하고 있는 지 어서 빨리 말해 주고 싶어
정신없이 찾아다니지만....은수의 행방은 도저히 알 수가 없고....
마침내 장미를 통해 은수의 편지 한 통이 전해진다.
“ 인생엔 사랑이 있어 아름답다고 했죠?
내 마음을 편안하게 해줄 사람을 찾았어요. 다시는 그 사랑을 놓치지 않으려구요.
이젠 길... 잃지 마세요... 은수 “
편지를 읽으면 망연자실한 현우였지만,
두 눈으로 확인해야지만 은수의 변심을 믿을 수 있다는 현우였다.
그런 현우에게 장미는 그동안 현우 때문에 은수가 얼마나 힘들었는 줄 아냐며
그냥 은수를 놔두라고 말리지만,
기어이 은수를 만나겠다는 현우였다.
결국 은수를 만나기 위해 찾아간 카페.
다소 핼쑥해졌지만 차분한 표정의 은수와 은수의 손을 따뜻하게 잡고 있는
한 남자(정규)가 현우를 맞는다.
현우를 보아도 아무 동요가 없는 은수의 눈빛과 이미 익숙하게 서로를
챙겨주는 두 사람의 모습....
마침내 은수의 마음을 확인한 현우는 두 사람의 행복을 빌며 돌아선다.
기어이 비껴가는 두 사람의 운명에 가슴 아파 하며
자신이 현정에게 모든 사실을 들었다는 걸 차마 말하지 못하는데...
그렇게 멀어져가는 현우의 뒤에서 그제야 참았던 눈물을 흘리는 은수였다.
구석에 숨어 그 모습을 지켜보던 태민은
은수를 휠체어에 옮겨 앉히며 꼭 그래야만 했냐고 묻는다.
“ 현우 자식이라면, 당신 몸이 이렇게 됐다구 내치진 않을 거야.
사랑한다면서...절대 놓치고 싶지 않다면서 왜 저렇게 보내냐구? “
“....사랑하니까요.
그냥 놔두면, 절대 내 옆에서 안 떠날 테니까.
바람처럼 자유롭고 싶다 그랬는데...내가 바람을 묶어 둘까봐...”
세상 누구도 끊어낼 수 없는 현우와 은수의 사랑을 뼈저리게 느끼며 태민은
입술을 깨문다. 그리고, 정규의 손에 은수의 휠체어 손잡이를 쥐어주며
예정이 바뀌어서 펜션까지 데려다주진 못할 것 같다는 태민.
그리고 태민은 은수에게 영원한 안녕,을 말한다.
다시는 자기 같은 사람을 만나지 말기를-
그렇게 은수를 떠나간 태민은 경찰에 자수하고...
때때로 현정이 면회를 신청하지만 번번히 거절하는 태민은,
현우를 알기 전에 은수를 만났더라면, 차라리 평범한 사람의 아들이
훨씬 자신을 행복하게 했을 거란 걸 모른 어머니를 떠올리며... 감옥 안에서
일그러진 웃음을 짓는다.
모두가 떠나간 뒷자리,
비록 은수를 떠나보내기는 했지만 은수를 잊지 못한 현우는 혼란스러운 마음을
가라앉히기 위해 미친 듯이 일에만 몰두한다.
몇 날 며칠을 새가면서 메이플 그룹 재건 작업에 열중한 현우는
마침내 어드벤처 리조트의 계약까지 완수해내는데, 계약을 마친 순간
그간 쌓였던 긴장이 풀리며 정신이 아득해지는 걸 느낀다....
과로로 탈진한 현우가 깨어난 곳은 한 병원의 응급실이었다.
눈부시게 쏟아지는 하얀 천장과 불빛....
“ ...여기가 어딥니까? ”
“ 진짜로 몰라서 물어보는 거유? ”
옆 자리 보호자의 퉁명스런 대답 위에 쏟아지는 기억의 홍수였다.
“ 진짜로 몰라요? 당신이 누군지 정말 모르냐구! ”
........씩씩대며 자신을 일으켜 세우던 은수....
“ 당신, 사기꾼이지? 뭔 일 저질러 놓구 이렇게 시침 딱 떼는 거 아니냐구! ”
........버스 정류장에 멍하니 앉아있는 자신에게 손을 내밀던 은수....
기억의 조각들은 현우 위를 맴돌고,
마침내 현우는 뜨거운 눈물을 흘리기 시작한다...
.......넌 약속을 지켰어, 지 은수. 날 절대 혼자 버려두지 않겠단 거...
내가 길을 잃고 헤매지 않게 지켜주겠단 약속.....
돌아온 기억의 자락에서 은수와 함께 나타났던 남자가 자신을 치료했던 의사
정규라는 걸 꺠달은 현우는 마침내 은수를 찾아 나선다.
장미를 어르고 협박해 은수가 강원도 펜션에 머물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내고
달려가는데...
차마 현우에게 은수가 감춘 진실을 밝히지 못했던 장미는 고민한다.
그리고 은수에게 미리 연락을 해주기 위해 수화기를 드는 장미의 손을
잡아채는 현정-
두 사람의 운명에 남들이 끼어드는 짓은 이제 그만 하자는 현정의 말에
장미 역시 은수에게 연락할 것을 포기한다.
그리고, 현정은 태민을 면회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선다.
오늘은 왠지 태민이 면회실에 나타날 것 같다는 기대를 하면서-
강원도를 향해 달려가는 현우의 가슴은 불안과 기대로 두근대기만 한다.
은수와 함께 했던 그 곳...너무도 그리운 그 곳, <꿈꾸는 숲>
그리고 간신히 찾아간 펜션의 전경은 현우의 눈에 눈물을 맺히게 한다.
깨진 유리알이 매달려 있는 스케이트 장, 둘이 첫 키스를 나눴던 정상,
남몰래 손을 잡고 걷던 산책로...........
수도 없이 떠오르는 추억과 함께 지금은 찾아볼 수 없는 은수 아버지의 모습까지
떠올리며 눈물을 삼키던 현우는 아직까지 남아 있는 <우체통>을 발견한다.
얼마나 많이 이 곳에 편지를 남겼었나....
떨리는 손으로 열쇠 목걸이를 벗은 현우는 우체통의 자물쇠에 열쇠를 넣고
돌린다. 딸깍, 하는 소리와 함께 열린 그 곳엔...
주인을 기다리는 편지 한 통이 놓여 있었다.
“ 인성아....아니, 현우씨....
사. 랑. 해. ”
마침내 둘이 같이 타임캡슐을 묻었던 나무 아래에서 현우는 찾아낸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잃어 버린 기억을,
조각으로만 존재했던 안타까웠던 사랑을,
그리고....
휠체어에 앉아 다시 돌아올지도 모를 자신을 기다렸을
은수를-
현우는 눈물을 흘리며 천천히 은수에게 다가선다.
그렇게 서로에게 다가서는 둘의 모습 뒤로, 눈꽃들이 빙글빙글
떨어져 내리기 시작했다..............................................the en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