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물로 얼룩진 육사 생도2기 졸업장]
육사 생도2기생의 집착은 당사자 외에는 이해하기 어렵다. 1950년 6월 1일 입교해 불과 25일만에 전투에 투압돼 86명의 전사자를 내고도 육사 졸업장 없이 엉뚱한 과정의 졸업장을 받고 임관해야 했던 불운의 청소년.
임관 후에도 6.25전쟁 판에서 대충 모집한 4년제 11기 졸업생으로부터 차별과 조롱을 받으며 현역 장교로 근무해야 했던 30여 년. 그 노병들의 소망은 단 하나였다. 대한민국 법률에 따라 최초의 정규 사관생도로 입교하면서 그날의 감동 희망 꿈을 기억할 수 있는 명예졸업장을 받고 당당히 육사 기수에 편입해달라는 그 소탈한 명예였다. 그 명예졸업장은 법적으로 아무 효력이 없는 종이 한 장에 불과하지만 그들에게는 가슴 벅찬 최고의 가치였다.
이 글을 쓰고있는 2022년 7월 현제, 330명 중 살아남은 동기생은 불과 21명, 그 가운데 보행 가능한 동기생은 10명 뿐이다. 그런데도 6.1동기회는 가동중이다. 2022년 6월 1일에도 육사 '참전 생도상' 기념비 앞에서 기념행사를 가졌다.
1994년 동기회장이 된 나는 1차 목표인 생도시절 전사자 86명을 육군소위 추서임관 시키는데 성공하자 이어서 명예졸업장과 육사 기수 회복에 들어갔다. 시기적으로 가장 적절하다고 판단했다. 생도2기 부활을 적극 반대했던 전두환이 대통령 직에서 물러나고 방관하던 노태우도 퇴진했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새로 취임한 김영삼 대통령은 첫 대통령 선거 당시 그를 도와 선거 캠프에서 육군분과위원장으로 활동하면서 주 1회 상도동 자택에서 육군의 실상 설명시 생도2기에 대한 탄압 내용도 보고했기 때문에 알고 있을 것으로 생각되었다.
그러나 직보하는 방법보다 절차에 따르기로 하고 육사 생도2기 동기회장 박경석의 이름으로 국방장관과 육군참모총장 앞으로 1995년 2월 2일 명예졸업 건의서를 우송하였다. 그러나 아무 소식 없다가 몇 개월 후에 육군본부 예비역 협력과장 정의환 대령 이름으로 회신이 왔다. '명에 졸업장 수여는 전례가 없어 명예졸업장 수여가 곤란하다'는 내용이었다. 나는 그 문서를 받고 몹시 불쾌했다. 참모총장 명의도 아니고 육군대령 실무자의 이름으로 서신 형식으로 회신이 왔기 때문이었다.
한동안 분노의 숨결을 가다듬고 다시 육군참모총장 앞으로 강력한 내용의 건의서를 보냈다. 그 내용에는 1951년 이승만 대통령의 발표문인 훈령 내용을 기재하며 책임 회피를 물었다. 그 훈령에는 이승만 대통령이 ' 전쟁으로 인한 학제, 학년 등 손해는 전투 참가자의 경우 회복 시켜야 한다'는 내용이었다. 그러나 소식이 없었다.
나는 그 연유를 분석했다. 결과는 문제의 원인을 나에게 돌렸다. 첫째, 나는 당시 작가와 군사평론가로 활동 하면서 군부 쿠데타를 비롯 군부 독재에 대해 맹렬한 비판을 하고 있었다. 당시 김영삼 문민 정부이기는 하지만 국방부와 육군본부에는 하나회 잔존 세력들이 구석구석 남아있어 그 세력이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었다. 더구나 나는 1995년 12월 KBS 1TV 뉴스초점에 출연하여 30분 동안 하나회 정치군인에 대한 신랄한 비판을 쏟아낸 적이 있어 군 당국의 하나회 잔존세력들이 내 건의를 받아들일 가능성이 없다고 판단했다. 따라서 그 대안을 심중히 생각했다.
그 대안으로 내가 동기회장직에서 물러나고 정치군인과의 관계도 좋은 군단장 역임의 장정렬 예비역 중장에게 넘겨주어 그가 명예 회복을 추진하면 성공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했다. 나는 총회를 소집해 내 의중을 발표하자 전원 일치로 그 안이 통과되어 내 임무를 장정렬 장군에게 넘겨주었다.
내가 예측한대로 장정렬 회장은 우리의 안건과 관계되는 당사자를 하나하나 초청해 식사를 하면서 각개 격파하는 방법으로 추진한 결과 성공 가능성이 보이기 시작했다. 특히 당시 참모총장 윤용남 장군은 상호 교류가 있을 정도로 관계가 돈독했다. 이어서 육사총동창회장 김점곤 장군과 만나 동의를 넘어 환영한다는 약속으 받아내는 등 내 방법으로 안된 모든 것을 단숨에 성공시킬 수 있었다.
1996년 5월 4일은 육사 개교 50주년 기념일이다. 육군본부와 육사 지휘부에서는 어떤 역사적인 이벤트를 찾고 있던 차에 육사생도2기생의 명예졸업장 수여식으로 결정했다. 김영삼 문민 정부가 아니면 실현 불가능한 프로젝트였디
화랑 연병장에서 거행된 육사 개교 50주년 기념행사는 마치 육사 생도2기 졸업식처럼 되어버려 참석 생도2기 94명은 감동한 나머지 거의 모두가 육사생도의 퍼레이드 사열을 받으며 한결같이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 백발의 노병들이 젊은 육사 교장으로부터 졸업장을 받는 장면은 모든 방송사에서 현장 중계되어 육사생도2기는 만방에 퍼져 외신에서까지 취재 타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특히 이날 국방장관이 김영삼 대통령의 경축사를 대독하는 가운데 '육사생도2기생 전원에게 축하한다'는 축사가 포함돼 명예 졸업생 모두에게 감동을 주었다.
경사는 이뿐만이 아나니었다. 육사 총동창회에서 제정 수여하는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이 명예 졸업생 전원에게 수여되었다. 졸업생 전원에게 주어진 '자랑스러운 육사인상'은 이 경우 유일하다.
이 행사가 끝난 후 육사에서는 졸업생 전원의 이름을 동판에 새겨 육사 기수별 기념탑에 부착해 영구불멸의 육사인으로 각인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