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第一百一十九回 假投降巧计成虚话 再受禅依样画葫芦
제119회: 거짓 투항한 교묘한 꾀가 허사가 되고, 선양을 받아 호리병박 그리듯 모방하네.
却说,钟会请姜维计议收邓艾之策。维曰:“可先令监军卫瓘收艾。艾若杀瓘,反情实矣。将军却起兵讨之,可也。”会大喜,遂令卫瓘引数十人入成都,收邓艾父子。瓘手下人止之曰:“此是钟司徒令邓征西杀将军,以正反情也。切不可行。”瓘曰:“吾自有计。”遂先发檄文二三十道。其檄曰:“奉诏收艾,其余各无所问。若早来归,爵赏如先,敢有不出者,灭三族。”随备槛车两乘,星夜望成都而来。
각설, 종회가 강유를 청하여, 등애를 잡을 계책을 의논하자, 강유가 말하기를, “먼저 감군 위관을 시켜 등애를 잡으시오. 등애가 만약 위관을 죽이려 한다면, 반역의 뜻을 품은 것이 확실하니, 장군께서 그때 병력을 일으켜 토벌함이 좋겠소.”했다. 종회가 크게 기뻐하며, 위관을 시켜 수십 인을 이끌고 성도로 들어가, 등애 부자를 잡으라고 했다. 위관의 수하가 제지해 말하기를, “이것은 사도 종회가 정서장군 등애를 시켜 장군을 죽여, 그의 반정을 드러내려는 것이니, 절대 가지 마십시오.”하니, 위관이 말하기를, “내 나름대로 계책이 있네.”했다. 이에 먼저 격문을 2, 3십 장 썼다. 격문에 이르기를,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등애를 잡으니, 나머지 사람은 아무도 문책하지 않겠다. 만약 빨리 투항하면 벼슬과 상을 내릴 것이나, 감히 나오지 않는 자는 삼족을 멸하겠다.”했다. 이어서 함거(죄인 호송 수레) 두 대를 준비하여 한밤에 성도로 향했다.
比及鸡鸣,艾部将见檄文者,皆来投拜于卫瓘马前。时邓艾在府中未起。瓘引数十人突入大呼曰:“奉诏收邓艾父子!”艾大惊,滚下床来。瓘叱武士缚于车上。其子邓忠出问,亦被捉下,缚于车上。府中将吏大惊,欲待动手抢夺,早望见尘头大起,哨马报说钟司徒大兵到了。众各四散奔走。钟会与姜维下马入府,见邓艾父子已被缚,会以鞭挞邓艾之首而骂曰:“养犊小儿,何敢如此!”姜维亦骂曰:“匹夫行险徼幸,亦有今日耶!”艾亦大骂。会将艾父子送赴洛阳。
이윽고 새벽이 되자, 등애의 부장들 가운데 격문을 본 자들은, 모두 위관 앞으로 고개 숙여 항복하러 왔다. 이때 등애는 부중에서 아직 일어나지 않았는데, 위관이 수십 인을 이끌고 뛰어 들어가서 크게 외치기를, “천자의 조서를 받들어 등애 부자를 체포한다!”하니, 등애가 크게 놀라, 침상에서 굴러떨어졌다. 위관이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등애를 함거 위에 묶었다. 그 아들 등충이 나와 무슨 일인지 묻다가, 역시 붙잡혀 함거 위에 묵였다. 부중의 장수와 관리들이 크게 놀라, 손을 써서 빼앗으려 하지만, 어느새 멀리서 먼지가 크게 일어나고,정찰 기병이 사도 종회가 대군을 이끌고 온 것을 알리자,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져 달아났다. 종회가 강유와 함께 말에서 내려 부중으로 들어가서, 등애 부자가 붙잡혀 묶여 있는 것을 보고, 종회가 채찍으로 등애의 머리를 때리며 욕하기를, “송아지나 키우던 어린놈이 감히 어찌 이럴 수 있느냐!”했다. 강유도 욕하기를, “필부 주제에 요행히 모험에 성공했지만, 역시 오늘처럼 되고 말았구나!”하니, 등애도 역시 크게 욕했다. 종회가 등애 부자를 낙양으로 압송했다.
会入成都,尽得邓艾军马,威声大震。乃谓姜维曰:“吾今日方趁平生之愿矣!”维曰:“昔韩信不听蒯通之说,而有未央宫之祸;大夫种不从范蠡于五湖,卒伏剑而死:斯二子者,其功名岂不赫然哉,徒以利害未明,而见几之不早也。今公大勋已就,威震其主,何不泛舟绝迹,登峨嵋之岭,而从赤松子游乎?”会笑曰:“君言差矣。吾年未四旬,方思进取,岂能便效此退闲之事?”维曰:“若不退闲,当早图良策。此则明公智力所能,无烦老夫之言矣。”会抚掌大笑曰:“伯约知吾心也。”二人自此每日商议大事。维密与后主书曰:“望陛下忍数日之辱,维将使社稷危而复安,日月幽而复明。必不使汉室终灭也。”
종회가 성도에 들어가서, 등애의 군대를 모두 장악하자 위엄과 명성이 크게 진동했다. 이에 강유에게 말하기를, “내가 오늘에서야 비로소 평생의 소원을 이루었소.”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옛날 한신이 괴통의 (삼분 천하 하라는) 말을 듣지 않다가, 미앙궁에서 화를 입었소. 월나라의 대부 문종이 오호에서 범려의 (관직에서 물러나자는) 말을 듣지 않다가 마침내 칼에 엎어져 자결해 죽었소. 이 두 사람이 공적과 명성이 어찌 빛나지 않았겠소? 다만 그들은 이해득실에 밝지 못해, 기미를 일찌감치 알아차리지 못했던 것이오. 이제 공께서 커다란 공적을 세워서 위세가 그 주군을 흔들거늘, 어찌하여 배를 띄워 흔적 없이 사라지거나, 아미산의 고개에 올라가 적송자(중국 고대의 신선)과 더불어 노닐 생각을 하지 않으시오?" 했다. 종회가 웃으며 말하기를, "그대의 말씀이 틀렸소. 내 나이 아직 마흔이 안 되어서, 바야흐로 나아가 얻기를 생각하거늘, 어찌 그렇게 물러나 쉬는 것을 본받겠소?" 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만약 물러나 쉴 것이 아니라면, 어서 좋은 계책을 도모해야 할 것인데, 이는 명공(그대의 존칭)의 지혜와 힘으로 할 수 있으니, 이 노부(늙은이)의 말을 번거롭게 듣지 마시오." 했다. 종회가 손뼉을 치며 크게 웃으며 말하기를, "백약께서 내 마음을 아시는구려!" 하고, 두 사람이 이로부터 매일 대사를 상의했다. 강유가 은밀히 후주에게 글을 써서 말하기를, “바라옵건대 폐하께서 며칠만 치욕을 참으시면 제가 곧 종묘사직의 위기를 다시 안정시키고, 어두워진 해와 달도 다시 밝게 만들어, 반드시 한나라 황실을 사라지지 않게 만들겠습니다.”했다.
却说,钟会正与姜维谋反,忽报司马昭有书到。会接书。书中言:“吾恐司徒收艾不下,自屯兵于长安;相见在近,以此先报。”会大惊曰:“吾兵多艾数倍,若但要我擒艾,晋公知吾独能办之。今日自引兵来,是疑我也!”遂与姜维计议。维曰:“君疑臣则臣必死,岂不见邓艾乎?”会曰:“吾意决矣!事成则得天下,不成则退西蜀,亦不失作刘备也。”维曰:“近闻郭太后新亡,可诈称太后有遗诏,教讨司马昭,以正弑君之罪。据明公之才,中原可席卷而定。”会曰:“伯约当作先锋。成事之后,同享富贵。”维曰:“愿效犬马微劳,但恐诸将不服耳。”会曰:“来日元宵佳节,于故宫大张灯火,请诸将饮宴。如不从者尽杀之。”维暗喜。
한편, 종회가 강유와 더불어 반역을 모의하는데, 갑자기 보고하기를, 사마소의 서신이 왔다고 했다. 종회가 서신을 받아 읽으니, 서신에 이르기를, “나는 사도(종회)가 등애를 잡지 못할까 걱정하여, 친히 장안에 병력을 주둔했소. 서로 가까이서 보게 됐으니, 먼저 이렇게 알리오." 했다. 종회가 크게 놀라 말하기를, “내가 등애보다 병력이 몇 배나 많았으니, 나를 하여금 등애를 잡게 할 생각뿐이었다면, 진공(사마소)은 내가 홀로 처리할 수 있음을 알았을 텐데, 오늘 스스로 병력을 끌고 오다니, 이는 나를 의심해서요." 했다. 이에 강유와 의논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주군이 신하를 의심하면 신하는 죽는 법이오. 어찌 등애를 보지 않았소?"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내 뜻은 결정됐소. 일을 이루면 천하를 얻고 이루지 못하면 서촉으로 퇴각하겠지만, 또한 유비처럼은 되지 않겠소."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요즘 듣으니 (위나라) 곽 태후가 얼마 전 별세했소. 태후가 남긴 조서라고 꾸며서, 사마소를 토벌하여 그가 임금을 시해한 죄를 묻는 것이 좋겠소. 명공의 재능이라면, 중원을 석권하고 평정할 수 있소."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백약께서 선봉을 맡아주시오. 대사를 이룬 뒤 함께 부귀를 누립시다."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바라건대 개와 말의 작은 수고라도 마다하지 않겠소. 다만 장수들이 따르지 않을까 걱정이오."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내일이 대보름 명절이오. 고궁에서 크게 등불을 밝히고, 장수들을 불러 주연을 갖겠소. 복종하지 않는 자들은 모조리 죽이겠소." 했다. 강유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次日,会、维二人请诸将饮宴。数巡后,会执杯大哭。诸将惊问其故,会曰:“郭太后临崩有遗诏在此,为司马昭南阙弑君,大逆无道,早晚将篡魏,命吾讨之。汝等各自佥名,共成此事。”众皆大惊,面面相觑。会拔剑出鞘曰:“违令者斩!”众皆恐惧,只得相从。画字已毕,会乃困诸将于宫中,严兵禁守。维曰:“我见诸将不服,请坑之。”会曰:“吾已令宫中掘一坑,置大棒数千;如不从者,打死坑之。”
다음날, 종회와 강유 두 사람이 장수들을 청해 주연을 벌였다. 술잔이 몇 순배 돌자, 종회가 술잔을 잡고 크게 곡했다. 장수들이 놀라서 그 까닭을 물으니, 종회가 말하기를, "곽 태후께서 붕어하시면서 남긴 조서가 내게 있소. 태후께서는 사마소가 남궐에서 임금을 시해하고 대역무도하니 조만간 위나라를 찬탈할 것이라고 하시고, 내게 명하여 그를 토벌하라 하셨소. 그대들도 모두 서명하고 함께 이 일을 이뤄야겠소." 했다. 사람들이 모두 크게 놀라 서로 얼굴만 쳐다보며 눈치를 보았다. 종회가 칼집에서 칼을 뽑아들고 말하기를, "명령을 어기는 자는 참할 것이다!" 하니, 모두 두려워하면서 어쩔 수 없이 복종하여 서명을 마쳤다. 종회가 장수들을 궁중에 가두고 군사를 배치해 지키게 했다. 강유가 말하기를, "내가 보니, 장수들이 복종하지 않으니, 구덩이에 파묻어 죽이시오." 하니, 종회가 말하기를, "내가 이미 궁중에 구덩이를 하나 파두고, 큰 몽둥이 수천 개를 준비했소. 복종하지 않는 자는 때려 죽여서 구덩이에 묻겠소.”했다.
时有心腹将丘建在侧。建乃护军胡烈部下旧人也,时胡烈亦被监在宫。建乃密将钟会所言,报知胡烈。烈大惊,泣告曰:“吾儿胡渊领兵在外,安知会怀此心耶?汝可念向日之情,透一消息,虽死无恨。”建曰:“恩主勿忧,容某图之。”遂出告会曰:“主公软监诸将在内,水食不便,可令一人往来传递。”会素听丘建之言,遂令丘建监临。会分付曰:“吾以重事托汝,休得泄漏。”建曰:“主公放心,某自有紧严之法。”建暗令胡烈亲信人入内,烈以密书付其人。其人持书火速至胡渊营内,细言其事,呈上密书。渊大惊,遂遍示诸营知之。
이때 심복 장수 구건이 곁에 있었는데, 구건은 호군 호열의 옛 부하였다. 그때 호열도 궁중에 갇히자, 구건이 종회의 말을 몰래 호열에게 알려주었다. 호열이 크게 놀라 눈물을 흘리며 고하기를, “내 아들 호연이 군사를 거느리고 바깥에 있는데, 어찌 종회가 이런 마음을 품은 줄 알겠소? 그대가 지난날의 정을 생각해서 이 소식을 (아들에게) 전해주면, 죽어도 한이 없겠소.”하니, 구건이 말하기를, “은혜로운 주인께서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제가 해보겠습니다.”했다. 이에 밖으로 나가서 종회에게 고하기를, “주공께서 장수들을 안에 가두어 놓으셨는데, 먹고 마시는 것이 불편합니다. 한 사람을 시켜서 왕래하며 전달하게 하십시오.”하니, 종회가 평소 구건의 말을 들었기에, 구건에게 감독하라고 했다. 종회가 분부하기를, “내가 중대한 일을 그대에게 맡겠으니, 누설하지 마시오.”하니, 구건이 말하기를, “주공께서는 마음을 놓으십시오. 제가 삼엄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했다. 구건이 몰래 호열의 심복을 안으로 들여보내자 호열이 밀서를 그 사람에게 부쳤다. 그 사람이 밀서를 가지고 부리나케 호연의 영채로 달려가서, 그 일을 자세히 말하고 밀서를 바쳤다. 호연이 크게 놀라, 마침내 여러 영채에 이것을 돌려서 알렸다.
众将大怒,急来渊营商议曰:“我等虽死,岂肯从反臣耶?”渊曰:“正月十八日中,可骤入内,如此行之。”监军卫瓘深喜胡渊之谋,即整顿了人马,令丘建传与胡烈。烈报知诸将。却说钟会请姜维问曰:“吾夜梦大蛇数千条咬吾,主何吉凶?”维曰:“梦龙蛇者,皆吉庆之兆也。”会喜,信其言,乃谓维曰:“器仗已备,放诸将出问之,若何?”维曰:“此辈皆有不服之心,久必为害,不如乘早戮之。”会从之,即命姜维领武士往杀众魏将。维领命,方欲行动,忽然一阵心疼,昏倒在地;左右扶起,半晌方苏。忽报宫外人声沸腾。会方令人探时,喊声大震,四面八方,无限兵到。维曰:“此必是诸将作恶,可先斩之。”
장수들이 크게 노하여 호연의 군영으로 달려와서 상의해 말하기를, "우리가 죽더라도 어찌 반역의 신하를 따르겠소?" 하니, 호연이 말하기를, "정월 18일에 사람들을 이끌고 몰려 들어가 이렇게 합시다." 했다. 감군 위관이 호연의 계책을 아주 좋아하여, 즉시 인마를 정돈하고, 구건으로 하여금 호열에게 전하게 했다. 호열이 장수들에게도 알렸다. 한편, 종회는 강유를 불러 묻기를, "내가 어젯밤 꿈에, 큰 뱀 수천 마리가 나를 물었는데 무슨 길흉의 징조요?" 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꿈에서 용과 뱀은 모두 길하고 경사스러운 징조요." 했다. 종회가 기뻐하며 그 말을 믿고 강유에게 말하기를, "무기를 이미 준비했으니, 장수들을 나오게 해서 물어보는 것이 어떻겠소?" 하니, 강유가 말하기를, "이들 무리가 모두 불복하는 마음을 품어, 오래 두면 반드시 해가 될 것이니, 일찌감치 죽이는 것이 낫소." 했다. 종회가 그 말에 따라, 강유에게 무사들을 거느리고 위나라 장수들을 죽이러 가라고 명했다. 강유가 명을 받들어 움직이려는데, 갑자기 가슴에 통증이 와서 땅바닥으로 쓰러졌다. 좌우에서 부축해 일으키자 한참 뒤에야 깨어났다. 그런데 보고하기를, 궁궐 밖에서 사람들 소리가 요란하다고 했다. 종회가 사람들을 시켜 알아보는데, 함성이 크게 울리고, 사방팔방에서 끝없이 병사들이 몰려왔다. 강유가 말하기를, “이것은 장수들이 난을 일으킨 것이 틀림없으니, 먼저 베어버려야겠소.”했다.
忽报兵已入内。会令闭上殿门,使军士上殿屋以瓦击之,互相杀死数十人。宫外四面火起,外兵砍开殿门杀入。会自掣剑立杀数人,却被乱箭射倒。众将枭其首。维拔剑上殿,往来冲突,不幸心疼转加。维仰天大叫曰:“吾计不成,乃天命也!”遂自刎而死。时年五十九岁。宫中死者数百人。卫瓘曰:“众军各归营所,以待王命。”魏兵争欲报仇,共剖维腹,其胆大如鸡卵。众将又尽取姜维家属杀之。邓艾部下之人,见钟会、姜维已死,遂连夜去追劫邓艾。早有人报知卫瓘。瓘曰:“是我捉艾;今若留他,我无葬身之地矣。”护军田续曰:“昔邓艾取江油之时,欲杀续,得众官告免。今日当报此恨!”
갑자기 누군가 벌써 병사들이 들어왔다고 알렸다. 종회가 영을 내려 궁전 문을 닫게 하고, 군사들을 궁전 지붕으로 올려보내 기왓장으로 공격했다. 이렇게 서로 수십 명을 죽였다. 궁궐 밖 사방에서 불길이 치솟고, 외부 병력이 궁전 문을 부수고 쇄도해 들어왔다. 종회가 친히 검을 뽑아들고 몇 명을 죽이지만, 마침내 어지러이 퍼붓는 화살을 맞고 쓰러졌다. 장수들이 종회의 목을 베어 매달았다. 강유가 검을 뽑아들고 궁전에 올라가 좌충우돌하지만, 불행히도 가슴의 통증이 심해졌다. 강유가 하늘을 우러러 크게 외치기를, "내 계책이 실패하는 것도 천명이구나!" 하고, 이에 스스로 목을 베어 죽으니, 이때 나이가 59세였다. 궁중에서 죽은 사람이 수백 명에 이르렀다. 위관이 말하기를, "군사들은 각각 진영으로 돌아가 왕명을 기다리라." 했다. 위나라 군사들이 앞다퉈 복수하고자 함께 강유의 배를 가르고 보니, 쓸개의 크기가 달걀만 했다. 장수들이 강유의 가족도 모두 잡아 죽였다. 등애의 부하들은 종회와 강유가 죽은 것을 보고, 밤새 뒤쫓아 등애를 빼앗으려 했다. 어느새 어떤 사람이 위관에게 알리자, 위관이 말하기를, "내가 등애를 체포했는데, 지금 만약 그를 살려두면, 나는 장례를 치룰 땅도 없겠구나." 하니, 호군 전속이 말하기를, "지난날 등애가 강유(江油)를 점령할 때 저를 죽이려 했는데, 관리들이 말려서 겨우 살았습니다. 오늘 그 원한을 갚겠습니다." 했다.
瓘大喜,遂遣田续引五百兵赶至绵竹,正遇邓艾父子放出槛车,欲还成都。艾只道是本部兵到,不作准备;欲待问时,被田续一刀斩之。邓忠亦死于乱军之中。后人有诗叹邓艾曰:“自幼能筹画,多谋善用兵。凝眸知地理,仰面识天文。马到山根断,兵来石径分。功成身被害,魂绕汉江云。”又有诗叹钟会曰:“髫年称早慧,曾作秘书郎。妙计倾司马,当时号子房。寿春多赞画,剑阁显鹰扬。不学陶朱隐,游魂悲故乡。”又有诗叹姜维曰:“天水夸英俊,凉州产异才。系从尚父出,术奉武侯来。大胆应无惧,雄心誓不回。成都身死日,汉将有余哀。”
위관이 크게 기뻐하며, 전속에게 군사 5백을 주어 면죽까지 추격하게 했다. 마침 등애 부자가 함거에서 풀려나와 성도로 돌아오려던 참이어서, 등애는 휘하 군사들이 도달한 줄 알고 대비하지 않았다. 등애가 기다려서 묻는 순간, 전속이 한칼에 베었다. 등충도 어지럽게 싸우는 중에 죽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등애를 한탄하기를, “어려서부터 능히 계책을 내고, 꾀가 많아 용병을 잘했네. 응시하면 지리를 알고, 얼굴을 들어 보면 천문을 알았네. 말이 달려오는데 산기슭이 끊기고, 군사가 몰려오는데 돌길이 갈라지네. 공을 이루었지만 몸이 살해되니, 그 넋이 한강의 구름으로 떠도네.”했다. 또한 종회를 한탄하는 시에 이르기를, “어린 시절에는 신동이라고 칭송받고, 일찍이 비서랑이 되었네. 묘책으로 사마씨의 총애를 받아, 당시에 장자방이라고 일컬었네. 수춘에서 많은 계책을 내었고, 검각에서 하늘의 매처럼 무위를 떨쳤네. 그러나 도주공(범여)의 숨는 법을 배우지 못해, 그 넋이 떠돌며 고향을 그리네.”했다. 또 강유를 탄식하는 시에 이르기를, “천수에서 영특함을 과시하고, 양주에서 빼어난 재주를 드러냈네. 혈통은 상부 강태공을 따라서 나왔고, 병법은 제갈무후를 모시며 배웠네. 대담하여 무서워하는 것이 없었고, 웅대한 결심으로 맹세하여 돌아가지 않았네. 성도에서 죽던 날에, 한나라 장수들이 슬퍼해 마지 않았네.”했다.
却说,姜维、钟会、邓艾已死,张翼等亦死于乱军之中。太子刘璿、汉寿亭侯关彝,皆被魏兵所杀。军民大乱,互相践踏,死者不计其数。旬日后,贾充先至,出榜安民。方始宁靖。留卫瓘守成都,乃迁后主赴洛阳。止有尚书令樊建、侍中张绍、光禄大夫谯周、秘书郎郤正等数人跟随。廖化、董厥皆托病不起,后皆忧死。时魏景元五年改为咸熙元年,春三月,吴将丁奉见蜀已亡,遂收兵还吴。中书丞华覈奏吴主孙休曰:“吴、蜀乃唇齿也,唇亡则齿寒;臣料司马昭伐吴在即,乞陛下深加防御。”休从其言,遂命陆逊子陆抗为镇东大将军,领荆州牧,守江口;左将军孙异守南徐诸处隘口;又沿江一带,屯兵数百营,老将丁奉总督之,以防魏兵。
한편, 강유, 종회, 등애가 이미 죽고, 장익을 비롯한 사람들도 난군 속에서 죽었다. 태자 유선(劉璿)과 한수정후 관이도 위나라 군사들에게 살해되었다. 군사와 백성들이 큰 혼란에 빠져 달아나다가 서로 짓밟혀 죽은 이들이 무수했다. 열흘 뒤에 가충이 먼저 와서, 방을 붙여서 백성들을 안심시키자, 비로소 민심이 안정되었다. 위관을 남겨서 성도를 지키게 하고, 후주를 데리고 낙양으로 갔다. 겨우 상서령 번건, 시중 장소, 광록대부 초주, 비서랑 극정 등 몇 사람이 후주를 수행했다. 요화와 동궐은 모두 병을 핑계로 나오지 않다가, 그 뒤 울분으로 죽었다. 이때가 위나라 경원 5년인데, 함희 원년으로 바꾸었다. 봄 3월에 오나라 장수 정봉이 촉나라가 이미 멸망한 것을 보고, 군사를 거두어 오나라로 돌아갔다. 중서승(중서성 차관, 국정 참모) 화핵이 오나라 군주 손휴에게 아뢰기를, “오나라와 촉나라는 입술과 이의 관계입니다. ‘입술이 없어지면 이가 시리다’고 하였습니다. 신이 헤아려보건대, 사마소가 곧 오나라를 정벌할 것이니, 폐하께서 방어책을 단단히 세우소서.”하니, 손휴가 이를 따라, 육손의 아들 육항을 진동대장군으로 임명해서 형주목(형주 지사)으로 삼고 장강 어귀를 지키게 하고, 좌장군 손이로 하여금 남서 여러 곳의 험한 길목을 지키게 했다. 또한 장강 연안 일대 수백 곳의 군영에 둔병하고, 노장 정봉이 총지휘해서 위나라 군사를 막았다.
建宁太守霍戈闻成都不守,素服望西大哭三日。诸将皆曰:“既汉主失位,何不速降?”弋泣谓曰:“道路隔绝,未知吾主安危若何。若魏主以礼待之,则举城而降,未为晚也;万一危辱吾主,则主辱臣死,何可降乎?”众然其言,乃使人到洛阳,探听后主消息去了。且说,后主至洛阳时,司马昭已自回朝。昭责后主曰:“公荒淫无道,废贤失政,理宜诛戮。”后主面如土色,不知所为。文武皆奏曰:“蜀主既失国纪,幸早归降,宜赦之。”昭乃封禅为安乐公,赐住宅,月给用度,赐绢万匹,僮婢百人。子刘瑶及群臣樊建、谯周、郤正等,皆封侯爵。后主谢恩出内。昭因黄皓蠹国害民,令武士押出市曹,凌迟处死。
(촉나라) 건녕태수 곽과는 성도를 지켜내지 못했다는 소식을 듣고, 소복을 입고 서쪽을 바라보며 사흘 동안 크게 곡했다. 여러 장수가 모두 말하기를, “이미 한나라의 임금도 자리를 잃었거늘, 어찌 빨리 항복하지 않으십니까?”하니, 곽가가 눈물을 흘리며 일러 말하기를, “도로가 막히고 끊어져서, 아직 우리 임금의 안위가 어떠한지 알지 못하지 않소? 위나라 임금이 우리 임금을 예우한다면, 그때 성을 바치며 항복해도 늦지 않소. 만일 우리 임금을 욕되게 한다면, 임금이 치욕을 겪을 때 신하는 죽어야 마땅하니, 어찌 항복하겠소?”했다. 사람들이 그 말을 옳다고 여겨, 낙양으로 사람을 보내어 후주의 소식을 탐지했다. 한편, 후주가 낙양에 도착하니, 사마소가 이미 조정으로 돌아왔다. 사마소가 후주를 책망하기를, “공께서 황음무도하여 어진 이들을 내쫓고 정치를 그르쳤으니, 이치로 따지자면 마땅히 죽여야겠소 .”하니, 후주가 얼굴이 흙빛이 되어 어쩔 줄을 몰랐다. 문무 관리가 모두 아뢰기를, “촉나라 군주가 이미 나라를 잃었습니다. 다행히 일찍 투항했으니 사면해주십시오.”하니, 이에 사마소가 유선을 안락공으로 봉하고, 주택을 하사했다. 달마다 쓸 돈을 주고, 비단 1만 필과 노비 1백 인을 내렸다. 아들 유요와 신하 번건, 초주, 극정 등을 모두 후작에 봉했다. 후주가 은덕에 감사하며 떠났다. 사마소는 황호가 나라를 좀먹고 백성을 해쳤다고 무사들을 시켜 저잣거리로 끌어내 능지처참(찢어죽임)했다.
时霍弋探听得后主受封,遂率部下军士来降。次日,后主亲诣司马昭府下拜谢。昭设宴款待,先以魏乐舞戏于前,蜀官感伤,独后主有喜色。昭令蜀人扮蜀乐于前,蜀官尽皆堕泪,后主嬉笑自若。酒至半酣,昭谓贾充曰:“人之无情,乃至于此!虽使诸葛孔明在,亦不能辅之久全,何况姜维乎?”乃问后主曰:“颇思蜀否?”后主曰:“此间乐,不思蜀也。”
이때 곽과는 후주가 책봉을 받은 것을 듣고, 부하 군사를 가느리고 투항했다. 다음날, 후주가 몸소 사마소의 부중으로 찾아가 감사의 예를 표했다. 사마소가 연회를 베풀어 환대했다. 먼저 위나라 음악에 맞추어 앞에서 춤을 추자, 촉나라 관리들은 슬퍼하는데, 홀로 후주만 기쁜 얼굴이었다. 사마소가 촉나라 사람들을 시켜 앞에서 촉나라 음악을 연주하게 하니, 촉나라 관리들이 모두 눈물을 흘리지만, 후주는 아무렇지도 않게 실없이 웃었다. 술이 얼근히 취하자, 사마소가 가충에게 말하기를, “사람이 무정해도 어찌 이 지경이란 말이오! 비록 제갈공명이 살아 있더라도, 그를 보좌해 오래 지키기 어려울 텐데, 하물며 강유가 어찌하겠소?”했다. 이에 후주에게 묻기를, “촉나라 생각이 많이 나지 않으시오?”하니, 후주가 말하기를, “요즘 즐거워서, 촉나라 생각이 나지 않소.”했다.
须臾,后主起身更衣,郤正跟至厢下曰:“陛下如何答应不思蜀也?徜彼再问,可泣而答曰:先人坟墓,远在蜀地,乃心西悲,无日不思。晋公必放陛下归蜀矣。”后主牢记入席。酒将微醉,昭又问曰:“颇思蜀否?”后主如郤正之言以对,欲哭无泪,遂闭其目。昭曰:“何乃似郤正语耶?”后主开目惊视曰:“诚如尊命。”昭及左右皆笑之。昭因此深喜后主诚实,并不疑虑。后人有诗叹曰:“追欢作乐笑颜开,不念危亡半点哀。快乐异乡忘故国,方知后主是庸才。”
잠시 뒤, 후주가 몸을 일으켜 옷을 갈아입으러 가자, 극정이 행랑까지 뒤따라와 말하기를,
“폐하께서는 어찌 촉나라 생각이 나지 않는다고 응답하십니까? 그가 다시 묻거든, 눈물을 흘리며, ‘선조의 분묘가 멀리 촉나라 땅에 있으니, 마음속으로 서촉을 그리워해서 하루도 생각하지 않는 날이 없습니다’라고 하십시오. 진공(사마소)이 틀림없이 폐하를 풀어주어 촉나라로 돌려보낼 것입니다.”했다. 후주가 마음속 깊이 새기고 자리로 돌아왔다. 술이 좀 취하자, 사마소가 또 묻기를, “촉나라 생각이 많이 나지 않으시오?”하니, 후주가 극정의 말대로 대답하며, 소리내어 울려고 하지만 눈물이 나지 않아 눈을 감았다. 사마소가 말하기를,“어째서 극정의 말과 비슷하오?”하니, 후주가 놀라서 눈을 뜨고 바라보며 말하기를, “참으로 말씀하신 대로요.”했다. 사마소와 좌우의 사람들이 모두 웃었다. 사마소가 이 때문에 후주를 정직하다고 여기고 아주 기뻐하여 전혀 의심하지 않았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환락을 추구해 즐기면서 활짝 웃을 따름이니, 망한 것도 모르고 조금도 슬퍼하지 않는구나. 타향에서 쾌락을 즐기면서 고국을 잊어버리니, 비로소 후주가 멍청이라는 것을 알겠구나.”했다.
却说朝中大臣因昭收川有功,遂尊之为王,表奏魏主曹奂。时奂名为天子,实不能主张,政皆由司马氏,不敢不从,遂封晋公司马昭为晋王,谥父司马懿为宣王,兄司马师为景王。昭妻乃王肃之女,生二子:长曰司马炎,人物魁伟,立发垂地,两手过膝,聪明英武,胆量过人;次曰司马攸,情性温和,恭俭孝悌,昭甚爱之,因司马师无子,嗣攸以继其后。昭常曰:“天下者,乃吾兄之天下也。”
한편, 조정 대신들은 사마소가 서천을 점령하고 공을 세웠으니 그를 왕으로 높이라고, 위나라 군주 조환에게 표를 올려 상주했다. 이때 조환은 명색은 천자이지만, 실제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가 없고, 정치는 모두 사마씨에게 장악됐다. 감히 따르지 않을 수가 없어, 마침내 진공 사마소를 진왕으로 책봉하고, 부친 사마의를 선왕으로, 형 사마사를 경왕으로 추증했다. 사마소의 아내는 왕숙의 딸인데, 아들 둘을 낳았다. 맏이는 사마염인데, 인물이 훤칠하게 커서 일어서면 수염이 바닥에 닿고, 양손은 무릎 아래까지 내려왔다. 총명하고 무예가 출중하며, 담력이 남달랐다. 둘째는 사마유인데, 성정이 온화하고, 공손하고 검소하며, 부모에게 효도하고 형제간의 우애가 깊으므로, 사마소가 몹시 아꼈다. 사마사에게 아들이 없자, 사마유를 양자로 삼아 사마사의 뒤를 잇게 했다. 사마소는 항상 말하기를, “천하는 곧 내 형의 천하다.”라고 했다.
于是司马昭受封晋王,欲立攸为世子。山涛谏曰:“废长立幼,违礼不祥。”贾充、何曾、裴秀亦谏曰:“长子聪明神武,有超世之才;人望既茂,天表如此:非人臣之相也。”昭犹豫未决。太尉王祥、司空荀顗谏曰:“前代立少,多致乱国。愿殿下思之。”昭遂立长子司马炎为世子。大臣奏称:“当年襄武县,天降一人,身长二丈余,脚迹长三尺二寸,白发苍髯,着黄单衣;裹黄巾,挂藜头杖,自称曰:吾乃民王也。今来报汝:天下换主,立见太平。如此在市游行三日,忽然不见。此乃殿下之瑞也。殿下可戴十二旒冠冕,建天子旌旗,出警入跸,乘金根车,备六马,进王妃为王后,立世子为太子。”
이에 사마소가 진왕으로 책봉 받고, 사마유를 세자로 세우려 했다. 산도가 간하기를, “장자를 폐하고 어린 동생을 세우는 것은 예의에 어긋나고 상서롭지 못합니다.”하니, 가충, 하증, 배수도 간하기를, “장자가 총명하고 씩씩하여 뛰어난 재능을 가졌습니다. 사람들의 바라는 바가 이미 무성하고, 하늘의 뜻도 이와 같으니, 결코 신하가 될 상이 아닙니다.”하니, 사마소가 주저하며 결단하지 못했다. 태위 왕상과 사공 순의가 간하기를, “지난 시대에 어린 이를 옹립해서 나라가 어지러워진 적이 많습니다. 바라옵건대 전하께서 헤아려주소서.”하니, 사마소가 이에 장자 사마염을 세자로 세웠다. 대신이 아뢰기를, “올해 들어 양무현에서 하늘로부터 한 사람이 내려왔는데, 키가 두 길이 넘고 발자국이 3척 2촌이었습니다. 그리고 머리가 희고 수염이 푸른데, 누런 홑옷을 입고 누런 두건을 쓰고, 명아주 지팡이를 짚었습니다. 그는 스스로 칭하기를, ‘나는 바로 백성의 왕이다. 지금 너희에게 알리러 왔노니, 천하가 임금을 바꾸면 곧 태평세월이 올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이렇게 저자에 머물며 사흘을 돌아다니다가 홀연히 사라졌습니다. 이것은 바로 전하께 상서로운 일입니다. 전하께서 열두 줄 면류관을 쓰시고, 천자의 깃발을 세우며 출입에 통행을 통제하고 황제의 수레를 타시고, 여섯 마리의 말로 끌게 하십시오. 왕비를 왕후로 높이시고, 세자를 태자로 세우십시오.”했다.
昭心中暗喜;回到宫中,正欲饮食,忽中风不语。次日,病危,太尉王祥、司徒何曾、司马荀顗及诸大臣入宫问安,昭不能言,以手指太子司马炎而死。时八月辛卯日也。何曾曰:“天下大事,皆在晋王;可立太子为晋王,然后祭葬。”是日,司马炎即晋王位,封何曾为晋丞相,司马望为司徒,石苞为骠骑将军,陈骞为车骑将军,谥父为文王。
사마소가 마음속으로 기뻐했다. 궁중으로 돌아와서 술을 마시려던 참에, 갑자기 중풍이 와서 말을 못했다. 다음날 병세가 위중해져서 태위 왕상, 사도 하증, 사마 순의와 여러 대신이 궁궐로 들어와 문안을 올리지만, 사마소가 말을 할 수 없어서 손으로 태자 사마염을 가리키고 죽었다. 이때가 8월 신묘일이었다. 하증이 말하기를, “천하의 대사가 모두 진왕에게 달려 있습니다. 태자를 진왕으로 옹립하고, 그런 뒤에 장례를 치러야 합니다.”했다. 이날 사마염이 진왕에 즉위하고, 하증을 진의 승상으로, 사마망을 사도로, 석포를 표기장군으로, 진건을 거기장군으로 임명하고, 부친을 문왕으로 추증했다.
安葬已毕,炎召贾充、裴秀入宫问曰:“曹操曾云:若天命在吾,吾其为周文王乎!果有此事否?”充曰:“操世受汉禄,恐人议论篡逆之名,故出此言。乃明教曹丕为天子也。”炎曰:“孤父王比曹操何如?”充曰:“操虽功盖华夏,下民畏其威而不怀其德。子丕继业,差役甚重,东西驱驰,未有宁岁。后我宣王、景王,累建大功,布恩施德,天下归心久矣。文王并吞西蜀,功盖寰宇。又岂操之可比乎?”炎曰:“曹丕尚绍汉统,孤岂不可绍魏统耶?”贾充、裴秀二人再拜而奏曰:“殿下正当法曹丕绍汉故事,复筑受禅坛,布告天下,以即大位。”
사마소를 안장한 뒤에, 사마염이 가충과 배수를 궁궐로 불러들여 묻기를, “조조가 일찍이 말하기를, ‘만약 천명이 내게 있다면, 나는 아마도 주나라 문왕과 같겠지?’라고 말했다는데, 과연 이런 일이 있었소?”하니, 가충이 말하기를, “조조는 집안 대대로 한나라의 녹을 받던 처지라, 사람들에게 그가 찬역을 했다는 악명을 들을까 두려워서, 그런 말을 한 것입니다. 이에 조비에게 천자가 되라고 명확히 지시한 것입니다.”했다. 사마염이 말하기를, “내 부왕을 조조와 비교하면 어떻소?”하니, 가충이 말하기를, “조조는 비록 그 공이 중원을 뒤덮었으나, 백성들이 그 위세를 두려워했지 그 덕을 따른 것은 아니었습니다. 아들 조비가 유업을 계승해서 백성들에게 노역을 막중하게 시키고, 동서로 몰아부치니, 한번도 편안한 시절이 없었습니다. 그 뒤 우리의 선왕(사마의), 경왕(사마사)께서 여러 차례 큰 공을 세우시고, 은덕을 베푸시니, 천하가 마음으로 따른 지 오래입니다. 문왕(사마소)께서 서촉을 병탄하셔서, 그 공이 천하를 덮었으니, 어찌 조조와 비교하겠습니까?”했다. 사마염이 말하기를, “조비가 한나라의 황제 자리를 이었는데, 내가 어찌 위나라의 황제 자리를 잇지 못하겠소?”하니, 가충과 배수 두 사람이 두 번 절하며 아뢰기를, “전하께서 바로 조비가 한나라를 이은 고사를 따라서, 선양을 받을 누대를 다시 짓고, 천하에 포고하여 대위에 오르소서.”했다.
炎大喜,次日带剑入内。此时,魏主曹奂连日不曾设朝,心神恍惚,举止失措。炎直入后宫,奂慌下御榻而迎。炎坐毕,问曰:“魏之天下,谁之力也?”奂曰:“皆晋王父祖之赐耳。”炎笑曰:“吾观陛下,文不能论道,武不能经邦。何不让有才德者主之?”奂大惊,口噤不能言。傍有黄门侍郎张节大喝曰:“晋王之言差矣!昔日魏武祖皇帝,东荡西除,南征北讨,非容易得此天下;今天子有德无罪,何故让与人耶?”炎大怒曰:“此社稷乃大汉之社稷也。曹操挟天子以令诸侯,自立魏王,篡夺汉室。吾祖父三世辅魏,得天下者,非曹氏之能,实司马氏之力也:四海咸知。吾今日岂不堪绍魏之天下乎?”
사마염이 크게 기뻐했다. 다음날 검을 차고 황궁으로 들어갔다. 이때 위나라 황제 조환은 며칠을 잇달아 조회를 열지 못할 정도로 심신이 어지러워서 몸을 제대로 가누지 못하고 있었다. 사마염이 바로 후궁으로 들어가니, 조환이 황망히 용상에서 내려오며 맞이했다. 사마염이 앉은 후에 묻기를. “위나라의 천하는 누구의 힘 덕분입니까?”하니, 조환이 말하기를, “모두 진왕의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은덕일 따름이오.”했다. 사마염이 웃으며 말하기를, “제가 폐하를 살펴보니, 문장으로는 도를 논하지 못하고, 무예로는 나라를 경영하지 못하는데, 어찌 재주와 덕을 갖춘 이에게 양보해서 맡기지 않으십니까?”했다. 조환이 크게 놀라 말문이 막혀서 말을 못했다. 곁에 있던 황문시랑(황제 명령 전달 담당) 장절이 크게 소리치기를, “진왕의 말씀이 틀렸소! 지난날 위나라 무조황제(조조)께서 동쪽을 소탕하고 서쪽을 평정하며, 남쪽을 정벌하고 북쪽을 토벌하여, 결코 쉽게 이 천하를 얻은 것이 아니오. 이제 천자께서 덕은 있으나 허물은 없으신데, 무슨 까닭으로 남에게 양위를 하시겠소?”하니, 사마염이 크게 노해 말하기를, “이 사직은 곧 한나라의 사직이다. 조조가 천자를 끼고 제후들을 호령하고, 스스로 위왕이 되어, 한나라 황실을 찬탈한 것이다. 우리 할아버지와 아버지가 삼세에 걸쳐서 위나라를 도왔으니, 천하를 얻은 것은 조씨의 능력이 아니라, 참으로 사마씨의 능력 덕분이다. 이것을 온 천하가 모두 알고 있는데, 내가 오늘 어찌 위나라의 천하를 이어받지 못하겠느냐?”했다.
节又曰:“欲行此事,是篡国之贼也!”炎大怒曰:“吾与汉家报仇,有何不可!”叱武士将张节乱瓜打死于殿下。奂泣泪跪告。炎起身下殿而去。奂谓贾充、裴秀曰:“事已急矣,如之奈何?”充曰:“天数尽矣,陛下不可逆天,当照汉献帝故事,重修受禅坛,具大礼,禅位与晋王:上合天心,下顺民情,陛下可保无虞矣。”奂从之,遂令贾充筑受禅坛。以十二月甲子日,奂亲捧传国玺,立于坛上,大会文武。后人有诗叹曰:“魏吞汉室晋吞曹,天运循环不可逃。张节可怜忠国死,一拳怎障泰山高。”
장절이 다시 말하기를, “이런 일을 하고자 한다면, 나라를 찬탈하는 역적이다!”하니, 사마염이 크게 노해 말하기를, “내가 한실을 위해 복수하는 것인데, 어찌 못할 것이 있겠느냐!”하고, 무사들에게 소리쳐서 장절을 곤봉으로 마구 때려 궁전에서 죽였다. 조환이 눈물 흘리며 무릎을 꿇고 빌자, 사마염이 몸을 일으켜 궁전을 내려가 떠났다. 조환이 가충과 배수에게 일러 말하기를, “사세가 위급하게 됐으니, 어찌해야겠소?”하니, 가충이 말하기를, “하늘의 운수가 다했으니, 폐하께서 하늘을 거스르지 마시고, 마땅히 한나라 헌제의 고사를 따라서, 다시 수선대를 수리하여 대례를 갖추고 진왕에게 선위하소서. 위로는 하늘의 마음에 합치하고, 아래로는 백성의 심정에 순응하는 것이니, 폐하께서는 옥체를 보전하고 아무 걱정이 없을 것입니다.”했다. 조환이 이를 따라 가충을 시켜 수선단을 짓게 했다. 12월 갑자일에 조환이 친히 전국새(황실의 도장)를 받들고 수선대 위에 서서, 문무 관리를 크게 소집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위나라가 한실을 삼키더니 진나라가 조씨를 삼키네. 하늘의 운수가 돌고 돌아 피할 길이 없구나. 장절이 가련하게 국가를 위해 죽지만, 한낱 주먹으로 어찌 높디높은 태산을 막으랴.”했다.
请晋王司马炎登坛,授与大礼。奂下坛,具公服立于班首。炎端坐于坛上。贾充、裴秀列于左右,执剑,令曹奂再拜伏地听命。充曰:“自汉建安二十五年,魏受汉禅,已经四十五年矣;今天禄永终,天命在晋。司马氏功德弥隆,极天际地,可即皇帝正位,以绍魏统。封汝为陈留王,出就金墉城居止;当时起程,非宣诏不许入京。”奂泣谢而去。太傅司马孚哭拜于奂前曰:“臣身为魏臣,终不背魏也。”炎见孚如此,封孚为安平王。孚不受而退。是日,文武百官,再拜于坛下,山呼万岁。炎绍魏统,国号大晋,改元为泰始元年,大赦天下。魏遂亡。后人有诗叹曰:“晋国规模如魏王,陈留踪迹似山阳。重行受禅台前事,回首当年止自伤。”
진왕 사마염을 단 위에 오르게 하고, 대례를 베풀었다. 조환이 단을 내려가서, 관리의 제복을 갖춰 입고 반열 앞에 서고 사마염이 수선대 위에 단정히 앉았다. 가충과 배수가 좌우에 서서 검을 잡고, 조환에게 명하여 두번 절하고 바닥에 엎드려 명령을 듣게 했다. 가충이 말하기를, “한나라 건안 25년에 위나라가 한나라의 선양을 받은 이래, 이미 45년이 흘렀습니다. 이제 위나라의 복록이 영원히 끝나고, 하늘의 명령이 진나라에 있습니다. 사마씨의 공덕이 널리 퍼져서 천지에 가득하니, 황제의 자리에 즉위하여 위나라의 황통을 이어야 합니다. 그대(조환)를 진류왕으로 봉하니, 황궁을 나가서 금용성(낙양 동북의 작은 성)에 머무시오. 즉시 길을 떠나서, 천자의 조서가 없이는 도성으로 들어오는 것을 불허하오.”했다. 조환이 눈물을 흘리고 인사한 뒤 떠났다. 태부 사마부(사마의의 아우)가 조환 앞에서 소리내어 울며 절하고 말하기를, “위나라의 신하된 몸으로서 끝까지 위나라를 배신하지 않겠습니다.”했다. 사마염이 이러한 사마부의 모습을 보고, 사마부를 안평왕으로 봉하지만, 사마부가 받지 않고 물러났다. 이날 문부 백관이 수선대 아래에서 두번 절하고, 소리높여 만세를 불렀다. 사마염이 위나라의 황통을 이어받아, 국호를 대진(大晉)이라 하고, 연호를 태시 원년으로 바꾸어 천하에 대사면령을 내렸다. 위나라가 마침내 망했다. 뒷사람이 시를 지어 탄식하기를, “진나라는 위나라 왕을 따라서 한 것뿐이니, 진류왕(조환)의 종적도 산양공(한나라 헌제)과 비슷하구나. 수선대에서 옛일을 되풀이하니, 그때를 뒤돌아보면 절로 슬플 뿐이네.”했다.
晋帝司马炎,追谥司马懿为宣帝,伯父司马师为景帝,父司马昭为文帝,立七庙以光祖宗。那七庙?汉征西将军司马钧,钧生豫章太守司马量,量生颍川太守司马隽,隽生京兆尹司马防,防生宣帝司马懿,懿生景帝司马师、文帝司马昭:是为七庙也。大事已定,每日设朝计议伐吴之策。正是:汉家城郭已非旧,吴国江山将复更。
진나라 황제 사마염이 사마의를 선제로, 백부 사마사를 경제로, 부친 사마소를 문제로 추증하고, 일곱 사당을 세워 조상을 빛냈다. 이 일곱 개 사당은 무엇이냐? 한나라 정서장군 사마균, 사마균이 낳은 예장태수 사마량, 사마량이 낳은 영천태수 사마준, 사마준이 낳은 경조윤 사마방, 사마방이 낳은 선제 사마의, 사마의가 낳은 경제 사마사와 문제 사마소, 이렇게 일곱 사당이었다. 대사를 마무리 짓자, 매일 조회를 열어 오나라를 정벌할 계책을 토의했다. 이야말로, 한나라의 성곽이 이미 예전 같지 않은데, 오나라의 강산도 장차 다시 바뀌겠구나.
未知怎生伐吴,且看下文分解。
어떻게 오나라를 정벌할지 모르겠구나. 다음 회를 보면 풀릴 것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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