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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 성 훈 목사(동래 중앙 교회)
입시철이나 선거철이 돌아오면 어김없이 나타나서 이 사회를 혼란시키는 하나의 우상이 있습니다. 바로 성공이라고 부르는 우상입니다. 한 번 이 우상이 설치고 다니기 시작하면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든 사람들이 성공의 노예가 되어 성공을 향해서 줄달음치게 됩니다. 어디로 가는지 목표가 무엇인지도 알지 못한 채 오로지 눈에 보이는 성공만을 손에 거머쥐겠다는 일념으로 그것만을 좇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성공의 열병에 한 번 걸리면 눈이 어두워져서 윤리 도덕을 무시하고 수단과 방법도 가리지 않은 채 오직 성공의 우상이 시키는 대로 미친 듯이 날뛰다가 종내는 파멸에 이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성공이란 우상
요즈음 선거철이 다가오면서 공천문제로 정치계가 얼마나 시끄러운지 알 수 없습니다. 공천에 합격한 사람은 그 나름대로 다행스럽게 생각하고 안심하고 있겠지만 공천에서 탈락한 사람들은 아마 그 마음에 큰 충격과 고통으로 잠을 제대로 이루지 못하리라 생각됩니다. 어느 의원은 공천에서 탈락했다고 자기가 몸담고 있던 당을 향해 "이 당이 산산조각이 나서 망할 때까지 이 당과 투쟁하겠다"고 갖은 욕설을 퍼부었다고 합니다. 서로 주먹질이 오가는 것은 물론이고 어제의 동료가 오늘의 원수가 되어 서로 물고 뜯고 야단들입니다. 보통 살벌한 것이 아니에요. 공천이 뭐 그렇게 중요하기에 인간의 기본적인 신의마저 저버리고 그 동안 그 당으로부터 받았을 특혜를 모두 무시한 채 그 당을 산산조각 내버리겠다고 달려드는 것입니까? 언제는 혼자 당을 위하는 것처럼 죽도록 충성하겠노라고 하루에도 열두 번씩 맹세하던 자가 이제 와서 상황이 달라지고 자기를 몰라준다고 해서 하루아침에 배신의 칼을 들이댈 수 있는 겁니까? 정말 그래도 되는 거예요? 공천을 그의 유일한 성공의 통로로 삼고 그것 아니면 너 죽고 나 죽자는 식의 막가파식 모습을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실로 졸렬함의 극치 그 자체입니다. 그 마음이야 백 번 천 번 이해는 가지만 너무 심한 거 아닙니까?
비극의 시작
이런 어른들의 삶의 태도 때문인지 아이들도 성공에 대한 집념이 매우 강한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모 대학 부설 유치원 원장이 있습니다. 가끔씩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면 가당치도 않은 일들이 우리 주위에서 일어나고 있음을 알 수가 있어요. 그 유치원이 매스컴을 타면서 전국에 있는 부모들이 아이들을 그 유치원에 보내기 위해서 줄을 선다고 합니다. 하도 많은 사람들이 그 유치원에 몰려오니까 추첨을 해서 입학시키게 되었는데 추첨하는 날은 많은 사람들이 몰려와서 얼마나 복잡한지 알 수가 없답니다. 2층에서 추첨을 하고 1층에는 대기자들이 기다리고 있는데 2층에서 '합격'하는 소리가 들리면 갑자기 기다리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1층이 쥐죽은듯이 조용해진다고 합니다. 그런데 '불합격' 하는 판정이 나면 그와 동시에 그거 잘됐다는 뜻에서 환호를 지르며 박수를 치고 야단이 난답니다. 누군가 하나라도 떨어지면 그만큼 자기 아이가 합격할 확률이 높아지니까 말입니다. '합격'하면 조용하고 '불합격'하면 박수를 치고. 인간의 가장 추한 단면을 보는 것 같지 않습니까?
이야기는 이것으로 끝나지 않아요. 한번은 불합격 판정을 받은 아이가 집에 돌아가서는 자기 방에 들어가 틀어박혀 나오지를 않더랍니다. 하루는 걱정이 되어 살그머니 문을 열어보니 혼자서 방바닥에 누워 뭔가를 중얼거리고 있더래요. 무슨 소린가 하고 들어보니 '내가 어쩌다가 이 세상에 태어나 이 고생이람. 유치원 입학도 못하고 떨어지는 주제에 더 이상 살아서 무엇해. 이런 바보 같은 놈은 죽어야 돼. 죽어야 돼.' 하면서 머리를 방바닥에 찧으며 자신의 처지를 비관하고 있더라는 거예요.
여러분! 이것이 웃을 일입니까? 참된 성공이 무엇인지 참된 실패가 무엇인지도 알 지 못한 채 오로지 거짓된 성공만을 향해서 나가고 있는 우리 자신들의 모습을 한 번 살펴볼 필요가 있지 않을까요. 많은 사람들이 성공하기를 원하지만 실패의 늪에 빠져서 헤어나지 못하는 모습들을 보게 됩니다. 성공을 간절히 원하면서도 한 발자국도 성공을 향해서 나가지 못하고 실패의 좌절과 절망에 빠져 신음하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왜 실패하는가?
마음으로는 성공을 바라면서도 실패로부터 헤어나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사람들은 원초적으로 실패에 대한 두려움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많은 이들이 이 실패에 대한 두려움 때문에 감히 성공을 향하여 도전할 생각을 하지 못하고 중도에 쓰러집니다. 두려움이 머리 속에 꽉 차 있어 보다 진취적으로 살아가기를 거부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은 모든 것이 불가능하다는 단언을 내리면서 살아갑니다. 이런 사람들의 좌우명은 '절대 안 된다.'
'불가능하다.' '나는 할 수 없다.' 입니다. 언제나 이런 말을 입에 달고 살아갑니다. 그저 무슨 일만 일어나면 안돼, 불가능해, 할 수 없어 라는 말들을 기계적으로 뱉어냅니다. 이런 사람들의 인생은 참 불행합니다. 자기가 조금만 힘쓰면 할 수 있는 일도 귀찮고 힘들다고 미리 손을 들고 맙니다.
자동차가 처음 발명되어 시운전할 때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차에 시동을 겁니다. 그 때에 이 광경을 바라보고 있던 한 사람이 이렇게 소리칩니다. "저 차가 움직이는 것은 불가능해! 그런 일은 일어날 수 없어!" 그런데 차가 생각밖에 잘 움직이자 또 한다는 말이 "저 차가 멈추는 것은 불가능해! 정지할 수 없어!" 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차가 제대로 정지를 하니까 또 한다는 말이 "저 차 다시 시동 걸려면 안될걸." 하더래요. 계속 자기의 예상이 빗나가자 기어코 한다는 말이 "언젠가는 고장나서 망가지고 말거야." 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불가능하다고, 안 된다고 생각하는 한은 그 어느 것도 이루어질 수가 없습니다. 문제는 이런 실패에 대한 생각이 우리 머리 속에서 일어나고 있다는데 있어요. 무슨 일을 하다가 실패하는 거야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모든 일이 다 성공한다는 보장이 어디에 있어요? 오히려 성공보다는 실패하는 일이 더 많을지 몰라요. 요즈음 벤처(Venture) 산업이 활성화되어 있습니다마는 마지막까지 살아남는 기업은 겨우 3% 정도밖에 안 된다고 합니다. 그러나 도전해 보지도 아니하고 포기하고 주저앉는 사람들은 아무 것도 얻을 수가 없는 것입니다. 3퍼센트의 성공을 바라보고 최선을 다하는 사람만이 결국 최후의 승자가 될 수 있음을 명심하시기 바랍니다.
참된 인격에 기초해야 합니다
실패를 경험할 수밖에 없는 우리의 삶 속에서 진정한 성공이란 무엇입니까? 모두가 성공, 성공 외치고 다니는데 과연 참된 성공이란 무엇일까요?
진정한 성공은 참된 인격에서부터 출발해야 합니다. 돈을 벌었다고 성공이 아니예요. 어떤 높은 자리에 올랐다고, 어떤 명예를 얻었다고 성공이 아닙니다. 그 인격이 별볼일 없으면 실로 아무 것도 아니에요. 그 인격이 더럽고 추하고 위선적인 인격이라면 그 위에 쌓아올린 성공은 성공이 아니라 저주에 불과합니다.
진정한 성공
우리나라에서 성공했다는 사람들을 보세요. 정치적으로, 경제적으로, 사회적으로, 학계에서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을 보면 실망할 때가 많이 있어요. 다 그렇지는 않지만 많은 이들이 자신의 인격은 형편없으면서 조그만 성공 하나 이뤄낸 거 가지고, 남보다 돈좀 더 벌었다고, 남보다 좋은 옷 입고 좋은 집에 산다고 얼마나 으스대고 남을 무시하는지 말로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 인격을 가지고 어떻게 이 나라를 다스린다고 감히 말할 수가 있는 겁니까? 진정한 성공은 참된 인격에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의 인격 위에 인생의 참 성공을 세워가서 하나님 앞에 영광 돌리시기를 바랍니다. 못 살아도 참된 인격이 있어야 합니다. 남보다 지식이 부족해도 참된 인격을 가지고 살면 누구나 그 사람을 존경하고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성공입니다. 여러분의 자녀들이 성공했다고 하더라도 그들의 신앙인격이 개떡같으면 그 인생도 개떡같이 돼버리고 맙니다.
앞으로 있을 우리나라 총선도 흥미진진합니다마는 지금 미국에서 벌어지고 있는 대선주자 경선도 볼 만합니다. 특별히 공화당의 맥캐인(McCain)과 부시(Bush)라는 이 두 사람의 대결이 얼마나 재미있는지 몰라요. 맥캐인이라는 사람이 등장하기 전까지는 아무도 그런 사람이 있는지 조차 잘 알지 못했어요. 그가 처음 나왔을 때 부시의 지지도가 60%를 넘어서고 있던 반면에 그의 지지도는 3%에 불과 했다고 합니다. 워낙 부시의 정치경력이 화려하고 재력이 튼튼하고 조직력이 막강하고 자기 아버지 부시 전 대통령의 후광을 덧입고 있기 때문에 부시가 나서기만 하면 공화당의 선두주자가 되는 것은 시간 문제라고 보았고 언론들도 그가 대통령 후보의 자리를 차지하는 것은 기정 사실(inevitability)이라고 부추겨 세우는데 인색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보세요. 갑자기 이름도 생소한 맥캐인이라는 사람이 나타나면서 일거에 판세가 뒤집어지는 이변이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앞으로 그 결과가 어떻게 될지 귀추가 주목되지만 새로운 바람을 일으키고 있는 것은 틀림없습니다.
하노이 힐튼
이 사람이 처음 경선을 발표했을 때는 무명에 가까운 정치 신인이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월남전 때 보여 주었던 영웅적인 행동이 알려지면서 급부상을 하게 됩니다. 지난 주 타임지 기사에 커버스토리로 이 사람의 이야기가 자세하게 실렸습니다. 영상을 통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 사람이 67년 월남전이 한참 치열할 때 폭격기를 타고 출격을 나갔다가 대공포화에 맞아 한 호숫가에 추락하게 됩니다. 큰 부상을 입고 겨우 살아나기는 했지만 월맹군의 포로가 되어 가장 악명높은 하노이 힐튼(Hanoi Hilton)이라는 지하 감옥에 갇히게 됩니다. 당시 이 사람의 아버지가 해군제독으로 있었는데 얼마 안있어 태평양함대 사령관으로 진급합니다. 그러자 월맹군들이 정치적인 목적으로 맥캐인을 다른 포로보다 먼저 풀어주려고 합니다. 이 때 그가 한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포로에도 포로수칙이라는 것이 있다. 먼저 포로된 자가 먼저 나가야지 나중 포로된 자가 먼저 나갈 수는 없다. 나대신 나보다 앞서 포로된 자들을 풀어주라. 그 후에 내가 나가겠다."
여러분 한번 생각해 보세요. 무지막지한 고문을 당하며 하루하루 지옥같은 삶을 살아가는데 어느 날 갑자기 풀어준다고 하면 어떻게 하겠어요? 보통 사람 같으면 이게 웬 일인가 싶어 짐싸들고 나가기 바빴을 거예요.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제 발로 다시 감옥으로 들어가서 석방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하니 놀랍지 않습니까? 이런 그의 비범한 미담이 알려지자 그의 인격이 빛을 발하기 시작한 것입니다. 그 동안 소인배 같은 지도자들의 위선적인 행동에 실망한 미국사람들이 고귀하고 아름다운 맥캐인의 인격을 보며 새로운 미래를 꿈꾸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의 나라 이야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미국 대선은 우리나라와도 중요한 관계가 있습니다. 누가 되느냐에 따라서 정책이라든지 모든 면에서 많은 변화를 가져오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이 맥캐인이라는 사람을 주목해 보세요. 앞으로 큰 일을 할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사람의 인격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진 일이 아닙니다. 감옥생활을 하면서 온갖 시련과 고통을 겪으며 다져진 그런 정도의 인격만도 아닙니다.
그가 이렇게 고백합니다. 자기가 감옥에 처음 들어서는 순간 벽에 적혀진 글이 눈에 들어오더랍니다.
'I believe in God the Father Almighty.
나는 전능하신 하나님 아버지를 믿습니다.' 자기보다 앞서 지나간 포로가 써 놓은 이 문구를 보면서 마음속으로 확신을 가지게 되었다는 겁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살아 계시다면 월맹군들이 아무리 고문하고 핍박한다 할지라도 반드시 나를 살려주실 것이다. 그런 믿음으로 감옥생활을 견디어 냈다는 것입니다. 그의 인격은 바로 하나님을 믿는 신앙에서 출발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이런 신앙인격으로 다져진 사람은 어느 누구도 함부로 건드릴 수 없습니다. 맥케인은 빈손으로 시작합니다. 돈이 없습니다. 조직도 변변치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의 돌풍은 식을 줄을 모릅니다. 한 때 부시를 지지하던 사람들마저도 마음을 바꾸고 있다고 합니다. 그는 한 사람의 인격이 얼마나 큰 영향력을 끼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돈이나 조직이나 힘으로 사람을 사로잡으려 하지 말고 인격으로 사로잡으시기 바랍니다. 최후의 승리자는 참된 인격을 갖춘 자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고 예수인격으로 여러분의 인생을 높이 세워 나가시기 바랍니다.
실패의 교훈을 배우시오
참된 성공자는 실패를 통해서 무엇인가를 끊임없이 배우는 사람입니다. 실패하는 사람은 실패를 통해서 배우지 못하기 때문에 실패하는 것입니다. 실패 중에 가장 최악의 실패는 실패를 통해서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하는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나 참된 성공자는 실패했어도 그 실패를 통해서 내게 주시는 교훈이 무엇인가를 깨달아 그 교훈대로 살려고 힘쓰는 사람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알고 그 안에서 자신의 미래를 준비하고 설계해 나갈 때 주님은 우리를 실망의 늪에서, 좌절의 구렁에서 건져내시고 재기하도록 도우실 것입니다.
만 번의 실패
질병으로 고생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사업의 부도로 불안해하며 전전긍긍해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자녀들의 잇단 진학 실패로 인해 고통스럽지는 않습니까? 어떤 실패를 경험했든지 간에 그 실패를 통해서 주시는 주님의 교훈이 무엇인가를 잘 헤아리고 그 뜻에 자신의 인생을 전적으로 맡기고 나아갈 때 실패는 더 이상 실패가 아니라 성공으로 가는 지름길이 되는 줄로 믿습니다.
실패를 딛고 위대한 성공을 이루어낸 인물들 중에 에디슨(Edison)이라는 분이 있습니다. 전기를 발명한 사람입니다. 전기불이 환한 빛을 내는 것은 휠라멘트라는 가는 선에 전류가 통하면서 빛을 발하기 때문입니다. 이 휠라멘트 하나를 발명하기 위해 오랜 세월 무수한 노력을 기울입니다. 전하는 말에 의하면 그 당시에 존재하는 모든 재료를 다 사용해 보았다고 하는데 그렇게 애써 만든 것마다 실패하고 말았으니 얼마나 낙담이 되었겠어요? 그를 후원하던 사람들도 이제는 다 틀렸다며 등을 돌리는 바람에 재정적으로도 어려운 처지에 빠지게 됩니다.
그런 가운데서 일 만 번째 실패를 하자 참다 못한 그 조수가 한마디했다고 합니다. "선생님! 이번이 만 번째입니다. 우리는 만 번째 실패를 했습니다.
그래도 연구를 계속하시겠습니까?" 이 때 에디슨이 이렇게 대꾸했다지 않아요. "실패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이렇게 하면 안 된다는 것을 겨우 만 가지 배웠을 뿐이네."
여러분 얼마나 귀한 말입니까? 위대한 사람에게는 무언가 다른 것이 있습니다. 그는 참담한 실패를 했어도 낙심하지 않고 계속해서 분투 노력함으로 위대한 업적을 이루어냈던 것입니다. 실패의 참 뜻을 알고 그 속에서 주님이 주시는 교훈을 배우는 자에게는 결코 실패란 있을 수 없습니다. 참 성공이란 실패의 교훈이란 밑거름 위에 세워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람이 되시오
세상이 원하는 성공자가 되려다가 실패하셨나요.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이 원하시는 성공자가 되십시오. 이것이 성공의 첫걸음입니다. 참된 성공자는 성공이 내게 달려있는 것이 아니라 주님께 속한 것임을 알고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이 비밀은 실패를 해본 자만이 알 수 있습니다. 실패를 경험함으로 모든 인생사가 내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된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원체 잘 나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복이 무엇이며 은혜가 무엇인지를 잘 몰라요. 자기 실력으로, 자기 재능으로, 자기 지혜로 얼마든지 길이 잘 열리고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도움이 절실히 필요하지가 않은 거예요. 그러니 무슨 은혜가 필요하며 무슨 기도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러나 실패해 본 사람은 자신의 한계를 철저히 인식하게 되고 '아, 나는 부족하구나. 내 힘과 지혜로는 어쩔 수가 없구나. 나의 능력이 이 정도밖에 안되는 구나, 그 이상은 하나님께 맡길 수밖에 없구나.' 라는 것을 깨달아서 겸손히 주님의 도움을 구하는 자세를 가지게 되는 것입니다.
인생의 역전
성공할 수 있는 자원을 많이 가지고 있다고 해서 반드시 성공하는 것이 아니구요 빨리 달린다고 해서 늘 선착하는 것이 아닙니다. 실력이 있다고 언제나 우승이 보장되어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늘의 본문은 우리에게 그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아무리 빨리 달려도 돌부리에 걸려 넘어져 부상을 입으면 그만이에요. 그 경주를 다 마칠 수 없습니다. 그것으로 탈락입니다. 그 사람 뒤에 뒤따라오던 선수가 대신 경주에 우승하게 됩니다. 인생이란 그런 것입니다. 그러니 남보다 앞서 달리고 있다고 자만하거나 우쭐댈 것도 아니고. 남보다 뒤쳐지고 늦어졌다고 경주를 포기하거나 결코 낙심할 일도 아닙니다. 어느 때라도 극적인 반전과 역전이 가능하다는 사실을 잊지 마십시오.본문 11절을 다시 보시기 바랍니다.
"내가 돌이켜 해 아래서 보니 빠른 경주자라고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유력자라고 전쟁에 승리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식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명철자라고 재물을 얻는 것이 아니며 기능자라고 은총을 입는 것이 아니니"
이 모든 성공이 누구로부터 온다는 것입니까? 하나님으로부터 온다는 말씀입니다. 사람 마음대로 인생이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자녀들에게 아무리 공을 들이고 정성을 기울여 이것 저것 다 먹이고 입히고 가르친다고 해서 다 잘되고, 다 성공하는 것이 아니에요. 내가 열심히 키우기만 하면 뭔가 되겠지 라고 착각하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성공시켜 주셔야 성공하는 거예요. 진정한 성공을 원하십니까? 그렇다면 먼저 하나님의 사람이 되십시오.
하나님의 사람은 아무나 되는 것이 아닙니다. 인생의 쓰디쓴 실패와 절망을 맛본 자들만이 하나님의 사람으로 부름을 받게 됩니다. 왜냐하면 인간은 실패를 통해서만이 더욱 주님을 의지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실패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라고 부르시는 하나님의 음성임을 기억하십시오. 지금 이 시간 실패의 자리에 서 있습니까? 절망의 눈물을 흘리고 계십니까? 주님 앞으로 나아오십시오. 세상만을 의지하고 바라보다가 실패했나요? 자신의 능력과 지혜만을 믿다가 쓰러졌나요? 실패를 성공으로 바꾸시는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실패야말로 여러분을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살아가라는 주님의 거룩한 신호임을 기억하시고 주님 앞에 자신을 드리기 위해 힘쓰십시오. 여러분의 인생이 주안에서 성공적이고 복된 인생이 되어질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훌륭한 인격의 기초 위에 우리의 성공을 세워가야 합니다. 그것이 참된 성공의 길입니다. 실패를 했더라도 실패를 통하여 하나님의 높으신 뜻을 깨달아 거기서 인생의 교훈을 배우고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자신의 인생을 하나님 앞에 맡기며 나아갈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실패의 늪에서 건져주셔서 재기에 성공하도록 도우시며 여러분의 인생이 정말 주님의 손에 위대하게 들려 쓰임 받도록 역사해 주실 줄로 믿습니다. 이런 귀한 복이 여러분과 여러분 자녀와 여러분 가정에 충만이 임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기 도>
사랑이 많으신 하나님 아버지! 은혜를 감사합니다.
이 시간 전도서의 말씀을 통하여 참된 성공이 무엇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쳐 주시니 감사합니다.
빠른 경주자라고 다 선착하는 것이 아니며 지혜자라고 유력한 자라고 다 이 세상에서 성공하는 것이 아니라 참된 성공은 오직 주님이 주시는 것임을 깨달아 알게 하옵소서.
세상의 거짓된 성공에 현혹되지 않게 하시고 참된 신앙인격 위에 우리의 인생을 세워 주님의 뜻을 이루어 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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