갑오년 ‘靑馬’의 해 “울진을 여는 사람들”
영남내륙과 동해안을 잇는 “흥부장”
‘한자두자 삼척장 베가 많어 못보고/ 값많은 강릉장 값이 싸서 못보고/ 정 들었다 정선장 갈보 많아 못보고/ 울퉁불퉁 울진장 울화나서 못보고/ 안창곱창 평창장 국술좋아 못보고 (이하 생략)’ |
2백리 동해안을 끼고 모둠살이 터를 이룬 울진지방을 비롯 강원도 삼척, 정선 영월 일대에서
구전되고 있는 ‘장타령’의 한
소절이다.
오랜 옛날부터 시장(혹은 장시)은 사람들의 일상과 떼려야 뗄 수 없는 소중한 삶의 영역으로
자리잡아 왔다.
특히 소규모 농어촌 공동체 사회 속에서 시장은 그 구성원들의 질긴 삶의 날줄과 씨줄을 엮어
주는 생명줄의 구실을 톡톡히 해 왔다.
대개 한국 전통사회의 장시는 사람과 문물의 왕래가 잦은 교통의 요새지나 지역의 생태적
특성에 따른 물산이 왕성하게 생산되는 곳을 중심으로 발달해 왔다.
▲ 흥부장에는 동해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해물과 바닷바람에 잘 말린 건어물을 현지가격으로 언제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푸른 동해안을 이마에 이고 있는 울진지방은 동해안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으로 예부터 남으로는 영덕지방과 북으로는 강릉지방을 잇는 소통의 중심역할을 맡아왔다. |
‘흥부장(울진군 북면 부구리)’에는 동해에서 갓 잡아올린 싱싱한 해물과 바닷바람에 잘 말린
건어물을 현지가격으로 언제든지 쉽게 구할 수 있다.
흥부장은 끝자리가 ‘1일과 6일마다’ 장이 서는 ‘1.6장’이다.
푸른 동해안을 이마에 이고 있는 울진지방은 동해안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으로
예부터 남으로는 영덕지방과 북으로는 강릉지방을 잇는 소통의 중심역할을 맡아왔다.
현재도 울진은 부산에서 속초를 잇는 유일한 기간도로망인 ‘7번국도’의 중간에 위치해 있는
까닭에 이 길을 통해 부산으로 가거나 강릉, 속초로 오르내리기 위해서는 반드시 울진을
거쳐야만 하는, 중요한 길목에 위치해 있다.
◆흥부장은 싱싱한 동해 해산물의 전시장
때문에 울진지방의 닷새장은 남으로는 영덕을 잇고, 북으로는 강릉을 연결하며, 서로는 봉화,
안동 등 영남내륙을 이어주는 삼거리 구실을 톡톡히 해 왔다.
특히 지난 1986년 흥부장을 감싸고 있는 흥부천 인근에 한울원자력발전소 1호기가 가동되고
현재 원전 6기와 신규원전인 신한울원전 1,2호기가 본격 건설되면서 흥부장은 과거 1940년대의
명성을 되찾고 있다.
원전 건설로 전문인력과 건설노동자들이 대거 몰려들어 정착하면서 흥부장은 이제 동해안 최대
규모의 전통장시로 뿌리내리고 있다.
◆동해안 최고의 천일염, 자염 생산지 "흥부 염전"의 본산
▲ 경북의 최북단에 자리한 울진 흥부장은 동해를 끼고 서는 ‘천일염과 어물전’으로 이름 높았다. 특히 이 고장의 특산물인 '돌미역'과 '자염(소금)'은 조직적이고 집단화 된 상단인 '바지게꾼(선질꾼)'에 의해 '십이령'을 통해 생선과 소금이 귀한 봉화, 안동 등 영남내륙으로 유통됐다. 사진은 울진 고포미역 말리는 모습. |
◆"봉화사람들 울진 돌미역없으면 산모 미역국도 못끓였지"
울진지방은 2백리 동해를 끼고 있어 싱싱한 해산물을 봉화나 안동 등 영남내륙지방으로 연계시키는 해산물의
교역생산지로 이름 높았다. 특히 60여년 전까지 울진 산 천일염(자염, 煮鹽)은 영남내륙지방 사람들의 음식문화
중 주요한 특징인 ‘염장식’의 전통을 세우는데 일조를
했다.
최근 안동지방의 특산물로 이름높은 ‘안동 간고등어’도 사실상 울진산 소금 덕에 생겨난 특산물이다.
“60년 전까지 흥부(현, 울진군 북면 부구리) 염전둑에서 염전을 맹글어 소금을 고았지. 그래서 동네 이름이 염전둑이래. 여게서 맹근 소금은 서해안과는 달라. 맨 먼저 불(백사장)을 논처럼 넓게 파고 거기에다 고운 진흙을 넣어 다지지. 그 다음에 논 봇도랑처럼 물길을 만들어. 그러면 염전이 돼지. 여기에다가 바닷물을 퍼넣고 해가 쨍한 날 하루종일 소로 쓰레질을 하지. 그러면 간물(소금 농도가 짙은 간수)이 생겨. 이거를 다시 웅덩이에 모아놓았다가 집채만한 솥에 넣고 끓이지. 소금가마는 옛날에 무쇠가 없을 때는 조개껍질과 바다에서 나는 ‘톳’을 섞어 맹글었지. 불 때는 아궁이도 사방으로 둘러가며 네 곳을 맨들지. 네 군데 아궁이에다가 장작이나 ‘소깝(생솔가지)’을 한참 때며는 간물이 쫄아들면서 하얀 소금이 타닥거리며 튀지. 흥부 염전에서 맹근 소금 맛이 좋아 멀리 강릉 장사꾼들이 한꺼번에 다 사가지. 소금을 맹글어 놓으면 ‘선질꾼’들이 한 가마니씩 사가지고 저기 두천 ‘십이령바지게 길’을 걸어 봉화 소천장에 내다팔았지. 소금팔라 갈 직에 고포에서 나는 돌미역 몇 단씩 지고 가서 팔지. 봉화사람들 흥부소금하고 돌미역 오면 값을 부르는대로 후하게 처셔 사먹었지. 봉화사람들 울진 소금하고 돌미역 없었으면 얼라 돌잔치도 못치루고 산모 미역국도 못끼랬지” |
60년 전 흥부 염전에서 ‘여망이(소금굽는 기술자)’로 이름 난 고 장기수(당시 96 북면 부구2리)옹의 애기이다.
장 옹은 울진 북면에서 유일하게 생존한 ‘소금 여망이’이다.
▲ 2014년 1월 1일 갑오년 첫 날 장이 선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흥부장에서 ‘흥부장 나물전 토박이’ 아주머니가 울진산 햇 미역을 손질하고 있다. 울진 고포마을과 봉평 등 바닷가 마을에서 채취하는 돌미역은 질이 좋기로 전국에서 이름높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싸인 봉화, 안동 등 영남내륙 지방은 울진에서 넘어가는 돌미역이 없었으면 '돌잔치'도 못 치를 만큼 울진산 돌미역은 요긴한 의례음식이었다. |
◆ 흥부장은 조직적이고 집단화된 상단 ‘선질꾼’의
배태지
『동국문헌비고』『신증동국여지승람』『강원도지』등 고문헌에 울진지방에는
‘흥부장(1,6장)’ ‘죽변장(3,8장)’
‘울진장(2,7장)’ ‘매화장(4,9장)’ ‘기성장(1,6장)’ ‘평해장(2,7장)’ ‘후포장(3,8장)’ 등 7개소에서 닷새마다 돌아가며
장시가 섰으며 이 중 흥부장과 매화장은 동해안에서 ‘강릉장’과 ‘북평장’, ‘영해장’과 함께 규모가 큰 장시로 기록돼
있다.
울진 고포마을과 봉평 등 바닷가 마을에서 채취하는 돌미역은 질이 좋기로 전국에서 이름높다. 사면이 산으로 둘러
싸인 봉화, 안동 등 영남내륙 지방은 울진에서 넘어가는 돌미역이 없었으면 '돌잔치'도 못치룰만큼 울진산 돌미역은
요긴한 의례음식이었다.
특히 현재의 북면 부구2리에 자리잡았던 ‘흥부장’과 울진군 소재지인 울진읍장은 ‘어물, 소금시장’과 ‘소(牛)’시장으로
이름을 떨쳤다.
전통사회에서 소금의 중요성은 말할 수 없을 만큼 중요했거니와 울진지방에서는 미역, 간고등어 등 해산물과 소금의
유통을 담당한 특수상인 집단인 이른바 ‘바지게꾼(선질꾼, 일종의 부보상)’이 조직적으로 활동했다.
이들은 ‘바지게’라는 ‘지게다리가 짧은’ 특수한 운반용구를 제작해 사용하고 ‘계(契)’를 구성하고 ‘규정’을 만들어
상행위에서 벌어지는 부도덕한 행위를 규제하는 등 조직적이고 집단화된 상단(商團)을 형성해 활발한 상행위를
펼쳐왔다.
이들이 영남내륙으로 이동하던 상로(商路)인 ‘십이령바지게’ 초입인 북면 두천리에는 이들의 조직상을 알 수 있는
유적인 ‘울진 내성 행상불망비’가 현존해 있으며 이 비석은 지난 96년도에 경북도 지정 문화재자료 제 130호로 지정,
관리되고 있다.
특히 이들 바지게꾼들이 넘나들던 “울진 십이령길”은 ‘울진금강소나무 숲’을 배경으로 전국 최고의 “에코힐링로드”로
각광받고 있다.
울진 지방의 전통 장시에서 주로 거래된 물산은 울진지방의 생산기반을 떠받치고 있는 바다와 무관치 않다.
특히 동해를 기반으로 생산되는 어물과 미역, 자염(소금)이 주요 품목이었으며 산간농촌에서 생산되는 각종 산나물과
약초, 토종꿀을 비롯 농촌의 가계를 버팀해 준 ‘삼베’가 주종이었다고 문헌들은 기록하고 있다.
최근 들어 농어촌 지역에도 우후죽순처럼 대형매장이 들어서고 컴퓨터가 일상을 움직이는 사이버시대가 활짝 열렸지만
여전히 울진지방의 닷새장은 ‘풍성한 어시장’으로 흥청거리며 해산물의 교역장으로, 여론형성의 메카로 그 자리를 고스
란히 지키고 있다.
민족 최대의 명절인 추석이나 설을 앞 둔 ‘대목장’은 장터가 터져나가도록 사람들의 발걸음 소리로 왁자하며 물산의
풍성과 함께 온갖 사람사는 애기들이 뒤섞여 진한 난장판을 연출하며 그 위세를 더해가고 있다.
특히 울진의 북쪽 관문인 죽변항을 기반으로 서는 죽변장과 남쪽 관문인 후포항을 낀 후포장, 그리고 한울원전을 끼고
있는 흥부장은 싱싱한 동해의 해산물과 산간농촌에서만 볼 수 있는 토종 먹거리의 교역장으로 그 역할을 톡톡히 치러
내고 있다.
▲ 푸른 동해안을 이마에 이고 있는 울진지방은 동해안의 중간지점에 위치한 지형적 조건으로 예부터 남으로는 영덕지방과 북으로는 강릉지방을 잇는 소통의 중심역할을 맡아왔다. 사진은 매월 끝자리 수가 ‘1일과 6일’마다 서는 흥부장에서 장꾼들이 어울려 늦은 점심을 맛나게 먹고 있는 모습. |
▲ 2014년 1월 1일 첫 장이 선 경북 울진군 북면 부구리 ‘흥부장’에서 장꾼들이 ‘막회’를 안주로 건배를 하며 “갑오년 한해 대박”을 기원하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