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강 후기
"코페르니쿠스가 성경을 본다면,"
강의를 들으면서 왜 우리는 성경을 이해하지 못할까 하는 의문이 깊어지면서 몇가지 이유들을 떠올려봤습니다.
첫째는, 코페르니쿠스적 발상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세계의 우주관은 천동설이 지동설로 바꾼 코페르니쿠스 이전과 이후로 나눌 수 있습니다.
천동설 즉 고대인들의 우주관을 현재 지동설 기준으로 비판한다는 것 또한 모순이고 무지의 소치입니다.
성서의 손이 현대를 살고 있는 우리에게 향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지만, 성서의 발은 고대의 역사 위에 서 있었습니다.
성서의 발이 딛고 있는 터전은 고대인들이 천동설 세계관과 신화적 세계관으로 인식하던 시대였습니다. 지동설과 과학적세계관으로 사는 현대인의 눈으로 보게 되면 성경이 제대로 보이지 않습니다.
예로, 구약 창세기는 고대근동의 세계관을, 신약성서는 헬라철학과 신화적 세계관을 알아야 성경시대의 언어를 분석할 수 있습니다.
예로, 창세기 1장의 고대근동 신화적세계관의 관점으로 작정된 대서사시를 코페르니쿠스 이후 지동설의 우주관으로 해석하고 전달하니까 현대인이 성경을 믿지 못하겠다며 불신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창1장을 천동설 개념으로 보면 현대인들도 쉽게 이해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교회가 계속해서 문자적 해석만을 고집하니까 기독교의 무지만 탄로나고, 거짓이라고 오해를 받는 것입니다.
고고학의 발전은 지하 속의 성서세계를 지상으로 올려놓는 큰 성과를 냈습니다. 주요 성경사건들의 역사적 실재를 뒷받침해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설교자들은 성경을 지동설 개념, 즉 고대인들의 우주관을 무시한 채 성경문자를을 현대인의 관점으로 해석하다보니 신화와 실화를 구분 못하고, 신학과 과학을 구분 못하고,
서사시와 역사서를 구분 못하고,
지구 나이 6,000년이란 얼토당토 않는 주장이 나오고 있는 것입니다.
신앙은 역사적 사실의 내용에 따라 달라지지 않지만, 역사적 사실은 신앙의 성향에 따라 수없이 다르게 표현될 수 있습니다.
성경이 역사적 사실이 아니란것 때문에 신앙을 벗어버리겠다는 사람에게 이제 우린 솔직해질 필요가 있습니다.
차라리 이렇게 말하면 모두가 다 관대해집니다.
"성경에 OO한 사건이 생겼습니다.
고대인들은 OO를 뭐뭐라고 생각했습니다."
예로,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신 것을 믿습니다. 다만 고대인들은 태양이 지구 주위를 돈다고 믿었기 때문에 태양을 넷째날 창조했다고 기록한 것입니다."
"헬라인들은 거친 풍랑을 일으키는 것은 바다의 신(포세이돈)이라는 신화적세계관을 믿었습니다. 예수가 파도와 풍랑을 다스리고 멈추게 했다는 것은 예수가 단순히 물 위를 걷는 의미 이상의 큰 의미가 있습니다."
고대인들의 세계관을 존중하자는데 거부할 현대인은 없을 겁니다.
다만, 성경기자가 본문을 왜 그렇게 기록했는가?
예수와 사도바울이 어떤 메시지를 전하고자 그런 사건과 기록을 전했는가?
역사속의 그들에게 전한 메시지를 오늘의 우리가 어떻게 되새기고 적용할 것인가?
라는 질문에 답하면서 성경을 해석하고 또 전하는 것이 현대시대에 사는 우리의 역할입니다.
현대인의 눈으로 고대인의 세계관을 무시하고 문자주의로 고대역사를 덮어버리는 것은 불효막심한 후손인 것입니다.
우리 기독인들은 두개의 세계 위에 두개의 눈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성경시대 즉, 코페르니쿠스 이전의 세계, 고대인의 세계관 그리고 현대시대 즉 코페르니쿠스 이후의 세계, 과학적인 세계관, 이 두개 세계를 두개의 눈으로 볼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복음서 다시 새롭게보기" 강좌는 한 눈 먼 사람들에게, 두개의 세계를 볼 줄 아는 두 눈의 시력을 기르는 귀한 시간인 것 같습니다.
첫댓글 늘 좋은 후기 감사드립니다.
제가 더 감사하죠. 저도 열성신자였기 때문에 신화니 편집이니 성경을 훼손하는 듯한 가르침에 질문하고 반박하고, 조사하고 연구하다가 지난 학문을 지우고 다시 써내려가는데 너무 힘들었거든요.
한국에서 그런 공부한다는게 쉽지 않다는걸 알기에 수강생들의 심정을 너무나 잘 압니다. 다만 차이가 있다면 장신대 교수님들도 받아들이지 못하는 신학생들의 수준에 맞추시느라 쪼금만 가르치셨다는걸 알고, 저는 더 깊이 공부한 것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