창세기 1장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와 창조,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
(찬송 시편 8편 – 악보는 맨 뒷장에)
2024-1-1, 월
맥락과 의미
창세기 1장은 구원받은 우리 성도들에게 복음입니다. 복된 소식입니다. 이 말씀을 통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복음을 받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생활세계는 우연이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해 만들어 주신 좋은 곳임을 기억합시다. 우연히 살아가는 것이 아닙니다. 아버지의 보호 가운데 살아갑니다. 우리 각자에게 특수한 사명을 주셨습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삼위 일체로 만난다(1-3절)
2. 하나님은 세상을 질서있고 좋게 만드셨다(4-25절)
3.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26-31절)
4. 창세기의 좋은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실현되고 있다
1. 우리는 하나님을 삼위 일체로 만난다(1-3절)
창세기 1장은 삼위일체이심을 신약 성경처럼 선명하지는 않지만, 분명히 보여 줍니다.
1절,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아버지 하나님입니다.
2절,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하나님의 신은 성령님입니다.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이 창조하신 원 물질 위에 독수리처럼 덮고 있습니다.
3절, “하나님이 말씀하시니라.” 말씀이신 아들 하나님입니다. 요한복음 1:1은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하면서 그 말씀은 아들 하나님이라고 합니다.
삼위 일체 하나님께서 당신의 좋은 성품으로 좋은 세상을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은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좋으신 하나님께서 계획적으로 창조하셨습니다.
이 세상은 그냥 수학 공식에 따라, 물리 법칙을 따라 우연히 생겨난 것이 아닙니다. 경기장에서 선수들이 축구 규칙을 따라 운동하지만, 규칙이 선수들을 움직이게 만들지 않습니다. 축구 협회가 규칙을 만들고, 선수들은 인격적 주체로서 그 규칙을 따라서 의지로 결정합니다. 인격적 주체로서 힘을 내어 움직입니다. 축구 규칙을 만든 것도, 축구 활동을 하는 것도 인격인 사람이 합니다. 규칙이 명령하지 않습니다.
마찬가지로, 이 세상의 수학 물리적 법칙, 도덕 법칙을 인격 (혹은 신격)이신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그 뜻대로 운영하십니다. 또 인격인 사람은 그 규칙을 발견하고 사용합니다.
“하나님의 신이 수면 위에 운행”한다는 것은 독수리가 날개를 펄럭 펄럭하며 새끼들을 그의 날개 아래 품고 있는 모습을 말합니다. 신명기 32:11에서는 “독수리 날개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집트에서 구원했다.”고 합니다.
태초부터 성령 하나님께서는 온 세상을 독수리가 새끼를 품듯이 따뜻하게 품으셨습니다. 특별히 예수 그리스도를 주님으로 고백하는 우리들에게 하나님은 특별하십니다. 아버지의 사랑으로 우리를 품고 있습니다.
땅만 보지 맙시다. 경제 수치만 보지 맙시다. 물질만 보지 맙시다. 집만 보지 맙시다. 우리 경제가 좋아도 나빠도, 우리 집이 넓어도 좁아도, 삼위 일체 하나님이 우리를 품으신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습니다.
불신자처럼, “재수 좋으면 잘 될 것이다.” 는 태도도 맞지 않습니다. 성령님의 인도를 설레는 마음으로 기대합니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주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신뢰하며 살아갑시다.
2. 하나님은 세상을 질서있고 좋게 만드셨다(3-25절)
1) 하나님이 질서있게 만드신 세상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는 원래 물질의 재료를 창조한 것을 말합니다. 이어서 물질에 질서를 주시고, 정리 정돈하시는 일을 계속하십니다.
첫째 날은 빛과 어두움으로 나누셨습니다. 둘째 날에는 궁창 즉 하늘 위의 물과 궁창 즉 아래의 물, 즉 땅 위의 물로 나누셨습니다. 그래서 하늘이라는 공간을 만드셨습니다. 셋째 날에는 땅 위의 물을 모두 바다로 모으셔서, 육지라는 공간을 만드셨습니다. 이렇게 하나님께서는 아무 것도 없는 것에서 물질이 생겨나게 하셨지만, 만드시는 과정에서 질서있게 나누셨습니다.
그리고 나머지 3일 동안에는 그 공간의 주인을 만드십니다. 넷째 날에는 낮과 밤을 주인으로 다스리는 해와 달, 별을 만드십니다. 다섯째 날에는 하늘 공간의 주인인 새들, 땅의 물의 주인인 고기를 만드십니다. 여섯째 날에는 육지의 주인인 동물을 만드십니다. 그리고 육지에 있으면서, 하늘과 땅 전체를 주인으로 다스리는 사람을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빚어서 만드십니다.
2) 하나님이 좋게 만드신 세상
질서있게 만드시고, 하루가 끝날 때 마다, “좋았다.” “좋았다”를 반복합니다. 모든 것을 끝낸 6일 째에는 “심히 좋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세상은 질서와 규칙이 있습니다. 예레미야 31:35는 말합니다. “나 여호와는 해를 낮의 빛으로 주었고, 달과 별들을 밤의 빛으로 규정”하였고, 이 “규정”은 폐할 수 없다고 합니다(렘 31:35,36).
하나님께서는 자연법칙을 만드시고 질서를 주십니다. 바다물이 육지로 오지 못하도록 하나님께서 막으시고 있습니다. 때로는 우리로서는 알 수 없는 이유로 쓰나미 같은 재난이 일어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일반적인 법칙과 질서를 주셔서 우리가 안정감 있게 살아가게 하십니다.
더구나 예레미야 33:20-21은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하나님의 아들 딸로 삼으신 그 은혜언약이 우리가 사는 자연 세계 안에 스며 들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자연 법칙, 경제 법칙은 단순이 법칙이 아니라 하나님이 그것들을 통해 우리에 대한 언약적 사랑을 나타내시는 은혜의 수단입니다.
질서를 탐구하며 공부하는 그리스도인 학생들, 그 질서를 이용하여 사업하고, 가사일을 하는 성도님들, 모두가 그 법칙과 질서를 불편해하지 맙시다. 기쁨으로 우리의 유익을 위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배우고 사용합시다.
우리가 사는 세상은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인격적으로 다스리시기 때문에 좋은 세상입니다. 하나님이 질서있게 다스리십니다. 갑자기 이상한 일이 생기는 불안한 세상이 아닙니다. 안전하고 질서있게 다스리십니다.
아담의 타락 이후로 무질서가 생겨났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세상이 원래 무질서하게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좋지 않고 추한 것이 원래 세상은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구원받은 우리들은 원래 좋은 것 안으로 들어와 있습니다. 어떠한 일이 생기더라도, 세상이 무질서하고 혼돈해 보이더라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이 우리를 안정되게 붙들고 계시다는 사실을. 추하고 괴로운 현실 속에서도, 이것이 마지막 말이 아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추하고 좋지 않은 현실을 너머서 “좋고 좋은 세상”안으로 인도해 주셨습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그 안에 두셨습니다. 무질서와 좋지 않은 현실에 주저 앉아 있지 마십시오. 하나님의 질서와 좋음 안으로 일어나 오십시오. 마치 예술작품을 만들듯이 질서와 좋은 것을 세상 가운데 많이 생산해 냅시다.
3.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다(26-31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원형인 하나님을 경배하는 예배자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삼위 일체이시므로, 우리를 남녀로, 공동체로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셨듯이 우리도 땅을 다스리고 정복하며 창조적 활동을 하게 하셨습니다.
특별히 다스리며 하나님의 성품을 나타내도록 만들었습니다. 밤과 낮의 공간의 변화와 시간을 해와 달, 별들이 다스리도록 하신 하나님은 사람을 땅이라는 공간의 주인으로 만들었습니다. 다스리고 정복하게 했습니다. 하늘, 바다, 땅의 모든 동물들을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여기에 바로 인간의 존엄성이 있습니다. 다른 사람이 “너는 훌륭하다.” 인정하니까 갑자기 우리의 존엄성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너는 왜 그 모양이냐?” 그 말 한마디에 우리 존엄성이 사라지는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하나님의 형상으로, 누구도 빼앗아 갈 수 없는 그런 존엄한 존재로 만들어 주셨습니다. 하나님과 관계 속에서 귀한 존재로 삼으셨습니다. 우리 자신이 존엄한 존재임을 인정하고 주장하십시오.
모든 사람에 대해서도 그들의 존엄성을 인정하고 주장해 주십시오. 하나님을 믿지 않는 사람도 동물과 비교할 수 없는 존엄성이 있습니다. 장애인도, 어린이도, 노인도, 누구든지 하나님의 형상으로서 존엄함이 있습니다. 존엄한 사람들 가운데서도, 여기 있는 성도들, 그리스도의 사람들은 더더욱 존엄합니다.
오늘 본문은 하나님이 “나누었다”는 표현을 쓰고 있습니다. “나누었다 (바달)”이 레위기 10:10에 쓰입니다. 제사장들이 회막에 들어갈 때는 술을 마시지 말라고 하면서, 제사장의 사명에 대해 이렇게 말합니다. “그리하여야 너희가 거룩하고 속된 것을 분별하며(바달), 부정하고 정한 것을 분별하고, 또 나 여호와가 모세를 통하여 명한 모든 규례를 이스라엘 자손에게 가르치리라.”
제사장이 할 사명은 부정한 것과 정한 것을 분리해야 합니다. 악한 것과 선한 것을 분별해야 합니다. 또 선한 것 중에서 예배에 바칠 거룩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 즉 속된 것을 분리해야 합니다. 이스라엘 백성 전체도 이런 분별력을 가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도 땅을 다스리고 나갈 때 항상 선을 선택하기 바랍니다. 선하게 사는 것은 우리의 존엄성의 문제입니다. 일상의 선한 것 가운데 힘껏 사시되, 주일의 시간은 하나님께 드리는 거룩한 예배의 시간으로 구별해 두십시오. 편히 쉬면서 예배하기 바랍니다. 매일 살아갈 때도 일정한 시간은 기도와 말씀으로 하나님을 만나는 시간으로 떼어 두시기 바랍니다.
4. 창세기의 좋은 세상은 교회를 통해서 실현되고 있다
창세기의 모든 좋은 것은 교회를 통해, 성도를 통해 역사적으로 성취되고 있습니다. 창세기 1:28,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도행전 6:7에서 “말씀이 점점 왕성하여(생육하고) 제자의 수가 더 심히 많아지고(번성하다)”고 실현되고 있음을 성령님이 증거합니다. 말씀이 생육하고 제자들의 수가 번성했습니다.
아담의 반역 때문에 하나님께서 실패하셨듯이 보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에 말씀을 주시고 말씀이 교회 안에 풍요롭게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말씀을 받으면서 제자들의 수가 점점 더 많아졌습니다. 바로 여러분을 통해 하나님의 창조의 목적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믿지 않는 자들이 아무리 부자이고 아무리 훌륭해 보이더라도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하나님 입장에서는 무가치합니다. 성도들이 아무리 가난하고 부족함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께 가장 소중합니다.
믿고 복종할 일
삼위 일체 하나님을 예배하며 감사하며 살아가는 한 해 되기 바랍니다. 말씀을 배우며 하나님의 말씀이 우리 가운데 가득하기 바랍니다. 생육하기 바랍니다. 우리 각자의 가정을 통해 생육하고 번성하는 복이 있기 바랍니다.
일을 시작할 때 일이 잘 될 것 같아도, 그렇지 않아 보여도 일단 감사하며 살아갑시다. “한 해가 끝나서 결산해 보고, 잘되었으면 감사드릴게요.” 그런 믿음이 없는 태도를 버립시다.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회복하시는 이 은혜를 확신하십시오. 일단 감사하며 한 해를 시작합시다. 좋으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시작합시다.
조금 더 생각하기
<참고> 천지와 만물의 창조
구분하여 공간을 만드심 | 다스리는 자 |
첫째 날: 빛 (빛/어둠으로 나누심) (3-5절) | 넷째 날: 해,달, 별 (14-19절) |
둘째 날: 궁창 (물 하늘 위/아래로 나누심) (6-8절) | 다섯째 날: 새/고기 (20-23절) |
셋째 날: 땅 (땅/바다의 물로 나누심) 채소, 과일 (9-13절) | 여섯째 날: 땅 짐승, 사람 채소. 과일을 음식으로 주심 (24-31절) |
<참고> 28절, “생육하고(파라) 번성하라(라바)”
= 행 6:7, “말씀이 왕성하고(플레티노) 제자들의 수가 많아지니라(아욱사노)”
창세기 1:28,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사도행전 6:7에서
“말씀이 왕성하여(아욱사노, 생육하고 = 파라의 헬라어 번역어)
제자들의 수가 많아지니라(플레티노, 번성하다 = 라바의 헬라어 번역어)”
로 실현되고 있음을 성령님이 증거합니다. “생육, 번성”의 히브리어 “파라, 라바”의 헬라어 번역 “아욱사노, 플레티노”가 정확히 반복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