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곳은 완전 개판이었다.
시민들이 처참하게 죽어가며 소리쳤다.
“사람 살려! 우욱,”
“괴물이다! 괴물이 나타났다.”
이 광경에 교정국장은 충격을 받았는지 크게 화를 내었다.
“이봐! 그곳 교도소장 연결해!”
측근도 놀랐는지 사지를 떨며 전화를 연결해주었다.
“네, 네. 연결되었습니다.”
“소장? 나, 교정국장이오.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설명해주시오.”
전화기 너머 해당 교도소장의 목소리가 심하게 떨렸다.
“잘은 모르겠습니다만, 귀휴(일종의 휴가) 다녀온 재소자 한 명이 감염된 것 같습니다.”
“뭐라?”
“그자 때문에 재소자뿐만 아니라 직원들마저 감염되어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이어진 것 같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책임,”
국장은 그의 말을 중간에서 잘렸다.
“이 시국에 귀휴(일종의 휴가)? 당신 미친 것 아냐? 그리고 책임은 무슨 책임? 빨리 인근 향토사단에 지원요청을 받아 조기에 사태를 해결하시오. 모조리 잡아들이지 않으면 당신은 파면이야. 알겠어?”
국장이 씩씩거리며 전화를 끊자, TV를 보던 교정위원들이 새파랗게 질려버렸다.
무산교도소장, 한기백 역시 당혹감에 어찌할 줄 몰랐다.
“이러고도 이놈들을 살려주자고! 무산교도소장! 당신도 똑똑히 봤지, 응?”
한기백은 할말을 잃었다.
“…….”
“포악한 놈들이 감염되어 도시로 숨어들었다고 쳐. 마찬가지로 괴물이 된 놈들 때문에 그나마 남아 있는 생존자들의 안전은 어떻게 되겠냔 말이오.”
무산교도소장은 딱히 할 말이 없어 옆에 있던 교정위원들의 눈치를 보았다.
하지만 사태를 바꿀만한 상황이 전혀 되지 않았다.
게다가 국장의 측근이 또 거들었다.
“이견이 있을 수 없어요. 흉악한 놈들은 죽여야 합니다. 생존자를 위해서나, 또 우리들의 안위를 생각한다면, 법무부의 방침을 어길 순 없어요. 안 그렇습니까?”
그러면서 측근은 직접 서명지를 각자에게 나누어 주었다.
“모두 서명해주십시오. 오늘 중으로 일단락 지어야 합니다.”
그때 한 교정위원이 손을 들었다.
“알겠습니다만, 궁금한 게.”
“뭐요?”
이번엔 국장이 마이크를 잡았다.
“D-day는 언제며, 선정된 그 많은 인원을 어떻게 처리하는지, 그 방법이 ….”
국장은 무산교도소장을 응시하며 명확한 발음으로 대답했다.
“일주일 후, 다음 주 토요일 오후 2시입니다.”
우우~.
“행사를 핑계로 모든 재소자를 운동장에 집합시키면 됩니다. 이미 군과 협의가 끝났습니다. 헬기로 폭탄과 신경가스를 투척할 겁니다. 파괴력은 100%이니, 직원들과 남은 재소자들 대피나 잘 시키면 문제없습니다.”
“그런 후에는요?”
교정위원이 입맛을 다시며 물었다.
“잔해 정리 후 필수 인원만 남고 나머지 직원은 그곳에서 철수합니다.”
“철수하라고요?”
“네, 이때 비밀문서 소각 등 보안에 특히 신경을 써주셔야 합니다. 인쇄물에 교도소별 집결 장소가 있습니다. 무산교도소 경우엔 … 음, 봅시다. 무산 항, 중앙부두네요. 직원과 가족들은 비표로 준비된 배에 올라타십시오. 물론 희망자에 한합니다. 그럼, 시베리아에서 봅시다.”
“국장님 말씀 들으셨죠? 자자, 빨리 서명하고 제출해 주세요.”
국장과 측근의 강압에 모든 교정위원은 서명하였다.
무산교도소장은 입술을 깨물며 서명하지 않을 수 없었다.
* * *
조이태는 7동의 소지(사동 내에서 청소 등 잡다한 일을 하는 재소자)였다.
원래 소지는 이십 대 초반에서 중반 정도의 나이 또래가 담당했다.
하지만 7동(상·하)은 중량감 있는 재소자들이 주를 이루었다.
그래서 34세 나이임에도 이태가 선발되었다.
그 중량감이라는 게 첫째, 전과의 과다 유무 둘째, 죄질의 종류로 구분되었다.
7동에는 거의 전과 3범 이상이고, 살인, 폭력 등 죄질이 무거운 자들이 대부분이었다. 사동은 총 9동이었고, 의무 병동까지 합치면 소지는 총 10명 남짓이었다.
총반장 사무실에서 사실을 안 이태는 충격과 공포에 휩싸였다.
얼른 자신의 방에 들어왔다.
방장이 기다리고 있다는 듯 이태의 팔목을 끌었다.
“어찌 되었나?”
방장의 다급한 목소리에 다른 수감자들도 이태를 주목하였다.
“밖에 난리가 났습니다.”
“어떤?”
“바이러스가 재차 창궐했어요.”
그러자 평생 학교 문턱에 가보지 못한, 절도 전과 9범인 자가 물었다.
“창궐이 뭐요?”
퍽!
“이런 씨발이! 무식하게 말 끊고 있네. 창궐이란 건 다시 도진다는 말이야.”
옆에 있던 수감자가 그의 목덜미를 내리쳤다.
“코로나가 다시 발병했단 말인가?”
방장이 의아한 표정을 지었으나, 이태는 손사래를 쳤다.
“아뇨. 코로나가 아니라, 뭐라 할까? 음, 인간 변이종? 아니, 괴물? 네, 도시에 괴물들이 나타났습니다. 놈들에게 물리면 물린 사람도 괴물이 되는 희한한 감염병입니다.”
“그래? 그렇다면 그게 언제부터란 말인가?”
“벌써 한 달이 다 되어갑니다.”
“한 달이나?”
“네, 그보다 이미 대통령과 정부 요인들 그리고 상류층 등 우리 사회에 힘깨나 쓰는 놈들은 시베리아로 이주할 거라고 합니다.”
그러자 아까 그 수감자가 낙담한 듯 큰 소리로 외쳤다.
“니기미! 그래서 부식이 나빠졌군. 아니, 영치품도 잘 안 들어왔잖아.”
“야! 그게 문제가 아니잖아! 나라를 지키고 국민을 보호해야 할 대통령이 도망간다니, 내 참! 어이가 없네.”
“맞아. 지금이 무슨 임진왜란 때냐? 왕이 도성을 버리고 북쪽으로 도망가게?”
수감자들은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금방이라도 폭동을 일으킬 만큼 사지가 떨리기 시작했고 일부는 쌍욕을 했다.
“니이미, 시발 뽕이다!”
방장은 잠시 한숨을 쉬더니 이태에게 또 물었다.
“그렇다면 여기서 우리가 해야 할 일이 있나?”
모두의 눈이 이태에게 집중되었다.
“아뇨. 특별히 할 일이 없습니다. 그런데 저는 할 일이 있을 것 같네요.”
“뭐? 자네가?”
“네, 사정을 조금 더 파악한 뒤 입장을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럼,”
“아니, 오늘 토요일인데 청소할 것도 없잖나?”
“그게 아니라, 누구를 좀 만나고 오겠습니다.”
“누구?”
“그런 게 있습니다. 다녀올게요.”
이태는 7동을 나와 중문 몇 개를 거쳐 의무 병동으로 뛰었다.
평소에 중문을 지키던 경비교도대원들과 안면을 텄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의무복무를 하던 그들은 매너 좋고 박식한 이태를 내심 존경하고 있었다.
어떤 경비교도대원은 사석에서 이태를 형이라고 불렀다.
하긴 그건, 재소자들도 마찬가지였다.
지방국립대 법학과를 나오고 대기업에서 회계 업무를 담당한 이태였다.
그들은 여러 법률 자문이나 탄원서, 반성문 등을 이태에게 맡기곤 하였다.
이런 사실이 입소문을 타서 무산교도소 내에서 이태를 모르는 자가 별로 없었다.
총반장과의 인연도 여기서 시작되었다.
이태는 머리를 굴려, 이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자 마음먹었다.
의무 병동 소지가 출입문 앞에서 졸고 있었다.
“이봐!”
“넷. 갱생! 엇, 이태 형님?”
“의사 환자 양반 계신가?”
“네, 저기 안쪽에서 바둑두고 계십니다. 들어가 보시죠.”
이태가 찾은 이는 바깥에서 의사로 근무한 자였다.
간호법 설립 때문에 정부에 항의하다 수감 된 일명 백 선생(백기도)였다.
그는 원래 이태가 속한 7동 상에 있던 재소자였다.
그런데 소장을 어떻게 구워삶았는지 내내 의무 병동에 거주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이태는 그가 비범한 인물인 줄 대번에 알았다.
이태는 그에게 아까 TV에서 본 내용을 가감 없이 말해주었다.
의사는 이태의 말을 듣고 곰곰이 생각하더니, 말을 꺼냈다.
“좀비 바이러스가 창궐한 모양이군. 자네는 좀비란 말을 들어본 적이 있나?”
의사의 말에 이태는 적잖이 놀랐다.
“좀비요? 그건 영화나 소설에서 나오는 것 아닙니까?”
의사는 이태의 말에 크게 웃었다.
“아니야. 충분히 개연성이 있는 부분이야. 이거 큰일인데? 한 달 이상 지속하였다면 국민의 반 정도가 감염되었을 것일세.”
“종말이 온다는 말씀입니까? TV를 보니 군도 어쩌지 못하던 모양인데요.”
그러자 백 선생은 사람 좋게 웃었다.
“종말까진 아냐.”
“네?”
“하지만 이런 시대에 진정한 히어로(Hero) 하나만 나온다면 상황은 달라지지.”
“영웅이요?”
“그래 상황을 정확하게 파악하고 놈들을 박멸할 수 있는 결단을 가진 자.”
백 선생은 이태를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그런 자 하나만 나오면 돼. 어때? 그게 자네면 어떨까?”
“제가요?”
이태는 그렇지 않아도 내심 이 위기를 기회로 삼겠다고 마음먹었다.
그래서 그의 말이 전혀 타당성이 없는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이 자가 내 마음을 꿰뚫어 봤나?’
그렇게 이태가 속으로 생각할 때였다.
갑자기 백 선생이 뜬금없는 말을 했다.
“난 자네를 잘 알고 있네. 살인죄로 여기 들어왔다지만, 실상 자네는 노동자의 피를 빨아먹는 악덕 자본가를 보란 듯이 해치웠지 않은가?”
“음…….”
“이 정도면 이 시대 ‘공정과 정의의 아이콘’으로 충분하지. 안 그래?”
이태는 그의 혜안에 잠시 놀랐다.
“그걸 어떻게?”
“하하. 자네 사건은 당시 신문에 대서특필되었어. 그래서 관심 있게 지켜봤지.”
이태는 그의 말에 무릎을 꿇었다.
이에 곧 히어로가 탄생할 징조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