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를 바라본다는 것은 다양한 시선으로 가능하다. 토건업자에겐 아직 개발되지 않은 제주의 풍광이 삽질로 돈을 벌 수 있는 기회의 땅일 것이고, 여행자의 시선으로는 이대로 두고 다시 또 찾아오고 싶은 보석의 땅일 것이다. 개인적으로 제주에 들어와 살기 시작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제주에 정착하겠다는 마음을 먹은 이후로는 시선의 깊이가 생기기 시작했다. 처음 바라본 제주에의 시선이 수평적이었다면, 이제는 수직적 깊이가 생겨나고 있는 것이다. 그 시작은 4.3의 이해였고 더 나아가 이영권 선생님이 쓴 '제주사'라는 책을 통해서였다. 이후 손에 잡히는 제주에 관한 책들을 몇 권 더 접할 수 있었는데 아마도 유홍준 선생님의 이 책 역시 그런 의미에서 내 손에 쥐게 된 책이지 않을까 싶다. 나의 문화유산 답사기 시리즈는 단 한권 읽었을까 하는 정도인데 제주에 관한 7권째는 스스로 구입하여 손에 들었던 걸 보면 말이다. 유적과 문화유산등등을 통한 제주를 바라보는 일은 이미 말 한대로 깊이를 더하는 작업이다. 내가 사는 곳의 돌멩이 하나를 집어들고 이 땅의 수만년 시간을 느낀다는 사람이 있듯, 내 주변의 잘 눈에 띄지 않는 듯한 문화유적에 깃든 시간과 의미는 알면 알 수록 무척 흥미롭고 이 곳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된다. 당장 내가 사는 곳 부근의 동자복이나 김만덕 묘비, 그리고 오현단에 대해서 부끄럽게도 알고 있는 것 하나 없었지만, 이 책을 통해 그 의미와 역사를 알고 난 이후로 나는 이 땅에 조금 더 포근하게 담기는 듯 한 느낌이 들었다. 내가 사는 곳의 역사와 시간을 이해한다는 것은 이처럼 애정을 더하는 일이다. 문화재청장을 역임했던 이력만큼 유적과 자연에 대한 시선이 무척 분석적이면서 정교하고 따뜻하다. 동시에 매우 비판적이다. 비판적이라 함은 현재 문화재가 관리되고 있는 실정에 대한 비판이다. 역사적 시선면에서는 중도를 유지하려 애쓴 노력이 보인다. 이는 이영권선생님의 제주사와 비교하여 보면 쉽게 이해될 수 있는데 최대한 문화유산의 객관적 의미를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고 설명하려는 모습이 역력하다. 개인적으로는 좀 더 자신의 역사적 시선과 의미를 담아주었으면 아쉬움이 남았다. 책을 정말 아끼면서 읽어나갔다. 재밌다고 한꺼번에 읽어버리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재미도 재미지만, 연세 지긋하신 어르신의 정겨운 입담같은 글이 너무 포근하고 아늑했기 때문이다. 학자의 글이, 객관성을 유지하려 노력한 모습이 역력한 글이 이렇게 정겹고 포근할 수 있을까. 읽는 순간엔 책 바깥의 공간에서 벌어지는 고민들이 내게서 멀어지는 느낌을 받곤 하였다. 이렇게 정다운 느낌으로 내가 사는 곳을 상세히 설명해주니 재미를 느끼지 않을 수가 없고 집중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동시에 이영권 선생님의 제주역사기행과 함께 이 책의 경로대로 제주를 다시금 돌아보고 싶어졌다. 재미와 흥미도 흥미지만, 이 책을 읽고나니 제주에 살고 싶어하는 나는 제주를 정말 모르고 있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그만큼, 이 책은 따뜻하고 면밀하고 재밌고 정겹다. |
출처: 칼을 벼리다. 원문보기 글쓴이: 민욱아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