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요일 - 샬롬 가톨릭] 주교회의 배봉한 부장님과!
올가을 단풍은,
설악산에서부터 시작된 게 아니라,
이분의 감성에서부터 시작되지 않았을까?
<행복을 여는 아침>의 대체불가~ 낭만담당이시죠?
우리들의 봉부장님! 한국 주교회의 배봉한 부장님과 함께 한 샬롬 가톨릭입니다!
* 한 주 동안의 행복가족들의 사진도 공유합니다 ◡̈
샬롬, 가톨릭 2018.10.6.(44회)
시월의 첫 주말입니다. 부장님 탓인지 ‘시월’ 하면 전교의 달, 묵주기도성월이 떠올라야 할 텐데 오늘은 시월이 ‘시의 달’ 시월(詩月)로 읽히네요.
▶ 네. 책읽지가 시읽지까지 겸업하시면 저는 이 자리 떠나야 할 듯합니다. 매미 소리도 사라진 지금, 300일 넘게 서울 목동의 열병합발전소 굴뚝에서 고공 농성을 하고 있는 파인텍 해고 노동자를 비롯해 한뎃잠을 자는 분들을 생각하면 서늘해진 가을이 기쁘지만은 않습니다. 현실은 힘들어도 시로 위로와 용기를 전하고 싶습니다. “매미가 운다. 매미도 운다.”고 지디가 하이쿠 같은 시를 선사한 대한문 쌍용차 해고 노동자들의 복직 협상 소식을 전했듯, 겨울이 오기 전에 기쁜 소식이 더 많이 들렸으면 좋겠습니다.
이번 가을에는 덕수궁 돌담길을 편안한 마음으로 걸으며 이런 노래를 흥얼거려 보고 싶네요. “이제 모두 세월 따라 흔적도 없이 변하였지만 덕수궁 돌담길엔 아직 남아 있어요, 다정히 걸어가는 연인들~.”
▶ 네. ‘광화문 연가’ 좋은 노래지요. “언젠가는 우리 모두 세월을 따라 떠나가지만 언덕 밑 정동길엔 아직 남아있어요, 눈덮힌 조그만 교회당~.” 행복을 여는 아침 팀들과 함께 겨울 전에 그런 여유를 누릴 수 있을까요?
바쁘지만 자리를 한번 마련해야겠죠. 지난 주 토요일 부장님이 가톨릭 신앙학교 수료생들과 경춘선을 타고 김유정문학촌으로 가을 소풍을 가던 날, 남이섬으로 가신다고 빵톡을 남긴 청취자도 계셨는데, 소풍 잘 다녀오셨나요?
▶ 네. 즐겁게 잘 다녀왔습니다. 30세에 폐결핵으로 요절한 소설가 김유정의 생가와 문학관을 둘러보며, 닭 서른 마리만 고아 먹으면 내 병이 나을 듯하다고 친구에게 돈 100원을 융통해 달라고 쓴 마지막 편지를 읽으면서, 마음이 아렸습니다. 1930년대 작가가 활동하던 그 시절에 비하면 지금은 풍요롭기 그지없는 때라 이제 단풍놀이 이야기도 나오지요. 이번 주 남해안은 태풍 콩레이로 인한 강풍과 비 피해가 예상된다고 하니 다들 조심하시면 좋겠습니다.
김유정은 당대 명창 박녹주를 사모하여 학교 결석이 잦아 연희전문 입학 두 달 만에 제적을 당했다던데, 그 이후 소설가의 길을 걸었다니 다행이라고 해야 하나요? 실레마을 공소로도 유명한 김유정문학촌 근처에는 닭갈비집이 즐비한데, 가난했던 소설가 한 사람이 그 동네 사람들을 먹여 살리고 있으니, 아이러니라고 해야 하나요?
▶ 김유정 작가는 닭 서른 마리만 고아 먹었으면 살아날 텐데 했는데, 동네에 숯불닭갈비 연기가 가득하니 격세지감이라고 해야 할까요? 명창 박녹주를 열렬히 사모한 드라마 같은 이야기도 남아 있던데요. “어차피 피었다 질 꽃이면 제일 뜨거운 불꽃이고 싶었다.”는 낭만과 격변의 시대를 그린 텔레비전 인기 드라마가 지난 달 말에 끝났죠. “나도 그렇소. 나도 꽃으로 살고 있소. 다만 나는 불꽃이오.”라는 여주인공의 명대사도 멋지던데, 저는 순교자성월 마지막 날인 주일에도, 불꽃같은 삶을 살다간 우리 순교자들을 잊고 희희낙락한 듯하여 죄스럽기도 했습니다.
주일은 부활의 날, 기쁜 날 아닙니까? 암 투병을 하는 후배 기자를 위해 식사를 겸한 후원의 자리를 마련하셨다던데, 희희낙락만은 아닐 듯합니다.
▶ 사랑의 사칙 연산이라고 있지요. “기쁨은 더하고, 슬픔은 빼고, 사랑은 곱하고, 아픔은 나눈다.”는 건대요. 선배가 하는 횟집에서 병자들을 기억하며 미사를 드리고 점심을 먹으며 반주를 곁들였더니, 서로의 얼굴을 보며 “오매 단풍 들것네.” 하는 김영랑의 시가 저절로 나올 정도였습니다. 산에도 단풍이 물드는 철이니 플라타너스 낙엽 한 장이면 가릴 얼굴에 단풍 든다고 누가 뭐라 하겠습니까만 저물녘까지 자리가 이어졌습니다.
바쁘게 움직이며 사시는군요. 10월은 묵주기도성월이고 전교의 달인데, 프란치스코 교황님이 전 세계 모든 신자에게, 10월 묵주기도성월 동안 날마다 교회를 악마에게서 보호하기 위한 묵주기도를 바치자고 하셨는데, 술 좋아하시는 분들도 맥주신공은 물론 묵주신공, 묵주기도도 잊지 않으시면 좋겠습니다.
▶ 묵주는 몇 개가 되는데 우리 어머니처럼 열심히 기도를 드리지 못해 주님 보시기에 죄송할 따름입니다. 성인들은 영적 투쟁의 순간에 ‘성모님께 보호를 청하는 기도’를 바치셨다고 하는데, 저도 참 좋아하는 기도입니다. “천주의 성모님, 당신의 보호에 저희를 맡기오니, 어려울 때에 저희의 간절한 기도를 외면하지 마시고, 항상 모든 위험에서 저희를 구하소서. 영화롭고 복되신 동정녀시여.”
위험에 처해서야 기도를 드리고, 청원기도는 자주 하되 감사기도는 잊고, 다급해지면 다시 청원기도를 하는 게 우리네 모습인지도 모르겠습니다.
▶ 3일 개천절에 독일에서 암으로 세상을 떠난 허수경 시인의 시 ‘혼자 가는 먼 집’이란 시에 이런 구절이 있더군요. “당신…, 당신이라는 말 참 좋지요,/ 그래서 불러봅니다/ 킥킥거리며/ 한때 적요로움의 울음이 있었던 때,// 한 슬픔이 문을 닫으면/ 또 한 슬픔이 문을 여는 것을/ 이만큼 살아옴의 상처에 기대, 나 킥킥……,/ 당신을 부릅니다.”
슬픔을 더해 주는 웃음 같기도 하고 울음 같기도 한 ‘킥킥’이라는 의성어가 다가오네요. 허수경 시인은 개인적으로 아시는 분인가요?
▶ 아닙니다. 언론 보도에 따르면, 1964년 진주 출생으로 고대근동고고학 박사라고 하던데요. 허수경 시인은 독일에서 이방인으로 생활하면서 느낀 고독과 쓸쓸함을 누구보다 잘 아는 사람이기 때문에, 사회적 약자에 대한 관심을 드러내며 동화 같은 꿈을 꾸기도 했답니다.
1964년생이면 55세로 선종하셨군요. ‘동화 같은 꿈’이 어떤 거였나요?
▶ 허수경 시인은 “앞으로의 소망이 있다면 젊은 시인들과 젊은 노점상들과 젊은 노동자들에게 아부하는 세상에서 살아가는 것”이라고 했다는데, 이것은 “따뜻하게 사랑하며 살자.”는 의미라며, “앞으로 어린 세대들은 부가 집중되며 분배 문제가 세계적인 문제가 된다는데, 동화 같은 이야기지만 약자들의 편을 드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꿈을 꾼다.”고 말했답니다.
앞서 고공 농성을 하는 해고 노동자 이야기를 하셨는데, “약자들의 편을 드는 사회에서 살아가는 꿈”을 꾼 시인의 소망이 꼭 이루어지면 좋겠습니다.
▶ 이번 주 가톨릭평화신문은 1면 머리기사로 가톨릭 환경 대상을 수상한 백화마을에 관한 소식을 실었고, 가톨릭신문은 교황청과 중국이 주교 임명에 합의했다는 소식을 실었던데요. 뉴스를 통해 이미 들으셨을 듯합니다. 저는 사회적 약자에 다시 눈을 돌리게 해 준, 가톨릭신문 ‘신앙인의 눈’ 칼럼에 김형태 요한 변호사가 쓴 “내 친구 명훈이”라는 글이 큰 울림으로 다가왔습니다.
내일 자 신문이지요. 저는 미리 챙겨 읽지 못했는데, 소개해 주시죠.
▶ 요즘 착한 사람들이 정신적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은데요. 먼 옛날 예수님을 따라다니던 사람들은 잘난 사람들이 아니었잖습니까? 김형태 변호사의 칼럼은 늘 ‘헤헤헤’ 하고 사람 좋은 웃음을 달고 다니던 친구 명훈이에 관한 추억담이었습니다. 친구는 미국서 학위를 받고 돌아와 결혼도 했고 대학에서 얼마 동안 강의도 했는데, 어쩌다 정신이상이 생겼다고 합니다.
저런, 배울 만큼 배운 사람이 어쩌다가 그렇게 되었을까요?
▶ 글쎄요. 친구는 정신지체장애인인 동생과 굴속 같은 집에서 길거리에 버린 음식을 주워 먹고 살면서, “길고양이가 내 경쟁자야. 헤헤헤.” 하는 소리도 했답니다. 차비 좀 빌려달라며 미국 대통령이 큰돈을 보내 주기로 했으니 그때 갚겠다던 친구네 집을 찾아갔는데, 동굴 같은 집에서 주워온 사과를 먹으라고 건네주며 웃더랍니다. 친구는 주운 음식을 집 없는 개나 고양이와 나누고 헌옷을 주워와 한겨울 추위에 떠는 노숙자에게 나눠주기도 하고 교회도 빠짐없이 나갔는데, 올봄에 세상을 떠났답니다. 정신지체 동생에게 뭐 도와줄 거 없냐고 하자 형처럼 헤헤헤 웃으며 “저는 괜찮아요. 저는 괜찮아요.” 하더랍니다.
안타깝고 감동적인 사연이군요. 예수님은 강하고 똑똑한 사람이 아니라 정말 보잘것없어 보이는 착하고 가난한 사람들의 친구인데 우린 그들을 잊고 살죠.
▶ 사형제 폐지 운동에도 앞장서고 있는 김형태 변호사는, “세상은 강하고 똑똑하다는 이들이 남들을 괴롭히면서도 떵떵거리고 잘사는 걸 보면서 하느님의 섭리는 어디에 있는 건가 의문이 들기도 한다.”고 고백하던데요. 저 역시 하느님의 섭리가 무엇인지 교회의 역할이 무엇인지 다시금 생각해 보게 했습니다.
이번 주일은 군인주일이죠. “아무리 비싼 명품 시계라도 1초의 길이는 같다.”는 말이 있던데요. 누구에게나 소중한 젊음의 시간을 국방의 의무에 바친 군인들과 군 사목에 종사하는 군종신부들을 위해 기도하고 헌금을 하는 주일이죠.
▶ 네. 한국 교회는 1968년부터 10월 첫 주일을 군인주일로 지내는데, 올해가 50주년이네요. 군종교구는 사목 영역이 가장 광범위해서 그만큼 어려움이 많습니다. 100명 정도의 군종신부님들이 있는데, 우리 아들딸을 돕는다고 생각하시고, 이번 주에는 그분들의 호소에 마음을 움직이시면 좋겠습니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오늘은 시 한 편 제대로 다 읽지 못했네요. 10월의 첫 주에 우리 귀에 들려주실 계절감 충만한 감미로운 시가 있으시겠지요?
▶ 네. “어제 우리가 함께 사랑하던 자리에/ 오늘 가을비가 내립니다.” 도종환 진길 아우구스티노 시인의 ‘가을비’도 떠오르지만, 오늘은 “귀가 서럽다”는 이대흠 시인의 시를 소개하고 싶습니다.
“강물은 이미 지나온 곳으로 가지 않나니/ 또 한 해가 갈 것 같은 시월쯤이면/ 문득 나는 눈시울이 붉어지네/ 사랑했던가 아팠던가/ 목숨을 걸고 고백했던 시절도 지나고/ 지금은 다만/ 세상으로 내가 아픈 시절/ 저녁은 빨리 오고/ 슬픔을 아는 자는 황혼을 보네/ 울혈 든 데 많은 하늘에서/ 가는 실 같은 바람이 불어오느니/ 국화꽃 그림자가 창에 어리고/ 향기는 번져 노을이 스네/ 꽃 같은 잎 같은 뿌리 같은/ 인연들을 생각하거니/ 귀가 서럽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