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은 세계무역기구(WTO)에 가입하면서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에서 일본, 필리핀, 대만 등과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는 조건으로 1995~2004년까지 10년간 매년 국내 소비량의 1~4%를 관세 5%로 의무적으로 수입하는 제도(TRQ)에 동의함에 따라, 유예 기간 동안 최소 의무 도입량(MMA)은 매년 늘어나 1995년 51,307t에서 2004년 205,229t으로 늘어났다. 10년 유예 기간이 끝난 2004년도에도 농민단체 등의 반대로 2005~2014년까지 다시 10년간 쌀 시장 개방을 유예하기로 합의하여 의무 도입량은 2014년까지 다시 408,700t으로 늘어났다.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 협상 시에 관세를 부과하고 쌀 수입을 개방했다면 MMA 도입 의무는 없었는데, 쌀 시장 개방을 하지 않는 대신 매년 408,700t의 쌀을 의무적으로 수입해야 한다. 한국은 1977년부터 쌀 자급자족을 하여 쌀이 남아돌아도 MMA(가공용, 밥쌀용) 물량은 수입해야 한다. MMA로 수입한 쌀은 수출이나 외국에 원조할 수 없고 국내 소비만 해야 한다. 수입쌀(1000원/kg)을 국내 시장에 방출하면 국내 쌀(2100원/kg)농사 기반이 붕괴하기 때문에 수입쌀은 제과, 주정, 건설현장 식당, 대형식당 등에 판매한다.
한국과 달리 일본과 대만은 MMA 부담을 줄이기 위해 조기에 쌀 시장을 개방했다. 일본은 당초 한국, 대만과 함께 관세화 유예로 출발했지만 1999년 WTO 협의로 관세율 106%로 쌀 시장을 개방했다. 일본은 1970년부터 35년 동안 쌀 등급제를 통한 품질 고급화에 노력한 결과 고시히카리, 히토메보레 등 상위 10개 품종이 전체 생산량의 80%를 차지한다. 일본 쌀은 미국에서 고급식당, 재미교포 사이에 인기를 얻고 있고 니가타현 오우누마 산 고시히카리는 중국산보다 10배나 비싸게 팔린다. 아시아의 대만, 싱가포르, 홍콩, 중국 등지의 부유층을 상대로 시장을 공략하고 있다.
대만은 1995년 한국, 일본과 함께 쌀 시장 개방을 유예받았으나 2003년부터 526% 고율 관세로 쌀 시장을 개방하여 쌀 재배면적의 40%를 휴경하고 기계화로 원가절감 노력과 지상미 등의 쌀 품질 고급화에 성과를 올리고 있다. 쌀값이 급락하자 수입쌀에 추가 관세를 부과하고 쌀값이 기준가 이하로 하락할 때는 차액을 보전하고 수매제를 시행하여 쌀 개방에 슬기롭게 대처하고 있다. 조기에 쌀 시장을 개방한 일본, 대만은 농가 피해도 없고 의무수입물량도 20여만 t으로 적다. 왜 한국은 일본이나 대만 같이 시장을 조기 개방하여 MMA 도입을 막거나 물량을 줄이지 못했는지 아쉽다.
한국은 개방 유예 기간 20년이 끝난 2015년 미국, 중국, 베트남, 태국, 호주 쌀에 수입 관세 513%를 부과하고 쌀 시장을 개방했다. 국내 생산량이 충분하고, 미국, 중국의 쌀값은 800~900원/kg 정도이나 관세 513%를 부과하여 수입하면 5,000원에 달해 외국쌀이 비싸 수입되지 못했다. 정부는 수출에 큰 타격을 받을 수 있어 2019년 농산물 개도국 지위를 포기했다. 그러나 1995~2015년까지 쌀 시장 개방을 유예받음으로써 저율관세할당(TRQ) 물량 408,700t은 계속 수입해야 한다. 쌀 소비량이 매년 줄어 국산 쌀 20만t 정도가 남아 재고 쌀 보관료만 매년 200억 원 이상 세금으로 충당하고 있다.
쌀이 남아돌아 TRQ 물량 408,700t을 수입하지 않기 위해 WTO에서 탈퇴하면 수입 의무가 없어지지만, GNP 대비 3.9%인 농업을 지키기 위해 수출을 포기할 수는 없다. 벼농사 대신 옥수수, 밀, 콩 등으로의 작목 전환으로 쌀 생산을 줄이고, 농가당 경지 면적을 늘려 기계화와 규모의 경제를 이루어 쌀 생산원가를 수입쌀 수준으로 낮추어야 한다. 쌀의 국제 경쟁력이 높아져 무관세 수입 수준이 되면, WTO와 협상하여 TRQ 의무수입을 폐지해야 한다. 정부도 쌀 소비를 늘리기 위해 가루 쌀(벼)의 재배 확대로 밀 수입을 대체하고, 쌀 가공식품 개발 등의 정책을 적극적으로 시행해야 한다.
(추신)
작년 국회에서는 농민과 창고업자들의 표를 의식해 쌀 초과 생산량과 가격이 하락하면 정부에서 의무적으로 매입해야 한다는 양곡법이 발의되었다 폐기된 적이 있었다. 쌀이 남아도는 데도 농민더러 벼농사를 더 지으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로, 농업 개혁을 뒷걸음치게 하고 창고업자 배를 불리는 법안이다. 현재 수입 개방이 된 농산물은 일부 유제품과 보리, 콩, 옥수수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