닫히지 않는 입술처럼 / 송종규
꿈속에서 본 사람의 얼굴은 빛들의 얼룩으로 눈부셨지만 슬픔으로 터질 듯 보이기도 했지만 사실은 오래된 액자였던 거 같기도 하다
넓은 들판에 사과나무가 있었는데 어쩌면 그것은 커다란 접시였던 거 같기도 하고 풍차였던 거 같기도 하다 꿈속에서는 공원의 벤치들이 햇빛을 받고 있는 여름 한낮이었는데 아버지는 두꺼운 외투를 걸치고 나가셨다
방울토마토가 바구니 안에 소복한 꿈을 꾸었는데 그것은 햇살에 익어가는 맨드라미, 아니면 먼 바다 기슭의 하얀 포말이었던 거 같기도 하다
꿈속에서 본 풍경들은 자주자주 엉뚱한 방식으로 진화하거나 번져나간다. 마치 뜨거운 마가린처럼 녹아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기도 하는 그것은, 기억이나 환영 같은 거
나는 꿈꾸는 구름
시간의 지층이 삐끗했거나 기억의 오류이거나 잘못 연결된 코드처럼
나는 불완전한 문장이다
영원이라고 발음하면 닫히지 않는 입술처럼
모든 구름에는 물기가 묻어있다
송종규, 계간 ≪문파≫ 2020년 가을호
꿈꾸는 사람은 슬픈 사람이다. 현실이 만족스럽거나 그가 부유하거나 그의 성향이 지독한 나르시시스트이거나 한 사람은 먼 곳을 그리워하지 않는다. 그의 관심사는 오직 그와 그의 가족이다. 매일의 일상이다.
어떤 식으로든 결핍은 그 결핍을 충족시킬 수 있는, “구름”을 필요로 한다. 꿈꾸는 사람들의 안식처는 허공중인지도 모른다. 그들은 아지랑이처럼 붙잡을 수 없는 것을 꿈꾼다. “풍차” 같은 것. 뜨거운 “햇살에 익어가는 맨드라미” 같은 것. “먼 바다 기슭의 하얀 포말” 같은 것.“마치 뜨거운 마가린처럼 녹아서 형체도 없이 사라지” 는 것. “기억이나 환영 같은” 것들…. 그것들은 확실한 실체가 없는 것이어서, 보이는 사람들의 눈에만 존재하는 “구름”이다. 그래서 너는 나에게 뜬구름 잡는 소리 그만하라는 볼멘 말을 하곤 했던 것일까.
꿈꾸는 사람들은 자신을 부풀리지 않는다. 누구보다 자신을 잘 아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보라, 꿈꾸는 사람으로서의 시인은 자신을 이렇게 고백한다.
“나는 꿈꾸는 구름/ 시간의 지층이 삐끗했거나 기억의 오류이거나 잘못 연결된 코드처럼/ 나는 불완전한 문장이다” 이런 솔직한 자기 고백을 나는 정치인이나 소위 잘나가는 유명인사들에게서 들어본 적이 없다.
세상은 꿈꾸는 사람들의 “물기”로 극심한 가뭄에 물꼬를 대고 있다. 내가 방금 내린 정수기의 차가운 물 한 잔도 꿈꾸는 사람들의 “구름” 한 잔이다. “영원이라고 발음하면 닫히지 않는 입술처럼”, 세상의 “모든 구름에는 물기가 묻어있다”. (홍수연)
< 송종규 시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