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년 3월 31일 일요일. 3월의 생활을 매듭짓는 일기.
1969년 3월 1일에 계림교회에서 고인이 된 조홍래목사의 주례로 아내와 결혼식을 했었다. 금년 3월 1일이 55주년 결혼기념일이 되는 날이다. 많은 세월인 것 같은데, 어느새 지났는지 순간인 것 같다. 좋은 일, 안 좋은 일, 어려운 일이 많았을 텐데, 안 좋은일이나 어려운 일에는 아내의 인내심과 아량으로 잘 그복해 온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지금 우리 부부 사이가 가장 좋은 때이다. 아들딸이 결혼해서 좋은 직장에서 생활을 하며 잘 살고 있기에 자녀로 인한 보람이 있고, 연금을 받기에 경제적으로 풍족한 생활을 하면서 도움을 주며 생활할 수 있기에 평안을 누린다. 딸을 도와주기 위해 수원으로 이사 와서 14년째 딸네 가정과 외손주들을 보살펴 준 것도 이제 막바지에 이르렀다. 손자가 중학생이 되고 손녀가 초등학교 5학년이 되어 우리의 보살핌 없이 스스로 하는 일이 많아서이다. 식사만 챙겨 주는 정도가 되었다. 무엇보다 아내의 건강에 어려움이 없이 손주들을 보살필 수 있는 것이 큰 복이다. 얼마나 더 우리의 삶이 이 땅 위에 계속 될런지는 모르지만, 언제 죽어도 괜찮은 나이가 되었고, 더 이상 이룰 수 있는 일이 우리 앞에 있는 것도 아니라 생각하니, 자녀를 비롯해서 누구에게도 괴로움 끼치지 않고, 누구에게나 도움을 주는 삶을 살다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수 있기를 기원한다. 할 수만 있으면 아내 먼저 내가 죽어서, 나로부터 해방된 자유스러운 아내의 삶도 많이 허락되기를 기원한다.
3월 7일에는, 허벅지 다리에 통증이 있어서 2월에 한 번 간 적이 있는 망포에 있는 버팀병원에 갔다. 2월에 약을 처방해 주면서 계속 아프면 충격치료 방법도 해볼 수 있다는 말을 들었기에 다리에 통증이 계속되어 갔다. 그런데 2월에 진료를 했던 의사가 당일 휴진이어서 다른 의사의 진료를 받았는데, 같은 엑스레이 사진을 보면서도 앞의 의사와 치료 방법을 다르게 이야기했다. 아픈 부위가 다리 허벅지와 몸통을 연결하는 고관절 부위이기에 인공관절을 해야만 한다는 것이었다. 통증을 완전히 없애는 방법은 인공관절 이외의 방법은 없다고 하면서, 처음의 의사와 자기는 전공이 다르고 자기가 고관절에 대해서 전문이라고 하면서, 진통제나 충격치료 등은 일시적일 뿐 완전치료가 안되고, 인공관절로만 통증에 대한 완전치료가 된다고 했다. 나이가 많아 하기 싫다고 했더니, 인공관절 시술은 30분 정도의 시간이면 되고, 2,3주 정도 입원하여 재활 치료를 하면 된다고 하면서 인공관절 시술을 강하게 권했다. 주저했더니 2주분의 약을 처방해 주고 잘 생각해 보라고 했다.
작년에 탈장 수술을 하고도 많이 후회했었는데, 아내가 수술하라고 권하지만, 이제 와서 인공관절을 삽입하는 수술까지 하고 싶지는 않아, 그럭저럭 견디면서 살겠다고 아내와 이야기했다. 통증이 심한 것은 아니고 견딜만 하기 때문에 그냥 살아보려고 한다. 많이 아프면 진통제도 먹고 물리치료도 하면서 지내도 될 것 같아서이다. 보건소에서 무료로 물리치료를 받을 수 있어 1주일에 한 번 정도씩 보건소에서 물리치료를 받고 있다.
초등학교 3학년인 10살 때에 병이 발견되어 기브스 치료로 8개월 정도 누워 있으면서 할머니의 지극한 간호를 받은 이후, 75년여를 아무일 없이 잘 살았는데, 이제와서 통증이 나타나 괴롭히는 것 같아 야속한 생각이기도 한다. 나중에 알았지만, 군대에 가지 않아도 될 다리로, 세계에서 가장 어렵다고 한 갑종간부후보생 훈련을 받고 장교로 임관 되어 4년 3개월의 군대 생활도 잘 했는데, 왜 아픈 증상이 나타난 것인지 의아스럽다. 늙은 것이 이유가 될 것 같다. 그 동안 잘 써먹었으나 늙어서 나타난 몸의 변화인 것 같다. 오래 살아서 쇠태해 지고 죽음이 가까워졌다는 신호로 받아드려야 할 것 같다.
작년 가을에 광주 망월동 시립공원묘지에 있는 부모님들의 묘를 개장하여 화장 후, 아버지가 살아계실 때 유언하신대로 극락강에 뿌릴 계획을 하다가, 갑자기 탈장 수술을 하면서 시기를 놓치고 금년으로 미루었었다. 금년 3월에 봄이 되면서 날씨가 풀려 작년에 미루어 두었던 계획을 실천에 옮겼다. 파묘에 대해서 잘 알고 있는 이집사와 임집사의 조언을 들으며 진행했다. 3월 18일 광주 망월동 묘지관리소에 가서 개장 허가를 받았고, 3월 21일 목요일에 망월동 묘지에서 개장에 대해 전문적으로 일하는 인부를 사서 부모님들의 묘를 개장하여 유골을 수습한 후, 영락공원 화장장에서 화장하여, 광주 산수동과 계림교회가 있는 방향이 내려다보이는 무등산 자락 작고개 무진성곽 근처에 뿌리고 왔다. 전문적으로 일하는 사람들이 신속하게 일을 진행해 주어서 오전에 모든 절차를 마무리 할 수 있었다. 그대로 놔두고 자연으로 돌아가게 하라는 권유가 많았으나, 나이가 많아지면서 성묘 다니기도 어려워지고, 내가 죽으면 묘를 찾아볼 가족이 없게 되고, 그러면 묘가 천덕구리가 될 것 같아, 오래 전부터 생각하며 계획한 것이기에 실행에 옮겼다. 죽으면 흙으로 돌아가는 인생이기에 툭 트인 곳, 자연의 흙으로 돌아가시게 한 것이다.
그동안 이집사가 관심을 가지고 묘를 보살펴 주었고, 지숙이가 명절이면 얼마 전부터 성묘를 했는데, 그들에게 맡기는 것도 미안하고 부담이 되어 내가 죽기 전에 정리하려고 한 것이다. 불효가 될 가 봐 주저되기도 했지만, 부모님들도 기꺼이 동의해 주시리라는 판단이 되어서였다. 부모님을 모시고 살다가 하늘나라로 편안히 가시게 했고, 자식들을 모두 결혼시켜 자립하게 했고, 마지막 가족에 대한 의무로 생각하고 부모님들을 자연으로 가시게 했다. 이땅 위에서 가족에 대한 나의 의무는 모두 마무리 되었고, 이제 나도 죽어 자연으로 돌아갈 일만 남았다. 나는 죽으면 화장해서 바로 적절한 곳 산에 뿌려지기를 바라고 있다. 산을 좋아했으니, 아무 산이라도 좋으니, 유족들의 편의에 따라 가까운 산에 뿌리라고 당부하고 있다. 가족들에 대한 의무라 생각한 것들을 잘 이행할 수 있도록 인도해 주신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