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항을 경계중인 우루과이군. 이처럼 FAL은 비록 약소국에서 탄생하였지만 50여 개국에서 사용되고 수많은 실전에서도 맹활약한 기념비적 소총이었다. |
독일과 프랑스의 중간에 위치한 벨기에는 좁은 해협을 사이에 두고 또 하나의 강대국인 영국과도 마주보고 있다. 그래서 강대국 간에 전쟁이 벌어지면 자신들의 의사와 전혀 상관없이 툭하면 전쟁터가 되고는 했다. 특히 20세기 이후 벌어진 양차 세계대전에서는 국토가 초토화하다시피 했다. 비단 벨기에뿐만 아니라 유럽사를 살펴보면 대다수 약소국은 비슷한 경험을 했는데 통일 이전의 독일이나 이탈리아도 마찬가지였다.
FAL은 나토 회원국은 물론 중립국인 오스트리아가 StG58이라는 이름으로 면허 생산하여 사용하였을 만큼 인기가 많았다. |
약소국이 강대국 사이에서 자위권을 행사하기는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지만 벨기에는 그저 손을 놓고 있지는 않았다. 당연히 주변 강대국을 먼저 도발할 수는 없었지만 침략을 받으면 포기하지 않고 국토를 스스로 수장시켜 방어전을 펼쳤을 만큼 모든 힘을 다하여 저항하였다. 더불어 소화기 정도의 무기를 자체 생산하여 사용할 정도로 자주국방에 대한 의지가 강했다. 덕분에 벨기에는 약소국 임에도 세계적인 방산 회사들이 있다.
파브리크 나쇼날 드 헤르스탈(Fabrique Nationale de Herstal, 이하 FN)은 1889년에 설립된 오래된 기업이지만 내수 시장이 작다 보니 그다지 무기 시장에서 영향력이 크지 않았다. 그러던 20세기 중반 이후 개발한 여러 총들이 연이어 호평을 얻으면서 세계적인 총기 회사로 자리매김하는데 성공했다. 그 중에서도 제2차대전 후 서방을 대표한 FAL(Fusil Automatique Léger) 전투소총은 FN의 명성을 드높인 기념비적 작품이다.
망명지에서 태동한 아이디어FN의 엔지니어인 세이브(Dieudonné Saive)는 1930년대 중반부터 리코일 작동식의 반자동소총을 연구하여 1937년에 시제품을 선보일 수 있었다. 하지만 양산 직전에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면서 제2차대전이 발발하고 벨기에에 대한 나치의 위협이 증대하자, 개발 계획이 중단되고 FN의 제작 라인은 기존 소총을 양산하는데 주력하게 되었다. 그러나 1940년 독일의 침공으로 벨기에가 보름 만에 항복하면서 FN 시설은 접수 당하였다.
이듬해 세이브는 감시의 눈을 피해 벨기에를 탈출하여 영국으로 망명하는데 성공하였고 이후 엔필드 조병창에서 연구를 계속했다. 여기서 그는 종전 후 벨기에군이 제식화한 반자동소총인 FN-49(SAFN) 시제품을 1942년에 완성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FN-49가 등장했을 때 보병용 제식 소총은 AK-47나 M14처럼 자동화 된 소총이 대세가 되어가는 중이어서 반자동소총은 조금 어정쩡한 입장이었다.
FN FAL 자동소총. 7.62mm 나토탄을 사용하기 때문에 탄창이 크다. |
대세를 정확히 꿰뚫은 세이브는 지금까지의 연구를 발판으로 베르비에(Ernest Vervier)의 도움을 받아 자동소총 개발에 즉시 착수했다. 자동소총의 초기 역사에서 개발자들이 공통적으로 고민하였던 부분은 기존 총탄을 그대로 사용하기 힘들다는 점이었는데, FN의 개발진도 마찬가지였다. 이때 대안으로 떠오른 것이 StG44가 사용한 7.92×33mm 쿠르츠탄이었다. FN 개발팀은 이를 이용하여 1947년 프로토타입을 만들었다.
변신이 가능했던 이유1948년 벨기에군에서 다양한 테스트를 거친 시제품은 상당히 호평을 받았는데, 이때 당국은 사용탄약을 .280 브리티시탄으로 바꾸자고 제안했다. 일단 쿠르츠탄이 독일에서 제작한 탄이라 거부감이 있었고, 차후 동맹관계 등을 고려한다면 전쟁 당시 같은 편이었던 연합국의 탄 규격을 따르는 것이 좋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요구를 받아들여 FN은 개조에 나섰는데, 이렇게 상황에 맞춘 발 빠른 변신 능력은 이후 FAL이 세계적 소총이 되는 기반이 되었다.
새로운 탄 규격에 맞추어 총을 개조하는 것은 생각보다 어려운 작업이지만 FN은 유독 뛰어난 실력을 갖추고 있었다. 그것은 처음부터 내수만 바라보고 총을 제작할 수 없었던 기업환경 때문이기도 했다. 결국 전후에 패권을 잡은 미국의 입김으로 서방 국가들이 스프링필드탄을 단축한 7.62×51mm 나토탄을 표준 소총탄으로 제정하자, FN도 FAL을 이에 맞추어 다시 개량했고 내친김에 나토의 표준 제식 소총이 되려고 하였다.
접이식 개머리판과 손잡이를 장착하여 휴대성을 높인 FAL 50.61 |
순식간 AK-47로 통일시킨 바르샤바 조약기구와 달리 나토는 회원국 별로 각기 다른 소총을 개발 중에 있어서 벨기에의 소총이 제식화기로 채택될 가능성은 많아 보이지 않았다. 그런데 공교롭게도 1953년 당시, 나토의 조건에 맞는 당장 사용 가능한 자동소총은 FAL 밖에 없었다. 미국의 M14와 독일의 G3 모두 1950년대 후반에나 제식화되었고 가장 강력한 라이벌이었던 영국의 EM-2는 아직 나토탄을 사용할 수 없던 상태였다.
반동을 잡아라이런 절묘한 상황이 맞물려 FAL이 나토의 제식 소총이 되었는데 단지 이 때문에 거대한 시장을 선점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니었다. 시기를 잘 타고난 것 못지않게 당연히 성능도 만족할만한 수준이었기 때문이었다. 엄밀히 말해 순식간 동구권을 통일한 AK-47처럼 경쟁 소총과 비교하였을 때 압도적으로 뛰어난 것은 아니었지만 표준화된 제식 소총으로 사용하기에 무난했다는 의미가 옳은 표현이다.
소련의 SVT-40와 유사한 가스작동식을 채택했던 점에서 알 수 있듯이 FAL은 서방측 소총이면서도 러시아제 소총의 사상을 많이 흡수했다. 특히 구조가 간단하여 신뢰도가 높았던 것도 그런 특징 중 하나였다. 하지만 정작 사막처럼 먼지가 많은 악조건에서는 종종 고장을 일으킨 것으로 알려진다. 사실 FN기술진들은 국토가 작은 벨기에를 벗어난 환경까지 고려하면서 총을 개발하기는 어려웠다.
FAL로 무장한 브라질 국경경비대 |
캐나다 군이 사용 중인 C2 경기관총은 FAL의 변형이다. | |
여담으로 소련-러시아제 총들의 특징 중 하나가 내구성과 안정성인데, 이런 특징은 환경의 영향을 많이 받은 결과물이기도 하다. 커다란 국토로 말미암아 다양한 여러 조건 하에서 전쟁을 벌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소련-러시아의 총기 개발자들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연구를 하여야 한다. 즉, 적어도 싸움을 벌이는데 지장이 없어야 한다고 생각한 것인데 오히려 이런 단순한 목표가 좋은 총을 만들어낸 지름길이었다.
FAL의 뛰어난 점을 하나만 손꼽으라면 단연코 반동제어다. 7.62mm 나토탄을 사용하므로 자동사격에서는 반동제어가 어렵지만, 반자동사격을 할 경우 여타 전투소총보다 반동이 훨씬 적었다. AK-47과 비교한다면 연사에서는 뒤지지만 위력은 더 뛰어난 것으로 평가 받았다. 이 때문에 교전에 임할 경우 주로 반자동사격으로만 사용하도록 권고되는데 이는 당시 서방의 전투소총들이 반동제어에 상당히 고민이 많았음을 알 수 있게 해주는 대목이다.
기회를 포착한 풍운아대부분의 나토 국가들이 직도입하거나 라이선스 생산하여 제식화한 것을 필두로 하여 무려 90여 개국에서 FAL을 사용했다. 이로써 제2차대전 후 등장한 ‘전투소총’이라는 장르에서 당당히 FAL은 M14, G3와 더불어 3대 소총의 위치를 점하게 되었다. 하지만 M14가 미군이라는 거대한 내수시장에 철저히 의존했고 G3가 해외에서 선호도가 높은 전통의 독일제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FAL이 가히 진정한 승자라 할 만하다.
소말리아에서 평화유지군으로 파견된 나이지리아군이 FAL로 무장하고 있다. |
포클랜드를 기습 점령한 아르헨티나군의 모습을 보도한 잡지. 당시 아르헨티나군의 주력 소총이 FAL이었는데 공교롭게도 영국군도 이를 사용하였다. | |
거기에다가 FAL이 ‘경량자동소총’의 약자인 것처럼 가벼운 편에 속하여 5.56mm 탄을 사용하는 돌격소총이 대세가 된 지금도 여러 나라에서 현역으로 활약 중이다. 그렇다 보니 수많은 전쟁이나 분쟁 지역에서 예외 없이 FAL이 등장했다. 그 중 1982년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에서는 양쪽 군 모두 FAL로 무장하고 교전을 벌였다. 냉전 말기에 벌어진 이 전쟁에서 영국과 아르헨티나 모두가 서방의 무기 체계로 무장하고 있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하지만 FAL이 세계적 소총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성능보다 시대 상황 때문이었다. 만일 3~4년 정도 뒤에 선보였거나, 나토가 제식화한 지 불과 2년 밖에 안 된 SKS를 과감하게 도태시키고 AK-47로 교체한 소련 같은 결정력이 있었다면 FAL의 운명은 달랐을지 모른다. 그래서 이름도 제대로 남기지 못하고 명멸해간 많은 여타 소총에 비한다면 내수를 기대할 수 없는 약소국에서 만들어진 소총으로 한 시대를 풍미한 FAL은 시대를 잘 타고난 기린아라 할 수 있다.
사격 훈련 중인 자메이카군 |
전통의 총기 강국인 서독군도 1950년대 G1이라는 제식명으로 FAL을 사용하였다. | |
제원 탄약 7.62×51mm NATO / 급탄 20발 탄창 / 작동방식 가스작동식, 틸팅 볼트 방식 / 전장 1,090mm / 중량 4.45kg / 발사속도 분당 650발 / 유효사거리 600m
글 / 남도현[군사 저술가] [전쟁, 그리고], [2차대전의 흐름을 바꾼 결정적 순간들], [끝나지 않은 전쟁 6.25] 등의 군사 관련 서적을 저술한 군사 저술가. 국방부 정책 블로그, 군사월간지 [국방과 기술] 등에 칼럼을 연재하고 있다. 현재 무역대행 회사인 DHT AGENCY를 경영하고 있다. 자료제공 / 유용원의 군사세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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