金洗扈 선생님
<왼쪽분이 김세호 초대회장님>
1918년 7월 5일 창녕읍 도야리 422번지 출생.
公이 나시던 해의 이듬해 일제에 의해 도굴이 자행된 사적 제80호 교동고분군의 이야기를 유년기에 창녕읍 큰댁에 입양되어 그곳에 살면서 생가인 도야를 자주 생잇골 고개를 넘나들면서 어른들의 말을 듣고 자랐다고 “창녕 교동고분군”중 머리말에 전한다.
유년기부터 史學에 대한 관심이 남 달랐던 公의 성품은 천성이 유순하고 강직하여 불의에 굴하지 않았다.
창녕 공립 보통학교와 창녕중학교, 김해 농업학교, 일본대학 상경학부 경제학과를 1944년 3월 31일 졸업하셨다.
1945년 광복이후 창녕군 내무와 행정계 통계행정을 시작으로 공직에 첫 발을 디디게 된다.
광산 고등공민학교 및 창녕 명륜중학원 교사 및 원장을 계기로 교직에 몸담으면서 창녕 농업 고등학교, 밀양 동명중학교, 창원 하북초등학교, 부산 송도초등학교, 대성중학교 교사로 근무하시다가 30년 공직을 76년도에 퇴임하셨다.
公은 공직을 그만 두신 후 향토사연구에 관심을 가지고 창녕문화원 향토사 연구위원을 계기로 창녕문화와 향토사연구소장, 고령, 김해 가야문화연구회 간부, 국사편찬위원회 사료조사위원을 11년간 역임하셨다.
비화가야연구회 회장, 경남남도 향토사연구회 이사, 창녕향토사연구회 초대회장을 역임하셨다.
그리고 향토사, 가야사, 국사관계 논문을 30여편 발표하셨고 저서로는 대구사범학교 학생 항일독립운동사, 창녕중학교 50년사, 창녕교동 고분군, 비화가야연구, 가야사, 거제인이 있다.
경상남도 지사 상과 국사편찬위원회의 공로상, 창녕향토사연구회 감사패등 다수의 수상경력이 있다.
公의 1998년 3월 1일 부산일보 인터뷰 내용을 언급하면 “고대 삼국시대는 삼국이 아니라 가야를 포함한 사국시대로 수정되어야 하며 이는 일제의 식민사관인 임나일본부설을 반박하는 근거로서도 매우 중요한 작업이라 주장하고 향후 후학들이 산제한 가야의 유물과 유적을 모아 창녕지역의 고대 문명을 제대로 복원하는 계기가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公은 향토사의 불모지에 가까운 창녕지역에 창녕향토사의 새로운 기틀을 다지고 일획을 긋는 중추적인 역할을 하셨다.
그러나 지난 2003년 2월 28일 불의의 교통사고로 활동에 많은 지장을 초래하였으나 두문불출하는 과정에도 연구에 몰두하셨다.
그리고 2005년도에 公이 어렵게 수집한 모든 자료를 후학을 위해 창녕향토사연구회에 기증을 하셨으며 2007년 4월 27일 저녁 8시경에 유명을 달리하셨다.
첫댓글 김량한간사님이 주신 자료를 제가 입력하여 올립니다....ㅎㅎ 한번 읽오보시길~~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창녕을 시랑하시던 분이시군요. 명복을 빕니다. 님의 뜻 간직 될수있도록 그 정신 이어가시길 바랍니다. 창녕 역사에 길이 남을 님의 영혼을 기려봅니다~~~~~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창녕을 참으로 사랑하셨던 님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