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사한 뒤부터 연일 계속되는 집정리 강행군. 결국은 몸살기운을 느끼게 된 날 평소보다 일찍 잠을 청했고, 다음 날 아침엔 이비인후과를 찾아가야 했다.
어제 아침에도 부모님 집에 가서 아버지를 모시고 오는 길인데 아내가 '언제 오냐'고 전화를 했다. 지금 가고 있다고 전화를 끊은 뒤에 집에 도착해보니, 아내가 아는 사람에게서 전화를 받았다고 하면서 일산의 무슨 가구형 공장에서 이벤트를 하는데 가보자고 했다. 아니, 집정리 때문에 바쁘고 힘든 마당에 가구 이벤트를 보러가? 아내는 몸살에다 병원까지 다녀온 것을 아는데도 한사코 나와 함께 가기를 원했다. 자기가 운전할 테니 당신은 옆에서 쉬라고 하면서...
몸도 힘들고 시간도 없었지만 아내를 위해 따라나섰다. 아내를 위하는 것이 최고의 일이니까! 복장은 허접한 추리닝에다 머리는 헝클어질대로 헝클어진 제멋대로 헤어스타일 상태로... 가구 이벤트를 하는 곳에 도착해보니 상호는 '가구대통령'이었고 정품보다 굉장히 싸게 파는 곳이었다. 가끔씩 이벤트를 할 때마다 스크래치가 있는 상품이나 라인이 어긋난 상품을 '천 원의 행복' 상품과 '경품'으로 내놓아 이목을 끌면서 방송까지 타는 곳이었다.
가는 날이 장날이라는 속담이 이래서 맞는 것일까. 도착하는 순간부터 방송을 위한 녹화카메라가 돌아갔다. 이거 찍히면 큰일인데 어떻게 하지? 걱정이 앞섰다. 2년 전에도 비슷한 성격의 의류 이벤트에 갔다가 방송에 잡힌 적이 있어서 여간 신경 쓰이는 것 아니었는데, 카메라 감독과 카메라 앵글을 요리조리 피해다니는 내가 꼼짝도 없이 정면으로 인터뷰를 할 수밖에 없었던 사건이, 그야말로 즐거운 사건이 벌어지고 말았다.
복지기부금을 위해 개인당 2,000원 씩 내면 천 원 권의 모조 지폐를 네 장 준다. 그 지폐마다 이름과 전화번호를 써서, 한 장은 경품함에 넣고 나머지 세 장은 자기가 원하는 품목에 붙인다. 그러면 경품은 추첨해서 나눠주고 '천 원의 행복' 품목은 지원자들끼리 가위바위보를 해서 최종 승자가 가져간다. 아내와 나는 서로 의논한 끝에 우리집 소파가 낡아 검정색 가죽 소파를 신청했고, 부모님 집의 식탁이 낡았을 뿐만 아니라 의자도 짝짝이어서 갈색 식탁 세트를 신청했다.
드디어 행사 시작! 방송 카메라도 바쁘게 돌아가고 여기저기서 인터뷰도 진행된다. 인터뷰에 협조할 뿐만 아니라 잘해주는 사람에게는 사장님이 가구 하나를 더 준다고 하는 바람에 여기저기서 박수소리가 터져나왔다. 모두가 원하는 소파 경쟁부터 시작되었다. 네 사람씩 조를 이뤄 치르는 예선전에서 나와 아내는 똑깥에 두번을 이겼으나 세번 째 지고 말았다. 아, 이런...
다른 순서들이 지나가고 아내와 내가 낙점한 식탁 세트 경쟁이 시작되었다. 아내는 초반 탈락, 그러나 나는 끝까지 살아남아 고급 식탁세트를 차지하게 되었다. 아, 이럴수가! 행사를 진행하기 전에 이 식탁을 부모님께 드리고 싶으니 우리에게 달라고 기도까지 했었는데 이렇게 받게 되다니! 과연 이런 일이 벌어지기도 하나보다 싶어 어안이 벙벙했고 생각할 수록 신기하고 감사하고 즐겁기만 했다. 바로 그 순간 찾아온 방송 카메라! 속으로 에구, 했지만 어쩔 수 없었다. '만족하십니까?'라는 피디의 질문에 '네, 부모님께 드리고 싶어서 결정했는데 이렇게 받게 되어 정말 기쁘네요. 부모님께 드릴 선물을 얻게 되어 감사합니다.'라는 내용으로 인터뷰를 마쳤다.
더욱 놀라운 일은 경품 추첨 시간에 벌어졌다. 총 7개 품목이 경품으로 걸렸는데 그중에서 아내가 침대에 당첨되었다. 아니, 이럴수가! 아내와 나는 연달아 벌어진 일에 속으로 벌어진 입을 다물수가 없었다. 소파를 원했던 아내였지만 소파는 집에 있었기 때문에 정작 우리에게 필요하면서도 좋은 것은 침대였는데, 그 침대가 떡하니 당첨된 것이었다.
집으로 돌아오는 내내 우리 부부는 행복했다. 우리집엔 침대가, 부모님 집엔 식탁세트가 놓여질 일만 생각하면 기쁘고 즐겁기 때문이었다. 알지도 못했고 생각하지도 못했는데 아는 사람의 전화 한 통에 아내의 마음이 동해 나까지 울며 겨자 먹기로 끌려간 곳에서 이런 횡재를 만나다니!
어젯밤 아버지와 어머니는 근사한 식탁에서 저녁을 드셨을 것이다. 자식 사랑을 반찬 삼아 맛있게 잡수셨을 것이다. 어젯밤 아내와 나는 왕과 왕비가 사용하는 침대가 부럽지 않은 멋진 침대에서 잠을 잤다. 아직까지 침대 위에서 잠들어있는 아내가 사랑스러운 아침이다.
- 이 글은 지난 주 금요일(14일)에 쓴 것입니다.
첫댓글 기도가 절실했나 보네요. 축하드립니다....
짧긴 했어도 진실하긴 했어요. 부모니을 생각하다보니..
와하, 추욱하~
고맙습니다, 축하해주셔서요.
쌤 글 읽고 있음 참 행복해집니다. 간절하고 진솔한 기도는 빛보다 빠른가 봅니다.
'제비 때문에 공사를 변경하다' 란 117번 글 다시 읽어 봤는데요. 회원님들 댓글에서 횡재 할 기운이 감돌고 있었구나 싶었습니다. 좋은 기운도 쌤이 만들었지만 말이죠. 고전의 교훈을 다시 한 번 되돌아보게 됩니다. 정말 고맙고 감사한 마음이 저도 드는 걸요. 축하드려요.
황 샘의 말씀을 듣고보니 정말 그런 것 같네요. 제비가 물어다 준 첫번 째 행복... 정말 제비 뽑기였으니까 말입니다.^^*
아하! 그래서 제비뽑기군요^^
이런이런.. 이런 해몽까지!!^^
황지형 선생님의 답글에서 긍정의 힘을 봅니다^^* ㅉㅉㅉ!!!
오마나~! 제가 다 기뻐지는 순간입니다. 아, 댓글 보니 제비 때문일 수도 있었네요. ^^
그러고 보면 세상사 어느 것 하나, 우연히 이루어는 일이 없나 봅니다.
감사합니다!!! 대체 뭐가? ㅎㅎㅎ
임화정 선생님 반갑습니다. 저도 이제는 그렇게 생각하게 되었네요.^^
'아내를 위하는 것이 최고의 일이니까!'라는 말에 밑줄을 그으며 읽었습니다. 마음에 따스한 기운이 감도네요. 선생님 글 읽을 때마다 이번엔 뭘까 싶을 정도로 본능적인 기대감이 든답니다. 늘 좋은 기운을 전해주셔서 감사드리고 오늘도 훈훈하고 아름다운 일상되시길 바랍니다^^저는 '남편을 위하는 것이 최고의 일이니까!'라고 버전을 바꿔보렵니다.
그런 버전을 바꾸기는 쉽지 않아 걱정이 앞서기도 하지만 잘 하시리라 믿고 기뻐하겠습니다. 늘 격려해주시는 것도 감사하구요.
양효숙 선생님처럼 저도 한번 따라 해 볼까요?ㅎㅎㅎ
우와 부라보시네여~방송은 언제 나오나요?츄리닝의 헝클어진 선생님 모습 보고 싶은데??^^
다행히 방송에는 안 잡혔어요. 휴~
ㅎㅎ 행운까지, 좋은 봄날입니다^^~
정말 좋은 봄날이에요. 봄날이 가지 않았으면...
저도 읽으면서 현대판 박씨가 바로 이런 것이로구나, 생각했는데... 매사 따뜻하고 정감있는 시선으로 대상을 바라보시는 마음은 정말 복을 일으키는 소중한 것이로구나, 느낍니다. 어쩌면 새 집의 기운이 엄청 좋은지도 모르겠습니다. 앞으로도 좋은 일만 많이 생길 것 같은 예감입니다. 축하드립니다. (아~ 정말 부럽습니다!)
좋게 봐주셔서 감사합니다. 늘 좋은 일이 많아지시기를 바라겠습니다.^^
누구의 말을 들으면 기분뿐만 아니라, 덤으로 "침대와 식탁 세트가 생"기니, 행복, 바로 행복입니다.
그러게요. 앞으로 아내 말을 더 잘 들어야겠습니다.^^
ㅉㅉㅉ!! 부모님 위하시는 효심의 기도와 사모님 사랑하시는 애심의 기도가 박터졌네요? 축하 축하 드립니다^^ 가정의 달 5월에 선생님댁에 대박 나셨어요...제비 몰러 나간다~~~얼쑤!
효심과 애심이라... 참 멋진 말입니다.^^
ㅎㅎ 이시인님은 물론이거니와 사모님이 얼마나 더 해처럼 밝아지셨을까 생각하며 덩달아 기뻐집니다. 그래야지요. 사회가 아무리 각박해도 작은 일에서 큰 일까지 우리 모두가 밝고 기쁜 가정 이루기를 빌고 빕니다. 만끽!
요즘 참 좋습니다. 여러모로... 다방면에....^^
저도 축하드립니다! 작년에 중고트럭을 팔고 야외용 수제 장탁자를 대금일부로 선지불했었는 데요. 마침 오늘 옮겨 마당에 떡하니 설치했습니다. 저도 덤으로 생긴 듯했습니다!
야외용 수제 장탁자... 저는 요즘 손수 그것을 만드는 중입니다. 시간 날 때만 해서 언제 완성될지는 모르지만요.
와우~ 짝짝짝... 축하 드립니다. 역시 상을 타실 분이 타셨다는 생각입니다. 그 식탁에서, 그 침대에서 부모님께서도 우리 이종섶선생님 내외분께서도 내내 행복 하시길...
고맙습니다. 그 박수소리가 참 경쾌하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