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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마인가 봅니다.
새벽부터 내리는 비는 그칠 줄을 모릅니다.
어린 시절, 이런 날에는 으례 부침개에 막걸리를 드시는 아버지 옆에
앉아 잠시 자리를 비운 사이 훔쳐 마시던 막걸이가 월매나 맛있던지...
월매는 춘향이 엄마입니다.(조금 썰렁한 유머죠??)
월매도 비오는 날, 옥에 갇혀 있는 춘향이 생각에 한 잔, 딸 팔자 뒤웅박 맹글어 놓고
한양으로 토낀 몽룡이 원망에 한 잔 했겠지요.
1955년, 이규환 감독의 ‘춘향전’은 서울관객 18만명을 기록했습니다.
당시 영화관람료는 40원이었습니다.
1961년, 신상옥 감독 최은희 주연의 ‘성춘향’은 74일이라는 놀라운 상영일에 서울관객
36만명의 기록을 세웁니다. 당시 관람료는 55원. 서울인구가 240만 명 쯤 되었으니
서울사람 중 15%는 본 셈이죠.그 후로도 ‘춘향전’은 많은 감독들과 행세깨나 하는 배우들의 출연으로 영화,
드라마로 계속 만들어집니다. 뭐 ! 내용은 비슷비슷 하지요.
임권택 감독은 2000년 ‘춘향뎐’을 만듭니다.
그는 과거 선배, 동료 감독이 만들어 온 ‘춘향전’에 판소리를 더합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판소리라는 우리 고유 예술 장르가 주가 되고 영화는 종이
되는 ‘춘향전’을 만듭니다. 임권택 감독이 판소리에 관심을 가진 것은 ‘서편제’ 부터이지요.
헌데 ‘서편제’는 임 감독이 오래전부터 준비해온 작품은 아니고, ‘태백산맥’을 하기 위해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너무 쉬는 거 같아 간단한 소품 영화 하나 만든다는 것이 대박을 친 경우입니다.
임권택 감독은 태흥영화사(이태원 사장)에 ‘장군의 아들1,2,3 (1990-1992)로 많은 돈을 벌게 해 주었는데
이는 죽기 전에 ’태백산맥‘을 만들고픈 임권택 감독의 소원 때문입니다.
당시 시대적으로 민감한 ‘태백산맥’의 영화화가 늦어지자, 이태원 사장이 10억을 주면서
“임 감독 ! 태백산맥 들어가려면 시간이 좀 필요할 것 같으니 흥행 신경 쓰지 말고 그냥 한 편 만들어. 노느니 뭐해” 해서
만든 것이 이청준 원작의 ‘서편제’입니다.
참 ! 영화흥행은 귀신도 모른다더니 그냥 쉬는 김에 한 편, 손님 들든 말든 관계없이 소품영화 만든 것이
서울관객 100만이 넘었으니 영화흥행은 알다가도 모르는 것이죠.
당시 ‘서편제’는 단성사 극장 한 곳에서만 100만이 들었는데, 두 번 본 사람이 20만은 되어야 나오는 수치입니다.
임권택 감독은 ‘서편제’ 헌팅 때문에 배우 김명곤과 전남 해남에 갔는데 김명곤이 차 안에서
명창 조상현의 ‘춘향전’ 완창(4시간 30분)을 틀어 주었고 이를 들은 임 감독은 “이거 만들어야 되는데”
했답니다.
그 인연으로 판소리를 정식으로 공부했고 판소리 책까지 낸 김명곤(前국립극장장, 문화부장관)은
‘춘향뎐’의 시나리오를 쓰게 됩니다.
1962년 ‘두만강아 잘있거라’로 감독을 시작한지 40년 후인 2000년,
한 번도 시도된 적이 없는 판소리 뮤지컬 ‘춘향뎐’은 서구적 영화문법을 훌훌 털어내고
모든 형식적 규율을 새로 시작한 미학적 도전이기에 비록 서울 관객 4만명의 초라한 관객을 동원했지만
임권택 감독의 마지막 걸작이자 실험영화입니다.
知好樂이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을 실험영화라고 한 것은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입니다.
영상으로 소리의 감흥을 극대화한다는 것은 소리와 영상이 서로의 장르를 해치지 말고 어울려
가야 한다는 것이고, 소리판과 극을 오가면서 만든다는 것은 따로 국밥이 될 수도 있기에
기존의 영화문법과는 너무 다릅니다. 평생 온전한 이야기체 영화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66세의 老 감독이
판소리보다 더 판소리 같은 영화, 대사도 동작도 리듬도 판소리 같은 영화를 만든다는 것은 굉장한 미학적 도전이고
아차하면 추락하는 모험이기 때문입니다.
시나리오 작업부터가 녹녹치 않습니다.
4시간 30분의 춘향가 완창을 매일 들으며 이야기 구조를 만들고 대사를 만들고 넣을 것과
뺄 것을 정해 2시간으로 압축해야 하는 작업이 일반 시나리오 작업과는 많이 다릅니다.
모든 대사가 판소리 리듬에 맞게 되어야 소리를 해치지 않으니 쉽지 않은 작업입니다.
시나리오도 시나리오거니와 더 문제는 판소리를 영상과 어떻게 정확하게 결합하느냐입니다.
정일성 촬영감독의 연출부는 판소리를 어절별로 끊어 0.1초 단위까지 계산하여 맞춰보는 쪽으로
작업을 합니다. 이렇게 하지 않으면 영상과 소리의 리듬을 일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보통 이런 일은 영화현장의 스크립터가 하는데 ‘춘향뎐’의 스크립터는 아마도 귀명창이 되었을 것입니다.
자 ! 이제 ‘춘향뎐’의 장면으로 들어가 봅시다.
광한루에서 방자가 춘향을 부르러 뛰어가는 장면 촬영입니다.
방자 역의 김학용은 갖가지 종류의 ‘춘향전’에서 최고의 방자로 평가 받는 창극계의 전문 배우입니다.
그러니 소리에 귀도 몸도 트인 인물이라 걸음걸이부터 몸동작 하나하나가 소리와 맞아 들어갑니다.
그럼 이제 이 장면을 어떻게 찍어 소리와 결합하느냐가 남았습니다.
한 박자 한 박자까지 나눠서 리듬감을 살릴 것인가?. 아니면 길게 잡아 동선의 흐름을
살릴 것인가?. 일단 다양한 앵글과 길이로 다양하게 전체를 찍어둡니다.
다음은 방자장면을 잘게 나누어 역시 많이 찍습니다.
당연히 소리의 장단과 리듬에 맞춰 촬영해야 하기에 소리는 계속 틀어 논 상태에서 찍습니다.
여기서 방자를 잘게 찍는 다는 의미는 엄청나게 세세하게 찍는 것을 의미합니다.
방자가 춘향의 그네까지 돌다리를 건너는 장면이므로 방자의 발 매무새, 발목움직임,
무릎이 굽혀지는 부분, 손동작, 상체 부분, 클로즈 업, Full Shot, 배경이 포함된 장면 등등, 또한 이러한 장면을 길이도
다양하게 찍어야 하니 방자는 며칠을 뛰어야 했습니다.
시험편집 과정에서 이렇게 찍은 장면을 0.1초 단위로 맞추어 편집하는 것입니다.
만일 편집 결과가 만족스럽지 못하다면 다른 방법을 또 써보는 식이지요.
다음은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로 시작되는 사랑가 장면.
사랑가는 춘향가 중 가장 잘 알려진 대목이지만 영화장면으로 표현하는 데에 있어서는
그리 간단한 대목이 아닙니다.. ‘5, 6일이 지나니 두 남녀는 부끄럼을 잊고…. 서로의 몸을 알게 된
어린 남녀는 이제 수줍음을 버리고 서로 수작하다가 병풍 뒤로 들어가 옷을 벗어던지고 몸을 맞대야한다’는 것인데
문제는 전 과정에 소리가 흐르고 모든 동작이 한 컷에 담겨야 한다는 것이지요.
3분 가까이 한 호흡(Take)으로 소리의 리듬을 타는 고도(?)의 사랑놀이입니다.
이 부분을 촬영할 즈음에는 소리와 영상을 결합하는 어려운 문제는 어느 정도 풀어간
상태라 조금 편안하게 가나 싶었는데 연기자 쪽에서 태클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춘향뎐’의 이몽룡은 조승우, 성춘향은 이효정.
둘 다 영화를 처음 찍는 신인 배우. 일반 이야기체 영화라도 긴장 할 텐데 이건 판소리
리듬을 타면서 연기를 해야 하니 지금이야 톱 스타지만 당시 조승우에게는 힘들었을 테죠.
경험이 없는 16살 소년이 어떻게 능청맞게 여자의 몸을 희롱할 수 있엇겠습니까?
원래 임권택 감독은 연기자가 조금 잘못을 해도 조근조근 설명하고 타이르는 스타일이고
현장에서 화내는 법이 없는 감독인데 이틀 동안 한 장면도 못 찍고 있었으니 폭발한 것은 당연하겠지요.
“니네 어리광을 언제까지 받아줘야 하냐. 니들 때문에 모든 스탭들이 이틀 동안 한 장면도 못 찍고 있잖아.
슬쩍 만지나 세게 만지나 그게 무슨 차이야.” 라는 호통을 듣고 완성한 장면입니다.
십장가 장면(춘향이 곤장 맞는 장면)
보통 영화는 연기자의 마음을 쫒아가면서 찍습니다.
이런저런 장치를 장면 속에 깔아 놓고 연기자의 심리를 표현하지요.
판소리는 판소리 자체가 인물의 감정을 워낙 충실히 전달합니다.
특별한 심리묘사가 필요 없는 것이지요. 그러니 감독으로서는 표현방법에서 어느 하나는
죽이고 어느 하나는 살려야 하는 선택을 해야 하지요. 십장가가 그런 장면입니다.
기품 있던 처자가 곤장 맞으면서 갑자기 일자로 아뢰리다, 이자로 아뢰리다 하면서
판소리투로 대사하는 장면인데 과거 신상옥 감독의 ‘성춘향’식으로는 춘향이의
고통스런 표정연기를 중점으로 잡았을 겁니다.
임권택 감독은 큰 관료 사회 앞에서 춘향의 저항이 얼마나 부질없는 짓인가를
보여주고, 전체적으로는 판소리의 리듬으로 가는 방식을 택합니다.
당연히 카메라는 뒤로 빠져 춘향이를 정면으로 잡지 않고 뒤에서 동헌 전체를 잡게 되겠죠.
이는 판소리의 흥을 살릴 수 있다면 드라마로는 어색해도 된다고 생각하고 만든 장면입니다.
지난 2000년 임권택 감독이 ‘춘향뎐‘을 보았을 때, 知好樂은 새로운 영화에 대한 열정을 쏟아내는
老 감독에게 경의를 표했습니다.
개인적으로 ‘작코 1980’ ‘만다라 1981’ ‘길소뜸 1985’ ‘아제아제바라아제 1989’ 이후,
이를 뛰어 넘는 작품을 보지 못했기에 참으로 기뻤습니다.
칸 국제영화제 경쟁부분 진출이라는 것보다 아직은 살아있는 임권택 감독의 영화이기에 그랬습니다.
한 편으로 아쉬운 것은 너무 적은 관객만이 이 영화를 봤다는 것입니다.
恨을 가슴에 품지만 말고 그 恨을 밖으로 내어 풀라며 송화에게 고의로 恨을 심어주기 위해
부자탕을 먹여 눈을 멀게 한다는 극의 한계(살면서 세상의 고통속에서 자연스레 쌓여진 恨을
소리로 푸는 것과 恨이 있어야 소리를 잘 할 수 있다며 인위적으로 눈을 멀어 恨을 쌓는 것은 분명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를 가진 ‘서편제’보다 한 수 위인 ‘춘향뎐’의 적은 관객은 우리들 영화보기 습관의
현재를 말해주는 대목이라 생각합니다.
예술을 사랑하는 사오모 가족 여러분 !
예술을 사랑한다는 것은 예술가의 고통과 고난, 번민, 과정을 함께 한다는 것이겠지요.
오늘 저녁, 온 가족이 함께 임권택 감독의 ‘춘향뎐’을 보시면 어떨런지요??
蛇足) 1. 임권택 감독은 ‘장군의 아들’때 담배를 끊었는데 조승우가 ‘사랑가’ 장면에서 사고치자 다시
피우기 시작했습니다. 조승우를 불러 화를 낸 후, 정일성 촬영감독에게 다가가
“임자 ! 담배 하나 줘”
“왜 ! 다시 피우게”
“자네 같으면 안 하겠어. 죽을 지경이구먼...”
2. 칸 본선 경쟁부분에 진출했으나 본상 수상에는 실패한 임권택 감독은 2년후인 2002년
‘취화선’;으로 칸 감독상을 수상합니다.
그 쪽 심사위원들이 판소리를 제대로 알기나 했겠습니까?
줄라면 ‘춘향뎐’으로 줘야지....
첫댓글 울산은 비가 마니 오나보군요 임권택 감독의 춘향전은 못봤지만 조승우가 이도령역이었던게 기억이 나요. 그당시 춘향역인 이효정양도 기억 나는데 요즘은 안보이네요. 덕분에 오늘도 영화공부 잘 했심니더
아~~ 그랫군요. 조승우가 이도령을......난뭔 사곤가 했습니다.
이 영화로 데뷔한 조승우는 좋은 배우로 크고 있지요. 영화를 보실 때 소리와 영상이 어떻게 어울어지는지를 잘 살펴보세요.
저는 춘향전을 조금 다른 각도인 소설의 시각으로 본다면.....춘향전은 판소리의 원리에서 생겨난 개방성, 적층성을 작품을 발전시켜나가는 주요한 이치로 삼고 있다고......그래서 여러 시대에 걸쳐 예술 생산자인 작자와 그 예술 작품을 수용하는 향수자의 지역별, 개인별 취향에 따라 다양한 모습으로 창작 향수되어온 것이 특징이라고......그래서 춘향전은 이름은 하나이지만 거듭 재창작된 다수의 이본들에 의한 춘향전군을 형성한 작품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춘향전은 성장하는 소설이라고 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춘향전의 원류는 판소리 춘향가에서 비롯되어 조선조 후기 몇몇 근원설화를 결합하여 하나의 이야기를 만들고 여기에
탈춤, 민요 등의 극적이고 서정적인 대중예술의 소재들을 첨가하여 형성되었고.....현대사회에서는 리얼하게 영화로 까지 거듭날 수 있었다는 것을 말입니다. 중세국어가 간간히 섞여 있는 춘향전을 읽었던 기억을 다시 한 번 상기시켜 주셔서 고마워요.
그린님의 넓은 학구적 관심과 지식의 끝은 어디인가요?
애고 언제 같이 보면 안될까요 근데 정말 공부가 많이 되었읍니다 지호락님 화이팅
재즈와 판소리는 통하는 무엇이 있지 않나요?
음..오늘은 볼 시간이 없는데 조만간에 꼭 보겠슴돠지금 다운받고 있는데 510원이나 하넹..10년이나 된 영환데..오발탄은 140원..영화 잘 안보는데 지호락님이 소개해주몬 무조건 볼끼라요
다운 받으신거 같이 보면 안되남요 제가 반팅 할께요 핳하..
반팅 ☜ 요거 전문용언데 우찌 아셨을까
아주 난리들이 났어요 ㅎ ㅎ ?
판소리 춘향전을 근본으로 만들어진 임권택 감독님의 영화 춘향전.소리판과 영화가 따로 국밥이 되지 않도록 기존의 영화와는 전혀 다른 시도와 세심한 편집을 했다는 지호락님의 설명을 듣자니 저역시 그런 면에 주목하면서 차분히 감상하고 싶어지는군요.
너무 길게 쓰면 거시기할까 언급을 하지 않았지만 역사적 고증 부분도 신경을 많이 써 성균관에서 나와 협조를 하였지요. 감상하실 때, 특히 소리가 빨라질 때 영상이 어떻게 따라가며 소리를 넘지 않으며 어울리는지를 놓치지 마삼.
호락님이 임권택님 조 감독하던 시절이 은제쩍이심 춘향전 찍을땐 아닐것 같은디.. 사진보면 그런것두 같구.. 사족이 더 팍팍 와 닿는다는.. 임자 하나 줘봐.. 으음
'춘형뎐'은 2000년에 나온 작품이고 호락이 나이가 으으음...... 호락이가 잠시 과객으로 머물렀띠는 한참 전이구먼유... 글구 아 ! 글 운제 올릴꺼유.... 목 빠진당께''
그럼 지호락님 말씀처럼 임감독님의 춘향전이나 볼까요?
좋지요. 이야기 구조야 모두가 알고 있는 것이고,,,, 고걸 우떻게 판소리로 풀어가는 지를 관심있게 보시면 재미있습니다..
국악하는친구가 있어 요즘에서야 한번씩 국악을 접하는데~~스토리 전개가 잼나더군요~오페라~~그것도 따지고 보면~~판소리나 정극 같은데서 모방하지 않았나하는 생각을 해봅니다ㅎㅎㅎ~~저두 함 보구 싶네요!
판소리에 숨어있는 묘미는 참 재미 있지요. 수청을 거부한 춘향을 잡으러 가는 포졸들이 신나하는 대목이 있는데 이는 일반 서민들 눈에 춘향이 곱지 않다는 것을 보여주지요. '지가 뭔데 사또의 수청을 거부해..관기 딸 주제에.. 지가 양반이라도 되나...'하는 시각을 반영한 대목이죠..
나도 업고 놀고 싶다.
사랑가를 부르며 업고 노시면 더욱 좋을 듯.....
난 임권택감독이 그렇게 귀여울 수가 없더라 말하는 폼새도 순진하기 이를데 없고.........그의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오직 영화 하나밖에 모르는 열정이 만들어낸 영화들.....난 '이리 오너라 업고 놀자사랑가' 그 장면 잊을 수가 애들의 연기 보다는 임권택감독이 저거 찍으면서 어린 쟈들 어케 눈물 쏙 빠지게 을러댔을까 생각하니... 절로 웃음이 나오더라는...
어디 갔다 오셨남유?? 한동안 안 보이던데....
이영화 찍을 당시 상황은 제가 아주 잘압니다. 처음 찍은 화면을 모두 버리고 음악을 중심에 두고 다시 촬영을 시작하였지요. 영화사 사무실은 서울극장 별관 3층이었습니다. 전라도 지역에서 촬영을 하면서 이후곤을 비롯한 정일성 촬영감독의 퍼스트와 세컨, 그리고 나머지 식구들이 아주 고생을 한 작품입니다. 다음에 스튜디오에서 같이 감상하지요. 몇가지 에피소드도 있습니다. 임권택감독의 천년학은 역시 이청준의 작품으로 그의 영화 100번째 마지막작품입니다. 그 첫촬영지인 광양매화마을(다압면) 가서 두분의 사인을 받아둔 것이 마지막 길이 될 줄 몰랐습니다.
나중에 뵈면 뒷 이야기 좀 듣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