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억 장애인 돕는 하나의 밀알
- 이재서 회장(세계밀알연합회·예손교회)
어릴 적 열병 충격, 15세에 실명
전세계 종횡무진 예수 사랑 전해
“보이니?” 의사의 물음에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하루아침에 15살 사춘기 소년에게서 세상의 빛이 사라졌다. 유아기 때 앓았던 열병의 충격이 잠복해 있다 뒤늦게 시신경을 망가뜨렸다. 어둠의 장벽이 그의 앞길을 막았다. 눈 앞보다 머릿속이 더 캄캄했다. 오직 한 가지 생각 뿐.
‘끝이다! 이제 세상은 끝이다’
그러나 그것이 인생의 끝이 아니었다. 시작이었다. 40여 년이 지난 그 소년은 교수가 되어 대학 강단에서 열정적으로 강의하고 있다. 그리고 전 세계 6억 장애인들의 영혼 구원과 복지를 위해 누구보다 바쁘게 날아다니고 있다. 어둠을 뚫고 빛으로 나온 그가 빛처럼 밝게 빛난다.
이재서 회장은 “홀로 방안에서 끊임없이 자살 방법을 궁리했죠. 나중엔 정신이 이상해지는 것 같았어요”라며 실명 당시를 기억한다. 1년여를 억울해서 간신히 연명하던 그 때. 형의 제안으로 서울맹학교에 입학할 수 있었다. 배움은 초등학교 졸업이면 적당하다고 생각하던 아버지는 그를 중학교에 보내지 않았다. 그러나 실명 후 집안에서 폐인이 되어가던 아들을 맹학교에 보낼 결심을 한 것이다.
맹학교에서 그의 장애는 문제가 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 곳만 벗어나면 세상은 보이는 것만 믿고 보이는 대로 행동하는 평범한 사람들만의 무대였다. 장애인에 대한 인식 수준이 매우 낮았던 시절. 장애인이 문 밖을 나서는 것조차 죄가 되었다. 그가 아무리 노력을 해도, 공부를 잘해도, 세상에 발 딛는 순간 그의 모든 업적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는 6년 동안 학교에 다니며 점자를 배운 그는 공부와 글쓰기에서 재능을 발견했다. 대학에 진학하고 싶다는 열망은 태산처럼 컸지만 가난은 꿈을 포기하게 만들었다. 진로고민으로 침체에 빠져있던 1973년. 여의도 광장에서 열린 빌리 그레이엄 목사 집회에 참석한 후 그의 인생은 180도 달라졌다. “성령이 역사하는 걸 느꼈죠. 그전에는 비판할 것 투성이던 하나님의 말씀이 믿어지기 시작 했어요” 실명으로 인한 상실감, 미래에 대한 우울한 마음이 일거에 사라졌다. 이재서 회장은 무한히 크신 하나님 안에서 자기 삶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정할 수 있게 됐다.
세상은 달라진 것이 없었지만 그는 예전의 이재서가 아니었다. 달라진 그의 마음속에 장애인 선교에 대한 꿈이 꿈틀대기 시작했다. 꿈을 현실로 이루기 위해 이재서 회장은 순천성경학교와 가시밭길 같은 과정을 거쳐 총신대학교에 입학한다. 비장애인들과 동등하게 경쟁하며 오히려 ‘장애인은 못 한다’는 편견을 멋지게 깨는 선례들을 만들어 냈다.
1979년 이재서 회장은 장애인들을 위한 선교 단체를 결성하게 된다. 진정한 행복은 하나님 안에서만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을 체험했기에 ‘장애인에게 전도하는 것’을 제일의 목표로 삼았다. 또 장애인을 도와주고(봉사), 장애인에 대해 교회와 사회에 바로 알린다(계몽)는 사명으로 한국밀알선교단을 창립했다.
당시 이재서 회장은 당장 다음 학기 등록금을 걱정해야 하는 가난한 대학생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직 하나님이 주신 꿈대로 기도하며 행동에 나섰다. 한국밀알선교단은 수화와 점자를 일반인들에게 알리고 장애인들을 위한 녹음·점역, 수화찬양단을 만드는 등 톡톡 튀는 아이디어로 단체의 활동을 다양화했다.
이재서 회장은 밀알의 지부와 조직이 늘어나는 과정에서 더 체계적인 사회복지학 공부가 필요하다는 것을 깨닫고 미국 유학을 결심한다. 단체가 안정되어가는 상황에서 이 회장의 결단은 무리한 도전으로 보였다. 모든 것이 다시 ‘0’에서 시작됐다. 장애는 또 그의 발목을 붙잡고 늘어졌다. 사람들은 “할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재서 회장은 보란 듯이 유학생활 10년 만에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그 이면에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손발이 되어준 부인 한점숙 씨의 헌신, 본인의 뼈를 깎는 노력이 있었다.
또한 바쁜 생활 속에서도 미국에 밀알선교단을 창단했다. 이것은 그의 귀국 후 1995년 한국과 미국의 단체를 통합한 세계밀알연합회(세밀연)의 출범으로 이어졌다. 현재 세계밀알연합회는 미국 외에도 캐나다, 브라질, 러시아, 중국, 인도, 네팔 등에 지부를 두고 있다. 세밀연은 2003년부터 3차에 걸쳐 북한 장애인에게 휠체어, 흰 지팡이, 목발, 항생제 등 46억원 상당의 물품을 지원해왔다.
이재서 회장은 “북한과 통신 수단이 원만하지 못하고, 민간 지원활동도 정치상황에 민감하게 반응하기 때문에 어려움을 겪지만 이미 4차 지원을 위해 모든 준비가 된 상태다. 지속적으로 북한 장애인들의 복지 향상을 위해 방법을 모색해 나가겠습니다”라고 밝혔다. 이재서 회장은 이와 더불어 25년의 세밀연의 활동을 토대로 2004년 ‘장애인의 날’ 기념식에서 정부로부터 국민훈장 목련장을 수상했다.
이재서 회장은 세계밀알연합회가 만들어진 것부터 60여개의 지부가 개성을 갖고 하나가 되어 활동하는 모습 등이 기적이라고 말한다. 흡사 한 알의 밀알이 땅에 떨어져 수십배 수백배의 결실을 맺는 것처럼. “이제 알게 되었죠. 실명은 축복에 이르는 길이었어요. 나에게 장애가 있었기 때문에 장애인 사역에 사명감과 의무감을 가질 수 있었습니다” 시련 속에서 그는 더욱 단련되었다. 본인이 장애인이기에 누구보다도 장애인들의 마음과 필요를 알고 있었다. 그 때문에 생을 걸고 장애인들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었다.
그는 지난 4월 ‘아름다움은 마음의 눈으로 보인다’라는 제목의 자서전을 출판해 신앙유무를 떠나 사람들에게 생생한 감동을 전해주고 있다. 생생한 감동일 수밖에 없는 것은 그가 지난 38년 동안 점자로 쓴 일기가 바탕이 되었기에 글 내용이 오늘 일어난 일과 같은 아픔과 기쁨으로 다가온다.
이재서 회장은 먼저 어두움과 고난을 헤쳐 나온 이로서 지금 힘들고 어려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이들에게 따뜻한 위로를 전한다. “고난은 이메일로 오듯 빠르게 오지만 그에 대한 설명서는 배를 타고 천천히 옵니다. 낙심하지 말고 기다리면 배가 도착해서 설명서를 받아 읽을 날이 반드시 올 겁니다” 그의 가르침이 오래도록 잊혀지지 않는다.
<글·복순희 / 사진·김용두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