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상 속 타임캡슐을 만나다
서울에서 출발해 한반도를 동서로 가르며 남쪽 끝 전남 목포까지 이어지는 호남선 철도, 그 중간 지점께 강경역이 있다. 강경역이 위치한 곳은 행정구역상 충남 논산시 강경읍, 논산 시내의 남서쪽에 있는 작은 지방도시다. 전북 장수에서 발원해 군산만으로 흘러나가는 장장 400여㎞ 길이의 금강이 끼고 도는 곳으로, 물줄기가 읍내 코앞까지 흘러들어오는 덕에 내륙인데도 불구하고 포구가 생기고 물류가 활발해 예로부터 큰 장이 서기로 이름 높았던 곳이다.
도로나 철로 같은 내륙 교통이 발달하면서 이제 포구의 역할은 사라졌지만 여전히 국내에서 손꼽히는 젓갈시장이 형성되는 곳이다. 그래서 강경은 다른 무엇보다 젓갈이 가장 먼저 떠오르는 도시이지만, 이곳에는 젓갈시장만큼이나 오래되고 젓갈만큼이나 사람을 끌어당기는 것이 또 있다. 바로 근대건축물들이다.
100여 년 전, 1900년대 초반부터 일제강점기로 이어지는 그 시기는 강경의 최고 전성기였다. 모든 물류가 강경포구로 흘러들어오고 조선 팔도에서 세 손가락 안에 드는 큰 장이 섰다. 장이 크니 사람도, 돈도 많았다. 사람이, 돈이 많으니 세상 온갖 것이 다 이곳으로 모여들었다. 강경 읍내에 남아 있는 근대건축물들은 바로 그 시절, 강경의 번영을 상징하는 것들이다.
[회색 콘크리트 사이에 숨은 붉은 벽돌 건물]
강경의 근대건축물들은 읍내 곳곳에, 주민들의 일상 구석구석에 퍼져 있다. 대구나 목포처럼 옛 시대의 건축물들이 줄지어 거리를 이루고 있는 것은 아니라는 말이다. 그러니 강경에서 근대건축물을 보려면 하나하나 그 위치를 찾아다녀야 한다. 하지만 걱정할 필요 없다. 강경은 전체 면적이 7㎢가 채 안 되는 작은 도시다. 강경역에서 시작하든 버스터미널에서 출발하든, 아니면 젓갈시장이든 어디서 시작하더라도 걸어서 충분히 돌아볼 수 있다. 천천히 느긋하게 산책하다 보면 번쩍거리는 젓갈 가게 불빛 사이로, 나지막한 낡은 집들 사이에서 시간이 멈춘 듯한 낯선 건물을 만나게 될 것이다.
읍내 한가운데에 자리 잡은 젓갈시장을 가로지르다 보면 주황색 벽돌을 높이 쌓아 올린 건물이 눈에 들어온다. 한눈에 봐도 역사적인 건축물임을 알아챌 수 있는 이 건물은 옛 한일은행 건물이다. 기실 이 건물의 시작은 한일은행이 아니다. 1905년 50만 환을 자본금으로 설립된 한호농공은행 강경지점이 들어섰던 곳이다. 구한말이었던 1900년대 초에는 민족자본 육성을 위해 전국 곳곳에 은행이 설립됐는데 이곳도 그중 하나다. 하지만 국권 피탈 이후 일본에 의해 강제로 개편되었다가 광복 이후 한일은행 강경지점이 되었고, 다시 충청은행으로 바뀌었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의 역사가 오롯이 담긴 이 건물은 2층 건물 높이지만 사실은 단층 건물이다. 르네상스풍 건물의 옆면 벽은 좌우 대칭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지금은 강경근대역사관으로 사용하므로 강경 근대사에 대한 각종 자료를 얻을 수 있으니 근대건축물 답사의 시점으로 선택할 만하다.
동쪽으로 발길을 돌리면 또 하나의 벽돌 건물인 강경중앙초등학교 강당을 만날 수 있다. 강경중앙초등학교는 논산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학교다. 1905년 2년제 사립학교인 보명학교로 개교했다가 이후 수차례 이름과 학제를 바꿨고, 1996년 지금의 이름을 얻었다. 강당은 1937년에 지어진 건물이다. 콘크리트 기반에 붉은 벽돌을 쌓아 올려 완성한 것으로, 근대 시기 학교 강당의 전형적인 모습을 하고 있다.
학교 앞을 지나 다시 중심가 쪽으로 향하면 주변 건물과는 확연하게 다른 건축물 하나가 눈에 띈다. 강경 성당이다. 1961년 건립된 이 성당은 하얀색 벽에 붉은 지붕을 이고 있다. 단순한 삼각 지붕에 간결한 사각형 단층 건물이다.
십자가를 단 첨탑만 위로 솟아 있는 이 건물은 건립 당시에도 독특한 모양새였다고 한다. 주위의 건물들이 워낙 낮아서 한눈에 띄는 이 성당은 맑은 날에는 파랗게 빛나는 하늘을 배경으로 서 있는 모습이 마치 유럽 어느 시골 마을 성당을 보는 듯한 느낌이다. 내부로 들어가면 아치형으로 마감된 천장이 눈에 들어온다. 높이 솟은 아치는 위협적이지는 않지만 소박한 성당 건물에 위엄을 만들어낸다.
성당을 나서니 그제야 사방에 솟은 십자가들이 눈에 들어온다.
강경에는 유독 교회가 많다. 개화기 서양 문물과 함께 포구를 통해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교회가 많아진 것이다. 한국인 최초로 천주교 사제 서품을 받은 김대건 신부도 강경포구로 들어와 이곳에서 첫 번째 미사를 집전했다고 한다. 읍내 곳곳에 오래된 교회 건물이 있지만, 그중 특이한 것은 강경 북쪽에 높이 솟은 옥녀봉 쪽에 있다. 옥녀봉에 오르면 한국 침례교의 첫 예배가 있었다는 초가지붕 한옥이 있고, 옥녀봉을 내려오는 골목길에는 나무 골조에 붉은 벽돌로 벽을 세우고 기와를 올린 독특한 모양새의 옛 강경성결교회 건물도 눈에 띈다.
[영화의 흔적 간직한 노동조합 건물과 연수당한약방]
느릿느릿 왔던 길을 되짚어가며 읍내를 거닐다 보면 고개를 갸웃거리게 만드는 건물 하나를 만나게 된다. 옛 강경노동조합 건물이다. 1925년 건축된 2층 구조 한옥인데 지금은 1층만 남아 있다. 그런데 서슬 시퍼런 일제강점기 때 노동조합이라니, 호기심 폭발이다. 알아보니 당시 강경포구로 들어오던 수산물을 하역하던 노동자들의 조합이었다. 한때 조합원이 3000명에 이를 정도였다고 하니 당시 강경이 얼마나 융성하던 곳인지 짐작케 한다. 지금은 강경역사문화안내소로 사용되고 있다.
읍내에는 2층 구조 한옥 건물이 한 채 더 있다. 젓갈시장을 중심으로 동북쪽 외곽에 있는 연수당한약방이다. 지금은 1층만 남은 노동조합 건물에 비해 연수당한약방은 2층 건물이 그대로 보존돼 있다. 강경의 옛 풍경을 찍은 사진 속 모습 그대로다. 예전 강경이 한창일 때 1층에서는 종업원들이 부산하게 약재를 팔고, 2층에서는 약재를 썰고 다듬고 저장했다고 한다.
2층을 덮고 있는 기와지붕 외에 1층과 2층 사이 벽에도 앞쪽으로 캐노피처럼 지붕을 달아낸 것이 특징인데, 강경 읍내를 걷다 보면 꼭 근대건축물이 아니더라도 1층 높이에 캐노피를 단 2층집이 종종 눈에 들어와 이채롭다.
이렇게 읍내를 뱅뱅 돌다 보니 강경을 만든 것은 결국 포구이지 싶다. 그렇다면 지금은 사라졌지만 그 흔적이라도 봐둬야 하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갑문 쪽으로 향했다. 갑문은 운하나 강에 물길을 막으려고 설치한 칸막이 혹은 독을 가리킨다. 포구 앞뒤에 이 갑문을 하나씩 설치해서 번갈아 여닫으며 갑문 사이의 수위를 조?한다. 배가 포구로 들어올 때 강바닥이 낮아서 배가 부딪치는 것을 막기 위해 설치하는 시설이다. 지금은 강경갑문을 사용하지 않지만 모습은 그대로 남아 있다.
상상해보건대, 그 시절 하루에도 수차례 갑문을 통과해 배들이 포구로 들어왔을 것이다. 포구 주위에는 물건을 부리려는 노조원들이 군데군데 무리 지어 있었을 것이다.
물건을 확인하려는 장사치, 사려는 장사치로 북적거렸을 테고 장터 국밥집에서 모락모락 뜨거운 김이 솟아올랐을 것이다. 눈을 뜨면 다 사라지고 낡은 갑문만 남겠지만, 그 갑문이 품고 있는 이야기는 오래도록 따뜻할 것이다.
[테마 따라가는 강경 걷기]
강경읍에서는 읍내에 산재한 역사·문화 유산을 효율적으로 즐길 수 있도록 테마별로 걷는 길 4개 코스를 만들었다.
1코스는 읍내 중심에서 시작해 연수당한약방, 옛 한일은행을 거쳐간다.
2코스는 옛 한일은행에서 강경노동조합 건물, 젓갈시장 사거리로 이어진다.
3코스는 옛 한일은행, 강경젓갈전시관, 죽림서원, 근대역사전시관 등으로,
4코스는 강경갑문, 강경포구, 옥녀봉, 연수당한약방 등으로 이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