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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의 등대.
&. 학교(學校)란 인격도야(人格陶冶)와 실습 도장(道場)이 되야 한다.
국민기본교육기관(초중고)들은 인격도야가 주(主)가되고 학습(知識)교육은 부(副)가 되는 교육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예체능 실습과 기초과학(基礎科學)교육 실험장(實驗場)이 되어야 합니다.
시대(時代)의 변화는 기본교육의 초점(焦點)과 방향을 바꾼다.
1950-60년대만 해도 대한민국 학습(知識) 교육환경은 대단히 취약하고 열악 했습니다.
지식정보망(知識情報網)은 전무한 상태 였고 잡지(雜紙)를 비롯한 사회적 지식매체 또한 같은 형편이였습니다.
필요한 책 한권을 구할 여고 백리길을 마다않고 걸어서 오고 가는 사람들이 있었든 때였습니다.
이때는 학교 교과서가 지식(知識)을 쌓을 유일한 대상이라고 해도 과언은 아니 였습니다.
학교는 교육자 피교육자 다같이 학습교육에 진력(盡力) 해야 했고 수용 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너무도 당연한 처사 였습니다.
반면 이때는 인성교육(全人敎育)은 전통방식이기는 하나 가정과 사회를 통해 큰 무리 없이 이루어 질 수 있었습니다.
가정에서는 어른들의 훈시(訓示)와 질책이 끊이지 않았고 동내 어른 들의 훈시와 질책도 없지 않았습니다.
당시 이런 인성교육은 피교육자들의 큰 거부반응 없이 수용 되고 또한 정착 되었습니다.
이 시대는 학교 교육이 학습(知識) 부분에 중점을 두고 인성(全人)부분은 소월히 해도 동량육성(棟樑育成)에 별 문제가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체능 부분의 실습과 기초과학 부분의 실험도 그 시대에 걸 맟게 초중고등 학교에서 잘 이루어 졌습니다.
이 시대 대한민국 지식환경(知識環境)?
이시대를 살아 가는 사람들은 남여노소 할 것 없이 지식(知識)의 Panorama, 지식의 첨단(尖端) 속에 있습니다.
따라서 지식 수급매체(需給媒體)나 전달매체는 모두 차고 넘 칩니다. 각종 서적(書籍) TV 인터넷 스마트 폰 해서 부족 한 것은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생활에 필요한 지식의 선택과 응용의 묘(妙)를 살리는 것입니다.
각인의 소질과 적성(適性)에 걸맞는 지식들을 취사선택 해서 응용(應用) 할 수 있는 것은 이시대를 살아 가는 최상의 지혜(智慧)가 됩니다.
아무튼 이 시대는 지식이 이목구비(耳目口鼻)를 막아 운신(運身) 조차 힘든 상황 입니다. 지식환경(知識環境)에 대한 말은 더 이상 필요치 않을 것입니다.
이 시대 대한민국 전인(全人) 교육환경?
잘아다시피 오늘의 대한민국은 자라나는 새싹들 가정(家庭)이나 사회을 통한 인격(人格) 형성을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가정은 맹목적(盲目的)인 자녀사랑 으로 인성(人性)문제는 소외되고 사회는 오히려 인격 훼손에 원인이 되고 있는 것이 현실 입니다.
학교 이외에 인격도야(人格陶冶)에 도움이 될만한 영역은 군사교육(軍事敎育)이 유일 한 것같습니다.
한국의 등대, 늘 걱정 스러운 것은 대한민국, 지금은 국민들의 기본양심(基本良心)이 남아 있어서 국가사회가 그런 대로 지탱을 하지만 이것 마저 사라지게 된다면 과연 어떻게 될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기본양심이 임계량(臨界量) 이하로 낮아지게 된다면 국가사회문제는 심각해 질 것이라는 뜻 입니다.
국민양심(國民良心)의 임계량을 말하기는 대단히 어렵고 힘든 일입니다. 하지만 한가지 분명한 사실은 mass society 현상(기계문명에 의한 스트레스)과 공교육 파행으로 인해 국민양심은 날로 줄어 들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공교육이 지금과 같이 전인교육(全人敎育)이 되지 않고 파행선상에 있게 된다면 머지 않아 국민양심은 임계량 이하로 떨어 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국가사회 질서(秩序) 유지, 국민 양심(良心)이 바탕이 되어야 합니다. 윤리 도덕, 법과 원칙, 종교(宗敎)의 교리 율법 등, 이 모두가 양심이 없으면 무용 합니다.
* 국민 기본양심의 임계량이란? 국가를 지탱하는데 필요한 최소(最小)의 국민양심을 일컫는 것입니다.
인권(人權)은 있으나 인격(人格)은 없는 나라 대한민국 입니다.
한국사회, 인권과 인격의 차이가 가장 극명하게 드러나는 부분은 아마도 범죄자(犯罪者) 처리 과정이 않인가 생각 됩니다.
사람을 죽이고 어린아이들을 성폭행한 흉악범들 이송 할 때나 현장 검증 할때 인권(人權)을 내세워 모자를 눌러 쓰게 한다 든가 아니면 마스크를 착용게 하여 얼굴을 가린 모습을 볼 때는 울화통이 치밀게 됩니다.
대한민국은 늑대도 인피만 쓰면 인간 대접을 받을 수 있구나 하는 수치심(羞恥心) 때문 입니다.
그러다가도, 범법자들 중에는 고령층 보다 젊은 층의 숫자가 훨씬 많다는 것을 느낄 때는 또 다른 감정을 같게 됩니다.
대한민국 공교육, 특히 전인교육(全人敎育)의 잘못과 무관 하지 않다는 것 때문입니다.
대한민국 자살률 세계1위로 잘 알려저 있습니다. 이것은 수년간 이어지고 있는 일 입니다. 그리고 그 끝이 보이지 않습니다.
이것은 국가가 교육적 책임(責任)을 다하지 못한 국취(國恥)중의 국치 입니다.
공교육이 정상적으로 운영이 되는 국가라면 자살률 세계1위라는 불명예는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대한민국 인권정책은 국제 인권규약(規約)의 꼭두각시 일 뿐 입니다. 국민 자살률 세계1위는 국가적 방조(幇助) 이기 때문 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인권(人權) 말살의 극치 입니다.
인격(人格) 없는 인간은 하등(下等)동물 입니다.
인격(人格)을 다듬는 것은 교육(敎育)입니다.
인격(人格)을 지키는 것이 인권(人權)입니다.
대한민국 기성(旣成)세대들의 피교육자에 대한 역할과 문제?
학교(學校)가 지식(知識)의 전당(殿堂)이라는 것은 인류의 오랜 관념이자 통념(通念)입니다.
하지만 이 시대는 이것을 무색게 합니다. 지식이 포화(飽和)상태에 있기 때문입니다.
천지(天地)는 지식굉음과 지식전파(知識電波)로 가득 차 있습니다. 발길에 걸리는 것이 지식이고 손에 잡히는 것이 지식 입니다.
이런 지식환경에서 지식만을 얻기위해 부형 들이 자녀(子女)들을 학교에 보낸다는 것은 한마디로 어불성설 입니다.
특히 암기위주(暗記爲主) 입시위주의 교육이라면 더 더욱 그렇습니다. 단순 지식 쌓기를 위해 자녀들을 학교에 보내는 것은 사리에도 맟지 않고 원리(原理)에도 맟지 않는 다는 뜻 입니다.
한국의 등대, 학교무용론(學校無用論)을 펴려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대한민국 공교육(公敎育) 책임 있는 분들 그리고 학부형님들 시대인식(時代認識) 똑 바로 해서 탁월한 동량육성(棟梁育成)에 임해야 한다는 것 입니다.
학부형, 자녀교육 소명(昭明)?
건강한 가정(家庭)이 건강한 국가 사회를 만듭니다. 그리고 건강한 가정의 조건(條件)은 부형(父兄)들이 교육(敎育)을 바르게 이해 하고 인식(認識)하는 것입니다.
속담에 벼농사는 한해 실패 해면 다음 해를 기약 할 수 있지만 자식(子息)농사는 한번 실패 하면 영원히 돌이킬수 없다고 했습니다.
잘 아시다 시피 자식농사 실패는 곧 패가망신(敗家亡身)으로 이여 집니다. 이것은 다름아닌 교육을 바르게 알지 못한 부형 들의 무지(無知)로 오는 것입니다.
바른 자녀 교육을 위한 부형의 역할?
1. 자녀들 소질(素質)과 적성을 발굴 하는것,
2. 자녀들 생활에 방향타(方向舵)가 되는것.
3. 자녀들 학습 의욕(意欲)을 돋구 는것.
4. 자녀들 인성(人性)을 다듬 는것.
대한민국 학부모(學父母)님들은 대체로 자녀(子女)들 인생(人生)과 본인(부모)들의 인생을 구별 할 수 있는 이성적(理性的) 판단력이 없습니다. 그리고 실천력(實遷力)이 없습니다.
가장 두더러진 현상(現狀)은 맹목적(盲目的) 자녀 사랑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은 어머님 쪽에서 그런 경향이 대체로 두더러 집니다.
대한민국 부모님들의 맹목적인 자녀사랑은 결국 자녀들의 인생을 망치게 되고 공교육(公敎育)을 망치게 되며 국가 사회를 망치는 원인이 됩니다.
자녀들이 부모님들의 혈소(血素)로 태어 나는 것은 사실이나 그렇다고 소질이나 적성(適性) 까지 같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자녀들의 인생은 자녀들이 살아 가야 합니다. 부모님들이 자녀들의 인생을 대신 할 수는 없습니다.
부모님들은 자녀들이 타고난 적성과 소질에 따라 살게 해 주어야 합니다. 그기에 개인 최적의 효율성(效率性)이 있고 최대의 생산성이 있습니다. 그리고 삶의 보람과 행복이 있습니다.
뿐만아니라 국가사회적 효율성과 생산성도 다 함께 합니다.
자녀들 소질, 적성, 취향을 발굴하는 일은 부모님들의 가장 중요하고 가장 큰 역할 의 하나 입니다.
세살 버릇 여든 까지 간다는 속언이 있습니다. 성장기 자녀를 둔 부모님들은 항상 언동(言動)과 행동에 각별한 주의가 있으야 합니다.
사람이 태어나 20세 전후를 자아형성기(自我形成期)라 말 합니다. 이때는 감수성과 기억력(記憶力)이 매우 강하고 높아 듣고 본 것 들이 더욱 또렸 하게 두뇌 에 각인(刻印)되고 마음속에 잠재(潛在)되는 것으로 알려저 있습니다.
이것은 곧 일생을 살아가는 정신(精神)바탕이 되는 것입니다. 건강한 정신은 건강한 삶을 이끌게 되며 그릇 된 정신은 그릇 된 삶을 이끌게 됩니다.
성장기 자녀를 가진 부모님들은 일상에서 각별한 언동과 행동으로 자녀들 인격형성에 크게 기여 할 수 있으야 합니다.
청소년들은 순수성(純粹性)과 감수성만 강한 것 같으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호기심(好奇心)과 영웅심이 강하고, 수동적(受動的)인 면만 있는 것 같으 면서 능동적인 면이 있는 아주 예민(銳敏)한 연령층 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때는 일생을 통해 심리상태가 가장 왕성하게 작용 할 것입니다. 그래서 청소년 들은 다루기가 매우 힘든 대상이라 할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반항심(反抗心)을 자극 하지 않는 것입니다.
학습(공부)를 다그치기 보다는 부더러운 분위기 를 조성 해서 학습 의욕을 돋구는 노력이 끈임 없이 이어 져야 합니다.
예를 들면 공부해라, 공부해라, 공부해라, 이런 충동 보다는 건강을 생각 해서 쉬어 가며 하라는 말이 오히려 학습 의욕을 돋구는데 더 주효 할 것이라는 것입니다.
청소년들 학습 의욕을 돋구는 요체는 결코 강요(强要)가 않임을 학부모님 들은 항상 잊지 않아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학부모님들!. 자녀들은 결국 사회인이 되어야 하고 사회생활을 해야 합니다. 그리고 사회는 대단히 각박하고 혹독한 곳 입니다.
자녀들이 온실(溫室)에서 자란 장미가 되게 해서는 안 됩니다. 사회는 온실에서 자란 장미를 받아 줄 온기(溫氣)는 없습니다.
가정에서 부모님들이 해야 할 일은 가정과 사회와의 온도차를 최소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자녀들 가정교육에 있어서 대단히 중요한 부분 입니다.
온실에서 고이 자란 장미는 된 서리를 맞게 되면 얼어서 시들기 때문입니다.
성장기 자녀들, 집안에서 그들의 소망(所望)을 100% 들어주는 것은 온실에서 장미를 키우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자녀들의 소망을 50%만 들어주고 50%는 거절(拒絶)하는 것은 사회 적응력을 키우는것이며 온도차를 줄이는 것입니다.
합당한 거절의 수치(數値)가 높으면 높을 수록 사회 적응력은 그기에 비례해 커지게 됩니다.
이것은 자녀와 부모와의 관계를 돈독히 할 뿐만 아니라 국가 사회적으로도 대단히 바람직한 일이 됩니다.
대한민국 학부모님들, 자녀들 인성(人性)을 바르게하는 것은 자녀들 학습력을 높히는 일일 뿐만 아니라 일생의 최대 업적(業積)이 됩니다.
결론.
학교는 미술, 음악, 무용, 체육 등 의 실습장(實習場)이 되어야 합니다. 그리고 기초과학 실험장(實驗場)이 되어야 합니다.
이것은 장소, 장비, 도구, 지도(指導)등의 필요성 때문에 가정에서 개인적으로는 할 수 없습니다. 그리고 인격도야는 반드시 단체생활을 통해 이루어 져야 합니다.
하지만 지식(知識)을 쌓는 일 만은 혼자서도 얼마 던지 할 수 있는 일 입니다. 대한민국 그런 여건(與件)과 분위기는 충분히 성숙 되어 있습니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학교란 인격도야와 실습도장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며 아울러 인격도야가 주(主)가 되고 학습이 부(副)가 되는 교육을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학교선생님들이나 학부형님들은 어린새싹들 가고싶은 학교, 머물고 싶은 학교를 만드는 일에 다 같이 총력을 기우려야 합니다.
그리고 어린 새싹들 적성과 소질에 걸맟는 지식을 취할수 있도록 방향을 잡아 주는 일에도 다같이 협력 해야 합니다. 지식을 무작이로 주입(注入)시키려 해서는 안 됩니다.
특히 대한민국 여성단체 여러분과 회원 여러분들이 심기일전(心機一轉)해야 합니다. 자녀들 교육에 엄마들의 영향과 역할이 적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만큼 대한민국 공교육 정상화에도 엄마들의 역할은 적지 않은 기여를 할 것입니다.
대한민국 공교육 정상화, 대한민국 선진강국의 길 이며 사교육비(私敎育費)를 줄이는 길 입니다.
2010년9월15일.
한국의 등대, 강무(姜茂)올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