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벌 칼럼] (92) 타성에 젖은 교회 단속하는 교황 / 로버트 미켄스
프란치스코 교황은 즉위 초기부터 전통적으로 교황에게 붙여졌던 ‘이탈리아교회의 수석 주교’와 같은 별칭에 별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이러한 직책에 큰 관심을 두지 않았을 뿐이지 이 직무 수행을 싫어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프란치스코 교황은 다른 어떤 전임 교황들보다 이탈리아교회를 자신의 사목 방침에 따라 바꾸려고 노력했다. 교황은 아르헨티나 출신이지만 그의 가문은 이탈리아 북부 피에몬테에 뿌리를 두고 있다.지난 11월 말, 교황은 혼인무효 법정 간소화를 지시한 자의교서 「온유한 재판관이신 주 예수님」(Mitis Iudex)이 이탈리아에서 제대로 실행되고 있는지 평가하기 위한 특별위원회를 설립해 이탈리아교회의 수석 주교로서의 권한을 행사했다.위원장에는 스페인 출신인 교황청 공소원장 알레한드로 아렐라노 세디요 신부를 임명했다. 공소원은 주로 혼인무효 소송을 관장한다. 위원으로는 공소원에서 오래 일해 온 비토 안젤로 토디스코 신부와 다비데 살바토리 신부, 이탈리아 오리아교구장 빈첸초 피사넬로 주교를 임명했다. 피사넬로 주교는 민법과 교회법 박사이며 이탈리아주교회의 교회법위원회 위원장을 맡기도 했다. 새 위원회의 위원들은 모두 교회법, 특히 혼인과 혼인무효 소송에 관해 상당한 경험을 갖고 있으며 교황의 측근들이다.교황이 특정 국가를 감독하는 위원회를 설립했던 적이 없다는 점도 주목할 만하다. 독일교회는 ‘시노드 여정’이란 이름으로 여성 사제나 동성혼 등 교리에 어긋나는 문제들을 논의하고 있지만 교황은 이를 제재하지 않고 있다. 또 성직자 성추행 문제로 모든 주교들이 사퇴서를 내야했던 칠레교회에서도 교회 개혁을 위한 특정 위원회를 설립하지 않았다.그렇다면 왜 혼인무효 이슈에 관한 위원회이며, 왜 이탈리아교회에 이를 세웠을까?먼저 이혼 후 사회재혼자에 대한 사목적 배려는 프란치스코 교황의 교황직 첫 4년 동안 주요 이슈였다. 2014년과 2015년 두 차례 세계주교시노드에서 이 문제를 다뤘고, 2016년 교황 권고 「사랑의 기쁨」은 그 결과였다. 두 차례 세계주교시노드가 열리는 동안 몇몇 주교들은 이혼 후 사회재혼자들에게 영성체를 허용하기 위해서는 혼인무효 체계의 개혁이 필요하고 이는 그저 사회와의 타협이라며 불편한 기색을 보였다. 하지만 교황은 2015년 두 번째 가정에 관한 세계주교시노드가 열리기 직전 자의교서 「온유한 재판관이신 주 예수님」을 발표해 이 문제를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켰다.다시 말해, 혼인무효 소송 간소화는 프란치스코 교황에게 많은 문제 중 하나가 아니라 교황이 추진하려는 광범위한 ‘사목적 회심’을 위한 시험대였다. 따라서 혼인무효 소송 간소화가 제대로 시행이 되지 않고 있는 현실에 대해 교황은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그렇다면 왜 이탈리아일까? 어느 한편으로는 당연한 결과다. 우선 교황들은 이탈리아교회와 특별한 관계를 맺어 왔다. 예를 들자면, 이탈리아주교회의 의장은 세계에서 유일하게 교황이 직접 임명한다. ‘이탈리아교회의 수석 주교’로서 교황은 이탈리아교회에 특별한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 더구나 프란치스코 교황은 이탈리아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이탈리아 사정에도 정통하다.게다가 교황은 이탈리아교회가 중요시하는 교회 문화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다. 이탈리아에는 다른 어떤 나라보다 많은 주교들이 있을 뿐만 아니라 전 세계 많은 고위 성직자들이 이탈리아에서 공부하고 일했으며, 많은 수도회의 본부가 이탈리아에 있다. 또 많은 주교와 사제들이 순례를 하거나 휴가를 보내기 위해 이탈리아로 온다.따라서 이탈리아에서 벌어지는 일은 전 세계 가톨릭교회에 큰 영향을 준다. 20년 전 미국의 한 추기경이 나에게 새로 발표된 교황청 문헌에 관해 어떻게 해야 할지 물어봤던 것을 생생하게 기억한다. 그는 나에게 이탈리아의 한 추기경에게도 같은 질문을 했다고 말했다. 이 이탈리아의 추기경은 쓰레기통에 집어 던질 것이라고 답했다고 한다. 미국 추기경은 나에게 “새 문헌이 이탈리아에서 유용하다면, 나에게도 충분히 유용하다”고 말했다.아마도 프란치스코 교황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을 것이다. 새 위원회가 드러낼 것이, 독일교회의 진보적 주교들이나 미국교회의 보수적 주교들처럼 그의 지도력에 이념적 혹은 정치적으로 반대하는 것일 수도 있다. 하지만 그저 교회가 나태해서 교황의 요청이 진행되지 않는 것이라면 교황은 더욱 분노할 것이다.대부분의 이탈리아인 관측통들은 이탈리아교회가 교황의 자의교서를 성공적으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지만, 이는 이념적인 반발 때문은 아니라고 입을 모은다. 그저 이탈리아교회 구조가 느리고 규모가 너무 커 통제하기 어렵고, 어디서나 보이는 권위주의 조직과 마찬가지로 행동보다는 타성에 젖어 있기 때문이다. 교황은 기꺼이 반발을 감수하겠지만, 교회가 보여 온 타성에는 참지 않을 것이다. 특히 교황이 무언가 할 수 있는 이탈리아에서는 말이다.
로버트 미켄스 (라 크루아 인터내셔널 편집장),‘라 크루아 인터내셔널’(La Croi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