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6장 25-27 (다니엘의 하나님)
성경본문 : 다니엘 6: 25-27
25. 이에 다리오왕이 온 땅에 있는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각 방언하는 자들에게 조서를 내려 가로되 원컨대 많은 평강이 너희에게 있을찌어다
26. 내가 이제 조서를 내리노라 내 나라 관할 아래 있는 사람들은 다 다니엘의 하나님 앞에서 떨며 두려워할찌니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요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27. 그는 구원도 하시며 건져내기도 하시며 하늘에서든지 땅에서든지 이적과 기사를 행하시는 자로서 다니엘을 구원하여 사자의 입에서 벗어나게 하셨음이니라 하였더라
===============================================================
출 처| 정근두목사(울산교회)
그리스도 안에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소원으로 이 자리에 나오신 구도자 여러분, 오늘 우리는 읽은 말씀을 통해서 다니엘의 하나님 에 대해서 말씀 드리려고 합니다. 그동안 우리는 다니엘에 대해서 연속적으로 일곱 번 설교를 들은 바 있습니다. 오늘 우리는 다니엘서를 마지막으로 살피는 시간이 되겠습니다.
젊은 날 다니엘은 비록 포로 생활이지만 신앙을 위해서 살기로 결단합니다. 그의 세 친구 역시 피해갈 수 없는 질문 앞에 신앙인다운 분명한 대답을 합니다. 그리 아니하실 지라도 그들은 우상 앞에 머리를 숙이지 아니하겠다고 선언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다니엘 6장에서 신앙을 포기하는 대신 사자굴을 택한 다니엘을 네 번 살펴 보았습니다. 총리 다니엘, 신앙인 다니엘, 기도의 용사 다니엘, 그리고 승리자 다니엘을 각각 살펴 보았습니다. 이제 오늘 우리는 온 나라에 선포하는 다리오 왕의 새로운 법령을 통해서 나타난 다니엘의 하나님 을 살피려고 합니다.
제목을 좀 더 정확하게 설명하면 다리오 왕이 만난 다니엘의 하나님이 되겠습니다. 다리오 왕은 다니엘을 통해서 하늘의 대주재 하나님을 만나고 그것을 온 나라에 공포합니다. 다니엘 뿐만 아니라 모든 신앙인은 우리의 좋으신 하늘 아버지를 나타내는 기회로서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그 때 우리의 삶을 보고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칭송하게 될 것입니다. 그 때 오늘 우리 가운데 참석한 구도자들을 위해서 뿐만 아니라 아직도 좋으신 하나님 앞 으로 나오지 못한 이웃의 삶에 빛을 비추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울산교회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모두 하나님을 나타내 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어떤 인생 길을 걸어도 거기서 좋으신 하늘 아버지를 사람들에게 보여 줄 수 있습니다. 어떤 분은 역경 가운데서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다른 분은 순탄한 인생 길을 걸으면서 하나님의 선하심을 보여주기도 합니다.
찬송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그런가하면 역경 속에서 기도하면서 하나님의 함께하심과 능력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그러면 여러분은 어떻게 이웃 사람에게 하나님을 나타내 보여주는 삶을 살 수 있습니까?
먼저 다니엘은 좋은 관계를 가짐으로 하나님을 나타낼 길을 예비했습니다.
물론 의식적인 노력의 결과라고는 할 수 없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가운데 다니엘과 다리오 왕의 관계는 시작부터 우호적으로 출발합니다.
그 운명적인 밤에 벨사살왕의 몰락을 예언했던 다니엘이 나라의 셋째 치리자로서 의복을 입고 서 있었을 때에 다리오왕은 그 나라를 접수했습니다. 자연적으로 다니엘은 다리오왕의 눈에 띌 수 밖에 없었을 것입니다. 그밤의 연회에서 다니엘이 맡았던 역할이 무엇인지를 들었을것입니다. 말하자면 간접적으로 그의 승리를 예언한 것이나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다리오는 남달리 다니엘을 생각했을 것입니다.
느브갓네살 왕과 다니엘의 세 친구들의 관계를 비교할 때 우리는 이와같은 차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어떤 면에서 다니엘 6장은 3장과 많은 유사점이 있습니다. 두 경우 모두 포로로 잡혀온 유대인들이 제국의 높은 자리에 승진합니다. 두 경우 모두 왕의 법이 그들의 신앙을 포기하도록 요구합니다. 그들을 시기한 동료들로부터 기소를 당합니다. 만일 불복하면 왕의 권위를 무시하는 것이라고 위협합니다. 둘 다 거부하는 것은 사형외에는 면할 길이 없습니다. 불속이든지 사자굴이든지 피할 길은 없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은 생명을 걸고 신앙을 지키려고 하는 당신의 종들을 버려 두시지 않습니다. 그들을 위해 사형집형장에 하늘의 사자들을 파송합니다. 그리하여 아무런 해를 당하지 아니하고 구출을 받습니다.
두 경우 모두 왕은 그들을 석방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들의 자리에 그들 대신 다른 사람들이 죽임을 당합니다. 두 경우 모두 왕은 조서를 내립니다. 그 조서를 통해서 그들의 하나님의 권세와 영광을 나타냅니다. 그들의 하나님 만이 유일한 구원자임을 선포합니다.
두 경우 모두 어떻게 그들이 계속 승진과 영화를 누렸는지 언급하므로 이야기를 끝맺습니다. 히브리서 11장 33절 마지막과 34절 초두에 이 두사건은 함께 기록되고 있습니다. 저희가 믿으므로 사자들의 입을 막기도 하며 불의 세력을 멸하기도 하며 하지만 다니엘 서 6장은 3장을 그대로 베끼고 있지는 않습니다.
3장의 무대는 바벨론이고 6장은 그 배경이 페르샤입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자기가 원해서 명령을 내리지만 다리오 왕은 속아서 그와같은 칙령을 공포합니다. 세 친구들은 공적인 종교행위로 인해서 시험을 받는다면 다니엘은 개인 기도생활 문제로 시험을 당합니다. 요구하는 것을 거부하므로 앞에는 문제가 일어났다면 뒤에는 금한 것을 하므로 문제가 발생합니다. 앞에는 풀무불의 위협이 도사리고 있었다면 뒤에는 사자굴의 위협이 기다리고 있습니다.
느브갓네살 왕은 명령을 거부한 세 친구에게 진노했다면 다리오 왕은 명령을 어긴 다니엘을 살리려고 애를 씁니다. 느부갓네살은 자기의 종교를 강요했다면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종교를 인정하고 있습니다. 느부갓네살은 어떤 신이 내 손에서부터 너희를 건져낼수 있느냐 고 말했지만 다리오 왕은 너가 항상 섬기는 다니엘의 하나님이 구원할 것을 내다봅니다. 다니엘은 내내 침묵을 지켰으나 다리오 왕은 그 사건을 통해서 하나님을 새롭게 알게 됩니다. 그는 다니엘의 참소자들을 처형하도록 명령합니다. 그는 또한 유대인의 종교를 허용하는 자리에서 더 나아가 모든 제국의
사람들이 다니엘의 하나님을 섬기도록 공포합니다.
두 사건은 모두 포로된 이스라엘이 어떻게 살아야 할 것인지를 말합니다. 그들이 믿는 하나님의 율법에 배치된 공적 우상숭배에 대해서는 아니오 라고 말할 것을 요구합니다.동시에 그들의 신앙생활에 핵심이 되는 개인 경건생활에 대해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예 하도록 요구합니다. 결정적인 순간 벨사살의 몰락을 예언한 다니엘에게 처음부터 우호적이었던 다리오 왕은 결국 다니엘의 하나님을 더 알게 되고 인정하게 됩니다. 전 제국에서 다니엘의 하나님을 허용할 뿐 아니라 떨며 두려워하여 섬기도록 명령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어떻게 우리 이웃들에게 하나님을 알도록 할 수 있겠습니까?
세상을 살면서 많은 관계들을 맺으면서 살고 있습니다. 한해 한해를 지나가면서 제 수첩에 적혀있는 전화번호들을 새로 옮겨 적을때 마다 이런 생각이 듭니다. 어떤 사람들과의 관계는 지속되지 않기 때문에 다시 새 수첩에 옮겨 놓을 필요가 없습니다. 한 해 동안에 많은 사람들을 알도록 하나님께서 맺어 주십니다. 세상을 살면서 여러분이 가지는 모든 관계마다 좋은 출발을 하도록 기도하고 노력하십시오. 다리오 왕과 좋은 출발을 하므로서 결국 다리오 왕은 다니엘의 하나님을 인정하고 공포하는 축복을 함께 받아 누리게 됩니다. 같은 맥락에서 주님께서도 산상 설교에서 말씀하십니다.
“이같이 너희 빛을 사람 앞에 비취게 하여 저희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 (마5:16)
어떤 삶이 착한 행실을 사람들에게 나타내는 삶입니까?
원수를 갚지 않는 자리에서 더 나아가 원수를 사랑하는 삶입니다.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하는 자를 보복하지 않는 자리에서 더 나아가 원수의 유익을 위하여 기도하는 삶입니다. 살다보면 딱 한 번만 그대로 갚아주고 싶은 마음이 들때도 없잖아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원수된 여러분을 끝까지 사랑하신 예수 그리스도를 기억하십시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삶이 이웃에게 하늘 아버지의 축복의 통로가 되게 하십시오. 여러분 편에서는 할 수 있는한 최선을 다해 이웃과 더불어 화목을 추구하십시오. 모든 사람으로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좇으라 이것이 없이는 아무도 주를 보지 못하리라 고 히브리서 기자는 권면합니다. 적극적으로 말하면 주를 만난 적이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이웃과 더불어 화평함과 거룩함을 추구하는 자입니다.
자, 그러면 두 번째로 같은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웃에게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평소에 이웃에게 인정받는 신앙생활을 하므로서 여러분이 믿는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이것이 다니엘의 삶을 통해서 우리가 배울 수 있는 또 하나의 진리입니다.
포로로 잡혀온 젊은 날, 그는 신앙의 결단을 합니다. 하지만 그는 다른 사람의 입장을 무시하고 자기 신앙만 지키겠다고 고집을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기를 주관하는 환관장의 입장을 이해하고 대안을 제시하는 사리가 밝은 젊은이였습니다.
“청하오니 당신의 종들을 열흘 동안 시험하여 채식을 주어 먹게 하고 물을 주어 마시게 한 후에 당신 앞에서 우리의 얼굴과 왕의 진미를 먹는 소년들의 얼굴을 비교하여 보아서 보이는 대로 종들에게 처분하소서”
유대인이라서 우상 제물을 죽는한이 있더라도 절대로 먹을 수 없다고 다니엘이 말하면 환관장의 처지가 얼마나 딱합니까. 환관장의 목이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자기들에게 달려있는 청년들 가운데 얼굴이 초췌한 사람이 생기면 왕이 물어서 사실이 드러나면 환관장에게는 목이 달려있는 문제입니다. 자기의 신앙만 지키겠다고 맞부딪치지 않고 공손하게 말하면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일지라도 그러한 요청에 대해서는 들어 줄 만한 여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신앙이라는 이유를 가지고 세상을 살면서 너무 빡빡하게 나올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신앙인으로서 신앙을 지켜야 하는 만큼이나 다른 사람의 입장에서도 한 번 생각해 볼 수 있는 여유가 있어야 합니다.
인생은 순식간에 지나갑니다. 1장의 그 젊은 청년 다니엘이 6장에 등장 할 때는 이미 노년의 사람이 되어 있습니다. 다니엘은 이제 120명의 방백을 거느리기에 어울리는 모습입니다. 대제국의 총리에 발탁될 만한 나이와 식견을 두루 갖춘 인물입니다. 하지만 그의 마음은 세 총리들 가운데서도 민첩하고 탁월했습니다.
탁월한 실력을 갖춘 그는 성실한 업무 수행을 했습니다. 그는 깨끗한 처신을 했습니다. 그는 자기 지위를 이용해서 개인 이익을 챙기지 아니했습니다. 동시에 그는 자기 일신 보호 위주로 처신하지 않았습니다. 복지 부동하는 공무 생활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누구보다 부지런한 관리로서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총리로서 그의 삶은 어떤 허물도 찾아 볼 수가 없습니다. 어떠한 직장에서 일을 하더라도 여러분이 일하는 그 임무에 있어서는 흠을 잡을수 없도록 열심히 정직하게 일을 하십시오.
시기하는 동료들의 수군거리는 소리를 들어보십시오.
이 다니엘은 그 하나님의 율법에 대하여 그 틈을 얻지 못하면 그를 고소할 수 없으리라 고 서로 말하고 있습니다. 그를 모함하는 사람들조차도 그의 무흠한 삶을 인정합니다. 그는 왕을 위해서 아무런 손해를 끼치지 않았습니다. 그는 뇌물을 받고 일을 하므로 기강을 흐리게 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그는 속이지는 아니하지만 시간 지나가기만 기다리는 사람들처럼 살지 아니했습니다. 출근해서는 퇴근시간 오기만 어영 부영 기다리는 퇴출 일순위가 아니었습니다. 한달만 지나가면 월급이 나온다고 생각하는 직장인이 아닙니다. 사장이 주는 월급은 땅에서 솟는것도 아니고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도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 회사에 있으면 밥값을 해야합니다. 여러분이 하는 일이 교육자이든지 성직자이든지 아니면 노무자이든지 자기의 월급만큼 일을 해야 하나님 앞에 정직한 삶입니다. 어떤 관리보다도 열심히 직무를 수행했습니다.
들어 보십시오, 그를 모함하는 사람들이 수근거리는 소리를!
그들조차 오직 다니엘의 신앙을 문제 삼지 아니하고는 고발할 근거를 찾을 수 없을 만큼 그의 삶은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의 신앙생활은 알려져 있었습니다. 특히 다니엘의 기도생활은 누구나 다 아는 그의 삶의 일부입니다. 그러므로 이들은 기도하는 것을 올무로 만들어 새로운 법안을 공포하게 합니다. 금령에 어인이 찍히고 공포된 것을 알고도 다니엘의 삶은, 특히 그의 기도생활은 변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다니엘의 기도시간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하여 기도하는 시간에 모함하는 사람들이 들이닥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기도하는 그를 현장에서 목격합니다.
하나님을 이웃에게 나타내 보이는 신앙은 이웃의 눈에 인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볼 때 무언가 다른 면모를 가지고 있어야 우리에게 관심을 가질 것입니다. 우리에게 무언가 기대를 가질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있는 소망에 대해서 물어올 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예수 믿고 난 다음에 우리의 모든 일을 다 잘되게 해주시고 건강을 보장해 주시고 우리 자녀들의 미래를 잘되게 하시면 여러분 예수 믿지 않을 사람이 세상에 어디 있겠습니까? 미안하지만 그렇게 되면 여러분과 저 같은 사람은 예수 믿는 자리에 나와서 앉기 힘이 들지 모릅니다. 프리미엄이 붙어서 우리 같은 사람들은 힘이 없어서 들어와 앉아 있지도 못할지 모릅니다.
다행히 하나님은 그렇게 하지 않습니다. 세상 모든 사람이 당하는 환난과 어려움 속에 당신의 백성들을 세워 두십니다. 그 가운데서 신앙인이 어떻게 다르게 반응하는지를 보도록 하십니다.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를 기뻐하십니다. 우리도 불치의 병에 걸려서 입원 할 수 있습니다. 개인적으로 왜 그때 데려 가시는지 도무지 이해를 할 수 없지만 그것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새벽기도를 그처럼 잘했는데도 불구하고 사업에 부도가 날 수 있습니다. 우리가 무언가에 근거해서 하나님이 우리를 보장해 준다는 그런식으로 신앙생활을 한다는 것은 사리에 맞지 않습니다. 여러분의 자녀도 때로는 곁길로 갈 수 있습니다. 과정에 있었서는 우리도 남들이 당하는 모든 것을 다 당하는 것 처럼 보일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똑 같은 상황에 우리가 처해도 우리는 신앙인이기 때문에 반응을 달리하는 것입니다. 모함을 받지만 그는 변명하지 않습니다. 그는 왕의 총애를 받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고소하고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 한마디도 말하지 않고 사자굴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는 평소의 신앙이 달랐기 때문에 그를 통해서 사람들이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그 때 비로소 온유함과 두려움을 가지고 답할 기회를 가질 것입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웃의 눈에 비쳐지고 있습니까? 그것이 중요합니다. 신자답게 살아가십시오. 변함없이 주를 섬기십시오. 어떤 위기에도 타
협하지 마십시오. 비록 사자굴에 던져지더라도 여러분이 평생 섬겨온 그 분이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할 것입니다. 그는 불가운데서도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분입니다. 그는 사자의 입에서도 구원하시기에 능하신 분입니다.
자, 그러면 마지막으로 또 한번 질문을 합니다.
여러분은 어떻게 이웃에게 하나님을 나타낼 수 있을까요?
위기의 순간 전능하신 하나님을 신뢰함으로 여러분도 이웃에게 하나님을 보여줄 수 있습니다. 다니엘을 통해서 다리오 왕은 어떤 하나님을 알게 되었습니까? 만약 다니엘이 위기를 모면하려고 변절했다면 그가 항상 섬기는 하나님을 다리오 왕에게 보여줄 수 없었을 것입니다.
다니엘의 하나님을 자기의 하나님으로 만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언제까지나 다니엘의 하나님으로 머물지 다리오왕이 고백하는 하나님이 되지 못했을 것입니다. 다니엘은 목숨을 걸고 신앙의 정조를 지켰기 때문에 사자의 입에서부터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다리오왕이 보았기 때문에 그는 그가 지휘하는 온 땅에 이 하나님의 이름을 공포하고 있습니다. 물론 다니엘에 대해서 처음부터 호의로 대한 것은 사실입니다. 호의를 가졌기에 그를 시기하는 사람 못지않게 다니엘의 경건한 신앙을 평소에 눈여겨 보아왔음에 틀림이 없습니다. 반복해서 말하는 너의 항상 섬기는 네 하나님 이라는 호칭이 세 번이나 나오고 있습니다. 다니엘의 평소신앙을 인정하는 다리오의 고백입니다.
다리오 왕의 입에서 나온 살아계신 하나님이란 말은 어떤 의미일까요?
온 땅을 정복해 가면서 그는 숱한 지방신들을 만났을것입니다. 아니 나라마다 그들이 섬기고 있는 신들을 만나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신들은 그 백성들을 구원하기에 능하지 못한 자들이었습니다. 그가 지금껏 만난 우상들과는 가장 다른 면모가 사시는 하나님 이란 말로 표현되고 있습니다. 사시는 하나님은 인간사에 개입하시는 분이십니다. 인간의 위기에 개입하시는 분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이 지금껏 섬기는 하나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여러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을 섬긴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그 하나님이 최근 언제 여러분의 삶의 현장에 개입하셨습니까?
여러분의 고통의 현장에 찾아오시는 하나님을 만난 적은 언제입니까?
우리가 지금 예배하는 하나님은 다니엘의 하나님입니다. 그는 살아계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자기 백성의 위기에 개입하십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문제를 그 분께 아뢰십시오. 여러분은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을 믿고있습니다. 능하신 하나님 그 분을 섬기고 있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을 하늘 예루살렘을 향하여 열어보십시오. 무릎을 꿇고 여러분의 문제를 아뢰십시오. 우리 하나님은 오늘도 능동적인 하나님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지금 왕으로 영원히 보좌에 좌정해 계십니다. 우리가 예배를 시작하면서 무엇이라고 고백했습니까? 전능하신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고 고백합니다. 여러분과 저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오늘도 전능하신 하나님의 보좌 우편에 통치자로서 앉아 계십니다. 그러므로 그분만이 자기 백성의 구원자이십니다.
총리와 방백들은 모여서 왕에게 나아와 문안합니다. 왕이여 만세수를 하옵소서 라고 말하지만 여러분 중에서 만세수를 한 왕을 알고 있습니까?
중국의 진시왕은 죽지 않겠다고 불로초를 찾아서 사방으로 사람들을 보냈지만 그는 죽고 말았습니다. 다만 웅장한 무덤을 남기고 죽었을 뿐입니다. 만세수 그것은 사람에게는 해당하지 않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언제나 사시고 영원히 계시는 분이십니다. 어제도 계시고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시며 내일 다시 오실 분이십니다.
다리오 왕이 증거하는 하나님은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분 만이 불변하시는 하나님이시라고 다리오 왕은 선포합니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총리들과 방백들은 메데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할 법을 입버릇처럼 되뇌이지만 오직 다니엘의 하나님만이 변개치 아니할 분이시고 그 분의 말씀만이 영구합니다.
“신하들의 아부하는 말들을 들어보십시오. 왕이여 원컨데 금령을 세우시고 그 조서에 어인을 찍어서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를 따라 그것을 다시 고치지 못하게 하옵소서 왕 자신도 자신의 권위를 확보하기 위해서 자기 명령의 불가변성을 밝히기도 합니다. 이 일이 적실하니 메데와 바사의 변개치 아니하는 규례대로 된 것이니라 왕이 다니엘을 살리기 위해 고심하면서 시간을 지체하자 그 무리들이 또 모여서 아룁니다. 왕이여 메대와 바사의 규례를 아시거니와 왕의 세우신 금령과 법도는 변개하지 못할 것이니이다 ”
그저 입만 열었다 하면 메대와 바사의 변개치 못할 법을 들고 나오지만 변개치 못할 법은 해아래 없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법은 개정하기 위해서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의 전통이나 관습을 불변의 위치에 둘려고 하지마십시오. 그것은 우상숭배입니다. 해 아래 모든 것은 변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변하는 상황에 따라서 신속하게 대응해야만 됩니다. 오직 영원히 변치 아니 하시는 분으로 나온 원리와 법만이 영원히 변치 아니할 것입니다. 이천년전 유대인들이 가지고 있던 기존 율법에 대한 이해와 예수님의 행동은 일치하지 않았기 때문 에 마치 그들은 늘 예수님이 모세오경을 파하고 예언서를 무시하는 사람처럼 보였기 때문에 그렇게 예수님에 대해서 수군거리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나 폐하려 온 줄로 생각지 말라 폐하려 온 것이 아니라 완전케 하려 함이로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 일획이라도 반드시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 (마 5:17-18).
마지막으로 다리오 왕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불변하시며 그 분만이 영원한 통치자임을 고백합니다.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은 누구를 위해서 살고 있으며 무엇을 위해서 죽을 수 있습니까? 오직 하나님의 나라와 그 의를 사모하십시오. 그 나라만이 영원할 것입니다. 그 나라를 위한 희생과 봉사만이 보상을 받을 것입니다.
지상에는 영원한 나라도 없고 영원히 정권을 잡는 정당도 없습니다. 하지만 세상에는 어리석은 사람들도 많이 있습니다. 한 번 악수하고 감동해서 그를 지지하고 거금을 아끼지 않고 후원을 합니다. 그러나 정권을 장악하고 나서는 연락 한번도 없이 지나가는데 그래도 지지자라는 명예 하나로 버틸려고 합니다. 아니 한 자리를 약속하고 그 약속을 지킨들 그것이 얼마나 갑니까? 부질없는 것들에 인생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그리고 이 자리에 나오신 구도자 여러분, 영원히 가치있는 것을 붙잡으시고 불변하는 것을 위해 헌신하십시오. 당대의 제국 다리오 왕의 고백을 들어보십시오. 그는 사시는 하나님이시오 영원히 변치 않으실 자시며 그 나라는 망하지 아니할 것이요 그 권세는 무궁할 것이며 지금 그 나라가 여러분 앞에 다가오고 있습니다. 그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며 삶을 투자하십시오. 영원히 폭락하지 아니하는 주식을 위해 투자를 하십시오. 땅에 보물을 쌓는 대신 하늘에 보물을 쌓아두십시오.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길 수 없습니다.
여러분이 누구이며 어디로 가는 사람인지 이웃들이 알게 하십시오.
여러분의 삶이 정함이 없는 재물에 소망을 두지 않는 것을 보게 하십시오.
모든 것을 후히 주사 누리게 하시는 하나님께 여러분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십시오. 선한 일을 행하고 선한 사업에 부하고 나눠주기를 좋아하는 사람으로 살아가십시오.
영원한 미래를 위해서 투자를 하는 여러분의 모습을 보여줄 때 살아계신 하나님을 사람들이 보게 될 것입니다. 현재를 버려 미래를 살려고 할 때 사람들은 여러분을 통해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만날 것입니다.
이 살아계신 하나님을 향한 바울의 찬송을 들어보십시오. 하나님은 복되시고 홀로 한 분이신 능하신 자시며 만왕의 왕이시며 만주의 주시요 오직 그에게만 죽지 아니함이 있고 가까이 가지 못할 빛에 거하시고 아무 사람도 보지 못하였고 또 볼 수 없는 자시니 그에게 존귀와 영원한 능력을 돌릴지어다 아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의 마지막 구절을 묵상해 보십시오. 대개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 그것이 우리 삶의 목표가 되며 마지막 고백이 되게 하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아버지께 영원히 있사옵나이다 아멘 .
말씀을 맺겠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웃에게 하나님을 나타내기 위해서 여러분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할 수 있다면 처음부터 좋은 관계를 가지십시오. 그리고 평소에 이웃에게 인정받는 신앙생활을 하십시오. 끝으로 위기에도 목숨을 내어 놓고 변함없이 신앙의 절개를 지킴으로 사람들이 우리 하나님이 전능하신 자이심을 보여주며 알도록 하십시오. 너희가 이방인 중에서 행실을 선하게 가져 너희를 악행한다고 비방하는 자들로 하여금 너희 선한 일을 보고 권고하시는 날에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하려 함이라 (벧전 2:12).
그리스도인다운 여러분의 선한 삶은 하나님이 긍휼히 여기시는 순간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께 돌아오게 하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비록 여러분이 어떠한 처지에 있어도 하나님을 보여주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만큼이나 실패한 사람도 하나님의 영광을 나타낼 수 있습니다. 지금 살아있다는 것은 주님 증거하는 기회를 소유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반기 남은 날들은 우리 안에 계신 살아계신 하나님을 우리 이웃들에게 증거하는 기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아멘.
출처: 성경 벌레들 글쓴이: 성경 벌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