을사년 새해 황일규가 군동기생 여러분 모두 만수무강 하시기를 두 손 모아 기원합니다.
27년간 경찰 생활을 통하여 너무나 아쉬웠던 때 그리고 밀려오는 무서움과 남은 여생의 삶을 미리 보는 듯한 공포감에 젖어 들면서 긴 밤을 지새는 날이 잦아 들었습니다.
이 두가지를 글로서 황일규란 이름이 군동기생 여러분의 가슴 속에 조금이라도 스며 들 수 있다면 여태껏 살아온 보람을 찾을 수 있다고 생각됩니다.
이 글은 눈 수술 후 회복 중에 있으나 아직 불편이 심하여 아들이 대신 올렸음을 송구스럽다는 말씀을 드립니다.
「석양의 길목에서」
청춘을 흘러가는 물이라고 하고
인생을 두둥실 구름이라고 하면
차라리 한줄기 시원한 바람 되어
석양의 서러운 그림자 지우려 하네.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가는지
저 강 하나 건너면 그만인 것을
무엇이 망설임을 재촉하는가?
주) 서러운 그림자; 이루지 못했던 꿈과 바램을 팔순이 넘도록 아직도 머리 속에 담고 있는 서글픈 현실을 뜻함
주) 저 「강」; 죽음의 세계를 뜻하는 「요단강」
「 경찰 재직시 주요 업적 」
① 김영삼대통령 영부인 격려 편지(1992년)
② 영부인 기념품 하사 (군 삼정도)
③ 영부인 격려 편지 통보에 경찰청에서 경찰의 날에 「포장증」 표창
④ 경찰 27년간 재직시 금품 10원도 수수하지 않은 「백로」 정신 실천과 계승
※ ① ② ③ 항은 경찰 창설 이래 최초
※ 삼정도는 박정희 대통령이 군단장급 이상 승진자를 청와대로 불러 직접 계급장을 달아주고 군 삼정도를 수여했음
이 업적들은 국민을 섬기는 공직자로서 축재와 계급을 초월한 최고의 존귀한 가치로 각인되었으며 이름 석자를 알리는 영광의 얼굴로 자리 잡았다.
「제왕 광해의 그 칼이 있었다면」
1995년 1월이 되었다.
제일 먼저 경무관 승진 심사를 하는 것이다.
약 80명의 대상자 중 9명만 선발하는 것이다.
흔히들 낙타가 바늘 구명을 통과하는 격이라고 한다.
이러다 보니 돈과 빽 중 한가지는 있어야 승부를 걸어 볼 수 있다.
나는 둘 다 가지지 못했다.
승진심사가 있기 전 중견간부 4명이 내가 서장으로 있는 서울북부경찰서로 전입해왔다.
그 중 한 명이 빽을 썼지만 나는 단호히 거절했다.
몇일 후 드디어 경무관 승진 심사가 시작되었다.
심사승진자발표 하루 전날 아침에 지인으로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그는 내가 내일 발표하는 9명의 명단에 들어 있다는 것을 알려줬다.
그 순간 나는 생애 처음 엄청난 기쁨을 경험했다.
돈 10원도 안 쓰고 경찰 별을 다는 것이다.
「호사다마」 라는 말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그날 오후 빽을 썼던 중견간부가 자기가 원했던 자리에 가지 못하자 나를 탈락시키기 위해 음해공작을 펼친 것이다.
밤 늦게 나는 승진 후보자 9명의 명단에서 탈락되었음을 알았다.
울분과 분노가 한꺼번에 「윙」 소리를 내면서 머리 속을 돌고 있었다.
제왕 「광해」 는 모후의 죽음에 대한 복수를 위해 반 미치광이가 되어 직접 관련자들을 칼로 베었다.
대신들은 겁을 먹었고 궁궐안은 피비린내가 자욱했다.
결국 「광해」는 폐위되어 귀양을 갔고 그곳에서 죽었다.
그때 나는 「광해」 의 그 칼이 있었다면 아마도 그를 베었을 것이다.
결국 평소 아끼던 중견간부 한명을 도와준 대신 내가 너무나 엄청난 큰 피해를 입게 되었던 것이다.
「기적이 나에게」
나는 1998년 12월 31일자로 총경계급 정년(9년)으로 27년간 마주했던 경찰 조직을 떠나게 되었다.
무엇 하나 이룬 것이 없이 떠나는 것이 서글펐다.
27년간 전세살이로 전전해온 나는 퇴직과 동시에 집주인으로부터 전세보증금 1억원을 받아 용인 수지 쪽에 다시 전세를 얻었다.
이사 후 몇일 간 방구석에서 앞으로 살아가야할 해법 찾기에 골몰해 봤지만 아무런 방향도 찾지 못한 채 피로감만 더해갔다.
나는 안일함에서 벗어나 더 독한 정신력으로 부딪혀 반드시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굳은 각오로 다시 처음부터 차근차근히 살펴 나갔다.
퇴직과 동시에 갑자기 생과 사의 갈림길에 서고 보니 엄청난 걱정과 두려움으로 잠이 오지 않아 밤을 새는 날도 있었다.
「잠들 수 없었던 시간들은 아픔을 씻어주는 눈물이 되어 다시 일어 설수 있는 용기와 열정을 나에게 주었다. 」
해법 찾기에 매달려 있을 때 어느 날 퇴직 후 처음으로 외부에서 전화가 왔다.
받아보니 경비업체의 회장실이었다.
회장은 나에게 경찰고위직에 있는 K씨를 잘 아느냐고 물었고 나는 아는 사이라고 말했다.
회장은 조금전에 K씨가자기에게 전화를 했다고 하면서 몇일전에 황일규씨라는 사람이 총경으로 퇴직했다고 하면서 능력으로는 경무관 승진이 되고도 남지만 돈이 없다고 하면서 이번에 경무관 승진도 돈이 없어서 안되었다고 말을 한 후 황일규씨를 본사 고문으로 취업 시켜 줄 것을 자기에게 부탁했고 회장은 즉시 그렇게 하겠다고 약속했다는 것이다.
회장은 육사 출신으로 대령으로 예편한 사람으로 K씨와는 오래전부터 잘 아는 사이라고 했다.
회장은 내일 10시까지 회사로 나와 주도록 말했고 다음날 아침 일찍이 삼성동 코엑스 부근에 있는 사무실에 도착했다.
회장은 회사업무에 대한 간단한 브리핑을 해주면서 잘 부탁한다고 말했다.
잠시 후 직원이 계약서를 가져왔다.
한번 읽어 보았고 급여는 500만원으로 책정되어 있었다.
나는 서명을 한 후 회장에게 도움을 준데 대한 감사의 인사를 드렸다.
다음날 아침 9시 부터 정식으로 근무를 시작하게 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과정이 어떻게 해서 일어났는지 도무지 이해가 안되었다.
나는 이 과정을 기적이라고 부르고 싶다.
하느님도 기적을 만들지만 K씨도 만들어 준 것이다.
사실 K씨와는 절친은 아니었다.
그저 조금 알고 지내는 사이였다.
K씨의 모습은 가면을 쓰지 않은 진짜 얼굴로 말수가 적은 편이며 웃을 때도 소리없이 그저 살짝 웃는 시늉만 하는 편이며 부하들에게는 아주 자상하면서도 친절히 대하는 상사로 알려져 있는 것이다.
K씨는 상대방에 대한 배려와 겸손이 「자신이 자신을 섬기는 경의」 로운 것임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K씨는 내가 경찰생활을 해온 모습을 지켜보았고 가정형편도 훤히 알고 있었던 것이다.
나는 처음으로 힘이 솟구치기 시작했다.
제일 먼저 꼭 해야할 일은 아파트를 분양 받는 것이다.
나는 수십년 전부터 넣어 두었던 주택청약통장을 꺼냈다.
부근에 새로 짓고 있는 아파트를 청약해서 당첨이 되었다.
난생 처음으로 내 집을 마련한 것이다.
지역이 어디든 평수가 몇 평이든 그런 것은 알 필요가 없다.
기쁨이 넘쳤다.
살다 보면 때로는 「고통이 단비가 되어 가슴을 뭉클히 적실 수도 있듯이 즐거움도 지나치면 눈물이 되어 가슴을 서럽게 적실 수도 있는 것이다. 」
노년의 삶이란 석양의 노을과 같은 것이다.
빈손으로 떠나는 것이다.
수십년 후 그곳엔 아무것도 남김없이 그저 텅 비어 있을 뿐이다.
「존경하는 K씨에게」
고위직 간부로서는 드물게 깨끗하게 처신해 오신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존경하는 것입니다.
나의 가슴 속 깊이 서려진 진심을 담아 한없는 감사를 드리면서 죽음의 문턱에 설 때까지 항상 그 기적을 기억할 것입니다.
2025. 1. 1
황 일규 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