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18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그 깊은 뜻이야
어찌 우리가 모두 다 헤아려
알 수 있겠는가마는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햇빛 모아둘 곳 없어서
(三月韶光沒處收)
대혜 종고(大慧宗杲) 선사
삼월소광몰처수
(三月韶光沒處收)
일시산재유초두
(一時散在柳梢頭)
가련불견춘풍면
(可憐不見春風面)
각간잔홍축수류
(却看殘紅逐水流)
춘삼월 비추이는 햇빛
모아서 거두어 둘 곳 없어
버드나무 가지 위에
눈부시게 흩어져 있네
더함없이 아까웁게도
봄바람의 얼굴 보이지 않고
물결을 따라 흘러가는
붉은 꽃잎만 보이는구나.
"
바로
이 한편(一編)의
시(詩, 게송, 禪詩)를
읽으면
사람의 마음이
편안(便安)해 지며
봄(春日)을
가슴(胸中)에 가득 담는
느낌이 든다.
무심히(無心)
흘러가는 세월(歲月) 속에
또 다시
찾아온 봄날의 하루(春一日)가
시심(詩心 시인의 마음)에
흠뻑 젖어 있다.
선사(禪師,
선(禪, Zen) 수행자))들의
시(詩, 게송, 禪詩)는
대부분
시심(詩心, 싯적 상상의 마음)이
곧 선심(禪心, Zen의 마음)이다.
일체(一切)
모든 것(諸法)을 버리고
다 내려놓고(放下着)
텅 비워져 있는(眞空妙有)
무심(無心)한 마음에서
철저한
객관(客觀, 제3자의 마음)을
정관(靜觀, 성성적적, 적적성성,
고요히 관망)하고 있다.
온 우주
천지만물(宇宙萬物)을
고요히 관찰(靜觀)하면
모두(一切萬有)가
무한(無限, 끝이 없음)한 뜻과
의미(無常諸法, 無上正覺)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안다.
봄볕(春日陽光)이
너무도 눈부시고 따사로워
붙잡아 저장(둠)할 곳이 없어
버드나무 가지 위에
눈부시다든가
봄바람(春風)의
얼굴(相 모습)은 보이지 않고
물(水面) 위에
흘러가는 꽃잎(花葉, 화엄)만
보인다는
말(言語, 문장, 句節)이
선적(禪的, 명상, 참선,
성불도 수행자의 관점)인
목가적(木家的)
서정(抒情性, 감정의 흐름과
사람들의 정서에 젖어있음)을
흠뻑 머금고 있다.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는
불교(佛敎)
선종(禪宗, 禪家, 禪門)
간화선(看話禪,
화두(話頭) 공안을 참구하는
수행법))의 거장(巨長)이며
창시자(創始者)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8~1163) 선사(大禪師)
스님(僧, 大沙門)의
『선종잡도해(禪宗雜毒海)』
속에 들어있는 시(게송, 禪詩)로
제자(門下弟子)들에게
보였다는 뜻인 「시도(示徒)」
라는 제목(.題目)으로 나와 있는
시(게송, 禪詩)이다.
봄(春日)을 느끼는
선심(禪心 선수행자의 마음)이
시심(詩心 시인의 마음)이 되어
봄날의
춘경(春景 봄날의 풍경)을
이 정도는 볼(觀, 관망, 직관) 수
있어야 한다고 가르쳐 주고
있다.
※
대혜종고(妙喜,
大慧宗杲, 1088∼1163)
즉,
묘희 종고(妙喜宗杲)
불일 선사(佛日禪師)
보각 선사(普覺禪師)
운문 선사(雲門禪師)
스님은
불교(佛敎)
선종(禪宗)의
간화선(看話禪,
화두(話頭) 공안을 참구하는
수행법))의 거장(巨長)이요
창시자(創始者)이며
간화선(看話禪)을
일으켜 대성(大盛)시킨
선승(禪僧)으로
속성(俗性)은 해(奚氏)
자(字)는 담회(曇晦)
호(號)는
묘희(妙喜) 또는
운문(雲門)
시호(諡號)는
보각선사(普覺禪師)이다.
1164년
송(宋) 나라 효종에게
대혜선사(大慧禪師)의
칭호를 받았다.
1089년
중국 선주(宣州)
영국현(寧國縣)에서
태어나
12세에 출가하여
혜제(慧齊)와 소정 선사
문준(文準) 선사 스님의
수하(守下, 문하)에서
수행(修行)하다가
원오극근(圜悟克勤,
1063–1135, 중국 송나라
임제종 양기파(楊枝派)에 속한
대선사(大禪師) 스님)과
동경(開封,
개봉부)에 머물면서
크게 깨친(大悟覺惺) 뒤
스승(恩師)
원오극근(圜悟克勤)의
법(正統法脈)을 이어받았고
인가(印可) 받았다.
고요(寂)하고
고요한(寂靜) 가운데
수행자(修行者)
자기 자신(自己自身)의 마음을
비춰보는(心照修行)
묵조선(默照禪)의
폐단(弊端)을 타파(打破)하고
오직
화두(話頭 공안)
참구(參究)를 통해서
끝내는
깨달음(무상정등각)에
이르는
간화선(看話禪)
선풍(禪風, 불교 참선, 명상
수행종풍)을 일으켰다.
북송 말부터
남송(南宋) 초기까지
혼란했던 시기(時期)에
대혜 종고(大慧宗杲,
1088~1163) 선사(大禪師)
스님의 가르침은
지식인들과
수행자(修行者)를 넘어
시대적(時代的)으로
큰 빛(반야, 지혜, 보리, 광명)이
되었으며
한국과
일본 불교에도
지대한 영향을
주었다.
저술(著述書)로는
그(대혜종고, 묘희, 운문선사)의
어록(語錄, 말씀)을 정리한
『대혜보각선사어록』
『대혜보각선사보설』
등(etc) 있으며
그 외(外)에도
『대혜보각선사종문무고』
『대혜보각선사법어』
『선림보훈』등(等)이
전해진다.
참고적으로
우리나라에 전하는
《선림보훈(禪林寶訓)》은
고려 우왕 4년(1378)
충주의
청룡선사(靑龍禪寺)에서
간행했으며
선사들의
도(道)와 덕(德)에 관한 교훈을
모은 선서(禪書)이다.
※
ㅡㅡ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서
지극히 개인적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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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