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율장 속 부처님 이야기] 6. 자기 자신을 찾아라
헛된 욕망 스스로를 노예로 만들어
감각적 쾌락서 벗어나 주인이 돼야
부처님의 일대기를 전하는 몇 가지 불교문헌이 있는데, 그 가운데 율장 건도부 첫 장인좥대건도」(大度)는 초기불교교단의 성립과 발전을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자료이다. 싯다르타 태자가 보리수 밑에서 깨달음을 얻은 직후의 이야기부터 시작하여, 범천권청 이야기, 두 상인의 공양, 녹야원에서 만난 다섯 비구와 그들에 대한 초전법륜, 그리고 야사라는 청년과의 만남 등등, 다양한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부처님의 존재와 그 가르침이 온 세상에 퍼져가는 과정이 생생하게 그려진다.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은 흥미로운 이야기가 전해진다. 어느 날 부처님께서는 바라나시로부터 우루벨라라는 곳을 향해 유행을 하고 계셨다. 잠시 유행을 멈추고 길을 벗어나 밀림 속으로 들어가신 부처님은 한 나무 밑으로 다가가 앉아 명상을 즐기셨다.
바로 그 무렵, 그 마을의 30명의 친구들이 각각 아내를 동반하고 그 밀림에서 놀고 있었다. 그런데 그 가운데 한 사람은 아내가 없었기 때문에 대신 창녀를 고용해서 데리고 와 놀고 있었다. 그들이 술과 가무에 빠져 정신없이 놀고 있는 사이, 그 창녀는 그들의 재물을 가지고 도망쳐 버렸다. 그는 친구들과 함께 혈안이 되어 그 창녀를 찾고자 온 밀림을 뒤지며 배회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우연히 부처님께서 나무 밑에 앉아 있는 것을 보게 되었다.
부처님을 발견한 그들은 다가가서 물었다.
“혹시 한 여자를 못 보셨습니까?”
“젊은이들이여, 무슨 일인가?”
“저희들은 각자 아내를 동반하고 숲속에서 놀고 있었는데, 그 중 한 친구가 아내가 없어 대신 창녀를 데리고 와서 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놀고 있는 사이 그 여자가 우리 재물을 모두 챙겨 도망쳐 버렸습니다. 그래서 지금 그녀를 찾아 밀림 속을 헤매고 있습니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물으셨다.
“젊은이들이여, 당신들은 어떻게 생각합니까? 창녀를 찾는 것과 자기 자신을 찾는 것, 이 가운데 어느 쪽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까?”
“자기 자신을 찾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한창 노는 재미에 빠져 사는 젊은이들에게 있어 어찌 보면 코웃음 치며 넘어가 버릴 수도 있는 질문이건만, 이 젊은이들은 사뭇 진지하게 부처님에게 대답했다. 위대한 깨달음을 얻은 성자로부터 느껴지는 기운에 굴한 것일까, 아니면 그 만큼 당시의 젊은이들이 진리에 목말라하고 있었던 것일까.
여하튼 이들의 진지한 대답을 들으신 부처님께서는 그들에게 앉으라고 권하신 후, 법을 설하셨다. 보시와 지계, 그리고 생천의 가르침을 설하신 후, 여러 가지 욕망으로 인한 번뇌와 타락, 그리고 이로부터 벗어나는 방법 등을 자세히 가르치셨다. 아직 어떤 사견에도 사로잡혀 있지 않았던 이들은 마치 눈처럼 하얀 천에 들여진 물감이 잡티하나 없이 깨끗한 색감으로 빛나듯이, 그렇게 부처님의 말씀을 있는 그대로 받아들였고, 그 결과 깨달음을 얻었다고 한다.
온갖 욕망에 사로잡혀 정작 챙겨야 할 자기 자신은 상실한 채 살아가는 많은 이들을 향한 따끔한 일침이 담긴 에피소드이다. 자기 자신을 돌아보고 올바른 방향으로 제어해 가는 깨어있는 정신을 갖추지 못한 삶은 한 마디로 노예와 같은 삶이다.
무분별하게 재산이나 권력, 명예, 그리고 감각적인 쾌락에 빠져 그 자체에 집착하는 순간, 인간은 그 대가를 치루게 되기 마련이다. 다름 아닌, 바로 나라는 존재의 상실이다. 주인의 자리에 앉은 욕망은 자신의 노예가 된 인간을 마음대로 부린 후 인정사정없이 내동댕이칠 것이다.
인간이란 기본적으로 욕망을 안고 태어나 욕망과 함께 살아가는 존재이다. 따라서 욕망 그 자체를 완전히 부정할 수는 없다. 그러나 욕망에 사로잡혀 자기 자신까지 상실한 채 끌려가는 일은 없어야 한다. 욕망에 대한 잘못된 집착이야말로 우리를 끝없는 괴로움 속에서 신음하게 하는 주범이기 때문이다.
이자랑
(도쿄대 박사)
[출처 : 법보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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