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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창조주가 선물한 세상 원문보기 글쓴이: 박종태목사
이영훈목사/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눅 2:25-27)
<등단 후 멘트>
예수님의 사랑 실천은 주님 오시는 날까지 우리 모두가 마땅히 감당해야 될 사명이요, 또 우리의 의무입니다.
저는 한번 전남 해남 땅끝마을에 갔었는데 거기 왜 그렇게 청소년들이 이렇게 많이 있나 했어요. 부모님들이 어릴 때 시골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 집에 아이를 갖다 맡겨놓고 다시 찾으러 오지 않아서 그 아이들이 그렇게 우리 한국의 각 시골마다 많은 아이들이 있고 자라고 있습니다. 그러다보니까 자라다보니까 할머니 할아버지가 먼저 돌아가세요. 그래서 아무도 돌봐줄 수가 없는 그러한 형편에 처한 청소년들을 거기 우리 순복음교회 목사님이 다 맡아서 같이 공동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정말 고개만 돌려보면 불쌍한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여러분들이 이렇게 축복받고 은혜 가운데 살면서 이제 우리는 ‘받은 은혜에 감사해서 이 사랑을 나눠주기 원합니다.’ 하는 그러한 마음의 자세로 여러분 주위에 이렇게 불쌍하고 버림받은 영혼들을 주의 사랑으로 돌보는 주님의 귀한 백성들이 되어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굿피플을 통해서 귀한 사랑의 섬김을, 또 우리 교회의 사랑과행복나눔 재단을 통해서 귀한 사랑의 실천을 하고 있는데 여러분 모두가 다 자원봉사가 되어 주셔서 기도로 물질로 후원하고 하나님께 영광 돌려주시기를 간곡히 부탁을 드립니다.
성탄절이 며칠 앞으로 다가 왔습니다. 우리 주님을 사모하는 마음으로 우리 찬송 함께 부르겠습니다. “주님 찾아 오셨네”
(찬송가 324장 “주님 찾아 오셨네)
1 주님 찾아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가시관을 쓰셨네 모시어 들이세
우리 죄를 속하려 십자가를 지셨네
받은 고난 크셔라 모시어 들이세
2 보라 성자 오셨네 모시어 들이세
인자 높이 들렸네 모시어 들이세
헛된 교만 버리세 우리 구주 모시고
영원 복락 누리세 모시어 들이세
3 겸손한 자 찾도다 모시어 들이세
하늘에서 부르네 모시어 들이세
좋은 자리 드리고 주실 은혜 구하세
하늘 나라 세우세 모시어 들이세
4 주여 내가 믿으니 오소서 오소서
주여 환영 하오니 오소서 오소서
생명길로 이끄사 슬픔 위로하시고
진리 알게 하소서 오소서 오소서
주님께서 우리의 마음 가운데 오시기 위해서, 우리 교회 가운데 오시기 위해서, 소외된 우리 이웃들에게 오시기 위해서, 이 나라 위에 오시기 위해서 우리 “주여” 삼창하고 기도하겠습니다.
(통성기도)
주여 내가 믿으니 오소서 오소서
주여 환영 하오니 오소서 오소서
생명길로 이끄사 슬픔 위로하시고
진리 알게 하소서 오소서 오소서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저희들이 무엇이관데 이렇게 저희 들을 사랑하여 주셔서 많고 많은 사람 가운데 택하여 하나님 자녀 삼아주시고, 오늘 이 시간 이 자리까지 은혜로 인도해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주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주시기 위해서 오셨는데, 우리는 주님께 받기만 하고 드린 것이 없습니다. 저희들을 용서하여 주옵소서. 성탄을 맞이하면서 진정한 감사와 섬김의 삶을 주님 앞에 드릴 수 있도록 주님 도와주옵소서. 우리 주위에 소외되고, 불쌍하고, 병들고, 버림받는 많은 영혼들에게 예수의 사랑을 들고 나아가는 사랑의 실천자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
오늘 저는 여러분과 함께 누가복음 2장 25절로 27절 말씀 가지고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이와 같은 제목으로 함께 말씀의 은혜를 나누기 원합니다. 함께 따라하시겠습니까?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예수님을 기다리는 사람들”
많은 사람들이 무엇인가를 기대하며 기다리며 삽니다. 얼마 전에 일본 후쿠오카에 성회를 인도하러 갔었는데요. 아침 일찍 호텔에서 나오는데 왠 건물 앞에 사람들이 쭉 서 있어요. 저 사람들이 아침부터 왜 줄을 서 있나? 알아봤더니 그곳이 빠찡코라고 하는 도박장인데 문 열면 들어가서 좋은 자리 차지하려고. 그래서 대박을 기대하며 기다리고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렇게 줄지어 서 있는 사람들 가운데 부자 된 사람은 찾아볼 수가 없다고 합니다. 왜냐면 도박이니까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매일같이 줄을 서서 이뤄지지 않는 꿈을 기다리며 삽니다.
우리가 꿈을 꾸더라도 의미 있고 보람 있는 꿈을 꾸고 살아야 합니다.
얼마 전에 MBC에서 한국도자기 김동수 회장님을 소개한 프로그램이 방송되었습니다. 이 분은 아주 신실한 기독교인이고, 교회 장로님이세요. 이 장로님께서 더 좋은 도자기를 만들어 내기 위해서 얼마나 많은 노력을 하는지 모릅니다. 이 도자기가 전 세계에 알려져서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내기 위해서 그는 지금도 노력하고 있고 지금도 새로운 작품을 만들어내고 있어요. 회사 사원을 사랑하는 마음은 그 누구도 당해낼 수가 없습니다. 한 사람도 그 회사사원을 해고한 적이 없어요. 요즘같이 구조조정을 하고 불황이 다가왔을 때 회사마다 구조조정을 하느라고 노사 간에 얼마나 갈등이 심합니까? 그런데 이 회사는 한 사람도 해고시킨 적이 없어요. 왜냐? 그 언젠가 이 도자기를 굽는 가마솥에 불이 붙었는데요, 이 가마솥이 터지면 완전히 공장은 문을 닫게 되는 겁니다. 그런데 불은 붙었고 당장 소방서는 오지 않고 급해지니까 사원들이 막 가마솥 위를 뛰어 들어가서 점퍼를 덮고 자기 몸으로 막 불을 덮어서 그래서 불을 껐답니다. 올라가지 말라고, 터지면 당신들 다 죽는다고 그렇게 외쳤는데도 막 뛰어 올라가서 가마솥을 덮어 불을 끄는 것을 보고 ‘저렇게 생명 바쳐 회사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내가 어떻게 버릴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나는 저 사람들을 평생을 책임져주겠다.’ 평균 그곳에서 일한 횟수가 23년입니다. 어떤 아주머님이 인터뷰하는데 처녀 때 와서 거기서 시집가고 결혼하고 난 다음에 아이 낳고 아이를 군대를 보내고 제 생애 대부분의 시간을 이곳에서 보냈다고 얘기를 들었어요. 그러면서 참으로 행복해합니다.
그런데도 지금은 나이가 많은 영감님이 되셨는데도 다 좋은 도자기를 만들기 위해서 애쓰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을 보았어요. 늘 새로운 꿈을 갖고 도전해나가는 것이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인지 모릅니다.
성경을 보면 예수님 오시기를 기다렸던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 오심을 직접 맞이한 시므온과 안나라고 하는 두 분이 누가복음에 소개되고 있습니다. 저들이 어떠한 삶을 살았길래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만날 수가 있었을까? 메시아를 만날 수가 있었을까? 오늘 말씀을 통하여 그들의 삶을 한번 살펴보기 원합니다.
1. 의롭고 경건한 사람
첫째로, 그들은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사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25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메시아 예수님을 기다린 시므온은 하나님 앞에서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의롭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법을 잘 지키고 사람의 법을 잘 지켜서 바르고 정직하게 살아가는 것을 말씀합니다. 정말 시므온은 하나님 뜻대로 살기에 힘썼고 모든 사람들에게 본을 보이는 그러한 삶을 살았어요.
동시에 이 시므온은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여기서 경건이라고 하는 것은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모습, 하나님 앞에 헌신되어진 모습을 말합니다. 시므온은 마음과 뜻과 정성을 다하여 주님을 잘 섬긴 하나님의 사람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 앞에 경건하고 사람 앞에 의로운 삶을 살았기 때문에 그 삶을 하나님이 기뻐 받으시고 이 시므온에게 이 땅에 오신 메시아를 만나는 놀라운 축복을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의인을 찾고 계십니다. 경건한 자를 찾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자들에게 주의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9장 31절에,
하나님이 죄인의 말을 듣지 아니하시고 경건하여 그의 뜻대로 행하는 자의 말은 들으시는 줄을 우리가 아나이다
많은 사람들이 죄 가운데 방탕하며 이 땅 어디에도 희망이 보이지 않을 때 하나님은 노아라는 의인을 찾으시고 노아를 통하여 구원의 길을 예비하십니다. 그래서 홍수로 심판하실 때 노아의 가정은 살아남았습니다.
창세기 7장 1절에,
야훼께서 노아에게 이르시되 너와 네 온 집은 방주로 들어가라 이 세대에서 네가 내 앞에 의로움을 내가 보았음이니라
의로움을 보았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많은 고난을 겪었던 욥도 의로운 사람이었습니다.
욥기 1장 1절을 보니까,
우스 땅에 욥이라 불리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 사람은 온전하고 정직하여 하나님을 경외하며 악에서 떠난 자더라
그는 하나님 앞에 온전하고 정직하고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이에요. 그렇게 무엇 하나 부족함이 없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는데 거기에 환난이 다가왔습니다. 사탄이 시험을 가져 온 것입니다. 하루아침에 전 재산을 다 잃어버리고, 7남 3녀 열 자녀를 잃어버리고, 건강을 잃어버리고, 아내는 하나님을 저주하고 죽으라고 떠나가 버리고, 친구들은 와서 그를 비판했습니다. 이러한 절망적 상황에 처했어도 욥은 하나님 앞에 원망,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의롭고 경건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환난 가운데도 주님께 영광을 돌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그 믿음을 귀하게 보시고 그를 갑절로 축복하여 주신 것입니다.
의롭고 경건한 모습으로 구제에 힘썼던 이방인, 로마의 백부장 고넬료도 하나님을 섬기는 그 아름다운 모습으로 말미암아 베드로 사도를 통하여 말씀을 듣고 예수님 믿고 성령세례를 받는 놀라운 은혜를 체험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 앞에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았던 시므온에게 이와 같은 놀라운 축복의 말씀을 주십니다.
누가복음 2장 26절에,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많은 사람들이 메시아 오기를 사모하다가 평생을 보내다가 메시아를 보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갔는데, 하나님께서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이렇게 말씀하시기를 “시므온이 살아있을 때 메시아가 올 것이고 그 메시아를 보게 될 것이다.” 할렐루야.
시므온은 이 귀한 약속을 붙잡고 일생을 살았습니다.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가 로마에 지배를 받으며 이렇게 절망 가운데 사는데 우리를 해방시켜주실 것이고, 메시아가 오시면 우리에게 참된 희망과 꿈을 주실 것이고, 메시아가 오시면 메시아가 다스리는 왕국이 이 땅에 이루어져서 우리는 기쁨과 평안을 누리게 될 것이다.’ 사모하는 마음으로 메시아를 기다렸습니다.
그래서 시므온은 하나님의 약속대로 메시아를 만나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이렇게 주님을 늘 사모해야 됩니다. 늘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더욱 의지하고 더욱 사랑하여서 날마다 하나님의 큰 은혜를 체험하는 주님의 귀한 자녀가 되어야 될 것입니다.
우리 모두가 의롭고 경건한 자가 되어서 이 세상을 아름답게 변화시켜 나가 하나님의 귀한 뜻을 이루어 나가는 주님의 귀한 자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2.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
둘째로, 저들은 성령이 함께하는 사람이었습니다.
2장 25절로 27절에,
예루살렘에 시므온이라 하는 사람이 있으니 이 사람은 의롭고 경건하여 이스라엘의 위로를 기다리는 자라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그가 주의 그리스도를 보기 전에는 죽지 아니하리라 하는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마침 부모가 율법의 관례대로 행하고자 하여 그 아기 예수를 데리고 오는지라
이 시므온은 성령의 사람이었습니다. 늘 성령의 충만함을 받아서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았던 사람입니다.
그래서 25절을 보니까, “성령이 그 위에 계시더라”
여러분, 삶 가운데 성령 충만한 은혜가 항상 함께 하기를 바랍니다. 성령과 동행하는 사람은 늘 거룩한 꿈과 소망을 가지고 믿음으로 나아가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잡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놀라운 역사와 기적과 축복을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그리고 시므온은 성령이 충만하여 늘 성령의 음성을 듣고 성령의 지시를 받았습니다.
26절에, “성령의 지시를 받았더니” 말씀합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내 힘으로 하려고 하면 문제되는 일이 얼마나 많은지 몰라요. 도저히 여러분 자신의 힘으로는, 능력으로는 여러분이 당한 문제를 다 해결할 수가 없어요. 가정의 문제, 생활의 문제, 자녀의 문제, 직장의 문제, 사업의 문제, 어떻게 여러분이 해결할 수가 있습니까?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함을 따라 살아가는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님께 맡기면 성령님께서 우리의 삶 가운데 주의 뜻을 알게 하여 주시고 우리의 발걸음을 주님의 뜻 가운데 인도하여 주셔서 능력과 승리와 축복의 삶을 살게 만들어 주시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성령의 인도함을 받을 때 늘 깨어있어서 기도하며 말씀을 붙잡고 주님 앞에 더 가까이 나아가는 그와 같은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때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게 되는 것입니다.
27절을 보니까, “성령의 감동으로 성전에 들어가매” 성경은 말씀합니다.
성령의 감동함이 왔어요. “지금 성전으로 들어가라.” 그래서 시므온이 성전으로 들어갈 때 메시아 예수님을 맞이할 수가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됩니다. 성령의 감동을 통하여 우리 마음에 늘 설레는 마음이 있어야 돼요. 여러분, 예배에 나올 때마다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됩니다. 찬양을 부를 때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기도할 때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어야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힘들고 어렵고 못살고 그럴 때는 얼마나 주님을 사모하고 주님을 의지했든지 늘 감동함이 있었어요. 죄송하게도 우리가 좀 생활이 나아지고 등따습고 배부르니까 좀 감동이 멀어진 감이 있습니다.
저는 서대문 시절을 늘 기억합니다. 제가 초등학교 다닐 때인데요, 성령세례 받고 나서 얼마나 기뻤는지, 얼마나 감사했는지. 그 때부터 예배라고 하는 예배는 빠진 적이 없어요. 어른 예배도 다 참석을 했습니다. 부흥회란 부흥회는 다 참석을 했습니다.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 부흥회 중에 하나는 우리 조용기 목사님께서 요한계시록을 가지고 일주일간 부흥회를 인도하시는데 얼마나 성령의 감동하심이 충만했는지 일주일간을 연장 부흥회를 하세요. 연장 부흥회. 2주 동안. 그것도 저녁 7시 반쯤 시작하면 밤 11시에 끝났습니다. 설교가 2시간에서 2시간 반, 3시간까지 설교하세요. 지금보다 두 배 빠른 속도로. 그런데요. 한 사람도 동요하지 않고 얼마나 은혜를 받았는지 몰라요. 가슴이 뛰었어요. 성령의 감동하심이 시간, 시간 있었어요. 말씀을 들을 때, 찬양을 부를 때 성령의 감동하심이 있었어요. 그래서 그 때 막 “올라가세 올라가세 구름 타고서” 이 찬송을 부르면 막 올라가는 거 같았어요.
그러한 감동이 여러분 모두에게 예배 시간마다, 기도할 때마다, 찬양할 때마다, 말씀을 읽고 묵상할 때마다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주여, 내게 성령의 감동을 주옵소서. 그 성령의 감동을 가지고 일생을 살게 하여 주시옵소서.’ 성령 충만 받으면 이 감동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전에 제자들에게 성령의 침례를 받고 충만 받을 것을 말씀하십니다.
사도행전 1장 5절에,
요한은 물로 침례를 베풀었으나 너희는 몇 날이 못되어 성령으로 침례를 받으리라 하셨느니라
승천하신 후 열흘 후에 오순절날 성령이 임하므로 말미암아 모두가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방언으로 말하고 뛰쳐나가 복음을 전할 때 하루에 삼천 명, 오천 명, 수만 명이 주님 앞에 회개하고 돌아오는 놀라운 역사가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성령이 떠나고 나면 우리는 이 육신 덩어리 밖에 남는 것이 없습니다. 이 육신은 죄에 익숙하고, 늘 주님 앞에서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가는 그러한 모습입니다. 그래서 다윗이 범죄 하였을 때 제일 두려워했던 것이 ‘성령이 떠나가면 어떡할까?’ 그래서 그가 통곡하고 회개하면서 고백한 그 내용이 시편 51편에 나오는데요.
51편 11절에,
나를 주 앞에서 쫓아내지 마시며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소서
얼마나 그는 절박했는지, “주의 성령을 내게서 거두지 마옵소서.” ‘내가 말할 수 없는 큰 범죄를 주님 앞에 저질렀지만 성령을 내게서 떠나지 말게 하옵소서.’
여러분, 죄를 지었을 때 빨리 회개하고 성령의 은혜를 회복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우리 순복음의 역사는 성령 충만의 역사였습니다. 여러분 일생이 성령 충만의 일생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3.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
세 번째로, 저들은 금식하며 기도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안나의 모습에 대해서 2장 37절에 말씀합니다.
과부가 되고 팔십사 세가 되었더라 이 사람이 성전을 떠나지 아니하고 주야로 금식하며 기도함으로 섬기더니
시므온과 같은 시대에 과부 안나가 있었습니다. 그는 평생을 성전에서 메시아를 기다리면서 금식하며 기도했다고 그랬습니다.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그는 외롭고 쓸쓸한 가운데 자식도 없고 시간만 나면 교회에 와서 엎드려 기도하면서 ‘메시아여 오시옵소서. 내가 주님을 사모합니다. 주님을 사모합니다. 내가 이 땅에 호흡이 끊어지기 전에 주님 오시옵소서. 유일한 나의 기쁨이요, 나의 희망이신 주님 오시옵소서.’
여러분, 기도와 금식으로 주님 앞에 나아가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는 사람을 당할 사람이 없어요.
다윗이요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금식하고 기도하면서 고백한 장면이 시편 109편 24절에 나옵니다.
금식하므로 내 무릎이 흔들리고 내 육체는 수척하오며
얼마나 금식을 오래했는지 다리가 후들거리고 몸이 수척해졌다고 그랬어요.
금식하며 기도할 때 주님께서 우리를 긍률히 보시사 우리 몸에 병도 고쳐주시고, 문제를 해결해 주시고, 죄도 사해주시고, 은혜와 축복을 더해 주시는 것입니다.
때때로 여러분이 너무나 힘들고 어려울 때 모든 것 다 뒤로하고 기도원에 들어가서 기도굴에 들어가 금식하며 부르짖어 기도하십시오. 그때 은혜가 임하는 것입니다. 치료가 임하는 것입니다. 기적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넘쳐나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십계명을 받을 때 시내 산에서 40일을 금식 기도합니다.
에스더가 유대 백성을 구원하기 위해서 3일 동안 간절히 금식하고 기도한 다음에 “죽으면 죽으리다.” 하고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님도 일생을 기도의 일생으로 사셨습니다. 이른 새벽에 기도하시고, 저녁에 한적한 곳을 찾아 기도하시고, 제자들을 뽑는데 밤이 맞도록 기도하시고, 마지막 십자가에서 기도하신 가운데 세상을 떠나셨던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의 삶은 기도의 삶이 되어야 합니다.
일본에 유명한 야쿠자로 있다가 목사님으로 된 “스즈키 히로유키”라는 분이 있습니다. 이 분의 감동적인 스토리 ‘사랑이 나를 다시 살게 했습니다’라고 하는 책은 KBS<인간극장> MBC<화제집중>에 방송이 되기도 했습니다.
이 분은 일본에 유명한 야쿠자단의 일원으로써 17년 동안 살인만 빼놓고 안 해보지 못한 악한일이 없을 정도로 악한 일을 저지른 사람이라고 합니다. 또 그는 도박에 빠져서 또 조직에 대한 충성심으로 손가락을 세 번이나 잘랐대요. 전과 2범이요 세 번 결혼에 두 번 이혼하고 마약과 환청에 그는 죽음의 고비를 몇 번이나 넘겼던 사람입니다.
그런데 하나님 그를 버리지 않으셨어요, 그를 부르셨습니다. 인생의 막다른 길에서 동경의 한 교회에서 예배드리는 가운데 깨졌던 것입니다. 주님의 음성이 들려왔습니다. 그가 눈물, 콧물 쏟으며 기도할 때 “내 눈에 넌 네가 보배롭고 존귀하다. 나는 너를 사랑하고 있다.”라는 음성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변화되어 신학교에 가서 목사가 되었습니다.
그가 야쿠자로써 어둠의 세계를 전전하다가 목사가 되게 된 배경에는 그의 현재 부인인 한국인 여성 한금자씨의 금식하며 부르짖는 기도가 있었습니다. “내 남편을 살려주옵소서. 내 남편을 살려주옵소서. 누구라도 다시 한 번 새로운 시작을 할 수 있습니다. 내 남편을 변화시켜 주옵소서.” 간절히 부르짖고 부르짖고 기도했더니 하나님께서 그 부인의 눈물의 기도를 들어 주셔서 남편을 변화시켜주시고 목사가 되게 해주셔서 지금은 전 세계를 다니며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특별히 일본에 학교에 여러 곳에 가서 전도를 하게 되는데 학교가 종교학교도 아니고 또 기독교에 대해서 아무런 그러한 것도 갖고 있지 않은 학교인데도 이 분을 초청해갖고 청소년들이 자라날 때 바로 되게 하기 위해서 이 분의 간증을 듣기 원해서 지금도 많은 청소년들에게 본인이 방탕한 삶을 살다가 이렇게 변화된 삶을 살게 되었다고 이렇게 간증하고 있는 것입니다.
기도가 기적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기도가 새로운 역사를 우리에게 창조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육신을 입고 있는 이상 최선을 다해 기도해야 되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 삶속에 문제가 떠나지 않는 것은 그만큼 기도가 주님 앞에 상달되지 않고 기도에 부재가 우리 삶속에 문제를 가지고 온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을 해야 됩니다.
개인의 부흥이 만약 멈추었다면 그것은 기도에 힘쓰지 않았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초대교회는 열심히 기도하는 교회였습니다.
사도행전 2장 42절에,
그들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고 떡을 떼며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할렐루야!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니라” 성경은 말씀하는 것입니다. 오로지 기도에 힘썼기 때문에 하나님의 축복이 임했습니다.
여러분, 일생을 살아가는 동안 오로지 기도하기를 힘쓰시기 바랍니다. 오로지 기도하기에 힘쓸 때 초대교회는 날마다 부흥하게 되었고 놀라운 기적과 이사가 나타났습니다. 문제 앞에 낙심하고 절망하지 말고, 몸이 아플 때 아프다고 신음만 하지 말고, 하나님 앞에 엎드려 기도하십시오. ‘하나님 나를 고쳐주옵소서, 내 삶 속에 이런 문제가 다가왔습니다. 내 삶 속에 질병이 다가왔습니다. 주여 나를 불쌍히 여겨주시고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옵소서.’ 금식하며 울부짖어 기도할 때 문제가 떠나가고 질병이 고침 받으며, 하나님의 축복이 기적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기도할 때 여러분에게 다가왔던 불행도 떠나가고 가난과 저주도 떠나가고 고통도 떠나가고 마음의 평안함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늘 기도로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4.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사람
마지막 넷째로 저들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사람이었습니다.
누가복음 2장 28절에서 32절은 말씀합니다.
시므온이 아기를 안고 하나님을 찬송하여 이르되 주재여 이제는 말씀하신 대로 종을 평안히 놓아 주시는도다 내 눈이 주의 구원을 보았사오니 이는 만민 앞에 예비하신 것이요 이방을 비추는 빛이요 주의 백성 이스라엘의 영광이니이다 하니
시므온은 아기 예수님을 안고 찬양했습니다. ‘이 아이가 장차 우리 인생의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실 메시아가 될 것을 믿으니 감사합니다. 영광 홀로 받으시옵소서.’
우리가 예수님을 우리의 마음 가운데 모시는 그 순간 이처럼 주님을 찬양할 수 있는 특권을 우리에게 허락해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 믿지 않는 사람은 찬양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찬양의 특권을 주신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장 31절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 여러분이 하는 그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기시를 바랍니다. 여러분에게 주신 그 재능을 갖고 주님께 영광을 돌리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성령으로 충만하여 주의 말씀 듣고 나아갈 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때, 하나님의 축복이 가는 곳마다 함께 할 것입니다. 예수님 믿는 사람이 믿지 않는 가정에 들어가면 믿지 않는 가정이 다 복을 받게 되고 예수 믿게 되고, 불신자로 가득한 사회, 직장에 들어가면 그 직장이 변화 받게 되고, 사회가 아름다워지고 하나님의 아름다운 축복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살아가십시오.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이사야 43장 7절은 말씀합니다.
내 이름으로 불려지는 모든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 자를 오게 하라 그를 내가 지었고 그를 내가 만들었느니라
어떻게 하든지 하나님께 영광 돌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로버트 모건은 『홍해의 법칙』이란 책에서 “당신이 어려운 상황에 처하거든 어떻게 하면 여기서 빠져나갈까를 생각하지 말고 어떻게 하면 이러한 상황에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까 그렇게 질문하도록 하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여러분의 삶이 되기를 바랍니다. 예수님의 일생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일생이었습니다. 예수님의 기도를 기억합니다.
요한복음 12장 28절에,
아버지여, 아버지의 이름을 영광스럽게 하옵소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일생을 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태어나실 때 천사들이 찬양합니다.
누가복음 2장 14절에,
지극히 높은 곳에서는 하나님께 영광이요 땅에서는 하나님이 기뻐하신 사람들 중에 평화로다 하니라
할렐루야! 우리의 삶의 목적이 무엇입니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그 뜻을 실천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는 것입니다. ‘주님이 홀로 영광을 받으시옵소서. 나의 일생을 통하여 내 혼이 다하는 그 날까지 주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일생은 그와 같은 일생이었습니다.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낮고 천한 이 땅에 오셔서 그 더럽고 추한 마구간에서 태어나셔서 말구유 위에 누이셨던 예수님, 우리를 위해 희생에 고난의 길을 가시고 십자가 달려 죽으셨습니다. 고통 가운데 주님 돌아가셨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 죽으신 것입니다. 그 후에 삼일 만에 부활하십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주님 부활하신 것입니다. 이제 우리의 일생이 그와 같은 사랑과 섬김,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일생이 되어야 합니다.
장로교 창시자 “존 칼뱅”은 말하기를 그의 전 생애를 통하여 가진 모토가 “주님 제 심장을 즉시로, 진정으로 당신께 드리기 원합니다.” 내 삶 전체를 주님께 드린다는 고백인 것입니다.
미국의 많은 명문대학들이 세워졌을 때 그 대학들의 주제는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것이었습니다.
하버드대학이 1636년에 창설되었는데 하나님 말씀 위에서 하나님 말씀에 기초를 두고 그들이 교훈을 삼은 말씀이 요한복음 14장 6절입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일대학은 1701년에 창설되었는데 그 학교의 교훈은 시편 43절 3편입니다. “주의 빛과 주의 진리를 보내시어 나를 인도하시고 주의 거룩한 산과 주께서 계시는 곳에 이르게 하소서”
프린스턴대학은 1746년 창설되었는데, 거긴 아예 학교 마크가 그 위에 보면 신약과 구약성경이 들어가 있습니다.
콜럼비아 대학은 시편 36편 9절을 그 학교의 교훈으로 삼았습니다. “진실로 생명의 원천이 주께 있사오니 주의 빛 안에서 우리가 빛을 보리이다”
저들이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학교를 세우기 위해서 학교를 세웠을 때 학교가 세계적인 명문으로 크게 발전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영광을 자기에게 돌리지 않습니다. 모든 영광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그때 하나님께서 그에게 축복하여 주시고 날마다 더 좋은 일이 그 삶 가운데 넘치게 만들어 주는 것입니다.
여러분은 주님께서 주님의 일을 하라고 세운 주님의 종입니다. 그러므로 종이 하는 일은 주인을 기쁘시게 해드리는 일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간에 여러분의 삶에 모든 영역에서 주님만이 높임 받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주님 앞에 헌신된 일꾼들을 통하여서 영광을 받으시고 놀라운 역사를 이루어 주시는 것입니다.
1924년 파리 올림픽이 열렸을 때 가장 주목을 받았던 ‘에릭 리델’이라는 사람이 있습니다. 이 분은 스코틀랜드의 목사님 아들입니다. 일찍이 그는 선교사의 꿈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는 키가 크고 달리기를 잘해서 뽑혀서 100m 달리기에 나가게 되었습니다. 워낙 잘 달렸기 때문에 금메달은 따다 놓은 것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결승전하는 시간표를 보니까 주일날이에요. 그는 자라날 때 주일날은 예배드리는 것 이외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으로 신앙생활을 하며 자랐습니다. 그런데 주일날 올림픽 결승전이 있으니 그는 단호하게 출전을 거부했습니다. 동료들이, 코치가, 영국팀에서 와서 그를 비난했습니다. “아니, 당신 나가기만하면 금메달인데 왜 안 나가냐?”고. “나는 신앙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나가지 않겠습니다.” “그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냐? 하나님의 영광을 가리는 것이 아니냐?” 누가 말했음에도 그는 절대 타협하지 않고 그의 고집을 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주일날 열린 100m결승은 다른 사람이 금메달을 가져갔어요.
그리고 나서 그가 코치를 찾아왔습니다. “코치 선생님, 저를 400m 결승전에 내보내 주세요. 400m 달리기에 내보내 주세요.” “아니, 너는 400m는 달려보지도 않았고 100m가 네 주 종목인데 어떻게 400m에 나갈 수가 있느냐?”고 “내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달리기 원합니다.” 그래서 한 번도 도전해보지도 않은 400m 결승전에 나가서 금메달을 땄어요. 할렐루야! 하나님께 영광 돌립니다.
이 이야기가 영화가 돼서 “불의 전차”라는 영화가 제작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에릭 리델은 자기 소원한 그대로 신학교를 졸업하고 중국에 선교사로 갔습니다. 선교사로 갔는데 일본이 와서 점령하고 그를 영국에 스파이라 그래가지고 감옥에서 옥살이 하다가 순교했어요. 젊은 나이에 꽃다운 나이에 그는 순교했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의 삶 전체를 바친 것입니다.
나중에 그의 기록을 살펴보니까 그가 달리기를 한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금메달을 딴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선교사로 나간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그가 감옥에서 죽는 것도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여러분, 여러분의 일생이 이와 같이 아름다운 일생이 되기를 바랍니다. ‘주여, 나의 일생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기를 원합니다. 내 호흡이 다하는 그날까지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다가 하나님께서 오라 부르실 때 기쁨으로 주님을 맞이하기 원합니다.’ 이것이 여러분의 신앙 고백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축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사랑과 은혜와 자비가 무한하신 하나님 아버지. 모든 감사 찬송 존귀 영광을 우리 하나님께 올려드립니다. 우리가 늘 주님을 기다리며 살아가는, 주님을 사모하며 살아가는 주님의 백성들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의롭고 경건한 삶을 살게 하여 주시 옵스고, 성령으로 충만한 삶을 살게 하여 주옵시고, 늘 기도하며 금식하며 주님 앞에 나가게 하여 주옵시며, 무엇보다 우리의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께 영광 돌리는 삶을 살아가는 저희 모두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올리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