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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써 15년이나 되었네요. 중국계 리안 감독의 무협영화 <와호장룡>이 세계를 뒤흔든지도요. 왕두루의 단편소설 5편 가운데 2편을 각색하여 영화로 옮긴 이 작품은 그 해 아카데미 시상식의 승자이기도 했습니다. 내용은 물론 영상이나 음악까지 하나도 빠지는 것이 없는 이 영화에는 장쯔이가 청명검을 들고 나와 멋진 무술을 보여줍니다. 물론 청명검의 원래 주인은 저우룬파가 분한 리무바이이지만요.
청명검을 들고 멋진 자태를 보여주는 장쯔이의 영화 홍보용 스틸 컷입니다. 검(劍)은 칼입니다. 칼은 칼인데 사진처럼 칼날이 양쪽으로 나 있는 칼을 검이라고 합니다. 중국에서 가장 유명한 검은 아마도 월왕 구천의 검이겠죠. 몇 년 전에 옛날 월나라의 수도였던 지금의 소흥(옛 지명은 회계)의 월왕대에 가본 적이 있는데 마침 문이 닫겨서 구천의 검은 구경하지 못하였습니다. 답사여행시에는 박물관 개관일을 꼼꼼이 챙겨서 가는데 그날은... 관람객이 적다고 일찍 문을 닫은 것입니다. 참 중국이라는 나라는... 농담이긴 하지만 중국을 "차이나"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그런 점이라고 합니다. 정말 우리나라와는 "차이 나"죠. 차이가 나도 한참. 그런데 또 어떤 면에서는 좋은 점도 있습니다. 폐관 시간이 살짝 넘어도 미리 표만 사 두면 또 문을 닫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작년에 서안의 무릉박물관 관람은 그런 이유로 정말 우리 일행만 호젓하게 했던 좋은 기억도 있습니다. 다시 검 이야기로 돌아가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진이 바로 와신상담으로 유명한 월나라 왕 구천의 검입니다. 야금술이 얼마나 발달했는지 손잡이 부분은 현재는 다 없어졌지만 나머지 부분은 생생해서 당장 사용을 해도 될 정도라고 합니다. 이렇게 양쪽에 날이 있는 칼의 경우는 찌르기에는 좋지만 베는 쪽으로는 상당히 효율성이 떨어지게 됩니다. 날을 양쪽에 두면 두께가 얇아지게 되고, 두께가 얇으면 무게를 많이 실을 수가 없어서 살상력이 떨어지기 때문이지요. 살상력이 떨어지는 무기는 많은 적을 죽여야 이기게 되는 전투에서는 사살상 효율성이 떨어지는 무기인 셈이지요. 위 <와호장룡>에 나오는 청명검은 심지어 휘기까지 하지요. 이 검자는 금문대전에 처음 등장을 하는데 처음부터 형성자였습니다. 그래서 문자를 가지고 설명 드릴 것은 없지요. 「칼 검」(劍)자의 금문대전-소전 「칼 검」(劍)자는 첨(僉)자를 음소인 성부로 삼습니다. 뜻과 관련된 형체소에는 금문대전에서는 검의 재료가 되는 금(金)을 쓰다가 소전부터 칼(刀, 刂)을 쓰고 있습니다. 군인들이 쓰는 휴대용 단검입니다. 이를 줄여서 대검(帶劍)이라고 하지요. 위에서 말했던 것처럼 검은 찌르기에서 장점을 발휘할 수 있는 무기입니다. 주로 총의 앞쪽(총구)에 꽂아서 백병전에서 사용할 수 있도룩 고안한 무기이지요. 첨단 무기가 발달한 현대의 전투에서도 여전히 유용한 무기인 셈입니다. 이 칼은 정식 명칭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데 역시 대검의 일종이겠죠. 그러나 우리는 정식 명칭보다는 주로 「람보칼」이라는 이름을 씁니다. 찌르고 베고 철조망을 자르는가 하면, 자루쪽에는 나침반과 찢어진 피부를 꿰멜 수 있는 간단한 수술 도구(?)까지 들어 있습니다. 이 칼을 람보칼로 부르는 이유는 특공대원이었던 람보가 활약한 영화 <람보>라는 영화를 통해서 거의 처음으로 세계적으로 알려졌기 때문이지요. 이 영화의 원래 제목은 <First blood>이며 2편부터 부제처럼 사용되었습니다. 그러나 이 칼은 엄격하게 말하면 칼 날이 양쪽에 있지 않으므로 검이라는 말을 쓰기에는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 칼은 모양이 오히려 다음 사진의 칼을 닮았죠. 칼날이 한쪽에 있는... 옛날의 칼은 위와 같이 생겼습니다. 이 칼 모양을 본뜬 화폐도 있을만큼 옛날에는 중요한 물건이었습니다. 이 칼은 길이가 약 135cm쯤 되며 요즘의 칼과는 반대로 날쪽으로 휘어져 있습니다. 옛날 가축 도살용 칼이 이렇게 생겼지요. 프랜시스 코폴라 감독이 조지프 콘래드의 <어둠의 심연>을 베트남전에 적용하여 찍은 영화 <지옥의 묵시록>에서 윌라드 대위가 소를 죽일 때 쓰는 칼도 이 모양을 닮았습니다. 이렇게 칼날이 한쪽에만 있는 것을 도(刀)라고 합니다. 그러니 위의 람보칼은 대도(帶刀)라고 하는 것이 옳겠지요. 「칼 도」(刀)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검과 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칼의 너비와 무게에 있습니다. 도는 검에 비해 너비를 필요한만큼 얼마든지 늘릴 수가 있고 또 한쪽에는 날이 없으므로 무게를 실을 수가 있다는 것이지요. 위 주방에서 쓰는 칼은 너비가 상당하고 위로 올라갈수록 두께가 조금씩 넓어집니다. 칼에 무게를 주기 위해서입니다. 대부분의 중국 식칼은 모양이 저런데 육식 위주의 식사를 하려면 육류 요리에 편하기 때문이겠지요. 아마 파나 웬만한 야채 같은 것은 그냥 놓기만해도 잘려질 것입니다. 무기로 쓰는 도 가운데 가장 유명한 것은 아마 『삼국지』에서 관우가 썼던 청룡언월도가 아닌가 합니다. 청룡언월도의 모습입니다. 손잡이와 칼을 연결하는 부분에 용의 머리가 있기 때문에 이렇게 부릅니다. 마치 용이 칼을 뱉고 있는 형상이지요. 언월(偃月)은 「누운 달」이라는 뜻인데 곧 비스듬히 누운 반달 모양이라는 뜻이지요. 그러니까 언월도는 한쪽이 배가 부른 형태의 한쪽만 날이 있는 칼이라는 뜻입니다. 관우의 청룡언월도는 무게가 무려 82근(斤)이라고 하는데 요즘의 도량형으로 환산하면 무려 49.2kg에 달합니다. 이 정도면 웬만한 여성 한 사람의 무게에 해당하는 칼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적을 무찔렀다는 것인데 실감이 나지 않습니다. 실제 당시의 도량형을 가지고 환산하면 20kg 정도 되었다고 하는데 그래도 믿음이 가지 않는 것은 사실입니다. 다만 관우가 그랬다니까 눈 딱감고 믿어주는 것입니다. 그런 면에서 보면 예나 지금이나 브랜드 파워는 똑같은 것 같습니다. 검과 달리 칼날이 한쪽에 밖에 없는 무기여서 어느쪽에 날이 있는지를 알려주는 글자가 필요했을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칼날 인」(刃)자입니다. 「칼날 인」(刃)자의 갑골문-금문대전-소전 옛날 칼 모양에서 왼쪽 방향으로 칼날이 있다는 지사부호를 첨가한 글자입니다. 당연히 지사문자로 분류되고, 현재 이 글자는 단독으로는 사실상 거의 쓰이지 않습니다. 「참을 인」(忍)자나 「알 인」(認), 「질길 인」(靭)자 같이 형성자의 음소로 쓰이는 것이 보통입니다. 먼저 수박의 꼭지를 잘라내고 칼로 조심스럽게 가르는 중이네요. 이런 동작이 끝이 나면 아마 다음과 같은 모양이 되겠지요. 과일은 바뀌었어도 결과는 저렇게 되겠지요. 자몽인 것 같습니다. 저렇게 칼을 가지고 과일이나 물체를 나누어 분리시키는 모습을 나타낸 한자가 바로 「나눌 분」(分)자입니다. 수박을 자르는 칼이나 자몽을 자르는 칼이나 모두 칼날이 한쪽에만 있습니다. 사진의 자몽 같은 과일을 베거나 깍는 칼을 과도(果刀)라고 합니다. 과도가 양날이라면? 상상만 해도 많이 불편하겠죠?. 「나눌 분」(分)자에 들어가는 글자도 「칼 도」(刀)자입니다. 용도에 따라 사용하는 글자가 엄격히 구분되어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나눌 분」(分)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중간에 칼이 있고 양쪽 옆으로 칼에 의하여 분리된 물건을 표시하였습니다. 이렇게 물건을 자를 용도로 쓰는 칼은 잘들수록 그 효용성이 뛰어날 것입니다. 농부가 한 해의 농사를 마무리짓고 있는 모습이네요. 지금은 거의가 기계영농을 합니다만 옛날에는 저렇게 일일이 낫으로 벼를 베어야 했습니다. 벼베기를 하고 타작을 하는 날은 집안의 잔치날이나 다름없이 분주하고 들뜬 분위기가 났던 기억이 있습니다. 저렇게 낫 같은 농기구로 벼를 베는 모습을 나타낸 한자는 「이로울 리」(利)자입니다. 「이로울 리」(利)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지금 쓰는 「이로울 리」(利)자는 갑골문과 같은 형태입니다만 금문과 금문대전을 보면 낫(칼)이 얼마나 잘 드는지 벼이삭이나 볏짚이 그냥 후두둑 하고 떨어지는 모습이 점으로 표현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이 글자의 첫 번째 뜻은 날카롭다는 뜻입니다. 예리(銳利)함이 첫째 뜻인 것이지요. 이런 날카로고 효율이 뛰어난 농기구는 분명 농사를 짓는데 상당히 유리하였겠지요. 그래서 이롭다는 뜻이 파생되었습니다. 우리가 대표훈으로 알고 쓰는 「이롭다」는 뜻은 사실 농사에 이로움을 주는 예리한 농기구에 파생된 두 번째 뜻인 것이지요. 그리고 이렇게 해서 생겨난 것이 바로 이익(利益)이겠지요. 한자는 이렇게 상형자에서 출발하여 회의자가 생겨나고 형성자로 발전을 합니다. 그리고 가차나 전주를 통하여 음만 같거나 유사한 뜻을 꺼내 쓰기도 합니다. 그렇게 한 글자에서 파생되고 인신되다가 나중에는 이마저도 여의치 않게 되자 복음사(複音詞: 두 음절 이상으로 구성된 단어)화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한자가 분화 발전하는 과정입니다. 가위로 옷감을 마르고 있네요. 저렇게 옷감을 자르는 이유는 옷을 만들기 위해서이겠지요. 가위는 한자로 전(剪)이라고 하는데 자른다는 의미도 함께 지니고 있으며, 자전에서 찾으려면 「칼 도」(刀)부에 가서 찾아야 합니다. 더 나아가서 광의적으로 볼 때 가위도 칼인 것이지요. 더우기 옛날 중국에서는 가위의 한쪽 날만 있는 칼도 있었습니다. 바로 위의 사진이 가위의 한쪽 날만 있는 형태의 칼인데 당연히 가위를 분해해서 얻은 것이 아닙니다. 저 칼은 주로 옛날의 지체 높은 사람들이 편지를 뜯어보는 용도로 썼던 "칼"입니다. 아마 더 옛날에는 옷감도 저런 칼로 잘랐을 것입니다. 「처음 초」(初)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한자 「처음 초」(初)자는 「옷 의」(衣)자 옆에 칼도방(刂)을 쓴 글자입니다. 옷을 만들기 위해 칼로 옷감을 재단하는 모양에서 나온 한자입니다. 옷을 만들기 위해서 제일 "처음" 해야 할 일은 칼(가위)로 옷감을 자르는 일이라는 것이지요. 그래서 이 한자는 「비로소 시」(始)자와도 뜻이 통하는 글자입니다. 카르투지오 수사들이 생활하는 수도원의 모습을 기록한 영화 <위대한 침묵>은 인위적인 조명도 없고 음향효과나 음악도 없으며 심지어 기록영화임에도 나레이션조차 없습니다. 수도원에 새로운 수사 지망자가 옵니다. 그러면 옷 담당 수사가 두터운 흰색 천을 가위로 자르죠. "써걱써걱" 소리가 크게만 들립니다. 새 옷을 만들기 위해 옷감을 마르는 것인데 이로부터 수사의 길이 비로소 시작되는 것이지요. 얼마 전에 아카데미 시상식이 있었습니다. 올해의 승자는 <버드맨>이라죠.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개봉을 하지 않았습니다만 개봉을 하면 한번 보러가야겠습니다. 그러나 아카데미에서 최고의 성적을 기록한 영화는 <반지의 제왕>입니다. 제3편 <왕의 귀환>은 11개 부문에 노미네이트되었는데 전부문에서 수상을 하였지요. 노미네이션 전부문 수상작 중에서 가장 많은 수상 기록을 가지고 있는데 이는 <벤허>나 <타이타닉도> 해내지 못한 기록입니다. 사진은 그 영화의 한 장면인데 주인공의 하나인 아라곤의 조상들이 부러뜨린 칼이 나옵니다. "안두릴"이라고 한다는데 물론 나중에는 복원하여 다시 사용하게 됩니다만 저렇게 칼이 부러지면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부러진 칼을 문자로 표현한 것이 바로 「망할 망」(亡)자입니다. 「망할 망」(亡)자의 갑골문-금문-금문대전-소전 칼 날 부분이 망가졌음을 나타낸 것입니다. 망가져서 쓸모가 없으면 버려두고 없는 것으로 치부했기 때문에 「없다」는 뜻이 생겨나기도 했는데 이때는 음이 「무」가 됩니다. 나중에 쓸모없다는 뜻을 포함하는 수많은 글자의 음소가 되기도 합니다. |
첫댓글 감사합니다.
갈수록 흥미진진 한데요.
亡 - 부러진 칼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