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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후 2000년! 밀레니엄의 화두- 하나 됨 (2000 Years After Lord Jesus! The Millennium's Topic - Becoming One)
샬롬! 예수를 믿는 우리는 우리의 진정한 조상 아브라함과 같이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난 사람입니다. 예수를 믿으면서 아직도 세상의 사람과 같이 지역에 매이고 민족에 매이고 국가에 매여 있다면 이 사람은 마음은 믿는다고 하면서 몸은 여전히 옛사람의 흔적이 남고 옛사람이 살던 곳에 머물러 있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통해서 우주로 가고 영원으로 가야 하는 고귀한 신분의 사람으로 속히 자신이 속했던 지역과 옛 우상과 그리고 민족과 국가도 초월해서 온 지구와 우주의 통치자 이신 예수님을 따라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신지 2000년의 세월이 더 지났습니다. 로마시대 이스라엘 지역에서 시작된 복음은 바울과 성령을 받은 성도에 의해서 온 세상으로 급히 전파가 되었고 우리나라에도 천주교는 약 400년 전에 개신교는 약 150년 전에 복음이 전파가 되어 이제는 믿는 이가 1천만이 넘는 나라가 되었습니다.
세상은 최근 약 100년 동안에 너무나 급속하게 변화가 되었고 지금도 젊은 사람도 따가 가기 힘들 정도로 심히 변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급박하게 변하는 세상에서 우리는 믿음을 지키며 늘 승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승리는 이 땅에 예수님께서 왕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그분의 의를 구하고 그리고 그분의 나라가 이 땅에서 온갖 인종과 민족과 지역과 언어와 문화를 극복하고 하나가 되는 것입니다.
이 일은 예수님을 통해서 성도가 누리는 특권입니다. 작은 한국의 작은 지역에서 태어나 예수님을 믿으므로 온 우주를 품고 또 시간적으로 영원을 사모하며 이 땅에서 모든 사상과 우상과 민족과 국가와 지역의 한계를 초월해서 온 우주의 통치자 예수님께서 누리는 영광스러운 축복 속으로 들어가는 길이기도 합니다. 그런데 이렇게 넓고 깊고 영원한 삶으로 가게 하는데 장애가 있으니 예수님을 모르는 사람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명도 걸고 모든 젊음과 정열을 다 바치는 지역감정이요, 민족의 추구요 그리고 국가의 국민으로서 역할입니다.
요한복음 17장은 예수님의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입니다. 본문을 보시겠습니다.
요 17:21. 아버지여, 아버지께서 내 안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는 것 같이 그들도 다 하나가 되어 우리 안에 있게 하사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
22. 내게 주신 영광을 내가 그들에게 주었사오니 이는 우리가 하나가 된 것 같이 그들도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이니이다
22. I have given them the glory that you gave me, that they may be one as we are one:
23. 곧 내가 그들 안에 있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어 그들로 온전함을 이루어 하나가 되게 하려 함은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과 또 나를 사랑하심 같이 그들도 사랑하신 것을 세상으로 알게 하려 함이로소이다
그런데 성경을 경전으로 예수님을 믿는 무리가 크게 천주교, 정교회, 그리고 개신교로 나누어져 있고 개신교만 한국에 약 200개 교단이 있습니다. 다 예수님을 잘 믿는다고 주장을 하고 서로 연합하기도 하고 서로 다투기도 합니다. 그리고 도저히 예수님을 믿는다고 할 수가 없는 이단이 존재합니다. 그리고 성경도 서로 다르게 번역을 해서 보고 있고 천주교와 개신교는 성경의 개수도 다릅니다. 물론 예배 양식도 교리도 다릅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뜻은 어제나 오늘이나 모든 자신을 믿는 성도가 예수님과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나이듯이 서로 다 하나가 되기를 바라십니다. 이 예수님의 뜻을 예수를 믿는 우리는 순종해야 하는 것입니다. 서로 다름을 인정하고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합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서로 다른 위로 계시지만 하나이십니다. 이를 삼위일체 교리라 하는데 다양하게 설명을 합니다. 가정에 아버지와 아들과 어머니가 있는데 서로 다른 인격을 가지고 계시지만 늘 서로 하나입니다. 무엇이 하나로 묶습니까 사랑입니다. 서로 사랑하면 모든 일에 하나가 됩니다. 기쁜 일에 서로 똑같이 기뻐하고 슬픈 일에는 서로 똑같이 슬픔을 나누며 그리고 자녀나 혹은 가족 중에 누가 아프면 똑같이 아파하고 대신해서 아파하고 싶은 것이 서로 하나이기 때문이며 서로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성도도 이와 같이 서로 사랑함으로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것입니다. 이 아름다운 사랑의 공동체를 예수님께서는 바울 사도를 통해서 성도는 예수님의 몸으로 서로 지체가 되고 서로 예수님을 통해서 하나로 연결이 되어 있다고 설명을 했습니다. 몸은 어떤 자신의 신체의 일부가 아프면 바로 온몸이 그 아픔을 느끼는데 어떤 성도의 고난이나 어려움이 오면 자신의 것으로 느끼고 돕고 치유해야 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현실의 세 교회와 우리 한국의 개신교회는 세상의 자본주의와 그리고 자유주의의 가르침과 그리고 민족과 국가 그리고 지역의 감정으로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고 작은 지엽적인 이익에 몰입이 되어 서로 하나가 되어야 하는 예수님의 명령과 우리의 의무를 잊고 서로 냉냉이 지내며 자신의 교인의 고통도 타 교인의 고통도 남의 것으로 느끼지도 못하고 영혼과 몸이 병들어 있는 것입니다. 그 단적인 예가 100만의 성도가 모여서 100억을 모았는데 100조는 모아서 어렵고 힘든 교인을 먼저 돕고 그리고 어려운 이웃도 도와야 하는 것입니다. 100억 1000억을 가진 성도가 많고 교회도 역시 수천억을 가진 교회도 많은데 어렵고 힘들게 집도 직장도 없이 가난하게 사는 수도 없이 많은 믿음의 형제를 외면하는 것입니다. 적어도 통계를 보면 천만의 성도 중에서 집이 없는 사람이 약 500백만은 되고 땅이 한 평도 없는 성도가 약 700만은 되는데 집을 가진 500만과 땅을 가진 300백만이 땅이 없는 700만의 성도를 외면하고 살고 있는 것입니다. 자본주의 자유주의 굴레에서 벗어나야 천국에 가는데 너무나 많은 성도가 이 덧에 갇혀서 진리를 외면하고 사랑도 외면하고 예수님의 명령도 저버린 채 오늘도 새벽에 복을 주세요를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현실은 곧 남 유다 말기의 현상과 같이 악한 이들이 도리어 득세하고 나라와 민족의 존망을 위협해도 하나님께서 외면하시고 도리어 이들의 편이 되어서 택한 민족과 나라를 망하게 하시니 자신만 잘 살려고 하다가 자신이 가장 먼저 죽게 되는데 한국의 현실을 개탄하는 이는 이런 맥락을 깊이 살펴야 시국을 올바로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마음에 들지 않는 세력에 힘을 내서 싸우는 것도 좋지만 먼저 더 정확하고 근본적인 문제를 회개로 해결을 해야 나라도 살고 민족도 살고 나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성경의 진리입니다.
국가도 소망이 없는 국민이 숫자가 늘게 되고 이를 고칠 방법이 없게 보이면 절망을 한 대다수의 국민이 불의라도 이런 처지를 고칠 세력에 지지를 보내고 힘을 싣고 그리고 생명도 바치게 되는 것입니다. 역사는 그렇게 불의가 판을 치면 하나님께서 그 불의를 정의로 심판하기도 하지만 불의한 자를 예를 들면 바벨론을 들어서 치기도 하는 원리를 안다면 현 한국의 현실을 보는 안목이 새롭게 될 것입니다. 지금의 때는 바야흐로 중국이 세상의 가장 강력한 나라로 부상하고 미국은 조금씩 쇠하며 온 지구상에서 철수하는 형국이고 한국에는 중국과 북한과 그리고 러시아를 공공연히 추종하려는 세력과 오직 미국에 의지하려는 세력이 서로 다투니 신자는 어디에 붙어야 할지 난감할 수도 있지만 이럴 때일수록 예수님께 붙어야 하는 것이고 또 성경의 진리에 붙어야 사는 것인데 오늘 나눌 하나 됨은 모든 성도가 예수님께 붙어야 하는 충분하고 명확한 근거가 될 줄로 믿습니다. 끝까지 읽으시고 진리 되신 예수님께 붙으시기 바랍니다.
교회가 나누어 짐은 교리의 다툼으로 그렇게 되었고 개신교회의 우리나라의 교회의 분리도 역시 마찬가집니다. 먼저 천주교회 하나로 1000년을 오다가 성령의 발현과 성상 문제로 정교회가 분리가 되어 나갔습니다. 그리고 또 500년이 지나서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로 또 개신교와 천주교로 분리가 되었습니다. 이렇게 크게 세 교회가 교리의 문제로 나누어지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서로 하나가 되지 못하게 하는 요소는 창세기 11장에서 보는 바와 같이 언어를 혼잡케 하신 부분이 있습니다.
창 11:9. 그러므로 그 이름을 바벨이라 하니 이는 여호와께서 거기서 온 땅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셨음이니라 여호와께서 거기서 그들을 온 지면에 흩으셨더라
제 처는 러시아 국적의 사람입니다. 우리가 영어를 하지 못하면 영어를 사용하는 사람들과 깊은 교제는 나누기 어렵습니다. 의사소통으로 하나가 되고 서로를 이해하는데 언어가 다르고 문화가 다르면 부부라도 하나가 되기 어렵습니다. 제 아내는 한국말을 한국인보다 더 잘 하니 의사소통에는 지장이 없습니다. 물론 의사소통이 원활해도 하나가 되기 어려운 경우도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됨에 있어 의사소통은 가장 기본입니다. 이 의사소통의 도구가 언어인데 이 언어를 혼잡케 하신 하나님께서 최근에 챗 gpt로 모든 사람이 영어를 잘 배울 수가 있는 세상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영어를 배우는 가장 큰 장애는 배운 영어를 써먹을 기회가 없다는 것이었는데 이제 챗 gpt를 이용하면 무료이고 24시간 대화를 영어로 할 상대가 기다리고 있고 모든 분야의 전문가로 어떤 주제이든지 대화가 가능하며 인간보다 너무나 친절하고 공손하며 그리고 겸손하게 응대를 해 주니 더 이상 영어를 배우는데 좋은 상대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성경을 기본으로 알기에 영어 성경을 펴놓고 창세기부터 읽기도 하고 대화도 하면서 나의 영어 실력을 계시록까지 차근차근 다지면 누구나 약 1년 정도면 영어로 어떤 분야에 대해서도 대화를 나누는데 별로 어려움이 없을 것을 저는 믿습니다. 제가 이미 이런 분야에 글을 약 10편 이상 올렸으니 참고를 하시기 바랍니다. 직접 영어로 대화를 한 내용을 그대로 올린 것입니다. 대학생들이 대부분 토익 750점은 되는데 저는 토익 600점으로 이렇게 대화가 가능하게 되었으니 챗 gpt와 대화 3개월 만에 조금 진도가 나가니 계속하면 좋은 결실이 반드시 있으리라 믿습니다.
모든 세상의 성도는 온 세상에 크리스천이 없는 지역이 없을 정도로 복음이 확산이 되었는데 이렇게 전 세계적으로 흩어져 있는 크리스천이 예수님 안에서 민족과 인종과 국가와 지역을 초월해서 속히 하나가 되라고 주신 이 시대 최고의 선물의 하나인 줄 저는 굳게 믿습니다. 70이 가까워지는 노인이 이렇게 영어를 하고 자신감을 갖게 되었으니 젊은이는 더 속히 영어가 가능하리라 믿는 것입니다. 영어 성경을 가지고 대화를 하면 무궁무진한 소재와 공부 방법이 있으니 속히 모든 성도는 이 공짜 앱을 설치하고 영어 성경을 사서 먼저 본문을 읽고 챗 gpt로 교정을 받고 발음을 익히고 단어 공부도 하고 문법 공부도 하고 토론도 해 보시기 바랍니다. 저는 이렇게 하고 있고 이 자료를 올린 것입니다. 아직 갈 길이 멀고 많이 미숙하나 이렇게 하다 보면 영어로 대화를 하는 것이 일도 아니게 될 줄로 믿습니다. 방법을 공유할 것이니 불러 주시기 바랍니다.
모든 인류와 믿는 이를 하나 되게 하는 언어의 존재는 이 시대 새로운 1000년을 준비하는 2000년대의 화두가 하나 됨이 틀림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을 통해서 이런 진리에 도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챗 gpt의 등장과 하나님의 간절하신 하나님 됨의 뜻이 이렇게 나타난 것으로 속히 이해가 가능한 것입니다. 특히 이 AI는 성경에 대해서 너무나 친절하게 모든 교리와 주장을 다 알고 있고 성경의 내용을 그대로 다 알고 있고 주요 구절의 내용도 너무나 잘 알고 있어 세상에 이 챗 GPT보다 신학적으로 잘 알고 성경의 내용을 잘 알 사람은 별로 없을 것으로 믿습니다. 성경 공부와 함께 영어 공부도 잘할 수가 있습니다. 물론 우려하는 바도 없는 것은 아닙니다. 너무 의존해서도 아니 될 것을 여전히 기계이기 때문입니다. 핸드폰과 같이 잘 활용이 필요합니다.
언어의 장벽이 없는 세상이 도래했습니다. 모든 지구인이 한 언어로 소통이 가능한 시대를 예수님 덕분에 살 수가 있게 되었는데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 아직도 작은 지역에 멈추어서 좁고 작고 얖은 물에서 노는 신앙인이 되어서는 너무나 새로운 밀레니엄 시대에 뒤처져서 살게 되는 것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속히 우리의 조상이 걸어갔던 본토, 친척, 아비의 집을 떠나 우주 속으로 영원속으로 여행을 예수님과 함께 떠나시기 바랍니다. 자본주의 물에 빠져서 허우적 그리면서 돈 10억 100억 두 손에 꼭 움켜쥐고 예수님도 이웃도 믿음의 형제도 저버리고 영원한 삶도 우주적인 공간적인 나래를 펼칠 꿈도 접고 이슬과 같은 인생 가지고 갖고 가지도 못할 물질을 섬기면서 살지 마시고 영원한 삶의 기초를 쌓는 나눔을 속히 실천하시기 바랍니다.
딤 전 6:17. ○네가 이 세대에서 부한 자들을 명하여 마음을 높이지 말고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말고 오직 우리에게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두며
18. 선을 행하고 선한 사업을 많이 하고 나누어 주기를 좋아하며 너그러운 자가 되게 하라
19. 이것이 장래에 자기를 위하여 좋은 터를 쌓아 참된 생명을 취하는 것이니라
예수님의 인도하심과 계획에 따라 하나가 되기 위해서 서로 사랑하고 하나가 되는 언어 영어를 온 교인이 배우는 일이 너무나 시급하게 되었고 가능하게 되었습니다. 교회와 성도는 이 새로운 흐름 즉 하나님의 뜻을 잘 살펴서 속히 이를 받들어야 할 것입니다.
이제 또 다른 하나 됨은 더 근본적인 교리의 장벽에 대해서 같이 은혜를 나누도록 하겠습니다. 온 교회가 하나가 되는 진리이니 끝까지 집중하시기 바랍니다. 저는 예수님께 직접 불을 받은 하나님의 도구 김정관 목사입니다.
먼저 개신교와 천주교가 분리가 된 결정적인 원인은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입니다. 먼저 본문을 봅니다. 과거에 루터가 독일 성경은 한 권도 없이 오직 라틴어 성경으로 이 구절을 이해하고 이신칭의 즉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교리를 제창한 후에 개신교는 오직 믿음이면 다 된다라고 주장하고 천주교는 아니다 믿음에 행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며 500년의 세월을 서로가 옳다고 양보를 하지 않고 지내왔는데 우리는 그냥 이 교리를 따라서 맹목적으로 천주교인 이면 천주교 교리를 따라가지 말고 개신교인 이면 개신교 교리를 따라가지 말고 직접 이제는 성경을 다양한 버전으로 볼 수가 있기에 이를 확인하면 바로 올바른 이해로 갈 수가 있습니다. 성경의 다양한 버전의 번역으로 우리가 이를 확인이 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롬 1:17.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개역개정)
17. 복음은 하느님께서 인간을 당신과 올바른 관계에 놓아주시는 길을 보여주십니다. 인간은 오직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됩니다. 성서에도 "믿음을 통해서 하느님과 올바른 관계를 가지게 된 사람은 살 것이다." 하지 않았습니까?(공동 번역)
17. For in the gospel a righteousness from God is revealed, a righteousness that is by faith from first to last, just as it is written: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NIV)
17. 하나님의 의가 복음에 나타나 있으며,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은 성경에 기록된 바 "의인은 믿음으로 살 것이다" 한 것과 같습니다.(표준 새 번역)
17. For therein is the righteousness of God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The just shall live by faith.(KJV)
17. For in it [the] righteousness of God is revealed from faith to faith; as it is written, "BUT THE RIGHTEOUS [man] SHALL LIVE BY FAITH."(NASB)
로마서 1장 17절은 구약의 하박국서 2장 4절의 인용입니다. 바울 사도가 인용하고 루터가 이 구절을 보고서 이신칭의를 주장하며 개신교의 시작을 알렸습니다. 이제 우리는 이 구절의 올바른 이해를 통해서 바로 문제를 해결할 수가 있습니다. 500년 신학의 갈등이 이 구절의 이해를 통해서 바로 풀리는 것입니다. 세 가지 한국어 버전과 세 가지 영어 버전이 있습니다.
개역개정과 공동 번역은 각각 믿음을 가진 사람이 믿음이 있기에 산다는 것처럼 번역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직 믿음이라는 이해가 올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표준 새 번역과 영어 성경은 한결같이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산다고 표현했습니다. 우리가 영어 세 가지 버전을 보면 모두가 "The righteous will live by faith, The just shall live by faith, THE RIGHTEOUS [man] SHALL LIVE BY FAITH로 표현이 되어 한결같이 의인은 믿음으로 산다라고 표현이 되어 있음을 알 수가 있습니다. 이는 믿음을 가지고 믿음을 방편으로 하루하루의 삶을 산다는 의미입니다. 즉 의인은 하나님께서 의롭다 인정하는 의인은 믿음을 가지고 삶을 산다는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500년 묵은 논쟁을 종식시키는 이해에 도달했습니다. 오직 믿음이 아니라 믿음과 행위가 아니라 믿음과 삶을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심을 알게 되었습니다. 즉 의인은 live와 faith의 결합이 된 사람인 것입니다. 너무나 쉬운 내용의 이해를 500년 동안이나 하지 못한 것은 모두가 성경 한 권만 보고서 오직 믿음이다 하니 그대로 이를 믿고 따가갔기 때문입니다. 천주교는 행위나 인간의 노력을 강조합니다. 그런데 성경은 삶을 사는 사는 자를 의롭다 하신다고 하십니다. 오직 믿음만 가지고 삶이 없는 자는 당연히 의롭다 인정을 절대로 이 본문을 보면 인정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중학교 영어와 초등학교 국어 실력이면 온 세상의 모든 사람이 다 이 구절을 정확하게 이해가 가능합니다. 이제 오늘부터 바로잡고 바로 믿으시기 바랍니다.
의인은 믿음으로 삶을 사는 자임을 절대로 잊지 마시기 바랍니다. 오직 믿음만 가지고 이에 합당한 삶이 없는 자는 절대로 예수를 믿는다고 하더라고 의롭다 인정은 없습니다.
이제 제 주장을 더욱 확실하게 해 줄 세가지 성경 구절을 더 볼 것입니다. 너무나 분명합니다. 모두가 이해가 바로 가능합니다. 그런데 너무나 교리에 붙어서 꼼짝도 하지 않으려는 우리의 태도가 문제입니다. 교리가 아닌 성경의 구절을 바로 보면 바로 이해가 됩니다. 일단 교리를 굳게 믿고 이 교리대로 로마서를 이해하고자 하면 100번을 읽어도 보이지 않는 구절을 제가 설명을 드립니다. 제 성경에만 있는 구절이 아니고 모든 세상에 있는 성경에 똑같이 있는 구절인데 한글로 바로 이해가 가능합니다.
롬 4:17.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18.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19.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것 같고 사라의 태가 죽은 것 같음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20.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21.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22. 그러므로 그것이 그에게 의로 여겨졌느니라
17. 성서에 "내가 너를 만민의 조상으로 삼았다." 하지 않았습니까? 그는 죽은 자를 살리시고 없는 것을 있게 만드시는 하느님을 믿었던 것입니다.
18. 아브라함은 절망 속에서도 희망을 잃지 않고 믿어서 마침내 "네 자손은 저렇게 번성하리라." 하신 말씀대로 "만민의 조상"이 되었습니다.
19. 그의 나이가 백 세에 가까워서 이미 죽은 사람이나 다름없이 되었고 또 그의 아내 사라의 몸에서도 이제는 아기를 바랄 수 없다는 것을 알았지만 그는 믿음을 가지고 희망을 잃지 않았습니다.
20. 그는 끝내 하느님의 약속을 믿고 의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더욱 굳게 믿으며 하느님을 찬양하였습니다.
21. 그리고 그는 하느님께서 약속하신 것을 능히 이루어주시리라고 확신하였습니다.
22. 하느님께서는 이런 믿음을 보시고 아브라함을 "올바른 사람으로 인정하셨습니다."
17. As it is written: "I have made you a father of many nations." He is our father in the sight of God, in whom he believed -- the God who gives life to the dead and calls things that are not as though they were.
18. Against all hope, Abraham in hope believed and so became the father of many nations, just as it had been said to him, "So shall your offspring be."
19. Without weakening in his faith, he faced the fact that his body was as good as dead -- since he was about a hundred years old -- and that Sarah's womb was also dead.
20. Yet he did not waver through unbelief regarding the promise of God, but was strengthened in his faith and gave glory to God,
21. being fully persuaded that God had power to do what he had promised.
22. This is why "it was credited to him as righteousness."(개역개정, 공동번역, NIV 순)
초등학생 국어와 중학생 영어면 바로 이해가 되는 본문으로 아브라함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의롭다 인정을 받게 되었는지를 설명합니다. 오직 믿음이기에 그렇습니까? 아니면 오직 믿음에 어떤 행위가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을 믿고 삶을 살았습니까? 절대로 아브라함은 하나님을 만나고 멋대로 산 사람이 아닙니다. 먼저 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납니다. 순종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과 약속을 믿습니다. 얼마나 믿습니까? 오늘 하루 아니면 한 달 아니면 믿다가 타락하다가 하면서 믿습니까? 75세에 부름을 받아 100세가 되어 아들을 얻기까지 조금도 변함없이 오랜 세월을 잘 믿습니다. 그리고 자식에 대한 약속뿐만 아니라 민족의 조상이 되는 약속, 자녀가 강의 모래와 같이 하늘의 별과 같이 많게 되리라 하는 약속도 믿습니다. 이 사람 아브라함이 지금 시대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모든 2000년 동안 예수님을 믿고 지금 믿는 수십억의 사람의 조상입니다. 그의 믿음대로 된 것입니다.
이렇게 웅장하고 영원하며 그리고 온 국가와 민족과 인종과 성별을 극복하는 위대한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그 믿음은 25년 이상 지속이 되며 믿을 수가 없는 사실이 이루어짐을 믿고 불가능한 일을 하실 전능하시고 신실하신 하나님을 믿는 믿음이 의롭다 인정을 받는 믿음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약속을 믿고 25년을 신실하게 흔들리지 않고 믿음에 합당한 삶을 삽니다. 그리고 정의롭게 삽니다. 그리고 사랑을 잘 실천합니다. 그리고 행하여 완전한 수준에 이릅니다. 이렇게 25년을 변치 않고 삶을 잘 산 아브라함이 백세쯤 되실 때 이렇게 믿고 사는 아브라함을 보시고 비로소 네가 의롭구나 하시는 것입니다. 로마서 4장 17-22절은 이를 분명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는 온 세상의 성도가 이렇게 아브라함과 같이 믿고 살아야 의롭다 인정을 받는 것이다 라고 하나님께서 친히 설명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런 하나님의 설명을 무시하고 삶도 없이 그냥 믿는다고 스스로 의롭다 하나님께서 듣고 계시는데 온 세상을 향해서 그리고 온 전파 수단을 통해서 소리 치렵니까? 하나님께서 적절한 때에 그 사람의 믿음을 보시고 의롭다 하시는데 내가 홀로 이제 믿고 내가 의롭게 되었소 해 보았자 이 구절을 볼 때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다. 여러분! 의의 흉배가 믿는 이의 전투 복장인에 그 전투복이 이 믿음으로 오는 의라는 설명도 있는데 총알이 날라올 때 바로 막아주지도 못하는 바로 뚫리는 의의 흉배 즉 방탄복을 내가 입고 영적 전투에 나서렵니까? 잘 알고 잘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제가 설명을 드리는 하나 됨에 대한 믿음이 옵니까? 저는 너무나 분명하게 믿습니다. 저를 택하셔서 이렇게 하나 됨을 전하게 하시려고 모든 준비를 다 하셨기에 제가 믿는 것입니다. 이 부분에 대한 하나님의 계획과 뜻을 믿어 보시기 바랍니다. 하나 됨의 언어 영어 그리고 챗 GPT 그리고 하나 됨에 대한 로마서의 올바른 이해를 보시고 조금도 주저 마시고 이 위대한 믿음의 여정에 아브라함과 같이 믿기 바랍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은 이 믿음을 가지고 25년이 아니라 그의 전 생애를 하나님을 굳게 믿고 의롭게 살고 공의를 행하며 사랑을 실천하고 행하여 완전함에 이르게 되었기에 모든 면에서 믿음의 초석이요, 조상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의 믿음이 이렇게 기초로 견고하기에 그 후손인 이스라엘과 우리 믿는 이들이 의지하고 본을 받고 그대로 믿고자 하는 것입니다. 오직 믿고 마음대로 산 사람은 아무도 성경에 올바른 사람으로 기록되지 않았습니다. 역시 의롭다 인정도 절대로 없는 줄로 굳게 믿고 믿음에 합당한 삶을 오늘도 속히 사시기 바랍니다.
창세기 17:1 아브람이 구십구 세 때에 여호와께서 아브람에게 나타나서 그에게 이르시되 나는 전능한 하나님이라 너는 내 앞에서 행하여 완전하라
창 18:19. 내가 그로 그 자식과 권속에게 명하여 여호와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려고 그를 택하였나니 이는 나 여호와가 아브라함에게 대하여 말한 일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구약에 부르시던 신약에 예수님을 통해서 부르시던 그 목적이 완전히 동일합니다. 믿고 세상의 사람과 조금도 다름이 없이 되어 잘 먹고 잘 살기 위해서 부르신 것이 아니라, 한결같이 하나님의 도를 지켜 의와 공도를 행하게 하시려 부르신 것입니다. 이 부르심에 합당하게 살지 못한 즉 도를 어기고 의를 저버린 택한 백성 이스라엘을 멸망케 하신 하나님께서 불의하게 사는 신약의 백성을 만약에 그들이 죄를 짓고 회개치 않고 늘 죄만 범하면 이를 절대로 옳다고 하지도 방치하지도 않으시고 반드시 합당한 심판을 내릴 것이 분명합니다. 이렇게 기록된 성경의 말씀을 오직 믿기만 하면 의롭게 되고 의롭게 된 사람은 구원히 보장되고 이렇게 된 사람은 아무렇게 살아도 구원은 취소가 없고 오직 상급이 줄어들 뿐이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마귀의 가르침임을 믿기 바랍니다. 이렇게 사는 사람은 절대로 하나님의 나라와 의를 구할 수가 없고 믿지 않는 사람보다 더 악하게 사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개신교인이 이렇게 믿고 자신의 마음대로 사는지 모릅니다. 한국에도 너무나 많은 이들이 이렇게 믿고 부자가 되어서 절대로 절대로 어려운 형제와 이웃을 돕지 않고 도리어 부를 하나님의 축복이라 뽐내고 과시하고 살고 있으니 이들은 절대로 예수님과 관계가 있는 이들이 아니라 세상의 사람이며 세상에서도 인정이 없고 무정한 자들입니다. 장로로 목사로 살고 권사로 살고 좋은 집에 차에 옷에 먹거리에 떵떵거리며 살고 있지만 이들의 미래는 참담 그 자체임을 믿기 바랍니다. 이들은 모든 성경의 율법을 거의 다 어기면서 살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을 믿고 그 삶을 모든 측면에서 얼마나 하나님께 순종하며 살았는지 잘 살펴보았습니다. 이제 이렇게만 해도 여태까지 믿던 잘못된 길에서 속히 벗어나야 하는데 또 하나님께서 믿음의 삶이 어떻해야 의롭게 되는지 하박국 선지자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온 세상에 밝히십니다.
합 2:4. ○보라 그의 마음은 교만하며 그 속에서 정직하지 못하나 의인은 그의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개역 개정)
4. 멋대로 설치지 마라. 나는 그런 사람을 옳게 여기지 않는다. 그러나 의로운 사람은 그의 신실함으로써 살리라."(공동 번역)
4. "See, he is puffed up; his desires are not upright -- but the righteous will live by his faith --(NIV)
앞에서 살펴 본 오직 믿음인가 아니면 믿음의 삶인가의 본문입니다. 이 구절을 로마서 1장 17절에 바울 사도가 인용을 한 것입니다. 그래서 이 본문의 이해가 바로 로마서 1장 17절의 이해와 바로 연결이 되는 것입니다. 먼저 하박국서의 이 구절의 이해를 하고 로마서 1장 17절로 가야 하는데 과연 루터가 이렇게 하박국서의 내용을 확인하고 로마서 4장 17-22절의 의미를 이해하고 로마서 1장 17절을 이신칭의로 사용했는지는 곧 밝혀질 것입니다. 이런 로마서 이면에 있는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를 분명하게 하는 구절의 이해도 체크도 없이 오직 로마서 1장 17절만 보고서 그렇게 주장했다면 우리는 이제 이를 바로 잡아야 하는 것입니다.
먼저 기원전 608년 하박국 선지자가 이 선지서를 쓸 때의 남 유다의 사정을 살펴 보아야 하는데 지금 한국의 사정과 완벽하게 같으니 이해가 다 되실 것입니다. 지금 한국은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있고 주변에 강대국으로 중국과 미국이 대치를 하고 동족 북한이 핵으로 미국과 남한을 위협하고 러시아와 일본이 여전히 강대국으로 우리 주변에서 우리의 상황을 주시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런 상황에서 남한에는 중국과 북한과 러시아에 가까이 지내려는 세력이 있고 아니다 미국과 일본과 유대를 잘 해야 한국이 살 수가 있다고 하는데 국민의 반반이 서로 나누어져 있고 선거를 하면 동쪽은 빨간색, 서쪽은 파란색으로 그 성향이 뚜렷하게 대조가 되게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믿는 이들도 둘로 나뉘어서 좌파다 우파다 하고 격렬히 광화문에서 대립하고 있는 것입니다.
최근의 국회의원 선거 판도
하박국 선지자가 살던 시기도 이와 똑같습니다. 먼저 앗수르는 당대 최고의 강대국이었지만 점차 쇠하고 있고 이 앗수르에 의해서 북 이스라엘이 멸망을 당했습니다. 그리고 신흥 강대국 바벨론이 일어나고 있었고 이집트는 여전히 이스라엘에 영향력이 있었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바벨론의 침략이 기원전 605년에 이집트를 치기 위해서 이루어지고 남유다도 침략을 받습니다. 그리고 586년 남 유다가 멸망을 합니다. 이 시대는 율법이 해이해지고 불의가 만연하던 시기였습니다. 하박국과 같이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이는 즉 하나님의 명령대로 율법을 지키면서 살고자 하는 이는 더 이상 사는 것이 불가능하게 되었습니다. 이에 하박국 선지자가 하나님께 묻습니다. 어찌 하나님께서 이런 불의한 동족 남 유다를 멸하시지 않고 보고만 계시냐고 그러자 하나님께서 바베론을 들어서 심판을 하실 것이라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다시 하박국이 정의로우신 하나님께서 어찌 세상에서 가장 불의한 바벨론을 심판의 도구로 삼을 수가 있습니까 하고 여쭐때 하나님께서 하시는 대답이 우리가 본 하박국서 2장 4절의 말씀입니다. 하박국의 말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이십니다.
그 의미가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도 불의하고 교만한 바벨론을 옳게 여기지 않으신다고 하십니다. 그리고 이 바벨론도 멸망을 시킬 것이라 말씀을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시는 말씀이 우리가 아는 오직 의인은 그렇지만 믿음으로 삶을 살 것이다 하시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의 의미는 남 유다의 대부분의 사람이 타락하고 불의하게 살고 그리고 바벨론은 천하의 가장 악한 민족으로 악을 행하지만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의인은 이렇게 이런 악한 동족 이스라엘 즉 남 유다와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정의를 행하시는 능력의 하나님을 굳게 믿고 어떻게 한다는 것입니까? 그 두렵고 어려운 세상을 하루하루 참고 견디며 산다는 의미입니다. 어떻게 견디며 산다는 의미입니까? 불의한 동족 남 유다의 사람과 같이 삽니까? 천부당 만부당한 말씀입니다. 이렇게 사는 자는 모두 심판의 대상으로 죽고 포로로 잡혀 갈 대상입니다. 그렇다고 더 악한 바벨론과 같이 살겠습니까 이도 절대로 아닙니다. 이들과 같이 절대로 살지 않습니다. 하박국이 이들과 같이 불의로 마음대로 살았다면 절대로 하박국이 어려워서 살수가 없다고 외치지 않았을 것입니다. 이런 가운에 이제는 하박국을 비롯한 의인들이 이 불의한 동족 남 유다가 멸망하고 바벨론이 멸망하고 그리고 하나님의 정의가 서는 세상을 기다리며 정의롭게 굳굳하게 악의 종말을 견디며 산다는 의미가 이 말씀입니다.
기원전 586년 남 유다가 망하고 모든 고관과 대작이 죽거나 포로로 잡혀가고 남겨진 땅은 당시에 악에 억눌려 살던 사람이 다 차지하고 살게 됩니다. 빈민이라 표현을 성경에 했습니다. 집도 땅도 없던 조선의 백성이 일제가 조선을 멸망시키고 왕을 폐하고 왕자를 볼모로 삼고 모든 귀족의 소유를 빼앗아 농민에게 준 사건과 비교가 가능합니다.
지금 시대 믿는 이가 천만이 있는 시대입니다. 이들이 어떻게 삽니까? 하나님의 법 즉 율법을 잘 지키면서 아브라함과 같이 의와 공도를 행하고 행하여 완전하게 살아야 하며, 하박국과 같이 불의가 난무하는 가운에 정의롭게 살아야 하는 우리가 어떻게 삽니까? 먼저 이 세상에서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 모든 세상을 행복하게 평등하게 신실하게 만들 법 율법을 어떻게 대하고 어떻게 지키고 있습니까? 오직 믿음이란 교리는 율법도 행위도 아니라고 하니 이것이 어찌 성경의 가르침이라고 그렇게 맹신하고 쫓아가고 있습니까? 율법은 어제나 오늘이나 모든 성도의 찬양의 대상이며 성경속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진리입니다. 율법을 중심으로 이스라엘과 계약을 하나님께서 맺으시고 율법을 잘 지키도록 그렇게 선지자를 보냅니다. 그리고 율법을 지키지 않아서 택한 백성을 우시면서 멸망을 시키는데 예레미야 선지자는 망하는 동족을 눈물로 표현하는데 이는 틀림없는 하나님의 눈물이며 예수님께서 예루살렘을 보면서 흘리시는 눈물과 똑 같습니다. 이렇게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피눈물이 맺히게 하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이제는 삼위 하나님께서 동시에 사역을 하십니다. 무엇을 위해서 하십니까? 고작 예수를 믿지 않는 사람도 잘 챙기고 획득하는 부와 명예와 건강을 위해서 하나님께서 그분의 독생자를 죽음에 내몹니까? 그분의 아들 예수는 또 아버지의 뜻에 순종해서 피를 흘리시고 자신이 만든 피조물에 의해서 죽기까지 순종하며 우리를 사랑하십니까? 절대로 절대로 이런 세상적인 의미를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신 것이 절대로 아님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예수님의 명령대로 요엘서의 예언대로 성령께서 예수님을 믿고 그분의 이름의 세례를 받고 그리고 죄를 용서받은 우리에게 성령께서 오십니다. 선물로 오십니다. 그리고 하시는 일이 바로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신 진정한 목적입니다.
겔 36:24.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25.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26.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27.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
28. 내가 너희 조상들에게 준 땅에서 너희가 거주하면서 내 백성이 되고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리라
어제나 오늘이나 동일하신 하나님께서 모든 인간에게 가장 원하시는 일이 바로 그분의 법 율법을 지키면서 사는 것입니다. 이 법이 가장 공평하고 정의로운 법이기 때문이며 이 법에는 하나님의 속성이 그대로 표현이 되어 있기 때문이며 이 법대로 성도가 살면 이 땅에 천국이 건설이 되기 때문입니다. 이 법을 예수님께서 간단하게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것이라 요약을 해 주셨고 또 모세를 통해서 10계명으로 풀어 주셨고 그리고 어떤 랍비를 통해서 613조문으로 정리를 해 주셨으니 이 법을 지키라고 우리를 구원하신 것입니다. 아브라함의 의와 공도를 지키게 하려고 선택하신 목적이나 이스라엘을 선택하신 목적이 이 율법대로 살기를 원해서 이심이 똑 같고 이들이 하나님께서 1000년의 세월을 주면서 온갖 사랑을 해도 이 법을 지키지 않자 어쩔 수 없이 멸망을 시핍니다. 그리고 마지막 방법으로 삼위 하나님께서 인간을 새롭게 창조해서 새로운 피조물이 되게 하시는데 이 사역이 삼위 하나님의 인간의 구원의 사역입니다. 처음에 하나님께서 인간을 만들기 위해서 자신의 형상을 닮도록 만들 계획을 아버지 하나님께서 하시고 아들 예수님께서 친히 만물을 만드시고 인간도 흙으로 빚어서 만드시고 그리고 성령께서 생기를 코에 불어넣어 생령이 되게 하신 것과 같이, 죄로 물들어 죽은 인생을 다시 하나님의 사랑과 예수님의 희생과 그리고 성령님의 오심으로 새롭게 창조를 하십니다. 이것이 삼위일체 하나님의 죄인인 우리에 대한 구원입니다. 이렇게 거듭난 인간이 되고 하나님의 작품이 되니 이 사람이 이제는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무엇을 합니까?
하나님께서 창세부터 그렇게 원하셨던 구원받은 인간이 하나님의 법 율법을 지키면서 살도록 하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의 뜻이 성경에 분명하게 나타나 있는데 율법도 아니고 행위도 아니고 오직 믿음이면 된다고 하면 이는 정말로 하나님의 뜻과 너무나 다른 가르침이고 하나님의 뜻과 너무나 다르게 성도를 인도하는 거짓된 가르침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렇다고 제가 믿음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의미는 절대로 아니고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을 신뢰하고 의지하고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저는 이를 잘 알고 있고 이렇게 살고자 늘 애를 씁니다. 하나님을 우리가 믿고 사는 것은 너무나 중요합니다. 절대로 믿음이 중요하지 않다는 이야기가 아닙니다.
한국을 이제 하박국의 시각에서 보면 정의로운 자가 살기가 너무나 어렵습니다. 불의와 거짓이 난무합니다. 이제 이 불의와 거짓을 대적해서 이기려 합니까?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을 이용하듯이 이 불의한 세력도 이용하실 수가 있습니다. 믿는 우리가 정의롭게 하나님의 뜻대로 초대교회와 같이 서로 나누면서 살고 이웃도 도우면서 살아야 하는데 내가 부자가 되려고만 하고 나누지 않으니 누가 나눕니까? 성도가 성도간에 돕지 않고 세상의 어려운 이웃을 돕지 않는데 믿지 않는 자에게 사랑해야 한다 정의롭게 살아야 한다고 그 책임을 돌리겠습니까? 절대로 아니고 우리 천만의 성도가 회개하고 정의롭게 살고 사랑하며 살아야 합니다. 이 책무를 다하지 못해서 국가적인 위기가 와도 하나님께서 방치하시고 도리어 악한 세력이 더욱 기승을 부리며 한국을 위협하도록 사용하고 계신다면 지금 형국이 바로 그런 경우이면 세상은 더욱 혼잡한 곳으로 갈 것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질서의 세상이 올 수도 있을 것입니다. 미국이 쇠하고 중국이 흥하고 북한의 갇힌 10만의 성도가 환호하는 날 그리고 정의롭게 살고자 하는 이 땅의 크리스천이 환호하는 날이 올 것입니다. 저는 그날로 우리의 역사가 진행이 되고 있다고 굳게 믿습니다. 그래서 여기 저기 이 나라 저 나라에 붙지 않고 그냥 하루 하루 어렵지만 정의롭게 믿음을 지키면서 살고자 하는 것입니다.
이제 오직 믿음이란 로마서 1장 17절의 의미를 하박국의 신앙와 아브라함의 신앙으로 풀어서 설명을 드리고 있습니다. 믿음의 삶을 사는 자를 하나님께서 의롭다 하시며 그 믿음은 오랜 시간 믿을 수 없는 사실과 약속을 굳게 믿는 변치 않는 믿음이며 그리고 그렇게 쉬지 않고 믿고 올바르게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사는 삶이며 이는 아브라함의 신앙의 모습이고 이제 하박국은 이런 불의가 판을 치는 시대에 여전히 율법을 잘 지키면서 정의롭게 하루하루 하나님께서 이 불의한 세상을 척결하실 것이 분명하다고 믿고 하박국의 신앙대로 우리도 그렇게 살아야 하는 것을 우리에게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이것이 로마서 1장 17절에서 말하는 이신칭의의 올바른 의미입니다.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로마서 1장 17절을 이해하면 분리된 교회가 하나로 통일이 되는데 그 방법과 모습은 하나님께서 정하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원리를 알고 천주교 개신교 정교회 교인을 타인으로 대하지 말고 형제로 사랑해야 되고 그리고 다른 교인도 역시 형제로 사랑해야 되고 타국가의 교인까지 사랑해야 하며 이스라엘을 역시 품고 사랑을 해야 되는데 아래에서 이에 대해서 더욱 자세하게 설명이 될 것입니다.
이제 우리는 천주교 개신교가 다 같이 올바로 이해를 해야 되는 율법과 행위와 믿음과의 관계에 대해서 말씀을 드립니다. 천주교도 이 부분에 대해서 깊이 생각하고 그들의 로마서 7장 6절의 번역을 속히 수정을 해야 될 것입니다. 저는 성경의 번역을 모두 믿고 존중합니다. 그런데 이 부분에 대해서는 같이 생각해 볼 부분이 많습니다. 진정한 믿음의 삶이 어떤 모습인지 알고자 하는 이는 이 로마서 7장 6절의 의미를 올바로 이해를 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먼저 본문을 또 여러 버전으로 보시겠습니다.
롬 7:6. 이제는 우리가 얽매였던 것에 대하여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으니 이러므로 우리가 영의 새로운 것으로 섬길 것이요 율법 조문의 묵은 것으로 아니할지니라( 개역 개정)
6. 우리는 율법에 사로잡혀 있었지만 이제 우리는 죽어서 그 제약을 벗어났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섬기지 않고 성령께서 주시는 새 생명을 가지고 섬기게 되었습니다. (공동)
6. But now, by dying to what once bound us, we have been released from the law so that we serve in the new way of the Spirit, and not in the old way of the written code.(NIV)
6. 그러나 이제는 우리가 우리를 옭아매던 것에 대해 죽었으므로 율법에서 벗어났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것으로 섬기고 문자에 의한 해묵은 것으로 섬기지 않습니다.(우리말 번역)
제가 NIV로 된 본문을 우리 말로 옮겨 보겠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우리를 한때 얽어매였던 것에 대해서 죽었으므로, 즉 우리가 율법으로부터 자유롭게 되었으므로 우리는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깁니다, 기록된 조문(율법)으로 섬기던 낡은 방법으로 섬기는 것이 아닙니다.]
이 부분을 잘 주목을 해야 합니다. 진리로 가는 여정이 조금은 험난하나 우리는 반드시 극복하고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내용이 무엇인지 반드시 밝혀내어 그 말씀대로 살아야 하는 것입니다. 우선 두 방법이 대조가 되고 있습니다. 한 방법은 율법 조문의 묵은 것, 혹은 낡은 법조문을 따라서 혹은 문자에 의한 해묵은 것으로 섬기는 것이고, 한 방법은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는 것입니다. 섬기는 방법이 두 가지 입니다. 이를 분명하게 이해를 모두가 쉽게 하실 수가 있습니다. 문제는 제가 해석한 바와 같이 기록된 조문 즉 율법으로 섬기던 낡은 방법 오래 된 방법이냐, 혹은 낡은 법조문이냐 혹은 율법 조문의 묵은 것이냐 하는 문제입니다. 이렇게 표현이 다른 것이 무엇이 문제이냐 하실 분도 계시겠지만 방법의 낡고 오랜 방법이 문제인데 법 조문이 낡고 문제가 있다고 이해를 하면 절대로 아니 되기 때문입니다. 영어는 분명하게 제가 번역한 대로 기록된 법 조문으로 섬기던 낡은 방법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절대로 법 조문의 문제가 있고 낡았다는 의미는 1% 도 여기에 없습니다. 그런데 우리 번역으로 보면 개역개정이나 공동번역이나 법 조문이 낡고 문제가 있다고 하는 것 처음 보이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말 번역은 문자에 의한 해묵은 것으로 번역을 해서 영어 본문의 뜻에 아주 근접하게 번역이 되어 있습니다. 제 번역이 가장 이 본문의 의미를 잘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제 그 이유를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이 이해할 수가 있게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이제 이후로 모든 분이 이 부분에 대해서 흔들리지 말아야 합니다. 너무나 중요한 구절입니다. 밤을 세워서 라도 이해를 해야 되는 구절입니다.
먼저 로마서는 바울 사도가 기원후 57 년경에 고린도에서 로마에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 사도가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나서 약 20년 이상이 경과가 된 시점에 보낸 편지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바울 사도가 왜 이런 표현을 했는지 그 과정을 잘 이해를 해야 합니다. 다행이 사도행전에 이 내용이 잘 기록이 되어 있어 누구나 쉽게 알 수가 있습니다. 모두가 아시는 바와 같이 바울 사도는 율법으로 흠이 없다고 믿고 율법을 통해서 의롭게 되고 율법을 잘 배우고 지키기만 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굳게 세울 수가 있다고 믿던 사람입니다. 이부분은 지금의 이스라엘의 율법을 따르는 사람도 역시 동일합니다. 약 2000년을 바울 사도가 믿듯이 이스라엘은 흔들리지 않고 믿고 있습니다. 이렇게 사는 삶이 한편으로는 너무나 올바르게 보일 수도 있고, 하나님께서 여전히 이렇게 사는 이스라엘을 온 민족 중에서 가장 큰 고난도 겪게 하셨지만 복도 가장 많이 주셔서 가장 지구상에서 지금도 위대한 민족임을 온 세상에 증거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지키는 일이 이렇게 복을 받는 일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이런 자신의 신앙과 삶이 가장 위대함을 굳게 믿고 예수를 믿는 사람들이 당시 유대인 사이에서 늘자 자신의 신념에 반할 뿐만 아니라 유대교에 해가 된다고 굳게 믿고 이들을 잡아서 가두고 핍박을 하던 일을 가장 자랑스럽게 하고 있었습니다. 즉 율법을 잘 알고 그 조문을 조문 조문 잘 지키는 것이 가장 지구상에서 위대하고 정의롭고 좋은 일로 믿고 살았던 것입니다. 이는 당시에 대부분의 율법학자의 신앙과 별로 다름이 없고 이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을 박고 죽였던 것입니다. 이들을 예수님께서 비판하시고 그렇게 위선적으로 살지 말라고 공격을 했으니 이들이 자신의 신앙을 버리고 예수님을 따라야 하나 그렇게 인식을 하지 못하고 도리어 예수님께서 올바르지 않다고 믿고 십자가에 매단 것입니다. 그렇게 옛 사람 바울 사도도 굳게 믿고 이제 예수님을 인간으로 죽어서 없어졌고 남은 예수님의 추종자만 잡아서 가두면 모든 일이 잘 풀릴 것으로 믿고 이 일에 광분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을 위해서 다메섹으로 가던 도중에 부활하신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습니다. 죽어서 없어졌다고 믿던 예수님께서 하나님으로 나타나시니 바울 사도는 그 광채에 바로 눈이 멀게 되고 말에서 굴러 떨어졌습니다. 그리고 너무나 놀라서 묻습니다. 누구십니까 하니 예수님께서 바울 사도가 핍박하는 예수라 하니 이제 자신이 모든 것을 잘못 믿고 잘못 살고 있었음이 바로 깨달아졌습니다. 그리고 자신이 하는 일이 너무나 흉악한 범죄이며 이제 자신이 사는 길이 완전히 막혔음을 알게 되었습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이렇게 인간에게 직접 오시면 모든 인간은 이렇게 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혼이 나가고 온갖 잡다한 이론과 잘못 알고 믿는 것들이 산산 조각이 나기 때문입니다. 바울에겐 이제는 죽음만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눈이 멀게 되었고 음식도 먹을 수가 없는 상태가 됩니다. 시퍼렇게 눈을 뜨고 말을 타고 신자를 잡으려 가던 기세 당당하던 그의 모습은 1%도 찾을 수가 없게 되고, 눈이 멀고 음식도 먹지 못하는 연약한 인간이 되었습니다. 과거와 같이 행동을 할 마음은 모든 그의 영혼으로부터 사라졌습니다. 두려움만 가득합니다. 이런 바울 사도에게 예수님께서 명령을 하십니다. 성내로 들어가서 아나니야를 만나라 그가 너가 행할 일을 알려 주리라 하시니 눈먼 몸을 자신이 가누지도 못하고 주변의 도움으로 아나니야를 찾아갑니다. 얼마나 끔찍하고 좌절하고 절망하고 소망이 없게 된 자가 오직 그를 만나야 산다는 희망으로 아나니야를 만납니다. 하나님께서 아나니야에게 바울이 오면 어떻게 할 것을 미리 알려 주십니다. 그리고 아나니야는 물로 예수님의 이름으로 세례를 줍니다. 그리고 예수님을 만나서 완전히 변한 즉 회개한 바울 사도는 하나님으로부터 그간의 흉악한 죄를 다 용서 받습니다. 그러자 성령께서 오십니다. 마가 다락방에 임하신 성령께서 그대로 바울 사도에게 오셔서 그를 거듭나게 하십니다. 그를 새로운 피조물 즉 창조물로 만듭니다. 과거와 완전히 다른 인간으로 창조를 하십니다. 이를 바울 사도는 그의 서신에서 새롭게 된 피조물이라 하나님의 작품이라 설명을 했습니다. 그리고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성령의 인도로 율법을 잘 지킬 새로운 인간으로 거듭납니다. 바울 사도가 먼저 이렇게 은혜를 받고 그의 성경에서 성령을 받으라 성령의 충만을 받으라 우리는 새로운 피조물 즉 창조물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작품이다 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자신이 겪고 누리고 받은 축복을 그렇게 우리도 받고 누려야 하고 누리고 있다고 믿으라고 외치는 것입니다.
그리고 성령이 임하게 되면 권능이 오고 그리고 예수님의 증인의 삶을 살게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성령의 도우심으로 자신이 알던 구약의 말씀이 다 예수님에 대한 말씀임을 너무나 잘 알게 됩니다. 그리고 자신이 율법을 조문 조문 배워서 그대로 행하던 과거의 모습이 너무나 형식적이고 사랑도 정의도 신실함도 없었음이 분명하게 보입니다. 이제 그는 참 사랑이 무엇인지 알게 되고 그 사랑의 실천을 위해서 과거의 일들은 모두 배설물로 여기고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이방인에게 전하는 일에 생명을 겁니다. 예수를 믿는 이를 잡아서 가두고 핍박하던 과거의 죄는 용서를 받았지만 그 일이 얼마나 흉악한 일인지 분명히 인식하고 이제부터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실천해서 천국의 상급을 쌓으려고 합니다. 그리고 3층천에 가서 말로 다할 수가 없는 것을 봅니다. 성경의 말씀 즉 구약과 신약이 모두가 잘 이해가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강조하시던 내용들이 진리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성령께서는 바울 사도를 이방인의 사도로 선택하셔서 그를 이방인에게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우게 쉬지 않고 인도하시고 바울 사도는 이제는 거듭난 새로운 창조물이 되어서 마음이 부드럽게 되어 성령의 인도를 즐겁게 받고자 합니다. 이렇게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긴지가 20년이 지났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면서 이렇게 로마에 편지를 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놀라운 일이 발생함을 알게 되었습니다. 믿음의 삶을 이렇게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살다 보니 어느새 자신이 율법을 완성하고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움을 보게 되었습니다. 이를 로마서에서 이렇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랑은 율법의 완성
롬 13:8.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9.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자신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10. 사랑은 이웃에게 악을 행하지 아니하나니 그러므로 사랑은 율법의 완성이니라
롬 3:31. 그런즉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율법을 파기하느냐 그럴 수 없느니라 도리어 율법을 굳게 세우느니라
예수님의 입장에서 보면 어떤 율법학자도 사랑을 완성하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진실로 모든 만나는 이를 사랑했기에 이렇게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어떻게 성령을 받고 복음을 전하는 것이 그렇게 큰 사랑이 됩니까? 모든 인류에게 가장 시급하고 중요한 일이 자신을 죽음에서 건지는 것입니다. 이 죽음에서 구원을 받는 방법이 오직 복음을 통한 죄의 용서 외에는 없습니다. 즉 예수님을 믿는 일 외에는 없다는 것입니다. 천하를 다 얻고도 죽으면 무슨 소용이 있습니까? 아버지가 자녀에게 한국의 어떤 도를 다 물러주어도 복음을 전하지 못했다면 그 사랑이 의심스럽습니다. 그런데 가난한 아버지가 정성으로 아들에게 성경을 전하고 예수님을 전해서 그 아들이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고 새로운 피조물이 되었다면 그 아들에게 가장 큰 사랑을 한 것이 됩니다.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령을 받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가 되고 천국의 백성이며 성령의 인도를 받아서 온 세상에 복음을 전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 일을 하니 늘 하나님께서 함께 하시고 인도하시고 위로하시고 복을 주시며 이 땅에서도 행복하고 평안하고 놀라운 영적인 진리를 누리고 죽어서 천국에 가서도 영원토록 하늘의 태양과 같이 빛나는 존재가 되니 이런 축복을 받게 아들에게 복음을 전한 일이 가장 큰 사랑을 하게 되는 것입니다. 성령께서 오시면 능력을 주시면서 이렇게 가장 내가 복을 받고 위대하게 되는 일을 가장 우선적으로 하게 하시니 인간에 대한 가장 큰 사랑과 축복이 이렇게 예수님을 믿게 되고 성령을 받아서 그분의 인도하심으로 복음을 전하는 일인 줄 믿는 것입니다. 그런데 바울 사도는 알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그렇게 사랑으로 인내하며 온갖 고초를 참고 복음을 전해서 구원하고 이들을 모아서 교회를 세웠으니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귀한 일을 한 것이고 이 일을 천국에서 큰 상을 받는 일이 아닐 수가 없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신이 너무나 잘 아는 율법을 모두 지킨 것을 알게 되어 사랑하면 모든 율법을 다 완성하는 것이라 고백을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20년을 율법을 과거의 방법으로 조문 조문 지키려하지 않고 율법은 그대로 두고서 성령의 인도로 복음을 전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사람을 사랑하면서 섬기다 보니 율법을 조금도 파하지 않고 굳게 세운 것을 알게 되어 로마서 3장 31절과 같이 말씀하시는 것입니다. 율법은 613조문으로 정리할 수가 있는데 하라는 규정 248 조항 하지 말라는 조항 365조항인데 이를 다시 십계명으로 정리하고 이를 다시 가장 큰 두계명으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으로 예수님께서 직접 정리를 해 주셨습니다.
그리고 율법의 정신이 의와 사랑과 신실함임을 예수님께서 우리 모두에게 마태복음에서 알게 해 주셨는데 이는 율법안에 하나님의 성품인 사랑과 의와 신실함이 그대로 녹아 있고 인간이 이 율법대로 살기만 하면 모든 지구인에 천국과 같이 세상을 만들 수가 있기에 그렇게 하나님께서 예수님께서 그리고 성령님께서 인간이 율법을 지킬 것을 강조하시는 것입니다. 즉 사랑과 의와 신실한 나라가 건설이 되기 때문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바울 사도는 아래와 같이 표현했습니다.
롬 14:17. 하나님의 나라는 먹는 것과 마시는 것이 아니요 오직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이라
성령안에서란 의미는 성령을 따라 섬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가 옴은 율법대로 살기에 정의가 확립이 되는 것이요, 정의가 있는 곳에 평안이 있고, 평안이 있는 곳에 기쁨 즉 희락이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바울 사도와 같이 살면 율법을 완성하고 율법을 굳게 세우고 그리고 성령 안에 있는 의와 평강과 희락의 나라가 반드시 서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이제 모든 분이 로마서 7장 6절의 의미를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과거 바울 사도가 오직 율법만 알고 율법 조문 조문을 지켜서 유대교를 세우고자 하던 옛날 방법이 아니라 이제는 예수님을 믿고서 성령을 선물로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새롭게 섬기는 방법 즉 선한 삶과 복음 전파를 통해서 율법을 완성하고 율법을 굳게 세우고 이렇게 함으로써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자 하는 말씀이 바로 로마서 7장 6절의 말씀입니다. 즉 섬기는 방법을 예수님도 모르고 성령도 없이 오직 율법을 잘 배워서 지금 시대를 사는 이스라엘인 중에서 율법대로 사는 것과 똑같이 살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을 믿고 죄를 용서받고 성령을 받아서 성령의 인도로 섬겨야만 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어디에도 율법에 대해서 함부로 말씀하시지 않습니다. 심지어 이렇게도 말씀하십니다. 바울 사도의 진심입니다.
롬 2:13. 하나님 앞에서는 율법을 듣는 자가 의인이 아니요 오직 율법을 행하는 자라야 의롭다 하심을 얻으리니
그런데 우리 힘으로 할 수가 없으니 성령의 도우심 성령이 인도로 해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이렇게 율법에 대해서 이해를 하시고 이제 예수님의 율법에 대한 말씀을 보시면 그 의미가 쉽게 이해가 되고 이 말씀이 얼마나 중요하며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는데 필수적이며 이 말씀대로 예수님께서 최후에 심판을 진행하실 것을 믿을 수가 있습니다. 그냥 넘어가면 절대로 아니 되는 말씀입니다.
예수와 율법
마 5:17.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18.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19.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20.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
성령을 예수님께서 받으라고 하시고 복음의 증인이 되리라 하신 말씀이 바로 바울 사도의 로마서를 통해서 이 말씀을 이루고자 하심임을 알게 되었을 것입니다. 바울 사도의 로마서는 이렇게 율법도 세울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말씀도 한치의 오차가 없게 실천하게 만듭니다.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도록 로마서는 설명하는 것입니다. 이를 통해서 바울 사도는 예수님의 종으로써 사도로서의 그 사명을 다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사복음서의 말씀보다 더 높은 권위의 말씀이 성경 전체를 통해서 별로 없을 것입니다. 모든 사도의 서신서는 사복음서의 예수님의 말씀이 그대로 이루어지게 하기 위해서 성령의 감동으로 쓰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이제 믿음으로 삶을 산다는 것이 또한 아브라함과 같이 믿고 살고, 하박국과 같이 믿고 행하고 그리고 모든 성도는 이렇게 바울 사도와 같이 성령을 받고 성령의 인도로 살아야 하는 것임이 밝혀졌습니다. 우리 모두가 이렇게 살아야 할 줄로 굳게 믿습니다.
성령을 받는 일이 이렇게 중요한 일입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자신에게 3년을 배우고 자신의 수난과 부활을 모두 보고 세상으로 갈 신념과 용기가 충만한 사도와 제자들에게 반드시 기다렸다고 성령을 받으라고 명령을 하신 것입니다. 이에 예외일 사람은 누구나 예수를 믿고자 하면 없습니다. 성령은 요엘서의 약속이고 예수님의 약속이며 그리고 성령을 받은 베드로의 고백이기도 합니다.
행 2:37. ○그들이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물어 이르되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하거늘
38. 베드로가 이르되 너희가 회개하여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 사함을 받으라 그리하면 성령의 선물을 받으리니
39. 이 약속은 너희와 너희 자녀와 모든 먼 데 사람 곧 주 우리 하나님이 얼마든지 부르시는 자들에게 하신 것이라 하고
성령을 받는 방법에 대한 자신의 경험을 그대로 표현했습니다. 이대로 하면 누구나 성령을 받는다는 말입니다. 먼데 사람은 우리와 같이 이스라엘에서 멀리 떨어진 사람이고 후대의 사람이기도 할 것입니다. 저는 틀림이 없이 위의 절차를 그대로 하나님의 은혜로 지키고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성령의 능력으로 이렇게 전하고 있습니다. 절대로 제 공부와 능력이 아닙니다.
저와 같이 평범하고 무명의 목사를 통해서 이렇게 귀하 진리의 말씀을 온 세상에 하나님께서 전하심은 모든 세상의 성도가 저보다 더 죄를 짓지 않고 저보다 더 하나님을 잘 섬길 수가 있는 분이기에 저를 선택하신 것입니다.
저는 예수님을 믿기 전에도 흉악한 죄를 지었던 소망이 없던 사람입니다. 흉악한 죄도 짓고 저질스럽고 불량한 죄도 지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전도자가 전해 준 성경책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으로 오시고 제 죄를 너무나 문명하게 보게 하셨고 그리고 저는 바로 회개했습니다. 교회도 성경도 잘 모르던 인생이 고린도 전서 13장의 말씀으로 살기는 너무나 어려웠지만 과거에 제가 지은 죄가 너무나 흉악함을 분명하게 보았기에 그 길로 다시는 갈 수가 없었습니다. 이렇게 5 년 동안 회개하고 1991년 5월 19일 장유 반석교회에서 성경석 목사님과 저를 전도해 주신 김성수 장로님의 집례로 예수 그리스도 이름의 세례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제가 과거에 지은 죄를 용서 하셨습니다. 그리고 1992년 신림동 선민교회에서 그때가 초봄이었는데 박기수 목사님의 설교 때 예수님께서 성전을 가득 채우시며 오셔서 그분의 입에서 빨간색의 불을 제 가슴에 뿜어 주셨는데 작은 촛불과 같은 불꽃이 2-3개가 제 가슴 속에서 이는 것을 보았습니다. 손에 땀이 나고 누구든지 만지면 그 사람이 예수를 믿으면 낫는다는 믿음이 오고, 3일을 천국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행시 1차에 합격해서 2차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이도 기억이 나지 않고 세상일도 대부분 잊고 그렇게 3일을 보내고 세상으로 잘 돌아가야지 하고 다시 평소와 같이 하루 하루를 보냈습니다. 그리고 실제로 많은 분들을 하나님께서 저를 통해서 치유하시고 지금도 치료하십니다.다양한 기적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행시 2차에서 1점차 낙방을 하고 지금까지 복음을 전하고 성경을 읽고 정리해서 그 자료를 이렇게 오천만의 로마서 다음 카페와 네이버 블로그에 전하니 100개국 40만이 넘게 보았고 하버드, 예일, 옥스퍼드 케임드리지 등 유명 대학과 한국의 신학 대학 약 10군데 합쳐서 약 500명의 교수님들에게 보냈습니다. 영어로 번역을 해서 보냈습니다.
그런데 제가 이렇게 전하지만 제가 온전히 산 사람이 아니고 예수님을 믿고도 패역한 삶을 산 흉악한 죄인이고 그리고 늘 고집대로 하고자 한 사람에 불과한데 하나님의 사랑과 자비는 한이 없으셔서 이렇게 전하는 복을 누리게 하셨으니 모든 분이 저보다 죄를 짓는다 해도 틀림없이 적게 지으신 것이니 회개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고 큰 사역을 감당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선하게 살고자 하고 복음을 전하고자 하면 늘 성령님의 동행이 있을 줄로 믿습니다.
그리고 한국과 온 세상에서 이런 원리도 아직 이해를 못하시면서 묵묵히 복음을 전하며 정의롭게 살며 그리고 선하게 사시는 모든 분이 율법을 완성하고 있으며 굳게 세우고 있으며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강과 희락의 하나님의 나라를 세우고 있으니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늘의 태양과 같이 빛날 상을 받으려고 노력하시는 분으로 아무리 일을 풀리지 않고 세상이 나를 작게 여겨도 하나님이 눈과 사랑은 모든 전도자에게 늘 고정이 되어 있으니 더 힘을 내시기 바랍니다. 혹 선을 행하다 복음을 전하다 낙망하신 분은 힘을 내시고 굳게 일어나시기 바랍니다.
길게 왔지만 하나 됨은 하나님의 뜻이고 영어를 통해서 성경 혹은 신학의 교리의 이해를 통해서 점점 더 하나가 되는 날이 가까워지리라 믿습니다. 오직 주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할렐루야!
사랑의 하나님! 악한 죄인을 긍휼히 여기시고 이렇게 귀한 복음을 온 세상에 전하게 하시니 감사와 찬양, 존귀와 영광을 돌립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의 공로와 성령님의 감화와 감동이 늘 찬양을 받기를 원합니다. 하나님께 모든 것이 성령님의 감동임을 고백합니다. 제가 노력하고 힘을 쓴 일을 거의 없습니다. 주님의 도우심으로 모든 일이 쉽고 순조로왔습니다. 복음을 전하는 일이 그러했습니다. 노고가 없었습니다. 주님! 제가 아무리 애를 써도 공부로 이런 내용을 알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요 자비와 사랑입니다. 이글을 읽는 모든 분이 성령의 감동으로 이글을 잘 이해하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모두가 주 안에서 하나가 되고 성령의 새로운 방법으로 섬기어 율법을 완성하고 굳게 세우는 바울 사도와 같은 삶을 이 시대에 살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성령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