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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3.1. 첫토
주례: 이한택주교님 강의1.2,
강의주제:“성 요셉성월과 나자렛의 숨은 생활”
미사집전: 이한택요셉 주교님, 최안토니오 신부님
강론: 최안토니오 신부님
파티마 평화의 성당
♦성시간:오전10시
♦묵주기도, 미사지향:
⚫세계평화, 죄인들의 회개, 우크라이나, 이스라엘 전쟁종식을 위하여,
한반도 평화를 위하여, 교황님 영육건강을 위하여,
이한택 주교님의 영육건강을 위하여
⚫마리아의 천주성에 대한 모독과 동시에 마리아가 인류의 어머니임을 부정하는 것에 대한 배상으로 바치겠습니다
♦쎌기도, 묵주기도: 고통의 신비, 남북 통일을 위한 기도(쎌기도서 43-44쪽)
♦묵상: ‘고통의 신비’<묵주기도 묵상자료집 ‘고통의 신비’ 2번째>
♦성체강복
♦하느님 찬미가
♦오전 강의: 오전11시
♦1강의:“하느님 찬미가와 성 요셉성월”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오늘 제가 특별히 여러 형제자매님들을 반가워하는 이유는 성요셉 성월도 시작되고 이 성당에서도 하루 피정을 하면서 기도를 하는데, 특별히 이 성당에서 기도하는 형제자매님들께서는 우리 성모님께 우리 대한민국의 정국을 위해서 기도 많이 하시기 때문에 제가 더 반가워해요.
잘들 아시는 바와 같이, 지금 우리나라에 정치는 아주 어려운 문제에 와 있어요. 우리가 자칫 잘못할 것 같으면, 우리 대한민국이 또 한 번 공산주의 쪽으로 기울어질 뿐만 아니라 자빠질 거예요. 그런데 우리가 다시 한번 6.25 같은 이러한 어려움을 당한다 할 것 같으면, 아마 6.25 때보다도 더 큰 어려움이 우리한테 닥칠 수도 있어요. 이래서 우리 파티마 성모님께서는 특별히 공산주의를 예방하기 위해서 100여 년 전에 세 어린이들한테 오셔서 러시아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그러셨어요. 러시아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 것, 그 당시에는 러시아가 짜르를 가지고 있어서, 짜르는 뭐냐 하면, 황제 같은 거였어요. 왕 같은 이런 존재인데, 러시아가
2월 혁명 때, 짜르 제도가 무너지는 거예요. 황제 황실이 무너졌어요. 러시아에서 2월 혁명이라고 하면, 우리 양력으로 할 것 같으면 3월 달이에요. 1917년 3월 달에 러시아가 수세기 동안 내려온 왕권이 무너지고, 무정부 상태로 들어갔어요. 노동자들과 농민들이 데모를 하고, 혁명을 일으켰기 때문에 그리고 그 해에 10월 혁명이 또 일어나요. 그래서 봄에는 2월 혁명, 가을에는 10월 혁명, 10월 혁명도 양력으로 하면, 11월 혁명이 되요. 그래서 2월 혁명 때는 황제 제도가 무너졌고, 10월 혁명 즉 11월 달에는 이 세상에서 처음으로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하는 거예요. 러시아에서. 우리한테도 유명한 사람 레닌, 그러니까 스탈린 보다도 앞에 있던 사람이에요. 레닌이 혁명을 성공해 가지고, 공산주의 국가를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탄생시킨 거예요. 우리 성모님, 파티마 성모님께서는 황제적 제도가 무너지는 그때서부터 공산주의 국가가 탄생하는 그 사이에 나타나셔서 그때 나타나셔서, 우리에게 열심히 열심히 러시아를 위해서 기도해야 된다는 것을 강조하셨어요. 왜 러시아를 위해서 기도해야 하는가? 공산주의가 이 지구상에서 처음으로 정권을 잡는 거, 이것이 우리 인류에게는 아주 불행하고 재앙이 되기 때문에 그것을 미리 막기 위해서, 러시아를
위해서 기도하라고 하신 거예요.
지금 우리나라 국회에서 일어나는 거, 또 국회뿐만 아니라 우리 국회의원 다수당을 뽑아 준 것이 누가 뽑아 준 거예요? 우리들이 뽑아 줬어요. 그 다수당을 뽑아 줬는데, 그 다수당이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 지금 일하고 있는 것이 몇 가지가 있는지 지금 각자가 생각해 보세요. 그리고 지금 국회에서 일어나고 있는 거, 매일매일 일어나고 있는 것이 무엇인가? 그리고 우리 국민이 뽑아 준
대통령을 체포하고 유치장에 가둬 놓는 거, 우리 자유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다른 나라에서는 없는 거, 지금 우리나라에서 일어나고 있어요. 그런데 우리들이 신자이기 때문에 정치에 무관심하고, 나는 정치하고 아무 관심도 없다, 이럴 것 같으면, 정말로 이것이 옳은 것인지, 우리 생각해 봐야 돼요. 또 지금 물가가 막 올라가고, 다른 나라에서는 우리나라가 참 살기 좋은 나라라고 그러고, 전 세계의 젊은이들이 우리나라에 오려고 그러고 이러는데, 우리나라 사람들은 못 살겠다고 그래요. 우리들이 생각해 봐야
돼요. 특별히 우리 신자들은 우리 성체대전에서 하느님 안에서 생각해 봐야 돼요. 지금 우리나라가 제대로 돌아가고 있는 건지, 우리 신자들 입장에서는 제대로 돌아간다는 것이 무슨 뜻이에요?
하느님께서 원하시는 대로 돌아가는 것, 하느님께서 이 세상을 만드실 때, 하나하나 만드실 때, 뭐라고 그러셨어요? 만드실 때마다, 보시니 좋더라 이러셨죠?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보시니 좋더라가 아니고, 살기 죽겠다고 그래요.
이거 제대로 된 겁니까? 제대로 된 거 아니에요. 그러면 우리 신자들은 우리나라를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정치하시는 분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대통령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우리의 교회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하고, 불교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개신교의 지도자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되고, 우리 민족의 지도자라고 하는 사람들을 위해서 기도해야 돼요.
이래야지 백성들이 편안하게 살게 되고, 우리나라가 행복해질 수 있어요. 그런데 우리가 아주 좁게, 우리 집에만 돈 달라고 그러고, 우리 아들만 좋은 취직을 하고, 우리 딸만 결혼 잘 하고, 이게 다가 아니에요. 우리 더불어서 살아야 돼요. 우리 식구 전체가
같이 행복해야 되는 것처럼 우리나라도 전체가 우리 국민들이 다 행복해야 돼요. 그리고 여당 야당 이라는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반드시 있어야 돼요. 여당도 있어야 되고, 야당도 있어야 돼요. 그런데 중요한 것은 여당이나 야당이나 국민들을 위해서 일해야 되고, 남을 위해서 일해야 돼요. 그런데 지금 우리나라 여당 야당은 정말로 우리 국민들을 위해서 일하고 있는가? 그래서 제가
이 성당에서 여러 번 언급했어요. 여당에도 우리 천주교 신자들이 있고, 야당에도 천주교 신자들이 있어요. 그런데 우리나라 법을 만드는 분은 하느님의 뜻에 어긋나는 것들을 만들고 있어요. 이것이 문제가 되는 거예요. 여당 야당에 우리의 천주교 신자들이 있고, 개신교 신자들이 있고, 불자들도 있어요. 그런데 이 국회의원이라는 사람들이 복음대로 법을 만드는 건지, 부처님 가르쳐 주시는 대로 법을 만드는 건지, 이거 우리들이 의문을 크게 부쳐야 돼요. 그러면 지도자가 아닌 우리들 할 일이 없는 게 아니에요.
우리들이 열심히 열심히 기도해야 돼요. 그래서 우리들이 할 수 없는 거, 하느님이 해주십사하고 우리들은 하느님께 매달려야
돼요. 이게 중요한 거예요.
우리 조금 전에 성체강복 받았지요? 성체강복한 다음에 신부님하고 같이 우리 외운 거, 다시 한번 성가책 맨 앞쪽에 있는 거,
우리 들여다보세요. 우리 같이 기도한 거예요. 그런데 우리 이 기도를 입으로는 했는데, 마음으로 정말로 이게 내가 믿는 것인가? 이거는 우리가 생각해 봐야 돼요. 제가 국회의원들이나 개신교 신자들 국회의원들이나 복음대로 안 했다고 그러는 게 뭐냐면,
바로 이거, 우리들이 이 기도 한 거, 이거 무시하기 때문에 그래요. 이 하느님 찬미가에서 첫째 줄이 뭐죠? 우리 소리 내서 크게
읽어 봐요.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그런데 하느님은 누구예요? 우리한테, 하느님이 누굽니까? 한마디로 얘기해서 전능하신 분이에요.
우리 이거 다 믿죠? 네! 믿는데, 우리 입으로 믿고 머리는 믿을 수 있어요. 그런데 내가 가슴으로 믿어야 돼요. 가슴으로도 믿고, 내가 매일매일 생활에서도 믿어야 돼요. 매일매일 생활에서 믿는다는 것은 뭐예요? 나한테 교통사고가 났다던가, 나한테 의사 선생님이 암이 걸렸다는 진단을 내려 주시거나, 이럴 때 우리들은 어떻게 해요? 하느님 안 계시다고 그러지요. 하느님 어디 계시냐고 그러죠. 그때 우리들 전능하신 하느님 믿어요? 안 믿어요? 열심 하신 분들은 믿어요. 그런데 열심히 하지 않은 사람은 하느님 어디 있냐고 소리는 질러도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지 않아요. 정말로 전능하신 하느님이 계시다면 어떻게 해서 나한테 이런 게 떨어져 이래요. 우리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으면 어떻게 될 것 같아요? 지금 내가 교통사고를 사고로 쓰러졌다 하더라도 그러한 상황에서도 하느님께서 나를 도와주신다는 것을 믿을 수 있어요? 없어요? 대답해 봐요? 믿어야 되는 거예요.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다면, 내가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그때 누가 있어야 돼요? 하느님 계시는 거예요. 인간적으로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하느님 하실 수 있어요? 없어요? 전능하신 하느님을 믿는 사람은, 그럴 때 하느님을 믿는 거예요.
아무것도 할 수 없을 때. 전능하신 하느님이 누구예요? 우리 다른 말로 하면 창조주예요. 창조주가 누굽니까? 모든 것을 만들어 내신 분이에요. 그런데 엄마들이 맛있는 음식을 만들 때, 맛있는 자료들이 있어야 되죠. 고기도 있고, 쌀도 있고, 이래야 되는데, 또 양념 없으면 됩니까? 소금도 있어야 되고, 고추장도 있어야 되고, 이래야지 맛있는 음식 나오죠? 이것은 무엇을 이야기해요? 엄마가 창조주가 아니기 때문에 맛있는 상을 차려 놓을 때, 자료가 있어야 돼요. 왜냐하면 엄마가 나를 사랑하고 참 좋아도 엄마가 창조주가 아니야. 그래서 자료 없이는 맛있는 상을 차려 주실 수 없어요. 우리 엄마가 아무리 나를 사랑하신다 하더라도 자료가 있어야 돼요. 좋은 자료가 있어야지, 상을 차려 줄 수가 있어요.
근데 우리가 전능하신 하느님이라고 그러는 것은 뭐예요? 하느님은 자료 가지고 하늘과 땅을 만드셨습니까? 우리 창세기 읽을 때 뭐라 그래요? 하느님은 말씀만 가지고 모든 것을 만드셨어요.
빛이 있어라. 맨 나중에 가서 세상만물 다 인간이 살 수 있도록 만들어 내신 다음에 우리 인간을 만들어 내셨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을 만들어 내실 때에는 뭐로 만드셨죠? 진흙으로 만드시고, 그냥 진흙 덩어리만 만드셨어요? 만드신 다음에 어떻게
했어요? 당신의 숨을 불어 넣어 주셨어요. 다른 것을 만드실 때는 있어라, 있어라, 있어라, 말씀만 가지고 다 하셨어요. 그런데
우리 인간을 만드실 때는 당신 모상으로 진흙으로 만드시고 당신의 입김을 불어넣어 주셔서 우리 인간을 만들어 내셨어요.
이 전능하신 하느님이 우리한테 보내신 사랑이에요. 그래서 여기 성체모시기 전에, 감실에 모시기 전에, 우리들이 찬미 하는 게,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하는 거, 전능하신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하는 거예요.
그리고 지금 우리나라가 어려움에 처해 있어요. 여러 가지 어려움에 처해 있는데, 우리 인간의 힘으로 되지 않는 것들이 지금
많아요. 지금 현재. 우리 여기 앉아 계신 형제자매님들 다 착하신 분들이고, 하느님 사랑받으시는 분들이시고, 또 형제자매님들이 하느님을 사랑하시는 분들이에요. 제가 개인적으로 인사를 해 봐도 그렇고, 지금 이 자리에서 여러 형제자매님들 모습을 뵈도
하느님 사랑 받으시는 분들이에요. 그런데 능력이 우리들 대통령 막 뽑고 국회의원들 막 뽑았어요. 저도 그래요. 주교는 주교인데 저 대통령 아니고 국회의원 아니에요. 그래서 저는 국회의원들만큼도 일 못 해요. 그런데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앉아서 하느님에 대해서 말씀 나누고 있는 게 뭐예요? 하느님께서는 우리들의 기도 들어 주시면서 우리들이 할 수 없는 것 이상으로 하셨었어요. 우리 믿기 때문에 성당에 와서 기도하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우리나라를 위해서 내가 할 수 있는 거 없는 것 같으지만,
아주 참 중요한 거 하실 수가 있는 거예요. 그게 뭐예요?
기도 열심히 하는 거예요.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을 통해서 우리한테 말씀하신 것도 그거예요.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거 별로
없지만, 사람들이 볼 때 너희들이 할 수 있는 거 아무것도 없는 것 같으지만, 내가 너희들에게 말하겠어,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고, 매일매일 생활을 희생으로 바쳐, 그러면 하느님께서 도와주실 거야. 나도 도와줄 거야. 그래서 이 세 어린이들이 열심히 열심히 사셨기 때문에 이 세 어린이 중에 두 성인은 지금 이 성당에 모셨어요. 근데 이 두 성인은 열 살도 안 돼서 성인이 되셨어요.
그럼 여기에 여러 형제자매님들 제가 질문하는 거 손들고 대답해 보세요. 두 어린이들만큼 못 한다는 분들 손들어 보세요?
내가 10살 박이 어린이만큼 할 수 없다고 그러시는 분들 계시면 손들어 봐요? 들었다 놨다, 들었다 놨다 하는데, 이건 뭐냐면
내가 딱 들 수는 없다는 얘기예요. 이게 무슨 얘기냐 하면, 내가 열 살 박이 보단 낫다 이거예요. 이거 맞는 말씀이에요. 그럼 이 두 성인이 우리한테 뭐라고 그러시는지 알아요?, 지금 저 뒤에 서서 계신 두 성인이 이주교님 우리들은 열 살 박이인데 이런 일을 했는데, 아니 주교님이면서도 이것도 못 해요? 이렇게 말씀하시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 중에 성인 될 수 없다는 사람은 있으면
안 돼요. 조금 정신이 모자라든가 보통 사람보다 수준이 낮다던가 이런 사람이면 아마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보통 수준의 능력을 갖고 있고, 지식을 갖고 있고, 생각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그러면 우리들 열 살 박이 이상 열 살 박이보다는 할 수 있는 거 많아요. 공부한 것만 해도 그래요. 성모님이 세 어린이들한테 만나셨을 때 그러셨잖아요? 너희들 다음번에 올 때 읽는 것 좀 배워 가지고 오라고, 왜냐하면 이 세 어린이들은 학교도 안 다녔고, 달력에 숫자도 읽을 수 없었어요. 못 배웠으니까. 그러니까 성모님이 너희들 다음번에 올 때 읽는 거 배워 가지고 오라고 그러셨어요. 우리 중에 여기 읽지 못하는 분 한분도 안계세요. 벌써
세 어린이들보다 우리들이 훨씬 나아요. 그러면 우리들 기도 세 어린이들만큼 할 수 있어요. 또 우리들이 희생 바치는 거, 특히
엄마들 말이죠, 매일매일 하시는 거, 얼마나 큰 희생이에요. 식구들을 위해서 하시고, 성당 위해서도 봉사하시고, 또 다른 좋은 일들 이웃을 위해서 하시는 거, 이 모든 것들 다 희생으로 바치시면, 세 어린이들이 바치는 거 이상으로 우리들이 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여기 하느님 찬미가를 보고, 그 다음 둘째 줄이 뭐냐 하면,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이것은 뭐냐 하면, 우리가 하느님 부를 때마다 우리 성가 책에서도 주님 하느님 이러면서 기도하잖아요. 하느님 이름 부를 때마다 이것이 기도가 되는 거예요. 그럼 여기 찬미가에서도 하느님의 거룩한 이름은 찬미 받으소서. 우리가 기도할 줄 모른다고 그럴 것 같으면 저는 신자들한테 최소한도 뭐냐면, 영광송이라도 외우라고, 영광송처럼 좋은 기도 없다, 또 어떤 분이 주교님 그것도 힘들어요 이러면, 제가 뭐라고 그러냐 하면 성호 그라고 그래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이것 자체가 큰 기도예요. 그것이
둘째 줄이에요. 우리 하느님은 성부 성자 성령이셔요. 그래서 내가 모든 것 할 때, 뭐든 힘이 들 때, 어려울 때, 외로울 때, 이럴 때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하실 것 같으면, 성부 성자 성령께서 도와주셔요. 중요한 것은 성호를 긋고 주교님 이거 하느님이 들어 주시는 것 같지 않아요, 이러죠. 그러면 제가 뭐라고 대답을 할 것 같아요? 성호 그었으면 좀 기다리고, 하느님의 대답을 좀 들어 봐요. 우리 들어보지 않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죽어라하고 반복하고 하느님의 말씀을 들으려고 하지 않아요.
우리 듣는 것 참 중요해요.
오늘 우리 무슨 성월이 시작되지요? 요셉 성월이 시작 되요.
오늘 제가 이 피정, 지금 현재는 하느님 찬미가 가지고 조금 말씀드리고 오늘 하루 동안에는 오전과 오후 시간에 제가 요셉 성인하고 성모님하고 예수님에 대해서 말씀드리려고 해요. 그러니까 성가정에 대해서.
우리 매일 미사 3월 19일은 무슨 축일이에요? 요셉 성인 축일이죠.
또 3월 25일은 누구 축일이에요? 성모님 축일이에요. 성모님 무슨 축일? 성모님께서 누구 만난 축일일까요? 천사를 만났데, 어떤 천사를 만나셨어요? 네, 가브리엘 천사. 묵주기도에도 참 중요한 거예요. 오늘 테마가 그거예요. 성모님하고 요셉성인하고 예수님, 나자렛에서 생활하신 거, 이게 우리 인생길을 가르쳐 주시는 거예요. 그럼 제가 지금 요셉 성인 말씀드리는데, 요셉 성인이 말씀하신 것이 복음에 있어요? 없어요? 어디 성서 공부 많이 하시는 엄마들 대답해 보세요?
요셉 성인 말씀하신 게 있어요? 없어요? 우리 복음을 아무리 읽어도 요셉성인이 말씀하신 거 한 마디도 안 나와요. 한마디로 얘기할 것 같으면, 요셉 성인은 우리한테 말씀 한마디도 전달하시지 않았어요. 그런데도 우리 교회에서는 3월 19일을 대축일로 보내요. 요셉 성인 대축일이에요. 그러면 요셉 성인이 우리한테 보여 주시는 거 무엇인가? 요셉성인이 우리한테 보여주신 거 여러 가지가 있는데, 제가 조금 더 부연 설명을 해드릴 꺼예요, 오후에.
그 중에 저한테 저도 요셉입니다. 요셉 성인이 저의 주보성인이신데, 요셉 성인의 덕 중에 제가 가장 깊은 인상을 받는 덕이 무엇이냐 하면, 요셉 성인은 말을 한 마디도 우리에게 남겨 놓으시지 않으셨지만, 하느님께서는 요셉 성인한테 우리 구세주를 맡기셨고 성모님을 맡기셨어요. 그래서 보세요. 우리 성모 마리아가 여기 찬미가에서도 뒤쪽에 보면 중간쯤 보면 보호자 성령님 찬미 받으소서 있지요? 그 바로 밑의 것 큰 소리 내서 같이 읽어 보겠습니다.
주님의 거룩하신 어머니 지극히 자애로우신 마리아를 통하여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그 다음 거 같이 읽어요.
원죄 없이 잉태되신 마리아 거룩한 잉태를 통하여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또 그 다음 거
마리아의 영광스러운 승천을 통하여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또 다음
동정녀요 어머니이신 마리아의 이름을 통하여 하느님 찬미 받으소서
우리들이 읽은 것들이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아주 중요한 믿음이에요. 우리 이거 다 믿어야 돼요. 그런데 개신교회에서는 이거 못 받아들여요. 믿지 않아요. 그리고 우리들을 흉 봐요. 우리들한테 이단이라고 그러고, 우리들 보고 마리아 믿는 사람들이라고 하고 이래요. 우리가 여기서 읽은 것들, 마리아 흠승하는 거 아니에요. 예수님이나 성부 성자 성령께 드리는 그 예배를 성모님께 드리지 않아요. 여기서 다 뭐냐면, 마리아를 통하여 찬미 받으소서. 찬미는 누가 받는 거예요? 하느님이 받는 거예요. 근데 마리아 다 이렇게 중요해요. 여기서 맨 나중에 읽은 것이 뭐냐면, 동정녀요 어머니신 마리아라고 했어요. 요셉 성인하고 결혼하셨잖아요? 그런데도 우리 교회에서는 성모님을 평생 동정이라고 그래요. 동정이 뭐예요? 우리 보통 말로 하면 뭐죠? 처녀라는 이야기예요. 그런데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성모님의 동정성, 처녀성을 믿는데 어떻게 믿어요? 평생 동정이라고 그래요. 평생을 집어넣어요. 왜 평생 동정녀라고 하면, 예수님을 잉태하셨을 때에도 처녀이고, 예수님을 분만하실 때 예수님을 막 탄생시킬 때도 처녀요, 예수님을 탄생시킨 다음에도 우리 천주교회에서는 성모님을 처녀라고 그래요. 예수님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셨을 때, 그때도 성모님은 동정녀 처녀예요. 이게 우리 천주교회에서 성모님을 평생 동정녀라고 그러는 거예요. 평생 동정이라고 이게 참 중요한 거예요. 이것도 우리가 믿는 거죠.
제가 여기서 왜 이것을 말씀드리냐 하면, 제가 앞에서 전능하신 하느님을 말씀드렸어요. 하느님 전능하시다는 것, 우리는 믿어야지 증명할 수 없어요. 하느님 전능하신 거, 우리 인간의 마리로 이거 다 이해할 수 있는 만큼 증거를 댈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끝이 없이 나오기 때문에 제가 오늘 강론 시작할 때 뭐라고 그랬어요? 창세기를 조금 언급하면서 말씀으로 모든 것을 만드셨다고 했잖아요. 우리 이거 증거 대라고 그러면 우리 증거를 댈 수가 없어요. 그것을 내가 또 이해할 수 있느냐 하면 이해할 수 없어요. 제가 아까 뭐라 그랬어요? 기도 중에 제일 좋은 기도 영광송 아니면 성호경이라고 그랬어요. 그런데 영광송에서도 그렇고, 성호경에서도 그렇고, 성부와 성자와 성령 이거 믿지 않는 친구들이 우리한테 뭐라 그랬어요? 성부 성자 성령 똑같으냐? 그러면 뭐라고 대답해요? 똑같다, 그래요? 대답해 보세요? 이거 기본적인 거예요. 달라야 돼요. 다르죠. 그러면 신자 아닌 사람들이 금방 뭐라고 그러냐 하면, 그러면 천주교회에서는 하느님이 셋이네, 성부 성자 성령, 그럼 우리는 뭐라고 대답해야 돼요? 하느님 몇 분이라고 그래야 돼요? 한 분이라고 그래야 돼요. 그러면 믿지 않는 친구들이 뭐라고 그러겠어요? 한택아, 너 성부 성자 성령 다르다고 그랬는데, 그러면 세 사람이야, 근데 왜 하나라고 그래. 우리 뭐라고 대답해야 돼요? 증명할 수 있어요? 이거 증명할 수 없어요. 대답 아주 편하잖아요. 그거 믿어야 되는 거야, 이러면 돼요. 이거 믿어야 되는 거예요. 제가 지금 주교인데도 이거 증명하라고 그러면 저 증명 못 해요. 그럼 제가 어떻게 해서 믿어요? 제가 예수님을 믿기 때문에 예수님이 공생활하면서 우리 가르쳐 주실 때 뭐라 그랬어요? 주의 기도 가르쳐 주실 때 뭐라고 그랬어요? 하늘에 계신 뭐라고 그랬어요? 우리 아버지라고 그랬어요. 그러면 예수님도 우리 아버지라고 그랬고, 예수님의 가르침을 받는 우리들도 주의 기도 염할 때, 우리 아버지라고 해요. 그러면 예수님께서는 하늘에 계신 아버지를 말씀하셨어요. 내가 예수님 믿으면 어떻게 돼요. 하늘에 계신 아버지 받아들여야 돼요? 안 받아들여야 돼요? 받아들여야 돼요. 그 다음에 돌아가실 때쯤 되어서 뭐라고 그러셨어요? 내가 가면 누구를 보내시겠다고 그랬어요? 성령을 보내시겠다고 그랬죠. 그럼 또 과연 예수님 승천하신 다음에 성령 보내셨어요. 그렇죠? 그러면 예수님을 믿는 사람은 성령도 믿어야 돼요. 그렇죠? 그러니까 성부 성자 성령을 저희들이 믿는 거예요. 그런데 제가 증명할 수 없어요. 세 분이 한 분의 하느님이시다. 그래서 우리 천주교회나 개신교회에서는 신학적으로 표현을 뭐라고 하면은 삼위라고 그래요. 위가 한글 사전에는 없어요. 크리스챤들만 이야기하는 거예요. 성부 성자 성령 삼위라 그래요. 그래서 성부는 제1위, 인간이 되신 하느님 예수 그리스도는 제2위, 성령은 제3위, 이래서 성부 성자 성령 삼위일체 그래요. 이것을 논리적으로 증명하고 과학적으로 증명하려고 하면 이거 못 해요. 이한택 주교도 못하고, 교황님도 이거 증명 못 해요. 어떻게 해야 돼요? 그냥 받아드리는 거예요. 보세요, 여기 지금 컵에 물이 있어요. 제가 목마르면 어떻게 해요? 이거 그대로 마셔야 돼요. 이거 마실 때 뭐예요, 아까 자매님이 갖다 놓으실 때,
믿고서 이거 마시는 거예요. 제가 믿지 않으면 어떻게 돼요? 그 자매님이 마시는 것을 봐야지 제가 마실 수 있어요. 그런데 집에서도 이런 게 참 많아요. 부부간에도 그렇고, 부모님하고 자식 사이에도 신뢰하니까 믿으니까 증명하지 않아도 받아들이는 거,
엄마가 저한테 우유 한 잔 주면서, 이거 너한테 좋으니까 마셔, 이럴 때 엄마를 신뢰하기 하는 아들은 질문하지 않고 그거 마셔요. 그런데 계모가 이것을 마시라고 하면 마실까 말까 해요. 좋은 것도 같고, 이거 의심도 되고, 그래서 우리 일상생활에서 믿음이라는 것이 이래요.
여기서 우리가 다시 한번 성모님이나 요셉 성인을 보면서, 우리가 신자 생활을 어떻게 해야 되겠는가 하는 것을 오늘 제가 말씀을 드리면서 신자 생활이 어렵게 생각하면 한없이 어려워요. 그런데 우리가 믿음을 갖고, 신뢰심을 갖고, 받아들이면 우리 신앙생활은 재미도 나고, 행복하고 그래요. 그러면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우리나라를 위해서라든가, 우리 집안을 위해서라든가, 우리
동네를 위해서라든가, 여러가지 어려움이 있고, 또 내가 하고 싶어도 힘든 일이 있고, 이럴 때 내가 믿는 하느님이 전능하신 하느님이시라는 것을 내가 믿을 때, 그 하느님한테 내가 완전히 기댈 수 있어야 돼요. 그러니까 가파른 낭떠러지 끝에서도 내가 하느님께 완전히 기댈 수 있어야 돼요. 이게 내가 하느님을 믿는다는 증거가 돼요. 그러면 우리가 오늘 피정을 하면서 여러 형제자매님들께 제가 초대하고 싶은 것이 뭐냐 하면 내가 입으로 고백하는 것을 내가 실생활에서 정말로 믿고 있는가? 이거 좀 생각해 보시라고 제가 초대하고 싶어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제가 지금 이렇게 초대하는 것을 잘 받아들이시면 우리 묵주기도를 한다던가, 여러 가지 기도를 함에 있어서도 큰 차이가 나요. 우리가 같은 묵주기도를 해도 어떤 분들은 단수가 중요해요. 내가 몇 단 하느냐, 하루에 몇 단 하느냐, 이게 참 중요해요. 그래서 단수가 중요한 분들은 내가 당신 위해서 5단 할게, 당신 위해서 100단 바칠게, 당신을 위해서 200단 바칠게 이래요. 200단 바치는 것이 5단 바치는 것보다 더 가치가 큰 거예요. 물론 그럴 수 있어요. 그런데 파티마 성모님께서는 세 어린이들한테 묵주기도 몇 단 바치라고 그러셨어요? 매일 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성모님께서 몇 단 받치라고 안 그러셨어요. 그러면 5단 바치는 거, 성모님 말씀 안들은 거예요?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뭐라고 그러셨냐 하면, 열심히 바치라고 그러셨어요. 열심히. 이거 참 중요한 단어예요. 열심히 바쳐라. 여러 형제자매님들 묵주기도 꼭 100단
바쳐야 됩니까? 이것도 대답 안 하시네. 꼭 100단 바쳐야 돼요? 아니에요. 100단 받칠 수도 있어요. 그런데 꼭 100단 받쳐야 되는 거 아니에요. 그럼 꼭 5단 바쳐야 돼요? 그것도 아니에요. 그럼 얼마만큼 바쳐야 돼요? 그렇죠, 내가 할 수 있는 것만큼 바치는데, 어떻게 바쳐야 돼요? 열심히 바쳐야 돼요. 보세요. 아빠가 엄마 쫓아다니면서 I love you, I love you, 이렇게 그냥 부엌에도 쫓아가고, 화장실도 쫓아가고, 이러면서 계속 I love you, I love you, 이러면 좋아요? 행복해요? 끔찍하지요. 그런데 우리 한국의 아빠들은 많은 경우에 옛날에는 사랑이라는 표현 쓰지도 않고서도 내 사랑하는 집사람을 위해서 참 좋은 것도 많이 해주고,
좋은 말씀을 갖다 많이 해주고, 사랑이라는 단어를 안 쓰고서도, 어느 쪽이 더 중요한 거예요? I love you를 갖다 한없이 하는 것이 진짜 사랑하는 거예요? 그렇지 않으면 사랑한다는 단어를 안 쓰고도 실제로 상대방이 사랑을 느끼게끔 해주는 것이 좋은 거예요? 어느 쪽이 더 좋은 거예요? 전자예요? 후자예요? 후자예요. 맞아요. 그러면 우리가 성모경 묵주기도를 할 때 단수하고는 상관이 없이 내가 열심히 하는 게 중요해요. 하루에 5단 바칠 수도 있어요. 근데 실제로 어떤 분은 5단도 못 바칠 수도 있어요.
그래도 열심히만 바치면 돼요. 이것을 잊지 마셔야 돼요.
그러면 다시 성월로 돌아와서 요셉 성인 제가 아까 말씀하신 게 하나도 없다고 했어요. 맞아요. 우리 복음을, 4복음을 다 읽어도 요셉 성인이 말씀하신 것은 한 군데도 안 나와요. 그런데 요셉 성인은 어떤 분이셨어요? 하느님이 예수님하고 예수님의 어머니를 맡긴 분이에요. 요셉 성인은 그 임무를 완수하신 분이에요. 우리 엄격하게 얘기해서 성모님, 마리아를 우리 현대 말로 할 것 같으면 어떤 분이에요? 마리아가 가브리엘 천사한테 당신이 임신할 겁니다. 이럴 때 마리아가 무엇이라고 질문했어요? 나는 남자를 알지 못하는데, 그 일이 어떻게 해서 일어날 겁니까? 이것이 아까 우리가 여기 찬미가에서 읽은 것처럼 동정녀요 어머니이신 마리아 여기에 덧붙여서 평생 동정 이라고 했어요. 그러면 평생 동정이라는 것, 요새 우리 시쳇말로 할 것 같으면, 사실은 마리아는 미혼모였었어요. 그렇죠? 실제로 미혼모였었어요. 미혼모였는데 예수님 살아 계셨을 때, 그 시대에 동네 사람들이 마리아를 미혼모라고 강조했습니까? 이럴 때 복음에서 힌트가 나와요. 미혼모라고 여겼어요? 동네 사람들이. 아니에요. 그리고 그 당시에 미혼모라는 것이 발각되면 어떻게 되죠? 돌에 맞아 죽었어야 돼요. 그런데 마리아가 돌에 맞아 죽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복음에서 그게 나와요. 예수님을 얘기할 때 뭐라고 하냐면, 저 사람 마리아의 아들 아니야. 목수의 아들 아냐. 그리고 우리가 그 형제들도 알잖아, 이렇게 나와요. 그러니까 이것은 어떻게 해서 이렇게 됐어요. 요셉 성인이 마리아를 정말 동네 사람들이 볼 때, 완전히 내 아내라고 요셉의 부인이라고 인정을 받을 만큼 요셉 성인이 그렇게 행동을 했어요. 그러니까 하느님께서는 예수님의 어머님을 안전하게 하는 것을 요셉 성인한테 부탁하신 거예요. 그리고 요셉 성인은 그 임무를 해내신 거예요. 마리아가 임신한 것을
봤을 때, 요셉하고는 무슨 관계였었죠? 그런데 요셉이 마리아가 홀몸이 아니라는 것을 봤을 때, 어떻게 했어요? 마태오복음에
나오죠. 엄청 고생을 했어요. 내가 이 여자를 받아들일까, 이 여자하고 살까, 말까, 이것을 고발을 할까, 말까, 이러다가 무슨 결심을 내렸죠? 몰래 파혼을 하고 자기가 그냥 사라지려고 했어요. 근데 어떻게 되었죠? 천사가 나타나셔서 이 여인을 받아들여라, 지금 이 여인한테 일어나는 것은 인간의 일이 아니다. 요셉 성인은 그때 그것을 받아들였어요.
그래서 그 순간부터 마리아를 자기 친 아내로 느낄 수 있게끔 해주신 거예요. 또 보세요. 마리아한테는 미혼모라는 이야기를 안 들었고 그런데 저 여자 나쁜 여자야 라고 하는 소리 전혀 안 들었어요. 동네 사람들한테서. 그리고 이거 비슷하게 예수님은 어떻게 됐어요? 애비 없는 호로 자식 소리를 안 들었어요. 예수님이 공생활 시작하면서 멋진 강론을 하셨어요. 그러니까 동네 사람들이 어, 목수의 아들인데, 저런 거 어디서 배웠지, 언제 배웠지, 이러면서 목수의 아들이라고 했어요. 그러니까 요셉 성인은 예수님을 친 자식과 똑 같게 동네 사람들이 볼 때 전혀 의심할 여지없이 친자식 아들로 키워 주신 거예요. 그러니까 예수님이 서른 살 때까지 동네 사람들한테서 애비 없는 호로 자식이라는 소리를 안 듣게끔 하신 것이 요셉 성인이에요. 그러면 요셉 성인이 우리한테 책을 남겨 놨다던가, 강론 집을 남겨 놨다던가, 지혜가 넘치는 말을 남겨 냈다던가, 하는 것 이런 것은 하나도 없어요. 근데 요셉성인이 한 것은 뭐냐 하면, 마리아하고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한테서든지 오해 받지 않고, 예수님을 참 인간으로 키워 주실 수 있도록 해주신 거, 성모님도 그 역할을 하셨지만, 성모님은 진짜 예수님의 육신의 어머니도 되시고, 이러니까 요셉 성인보다 더 가깝기도 하지요. 그런데 일차적으로는 요셉성인이 딱 버텨 줬기 때문에 성모님이나 예수님이 어떠한 사람으로부터도 오해를 받지 않게 해주신 그 역할을 100% 하신 거예요. 그리고 우리가 복음을 읽을 때, 우리의 묵주기도 기쁨의 신비 5단에서 무엇을 묵상하지요? 예수님 잃어버렸다가 성전에서 찾는 거, 이때 세 분이서 대화하는 광경이 나와요. 복음에서는. 그렇죠? 어떻게 됐어요? 성모님하고 요셉성인하고 하룻길을 가서 보니까, 예수님이 성모님하고도 안 오셨고, 요셉 성인하고도 안 오셨어요. 그러니까 두 분이 깜짝 놀라 가지고 예수님 찾기 시작을 했죠. 하룻길을 갔는데 예수님 찾는 거 며칠 걸렸어요? 하룻길 간 것을 되돌아올 때는 사흘이 걸렸어요. 이건 뭐냐면
두 분이서 다리 밑에도 보고 지나가는 사람들마다 다 붙들고 물어보고, 이렇게 해서 왔던 길을 되돌아서 예루살렘 성전까지 가서, 거기서 예수님을 만나잖아요. 이때 예수님 몇 살이셨죠? 12살. 12살이었는데 복음에서는 그 사건 이후에는 세 분 생활에 대해서 아무것도 없어요. 12살 때 사건 외에는. 그럼 우리 묵주기도도 기쁨의 신비에서는 12살 때 사건까지만 묵상해요. 그리고 그 다음에는 없어요.
그런데 이 다음을 루카복음에서 볼 거 같으면, 짧게 힌트가 보여요, 예수님이 어머님을 따라서 나자렛으로 내려갔는데, 날로 사람과 하느님의 사랑을 받으면서 자랐다. 이것이 뭐냐면 12살 이후에 계속 그렇게 자랐다, 이렇게 되는 거예요.
그러면 이것이 요셉 성인에 관해서는 어떻게 됩니까? 요셉 성인은 그때 12살 때 예수님이 성전에서 내가 아버지 집에 있는 것을 왜 모르고 찾으셨습니까? 이렇게 예수님이, 이 꼬마 예수님이, 두 분한테 대답을 했지요. 이때 요셉 성인은 무엇을 느끼셨겠어요? 우리 인간적으로 이야기해서는 늘 목수간에서 아버지 아버지하고 쫓아다녔는데, 이때 성전에서는 내가 아버지 집에 있어야 하는데 왜 날 찾으셨습니까? 이럴 때 요셉 성인은 어떠셨겠어요? 인간적으로... 나는 뭐야? 아마 좀 섭섭하실 수도 있어요. 인간적으로는. 그런데 동시에 이건 제가 완전 이한택 주교가 해석한 거야, 제가 볼 때는 아마 요셉성인이 아, 이제 내가 할 일은 끝났구나. 아마 이렇게 느끼셨을 것 같아요. 그럼 복음사가들도 그것을 받아들이신 것 같아요. 그래서 12살 때 사건 이후에는 요셉성인 그야말로 무대에서 사라져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 자기가 어떠한 위치에 있는 것을 의식하고 계시고, 그대로 클 수가 있다는 것을 아셨고, 성모님도 동네 사람들한테서 안전하게 인정받고 있고, 그러니까 요셉 성인은 내가 할 일은 이제 끝났다, 이렇게
생각하실 수가 있지요.
복음사가들은 그렇게 기록했어요. 그 다음서부터는 요셉 성인 나타나지 않으셨어요. 그럼 제가 오전에 마무리 짓고 싶은 것이
뭐냐면, 요셉 성인께서 말씀 한 마디도 안 하셨지만,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와 메시아의 어머니를 보호하고 안전하게 이 두 분이 당신의 사명을 하실 수 있도록 인간적으로 보호를 해주신 분이 요셉성인이라는 걸, 이것을 볼 때 우리들도 각자가 엄마들도 계시고, 아버지들도 계시고, 또 가정에서 뿐만 아니라 사회에서도 각자의 위치에 있어서 할 일이 있어요. 하느님께서 나한테 어떤 분은 선생님이고, 어떤 분은 공무원이고, 또 어떤 분은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하시고, 이러는데 각자가 있는 자리에서 내가 하늘나라를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하느님을 위해서 할 수 있는 것, 그것이 있어요. 그것에 대해서 보람을 느끼고 그것을 성실하게 하느님을 위해서 일을 할 것 같으면, 우리들 다 성인이 될 수 있다는 거, 다시 한번 우리들 파티마 세계 사도직 세 어린이들 같으면서 제가 말씀드리는 거 생각해 보세요. 두 성인은 10살 이내에 성인이 되셨어요. 셋째 아이가 누구죠? 루치아 수녀님, 루치아 수녀님은 몇 살까지 살으셨죠? 아흔여섯. 그럼 우리 가운데 아흔 여섯 되신 분 손 들어 보세요? 안 계시죠? 그럼 열 살서부터 아흔 살 사이에 다들 계신 거예요. 그러면 두 성인처럼 될 수 있고, 또 루치아 수녀님처럼 나이 먹어서도 성인 될 수 있어요.
그런데 이 세 성인이 다른 성인들처럼 화려하게 뭐 한 것이 없어요. 그냥 파티마 성모님 만나서 묵주기도 열심히 하고, 매일 생활을 희생으로 열심히 바쳤어요. 중요한 것은 열심히 열심히 매일매일 바쳤어요. 여러 형제자매님들 이거 못 하셔요?
못 하신다고 그러면 새빨간 거짓말이에요. 그러니까 우리는 파티마의 세 어린이들 만큼 할 수가 있어요. 우리들이 자신감 갖고, 이 세 분의 모범을 따라서 우리들이 나를 위해서, 세계 평화를 위해서, 우리 기도 열심히 해야 됩니다.
우리 삼종경으로 마치겠습니다.//
(1강의 전문정리, 1강의 전문을 들어보세요.)
♦1강의 전문 녹음
♦삼종기도
♦점심 뷔페식: 12시
♦오후 강의: 오후1시
♦2강의: “성 요셉성월과 나자렛의 숨은 생활”
오전에 제가 요셉 성인에 대해서 조금 언급했습니다.
오후에도 계속해서 나자렛에서 세 분이 사신 것 하고 연결해서 오늘 우리들도 신앙생활을 어떻게 하는 것인지, 보람이 있는 건지, 생각을 해 보자고 초대 합니다.
오전에 특별히 제가 우리가 성경을 읽을 것 같으면, 요셉 성인님께서 말씀하신 것, 한마디도 복음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이분이 우리한테 보여 주신 모범, 이것은 말을 많이 하는 것 못지않게 오늘 날에도 많은 분들이 글도 많이 쓰고, 신부님들도 강론 집이라든가, 이런 거 많이 내셔요. 근데 중요한 것은 우리의 크리스천 생활은 삶이 더 중요합니다.
얼마만큼 기록을 남기느냐 하는 거 보다. 사실 우리가 예수님 복음을 생각할 때도 예수님 사실 책 한 권도 안 쓰셨어요. 예수님이 쓰신 거, 우리한테 전달하는 거 하나도 없어요. 책만 안 쓰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한테 편지 한 장도 남겨 놓으신 거 없어요, 예수님.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우리한테 뭐라고 그러시냐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그러셨어요. 우리 이렇게 살아오면서 질문 많이 해요. 내가 어떻게 살까? 내가 무엇을 할까? 무엇을 배워야 하나? 이런 질문들이 상당히 흔한 질문들이고 중요한 질문들이에요.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어렵게 우리한테 설명하시지 않았어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가끔 가다가 우리 성직자들이 강론할 때도 너무 어려운 말로 해서 듣는 분들이 어떤 때는 졸리기만 하고 와 닿는 것이 별로 없어요. 여기에 반해서 예수님께서는 여기저기서 가르치신 거 햇수로다 3년인데, 달수로 따지면 3년이 안 됩니다.
이런 짧은 기간 동안 강론도 하시고, 보여 주시고 이런 거, 언뜻 보면 대수롭지 않아요. 그런데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거, 우리한테 전달되는 것이라 던지, 예수님께서 보여 주신 거, 이것은 우리들이 보는 그 순간에 감동되는 것들이 있지만, 대부분은 우리들이 두루두루 생각을 하고, 특별히 기도를 하면서 생각할 때, 2000년이 지나간 오늘날에도 우리한테는 깊은 감동을 주실 뿐만 아니라 행복감도 느끼고, 우리들이 아주 마음 속 깊은 데서부터 평화를 느낄 수가 있어요. 이게 예수님께서 우리한테 보여 주신 거예요. 예수님은 우리한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라고 그러신 것이 뭐냐면 인생길을 보여 주셨고. 우리들이 꼭 알아야 할 진리를 우리들한테 말씀해 주셨고, 그리고 우리가 진정으로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하는 것을 당신 친히 보여 주셨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글로다 우리한테 뭘 남기신 것보다는 당신이 이 세상에 내려오셔서 우리 가운데 인간으로 사시면서 이렇게 살아야 한다는 것을 당신 생활 자체로 보여 주셨고, 심지어는 어떻게 죽는 것까지도 가르쳐 주시고, 보여 주셨고, 그런 다음에 우리가 같이 살고 예수님처럼 죽을 것 같으면, 우리들도 예수님처럼 부활한다는 거, 이것까지도 우리한테 보여 주셨어요. 예수님이 다른 인간의 스승들하고 달라요. 우리들이 예수님 말고도 우리 인간의 스승들이 계셔요. 공자님이라든가, 부처님이라든가, 소크라테스라든가, 플라톤이라든가, 이런 분들 다 훌륭한 분들이고 인류의 스승들이셔요. 그런데 이분들하고 예수님하고 차이가 나는 것이 무엇인가 딱 한 가지 있어요. 그게 뭐냐면, 예수님께서는 당신이 가르쳐 주신 거, 말씀하신 거,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당신 스스로 실천하셨어요. 우리한테 당신 가르쳐 주신 그대로 행하셨어요. 그러니까 사랑하는 거보다 더 큰 것이 없다고 그러셨어요. 그런데 그 사랑이
뭔가, 사랑하는 사람위해서 모든 거 내놓고 바치는 거였어요. 죽는 것까지 예수님 그렇게 하셨어요. 그런데 다른 인간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처럼 보여 주시지 않았어요. 가르쳐 주시기는 아주 심한 건 가르쳐 주셨어요. 공자님이나 부처님이나 이런 분들 말씀 다 훌륭해요. 그런데 예수님처럼 실천적으로 우리한테 보여 주신 스승은 없어요. 그러니까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신 거 하나도 빼놓지 않고 당신 스스로 보여 주셨어요. 그러니까 예수님은 다른 스승들하고 다르게 뭐라고 그러셨어요? 나를 따라오라고 하셔요. 나처럼 살라고 그랬어요. 나처럼 하면 나처럼 영원한 생명 얻을 수 있다고, 영원한 생명까지도 약속을 하셨어요. 예, 그런데 우리 인간의 지도자들 중에 예수님 말고 다른 분들이 나는 길이요 생명이다 이렇게 말씀 하신 지도자가 없어요. 공자님도 그렇게 말씀 안 하셨고, 부처님도 그렇게 말씀 안 하셨어요. 예수님만이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하셨어요. 이렇기 때문에 제가 오전에 예수님 믿을 것 같으면 내 머리로 이해하지 못하는 것까지도 내가 받아들일 수 있어요.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삼위일체의 도리, 이거 인간의 머리로 이야기 힘들어요. 힘든 게 아니라 불가능해요. 그런데
예수님을 믿을 것 같으면 받아들일 수 있어요. 또 보세요. 예수님 돌아가시기 전에 나는 하늘에서 내려온 빵이다. 누구든지 이 빵을 먹으면 영원히 살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고, 그리고 이 빵을 먹는 사람은 이것을 믿는 사람은 죽더라도 살아날 것이고, 살아 있는 사람은 죽지 않을 것이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그런데 그 빵이 내 살이다, 말씀하셨어요. 그러니까 예수님 가까이 따르는 제자들 중에 아이고 이거 끔찍하다 어떻게 자기 살을 우리한테 먹으라고 주는가? 예수님이 그러셨어요. 정말로 받아들이기 힘드냐? 어려운 사람은 그럼 갈 길을 가라. 그래서 실제로 많은 제자들이 떨어져 나갔어요. 12 제자들한테 예수님 질문하셨어요. 당신들은 안 가냐고, 그러니까 베드로 사도가 대답했지요. 영원한 말씀을 가지신 주님을 곁을 떠나서 우리가 누구한테 가겠습니까?
우리들 주님을 따르겠습니다.
오늘날도 우리들이 좀 있으면 우리 미사 드리면서 여러 형제자매님들 줄 서서 나오면서 “그리스도의 몸” 하면 “아멘” 하고서
받아 모실 거예요. 여러 형제자매님 들께서 두 손으로 받아 모시는 그분, 훅 불면 날아가는 이런 아주 가벼운 밀떡이에요. 이거
정말로 예수님의 살이라고 믿습니까? 우리 천주교에서는 이거 믿어야 돼요. 우리 감실에도 영성체하고 남은 성체를 모시고 있어요. 이거 과학적으로 현미경으로 볼 것 같으면 살 아니에요. 예수님께서 이것은 내 살이다. 먹어라. 주신 거예요. 축성된 포도주, 내 피다. 이거 믿어야 돼요. 그럼 믿는 거,
우리 일상생활에서도 믿음이라는 것이 참 중요해요. 믿음은 어떤 때는 신뢰라고 하지요. 부부간에도 신뢰심이 없을 것 같으면
아주 불행합니다. 바깥양반이 들어올 때마다 아래위로 훑어보면서 의심을 하고 이럴 것 같으면 행복할 수가 없어요.
또 사랑하는 아내가 어디 갔다 올 때, 누구 만나고 오느냐? 어디 갔다 오느냐? 이렇게 의심을 하면서 질문하고 이럴 때 행복할 수가 없어요.
제가 미국에서 공부할 때, 그때가 카터Carter 대통령이 선거 운동을 하려고 대통령 되려고 했어요. 기자들이 우리나라 기자들이나 미국 기자들이 끈질겨요. 어떤 때는 곤란한 질문들을 많이 해요. 카터 대통령 후보자한테 당신 마음속으로도 정말로 당신 깨끗하냐? 마음속으로 다른 여자 생각한 적이 없느냐? 이러니까, 그런 적이 없을 수 없었다. 이러니까 금방 부인한테 가가주고 우리들이 당신 남편한테 들었는데, 이런 이런 생각한 적이 있다고 하더라, 당신 어떻게 생각해요? 그러면 어떤 부인 같으면 그 사람이 그랬냐고 화를 막내고 전화 걸고 야단났을 거예요. 그런데 카터 후보자의 부인이 뭐라고 그랬냐 하면, 내 남편이 어떻게 대답했는지 그것은 나하고 상관없다. 확실한 것은 지미Jimmy는 내 남편이다. 이렇게 대답을 했어요. 참 기가 막힌 대답이지요. 이게 신뢰예요. 내 남편이 기자들한테 뭐라고 대답한 거, 이것은 나하고 상관이 없어요. 내가 그 남자를 사랑하고 그 남자가 나를 사랑한다는 거, 나는 믿어요. 이러면 중간에 누가 껴들어갈 수 있어요? 아무도 못 껴들어가요. 우리가 정말로 행복할려면 우리 식구들 간에 이런 신뢰가 있어야 돼요. 부부간의 이런 신뢰가 있어야 돼요.
그런데 이 믿음이라는 것은 우리 머리를 껑충 뛰어넘어가는 거예요. 그러니까 꼭 내가 이치를 따져야만 되고, 이치에 맞기만 해야 되고, 이러는 것이 아니라, 어떤 때는 우리 이치를 넘어가는 거예요. 이것을 초월이라고 그러죠. 그러니까 사랑하는 데에는 언제나 초월적인 것이 있어요. 말로 표현할 수 없고 증명할 수 없어요. 그냥 받아들여야 돼요. 그런데 우리 신앙생활이 그래요. 그래서 신앙생활은 궁극적으로 상당히 주관적인 거예요. 내가 하느님을 믿는 거, 믿는다는 것 말로 하는 것 이상의 증명할 수 없어요. 내가 하느님 믿는 거. 그런데 동시에 내가 하느님을 믿을 것 같으면 기적이 일어나요. 그런데 기적은 옛날에만 일어나는 것이 아니라 지금도 기적이 일어나요. 사실 저 개인적으로도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앉아서도 여러 형제자매님들 하고 대화를 하는 있는 거, 저한테도 기적이에요. 왜냐하면 지금 어느 병원 어디선가 어느 환자가 드러누워서 기도하고 있을 꺼 예요. 주님, 내가 죽기 전에 한 번만 일어나 앉아서 기도하고 죽을 수 있게 해주십시오. 이거 간절한 기도 일 수 있어요. 그럼 그 사람하고 비교해서는 저는 지금 이 평화성당에 와서 이렇게 앉아서 여러 형제자매님들 만나고 강의하는 거, 이거 기적 아닙니까? 또 어떤 사람은 지금 간절히 기도하면서 주님, 내가 죽기 전에 꼭 눈 오는 거 한번 보고 죽었으면 좋겠어요. 근데 저는 안경은 썼어도 눈 오는 것도 보고, 꽃도 보고, 별별 거 다 봐요. 저는 하늘도 보고 이거 기적 아닙니까? 이러면 제가 이렇게 오감을 갖고 있고, 듣고 있고, 맛있는 거 먹을 수 있고, 움직일 수 있고, 제가 지금도 지팡이 짚지 않고, 아까 엘리베이터가 만원이라 걸어서 올라갔어요. 이거 기적이에요. 기적이에요. 저한테는. 근데 어떤 사람이 그까짓 것 가지고 무슨 기적이냐고? 맞아요. 그 사람한테는. 그런데 저한테는 기적이에요. 제 친구들 제가 초등학교 친구들도 만나요. 1년에 한 두어 번. 그럼 만날 때 뭐라 그러는 줄 알아요? 한택아, 내가 이쪽 귀가 안
들리니까 이리 와서 앉아서 얘기 좀 해. 또 어떤 사람은 한택아 너무 멀어, 좀 이리 와 가까이 앉으라고 그래요. 저는 안경을 썼어도 그쪽에 앉은 친구들 다 보고, 제가 양쪽 귀로 다 들어요. 기적이죠. 이거 저한테는... 여러 형제자매님들한테는 아무 것도 아닐 수 있어요. 그런데 저한테는 기적이에요.
그럼 다시 한번 우리 나자렛으로 돌아갑시다.
요셉 성인이 당신이 할 일을 분명하게 알았고, 그것이 마리아하고 예수님을, 예수님이 어른 될 때까지 내가 보살피는 거 하고,
이 예수의 어머니를 다른 사람들한테 오해 받지 않게 보호하면서 같이 지내는 거, 요셉 성인이 그거 하신 다음에 동네 사람들 다 마리아를 남편 있는 사람으로 알고, 예수의 친 어머니라는 것을 알고, 애비 없는 호로 자식이 아니라는 거, 확실하게 인식시킨 다음에 요셉 성인은 내가 할 일 다 했다 하고 가셨어요.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도 지금 이 자리에 앉아 계신 분들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저는 나자렛 생활의 요셉 성인이나 성모님하고
비슷하신 분들이라고 저는 믿어요. 지금 어떤 분은 어떻게 내가 이러지만, 제가 볼 때는 여기 앉아 계신 분들 다 위대하신 분들이에요. 그 점에 있어서. 왜냐하면 성모님 닮았고, 요셉 성인 닮으신 분들이에요. 여기 앉아 계신 분들 여러 형제자매님들 다 한 분도 빼놓지 않고 아드님 따님들 다 잘 키우셨잖아요. 그리고 지금 다 독립시키셨지요. 그렇죠? 네. 그럼 우선 뭐냐면 대한민국
애국자들이셔요. 왜냐하면 대한민국의 훌륭한 일꾼들을 이 세상에 태어나게 했고 잘 키우셨잖아요. 그리고 다 독립시키셨잖아요. 이거 애국자들이에요. 요새 지금 우리나라 문제 중에 문제 하나는 인구절벽이에요.
요새 아이들보다 할아버지들이 자꾸자꾸 더 많이 생기는데, 아이들은 거기 맞춰서 태어나질 않아요. 그러니까 우리나라는 할아버지들 생기는 거보다 아이들 생기는 것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어요. 그래서 의정부 파주 이 근방만 하더라도 초등학교 문 닫는 데가 무지하게 많아요. 초등학교 문 닫으면, 그 다음에 어디 문 닫을 거예요? 중학교 고등학교 문 닫아요. 머지않아서 대학교도 지방 대학교들 텅텅 비게 되었어요. 지금 대학 나왔다 할 것 같으면. 이거 인구절벽이에요. 그런데 여러 형제자매님들은 다 최소한도 한 명은 키우셨잖아요. 그런데 두 명 키우신 분들 더 큰 애국자들이세요. 그런데 지금 세 명 네 명 키우신 분들은 드물죠.
언젠가 제가 한번 뉴스에서 보고 깜짝 놀랐어요. 우리 시대에 11명을 키우는 엄마 아버지가 있어요. 부자가 아닌데도. 그러니까 아버지가 애들하고 공원에 가면 꼭 학생들 데리고 온 선생님 같이 운동을 한다고 그래요. 그럼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그 11 남매를 키우는 것은 아니지만 다들 아이들 키워서 우리나라 일꾼으로 내보내셨으면 애국자하신 거지요. 그리고 지금 이렇게 여기 앉아 계시는 거, 제가 조금 전에 기적이라고 한 것처럼 여러 형제자매님들은 어느 면에서 어떤 분들은 저보다 더 고생하셨을 거예요. 그분들은 더 큰 기적을 체험하셨어요. 근데 기적이 아니라고 그러니까 기적이 아니에요. 저는 지금 매 순간마다 기적이라고 생각하면서 하루를 살아요. 그러니까 저는 저녁에 하느님께 감사할 것이 수두룩해요. 잠자리에 들기 전에. 그러면서도 다음 날
아침에 일어날 때, 또 하느님 이 새날을 주시니까 감사하고, 그 날 또 요셉 성인 닮으려고 애를 써요. 제가...
그럼 나자렛에서 성모님하고 요셉성인하고 지내신 거 상당히 잔잔하게 살으셨는데, 잊지 마세요. 예수님께서 서른 살 될 때까지 그렇게 사셨어요. 오늘날의 엄마 아버지들하고 비슷하게, 왜냐하면 숨은 생활을 볼 것 같으면, 우리가 천주교에서는 숨은 생활이라고 그러는데, 이 숨은 생활이 복음에 기록이 많지가 않아요. 그게 왜 그래요? 여러 형제자매님들하고 너무 비슷하기 때문에 그래요. 왜냐하면 그것을 쓸 것 같으면, 읽는 사람들이 지루해져요. 이거 누구든지 다 하는 건데, 이것을 왜 썼나? 하지요. 이것을 뒤집어서 생각할 때는 여러 형제자매님들께서 지금 성실하게 하루하루를 사는 것은 성가정에서 사셨던 것과 똑 같은 거예요.
동시에 우리들이 이왕이면 더 성가정을 의식적으로 닮으려면, 우리들이 매일매일 기도하면서 의식을 해야 돼요. 오늘 하루 내가 삶을 성모님처럼 살고, 요셉 성인처럼 살아야 되고, 내가 의식적으로 기도를 할 것 같으면, 이게 내가 기도를 안 하고서 사는 것 하고, 영 달라집니다. 이게 파티마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말씀하신 거예요. 제가 볼 때 파티마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가르쳐 주신 거, 아주 중요한 것 하나가 뭐냐 하면, 하루하루 우리들이 사는 것이 상당히 소중한 건데 이것을 의식을 해야 돼요. 그러니까 성모님께서 묵주기도를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고, 동시에 너희들이 매일매일 겪는 거 희생으로 바쳐라. 그럼 희생으로 바친다는 것이 뭐냐면, 내가 의식화 되는 거예요. 내가 오늘 예를 들면, 제 경우 같으면, 오늘 제가 평화성당에 와서 이 강론 하는 거, 이거 다른 신부님들이 볼 때는 별거 큰 일이 아니에요.
그런데 제가 이것을 제가 여기 오시는 형제자매님들을 위해서 봉사하고, 여기 오시는 형제자매님들한테 저 나름대로 하느님
나라에 대해서 말씀을 나누고 이러는 것을 내가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말씀하신 것처럼 다른 사람들이 볼 때는 별 것 아니지만, 나는 이것을 하느님께 선물로 드리겠습니다, 이럴 때 그마만한 가치가 있는 거예요. 그러니까 우리들이 미사를 드릴 때도 그렇고, 어떤 기도를 드릴 때든지, 지향을 명확하게 하고, 드리는 기도하고, 그냥 우물우물 기도하는 거 하고, 달라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이 꼬마들한테 용돈을 주실 때도 ‘이 돈 가지고 너 이렇게 이렇게 하면 좋겠다. 요새 네가 필요한 게 책을 사고 싶었지? 이거 가지고 책을 사.’ 이렇게 주시는 돈 만 원하고, 그냥 ‘너 이거 가지고 네 마음대로 해.’ 하고 주는 거 하고는 달라요. 지향을
갖고서 돈을 주면은 큰 선물이에요. 내 지향을 넣지 않고 그냥 주는 것은 먹고 떨어져라 하는 거예요. 우리가 기도드리는 것도
내가 지향을 말하고, 기도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내가 오늘 하루를 지내는 모든 행동, 그래서 우리가 우리 교회에서 항상 우리들한테 상기시켜 주는 것이 무엇입니까? 생각과 말과 행동이예요. 내가 오늘 하루 생각하는 모든 것도 하느님께 바치고, 내가 말하는 모든 것도 하느님께 바치고, 내가 하는 모든 행동들을 하느님께 바친다는 할 것 같으면, 이거 엄청난 선물이 되는 거예요.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그러셨어요. 너희들이 바치는 희생, 예수님께서 참 기뻐하신다. 그리고서 우리들 성모님께 바치는 기도문에서도 이것도 제가 상당히 즐겨 바치는 기도, 좀 있다가 영성체 후에 바치는 기도인데, 성모님께 바치는 봉헌문 말이죠,
다시 한번 보겠어요.
쎌기도 책에 32페이지 티 없으신 마리아 성심께 바치는 봉헌 기도예요. 32페이지 맨 밑에 줄 보면,
어머니의 사랑 넘친 마음을 담게 되고, 주님을 닮은 자 되어 언제나 어머니의 이끄심으로 어머니와 함께 어머니를 위하여 기도와 희생과 선행을 드리고자 하오니, 오! 어머니 마리아님. 이 모든 것이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에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아멘.
얼마나 좋아요. 그러니까 내가 드리는 것이 언뜻 보기에는 아무것도 아닌 것 같지만, 이것을 바쳐 드릴 때, 예수님의 마음에 기쁨이 되게 하옵소서. 그러니까 내가 고통을 받는 거든지, 수고를 하는 거, 끙끙대고 아무 지향을 바라지 않으면 그대로 날라가 버려요. 그런데 이 기도를 하면은 예수님 마음에 드는 선물이 돼요. 그러면 내가 하는 모든 행동, 내가 드리는 모든 기도, 묵주기도도 마찬가지예요. 오전에 제가 그랬잖아요. 성모님께서 몇 단 하라고 그러셨느냐? 성모님 몇 단 하라고 안 그러셨어요. 그런데 열심히 하라고 그러셨어요. 그러고서 발현하실 때마다 열심히 하라고 그러시면서 보탠 게 있으면, 날마다 하라고 그러셨어요. 날마다 묵주기도 날마다 열심히 하고 너희들이 겪는 희생 바치라고 그러셨어요. 그러면 내가 5단을 바치든지, 100단을 바치든지, 상관없이 열심히 바치고 매일 바쳐야 돼요. 그리고 플러스 내 희생을 바치는 거예요. 여러분 꼬마들이 바치는 희생이 뭐가 있겠어요?
엄마가 양떼 몰고 가라고 그러면, 양떼 몰고 가고, 저녁이 되면 양떼 몰고 들어오는 거, 근데 이 꼬마들이 세 어린이들이 희생 바치라는 것을 성모님의 말씀을 들은 다음에는 더 할 수 있는 게 뭐냐면, 엄마가 싸 주신 도시락을 자기들보다 더 가난한 애들한테 나눠 줬어요. 그리고 양떼를 지킬 때 추울 때는 양지에 앉고 싶었는데, 일부러 음지로 들어가서 이런 희생을 바쳤어요. 이런 거 우리들이 볼 때 뭐 그거 그렇게 대단해? 이러는데, 성모님께서는 세 어린이들한테 그것 예수님께서 기쁘게 받아들이셨다고 그러셨어요. 그럼 우리 지금 여기서 기도하면서 예수님의 거룩한 마음에 기쁨이 되게 하소서, 우리들이 뭐를 하든지...
미국에서 인공위성을 태양계와 밖으로 날린 게 있어요. 지금도 그게 가고 있어요. 그것이 아직 태양계 밖에를 가지 못하고 있어요. 앞으로 5년 동안 가는데도. 그런데 과학자들이 그 인공위성에서 그 먼데서 지구를 찍어서 사진을 보내라고 명령을 내렸어요. 그런데 제가 유튜브에서 봤는데, 좁쌀보다도 더 조금만 점이에요. 태양계 저 먼데서 지구를 찍었는데, 그것이 좁쌀보다도 더 조그매요. 그럼 생각을 해 보세요. 우리들이 여기 지구위에서 바치는 큰 희생이나 작은 희생이나 무슨 차이가 있어요, 좁쌀 위에. 근데 하느님은 그 좁쌀 위에서 바치는 조그만 희생도 기쁘게 받아들이신다고 그랬어요. 우리들이 하느님 앞에서 얼마나 겸손해야 되는지, 우리 생각을 해 봐요. 그럼 요셉 성인이나 성모님께서는 이거 바치신 거예요. 우리들이 성모님 닮고 요셉 성인 닮는 거 우리들한테 달려 있어요. 우리들은 요셉 성인만큼 할 수 있고, 성모님만큼 할 수 있어요. 그런데 차이점이 뭐냐 하면, 그분들은 전적으로 바쳤어요. 우리들은 바칠 때마다 이거 괜찮은가, 이거 진짜 그래, 이한택 주교님이 말하는 것이 맞나, 틀리나, 이러면서 할까, 말까, 하면 그리고 한 며칠 한 다음에는 대단한 거 바친 것처럼 이야기를 해요. 그런데 예수님은 아무 대답도 안 해, 이러죠.
보세요. 해마다 피정을 할 때마다 결심을 크게 하죠. 근데 그 결심이 얼마나 오래가요. 아마 열심히 사는 분들이 불과 몇 달 갈 거예요. 그런데 대부분은 한 달도 안 가요. 그러면서 결심을 얼마나 크게 해요. 지금부터 이번 피정 때는 십자가의 길 매일 두 번씩 하겠다고 그래요. 아마 며칠 동안은 두 번 억지로 할 거예요. 밥도 안 먹어 가면서. 근데 그 다음에는 어떻게 되는지, 감기가 걸렸어. 그때는 한 번도 안 했어요. 감기 다 나은 다음에 계속 안 해. 이러면서 우리가 큰소리 쳐요. 근데 성모님께서 세 어린이들한테 말씀하신 것은 그렇게 어려운 거, 큰 결심을 하라고 안 그러셨어요. 너희들이 매일 겪는 희생, 이거 바치라고 그러셨어요. 그러면 우리들 매일매일 바치는 희생이 있어요. 우리들 지금 프란치코 교황님이 뭐라 그러세요? 뒷담화만 안 해도 성인이 된다고 그랬어요. 이게 희생이에요. 옆에 사람 모여서 막 뒷담화 하는데, 내가 거기에 들어가서 뒷담화 안 하고, 그냥 끄덕끄덕 만해도 교황님 말씀하신 대로 성인되는 길이에요. 내가 뒷담화 할 때 나도 끼어들어가 그래서 한마디 해. 그러니까 우리들이 매일매일 살면서 나자렛에서 이 두 분이 예수님을 공경하신 거, 더더구나 예수님을 볼 것 같으면, 보세요. 예수님께서 공생활하실 때, 말씀 많이 하셨지요. 예수님 숨은 생활 중에서는 30살 되기 전에는 말씀하신 거는 12살 때 말씀하신 거 외에는 없어요. 아무것도 없어요. 예수님께서 정말 할 말이 없으셨겠어요? 할 말 많으셨을 거예요. 그런데 우리들한테 전달되는 것은 열두 살 때 성전에서 하신 말씀 밖에는 전달되는 것이 없어요. 그러면 세 분이 성모님이나 요셉 성인이나 예수님께서 나자렛 생활하신 것은 우리들 생활하는 거하고 큰 차이가 없다는 거예요. 이것을 다시 한번 뒤집어서 얘기하면, 우리들이 세 분이 사신 것처럼 지금 살 수 있어요.
예수님께서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다 이러셨는데, 30년 동안 어떻게 살으셨는가? 우리들처럼 사셨어요. 하느님이 뭐가 몸 달아서 이 세상에 오셔서 인간으로 사셨겠어요? 이 대답은 하느님밖에 없어요. 하느님이 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우리하고 똑같이 인간으로 오셔서, 그것도 또 우리들 가운데서, 또 우리들 가운데서도 누구든지 따라갈 수 있도록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인생을 사셨어요. 서른 살 되실 때까지는 우리 보통 사람들하고 똑같았어요. 그러니까 보세요. 예수님 강론하시니까 ‘어, 저 사람 목수의 아들 아니야.’ 다른 사람들 다 목수의 아들로 받아들였어요. 메시아로 받아들이고, 하느님의 아들이라고 받아들이지 않았어요. 그런데 하느님이 목수의 아들처럼 사셨어요. 우리들하고 똑 같게 살으신 거예요. 그렇게 살으신 것이 구원의 길이었어요. 예수님이 30년 동안 그렇게 살으신 다음에 햇수로다 3년 동안 가르치신 것, 공생활을 하셨어요. 공생활을 더 길게 한 것이 아니라, 인생 훈련을 받으신 거, 30년 동안 성모님하고 요셉 성인 밑에서 또 동네 사람들 밑에서 인생을 훈련하신 거, 이게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분이 우리한테 보여 주신 구원의 길이에요. 이래서 우리들이 보통 때 일상생활에서 하는 말, 죄 되지 않는 말을 하고, 죄 되지 않는 행동을 할 것 같으면, 우리들 다 구원의 길을 가고 있는 거예요.
이 성당에서 우리들이 세 어린이들을 공경한다는 것이 그거예요. 아까도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두 성인은 열 살 미만이에요.
셋째 성인은 늙은이가 되셨어요. 아흔 살이 넘어서 돌아가셨어요. 그렇다면 우리들 이 세 어린이들처럼 사는 거, 내가 마음만 먹으면 할 수 있어요. 그러니까 우리들 다 마음만 먹으면 성인이 될 수가 있어요. 여러 형제자매님들은 오전에도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두 어린이보다 지금 더 어려운 일들 하고 계시고, 더 힘든 일하고 계시잖아요? 그것 바치시는 거예요. 매일매일의 생활에서. 그러면 하느님께서 그것을 축성해 주시고, 그거 다 우리들 구원의 길로 가는 도구가 되는 거예요.
그러면 여기서 우리 구체적으로 3월 25일이 성모님께서 가브리엘 천사하고 대화하신 거, 이것을 축일을 지내요. 묵주기도에서는 이게 기쁨의 신비 1단이에요. 가브리엘 천사가 성모님께 와서 인사드리는 거, 이것 얼마나 신비스럽고 얼마나 우리한테 감동적인 것입니까? 하느님이 조금 전에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셔요. 인간 세상으로 내려오셨는데, 우리가 아까도 성체강복 후에 우리가 찬미 드린 것처럼 여기 셋째 번에 찬미 드리는 게,
참 하느님이시며 참 사람이신 예수 그리스도님, 찬미 받으소서 이래요.
예수님이 어떤 분이십니까? 예수님은 참 하느님 이신 동시에 참 인간이셔요.
나 같은 사람이셔요. 그러니까 우리 인간의 한계점이 하느님을 이해하지도 못하고, 하느님께 도달할 수도 없고, 하느님 만날 수도 없고, 이러니까 오히려 하느님이 우리한테 인간으로 오셔서, 내가 내 눈으로 그 하느님을 볼 수 있고, 내 손으로 그 하느님을 악수할 수 있고, 내 귀로 하느님 말씀을 듣고, 내가 그분의 모습을 보고, 따라갈 수 있도록 우리 가운데 오신 분이 참 하느님이신데,
그분이 예수님이셔요.
예수님은 우리하고 똑같은 인간이신 동시에 하느님 아버지 하고 똑같은 하느님이셔요. 그러니까 우리는 예수님을 뵈면서 예수님 제자들한테 그랬잖아요, 필립보한테, 주님, 우리가 아버지를 뵙게 해 주십시오. 예수님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나하고 그렇게
오랫동안 지냈는데도 아버지를 뵙게 해 달라는 게 무슨 말이냐? 나를 보면 하느님 아버지를 만나는 거다,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기가 막힌 선물 아니에요. 우리가 일상생활에서도 그래요. 얼마 전에 교황성하께서 우리나라 오셨을 때,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교황님하고 악수하고 싶어했고, 또 그거 못한 사람들은 어떻게 했어요? 신자가 아니어도 멀리서 교황님을 뵙고 싶어 했었어요. 실제로 광화문에 못간 사람들은 어떻게 했어요? 테레비에라도 교황님 어떤 사람인지 보고 싶다. 전국에서 교황님을 뵙고 싶어 했어요. 그런데 우리가 예수님을 직접 뵙는다는 것이 뭡니까? 하느님을 내가 직접 뵙는 거예요. 내가 하느님을 직접 뵈올 수 있도록 이 세상에 내려오신 분이 예수님이에요.
그런데 그 예수님이 보세요, 우리 대한민국에서는 그 예수님을 만날 수 없으니까? 어떻게 했어요? 성체가 되셔 가지고, 미사 때마다 내 손을 통해서 나에게 오셔요. 그러니까 내가 “그리스도의 몸”, “아멘” 할 때, 이 아멘이 어떠한 대답이에요? 어떤 사람한테는 훅 부르면 날아가는 그냥 밀떡 하나예요. 그런데 믿는 사람에게는 이것이 나에게 오시는 하느님이에요. 그리스도.
제가 현직에 있을 때, 우리 의정부교구에서 사건이 한 번 있었어요. 어느 본당에서 성가책이 딱 붙어 버렸어, 몇 장이. 보니까
누군가가 축성된 제병을 뱉어서 성가 책에다 붙여 놓은 거예요. 이거는 아마 십중팔구는 믿지 않는 사람, 신자가 아닌 사람이 와서 그랬을 거예요. 근데 바오로 사도가 그래요. 우리 영성체를 할 때 사람에 따라서 축복이 될 수도 있고, 저주가 될 수도 있다고. 그리스도 몸, 아멘하고 받아들이면 축복이고 구원이에요. 그런데 받아 모시면서도 진짠가? 이게 정말로 그리스도의 몸인가?
의심을 할 것 같으면 저주가 될 수 있어요. 그러면 예수님은 우리한테 오신 하느님이에요. 그래서 우리 사제들이 미사 드릴 때 조그맣게 기도하는 것이 있어요. 포도주하고 물을 섞을 때, 손 씻은 다음에 하는 거 있지요. 멀리서는 못 봐요. 근데 미사드리는 신부님 하는 게 있어요. 포도주하고 물을 섞는 거, 그때 사제가 하는 기도가 뭐냐면,
우리 비천한 인성에 참여하시는 그리스도의 천주성에 참여케 하소서 이래요.
우리가 자비의 기도 할 때도 천주성 이야기하지요. 신성이라고 하죠. 그러면 예수님이 이 세상에 인간으로 오신 건 뭐예요? 하느님이 아득한 위에 계신 하느님이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 인성과 하나가 되시는 거예요. 그런데 우리는 그 그리스도를 통해서
천주성에 동참하는 것이 돼요. 그래서 우리가 성토일날 파스카 초 켜 놓고, 장엄하게 노래하는 게 있잖아요. 어떤 때는 부제님이 노래하고, 어떤 때는 신부님이 노래하고, 부제님이나 신부님이 여의치 못할 때는 우리의 신자 중에 누가 할 수 있어요. 그때 노래하는 것 중에 중요한 거 한마디 뭡니까? 복된 탓이요 이러죠. 왜 복된 탓이냐 하면, 아담과 하와가 창조되어서 낙원에 있을 때에는 인간 수준의 낙원인 거예요. 그런데 죄를 범한 다음에 메시아가 이 세상에 오셔서 우리를 구원하셨을 때, 이때는 어떻게 돼요? 우리가 세례를 받고 이렇게 될 때 어떻게 돼요? 우리가 하느님의 자녀가 되요. 아담하고 하와는 그냥 사람이었어요. 하느님의 자녀는 아니었어요. 그런데 우리가 구원받을 때는 어떻게 돼요? 하느님의 아들과 딸이 되는 거예요. 하느님과 같아지는 거예요.
하느님의 천주성에 동참하는 거예요. 기가 막힌 거지요. 이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거예요. 그러면 우리가 다시 한번 하느님이 우리를 이토록 사랑하시는데 우리가 받아들이면 어떻게 돼요? 일차적으로는 저는 그래요. 나자렛에서 요셉 성인하고 성모님께서 우리 일상생활을 성실하게 사시면서 예수님을 모셨던 것처럼 우리 일상생활을 내가 성실하게 사는데 이것을 성모님께서는 세 어린이들을 통해서 우리한테 확인을 시켜 주셨어요 우리 일상생활이 성스러울 수 있다는 거, 또 내가 이것을 하느님께 선물로
바칠 수 있다는 거, 하느님께서는 이것을 기쁜 마음으로 받아들이신다는 거, 이것을 성모님께서 우리한테 확인시켜 주신 거예요. 이것을 이렇게 살 것 같으면, 내가 그 다음에 어떤 기도든지 성실하게 할 수 있고, 자신감을 갖고 할 수 있게 돼요.
그래서 저는 오늘이 피정을 통해서 여러 형제자매님들께 나자렛의 숨은 생활을 통해서 우리들의 일상생활을 성화시키는 거,
이것 참 중요하다는 것을 말씀드리면서 우리들만이라도, 지금 이 성당에 오는 우리들만이라도 나의 일상생활을 이렇게 하느님께 선물로 바쳐 드릴 것 같으면, 하느님께서 기뻐하신다는 것은 뭐예요? 우리가 이 세상에 평화를 이룩하는데 있어서 우리들이 큰 역할을 할 수 있다는 거예요. 적어도 저는 그래요. 오늘 이 자리에 오신 분들만 하더라도 3 어린이들이 성모님 만날 때보다 더 많잖아요. 아까 제가 성당에 들어올 때 우리 재속회 회장님이 사무실에 오늘 오신 분들이 67명이라고 이렇게 말씀하셨어요. 67명 3명으로 나눠 보세요. 몇 배가 되나? 20배가 넘지요. 혼자서 기도해도 하느님 기뻐하시는데, 우리들 모여서 기도하면 하느님이 얼마나 기뻐하시겠어요. 제가 여러 형제자매님들 만나면서 행복하다는 거, 그래서 그러는 거예요. 우리들이 큰 궁전, 이것을 생각할 수가 있어요. 사실 저는 오늘 첫 토요일이기 때문에 많으신데, 제가 여기 목요일마다 와요. 목요일마다 오면, 어떤 때는 열 분도 안 돼요. 그래도 저는 행복해요. 그래도 저는 올 가치가 있다고 생각을 하고, 저는 열 분들하고 같이 기도 하고, 참 소중하다고 생각하고 믿어요. 열 분 안 돼도 괜찮아요. 열 분 더 되면 더 좋아요. 중요한 것은 우리들 3 명보다는 언제든지 많다는 거, 이거 생각하고 하느님께 이거 바쳐 드려야 된다고 생각해요. 그래서 저는 3월 달에 요셉 성월의 성월인데 요셉 성인뿐만 아니라, 나자렛에서 이 성가정을 우리 되새기면서 우리나라와 세계 평화를 위해서 기도하면서 우리 용기를 냅시다. 희망을 가집시다. 미사를 준비하면 좋겠습니다.
영광의 성부와 성자와 성령께 처음과 같이 이제와 항상 영원히, 아멘.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이름으로, 아멘. 짝짝짝...//
(2강의 전문정리, 2강의 전문녹음도 들어보세요.)
♦2강의 전문 녹음
♦2025년 3월 1일 첫토요일 성모신심미사
♦입당성가
♦독서: 사무엘기 하7,1-5.8ㄷ-11.16
♦복음: 루카1,39-47
♦강론: 최안토니오 신부님
찬미예수님,
(강론 전문을 들어보세요.)
♦강론전문 녹음
♦성찬전례
♦티없으신 마리아성심께 바치는 봉헌기도
♦성 미카엘 대천사께 드리는 기도
♦미사후 이한택 요셉주교님 안수
◆박명정실비아:자료제공
◆annaM:워드, 편집
첫댓글 아멘 🙏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