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위 인문학] 드라큘라
1897년 흡혈귀 이야기, 뮤지컬·연극으로 재탄생했어요
입력 : 2023.02.20 03:30 조선일보
드라큘라
▲ 브로드웨이 버전 뮤지컬 ‘드라큘라’에서 주인공을 맡은 가수 김준수가 관 안에서 노래하고 있어요. /오디컴퍼니
"흡혈귀(吸血鬼)의 입술이 목에 닿는 느낌을 아십니까?" -10월 30일, 미나 머리의 일기 중에서.
아일랜드 작가 브램 스토커(Bram Stoker·1847~1912)는 구전으로 떠돌던 흡혈귀 전설을 모은 소설을 써서 1897년 발표합니다. 병약한 어린 시절에 침대 머리맡에서 어머니가 들려준 기괴한 전설과 귀신 이야기가 자양분이 됐지요. 이 책이 바로 '드라큘라'입니다. 산업혁명의 시작으로 새로운 과학기술에 대한 희망으로 가득 찼고, 초자연적 존재에 대한 두려움도 공존하던 시대, '드라큘라'는 출간되자마자 큰 성공을 거두게 되죠. 그리고 한 세기가 훌쩍 지난 지금까지도 전 세계적으로 수많은 영화·드라마·연극 그리고 뮤지컬로 변주되며 고전의 반열에 오릅니다.
원작, 이루지 못한 사랑 이야기
편지를 주고받는 형식의 서간체 소설 '드라큘라'의 주인공은 루마니아 트란실바니아에 있는 음산한 고성의 주인 드라큘라 백작이에요. 그는 살아 있는 사람의 피를 마시면 영원히 살 수 있죠. 소설 속에서야 결국 영생(永生)의 삶을 얻지 못하고 죽음에 이르지만, '드라큘라'라는 이름은 모든 이들의 기억 속에서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원작 소설은 800페이지에 이르는 방대한 양인데, 몰입감이 대단해서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어요.
런던의 젊은 변호사 조너선이 트란실바니아의 영주 드라큘라에게 편지를 받으면서 이야기는 시작됩니다. 영국에 땅을 사고 싶으니 조너선이 대리인이 되어 달라는 내용이었죠. 조너선에게는 미나라는 아름다운 약혼녀가 있었어요. 드라큘라는 미나가 400년 전에 비극적인 죽음을 맞은 연인 엘리자베스의 환생(還生)이라 믿고, 그녀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어 자신과의 사랑을 이어나가기 위한 위험한 계획을 시작해요. 백발에 주름진 노인의 모습이었던 드라큘라는 사람의 피를 마시고 젊음을 얻기 위해 차례차례 희생양을 만듭니다. '드라큘라 사냥꾼' 반 헬싱 교수가 등장하면서 드라큘라를 향한 포위망은 점점 좁혀지고, 미나를 향한 그의 이루지 못한 사랑은 전설처럼 남아 전해지죠.
뮤지컬, 브로드웨이 버전 vs 체코 버전
한국 무대에서도 오랫동안 사랑받고 있는 뮤지컬 '드라큘라'는 두 가지 버전입니다. 제작 국가에 따라 체코 버전, 미국 브로드웨이 버전으로 구분하죠. 공연 스타일도 서로 달라 같은 작품이지만 각기 다른 매력이 있어요. 화려한 쇼 뮤지컬을 선보이는 브로드웨이 뮤지컬이 우리에게는 조금 더 익숙하지만, 체코 뮤지컬에는 '한(恨)'의 정서가 흐르고 있어 감정이입이 더 쉽다는 특징이 있어요. 1995년 체코 프라하의 콩그레스센터에서 초연된 뮤지컬 '드라큘라'는 1998년 예술의전당 오페라극장에서 우리나라 무대에 처음 소개됐고, 이후 25년간 계속 공연된 스테디셀러 작품이에요. 가수 신성우씨가 그 긴 시간 동안 한국의 드라큘라로 무대에 서고 있지요.
브로드웨이 버전의 '드라큘라'는 2001년 미국 샌디에이고 라호이아 플레이하우스(La Jolla Playhouse)에서 첫 공연을 올린 후 2004년 브로드웨이에 입성했지만, 아쉽게도 혹평 속에 막을 내렸어요. 그러나 이후 대폭 수정을 거친 작품은 큰 성공을 거둡니다. 2014년 한국에서 초연된 브로드웨이 버전 '드라큘라'는 기존의 나이 많은 '드라큘라' 캐릭터의 고정관념을 벗어나 아이돌 그룹 '동방신기' 출신 김준수 배우를 캐스팅해 큰 화제를 모았어요. 붉은 머리와 창백한 얼굴로 강렬한 인상을 준 김준수 드라큘라는 초연 이후 지금까지 모든 무대에 오를 정도로 관객의 사랑을 받고 있답니다.
연극 '태양'이 구현해 낸 흡혈귀 모티프
길고 뾰족한 이를 사람의 목에 찔러 넣어 피를 마시는 '드라큘라'의 이미지는 강렬할 수밖에 없는데요. 원작 소설을 각색한 뮤지컬과 달리 최근 선보인 연극 '태양'(2월 26일까지·정동극장)은 흡혈귀라는 모티프만 가져와서 새로운 이야기를 만들어냈어요. 이 작품은 가까운 미래의 어느 날, 강하고 늙지 않는 육체를 유지하지만 태양을 피해 밤에만 활동할 수 있는 신인류(新人類) '녹스'와, 생(生)과 사(死)의 굴레에서 자유롭지 않은 평범한 사람들 '큐리오'가 공존한다는 가상의 세계를 그리고 있지요. 큐리오들은 녹스가 돼 영원불멸의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큐리오는 고통스러운 수술 과정을 거치거나, 흡혈귀가 산 사람의 피를 마시듯 녹스의 피를 마시면 녹스가 될 수 있죠. 극의 마지막 무렵, 녹스가 떠오르는 태양을 온몸으로 맞으며 죽음을 선택하는 장면을 통해 연극 '태양'은 우리에게 묻습니다. 태양을 피해 어둠에서만 영원히 존재할 수 있는 삶이 과연 온전한 것일까요. 여러분의 생각은 어떤가요.
[고딕 소설]
고딕 소설(Gothic novel)은 18세기 후반에서 19세기 초반까지 영국에서 성행했던 소설의 한 장르입니다. 음산한 분위기가 풍기는 폐허가 된 중세 건축물이나 고성(古城)을 배경으로 초자연적인 존재가 등장하는 기괴한 이야기가 주로 펼쳐지죠. 첫 고딕 소설 작품으로 꼽히는 건 1764년 발표된 호러스 월폴의 '오트란토 성- 한 가지 고딕 이야기(Castle of Otranto, a Gothic Story)'예요. 현대에 들어 고딕 소설은 중세적 배경으로 한정 짓지 않고 공포스럽고 섬뜩한 인간의 심리 상태를 다룬 이야기까지 포함하고 있어요. 잘 알려진 메리 셸리의 '프랑켄슈타인(Frankenstein)'이나 찰스 디킨스(Charles Dickens)의 '황량한 집(Bleak House)' '위대한 유산(Great Expectations)' 등도 고딕 소설에 속한답니다.
▲ 흡혈귀를 모티프로 한 연극 ‘태양’의 공연 장면. 늙지 않는 육체를 가진 신인류(新人類) ‘녹스’들이에요. 평범한 인간이 이들의 피를 마시면 이들처럼 될 수 있다는 설정이지요. /국립정동극장
▲ 소설 ‘드라큘라’의 저자 브램 스토커가 소설 속 등장인물에 대해 적어둔 노트. /위키피디아
▲ 1897년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소설 ‘드라큘라’ 초판의 표지. /위키피디아
▲ 고딕 소설의 첫 작품으로 꼽히는 ‘오트란토 성 - 한 가지 고딕 이야기’의 표지. /위키피디아
기획·구성=안영 기자 최여정 '이럴 때 연극' 저자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 ㈜ 파우스트 칼리지
전 화 : (02)386-4802 / (02)384-3348
이메일 : faustcollege@naver.com / ceta211@naver.com
Blog : http://blog.naver.com/ceta211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Cafe : http://cafe.daum.net/21ceta 21세기 영어교육연구회
Web-site : www.faustcollege.com (주)파우스트 칼리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