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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이는 네 후손이 이같으리라 하신 말씀대로 많은 민족의 조상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바 됨과 사라의 태가 죽은 바 됨을 알고도 믿음이 약하여지지 아니하고 믿음이 없어 하나님의 약속을 의심하지 않고 믿음으로 견고하여져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며 약속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줄을 확신하였으니" (로마서 4:18-21)
"기록된 바 내가 너를 많은 민족의 조상으로 세웠다 하심과 같으니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로마서 4:17)
1. 얄팍한 확률 게임의 파산 : 인간의 자원이 '제로(0)'가 되는 절망의 밤
세상 사람들이 말하는 '소망'은 철저하게 확률과 통계라는 얄팍한 **'분배(Distribution)'**의 논리에 뿌리를 내리고 있습니다. "내 통장에 아직 여윳돈이 조금 남아 있으니, 내 건강이 아직은 버틸 만하니, 의사가 생존 확률이 10퍼센트는 된다고 했으니 나는 희망을 갖겠다." 세상은 자신이 쥐고 있는 자원의 파이를 쪼개어 계산기를 두드린 후, 단 1퍼센트의 가능성이라도 보일 때 그것을 '소망'이라고 부릅니다.
그러나 똑똑히 들으십시오! 성경이 말하는 진짜 소망, 세상을 뒤집어엎는 십자가의 소망은 인간의 알량한 가능성이 1퍼센트라도 남아 있을 때는 결코 시작되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4장에서 기독교 소망의 본질을 보여주기 위해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법정에 세웁니다.
아브라함이 하나님의 약속을 받았을 때, 그의 현실은 어떠했습니까? 성경은 그의 상태를 잔인할 정도로 적나라하게 폭로합니다. "그가 백 세나 되어 자기 몸이 죽은 바 됨과 사라의 태가 죽은 바 됨을 알고도!"
생물학적 사형 선고입니다! 아브라함의 몸은 마른 막대기처럼 죽었고, 사라의 태는 완벽하게 닫혀버린 무덤이었습니다. 인간의 모든 과학, 의학, 철학, 통계학을 다 동원해도 이곳에서 생명이 탄생할 확률은 정확히 **'제로(0퍼센트)'**였습니다! 자원을 분배할 껀덕지조차 완벽하게 증발해버린, 인간의 힘으로는 단 1밀리미터도 전진할 수 없는 완벽한 '절대 무(無)'의 상태였습니다!
2. 파라 엘피다(Para Elpida) : 이성의 무덤 위에서 폭발하는 초월적 소망
바로 이 완벽한 절망, 인간의 이성과 논리가 완전히 파산하여 묫자리를 파고 누운 그 무덤 위에서, 바울은 인류 역사를 뒤흔드는 가장 웅장한 사자후를 터뜨립니다!
"아브라함이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 믿었으니!"
여기서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고'로 번역된 헬라어 원문이 바로 이 강해의 심장인 **‘파라 엘피다 에프 엘피디(Para elpida ep elpidi)’**입니다!
‘파라(Para)’는 ‘~에 반대하여, ~을 거스르고(Against)’라는 뜻이며, ‘엘피다(Elpida)’는 ‘소망’입니다. 직역하면 **"인간의 모든 소망이 완벽하게 끝장난(Against hope) 바로 그 절망의 한복판에서, 오직 하나님의 약속이라는 절대적인 소망(In hope) 위에 자신의 전 존재를 미친 듯이 던져버렸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이 복음이 선포하는 진짜 소망입니다! 소망은 상황이 좋아질 것 같아서 갖는 감정이 아닙니다. 소망은 내 눈앞의 현실이 나를 조롱하고, 내 육신이 썩어 들어가며, 세상의 모든 계산기가 "너는 끝났다"라고 사형 선고를 내리는 그 캄캄한 흑암을 뚫고! 오직 창조주 하나님의 약속 하나만을 거머쥐고 맹렬하게 포효하는 거룩하고도 미친 야성입니다! 세상은 이것을 정신 나간 광기라 조롱하지만, 성경은 이것을 우주를 호령하는 '파라 엘피다'의 기적이라 선포합니다!
3. 크레아티오 엑스 니힐로 :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공급과 충만
아브라함이 도대체 무엇을 근거로 이 미친 소망(파라 엘피다)을 가질 수 있었습니까? 로마서 4장 17절은 그 소망의 뿌리가 맞닿아 있는 창조주의 위대한 두 가지 본질을 벼락같이 선포합니다.
"그가 믿은 바 하나님은 죽은 자를 살리시며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이시니라!"
첫째, 죽은 자를 살리시는 부활의 하나님입니다! 아브라함은 자신의 죽은 몸과 사라의 죽은 태를 보지 않았습니다. 그는 무덤 문을 박살 내고 시체를 향해 생기를 불어넣으시는 생명의 주관자를 보았습니다.
둘째,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무에서 유로의 창조(Creatio ex nihilo)의 하나님입니다! 세상은 이미 있는 자원을 쪼개어 '분배(Distribution)'하려 들지만, 우리 하나님은 자원이 고갈된 곳에서 통곡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인간의 자원이 '제로(0)'가 된 그 텅 빈 공간에, 말씀 한마디로 우주의 에너지를 창조해 내사 댐이 터지듯 폭포수처럼 쏟아부어 버리시는 무한하고도 압도적인 **'공급과 충만'**의 근원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위대한 것이 아닙니다. 아브라함이 자신의 영혼의 닻을 내린 대상, 즉 "말씀하신 그것을 또한 능히 이루실" 전능하신 하나님이 위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은 조건부 계약서가 아닙니다. 창조주의 약속은 그 말씀이 선포되는 순간, 그 말씀 스스로가 살아서 박동하며 기어코 역사 속에서 그 실체를 빚어내고야 마는 맹렬한 창조의 폭발력 그 자체입니다!
4. 찰스 스펄전의 사자후 : 불가능을 비웃는 거룩한 배짱
영국의 위대한 설교가 찰스 스펄전(Charles H. Spurgeon) 목사님은 불가능 앞에서 두려워 떠는 성도들을 향해 이 '파라 엘피다'의 진리를 들어 피를 토하는 사자후를 질렀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에게 약속을 주실 때, 우리는 끊임없이 내 주머니를 뒤적거리며 그 약속을 이룰 자원이 내게 있는지 계산하려 듭니다. 이 얼마나 구역질 나는 교만입니까! 아브라함의 위대함은 자신의 늙은 육신을 계산하지 않았다는 데 있습니다. 진정한 믿음과 소망은 인간의 가능성이 끝나는 벼랑 끝에서 비로소 날개를 폅니다!
하나님의 약속 앞에서는 환경의 불가능함 따위는 깃털보다 가볍습니다. 참된 소망은 무덤을 향해 맹렬하게 웃음을 터뜨리며 이렇게 외칩니다. '불가능이라고? 좋다! 불가능하기 때문에 이것은 오직 전능하신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일이다!' 여러분, 세상의 얄팍한 확률을 찢어버리십시오! 하나님은 여러분의 통장 잔고나 여러분의 알량한 건강 상태에 의존하여 일하시는 무능한 신이 결코 아닙니다!"
그렇습니다! 마귀는 끊임없이 우리의 시선을 우리의 '죽은 몸(현실)'으로 끌어내리려 합니다. "네 나이가 몇이냐? 네 교회의 재정이 얼마냐? 네 자녀의 성적이 어떠하냐? 너는 끝났다!"라고 참소합니다. 그러나 파라 엘피다의 소망을 가진 자는 현실을 도피하지 않으면서도 현실에 굴복하지 않습니다. "그래, 내 현실은 죽었다! 내 자원은 고갈되었다! 그러나 나를 부르신 만군의 여호와께서는 없는 것을 있는 것으로 부르시는 창조주이시다!"라고 피 튀기게 맞서는 것입니다!
5. 결론 : 썩은 계산기를 부수고, 파라 엘피다의 소망으로 포효하라!
존경하는 모든 세대의 동역자 여러분, 그리고 사방이 꽉 막힌 절대 불가능의 벽 앞에서 피눈물을 삼키며 오늘 하루를 버텨내고 계신 거룩한 성도 여러분!
당장 그 알량한 세상의 계산기를 십자가에 쳐서 박살 내어 버리십시오!
세상의 확률과 통계로 내 인생의 결론을 내리려는 그 지독한 불신앙과 노예근성을 완전히 끝장내십시오!
의사가 생존 확률이 0퍼센트라고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까? 통장의 잔고가 완벽하게 말라붙었습니까? 내 힘으로는 얽히고설킨 이 지옥 같은 관계를 단 1밀리미터도 풀 수 없습니까?
그렇다면 징징거리며 주저앉지 말고, 기뻐 뛰며 맹렬하게 일어서십시오! 바로 그 완벽한 절망의 자리가, 무에서 유를 창조하시는 만군의 여호와의 벼락같은 기적이 폭발할 가장 영광스러운 무대입니다!
나의 죽은 태를 쳐다보며 절망하는 짓을 멈추십시오. 바랄 수 없는 중에 바라는 이 미친 소망, '파라 엘피다'의 밧줄을 맹렬하게 거머쥐십시오! 인간의 알량한 분배를 거부하고, 오직 하늘 보좌를 찢고 쏟아져 내리는 창조주의 그 무한한 공급과 충만을 향해 여러분의 전 존재를 내던지시기를! 무덤을 부수고 영원한 생명을 창조하시는 만왕의 왕,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가장 맹렬히 축원합니다! 아멘!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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