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넷 고서점 ‘북헌터’ 운영자 정상모씨 "번개처럼 클릭해야 살 수 있어요"
사진/ 책장사를 하는 이들은 많지만 그만큼 감별능력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이용호 기자)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으려는 인터넷 고서점 ‘북헌터’의 운영자 정상모(41)씨. 그는 기자의 사무실 방문을 몹시 저어했다. 사무실 ‘꼴’이 말씀이 아니라고 둘러댔지만 실상은 일반인의 접근을 피하려는 의도가 아닌가 싶었다. 가정집 이층에 있는 그의 사무실은 옥상계단을 통해 올라가야 한다. 가시덤불을 헤치며 산사를 찾아가는 길 같았다. 난방은 부탄가스 난로로 해결하고 있었다. 그는 친절하게도 이리저리 접은 담요를 플라스틱 의자와 함께 내주면서 앉기를 권했다.
일본 고객까지 “깎아주세요”
수많은 인터넷 고서점 중에서 북헌터가 돋보이는 차별성은 그의 운영방법. 자기만큼 재빠르게 업데이트하고 책마다 가치부여를 하는 고서점은 “잘 없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가치부여는 바로 책에 대한 깊은 이해다.
“<근원수필> 저자 김용준, 이 사람은 공산주의자인데 아주 유명한 미술가이고 수필가였지요. 그 왜 이한영의 모친이 쓴 회고록에 보면 나옵니다. 북한에서 아마 자살한 것으로 나올 겁니다.” 그는 저자와 책의 배경을 줄줄 꿰고 있다. 책상 주변 손닿는 곳마다 ‘책 연구 책’이 이리저리 널려 있다. 그는 책장사를 하는 이들은 많지만 감별능력이 있는 사람은 드물다고 한다. 나도 아는 척을 했다. 김기림의 시집 <기상도> 표지장정은 시인 이상이 한 것이다, 난 그 책을 직접 이 손으로 만져본 적이 있다면서 폼을 잡았다. 그의 얼굴에서 애서가로서 질투의 경련이 약간 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이 방에는 얼른 보기에 그리 고서라 할 수 있는 책들이 보이지 않는데요.
“아, 그런 건 여기 이렇게 넣어두지요.” 그는 옆방으로 달려가 천장에 닿을 만큼 높은 책장 위에서 바나나 박스를 덜렁 내렸다. 과연 고색창연한 책들이 비닐 커버에 곱게 싸여 있었다. 권환 <동결> 1947년. 역사의 시선이 우리를 주목하는 듯하다. 책을 다루는 그의 손길이 부드럽고 조심스럽기 그지없다.
그가 전문 고서가로 일한 지 일년 반이 넘었다. 어떻게 이런 아이디어를 생각해내셨지요? “뭐 인생에 달리 대안이 없어서….” 오랫동안 변방에 머문 사람만이 지을 수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좀더 멋있는 표현을 찾아보라고 강권했다.
“사실 제가 옛날부터 책을 좋아했거든요. 그리고 인터넷도 좀 하니까. 오프라인상의 고서판매를 그대로 옮겨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을 한 거지요.” 그는 어릴 적부터 책의 안과 밖을 두루 섭렵했다. 독서상은 그냥 휩쓸었고 좋은 책은 책꽂이에 일일이 쟁여두었다.
그가 가장 싫어하는 개념은 “헌책을 싸게”. 단연코 거부한다. ‘헌책’이란 단어도 사용하지 않는다. 다른 나라에 비하면 우리는 고서가격이 낮다. 그래도 고서에 대한 인식이 아직 낮아서인지 대부분 사람들은 “에이, 뭘 그리 비싸냐”고 한다. 일본에서 주문한 고객조차도 어설픈 한국말로 “깎아주세요”라고 했다고 한다(물론 냉정하게 잘랐다).
“어떤 손님은 볼펜으로 줄그은 것도 싫다, 누런 책도 싫다면서 완벽한 상태의 책을 원하는데 그런 책은 없을뿐더러 고서의 개념을 이런 데서 찾으려면 북헌터와는 아듀”라고 정 사장은 말한다.
그는 자신이 시장사정을 파악해서 ‘때린 가격’이 적정수준이라고 한다. “사실 인건비도 안 나오지요. 그러니 제가 혼자서 다하는 것 아닙니까. 한 사람이라도 쓰면 이렇게 못하지요.” 그의 말투는 마우스 움직임과 닮아 있다. 두번 클릭클릭하면 말도 두번. “이렇게 해서 계좌확인하고(클릭) 바로 배송단계로 전환, 바로 전환 (클릭클릭).” 별안간 그가 조용해졌다. 그 다음은요? “아, 포장해야죠.” 사장에서 바로 사환으로 변신한다. 이제 인터넷 모드에서 수작업 모드로 전환. 책을 봉투에 싸서 정직하게 걸어가 근처 우체국 저울에 책을 올린다.
“1초도 망설이지 말지어다”
사진/ 고서시장에서 첫째로 치는 것은 국가기본자료라고 한다. 둘째는 문학자료, 셋째는 역사 관련 책이다.(이용호 기자)
본격적으로 이 일을 시작하기 전에 그는 고시원의 낭인생활을 했다. 얼마 동안이나 와신상담하셨나요? “아, 뭐 고시원 이야기까지 해야 됩니까. 그냥 1, 2년 있었다고 하지요, 뭐.” 한 만큼 한 거 같은데 고작 1, 2년? “그럼 우리 타협합시다. 5년!” 나는 최소 두배는 되어 보인다고 주장했다. “허 참, 그럼 6년, 6년으로 합시다.” 딜! 역사는 이런 식으로도 쓰여질 수 있다.
대학에서 그는 도서관학을 전공했다. 책 사랑의 발원지? “아닙니다. 운동하느라 점수가 안 돼서 할 수 없이 간 거지요.” 무슨 운동? “그때는 누구나 하던 거 있습니다. 수업 안 들어가고. 요즘은 지나간 얘기가 되었지만….” 그는 얼른 책 이야기나 하자고 말을 바꾼다. 참고로 그는 대학을 십년 만에 졸업했다.
그는 특히 해방 직후 현대사에 관한 자료에 해박하다. “운동의 영향이지요. 그쪽 책을 읽게 되고 그러다보니 자연스럽게 근본적인 자료를 구해보고 싶었던 거지요.” 고등학교 시절부터 책을 모았고 대학 시절에는 서울, 대구, 대전, 광주 등 전국을 두루 다니며 좋은 책을 사재기했다.
그러나 그의 세월은 그 책들을 가만두지 않았다. 옛 아낙들이 집안살림이 어려우면 모본단 저고리를 내다 팔았듯 고시원 시절 자신의 애서를 조금씩 내다 팔아야 했다. 가슴이 쓰렸을 것이다. “좋은 책은 진짜 팔기 싫지요.”
“‘고서시장’에서 제일 첫째로 치는 것은 국가기본자료이지요. 삼국유사나 훈민정음, 게다가 문학성까지 있으면 부르는 게 값이지요. 둘째는 문학자료, 대중은 영원히 사랑하게 돼 있으니까요. 셋째는 역사 관련 책이고. 넷째는 국학일반, 안춘근 선생은 그 다음이 한문기록문헌이라고 했는데 이것은 한문해독의 어려움 또 그 내용이 우리나라 것이 아닌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그의 홈페이지는 일주일에 세번, 정오에 업데이트된다. 새로운 책을 띄우는 데 걸리는 시간은 단 3분. 그리고 정 사장의 점심시간. 붕어빵 네개와 자판기 커피 한잔, 담배 한대 피우고 들어와 어느 고객이 접속했는지 확인한다.
“전국의 마니아들이 기다리는 시간입니다. 일초를 놓고 책을 손에 넣느냐 못 넣느냐 결정되는 거지요.” 나도 그의 업데이트 시간에 맞춰 들어가 보았다. 음, <박인환선시집> 초판, 가격이 좀…. 그 사이 책은 품절되고 말았다. 진정 책을 사려는 자여, 일초도 망설이지 말지어다. “책 상태 확인 전화, 그런 거 하다보면 책은 놓치는 거지요.” 그러니 아예 시간 맞춰 기다리고 있다가 책이 떴다 하면 무조건 장바구니에 클릭부터 하는 성미 급한 마니아들도 있다.
책을 품절시키는 분은 주로 누구신가요? “아, 주로 학자나 지식인들입니다. 교수분들, 국문학 박사과정에 계신 분들, 그리고 고등학교 국어선생님들도 있고요.” 회원 한 사람은 연수중에 업데이트 시간 맞춰 “배야, 배야” 하면서 화장실 간다고 나와 이웃 PC방으로 뛰어가 속도전을 뚫고 품절시켜버린 이도 있었다. 열화와 같은 성원이니 그의 회원관리가 여간 깐깐하지 않다.
책 마니아들인 만큼 독특한 취향을 가진 사람들도 있을 텐데요.
“아, 있지요. 어떤 분은 반공, 전쟁 관련 도서만 주로 찾습니다. <정글은 증언한다> <한국전쟁사> <역사의 증언> 등등. 또 에로소설만 찾는 분도 있어요.” 그가 내린 결론은 북 마니아들은 자기 분야를 넓히기보다 한 분야를 고수하는 경향이 심하다는 것이다.
쓰레기 분리수거가 밉다?
그럼 책은 어디서 조달하는지. 변두리 헌책방을 기웃거리시나요? “글쎄, 책이 없어요. 진짜 고서는 1950년 이전인데 그런 것은 대부분 소장하고 있고 1950년대 책을 구하면 그야말로 행운이지요.” 특히 쓰레기 분리수거 이후 문제는 심각하단다. 책들이 바로 파지공장으로 직통하니 그나마 중개상인을 통해 재발굴되고 새롭게 가치부여를 받을 수 있는 기회마저 놓치는 것이다. “안타까운 일이지요. 전에는 동네를 돌며 책을 주워오는 걸로 벌이하는 이들도 있었는데 요즘은 하나도 없어요.” 그도 혹시? 아파트 근처를 서성댔을지도 모른다는 의구심이 별안간 나의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하지만 이 일을 돈만 보고 할 수는 없지요. 무엇보다 문화사업으로 생각하면서 합니다. 솔직히 우리 세대만 하더라도 <개벽> 책표지를 본 적이 있나요. 인터넷으로 그런 옛날 책을 보여주기만 하는 것으로도 전 만족합니다. 임화나 이용악 같은 사람들이 환생해서 우리 홈페이질 보면 아마 기절할 겁니다. 우와 저게 뭐꼬!”
그의 책방에 들어가면 상민의 <옥문이 열리는 날>, 김기림의 <새노래>, 김억의 <꽃다발>…. 주옥같은 작품들이 바로 그 시대 그 모습으로 살아 있다. 누렇게 변색된 그 오랜 책들은 바로 지난한 우리 현대사의 얼굴에 다름 아니다.
이리 몰리고 저리 몰려 마침내 설자리마저 없이 지냈던 가련한 고서들. 그 보물들이 이제 사이버 공간에서 부활하여 새 숨결을 들이쉬는 모습은 보기만 해도 감동스럽지 아니한가. 이들을 짊어진 북헌터의 어깨가 듬직해 보였다.
... 권은정/ 자유기고가/한겨례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