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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특수부대 복장의 소장이 선임이었고 한국은 검정 베레
모를 쓴 공수특전단 복장의 준장이 선임이었으니 비무장만 아니
었다면 당장에라도 총을 뽑아 맞총질을 할 것 같은 표정들이었다.
회담은 시작한 지 10분도 안되어서 결렬되었지만 두 시간 가깝도
록 양측이 으르렁대고만 있는 이유는 미 국무장관 더글러스 때문
이었다.
"오분만 더 기다리시오."
지친 듯 눈 사이를 손가락 두 개로 누르던 더글러스가 쉰 목소
리로 말했다.
"곧 연락이 올 것이오."
그러자 한국 대표 흥영문이 입술을 비틀고 특전단장 최철 준장
에게 물었다.
"그게 몇 년 전이더라? 어떤 개새끼가 이 자리에서 서울을 불
바다로 만든다고 했지 않소? 그놈 이름을 아시오?"
"기억이 안 납니다만 곧 알게 되겠지요. 북진하면 제 손으로 제
일 먼저 쏴 죽이겠습니다. "
목소리가 컸으므로 북한쪽 대표들은 끝쪽 자리까지 다 들었으
나 디귿자형의 세로 부분에 위치한 미국 대표들은 한국말이어서
맨숭한 표정들이었다. 미국 대표 한 명이 통역관에게 무슨 말이냐
는 듯 귀를 대었다가 나중에야 얼굴이 굳어졌다. 북한 대표 이명
섭이 끝쪽에 앉은 대좌에게 소리치듯 물었다.
"김 동무, 우리 대포동 미사일 사정거리는 얼마요?"
"제주도까지 가고도 남습니다. "
그러자 한국측 해병대 군복의 대령이 눈을 딱 부릅뜨고 정면의
그 대좌를 보면서 말했다.
"거, 배고파서 스위치 누를 기운이나 있는지 모르겠어."
이번에는 통역관이 재빠르게 통역을 해주었으므로 더글러스가
손을 저었다. 그의 일생에서 이링게 살벌한 회담은 처음인 것이
다. 중동 전쟁 때 이스라엘과 중동국가와의 회담 때도 이러지 않
았다.
"제발 이성을 찾으시오, 여러분."
목이 갈라진 그는 기침을 했다.
"세계은행에서 차관을 얻고 IMF 금응에서 나머지를 빌리도록
하면 어떻겠습니까?"
재무장관 빈센트 스트라스가 대안을 내놓았다. 밤 9시 반이 되
어가고 있었지만 백악관의 상황실 안에는 합참의장 마크 존슨까
지 불려온 긴장된 분위기였다. 클린턴의 시선을 받은 스트라스가
쓴웃음을 지었다.
"한국이 보증을 서주는 조건으로 말입니다. "
클린턴이 옆쪽에 앉은 비서실장 토니 윈필드에게 물었다.
"토니, 가능할까?"
"글쎄.a_"
애매하게 대답한 윈필드가 합참의장 존슨에게로 머리를 돌렸다.
"장군, 그동안에 한국에서 온 정보가 있습니까?"
"이미 극한 상황이오"
다시 자신에게 집중된 시선이 못마땅한지 존슨이 찌푸린 얼굴
로 대답했다.
"회담이 결렬되면 남은 건 전쟁이오 더 이상 여유가 없습니다. "
한국군은 모두 공격 준비를 마쳤고 동부전선의 일부는 진격에
편리하도록 철조망과 지뢰의 제거 작업을 하고 있었다. 북한군도
마찬가지였다. 한미연합사령관 매그루더 대장의 보고도 있었지만
위성사진에 북한군의 이동이 생생하게 찍혀져 나온 것이다. 클린
턴이 안보 보좌관 커난에게 말했다.
"더글러스에게 다시 연락해요. 100억 불을 세계은행과 IMF 금
응에서 빌리도록 주선하겠다고 보증은 한국이 서야 한다고 말이
요"
커난이 즉각 전화기를 집었지만 떨떠름한 표정이었다. 방안에
모인 모두도 비슷한 표정이었고 클린턴도 마찬가지였다. 한국측의
초강경 태도로 보아서른 받아들일 것 같지가 않았기 때문이다. 의
자에 등을 붙인 클린턴이 탄식했다.
"빌어먹을. 한국놈들은 미군 인질 3만5천을 잡고있는 셈이로군."
"북한은 2천5백 명입니다, 대통령."
불쑥 말을 받았던 존슨은 주위의 시선이 모아지자 입맛을 다셨
다. 그는 이런 탁상 작전은 질색이었다. 특히 정치꾼들과의 작전
회의는 더 그랬다.
오후 3시가 되었을 때 임종진은 지하실로 혼자서 들어섰다. 평
양에서 불려온 아내의 도움을 받아 점심을 마친 배태성은 침대에
기대앉아 있었다. 침대가의 의자에 앉은 임종진이 담배 두 개비를
꺼내더니 배태성의 입에 한 개비를 물렸다.
"협상이 타결되었다. "
라이터를 켜 불을 붙여 주면서 임종진이 말했다.
"세계은행에서 「0억 불, IMF 구제 금응에서 30억 불을 5년 거
치 20년 상환 조건으로 빌리기로 했어. 보증은 미국 정부가 서주
기로 했다. "
배태성의 얼굴에 연기를 뱉은 임종진이 웃었다.
"미국놈들은 한국이 보증을 서라고 대통령한테까지 클진턴이
전화로 부탁을 했지만 거절당했지. 내일 정식계약을 체결하기로
했어,"
"그것도 작전이었단 말이냐?"
배태성이 묻자 임종진이 재떨이를 들어올려 그가 입에 물고있
담배의 재를 몌어 주었다.
는
"그렇다. 작전의 시작은 뉴욕에서부터였어. 김 비서는 이봉남과
김동환 등 강경파를 제거하기 위해서 한국 정부와 비밀 합의를
한 것이고 이제는 북탐 정부가 미국을 상대로 하는 것이야."
오전에 김한으로부터 내막을 들은 터라 배태성은 가만 있었다.
임종진이 가라앉은 표정으로 배태성을 보았다.
"네가 만일 북남간 작전 중에 나를 잡았다면 어떻게 되었을 것
같나?"
"아마 남아있는 강경파 무리에게 김 비서와 지도자 동지까지
궁지로 몰고갈 기회를 주었을지도 모른다. 그뻔 작전이 깨지는 것
은 물론이고 지도자 동지의 원대한 계획도 무산이 되었을 거야."
"그렇다면 북남 양쪽은 미국인들을 인질로 삼아 이용하는 것이
로군."
"그렇지."
머리를 끄덕인 임종진이 활짝 웃었다.
"강국들의 견제를 받는 북남 양쪽은 당분간 미국을 이용해서
세력을 각기 키우는 수밖에 없어. 이번처럼 말이다. "
임종진과 조복성이 가족 모두를 데리고 서울에 도착한 것은 그
로부터 닷새 후였다. 비밀 입국이어서 중국인으로 위장한 그들은
곧장 국정원의 안가로 출발했다. 임종진과 조복성은 자은 표정이
었다. 한국군 수뇌부는 이미 그들에게 육군 대령과 소령으로 복무
시킬 것을 약속했던 것이다.
"이곳은 낭의 국가 같지 않은데_S_"
버스 창 밖으로 신촌의 번화한 밤거리를 내다보며 조복성이 말
하자 임종진이 피식 웃었다.
"그럼 다른 국가냐? 이곳이 바로 우리 조국이다. "
조복성의 시선을 받은 그가 어깨를 폈다.
"이제 북남 구분은 없다. "
"이쪽에서는 남북으로 부르셔야 합니다. "
낮게 말한 조복성의 얼굴도 자아졌다.
'저쨌든 우리들은 북남 양쪽의 작전에 공을 세웠습니다. 그렇지
않습근"
"들어가시오"
호위총국 소속의 소좌 계급장을 붙인 사내가 턱을 든 채 말했
으므로 배태성은 자리에서 일어섰다. 대남 담당 비서 겸 이번에
정치국 정위원이 된 김성용에게 불려들어온 것이다. 집무실로 들
어섰을 때 넓은 마호가니 테이블 건너편에 앉아있던 김성용이 머
리를 들었다.
"신고합니다. 대좌‥‥
"됐어. 거기 앉아‥‥‥
배태성의 신고를 자론'김성용이 눈으로 앞쪽 의자를 가리켰다.
긴장으로 몸이 나무토막처럼 굳어진 배태성은 의자에 반듯이 앉
았다. 아직 양쪽 어깨가 다 낫지 않았지만 팔을 들어 경례를 할
정도는 된다. 김성용은 시선을 배태성의 가슴레에 준 채로 한동안
입을 열지 않았다. 정치국 정위원은 북한 노동당의 모든 정책을
수립하는 최고이자 절대적 권력기구이다. 정치위원의 숫자는 현재
정위원 14명과 후보위원 16명으로 구성되고 있었는데 그들이 북
한내 권력 서열 30위까지를 채우는 것이다. 게다가 김성용은 정위
원 14명중 핵심인 5명의 상무위원에도 포함이 피었다. 북한의 권
력 서열 5위 안에 든다는 의미였다. 이윽고 김성용이 말했다.
"내가 왜 불렀는지 아시오?"
"예. 상무위원 동지. 알고 있습니다. "
"그럼 말해보게."
"3일 전에 남조선으로 망명한 해외사업단 소속의 임종진 때문
입니다. "
배태성은 김성용이 머리를 끄덕이는 것을 보고는 가슴이 내려
앉았다. 예상했던 대로였지만 잉종진과 조복성의 망명을 막지 못
한 책임 소재를 찾는다면 첫 번째가 그들을 감찰하고 있던 자신
이었다. 김성용이 몸을 뻣뻣하게 굳히고 있는 배태성을 똑바로 노
려보았다.
"보위부로 올린 공문을 보았어. 그자들을 잡으려다가 감찰반원
넷을 잃었다고 했나?"
"예, 상무위원 동지."
"동무도 총에 맞았었다고?"
"그렇습니다. "
다시 집무실 안은 무거운 정적에 덮여졌다. 배태성은 문득 자
신의 소속 기관장인 국가안전보위부장 박웅의 얼굴을 떠올렸다.
이번에 보위부장이 된 박웅은 김성용의 심복인 것이다. 따라서 모
든 보고는 이미 김성용에게 접수되었다고 봐도 되었다. 김성용이
테이블 위의 서류에 시선을 내린 채로 말했다.
"임종진은 나름대로 제 몫을 했어."
배태성이 눈만 껌벅였고 김성용의 말이 이어졌다.
"우리한테는 다시 임종진의 몫을 할 일꾼이 필요해. 무슨 말인
지 알겠나?"
시선을 든 김성용이 무표정한 얼굴로 배태성을 바라보았다.
"대답해. 배태성 동무."
"알고 있습니다. "
배태성의 목소리는 쉬었고 등에서 진땀이 서너 줄기 흘러내렸
다. 숭도 쉬지 않는 배태성을 향해 김성용이 입술만 달싹이며 말
"동무는 앞으로 내 지시만 받는다. 보고도 나에게 직통으로 한
다. 알겠나?"
"예, 상무위원 동지."
"믿을만한 감찰반원을 다시 모으도록. 대충은 알고 있겠지만 북
남 관계는 지금부터가 시작이다. "
그리고는 김성용이 머리를 끄덕여 보였으므로 배태성은 자리에
서 일어섰다. 다시 시선을 내린 김성용의 머리 꼭지를 향해 경례
를 올려붙인 배태성은 집무실을 나왔다. 그리고는 자신의 온 몸이
땀으로 흠뻑 젖어 있는 것을 그때서야 알았다. 소좌가 의아한 시
선으로 보고 있었지만 그는 진저리를 쳤다. 김성용은 다 알고있는
것이다. 임종진이 말해준 것처럼 한국 국정원의 고위층과 다시 연
락이 되고 있는지도 모른다.
박현옥은 영어 뿐만이 아니라 러시아어와 중국어에도 유창해서
외출시에는 중국인 행세를 했다. 조선족 요원과 함께 시내에서 쇼
펑을 하고 돌아온 박현옥이 김한에게 물었다.
"저녁 식사는 몇 시에 하실 거죠?"
오후 5시였다. 박현옥이 베이징에 도착한 것은 오전 11시였으
니 아직 반나절도 되지 않았다. 김한의 얼굴에 웃음이 떠올랐다.
"피곤할 텐데 쉬어. 내가 저녁 준비를 할 테니까i"
"내가 하는 일이 있어야죠"
북쪽 성외 거리에 마련된 아파트는 50평 형 규모인데다 가전제
품도 빠짐없이 갖춰져 있었다. 한국인 사업가가 숙소로 사용하던
곳이어서 모두 한국산이다. 소파에 앉은 박현옥이 김한을 바라보
았다. 서울에 혼자 두고온 지 한달 만이었는데 남북한 관계가 일
단락되었다고 생각한 윤재성이 박현옥의 고집에 꺾인 것이다.
"이번 남북간 분쟁 때 정말 놀랐어.3_"
무릎을 깍지 끼고 앉은 박현옥이 말했다.
"대통령이 특별성명을 발표한 다음날부터 전 국민이 일제히 전
시 체제로 움직였는데 전혀 혼란이 일어나지 않았어요"
"그것이 놀랄 일이야?"
"북한에서 듣기로는 전쟁이 일어난다는 소문만 나면 한국은 아
수라장이 될 거라고 했거든요 모두 남쪽으로 도망치느라고 모든
도로가 막힌다고"
김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그도 고명곤으로부터 들었던 것이다.
"그것이 한국 국민성이라고 하더군, 억눌려 있다가 폭발할 때가
무섭다고 오랫동안 북한으로부터 당한 무시와 냉대에 대해서 쌓
였던 분노가 폭발한 것이라고 했어"
"북한 지도층도 알고 있겠죠?"
"그자들도 바보가 아냐."
자리에서 일어선 김한이 박현옥의 옆에 앉았다. 박현옥의 얼굴
에 수심이 덮여지고 있었던 것이다.
"내가 이곳에서 마무리를 지을 일이 있어. 그때까지만 기다려,"
"당신한테 부닿드리는 것 같아요."
"내 부모와도 같은 분들이야. 철이 들고 나서 처음 느긴 감즌이
었어."
김한이 박현옥의 어깨를 감싸 안았다.
"남북한 사업과 부모님의 일은 같은 흐름이야. 걱정하지 말고
기다려."
"임종진은 박필성을 죽인 자요 LA 교외에서 박필성 부부를 살
해하고 불에 태웠지."
베이징 주재 CIA 지부장 레커맨이 잿빛 눈을 가늘게 뜨고 말
했다.
"한국 국정원 요원들이 박필성을 보호하고 있었을 테니 그들도
같이 살해했을 거_S_"
"나도 이해가 안 갑니다. "
다카다도 레커맨과 비슷한 표정을 했다.
"임종진과 그의 부하 하나가 가족들을 모두 데리고 한국으로
』순했어요 이건 사전에 치밀한 계획과 한국측과의 합의가 있러
야 가능한 일이-f_ 더구나 남북간이 전쟁 일보 직전까지 갔다가
극적으로 타협한 상황이었지 않습니까?"
"북한측이 다시 시비를 걸지 않을까?"
"두고 봐야지요"
정색한 다카다가 레커맨을 보았다.
"그놈들이 예전 같지 않아요 북한쪽을 쫓다보면 한국놈들을 놓
칩니다. 우리들을 경계하는 것 괌습니다. "
레커맨이 크게 머리를 끄덕여 동의했다.
"우리도 한국 국정원장에게 항의할 예정입니다. 동맹국으로써의
기본 정보도 넘겨주지 않아요 남북한 두 쪽 다 똑같은 놈들입니
다. "
다카다가 사무실로 사용하는 내성의 북해공원 근처에 위치한
빌딩 안으로 들어섰을 때였다. 로비에서 서성대고 있던 40대쯤의
사내가 다가왔다. 허름한 양복을 입은 마른 체격의 사내였다. 1
들은 로비의 구석으로 다가가 마주보고 섰다.
"북한쪽이 한국 정보원들을 제거한다는 소문이 나고 있습니다.
이번 서해 사건에 대한 복수를 한다는데요"
"그거야 항상 떠도는 소문 아닌가?"
다카다가 유창한 중국어로 묻더니 혀를 찼다.
"당신은 술이 과해서 탈이야. 위 선생, 제대로 된 정보를 가져
오려면 우선 술부터 끊어."
"이건 북한쪽 일을 하는 농한테서 직접 들었습니다. 술을 곤죽
이 되도록 먹였기 때문입니다. "
바짝 다가선 사내에게서 술 냄새가 풍겨나왔으므로 다카다는
조금 물러섰다.
"어떻게 한다는 거야? 자세히 말해봐."
"습격한다는 겁니다. 시간은 내일 밤."
말을 그친 사내가 눈만 껌벅이자 다카다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었다.
"제불 줄 테니 계속해봐. 하지만 이야기 끝나고 줄 테니까."
"1껨불 주십시오 마음대로 하시고"
"오늘 오후란 말이오?"
박필성이 확인하듯 묻자 백재식이 웃었다.
"믿기지 않으십니까? 여기 티켓까지 준비했습니다. "
주머니에서 여권과 티켓을 꺼낸 백재식이 탁자 위에 놓았다.
"여권도 완벽합니다. 한국 정부에서 직접 발행한 것이니까요"
박필성의 옆에 앉아있던 이 여사가 먼저 손을 뻗쳐 여권과 티
켓을 쥐었다.
"아이구 내 사진이네."
이 여사가 감탄을 했다. 자신의 사진이 붙여진 한국 여권인 것
이다. 그러나 이름은 달랐다. 오전 10시 반이었다. 석달 동안 코리
아타운의 아파트에 살면서 거의 외출도 안한 터라 햇볕을 쐬지
못한 부부의 얼굴은 창백했다. 박필성이 흥분을 가라앉히려는 듯
심호흡을 했다.
"공항을 무사히 빠져나갈 수 있겠소?"
"FBI의 수배령은 진즉 풀렸습니다. 하지만‥‥‥‥
"체크가 되면 억류될 텐데. 이 여권이 아무리 한국 정부에서 발
행된 것이라고 하더라도 말이오."
"그건 그렇습니다. "
백재식의 애매한 대답에 신경이 예민해진 박필성이 이맛살을
찌푸렸다.
"그렇게 되면 이미 내가 죽은 줄로만 알고 있는 북한 정권이
가만 있겠소? 미국 정부는 이번엔 꼼짝없이 나를 넘겨줄 것이오."
"잘 알고 있습니다. "
그러자 이 여사가 박필성의 팔을 가볍게 흔들었다.
"다 생각이 있겠지요 당신은 요즘 너무 예민해지신 것 같습니
다. 믿고 따라갑시다. "
인내심이 바닥난 이 여사는 어젯밤에도 박현옥을 보기만 하면
죽어도 상관없다면서 울었던 것이다. 백재식을 힐끗 바라본 박필
성이 긴 숨을 뱉었다.
"좋소 갑시다. 내가 목숨이 아까워서 이러는 건 아니오"
새벽 3시가 되었을 때 베이징 서북쪽 성외의 베이징대학 쪽에
서 이화원으로 꺾어지는 샛길에는 인적이 뚝 끊기면서 짙은 정적
에 덮여졌다. 차 한 대가 겨우 다닐 수 있는 샛길 좌우는 모두 고
만고만한 단층 주택들이었는데 대로에서 샛길로 들어서는 입구에
4층 건물 하나가 덩그러니 세워졌고 현관 위쪽에는 영안공사라는
간판이 붙여져 있었다.
"위종의 정보가 또 거짓인 모양이다. "
겐지가 옆에 엎드린 마스야마에게 말했다. 그들은 단층 주택의
지붕 위에 나란히 엎드려 있었는데 손에는 제각기 암시 스코프를
쥐었다. 빌딩과의 거리는 1백미터 정도여서 현관의 간판 글자 한
쪽도 스코프에는 또렷하게 드러났다.
"앞으로 그 개자식은 정보원에서 제외시켜야겠어."
빌딩 안으로 한국의 정보요원 세 명이 들어가는 것을 확인은
했다. 그것이 벌써 두 시간 전이었다. 그러나 영안공사 빌딩은 오
래 전부터 일본 정보국뿐만 아니라 CIA나 중국 당국도 한국요원
들의 회합 장소로 알려져 있었던 것이다. 주택 주인에게 하룻밤
옥상 사용료로 무려 1렐불이나 준 겐지는 더 화가 났다.
"다카다 씨는 그놈한테 1껜불을 주었다더군. 우리가 단가를 너
높인 것 같아."
겐지가 다시 투덜거렸을 때였다. 갑자기 마스야마가 손으로 그
의 괄을 쳤다. 현관에서 세 사내가 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은
대로변에 주차시킨 차로 느리게 걸었다. 겐지와 마스야마는 스코
프를 눈에 댄 채 숨을 죽였다. 차로 다가간 한국측 요원들은 두
명이 됫좌석에 하나는 운전석에 올랐다. 그때였다. 대로 건너편의
어둠 속에서 사내들이 뛰쳐나왔는데 모두 넷이었다. 그들은 대로
를 뛰어 건너면서부터 총을 쏘았다.
"탕탕탕. 타타타타타."
요란한 총성이 밤하늘을 울렸고 겐지와 마스야마는 텟발 같은
총탄을 받으면서 차가 급발진하는 것을 보았다. 차는 빈 대로를
지그재그로 달렸는데 뒤쪽을 향해 사내들의 총격은 계속되었다.
차는 달리고 있지만 아마 다 죽었을 것이다.
"잠깐 기다리십시.f_"
LA공항의 출국 관리소 직원이 정중하게 말했을 때 박필성은
어금니를 물고는 어깨를 늘어뜨렸다. 무의식중에 뒤를 돌아보았지
만 줄서 있는 사람들 사이에 끼여있던 국정원 요원은 어느 사이
에 사라져 있었다. 박필성은 직원의 뒤쪽에서 다가오는 양복 차림
의 두 사내를 보았다. FBI 요원일 것이다.
"여f_"
떨리는 목소리로 뒤에 서있던 이 여사가 불렀으므로 그는 쓴웃
음을 짓고는 그녀의 손을 쥐었다.
"같이 가실까요?"
양쪽에 바짝 붙어선 사내 중 하나가 딱딱한 표정으로 말했다.
"부인하고 같이."
LA시간으로 오후 2시 10분이었다.
그로부터 30분 후였으니 시차가 세 시간 나는 뉴욕 시간으로는
오후 5시 40분이다. 뉴욕 주재 유엔 대사 최연철은 사무실에서 전
화를 받고 있었는데 거침없이 말했다.
"마침 LA에 있던 북한의 외교관 셋이 베이징으로 떠날 예정이
었습니다. 그들에게 박필성을 인계해 주시오, 클리포드 씨."
벽시계를 올려다본 그가 말을 이었다.
"공항에서 잡고 있다니 잘 되었습니다. LA발 베이징행 팬암은
오후 3시 반 출발이오 시간이 40분 남았습니다. "
그러자 클리포드도 시원스럽게 대답했다.
"좋소 넘겨드리겠소"
전화기를 내려놓은 클리포드가 앞에선 수사관 워렌 브리튼을
향해 웃었다.
'겨 대사놈. 신바람이 났군."
"행동이 민첩합니다. 마치 기다리고 있었던 것처럼."
"베이징에 갈 놈들이 있었다는 것도 거짓말일 거야. 한시라도
빨리 데려가려는 수작이지."
의자에 등을 기댄 클리포드가 담배를 꺼내어 입에 물었다.
"박필성이 살아 있었다니 기가 막힐 일이군. LA의 찰스 머피는
무능해. 하마터면 내 목이 달아날 뻔했다. "
이미 박필성은 살해된 것으로 사건이 종결지어졌던 것이다. 클
리포드로서는 한시라도 빨리 데리고 나가려는 북한측의 기민한
반응이 마음에 들었다. 빈 담배를 문 글리포드가 이제는 쓴웃음을
지었다.
"멍청한 한국놈들. 한국 여권으로 박필성을 내보내려고 하다니.
FBI를 뭘로 보는 거야?"
"서울로 가는 거야."
택시를 두 번째 갈아탔을 때에야 김한이 불쑥 말하고는 박현옥
의 손을 쥐었다. 저녁 8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징은 작은 옷가방
하나뿐이었지만 박현옥은 뭔가 허전했다. 그래서 힐끗 김한을 보
았다.
"이곳 일은 다 끝났어요?"
"오늘 새벽에 마무리를 했어."
"윌 말인데요?"
김한이 박현옥의 손을 힘주어 쥐었다.
"임종진 씨 귀순 이후로 CIA와 일본 정보국이 남북한 관계에
대한 감시를 강화시켰어. 임종진은 아버님을 살해한 장본인으로
이미 알려져 있는데다 귀순할 뚜렷한 이유가 없었거든."
힐끗 운전사에게 시선을 주었던 김한이 목소리를 낮췄다1
"그래서 어젯밤 남북한 정보요원의 총격전을 연출했지. 지금 소
문은 한국요원 셋이 북한측에게 사살되었다고 나있어."
'럼 북한이 임종진의 귀순에 보복한 것이 되었군요"
"남북한의 반목이 심해질수록 그자들은 마음을 놓는 거야."
김한이 쓴웃음을 지었다.
"나도 북한 요원들과 함께 동료 요원들을 습격했지. 공포탄을
쏘면서 말이야."
힐끗 박현옥의 얼굴에 시선을 주었던 김한이 이제는 어깨를 안
았다.
"부모님 걱정하지마. 잘 될 거야."
양복차림의 동양인 셋이 다가왔을 때 박필성은 그들이 북한쪽
특수요원인 것을 알았다. 사내 두 명이 나란히 앉은 박필성 부부
의 양옆에 서자 이 여사는 다시 울기 시작했다.
"이봐. 울지 말어."
박필성의 말에도 기력이 떨어져 있었다. 사내 하나가 fBi 책임
자로부터 박필성 부부의 여권을 넘겨받더니 몸을 돌렸다. 박필성
앞으로 다가온 사내가 낮게 말했다.
"갑시다. "
"어디로 가는가?"
배에 힘을 준 박필성이 묻자 사내가 늘어진 눈시울을 들어올렸다.
"따라오시오_"
이 여사가 이제는 온몸을 떨기 시작했다.
베이징 공항에 도착한 것은 날짜 변경선을 지난 때문에 전날
밤 10시경이었다. 지쳐 늘어져 있는 이 여사를 사내 둘이서 양팔
을 끼고 일으켜 세웠을 때 박필성의 눈에서 처음으로 물기가 배
어나왔다. 인솔자로 보이는 사내가 낮게 말했다.
"가시지_a_"
비행기를 나온 그들이 건물로 들어섰을 때였다. 사내가 박필성
에게 봉투를 내밀었다.
·.티켓입니다. 7번 게이트로 가시면 서울행 대한항공이 30분 후
에 떠납니다. "
그 소리는 뒤쪽에 늘어져 서있던 이 여사도 들었다. 이 여사가
눈을 크게 떴고 박필성은 먼저 봉투부터 받아 들었다.
"그게 무슨 소리요?"
그러자 사내가 주위를 둘러보더니 문득 손을 들어 한쪽을 가리
켰다.
"저기 같이 가실 분들이 오는군_9_"
박필성 부부는 사내가 가리괴는 안쪽에서 그들에게 달려오는 깅
한과 박현옥을 보았다. 외마디 소리를 지른 이 여사가 두 팔을 휘저
으며 그들에게 달려갔을 때 인솔자가 박필성 앞에 반듯이 섰다.
·.그럼 안녕히. 저는 보위부의 비밀 감찰반 배태성 대좌올시다·"
김한이 달려와 박필성의 상체를 안았을 때 배태성과 그의 부하
둘이는 벌써 저만큼 가고 있었다.
"아버님."
김한이 부르자 박필성은 마음놓고 눈물만 쏟았다.
<끝>
■ 저자 후기
내가 한때 철저한 장사꾼이었을 때의 사고(텄촐)는 지금도 여전
히 내 주동력(초럴)이 되어 있다. 잘 팔리는 제품을 만들려면
생산자는 소비자의 의식에서부터 시대의 변천, 경제력까지를 연구
해야만 하고 때로는 앞서야 이긴다. 모방이나 싸구려 생산, 또는
불량품의 공급은 생산자에게 치명적이라는 사실을 나는 경험으로
안다.
대중작가로 변신한 지 10년,
나는 소비자인 독자의 다양한 욕구에 부응하기 위하여 이른바
조직폭력소설(밤의 대통령), 기업소설(황제의 꿈, 대한국인) 개척소
설(영웅의 도시), 역사소설(계백), 무협소설(대영웅), 스릴러(암살자)
등을 썼으며 최근에는 애정소설(오피스텔)을 생산했다. 거기에다
『밤의 대통령』 『불칼』 『야망의 제국』 등의 소설은 만화로 만
들어졌으니 대중적 이미지와 함께 아이템의 다양화는 나름대로
이룬 셈으로 보여진다.
끊임없이 자료를 찾으며 써온 지난 10년이 나에게는 참으로 값
302
진 세월이었다. 내 모든 것을 투자한 회사가 부도로 넘어갔을 때
의 그 절망과 좌절은 당해본 사람이 아니면 모른다.
그래서 나는 더 조급했던 것 같다. 40대 초반이 되어서야 잡은
이 새로운 기회를 놓치지 않으려고 또한 소비자들에게 잊혀진 존
재가 되지 않으려고 미친듯이 제품을 들이대었으니까. 1년에 평균
「권씩을 썼다. 10년 동안 문학 담당지의 평에 단 한줄의 평도 없
었지만 나는 만족한다. 평가는 소비자가 하는 것이라는 것을 경험
으로 아니까. 다양한 계층으로 이뤄진 내 소비자는 이미 나와 내
제품을 잘 아니까.
『유라시아의 꿈』 을 완결지으면서 감회가 크다. 출판사 사정
으로 2편까지만 나왔다가 이제 21세기 초에 완결을 짓는다. 이제
까지 기다려주신 독자 여러분께 엎드려 용서를 빌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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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수고 하셨읍니다 그래서 감사 드림니다
,.항상 감사 므
재밋따~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
수고 많았습니다~~~~
굿
.독.하고 있읍니다
감사합니다
수고 많았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