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가 한국은 크리스마스 이브...
크리스마스인 오늘
교회나 성당에서는 기념 예배나 미사가 있어서 모두들 좋은 시간 가지셨겠지요?
저는 어제 오랫만에 외출을 안하고
집에서 뜨게질을 하며 노래들을 들었답니다.
옛날 '대학가요제 동영상' 후후후...
오래된 영상들이라서 헤어스타일하며 옷차림들이 정말
촌스러워보이고
북한사람들 복장같고...ㅎㅎㅎ
그래도 지금 많은 활동을 하고 있는 가수들의 옛모습을 볼 수 있어서 감회가 새로왔습니다.
노사연, 심수봉, 유열, 이정석, 전유나...
다 듣고나서 계속 '중년의 향기 노래모음 14곡(동영상)'을 봤지요.
(사실은 뜨게질하며 본 거니까 들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 거... )
거기에 또 심수봉씨가 나와서 피아노를 치면서 '비나리'를 부르네요.
제가 심수봉노래모음을 며칠 전에 제 카페 음악감상실에 올렸더니 "심수봉을 좋아하는지"를 묻는 분이 계셨습니다.
ㅎㅎㅎ
사실 심수봉노래를 부르지는 않습니다. 이상하게 입이 안 떨어져요.ㅎㅎ
그런데 심수봉씨가 노래가사를 쓰고 작곡을 하지 않습니까?
비록 제가 부르지는 않아도 그 가사와 곡을 보면 천재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그녀의 개인사를 적지 않게 알고 있기에 제 마음에 연민도 많이 있구요...
그녀가 어떻게 다시 이렇게 재기할 수 있었을까...
정말 존경스럽게 바라보고 있거든요...
새삼 위키피디아 한글판과 다른 곳에서 그녀에 관해 다시 찾아보았습니다.
자서전도 있는 모양이지만...안 읽어 봤으니^^
원래 이름은 심민경이고 1955년에 태어났네요.
홀어머니 밑에서이지만 음악인 가문에서 자라며 피아노를 배웠고 재즈 음악을 공부하여
로큰롤을 주로 연주했던 보컬 그룹 '논스톱'의 드럼 주자로 미8군 전용 클럽 무대에 섰답니다.
그녀의 노래를 듣고 감탄한 나훈아의 주선으로 1976년 신세기 레코드와 음반취입 계약을 맺고 녹음에 들어 갔지만 음반사와의 문제로 성사가 안되었다가
명지대학교에 경영학과에 재학 중이던 1978년,
당시 임백천, 배철수,노사연 등도 같이 출전했던 제2회 MBC 대학가요제에서 자작곡 <그때 그사람>을 불렀지만 상을 타지는 못했더군요. 하지만, 그 가요제에서 감미로운 목소리로 부른 유일한 재즈풍의 트로트였던 <그때 그사람>은 전국을 강타하여 1979년, 최고의 히트곡으로 떠올랐지요.
심수봉씨와 박정희전대통령의 만남은...
첫 번째는 한남동 고급 비밀요정에서였다네요. 피아노 반주자로 따라갔다가 거기서 우연히 박정희 대통령을 처음 보게 됐고,
두 번째는 국무총리 관저 증축 기념 연회에서 많은 연예인과 함께 만났고
운명의 궁정동 사건 때가 세 번째였답니다.
박대통령이 그녀에게 ‘자네 노래를 들으니 눈물이 나더라’는 말을 직접 건넨 것으로 봐서
대통령이 그녀의 노래를 좋아했던 것이겠지요?
성공을 향해 참 잘 풀릴 수도 있었을 만남이었을 텐데...
그녀는 1979년 10월 26일에 김재규의 박정희 대통령 살해 사건 당시 현장에 있어서
김재규가 권총으로 박정희의 가슴을 쏘는 것을 목격했다고 하지요...
처음 총격 때는 심수봉과 신재순이 쓰러지는 대통령을 부축했고 김재규가 대통령 앞으로 다시 다가 왔을 때,
같이 있던 신재순과 함께 도망하여 숨었다네요.
김재규는 박정희의 머리를 다시 쏘았고...
얼마나 무서웠을까요...
어찌 그 피가 낭자했을 장면을 머릿 속에서 떨칠 수 있을까요...
어떻게 그녀가 잠을 잘 수가 있었을까요?...
어떻게 삶을 계속할 수 있었을까요?...
게다가 그녀는 계엄사에 끌려가 정신병자로 몰려 서울 한남동 N병원에 외부와 철저히 격리된 채 한 달간 감금돼 매일같이 수면제를 투여받고 잠에 드는 고초를 당했다고 합니다. 중추신경이 수면제에 중독되는 바람에 정신병원을 나와서도 한동안 수면제 없이 잠을 이루지 못해 부작용에 시달렸다 하고...
이어진 전두환 정권시절
‘그때 그 사람’이 ‘그때 그사건’을 떠올리게 한다는 이유로 수년간 방송출연 금지조치를 당했고,
1984년, 가수로 복귀한 뒤로 가정문제와 겹쳐 한동안 침체기에 놓인 상황에서
애절한 목소리로 <남자는 배 여자는 항구>라는 곡을 제작하여 불러 앨범이 2만여장이나 팔리는 상당한 인기를 얻게 되어 재기에 성공하였지요.
그러나 1985년엔 노래 ‘무궁화’의 가사가 시위를 선동한다는 ‘혐의’로 방송 하루만에 금지조치 당해 또다시 방송을 떠나야 했답니다.
그러다가 1987년 <사랑밖엔 난 몰라>라는 곡으로 여성층들에게 인기를 얻었고
1997년에는 러시아 가요를 번안한 《백만송이 장미》라는 곡으로도 많은 사랑을 받았지요.
개인적인 삶?...
제 기억에는 10. 26 사건 이후에 외국인 심령술사 남자였던가요?
아마 치료 때문에 만나게 되지 않았을까 싶은데 아무튼 그를 만나고 아들을 낳게 되었는데 출산 보름만에 헤어졌고
그 후 다시 한 번 결혼에 실패한 뒤
1993년에 그녀가 MC로 출현했던 MBC방송국 PD와 다시 결혼해서 지금껏 살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자녀는 아들 둘에 딸 하나...
정말 파란만장하다는 표현 그대로인 듯합니다...
그렇게 오랫동안 겪은 것들이 많아
그녀가 쓰고 만드는 노래들이 그렇게 애절하고 사람들의 마음을 적시는 것이겠지요?
나중에 본 동영상에서는 돋보기를 쓰고 피아노를 치데요.
얼굴도 편안해보입니다. 참 다행이지요.^^
그 깜깜하고 처절했을 여러 상황에서
극단적인 선택을 하거나 달리 안 좋게 될 수도 있었겠지만
이렇게 온화한 모습으로 자신의 재능을 다시 사용하며 용기있게 살아가는 심수봉씨...
이런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제가 심수봉씨 노래 듣기를 좋아하는 모양입니다...^^
계속 좋은 시간들 보내세요!
첫댓글 심수봉님의 노래는 좁 처량하지요
그래도 구수해서 노래방에 가면 두 곡 정도는 그녀의 노래를 부른답니다
그 시절의 이야기를 알기쉽게 재미있게 풀어주셔서
잘 읽었어요
고맙습니다
전 심수봉씨 노래 좋아 하고 잘 따라 부른답니다
그중에서도 백만송이 장미는 가슴에 묻어 놓고 아끼는 곡이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