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욱일기_치욕의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기를
출애굽기 1:6-14
6. 얼마 뒤에 요셉이 죽고 그의 동기들과 그 시대 사람들도 다 죽었으나
7. 이스라엘 백성은 자식을 많이 낳고 번성하여 온 땅에 가득 찰 만큼 무섭게 불어났다.
8. 그런데 요셉의 사적을 모르는 왕이 새로 이집트의 왕이 되어
92 자기 백성에게 이렇게 일렀다. "보아라,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듯 무섭게 불어나니 큰일이다.
10. 그들이 더 불어나지 못하게 기회를 보아 손을 써야겠다.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원수의 편에 붙어 우리를 치고 나라를 빼앗을지도 모른다."
11. 그리하여 그들은 공사 감독들을 두어 이스라엘 백성에게 강제 노동을 시켜 파라오의 곡식을 저장해 둘 도성 비돔과 라므세스를 세웠다.
12. 그러나 이렇게 억압을 받으면 받을수록 이스라엘 백성은 더욱 불어났다. 이집트인들은 그들을 두려워한 나머지
13. 이스라엘 백성을 더욱 혹독하게 부렸다.
14. 그들은 흙을 이겨 벽돌을 만드는 일과 밭일 등 온갖 고된 일을 시키면서 이스라엘 백성을 괴롭혔다.
지난 수요일(5.31) 이른 아침 수도권 시민을 공황 상태로 몰아넣은 서울시의 긴급 대피 준비 ‘경계경보 발령이 있었습니다. 오전 6시 41분경 서울시는 "경계경보 발령"이란 제목으로 대피하라는 내용의 재난 문자를 발송했고, 10분 뒤 재난 사이렌을 울렸습니다. 민방위훈련 때와 마찬가지로 서울시 전역에 울린 재난 사이렌은 약 1분간 지속되었죠.
서울시가 보낸 재난 문자에는 "서울지역에서 경계경보 발령, 국민 여러분께서는 대피할 준비를 하시고, 어린이와 노약자가 우선 대피할 수 있도록 해주시기 바랍니다"라고 적혀 있었습니다. 하지만 실제 상황인지, 무슨 일인지, 어디로 대피하라는 것인지 등 '구체적인 정보'가 없어 시민들은 우왕좌왕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이 재난 문자 소동의 전말은 이렇습니다.
▲31일 오전 6시 28분/ 북이 남해 방향으로 우주발사체 발사(추정) ▲6시 32분/ 합동참모본부가 평안북도 동창리에서 남쪽으로 '우주발사체'가 발사됐다고 공식 발표 ▲6시 34분/ 행정안전부, 백령·대청지역 경계경보 발령 ▲6시 41분/ 서울시가 서울 전지역에 <경계경보 발령> 문자 발송 ▲7시 3분/ 혼란이 확산되자 행안부가 서울 전 지역에 <오발령 사항>이라고 문자 발송 ▲7시 25분/ 서울시가 서울 전지역에<경계경보 해제> 문자 발송
서울시의 재난 문자가 문제가 된 것은 적의 공격이 예상될 때 보내는 <경계경보>라는데 있습니다. 서울시의 문자는 그야말로 전쟁 직전의 상황이니 안전한 곳으로 대피하라는 긴박한 메시지였다는 것입니다.
이번 사태는 위기 상황에서 국민의 안전에 무능하고 무책임한 윤석열 정부의 모습을 또 한 번 적나라하게 보여준 사건입니다.
작년 이태원 참사와 북한 무인기 침범 겪고도 '그대로'라는 지적인거죠. 이번 사태에는 국가안보와 국민안전을 책임진 군과 국가안보실의 잘못이 큽니다. 더구나 대통령은 이날 긴급 소집된 ’국가안보회의(NSC)‘에도 참석하지 않았습니다. 기껏 모인 NSC 회의에서도 상임위원들은 "이번 발사가 심각한 도발임을 강조했으며, "추가 발사 가능성에 대해서도 계속 예의주시하면서 동맹 및 우방국들과 공조 태세를 유지하기로 했다"는 원론적인 이야기만 주고 받았을 뿐입니다.
이번 대응은 윤 정부가 국가 안보의 위기 상황에 처해서 유기적 공동대처에 실패했다는 것과 대통령실, 행안부, 서울시가 '44분 소동'에 대한 책임 떠넘기기에 급급했다는 것만 보여주었습니다. 대통령실과 행안부는 서울시의 책임이라고 주장하는 반면, 서울시는 "혼선을 빚었지만 오발령은 아니다"라고 맞섰죠.
북한의 군사위성 발사는 올해 1월 1일 노동당 중앙위 전원회의 보도문에서 이미 예고됐던 일입니다. 이날 중앙위원회는 ▲또 다른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체계 개발 ▲전술핵무기 및 핵탄두 보유량 대규모 확대 ▲최단 시일 내 군사위성 발사 등 3가지를 예고했었습니다.
지난달 29일 북한은 일본에 군사정찰위성 1호기 발사 예정을 통보했고 30일 국제해사기구(IMO)에 "31일 0시부터 다음 달(6월) 11일 0시 사이에 인공위성을 발사하겠다"고 통보했습니다. 이걸 두고 합참은 '우주발사체'로, 대통령이 불참한 긴급 국가안보회의(NSC)는 '장거리 탄도미사일'이라고 다른 해석을 내놓았습니다.
사전통보 사실이 며칠 전부터 이미 구체적으로 언론에 보도까지 된 상태에서 벌어진 이번 소동을 두고, 당국이 이를 사전에 알고도 의도적으로 연출한 게 아니냐는 의혹까지도 제기되고 있습니다. 총선을 앞두고 안보 위기 상황을 만들어 가려는 것 아니냐는 겁니다.
지난 5월 30일부터 나흘간 우리나라 주관으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방지구상(PSI)‘ 20주년 고위급회의와, 다국적 함정이 참여하는 해양차단훈련인 '이스턴 엔데버23'이 열렸습니다.
’확산방지구상(PSI)‘은 핵이나 생화학무기 등 대량살상무기(WMD)의 국제적 확산을 막기 위해 2003년 미국 주도로 발족한 국제 협력체제입니다. PSI는 대량살상무기(WMD)나 미사일 등 을 실은 것으로 의심되는 선박을 각국 영해에서 효과적으로 차단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죠.
PSI 관련 훈련은 작년처럼 미군이 주관할 땐 '포춘가드', 우리 군이 주관할 땐 '이스턴엔데버' 등으로 그 명칭이 바뀝니다. 우리 군은 앞서 2010년과 12년, 19년 등 3차례 PSI 관련 훈련을 주관했고, 2010년과 12년엔 해상차단훈련도 실시했습니다.
올해 우리 해군이 주관하는 '이스턴 엔데버23'훈련에는 한미일 3국을 비롯해 호주·뉴질랜드·싱가포르의 해상전력과 해양경찰 등이 참가하였습니다. 이들은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을 가상해 해상운송 등을 통한 대량살상무기(WMD) 확산을 방지하는 훈련을 진행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훈련에 참가한 일본 해상자위대 호위함(하마기리함)이 29일 부산 기지에 입항하면서 욱일기(자위함기)를 게양한 채 들어와 우리 국민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습니다. 일장기를 단 군함이 한국의 항구에 들어서는 것만으로도 한국민에겐 굴욕이며 악몽을 되살리는 일인데, 전범기로 불리는 욱일기를 달고 당당히 입항했다는 점에서 그 파문은 더욱 컸죠.
욱일기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일제의 육군과 해군이 사용한 군기였습니다. 한국을 비롯한 동아시아 국민에게 참혹한 고통을 떠안긴 일제 군국주의와 침략전쟁을 상징하는 깃발이었던 거죠.
전후 독일이 나치의 상징인 하켄크로이츠를 금지한 것과 달리, 일본은 욱일기 문양을 육상 및 해상 자위대 깃발에 그대로 가져다 썼습니다. 일제 침략사에 대한 반성이 없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장면입니다. 일본이 여전히 일제의 식민 지배를 합법이라 우기고 전쟁 범죄를 부인하고 있는 것과 같은 맥락인 거죠.
욱일기를 달고 입항한 것이 주는 의미는 우리 국민에게 너무 충격적인 것입니다. 욱일기에 얽힌 역사적 의미가 우리 민족에게는 너무도 끔찍한 기억이기 때문입니다. 국기는 가장 강력한 국가 상징 중의 하나인데, 욱일기는 이웃 나라를 침략하고 민간인들을 학살할 때 휘날렸던 깃발입니다. 때문에 그 햇살 무늬는 단순한 문양이라 할 수 없습니다. 그 문양에는 일본의 침략과 식민지 수탈의 범죄의 역사가 새겨져 있기 때문입니다. 자위함기는 욱일기의 일종인 구 일본제국 해군기를 그대로 계승한 깃발입니다. 사실상 욱일기와 동일하다 할 수 있죠. 아침 해가 뜨는 모양의 일본 국기(일장기)와 욱일기 간의 근본적인 차이는 햇살이 뻗치는 문양이 밖으로 팽창하려는 일본의 호전적 제국주의 야욕을 상징한다는 데 있습니다. 그 이미지에서도, 역사적인 맥락에서도 그렇죠.
그런데 한국의 대통령실과 국방부는 일본이 욱일기가 맞다는 데도 자위함기는 욱일기와는 다르다고 강변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한국 언론은 대통령실과 국방부의 주장을 그대로 받아 쓰며 양자가 전혀 다른 것인 양 홍보하고 있습니다. 도대체 우리가 일제 강점기 시대로 돌아간 것 아닌가 착각이 들 정도입니다.
'욱일기'를 단 일본 자위대 함정의 부산 입항을 허용한 윤 정부의 논리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일본 함정이 자위함기를 게양한 채로 방한하는 게 '국제적 관례'라는 주장이죠. 또 하나는 자위함기가 '욱일기'와는 다르다는 주장입니다.
이에 대해 민주당은 "욱일기는 일본 군국주의의 상징"이라며 "일본의 식민 지배에 면죄부를 준 것도 부족해 일본의 군국주의마저 눈감아주려 하느냐"고 질타했습니다. 또 "강제동원 문제에 대한 면죄부, 후쿠시마 오염수 방류 문제에 대한 모호한 태도를 모두 고려하면 윤석열 정부의 국가관과 역사관을 의심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문재인 정부 때인 2018년 11월 제주에서 열린 우리 해군이 주최한 국제관함식에 일본 해상자위대도 초청된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문 정부는 욱일기 대신 일장기와 태극기만 게양할 것을 요구했고, 일본은 이에 반발해 행사에 불참한 바 있습니다. 지금 윤 정부의 대응과는 완전히 달랐던 것입니다.
지난해 윤 정부는 우리 해군으로 하여금 일본 관함식에 참가해 기시다 총리가 타고 던 이즈모함을 향해 경례토록 '방치'한 적이 있습니다. 그때도 이지모함에는 욱일기가 펄럭이고 있었죠. 이 일은 ’우리 해군에 수치를 안긴 사건‘이라는 국내 비판 여론에 직면했습니다. 하지만 국방장관은 국회에 출석해 "욱일기에 경례한 게 아니고 국가의 수장이 승선한 배를 향해 경례한 것"이라 강변했습니다.
윤 정부는 작년 5월 출범 이후 잔혹했던 일제 식민 지배와 전쟁 범죄를 "100년 전의 일"로 치부하며 강제동원(징용) 피해 배상과 관련해 일본에 면죄부를 주었습니다. 한국의 사법주권을 무시한 '제3자 변제안'을 강행했을 뿐 아니라, 일본의 후쿠시마 방사능 오염수 방류에 대한 미온적 대응, 평화 헌법을 포기한 일본의 군사대국화 용인 등 한일협력을 구실로 구한말 때와 같은 위험한 정세를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습니다.
욱일기 논란에 대해 일본은 “자위함기는 욱일기가 맞으며, 욱일기가 무슨 문제냐”는 입장을 내고 있습니다. 이는 식민 지배 침략 역사를 인정하지 않겠다는 배짱입니다. 일본은 침략을 한 적이 없으므로 욱일기는 아무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죠.
일본은 36년간의 조선 강점기 동안 무수한 범죄를 저질렀습니다. 국권을 침탈하고 백성들을 수탈하였으며, 독립운동과 항쟁을 억압했습니다. 중일전쟁과 2차세계대전을 일으켰고, 많은 나라를 침략하였습니다. 전쟁에 우리 국민들을 동원하고 전쟁물자를 수탈해 갔습니다.
일본은 중·일전쟁(1937)때 국가총동원법을 공포하고 국민 징용령을 발동해 강제동원에 나섭니다. 1939년부터 1945년까지 강제 동원된 조선인은 113만에서 146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조사되었습니다. 이들은 주로 탄광·금속광산·토건공사·군수공장에서 가혹한 노동을 강요당했죠. 또한 ‘근로동원’이란 명목으로 초등학생까지 군사시설 공사에 투입했으며, 1944년에는 ‘여자정신대근무령’을 발표하며 12세에서 40세까지의 여성 수십만 명을 강제징집 했습니다. 이들은 군수공장이나 군대 위안부로 보내졌죠. 패색이 짙어지자 강제징용된 조선인은 기밀 유지를 이유로 집단 학살당한 경우도 많았습니다. 일본 정부는 1990년 6월 강제징용 한국인 총수를 66만 7648명으로 공식 발표했을 뿐, 이들에 대한 어떤 보상도 외면하고 있습니다.
국가적 상징인 국기는 그 역사가 빠진 채 단지 그 문양 자체만으로 존재할 수 없습니다. 특히 주변국 및 인류에 대한 중대 과오를 범한 나라의 국가 상징물은 더욱 그렇죠. 2차 세계대전 전범국가인 독일과는 매우 다른 행보를 일본이 보이고 있습니다. 일본은 그동안 반성 없이 욱일기의 역사적 의미를 숨겨왔지만 이제는 내놓고 침략 야욕을 보이고 있는 것입니다.
유대인들의 최대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유월절은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유대 백성들이 이집트 땅에서 430년간을 살며 종살이하다 해방된 것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유월절의 유래를 간단히 살펴보면 이렇습니다.
<본래 유대이었던 요셉이 이집트의 총리 자리에 오른 뒤 가뭄에 시달리던 유대인들이 이집트로 이주해 살았습니다. 그러다 시대가 바뀌어 요셉을 알지 못하는 새로운 파라오가 등극하게 되었죠. 그는 ‘이스라엘 백성이 이렇듯 무섭게 불어나니 큰일이다. 그들이 더 불어나지 못하게 기회를 보아 손을 써야겠다. 전쟁이라도 일어나면 원수의 편에 붙어 우리를 치고 나라를 빼앗을지도 모른다’고 염려하였습니다. 그래서 평민으로 살던 유대인을 노예로 삼고 강제 노역을 시켰습니다. 그는 유대인들을 비돔과 라암셋의 왕도를 건설하는데 동원하여 혹사시켰습니다. 또한 유대인이 더 늘지 않도록 유대인 신생아 중 남자아이를 골라 죽이라 명령하였죠. 그렇게 애굽에서 고통받던 유대인들의 신음소리를 야훼께서 들으십니다. 야훼께서는 미디안 광야에 피신해 살고 있던 모세를 불러 유대 백성을 이집트 땅에서 빼내어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인도하라고 명령하십니다. 모세는 야훼의 말씀을 파라오 람세스 2세에게 전하지만 파라오는 그 말씀을 거부합니다. 야훼께서는 이집트 땅에 10가지 재앙을 내리고, 버티던 파라오는 마지막 ‘장자 죽음의 재앙’에 무릎을 꿇습니다.
야훼께서 내린 마지막 재앙은 사람과 가축을 모두 포함하여 처음 태생을 모두 몰살하는 재앙이었습니다. 그 결과 이집트의 모든 장자가 사망하고 파라오의 장자까지 사망하자 파라오는 결국 유대인들을 보내 주게 됩니다. 이 열 번째 재앙에서 유대인들은 무설주에 양의 피를 바름으로써 재앙을 피하고 이집트에서 탈출하게 되죠(출 11:4~7).
첫 유월절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흠이 없는 일 년 된 수컷 양이나 염소를 해 질 무렵에 잡아서, 그 피를 좌우 문설주와 문 위쪽에 발랐습니다. 그날 밤에 고기를 불에 구워 누룩 없는 빵과 쓴 나물을 곁들여 먹었는데, 날로 먹거나 삶아 먹어서는 안 되며 반드시 불에 구워 먹어야 했습니다. 음식은 아침까지 남겨두어서도 안 되며, 남은 것은 불살라 버려야 했죠.
또 음식을 먹을 때는 허리에 띠를 띠고, 발에는 신을 신고, 손에는 지팡이를 잡고, 서둘러 먹어야 했습니다. 전쟁과 같은 상황에서 이집트를 탈출하려면 촌각을 다투어야 하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집트를 떠나 40년간 광야를 헤매며 히브리 백성들은 매년 유월절 명절을 지킵니다. 유월절 명절은 430년간을 이집트에 살면서 당한 고통과 수치를 잊지 않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야훼의 명령대로 유대인들은 누룩을 넣지 않은 떡과 쓴 나물을 흠 없는 어린 양이나 염소 고기와 함께 먹었습니다. 양과 염소는 유대인들을 위한 대속 재물이었던 것이고 무교병과 쓴 나물을 이집트에서 당한 고난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가나안 정착 후에도 유월절은 계속 지켜졌으며 이 전통은 예수님 시대에까지 연결되죠. 예수님께서는 잡히시던 날 밤 유월절 명절에 제자들과 최후의 만찬을 나눕니다.
구약시대 유월절 전통에 따른다면 양을 잡아야 했지만 예수님은 새로운 방식으로 유월절을 지키죠. 예수님은 유월절 떡과 포도주를 자신의 살과 피라 말씀하시며, 죄를 사하려고 많은 사람을 위하여 흘리는 언약의 증표라고 가르치십니다. 이것은 구약시대에 모세를 통해 이스라엘 백성들이 유월절을 지키고 종살이하던 이집트에서 해방될 수 있었던 것처럼, 이제는 예수님을 통해 유월절을 지키고 죄의 종살이에서 해방될 수 있음을 보여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유월절 만찬이 끝나고 겟세마네 동산에서 체포되신 예수님은 밤새 재판을 받은 끝에 사형을 선고받습니다. 그리고 다음 날인 무교절 오전 9시경 십자가에 달린 후 오후 3시경에 운명했죠. 예수님의 십자가는 구약시대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하여 홍해를 건너기까지 당한 고난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초기 기독교인들은 신랑을 빼앗길 날에는 금식하라는 가르침대로 무교절 오후 3시까지 예수의 십자가 희생을 되새기며 금식으로 고난에 동참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는 일제로부터 해방된 지 78년째를 살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도 우리는 완전한 독립을 쟁취하지 못하였습니다. 미군정을 통해 친일 앞잡이들은 다시 이 나라를 장악했고 무자비한 독재를 저질러 왔습니다. 우리 민중들의 항거로 여러 차례 혁명적 상황을 만들었지만 미국 등 외세의 개입으로 번번이 좌절되었죠. 이번 윤석열 대통령 당선도 그 결과에 다름 아닙니다. 윤석열 정부는 지금 대놓고 미국과 일본의 총독부 역할을 자임하고 있습니다.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단재 신채호가 말했다고도 하고 윈스턴 처질의 말이라고도 합니다. 하지만 이 말의 의미는 ‘잘못된 과거의 기억을 잊거나 되풀이 하지 말자"는 것입니다. 타국이 저지른 것뿐만 아니라 자국의 과거 잘못에 대한 반성, 경계의 뜻도 함께 담고 있는 거죠.
유대인들이 유월절을 지키며 과거의 노예 시절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하는 것이 그런 의미일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 가운데 일제 36년 역시 유대의 이집트 종살이와 비견될 만한 역사 경험입니다. 우리도 8월 15일을 광복절로 지키고 있지만, 그 시절의 끔찍한 기억을 계속 되살리고 다시는 그런 역사를 되풀이하지 않겠노라고 다짐하고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역대 외세에 기댄 독재정권들은 광복절의 의미를 축소시키고 외면하려고 했습니다. 지금의 검사 정부도 다르지 않습니다. 해방 이후 외세와 결탁한 기득권 세력이 무너지지 않는다면 이런 일은 앞으로도 계속될 수 있습니다.
이번 경계경보 오발령이나, 일본 자위대함의 욱일기 계양은 이런 맥락에서 벌어지는 일이기에 우리 국민들의 깨어있음이 더욱 절실한 것입니다. 치욕의 역사를 잊은 민족에게 미래는 없습니다. 또 다시 그 역사를 되풀이할 뿐입니다.
유월절을 통해 하나님의 통치가 이루어지는 나라를 꿈꾸는 것처럼, 우리도 해방된 조국 통일된 조국을 꿈꾸며 살아가야 하겠습니다. 그 일을 위해 나서는 모든 이들에게 하나님의 은혜와 돌보심이 함께 하시길 축원합니다.
<2023. 6.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