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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딩친구들 2명과 남산둘레길(북측순환로)을 걷고 점심식사를 한 후 소화도 시킬겸 서울시청옆 덕수궁을 찾아갔다. 덕수궁(德壽宮)은 사적 제124호인 조선시대의 궁궐이다. 1611년에 경운궁, 1618에는 서궁으로 불렸으며, 1897년에 고종이 러시아 영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궁궐의 건립이 이뤄졌다.
1897년, 1900년, 1902년, 1904년에 걸쳐 궁궐의 건립과 중건이 진행되었고, 1907년 고종이 현재의 이름인 덕수궁으로 바뀌었다. 1910년에는 근대 서양식의 석조전이 건립되었다. 전통 목조건축과 서양식 건축이 함께 남아 있으나, 조선의 5대 궁궐(경복궁, 창경궁, 창덕궁, 경희궁, 덕수궁) 중 규모는 가장 작고 전체배치가 정연하지 못하였다.
◈ 덕수궁(德壽宮)의 역사
조선의 5대 궁궐 중에서 가장 규모가 작은 것으로 조선말 고종이 살던 곳이다. 궁궐의 자리는 원래 성종의 형인 월산대군의 집이 있었던 곳으로 선조가 임진왜란 직후 임시거처로 사용하면서 행궁이 되었다. 광해군은 이곳에서 즉위한 뒤 1611년 10월 경운궁으로 이름을 바꿨다.
1615년(광해군 7)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빈 궁궐이 되었으며 1618년 인목대비가 이곳에 유폐되면서 서궁으로 불렸다. 인조는 이곳 별당에서 즉위했으나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는 바람에 다시 빈 궁궐이 되었다.
1896년 아관파천으로 왕태후와 왕태자비가 이곳으로 옮겨와 생활했으며 1897년 고종이 러시아 영사관에서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본격적인 궁궐건물의 건립이 이뤄졌다. 그 해에 역대 임금의 영정을 모시는 선원전, 침전인 함령전, 보문각 등이 지어졌으며 9월 17일 고종이 황제 즉위식을 하고 소공동의 원구단에서 하늘에 제사를 지냄으로써 정궁이 되었다.
1900년(광무 4) 담장공사가 완공되었고 정문인 인화문 및 돈례문·회극문·영성문 등의 전문이 완성되었다. 그해에 선원전이 불탔다. 1902년 정전인 중화전과 관명전 등이 새로이 건립되었으며 1904년 대규모 화재로 많은 건물이 불타버렸으나 즉조당·석어당·함령전 등이 중건되었다. 이때 정문의 이름을 대안문이라 했다. 1905년 중화전을 다시 짓기 시작하여 이듬해 완공되었으며, 이때 대안문도 수리하여 대한문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1907년 고종이 순종에게 왕위를 이양하고 이곳에 살면서 현재의 이름인 덕수궁으로 바꾸었다. 순종이 이곳의 즉조당에서 즉위한 뒤 창덕궁으로 거처를 옮기면서 고종의 거처가 되었다.
1910년 근대건물인 서양식의 대규모 석조전이 건립되었으며, 1919년 고종이 함령전에서 죽었다. 1921년 중화전에 봉안했던 고종의 영정을 창덕궁 선원전으로 옮겨 현재에 이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