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사 민준은 오랫동안 직감을 믿어왔다.
범인은 항상 어딘가에 흔적을 남긴다. 고요해야 할 곳에서 울리는 소리, 있어야 할 것이 없는 자리, 없어야 할 것이 있는 순간. 그 작은 어긋남들이 모여 결국 진실을 가리켰다.
그날도 그랬다.
일요일 오후, 민준은 병원 요양시설 앞을 지나고 있었다. 평소라면 조용했어야 할 그곳에서 공사 소리가 흘러나왔다. 드르릉, 쿵, 드르릉. 기계음이 일요일의 정적을 갈랐다.
*쉬는 날에 공사라.*
그는 걸음을 멈추고 잠시 건물을 바라보았다. 주변은 한적했다. 인부의 모습도, 공사 차량도 보이지 않았다. 소리만 있었다. 그 소리가 어디서 오는지 알 수 없었다.
민준은 수첩을 꺼내 짧게 메모했다.
*일요일. 요양시설. 공사 소리. 인부 없음.*
별것 아닐 수도 있었다. 하지만 형사의 감이란, 별것 아닌 것들을 그냥 지나치지 않는 데서 온다.
그는 다시 걸었다. 그리고 그날 밤, 모든 것은 시작되었다.
꿈이었는지, 현실이었는지.
민준이 나중에 그날 밤을 회상할 때마다 경계가 흐릿했다.
분명한 것은 그가 버스에 타고 있었다는 것이다. 어느 외딴 지방의 노선이었다. 창밖은 어둠뿐이었고 가로등도 없었다. 버스는 말없이 달렸다. 승객은 거의 없었다.
그리고 그녀가 옆에 섰다.
짧은 머리, 낡은 코트, 그리고 조용한 눈빛. 여자는 민준 옆의 손잡이를 잡았다.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버스가 커브를 돌 때 두 사람은 나란히 흔들렸고, 그 순간 여자의 손이 민준의 손에 닿았다.
차갑고, 그러나 낯설지 않은 감촉이었다.
민준은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 버스, 어디까지 가죠?"*
여자는 창밖을 바라본 채 말했다.
*"150일."*
*"네?"*
*"이 버스는 150일만 달려요."*
그리고 버스가 갑자기 멈췄다.
민준은 눈을 떴다. 새벽 네 시였다. 이마에 땀이 맺혀 있었다. 그는 수첩을 집어 들고 어둠 속에서 더듬어 썼다.
*150일. 여자. 버스. 종착지 불명.*
해가 뜨자마자 전화가 왔다.
발신자는 강 팀장이었다.
*"민준아, 나와. 사건이야."*
민준은 커피도 마시지 못하고 집을 나섰다. 차 안에서 뉴스를 틀었다. 라디오에서 앵커의 목소리가 흘렀다.
*"미국 대법원이 행정부의 상호관세 부과가 위법이라는 판결을 내렸습니다. 그러나 정부는 무역법 122조를 근거로 관세 부과를 강행할 방침입니다. 다만 동법에 따른 관세 효력은 최대 150일에 불과하며…"*
민준은 브레이크를 살짝 밟았다.
*150일.*
꿈속의 여자가 했던 말이었다.
그는 라디오 볼륨을 높였다.
*"…이후 정부는 무역법 301조와 232조를 연이어 적용해 관세를 이어갈 계획으로 알려졌습니다. 법원의 판결과 정부의 정책 사이의 충돌이 어디까지 이어질지 주목됩니다."*
법원이 위법이라 했다. 그러나 정부는 멈추지 않았다. 판결이 선을 그었지만, 권력은 그 선을 지우고 새 선을 그었다.
*판결과 현실 사이의 간극.*
민준은 그 말을 마음속에서 되뇌었다. 그리고 갑자기, 어젯밤 요양시설의 공사 소리가 떠올랐다. 쉬어야 할 날에 울린 소음. 보이지 않는 인부들. 설명되지 않는 기계음.
세 가지가 하나의 선 위에 놓이기 시작했다.
*일요일의 공사. 150일의 버스. 위법과 강행 사이.*
그는 목적지에 도착하기도 전에 수첩을 펼쳤다.
사건 현장은 그 요양시설이었다.
강 팀장이 입구에서 기다리고 있었다.
*"새벽에 신고 들어왔어. 시설 내부에서 서류가 대량으로 소각됐어. 근데 이상한 건,"* 강 팀장이 목소리를 낮췄다. *"어제 일요일에 들어온 공사 인부들이 있었는데, 아무도 신원을 확인 못 했어. 공사 계약서도 없어."*
민준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공사가 아니었겠죠."*
*"뭐?"*
*"소리만 공사였던 거예요. 실제로는 내부에서 다른 작업이 진행됐을 겁니다."*
강 팀장이 눈을 가늘게 떴다.
*"어떻게 알았어?"*
*"인부가 없었으니까요. 소리는 있는데 사람이 없었어요."*
민준은 시설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복도는 조용했다. 타다 남은 종이 냄새가 희미하게 풍겼다. 그는 소각된 서류가 있던 방으로 향했다.
방 안에는 재만 남아 있었다. 하지만 구석에 구겨진 종이 한 장이 떨어져 있었다. 누군가 놓치고 간 것이었다.
민준은 장갑을 끼고 종이를 펼쳤다.
거기에는 숫자 하나가 쓰여 있었다.
122.
무역법 122조. 오늘 아침 라디오에서 들은 숫자였다.
민준은 의자에 앉아 수첩을 펼쳤다. 지금까지 모은 것들을 늘어놓았다.
요양시설. 일요일 공사 위장. 신원 불명의 인부들. 소각된 서류. 그리고 숫자 122.
무역법 122조는 대통령에게 긴급 상황에서 150일간 관세를 부과할 권한을 준다. 의회 승인 없이. 법원 판결과 무관하게. 그 150일 안에 모든 것을 끝내야 한다.
*그렇다면 이 시설에서 소각된 서류는 무엇이었을까.*
민준은 시설 원장을 불러 앉혔다. 60대 초반의 남자였다. 말끔한 양복, 그러나 손이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다.
*"어제 공사는 누가 지시했습니까?"*
원장은 시선을 피했다.
*"위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위라면?"*
*"저는 그냥… 시키는 대로 했을 뿐입니다."*
민준은 잠시 원장을 바라보았다. 그 눈빛 속에서 두려움을 읽었다. 법을 어긴 자의 두려움이 아니었다. 법보다 더 큰 무언가를 두려워하는 자의 눈빛이었다.
*"소각된 서류가 무엇인지 알고 있습니까?"*
원장은 천천히 입을 열었다.
*"150일 전에… 이 나라로 들어온 물건들의 기록입니다."*
모든 것이 이어졌다.
관세 판결이 나오기 전, 누군가는 이미 알고 있었다. 대법원이 위법 판결을 내릴 것을. 그래서 증거를 지웠다. 법의 선고가 떨어지기 전에, 법이 가리킬 수 있는 흔적들을 태워버렸다.
일요일을 선택한 것도 계산이었다. 사람이 없는 날. 고요한 날. 그 고요함 속에서 조용히 불을 피웠다.
하지만 소리가 남았다. 기계 소리가 울렸다. 그리고 민준이 그 소리를 들었다.
민준은 국제무역 전문 변호사 출신의 로비스트, 한 여성의 이름을 특정했다. 짧은 머리. 항상 낡은 코트를 즐겨 입는다고 동료들은 말했다. 그리고 어젯밤, 그녀는 요양시설 인근을 지나는 심야 버스를 탔다는 것이 CCTV에 포착되었다.
민준은 CCTV 화면을 멈췄다.
버스 안에서 손잡이를 잡고 서 있는 그녀의 모습.
꿈속의 여자였다.
그녀는 이틀 후 검거되었다.
조사실에서 그녀는 처음에 말이 없었다. 민준은 서두르지 않았다. 테이블 위에 구겨진 종이 한 장을 올려놓았다. 숫자 122가 적힌 종이.
그녀는 그것을 보고 천천히 입을 열었다.
*"법은 늘 이긴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법의 틈새를 찾았죠. 122조, 301조, 232조. 법 안에서 법을 피하는 방법들. 그런데…"*
그녀가 창밖을 바라보았다.
*"법보다 먼저 도착한 게 있더군요."*
*"무엇입니까?"*
그녀는 민준을 바라보았다.
*"일요일의 공사 소리를 듣는 사람."*
민준은 조사실을 나와 복도에 섰다.
창밖으로 저녁 햇살이 기울고 있었다. 그는 수첩을 펼쳐 오늘 날짜 아래에 짧게 적었다.
*법은 선을 긋는다. 권력은 그 선을 지운다. 하지만 고요 속의 소음은 지울 수 없다.*
그리고 수첩을 덮었다.
어딘가에서 버스가 달리고 있을 것이다. 150일짜리 노선 위를. 종착지를 모른 채.
하지만 손잡이를 잡는 손이 있는 한, 버스는 결코 완전히 어둠 속으로 사라지지 않는다.
민준은 코트 깃을 세우고 걸음을 내디뎠다.
*다음 사건은 이미 어딘가에서 시작되고 있을 테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