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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본문: 이사야 6:1–13 (참조: 출애굽기 33:20, 요한복음 12:41, 에베소서 3:8, 요한계시록 4:1–11)
핵심 명제: 인간 군주가 무너지고 세상의 모든 버팀목이 꺾여나가는 절대 상실의 순간에야 비로소 보좌에 높이 들린 만군의 여호와가 보이며, 천상의 삼중 거룩(카도시) 앞에서 자신의 전적 부패를 직시하고 입술의 저주(오이-리 키-니드메티)를 토해내는 자만이 제단의 속죄 숯불(리츠파)로 정결케 되어 "내가 여기 있나이다(힌네니 쉘라헤니)"라는 자원하는 사명자로 파송받는다.
1. 서론: 지상의 왕이 죽던 해, 하늘 문이 열리다
이사야 6장 1절은 구약 역사상 가장 비극적이면서도 가장 찬란한 영적 전환점이 되는 역사적 시점 하나를 정확하게 못 박으며 문을 엽니다:
"웃시야 왕이 죽던 해에(비-쉬나트-무트 하-멜렉 우지야후) 내가 본즉 주께서 높이 들린 보좌에 앉으셨는데(와-에르에 에트-아도나이 요셰브 알-키세 람 웨-닛사) 그의 옷자락은 성전에 가득하였고" (사 6:1)
‘웃시야(Uzziah)’는 누구였습니까?
그는 무려 52년 동안 유다 왕국을 통치하며, 솔로몬 이후 유다를 군사적·경제적으로 가장 강력한 번영의 반열에 올려놓았던 걸출한 군주였습니다(대하 26장).
외적을 물리쳤고, 망대를 세웠으며, 농업과 상업을 부흥시켰습니다.
유다 백성들에게 웃시야는 단순한 정치적 지도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국가 안보의 상징이었고, 경제적 번영의 기둥이었으며, 백성들이 하나님보다 더 든든하게 기대고 있던 거대한 '인간적 우상'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강대하던 웃시야 왕도 말년에 교만해져 제사장의 고유 권한인 분향을 직접 하려 성전에 들어갔다가,
이마에 나병(나병 환자)이 발하여 왕궁에서 쫓겨나 별궁에 격리된 채 비참하게 숨을 거두었습니다.
북방에서는 앗수르 제국의 잔인한 군화 발 소리가 유프라테스강을 넘어 예루살렘을 향해 좁혀오고 있었습니다.
국가의 기둥이 부러졌습니다. 백성들은 집단 패닉과 절망의 늪에 빠졌습니다:
"이제 웃시야 왕이 죽었으니 우리는 누구를 의지할 것인가? 이 나라의 운명은 어떻게 될 것인가!"
바로 그 절대 절망과 상실의 해에,
젊은 귀족 출신의 제사장 가문이었던 아모스의 아들 이사야는 예루살렘 성전으로 뛰어 들어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상의 왕관이 흙먼지 속에 떨어져 썩어가는 바로 그 순간,
이사야의 영안이 번개처럼 열리며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높고 높은 하늘 보좌에 영원토록 좌정해 계신 참된 만왕의 왕 여호와'의 찬란한 영광을 목도하게 됩니다!
제1강은 지상의 통치자가 무너질 때 열리는 하늘 보좌의 시각, 스랍들의 여섯 날개와 삼중 거룩(카도시 카도시 카도시), 거룩 앞에 선 인간의 필연적 자기 파산 선고인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오이-리 키-니드메티)",
제단에서 타오르던 속죄의 숯불(리츠파)이 입술에 닿는 순간의 성별,
삼위 하나님의 천상 회의와 자원하는 파송(힌네니 쉘라헤니),
그리고 나무가 베임을 당해도 땅속에 남겨진 거룩한 그루터기(체르아 코데쉬)의 구속사적 신비를 심층 해부합니다.
2. 본문 주해: 보좌에 앉으신 만왕의 왕(1) 키세 람 웨-닛사(כִּסֵּ֣א רָ֣ם וְנִשָּׂ֔א): 높이 들린 보좌 (사 6:1)
키세 (כִּסֵּא): 왕권을 상징하는 통치 보좌.
람 웨-닛사 (רָם וְנִשָּׂא):
'높고(High)', '스스로 들어 올려진(Exalted)'의 중첩 표현입니다.
성전 바닥에 엎드린 이사야의 눈에 보인 것은 비어 있는 예루살렘 궁전의 옥좌가 아니었습니다.
세상의 왕들은 50년을 통치하다가도 나병에 걸려 죽고 무덤으로 내려가지만,
온 우주의 주재이신 여호와 하나님의 통치 보좌는 역사의 그 어떤 풍파와 위기 속에서도 흔들림 없이 우뚝 솟아 영원히 통치하고 계심을 선지자에게 계시하신 것입니다.
(2) 슈라이브 말레임 에트-하-헤이칼(וְשׁוּלָ֖יו מְלֵאִ֥ים אֶת־הַהֵיכָֽל): 성전에 가득한 옷자락
고대 근동에서 정복 군주의 옷자락(Train of robe)의 길이는 그의 승리와 통치권의 크기를 상징했습니다.
하나님의 왕복 자락이 거대한 솔로몬 성전 지성소와 성소 전체를 빈틈없이 가득 메웠습니다(말레임).
이것은 하나님의 위엄과 영광의 편재성(Omnipresence), 곧 그 어떤 피조물의 권세도 침범할 수 없는 신적 통치권의 절대적 충만함을 웅변합니다.
3. 핵심 원어 강해: 카도시 카도시 카도시(קָדוֹשׁ קָדוֹשׁ קָדוֹשׁ) — 스랍들의 삼중 영광송
보좌 주위에는 하나님의 보좌를 호위하는 천상의 영적 존재들인 ‘스랍들(세라핌, שְׂרָפִים)’이 둘러서 있었습니다:
"스랍들이 모시고 섰는데 각기 여섯 날개가 있어(쉐쉬 케나파임 쉐쉬 케나파임 레-에하드) 그 둘로는 자기의 얼굴을 가리었고(예카세 파나이브) 그 둘로는 자기의 발을 가리었고(예카세 라글라이브) 그 둘로는 날며(예오페프) 서로 불러 이르되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만군의 여호와여(카도시 카도시 카도시 야훼 체바오트) 그의 영광이 온 땅에 충만하도다 하더라" (사 6:2–3)
{קָד֧וֹשׁ\ קָד֛וֹשׁ\ קָד֖וֹשׁ\ יְהוָ֣ה\ צְבָא֑וֹת}
{מְלֹ֥א\ כָל־הָאָ֖רֶץ\ כְּבוֹדֽוֹ׃}
{"카도시, 카도시, 카도시, 야훼 체바오트! 말로 콜-하-아레츠 케보도!"}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거룩하시도다, 만군의 여호와여! 온 우주 만방에 그분의 찬란한 영광(카보드)이 가득하도다!"}
스랍들의 여섯 날개가 가르치는 영적 예배학
[ 위쪽 두 날개 ] ---> "얼굴을 가림" (겸손) : 피조물로서 창조주의 절대 광채를 감히 응시하지 못함
[ 아래 두 날개 ] ---> "발을 가림" (순결) : 피조물의 수치와 천박한 흔적을 가림
[ 중간 두 날개 ] ---> "날아다님" (순종) : 하나님의 명령이 떨어지자마자 즉각 출동할 비행 태세
스랍 (שָׂרָף, 사라프): '타오르다, 불사르다(Burn)'에서 유래하여 "불타는 자들(Burning ones)"이라는 뜻입니다.
죄가 없는 거룩한 천사 스랍들조차, 창조주 하나님의 압도적인 거룩함 앞에서는 두 날개로 얼굴을 가리고 두 날개로 발을 가렸습니다.
삼중 반복(Trisagion)의 신학적 무게:
히브리어 문법에는 최상급 접미사가 없습니다.
따라서 동일한 단어를 세 번 연속 반복하는 것은 '절대적 최상급(Absolute Superlative)'을 뜻합니다.
성경은 단 한 번도 "하나님은 사랑이시라 사랑이시라 사랑이시라"거나 "자비하시다 자비하시다 자비하시다"라고 삼중 반복하지 않습니다.
오직 하나님의 속성 중 세 번 연거푸 외쳐진 속성은 ‘거룩(카도시)’뿐입니다!
카도시 (קָדוֹשׁ): 모든 세속적이고 피조적인 것으로부터 완전히 분리되어 구별되신 하나님의 절대 초월성을 선포한 것입니다.
요한복음 12장 41절에 따르면, 사도 요한은 이사야가 보았던 이 성전의 영광이 바로 "성육신하시기 전 성자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에이덴 텐 독산 아우투)"이었음을 증언합니다.
4. 핵심 원어 강해: 오이-리 키-니드메티(אוֹי־לִי כִי־נִדְמֵיתִי) — 거룩 앞의 완전한 파산
천사들의 찬양 소리에 성전 문지방의 터(암모트 하-시핌)가 지진이 난 듯 흔들리고, 성전 안에는 거룩한 임재의 구름과 연기(아샨)가 자욱하게 피어올랐습니다(4절).
이 광경을 목격한 이사야는 황홀경에 빠져 감탄사를 연발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바닥에 처박혀 창자가 끊어지는 비명을 내질렀습니다:
"그 때에 내가 말하되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오이-리 키-니드메티) 나는 입술이 부정한 사람이요 나는 입술이 부정한 백성 중에 거주하면서(키 이쉬 테메-세파타임 아노키 우-베-토크 암-테메 세파타임 아노키 요셰브) 만군의 여호와이신 왕을 뵈었음이로다(키 에트-하-멜렉 야훼 체바오트 라우 에이나이) 하였더라" (사 6:5)
{אֽוֹי־לִ֣י\ כִֽי־נִדְמֵ֗יתִי}
{כִּ֣י\ אִ֤ישׁ\ טְמֵֽא־שְׂפָתַ֙יִם֙\ אָנֹ֔כִי}
{"오이-리 키-니드메티! 키 이쉬 테메-세파타임 아노키!"}
{"아, 내게 재앙이로다! 나는 이제 산산조각 나 멸망하게 되었도다! 대저 나는 입술이 썩어 더러워진 죄인이로다!"}
(1) 오이-리 (אוֹי־לִי): 화로다 나여!
오이 (אוֹי):
장례식장에서 시체를 앞에 두고 통곡할 때 내지르는 '처절한 장송의 곡소리(Woe is me!)'입니다.
이사야는 5장에서 유다의 부패한 자들을 향해 여섯 번이나 "화 있을진저(오이)"라며 심판을 선포했던 의로운 예언자였습니다(사 5:8, 11, 18, 20, 21, 22).
그러나 하나님의 거룩한 거울 앞에 자신의 영혼이 알몸으로 노출되는 순간,
이사야는 남들을 향해 쏘아붙이던 그 저주의 칼날을 자신의 심장으로 돌려세웠습니다:
"남들이 죄인이 아니라, 바로 내가 지옥 불에 타 죽어 마땅한 가장 추악한 괴물이로구나(오이-리)!"
(2) 다마 (דָּמָה 니드메티): 산산이 부서져 침묵하다
니드메티:
'멸망하다, 침묵당하다, 산산조각 나다(Undone/Ruined)'는 수동형 동사입니다.
출애굽기 33장 20절의 율법: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거룩하신 하나님과 죄인이 대면하는 순간, 거룩의 불길 앞에 죄인은 소멸할 수밖에 없습니다.
이사야는 자신의 도덕성, 종교적 선행, 가문의 자부심이 원자 단위로 분쇄되어 허공으로 날아가는 '완전한 영적 전적 파산(Total Depravity)'을 체험한 것입니다.
(3) 테메-세파타임 (טְמֵא־שְׂפָתַיִם): 왜 하필 '입술의 부정'인가?
마음속에 가득 찬 독기와 오염이 가장 먼저 배출되는 하수구가 바로 '입술(언어)'이기 때문입니다(마 12:34).
하나님을 찬양해야 할 입술로 불평하고, 남을 헐뜯고, 위선의 말을 지껄였던 자신의 추악함이 거룩한 천사들의 찬양 소리 앞에서 너무나 더럽게 느껴졌던 것입니다.
이사야는 스스로를 영적 나병 환자로 고발한 것입니다(레 13:45, 나병 환자는 입술을 가리고 "부정하다, 부정하다" 외쳐야 했습니다).
4. 핵심 원어 강해: 리츠파(רִצְפָּה) — 제단의 숯불과 무조건적 속죄
자신의 멸망을 선포하며 바닥에 엎드려 죽음만을 기다리고 있던 선지자에게, 기상천외한 구속의 은혜가 하늘로부터 날아옵니다:
"그 때에 그 스랍 중의 하나가 부젓가락으로 제단에서 집은 바 핀 숯을 손에 가지고 내게로 날아와서(베-야도 리츠파 베-멜카하임 라카흐 메-알 하-미즈바흐) 그것을 내 입에 대며 이르되(와야가 알-피) 보라 이것이 네 입에 닿았으니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사하여졌느니라(사르 아워네카 웨-하타트카 테쿠파르) 하더라" (사 6:6–7)
{הִנֵּ֧ה\ נָגַ֛ע\ זֶ֖ה\ עַל־שְׂפָתֶ֑יךָ}
{וְסָ֣ר\ עֲוֺנֶ֔ךָ\ וְחַטָּאתְךָ֖\ תְּכֻפָּֽר׃}
{"힌네 나간 제 알-세파테이카! 웨-사르 아워네카, 웨-하타트카 테쿠파르!"}
t{"보라! 이 불타는 숯이 네 입술에 닿았으니, 네 모든 죄악(아원)이 씻겨 떠나갔고 네 죄(하타트)가 속죄(카파르)되었느니라!"}
(1) 리츠파 (רִצְפָּה): 번제단의 불타는 숯돌
이 숯불은 아무 데서나 가져온 불이 아닙니다.
흠 없는 희생 제물이 피를 흘리며 불타오르던 '번제단(미즈바흐)'에서 타오르던 대속의 불이었습니다.
천사는 너무나 뜨겁고 거룩하여 손으로 쥐지 못하고 '부젓가락(멜카하임)'으로 집어 날아왔습니다.
(2) 살을 태우는 고통을 통과하는 정결 (와야가 알-피)
불타는 빨간 숯덩이를 연약한 사람의 입술에 지지는 것은 살점이 타들어 가고 연기가 피어오르는 극한의 고통을 수반합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은혜는 죄를 얼버무리는 값싼 타협이 아닙니다.
우리의 옛사람의 거짓된 혀와 죄악 된 본성을 성령의 불로 완전히 지져 태워버리는 거룩한 영적 수술이 집행된 것입니다.
(3) 테쿠파르 (תְּכֻפָּר): 덮어서 속량하다
카파르 (כָּפַר): '속죄하다, 덮다(Atoned for)'.
이사야가 어떤 고행을 하거나 선행을 쌓아서 의로워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 편에서 번제단의 희생의 불을 가져와 죄인의 더러운 입술에 대어주심으로, 100% 값없이 거저 주어지는 일방적인 칭의(Justification)의 은총이 임한 것입니다.
5. 핵심 원어 강해: 힌네니 쉘라헤니(הִנְנִ֥י שְׁלָחֵֽנִי) — 자원하는 사명자의 헌신
죄 사함의 확신이 선지자의 심장을 관통한 바로 그 순간,
지금까지 침묵하시던 온 우주의 왕, 삼위일체 하나님의 거룩한 어전 회의의 음성이 성전에 웅장하게 울려 퍼집니다:
"내가 또 주의 목소리를 들으니 이르시되 내가 누구를 보내며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에트-미 에쉴라흐 우-미 옐레크-라누) 하시니 그 때에 내가 이르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힌네니 쉘라헤니) 하였더니" (사 6:8)
{אֶת־מִ֤י\ אֶשְׁלַ֔ח\quad וּמִ֥י\ יֵֽלֶךְ־לָ֑נוּ}
{וָאֹמַ֖ר\ הִנְנִ֥י\ שְׁלָחֵֽנִי׃}
{"에트-미 에쉴라흐, 우-미 옐레크-라누? 와-오마르, 힌네니 쉘라헤니!"}
{"'내가 누구를 파송할 것인가! 누가 바로 우리(삼위 하나님)를 위하여 갈 것인가!' 그때에 내가 외쳤나이다: '보소서,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어 주옵소서!'"}
(1) 미 옐레크-라누 (מִי יֵלֶךְ־לָנוּ): "누가 '우리'를 위하여 갈꼬"
창세기 1장 26절("우리의 형상을 따라"), 창세기 11장 7절("우리가 내려가서")에 나타난 '삼위일체 하나님의 복수형 대명사(Plural of Majesty)'입니다.
성부, 성자, 성령 삼위 하나님께서 타락한 인류를 구원하시기 위해 구속사의 회의를 여신 것입니다.
(2) 힌네니 (הִנְנִי): 명령하기 전에 자원하는 응답
하나님은 이사야의 멱살을 잡고 "너 반드시 가라!" 억지로 강요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늘 보좌의 안타까운 탄식을 그저 허공에 흘려보내셨을 뿐입니다: "누가 우리를 위해 갈 것인가..."
모세는 부르심 앞에서 다섯 번이나 "보낼 만한 자를 보내소서" 빼며 거절했습니다(출 3–4장).
예레미야는 "나는 아이라 말할 줄을 알지 못하나이다" 뒤로 물러섰습니다(렘 1장).
요나는 다시스로 도망쳤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달랐습니다!
멸망할 수밖에 없던 죄인이 제단의 숯불로 거저 용서받았다는 그 '감당할 수 없는 복음의 빚진 자의 감격'이 그의 심장에 폭발했기에,
명령이 떨어지기도 전에 손을 번쩍 들고 뛰어나간 것입니다: "힌네니 쉘라헤니! 하나님,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셨으니, 나를 써 주옵소서!"
6. 충격적인 사명: 마음을 둔하게 하고 귀를 막으라 (사 6:9–12)
그러나 이 눈물겨운 자원의 대가로 이사야가 수여받은 첫 번째 설교의 사명은,
모든 사역자를 절망에 빠뜨릴 만한 역설적이고 충격적인 심판의 칙령이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가서 이 백성에게 이르기를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 하여(쉬므우 샤모아 웨-알-타비누 우-레우 라오 웨-알-테다우)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귀가 막히고 그들의 눈이 감기게 하라(하쉬멘 레브-하-암 하-제... 웨-에이나이브 하샤)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 (사 6:9–10)
사역의 목표가 '부흥'이 아니라 '완악함의 폭로'인가?
하나님은 이사야에게 수만 명을 회개시키고 대형 교회를 세우는 성공을 약속하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이사야가 눈물로 피를 토하며 설교할수록, 백성들의 마음은 돌처럼 단단해지고(하쉬멘), 귀는 닫히며, 눈은 멀게 될 것이라 경고하셨습니다.
사법적 유기(Judicial Hardening):
수백 년 동안 하나님의 선지자들을 조롱하고 회개를 거부했던 유다 백성들을 향해,
마침내 하나님께서 '그들의 완악함 그대로 내버려 두시는 최종적인 유기의 심판'을 선고하신 것입니다.
신약성경의 사복음서(마 13:14–15, 막 4:12, 눅 8:10, 요 12:40)와 사도행전(행 28:26–27), 그리고 로마서(롬 11:8)는 한목소리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복음을 눈앞에 두고도 거절했던 패역한 유대인들의 눈먼 상태를 설명하기 위해 바로 이 이사야 6장의 본문을 정확하게 인용합니다.
7. 핵심 원어 강해: 제라 코데쉬(זֶ֥רַע קֹ֖דֶשׁ) — 십분의 일과 거룩한 씨
이사야는 가슴을 쥐어짜며 절규했습니다:
"주여 어느 때까지니이까(아드-마타이 아도나이)!" (사 6:11a).
언제까지 이 저주와 심판이 계속되어야 합니까?
하나님은 성읍들이 황폐하여 주민이 없고 토지가 황폐해지며 백성들이 멀리 포로로 잡혀갈 때까지라 선언하십니다(11–12절). 바벨론에 의한 예루살렘의 완전한 멸망을 예고하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칠흑 같은 절망으로 문을 닫지 않습니다.
이사야 6장의 마지막 13절은, 성경 66권 전체를 관통하는 구속사의 가장 눈부신 소망의 불꽃을 터뜨리며 끝을 맺습니다: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웨-오드 바흐 아시리야... 웨-하예타 레-바에르)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카-에일라 웨-카-알론 아쉐르 베-샬레케트 마체베트 밤)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제라 코데쉬 마차브타흐) 하시더라" (사 6:13)
{כְּאֵלָ֣ה\ וְכkeyאַלּ֗וֹן\ אֲשֶׁ֤ר\ בְּשַׁלֶּ֙כֶת֙\ מַצֶּ֣בֶת\ בָּ֔ם}
{זֶ֥רַע\ קֹ֖דֶשׁ\ מַצַּבְתָּֽהּ׃}
{"카-에일라 웨-카-알론, 아쉐르 베-샬레케트 마체베트 밤!}
{제라 코데쉬 마차브타흐!"}
{"밤나무와 거대한 상수리나무가 도끼에 찍혀 밑동째 베어 넘겨질지라도 그 뿌리의 그루터기(마체베트)는 땅속에 여전히 살아남아 있는 것처럼, '거룩한 씨(제라 코데쉬)'가 바로 이 땅의 무너지지 않는 그루터기니라!"}
(1) 마체베트 (מַצֶּבֶת): 잘려 나간 밑동, 그루터기
거대하던 유다 왕국은 바벨론의 도끼날에 찍혀 넘어질 것입니다.
잎사귀도 떨어지고, 가지도 꺾이며, 웅장하던 줄기마저 다 잘려 나가 흙먼지 속에 흉측한 밑동만 남을 것입니다.
겉으로 보면 하나님의 언약은 완전히 끝장난 것처럼 보입니다.
(2) 제라 코데쉬 (זֶרַע קֹדֶשׁ): 거룩한 씨
그러나 보십시오!
나무는 베어졌으나, 땅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그 뿌리는 결코 죽지 않았습니다!
제라 (זֶרַע):
창세기 3장 15절의 '여자의 후손(제라)', 창세기 22장 18절의 아브라함의 '씨(제라)', 다윗 9강의 '다윗의 씨(제라)'로 이어져 온 구속사의 황금 줄기입니다.
세상 제국의 도끼가 하나님의 백성을 아무리 무참하게 베어 넘겨도,
하나님은 그 그루터기 속에 결코 죽지 않는 생명의 불씨, 곧 ‘메시아 예수 그리스도라는 거룩한 씨(제라 코데쉬)’를 보존하고 계십니다!
이 거룩한 씨에서 장차 11장의 예언대로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자라나(사 11:1)" 온 우주를 구원할 생명의 푸른 숲을 이루게 될 것입니다!
8. 구속사적 절정: 십자가에서 타오른 영원한 제단 숯불 예수 그리스도
존 칼빈과 찰스 스펄전, 알렉산더 화이트와 마틴 로이드 존스는 이사야 6장의 제단 숯불과 스랍들의 찬양을, 골고다 언덕 십자가 위에서 온몸으로 하나님의 거룩한 진노의 불을 받아내사 우리를 영원히 정결케 하신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 사역의 가장 심오한 복음의 절정으로 해설합니다.
요한복음 12장 41절은 단언합니다:
"이사야가 이렇게 말한 것은 주의 영광을 보고 주를 가리켜 말한 것이라!"
이사야가 보았던 그 높은 보좌에 앉으신 만군의 여호와는 누구이십니까?
바로 천지를 창조하시고,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셨던 성자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이사야 6장의 성전 환상 | 골고다 십자가와 오순절 (신약성경) |
| 스랍들이 "거룩하다, 거룩하다, 거룩하다" 찬양함 | 십자가 위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공의와 거룩이 완전히 만족됨 |
| 죄인이 거룩 앞에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자복함 | 십자가 앞에서 자신의 죄인 됨을 깨닫고 회개함 (눅 5:8) |
| 번제단에서 핀 불타는 숯(리츠파)을 취함 | 십자가 제단에서 그리스도께서 온몸으로 대속의 불에 타심 |
| 불타는 숯이 입술에 닿아 죄악이 사해짐 | 그리스도의 보혈이 심령에 뿌려져 모든 양심이 깨끗해짐 (히 9:14) |
| "누가 우리를 위해 갈꼬" 삼위 하나님의 부르심 |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으라" 대사명 (마 28:19) |
| 베어 넘겨진 그루터기 속의 "거룩한 씨(제라 코데쉬)" | 다윗의 혈통에서 나사렛 예수로 싹터 오른 영원한 부활의 생명 (롬 1:3–4) |
천사가 이사야의 입술에 대었던 그 핀 숯(리츠파)은 어디서 온 것입니까?
그것은 죄 없는 어린양이 피 흘려 불태워지던 제단에서 취한 것이었습니다.
우리의 더럽고 부정한 입술과 심령을 정결케 하기 위하여,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골고다 언덕 십자가 제단 위에서
인류의 모든 죄악의 쓰레기를 한 몸에 짊어지시고
하나님의 맹렬한 진노의 불길 속에 당신의 온 살과 뼈를 내어던지셨습니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타오르는 화목제물이 되어 주셨기에,
오늘 우리는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영원히 지옥 불에 떨어져 타 죽어야 할 자리에서 건짐을 받아,
"네 악이 제하여졌고 네 죄가 영원히 사하여졌느니라!"는
선언을 듣게 된 것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부활 승천하사,
오순절 마가의 다락방에 모인 백이십 명의 성도들의 머리 위에
제단의 숯불보다 더 뜨거운 '성령의 불의 혀(행 2:3)'를 얹어주심으로써,
오늘 우리로 하여금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외치며 열방을 향해 달려 나가는 거룩한 복음의 증인으로 삼아주셨습니다!
9. 목회적 적용과 묵상(1) 네 인생의 '웃시야 왕(인간의 우상)'이 죽을 때 하늘 보좌를 바라보라
당신이 평생 믿고 의지하던 사업의 든든한 배경, 건강, 직장, 존경하던 멘토나 부모님이 하루아침에 꺾여나가는 절대 상실의 위기를 겪고 계십니까?
낙심하여 성전 문가에 주저앉아 통곡하지 마십시오.
웃시야 왕이 죽어야 비로소 하늘의 보좌가 열립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하나님보다 더 의지하던 세상의 모든 썩어질 버팀목들을 흔들어 꺾어버리심으로써,
시간이 지나도 결코 쇠하지 않고
영원토록 높이 들린 보좌에 앉아 계신 참된 왕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을 똑똑히 보게 만드십니다.
인간 왕의 죽음 앞에서 눈을 들어 영원하신 보좌의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2) "화로다 나여(오이-리)!"의 철저한 자기 파산 통곡을 통과하라
오늘날 현대 기독교의 비극은 하나님의 '거룩(카도시)'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내 소원이나 들어주는 자판기 신으로 전락시킨 데 있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진짜로 대면해 보지 못한 자는 결코 참된 회개에 이를 수 없습니다.
남을 정죄하던 교만의 손가락질을 멈추십시오.
"저 사람 때문에 교회가 이 모양이다, 저 정치인 때문에 나라가 망한다" 핑계 대지 마십시오.
천상의 삼중 거룩의 빛 앞에 당신의 알몸을 세우십시오.
그리고 이사야처럼 가슴을 치며 피를 토하듯 자복하십시오: "화로다 나여 망하게 되었도다! 나는 입술이 부정한 자로다!"
자신의 100% 영적 파산과 무자격을 처절하게 인정하고 통곡하는 상한 심령 위에만, 제단 숯불의 사죄의 은총이 임하게 됩니다.
(3) 계산기를 두드리지 말고 "내가 여기 있나이다(힌네니)"로 자원하라
우리는 주님의 일을 할 때 언제나 계산기를 두드립니다: "내가 이 사역을 맡으면 내게 무슨 이익이 있는가, 얼마나 대우를 해주는가, 성공할 가능성이 있는가?"
이사야를 보십시오.
그가 맡은 사역은 성공이 보장된 꽃길이 아니었습니다.
사람들이 귀를 막고 마음을 닫는 고독하고 처절한 심판의 사역이었습니다.
그러나 이사야는 조건을 묻지 않았습니다.
나 같은 죄인을 살려주신 십자가 대속의 은혜의 빚을 알았기에,
오직 한마디로 응답했습니다: "힌네니 쉘라헤니! 내가 여기 있나이다, 나를 보내소서!"
대가와 인정을 바라지 않는 순전한 자원함!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좁은 길,
모두가 꺼리는 희생의 자리로
"내가 여기 있나이다" 고백하며 먼저 뛰어드는 참된 십자가의 사명자가 되십시오.
10. 결론: 거룩한 씨가 잉태될 처녀의 복중을 향하여
이사야 6장의 막이 내리며,
성전의 거룩한 연기 속에서 제단의 숯불로 입술을 지짐 받은 이사야는
더 이상 지상의 왕 웃시야의 죽음에 매여 슬퍼하는 나약한 청년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만군의 여호와의 어전 회의에서 직접 파송을 받은
불타는 복음의 대사로 거듭났습니다.
온 나라가 바벨론의 도끼날에 베임을 당하여 황폐해질지라도,
땅속 깊은 곳에 박혀 있는 그루터기 속에서
장차 솟아오를 ‘거룩한 씨(제라 코데쉬)’의 비밀을 심장에 품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제 이사야 7장의 문이 열립니다.
웃시야의 손자이자 유다의 악한 왕 ‘아하스(Ahaz)’의 시대,
아람 왕 르신과 북이스라엘 왕 베가가 동맹을 맺고
예루살렘을 포위하여 쳐들어왔을 때,
왕과 온 백성의 마음이 "숲이 바람에 흔들림 같이 흔들렸던" 절체절명의 위기!
하나님을 신뢰하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앗수르 제국을 의지하려던 불신앙의 왕 아하스에게,
하나님께서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한 표적을 구하라!"
말씀하셨으나
"나는 구하지 아니하겠나이다" 위선으로 거절했던 암흑의 순간!
그 인간의 완악함과 불신앙의 심장을 찢어버리시며,
선지자 이사야의 입술을 통해 인류 역사의 한복판으로 던져진
성경에서 가장 찬란하고 위대한 메시아의 탄생 예언:
"그러므로 주께서 친히 표적을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제2강: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 아하스의 불신앙과 임마누엘의 표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