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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5. 용감한 고딩 헬멧 부대
김해 수로왕비릉 정문 앞 작은 도로변.
정문인 ‘구남문’ 앞쪽에 멍게와 오토바이 헬멧 쓴 ‘어방배달’ 소속 고등학생 한 명이 함께 서서, 길 건너 주차장의 큰 트럭 앞에 있는 괴한 두 명을 주시하며 지원군이 오기를 기다리고 있다.
괴한들은 트럭에서 야구 방망이를 꺼내 들고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저 자식들 연장 들고 오는데 어떡하지? 여기서 시간 끌면 해삼 형님이 크게 다칠 텐데……”
불안해진 멍게가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염려 마세요! 조금만 버티고 있으면 애들 금방 달려올 겁니다.”
헬멧 쓴 짱구가 가죽장갑 낀 주먹을 손바닥에 툭툭 치며 별로 동요하는 기색도 없이 담담하게 말했다.
자기 고등학교에서 주먹깨나 쓰고 실전 경험도 많은 녀석으로 보인다.
“혹시, 고등학생 맞소? 한두 명 와서는 상대하기 어렵지 않을까?”
멍게가 동생뻘 되는 녀석에게 계속 존댓말 쓰기도 그렇고 해서 아예 반말로 물었다.
“예, 고3입니다. 아니에요, 우리 애들 중에 배달 마치고 돌아가던 애들은 다 몰려올 겁니다.”
짱구도 자기 사장 동생이라면서 삼방파 보스를 큰 형님이라 부르는 멍게를 형님이라고 불러야 되겠다 싶던 차에, 잘됐다 싶어 반말하라는 뜻으로 대답했다.
“야, 이 겁대가리 없는 새끼들아! 우리가 누군 줄 알고 감히 덤비겠다는 거야?”
도로를 다 건너온 괴한 중 덩치가 한마디 지껄이며 방망이를 곧추세우고 겁을 줬다.
조금 전에 멍게와 짱구가 나눈 대화 중에 ‘삼방, 최성덕 큰 형님’이라는 말을 엿들었다.
최성덕이 삼방파 보스라는 걸 아는 이놈들은 잠시 멈칫거렸지만, 자기들 조직도 만만치 않은지라 잘됐다 싶어 아예 요절을 내려고 작정한 것이다.
더구나 지금 자기 패거리들이 담장 너머에서 ‘파사석탑’을 도둑질하고 있으니 이놈들을 얼른 처리해야 트럭에 석탑 싣고 철수하는 작업에 지장을 받지 않을 것이다.
“누구기는, 네놈들은 귀한 문화재 도굴하는 버러지만도 못한 양아치 들이지!”
멍게가 동생 같은 짱구 앞에서 주눅 든 모습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써 폼잡으며 맞받아쳤다.
“뭐? 양아치? 이 개새끼들, 몽둥이찜질 맛 좀 볼래?”
덩치보다 더 어깨가 벌어진 떡대가 몽둥이를 치켜들고 인상을 찌푸리며 먼저 다가왔다.
양아치라는 말은 깡패들이 제일 듣기 싫어하는 소리다.
깍두기 머리 멍게는 모르겠지만 헬멧 쓴 놈은 고딩이 같아서 만만하게 보이는 모양이다. 맨손의 두 놈쯤이야 몽둥이 든 자기 두 명이 거뜬히 처치하지 싶은가 보다.
“다 큰 사람이 덩치 값 좀 하시지, 애들처럼 몽둥이를 들고 설치요? 지나가는 개가 웃겠구먼! 킥킥.”
짱구가 당당히 나서 태권도 방어자세를 취하며 어디 한번 때려보라는 듯 비웃었다.
“야, 덩치야! 너는 이쪽으로 와라. 내가 상대해 줄게!”
멍게가 하는 수 없어 잭나이프를 꺼내 들고 소리쳤다. 잭나이프는 서울 이글스파의 필수 휴대품이다.
“어쭈, 이 새끼 봐라! 잭나이프를 다 꺼내 들고 지랄이네? 큭큭.”
덩치가 어이없다는 듯 웃었다. 그러나 순간 긴장하는 모습이 엿보였다.
김해에 있는 조직에서 저 정도로 세게 나오면 하수는 아닌 게 분명하다. 만약 이 젊은 놈이 삼방파 조직원이라면 앞으로 힘든 일이 벌어지겠다는 느낌마저 드는 듯한 표정이다.
“왜, 겁나냐? 덩치 큰 게 겁은 많은 모양이네. 너네 조직은 어딘데 몽둥이를 연장으로 들고 다니냐? 몽둥이파야? 흐흐.”
“몽둥이파? 큭큭. 그럼 너는 잭나이프파겠구나. 그걸 들고 몽둥이를 당해보겠다고?”
“그래, 몽둥이 한번 휘둘러봐라. 내 몸에 닿기도 전에 네 마빡에 내 잭나이프가 꽂혀있을 거니까. 큭큭.”
“이 새끼가 주둥이만 살아서 나불거리네. 이야~압!”
열받은 덩치가 몽둥이를 휘두르며 멍게에게 달려들었다.
“아도, 아도오~”
멍게가 이소룡이 흉내를 내며 고함을 지르고 잽싸게 뒷걸음질로 피해 갔다.
“이 새끼 어딜 도망가? 이리 안 와?”
덩치가 몽둥이만 믿고 멍게를 잡으러 이리저리 따라다녔다. 멍게의 시간 끌기 작전에 말려들었다.
“아찌, 야구는 해봤소? 안타는 쳐봤어? 킥킥. 몸집 보니까 조폭 조직원은 되는 모양인데, 김해는 아니고 어디서 왔노?”
고딩이 짱구도 일부러 반말로 떡대의 약을 올리며, 잽싸게 앞뒤 좌우로 피하면서 시간을 끌었다.
“이, 머리에 피도 안 마른 새파란 놈이 어디서 까불고 지랄이야? 이리 와 새꺄! 헬멧 쓰면 대갈통 안 나갈 줄 아나?”
굼뜬 떡대가 팔팔한 고딩이 짱구를 따라잡아 방망이 맛 보여주기는 어려워 보인다.
-부릉 부릉 부르릉~
바로 그때, 우측 큰길에서 오토바이 한 대가 코너를 돌아 급히 들어섰다.
‘어방배달’ 깃발을 꽂은 짱구의 지원군이다.
-부릉, 부르응 부웅~
-부웅, 부르릉 부웅~
뒤이어 오토바이 두 대가 더 들어온다.
-부릉, 부아앙~
앞선 오토바이가 짱구와 마주 선 방망이 든 떡대에게 급속도로 달려들었다.
“으아앜! 이 새끼들 뭐야?”
몽둥이 든 떡대가 질겁을 하며 급히 피하다가 다리가 꼬여 길바닥에 나뒹굴었다.
-부릉, 부아앙~
-부아앙~ 부웅~
뒤따라온 오토바이 두 대는 멍게와 겨루는 몽둥이 든 덩치가 적군인 줄 금세 알아보고 속도를 높이며 달려들었다.
“으아, 으어엌!”
놀란 덩치는 몽둥이를 내던지고 트럭 쪽으로 줄행랑을 쳤다.
얼른 트럭 운전석으로 올라타고 핸드폰을 꺼내 들었다. 수로왕비릉 안에 있는 대장에게 지원요청을 하려나 보다.
-부릉, 부릉, 부아앙~
오토바이가 연이어 코너를 돌아 들어오기 시작하더니, 금세 열댓 대나 모여들었다.
배달 마치고 본부로 귀사(歸社) 하던 중에 사장인 박강철의 ‘귀사 중인 직원들 수로왕비릉 정문에 집합!’이라는 문자를 보고 달려온 오토바이들이다.
어방배달 오토바이의 3분의 1쯤은 몰려온 것 같다. 수로왕비릉 정문 앞 도로는 금세 오토바이 주차장으로 변해버렸다.
“어방 동생~! 저 안에 형님이 있어! 애들 열명쯤 이쪽으로 보내!”
멍게가 음수대로 달려가며 짱구에게 고함을 질렀다.
해삼이 싸우고 있는 수로왕비릉 담장 안으로 들어가려는 것이다.
“그래요? 야, 열명은 이쪽으로 와라! 저 안에 헹님이 있단다.”
동료들을 손짓으로 부르며 짱구도 멍게의 뒤를 따라 뛰었다.
음수대에 올라선 멍게가 담장너머로 바라보니 해삼이 네놈에게 붙잡혀서 땅바닥에 엎드려있다.
바로 뒤 파사석탑 쪽에서 합류하러 오는 세 놈이 어기적거리며 다가가는 모습도 보인다.
“야이, 새끼들아~!”
멍게가 고함을 지르며 잽싸게 자기가 나올 때 걸쳐놓았던 A자형 사다리를 타고 내려갔다.
“어? 저 새끼, 아까 밖으로 도망쳤던 놈 아니야?”
“뭐야, 저 새끼? 왜 돌아왔어? 얘처럼 완전 또라인가 본데?”
해삼을 붙잡고 있던 녀석들이 어이가 없어 웬일이니 하는 표정을 짓고 히죽거렸다.
“해삼 형님~ 멍게 왔습니다~! 야이, 새끼들아! 이리 와, 나한테 덤벼!”
잭나이프를 꼬나든 멍게가 달려가며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야, 저 새끼 빨리 잡아!”
뒤쪽에서 걸어오던 세 놈 중 한 놈이 옆에 가던 놈들에게 소리쳤다.
“예, 헹님! 야이, 새끼야! 이리 와, 너는 내가 상대해 줄게. 이 겁대가리 없는 또라이 새끼!”
두 놈이 서둘러 멍게에게 뛰어가며 욕을 퍼부었다.
밤중에 파사석탑 도둑질하기도 힘들어 죽겠는데 어디서 거지발싸개 같은 놈 두 녀석이 나타나서 도망갔다가 되돌아오면서 속을 썩이고 있으니 열불이 터지지 않을 수 없다.
저 파사석탑 팔아서 큰돈 들어오면 자기들한테 국물도 조금 떨어질 것으로 기대하고 있는데 말이다.
“야~ 도둑놈들아~! 거기 꼼짝 말고 있어라~!”
멍게를 뒤따라 담장 위로 올라온 짱구가 고함부터 지르고 사다리를 타고 내려온다.
“어? 저 새끼는 또 뭐야? 웬 헬멧까지 쓰고 지랄이야?”
‘지랄’이 이 도둑놈들 유행어인가? 입만 열면 지랄이 나오네. 지랄은 간질을 뜻하는 속어인데, 이왕이면 장티푸스를 이르는 염병으로 바꾸는 게 낫지 않겠나?
“야, 이 양아치 새끼들아~!”
짱구를 뒤따라온 어방배달 동료가 헬멧 쓴 머리를 담장 위로 올리며 고함을 질러댔다.
“어, 어? 헬멧이 또 올라오는데? 이것들 뭐야? 트럭에 있는 자식들은 뭐 하고 있는 거야?”
도둑놈들이 어안이 벙벙하여 주춤거리며 담장 위를 바라봤다.
소리 지른 놈은 벌써 내려왔고, 또 담장 위에 헬멧이 달 뜨듯이 올라온다.
“야, 이리 와서 한 데 뭉쳐! 한두 놈이 아닌 모양이다!”
맨 뒷전에서 지켜보던 도둑놈이 고함을 지르며 자기 패거리를 불러 모았다. 그중에 제일 고참인 모양이다.
“예, 헹님!”
멍게에게 달려가던 두 놈이 복창하고 뒤로 서둘러 물러났다.
해삼을 붙잡고 있던 네 놈도 손을 풀고 허겁지겁 고참 앞으로 모여들었다.
담장 위로 꾸역꾸역 올라와 아래로 내려온 헬멧 쓴 녀석들이 모두 열한 명이나 된다. 멍게까지 합하면 모두 열두 명이다.
“해삼, 형님! 괜찮습니까? 다친 데는 없어요?”
땅바닥에 엎드려있는 해삼에게 달려간 멍게가 부축해 일으키며 울상을 지었다.
“아, 그래 괜찮다. 저 헬멧 쓴 놈들은 다 누고?”
전신을 맞아서 욱신거리는 해삼이 돌아온 멍게를 반기며 뒤따라온 수많은 헬멧을 보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코모도 큰 형님 친구 박강철 사장님 어방배달 애들입니다. 이제 안심하십시오.”
“어방배달? 아, 맞다. 그 오토바이 배달업체 한다 했제?”
우군을 만난 해삼이 안심이 되는지 긴장했던 몸이 풀려 축 늘어졌다.
“해삼, 형님! 힘내세요. 밖에 다섯 명쯤 더 있습니다. 이제 안심하고 일어나 보세요. 얼른 병원부터 가보십시다!”
멍게가 해삼이 죽는 줄 알고 어디 칼자국은 없는지 몸을 앞뒤로 살피며 울부짖었다.
“와~ 와~ 다 때려잡아라~!”
겁 없는 고딩이 헬멧 부대 11명이 놀라서 비실거리는 도둑놈 7명을 향해 달려갔다.
몇 명 고딩이들 손에는 길이 50센티쯤의 쇠파이프가 들려있다. 오토바이 뒤에 달린 어방배달 깃발 꽂이를 뽑아 들고 온 모양이다.
“야, 모두 철수해!”
도둑놈들 고참이 안 되겠다 싶은지 큰 소리로 지시를 내리고는 뒤돌아서 파사석탑을 향해 걸음아 나 살려라 하며 뛰었다.
“와~! 도둑놈 잡아라~!”
용감한 고딩이 헬멧 부대 11명이 조직 폭력배로 보이는 덩치 큰 어른 7명을 함성소리로 물리치고 있다.
“얘들아! 이제 그만하고 저분 모시고 빨리 밖으로 나가자. 경찰에 신고하면 패트롤카 금방 올 거니까 그만 철수하자!”
멍게를 뒤따라왔던 짱구가 동료들을 부르며 지시를 내렸다. 마침 이 녀석이 어방배달 고딩이들 중에 센 주먹에 속하는가 보다.
고딩이들이 우르르 몰려와 해삼을 헹가래 치듯이 들어 올려 사다리로 데려갔다. 앞뒤로 나뉘어 부축해서 사다리에 올리고 담장을 어렵지 않게 넘어갔다.
담장 밖에 있던 헬멧 다섯 명도 달려와 거들었다. 해삼을 헹가래로 들어서 멍게의 트라제 조수석으로 옮겨 실어 앉히고 뒤로 눕혔다.
“어? 그 두 놈은 어디 갔어? 트럭도 안 보이네?”
정신을 가다듬은 멍게가 두리번거리며 짱구에게 물었다.
“아, 우리가 폭행하면 안 되니까 겁만 줘서 걔들 트럭 타고 도망치게 했답니다.”
짱구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아, 그랬어? 잘했다. 그런데, 네 이름이 뭐고?”
멍게가 그제야 대견한 듯 짱구에게 물었다.
“저는 왕재수라고 합니더. 그냥 짱구라고 부르시면 됩니더.”
헬멧이 빙긋 웃으며 대답했다.
“왕재수? 그래, 고맙다 짱구. 내는 형님 모시고 얼른 병원부터 가봐야 되겠다.”
멍게가 싱긋 웃으며 짱구의 어깨를 툭툭 쳐줬다.
“예, 멍게 헹님. 조심해 가십시오. 경찰에는 지금 바로 신고하겠습니다.”
트라제 운전석으로 들어가 앉는 멍게에게 짱구가 작별인사를 했다.
“그래, 짱구 동생! 담에 함 보자. 오늘 넘 수고 많았다. 내가 너네 사장 강철이 형님한테 잘 말씀드릴게. 하하.”
시동을 걸면서 멍게가 환한 미소를 지었다. 제법 의젓해 보인다.
(다음 회는 1월 27일(금)에 연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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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ㅎㅎㅎㅎ~ 금요소설입니다요.
“그래, 짱구 동생! 담에 함 보자. 오늘 넘 수고 많았다. 하하.”
네, 난정 작가님. 금요소설 맞습니다. ㅎㅎ
오랫만에 재밌고 신나는 글 읽었습니다.
네, 뱃사공님. 말씀 감사합니다.
귀여운 "바바" 손주랑 설 명절 즐겁게 잘 보내세요. ^0^
@삼일 이재영 ㅎㅎ우리손자 이름은 문로빈
며느리 이름은 일카이보슬문주민등록상이름이답니다.
@뱃사공 네, 그렇군요.
아빠를 "바바"라고 부르는 손자는 문로빈.
며느님은 일카이보슬-문. (서양식이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