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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4년 마가복음 제 24 강 메시지_아산UBF
십자가에 버림 받으신 하나님의 아들
말씀/ 마가복음 15:1-47
요절/ 마가복음 15: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사랑하는 사람이 고통받는 것은 매우 가슴 아픈 일입니다. 저는 아버지가 간경화로 응급실에 가셨고 고통스러워 하시다 돌아가시는 것을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룻이가 열성경련으로 병원에 입원하는 동안 어떤 고통을 겪는지 옆에서 지켜보았습니다. 슬프고 미안하고 아팠던 그 시간은 저의 기억에서 지워지지 않습니다. 오늘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버림받는 극심한 고통과 극심한 육체적 고통 속에서 십자가에 죽으십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께서 왜 하나님께 버림받고 극심한 고통 속에서 십자가에 죽으시는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오늘 말씀을 통하여 고난받으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예수님을 영접하기를 기도합니다. 우리가 누리는 구원의 은혜 속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의 고난과 희생이 있었음을 깊이 묵상하는 시간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part 1. 죄 없으신 예수님
1절을 보십시오.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대제사장들과 공회원들은 그리스도라 대답한 예수님을 신성모독이라며 사형에 처할 자로 정죄하였습니다. 그러나 로마의 속국인 유대인들에게는 사형집행의 권한이 없었습니다. 종교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죽이고자 새벽에 로마 총독인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들은 빌라도에게 예수님을 넘겨 줄 때 신성모독의 죄를 지었다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혀 죽이기 위하여 자칭 유대인의 왕으로 빌라도에게 고소했습니다. 당시 유대인의 왕이라 하면 반로마 독립운동의 지도자를 가리켰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 고소하면 반로마 역도로서 정치범에 해당하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일 수 있었습니다.
2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빌라도의 첫 번째 심문은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였습니다. 예수님께서 종교 지도자들이 고소한 대로 사람들을 선동하였는지, 또 로마를 향해 반국가적인 행동을 하였는지를 확인하는 질문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 하시며 자신이 유대인의 왕이심을 분명히 시인하셨습니다.
3절에서 5절을 보십시오. 대제사장들은 예수님께서 유죄 판결을 받도록 여러 가지로 고소하였습니다. 빌라도는 예수님에게 자신을 변호할 기회를 주었습니다. 예수님은 죄가 없으시면서도 침묵하셨습니다. 거짓된 고소 앞에서 침묵하는 것은 그 고소를 인정한다는 의미가 됩니다. 빌라도는 사형 판결을 받으러 끌려온 죄인이 자기변호를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놀랍게 여겼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져야한다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을 알기에, 그 뜻 앞에 순종하시기 위해 침묵하셨습니다. 우리의 구원을 위하여 예수님은 침묵하셨습니다.
6절에서 10절을 보십시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심문해 본 결과 예수님에게 아무 죄가 없는 것을 알았습니다. 빌라도는 대제사장들이 시기심 때문에 예수님을 넘겨 준 줄 알았습니다. 예수님에게 죄가 없으면 풀어주면 되는데 빌라도는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을 풀어준다면 종교 지도자들과 관계가 나빠집니다. 앞으로 유대 지역을 안정적으로 다스리려면 종교 지도자들의 협조는 필요합니다. 빌라도는 백성들을 통하여 이 문제를 해결하고자 하였습니다. 유월절에는 백성들의 요구에 따라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가 있었습니다. 빌라도는 민란을 일으키고 살인을 한 바라바를 석방하지 않고 예수님을 석방하고 싶었습니다. 빌라도는 무리에게 예수님을 석방하자고 제안하였습니다.
11절에서 12절을 보십시오.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빌라도는 유대인들이 바라바를 놓아 달라고 할 줄 몰랐습니다. 모인 무리 중에 바라바를 지지하는 셀롯당원들이 있었습니다. 대제사장들이 바라바를 택하도록 충동질하였습니다. 빌라도는 “내가 어떻게 하랴” 말하여 상황을 타협적으로 풀고자 하였습니다. 그리하여 백성들에게 중요한 결정을 미루는 모습을 보였습니다.
13절에서 14절을 보십시오.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빌라도의 질문에 백성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칩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예루살렘에 입성하실 때 “호산나 다윗의 자손이여”라고 환영했던 사람들입니다. 백성들은 진실을 알지 못합니다. 무엇이 진실인가에 대한 관심도 없습니다. 백성들은 정치적 메시야로 기대했던 예수님의 무기력하고 초라한 모습을 보고는 십자가에 못 박으라 소리칩니다.
15절을 보십시오.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자신이 총독으로 있는 동안 소요 사태가 일어나지 않기를 원했습니다. 빌라도는 소요 사태가 일어나면 자신의 정치적 생명과 권력에 문제가 생긴다고 생각했습니다. 빌라도는 법률과 정치학을 공부한 엘리트였지만 세상 지위와 안정을 위하여 양심을 속이고 진리를 버렸습니다. 빌라도는 공정과 정의가 아니라 무리에게 만족을 주기 위하여 예수님께 십자가형을 내렸습니다. 결국,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십자가형을 받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죄가 없으신데 우리를 위해 죄인이 되셨습니다. 하지만 인간은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습니다. 죄를 합리화하고 감추려 합니다. 작은 죄는 죄로 여기지 않습니다. 죄에 대하여 무감각하기까지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외면하고 제멋대로 살아갑니다. 세상 정욕에 눈이 멀어 육신의 쾌락을 추구합니다. 은혜를 받고도 감사할 줄 모르고 세상 욕심을 따라 살아갑니다. 남을 원망하고 불평하고 무기력하게 눕거나 안일을 추구합니다. 나를 자랑하고 유명해지고자 하고 영향력을 높이려 합니다.
우리는 죄를 깨달아야 합니다. 인생의 가장 심각한 문제는 죄 문제입니다. 성경 말씀에 나를 비추어 내 안에 있는 죄를 깨닫게 될 때, 우리는 나를 위해 죄인이 되신 예수님께 감사하게 됩니다.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나를 위해 희생하였음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하여 나의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고 죄가 나를 지배하지 않도록 죄를 멀리하는 인생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part 2. 버림 받으신 예수님
16절에서 24절은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까지 어떤 고난을 겪으셨는지 구체적으로 기록되었습니다. 예수님은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채찍은 여섯 가닥의 가죽끈으로 되어있습니다. 끝에는 날카로운 납덩이나 뼛조각이 달려 있습니다. 군인들이 채찍을 내리칠 때마다 예수님의 살점은 떨어져 나갔고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은 무자비한 채찍질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살가죽이 너덜너덜해지고 알아볼 수 없을 정도로 찢어지고 피로 범벅이 되었습니다. 당시에는 채찍에 맞다가 갈비뼈가 부러지고 내장이 파열되어 죽는 경우도 많았다고 합니다.
다음으로 군인들은 예수님을 희롱했습니다. 그들은 가시로 면류관을 엮어 예수님의 머리에 씌우고 왕이 입는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 날카로운 가시가 예수님의 피부를 뚫고 들어갔습니다. 가시는 우리 인생이 받는 저주를 상징합니다. 죄로 인해 인간이 받아야 할 모든 저주를 예수님께서 대신 머리에 쓰셨습니다. 예수님의 얼굴에는 피가 흘러내렸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께 경례하며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조롱했습니다.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었습니다. 예수님은 최소한의 체면과 자존심마저도 유린당하셨습니다. 군인들은 실컷 희롱을 다 한 후에 예수님의 자색 옷을 벗기고 원래의 옷을 입혀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갔습니다.
죄수들은 자기가 못 박힐 십자가를 지고 골고다 언덕까지 올라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만신창이가 된 몸으로 70kg이나 되는 십자가를 지고 가야 했습니다. 예수님은 몸을 주체하지 못하고 비틀거리다가 쓰러지셨습니다. 군인들은 인정사정없이 채찍을 휘둘렀습니다. 예수님은 다시 일어나 십자가를 지고 가셨습니다. 예수님은 수없이 쓰러지시길 반복하였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는 상태가 아니라 판단했습니다. 한 군인이 옆에 있던 구레네 사람 시몬을 억지로 잡아다가 십자가를 지고 가게 했습니다. 예수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 예수님이 흘린 피와 땀과 눈물로 얼룩진 그 길은 예수님께서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걸어가신 길이었습니다. 다른 죄수들이 지고 가는 십자가는 자기 죄 때문에 지는 십자가이지만 예수님이 지신 십자가는 대속의 십자가였습니다. 우리의 죄와 질병과 가난과 저주와 절망을 대속하기 위한 십자가였습니다.
24절을 보십시오.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군인들은 예수님의 양 손목과 두 발에 굵은 대못을 박았습니다. “쾅, 쾅, 쾅” 망치 소리와 함께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음성이 울려 퍼졌습니다. 예수님은 인간이 고안해 낸 형벌 중에서 가장 악독한 십자가형을 받으십니다.
아무 죄 없으신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심한 고난을 받으시고 십자가에 못 박히셔야 했습니까? 이사야서 53장 5절에서 6절은 말합니다. “그가 찔림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요 그가 상함은 우리의 죄악 때문이라 그가 징계를 받으므로 우리는 평화를 누리고 그가 채찍에 맞으므로 우리는 나음을 받았도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길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모두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 예수님의 머리에는 가시 면류관이 깊이 박혔습니다. 예수님의 손과 발에는 굵은 대못이 관통하여 박혔습니다. 로마 군인이 창으로 깊이 찌른 옆구리에서 물과 피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침 뱉음을 당하고 조롱을 당하며 인격적으로 철저하게 부서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살점이 떨어져 나가는 무서운 채찍질을 맞으셨습니다. 예수님은 바로 “나 때문에” 고난받고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은 누구 때문이 아니라 나의 죄와 허물 때문에, 십자가에 매달려 죽으십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을 과거에 있었던 일로 넘어가서는 안 됩니다. 남의 것이 되어서도 안 됩니다. 막연하게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여 십자가를 지셨다는 사실만으로는 부족합니다. 예수님은 죽어 마땅한 나 때문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분명하게 기억하여야 합니다. 나를 살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25절에서 27절을 보십시오.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예수님은 오전 아홉 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예수님의 죄목은 유대인의 왕, 곧 그리스도였습니다. 그리스도이신 예수님은 이사야의 예언대로 민란을 일으키고 반역을 한 강도 중 하나와 같은 취급을 받으셨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당하는 고통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십자가 위에서 처절한 고통을 맛보고 피를 다 쏟으며 죽게 됩니다. 고통이 얼마나 심한지 십자가에 못 박힌 후 죽기까지 천 번 이상 까무러친다고 합니다. 시편 기자는 그 고통을 다음과 같이 묘사했습니다. “나는 물 같이 쏟아졌으며 내 모든 뼈는 어그러졌으며 내 마음은 밀랍 같아서 내 속에서 녹았으며 내 힘이 말라 질그릇 조각 같고 내 혀가 입천장에 붙었나이다 주께서 또 나를 죽음의 진토 속에 두셨나이다” 고통받으시며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님을 바라보며 우리는 죄가 얼마나 무서운 것인지 깨닫습니다.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하게 이루어지는지 깨닫습니다.
29절에서 32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이 십자가에 매달린 모습을 보고 사람들은 희롱하였습니다. 사람들은 머리를 흔들며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 머리를 흔드는 것은 상대방을 경멸하고 야유하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에게 자신을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말합니다. 그리스도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말합니다.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고통받고 있는 예수님을 악랄하게 괴롭히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지 못하게 하려는 사단의 유혹에 끝까지 참으십니다. 예수님은 온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십자가 위에서 내려오지 않으셨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예수님에게서 돌아섰습니다. 예수님은 철저히 버림받으셨습니다.
33절을 보십시오.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낮 12시가 되자 온 땅에 어두움이 임하여 오후 3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 자연의 초월적인 현상이 일어났습니다. 어두움이 세상을 삼켰습니다. 어둠은 죄와 사망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계시는 동안, 세상은 완전히 죄와 사망에 뒤덮였습니다.
34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기에 어떤 고통도 참을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 위에서 극심한 고통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 사람들의 조롱과 멸시도 말없이 다 받으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하나님에게 버림받는 고통 앞에서 절규하듯 외치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왜 하나님은 예수님을 버리셨고 예수님은 하나님께 버림을 받으셔야 했습니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버림받은 우리 인생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하나님께 버림받으셨습니다. 우리는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버림받은 인생들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진노와 영원한 심판을 받을 인생들이었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죄에 대한 심판으로 인한 죽음입니다. 예수님은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시고 죽으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하나님께 버림을 받고, 우리 대신 하나님의 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우리 대신 하나님께 버림을 받음으로 우리가 버림받지 않게 되었습니다. 우리를 위해 하나님께 버림받으신 그리스도 예수님을 찬양합니다. 예수님을 믿음으로 우리가 하나님께 버림받지 않고 죄 사함과 의와 영생을 얻게 되었음에 감사와 찬양을 드립니다.
38절을 보십시오.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성소 휘장은 두꺼웠습니다. 말에다 묶어서 당겨도 찢어지지 않을 만큼 튼튼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죽으실 때 휘장이 위에서부터 찢어져 둘이 되었습니다. 성소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 사이를 가로막고 있는 죄의 장벽을 의미합니다. 예수님이 죽으심으로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죄의 장벽이 허물어졌습니다. 예수님을 의지해서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 새롭고 산길이 열렸습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 죽으심으로 우리에게 생명의 길이 되시고 구원의 길이 되셨습니다.
39절을 보십시오. 다 같이 읽도록 하겠습니다.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백부장은 십자가형을 담당하는 책임자입니다. 그는 사형수들이 어떻게 죽어가는지 많이 지켜보았습니다. 그가 볼 때 예수님의 죽음은 다른 사람과 전혀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죽으심은 백부장의 마음을 감동시켰습니다. 백부장은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고백하였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죄를 사랑하는 독생자이신 예수님에게 다 짊어지게 하고 십자가에 죽게 하셨습니다. 모든 인간이 하나님 앞에 죄를 범했기 때문입니다. 죄는 하나님과의 관계를 단절시킵니다. 하나님과의 단절은 우리 인생을 슬프고 비참하고 괴롭고 두려움 가운데 살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해서 한계적이고 괴로운 삶을 살 수밖에 없는 우리 인생을 구원하기 위해서, 하나님의 아들이 죽었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철저한 무시와 조롱을 받고 가장 고통스럽고 참혹한 모습으로 죽었습니다. 나를 살리기 위해 그렇게 하셨습니다. 나의 죄 문제와 인생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대신 죽으셨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로 살아가는 은혜를 누리도록 상상조차 할 수 없는 고난과 희생이 있었음을 우리는 기억하여 마음에 새겨야 합니다.
40절에서 47절을 보십시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은 아리마대 사람 요셉의 마음에도 큰 변화를 일으켰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산헤드린의 공회원이었습니다. 그는 적극적으로 예수님을 변호하거나 예수님의 제자라고 말하고 다니지도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죽음으로 용기를 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십자가형을 당한 죄수의 시체를 그대로 방치해서 사람들에게 본보기로 삼았습니다. 요셉은 빌라도에게 찾아가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요셉은 예수님의 장례를 치르고 자기 소유의 동굴 무덤에 시신을 매장하였습니다. 요셉은 자신을 드러내어 주님께 헌신하였습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께서는 나를 살리기 위해 십자가에 죽으셨습니다. 나의 죄와 허물 때문에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고난받고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또한 우리는 생명을 살리기 위해서 십자가가 필요하고 희생이 필요함을 오늘 말씀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우리가 예수님의 고난과 십자가를 바라보며 나의 안에 있는 죄를 발견하고 죄를 멀리하는 인생으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를 배워서 한 생명을 살리고자 적극적으로 고난과 자기 십자가를 감당하는 성숙한 예수님의 제자로 살기를 기도합니다. 아산UB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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