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롬 15: 14 - 16 바울의 선교관
5. 바울의 선교관 ( 15: 14 - 16 )
14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15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16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롬 15: 14 선함이 가득하고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 내 형제들아!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나도 확신하노라. )
바울은 로마 교인들이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서로 권할 수 있는 자들임을 확신하였다.
선함은 성도의 특징이다. 지식도 겸손과 절제를 동반할 때 분명히 영적 성장과 성화의 중요한 요소이다.
* 벧후 1: 5-6 - 5 그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 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또 서로 권면하는 것도 영적 성장의 결과이다. 선함이 가득하고 또 모든 지식이 차서 서로 권면하는 일은 오늘날 우리에게도 필요하다.
1] 내 형제들아
바울은 로마 교인들에게 좀 더 부드럽고 다정한 호칭을 사용하여 친밀감을 형성하고 있다.
이 용어는 본서에서 자주 사용하는 표현이다.(1: 13. 7: 1. 8: 12. 10: 1. 16: 17)
로마 교인을 향한 애정 어린 마음을 드러내고 있다.
2] 너희가 스스로 선함이 가득하고 모든 지식이 차서
당시 로마의 성도들에게 약간의 불화와 갈등은 있었다.(14장) 전체적으로 볼 때 로마 교회는 신앙의 성숙한 면모가 가득했다.
'가득하고'(*, 메스토이)는 충분히 가득 찼다는 말로서 1: 29에서 불의, 추악, 탐욕, 악의가 가득 찼다는 말을 했을 때도 사용된 단어다.
'선함'의 헬라어는 '아가도쉬네스'(*)로 여기서는 선천적 기질로서의 '선함, 착함'이 아니라 성령의 내주하심으로 인해 삶 속에서 드러나는 '새사람의 인격의 덕성 및 도덕적인 성숙함'을 의미한다.
'모든 지식'(*, 파세스 그노세오스)은 로마의 성도들이 더 배울 것이 없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기독교 신앙에 대한 이해로서(J. Murray) 저희에게 필요한 구원의 지식이 다 있어서 안전하고 확실하게 일을 진행할 수 있다는 뜻이다(Lenski).
더 나아가 고전 8: 1, 7, 10-11에서도 언급되고 있는 '그노시스'라는 단어는 구원에 관한 지식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통찰과 이해를 나타내고 있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언약을 오해했지만 로마의 성도들은 바울이 지금 말하고 있는 하나님의 언약의 내용과 계획을 잘 이해하고 있는 것을 말한다(Dunn).
* 고후 2: 14 - 항상 우리를 그리스도 안에서 이기게 하시고 우리로 말미암아 각처에서 그리스도를 아는 냄새를 나타내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라.
* 고후 4: 6 - 어두운 데에 빛이 비치라. 말씀하셨던 그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아는 빛을 우리 마음에 비추셨느니라.
* 고후 10: 5 - 하나님 아는 것을 대적하여 높아진 것을 다 무너뜨리고 모든 생각을 사로잡아 그리스도에게 복종하게 하니
* 빌 3: 8 - 또한 모든 것을 해로 여김은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내가 그를 위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배설물로 여김은 그리스도를 얻고
3] 능히 서로 권하는 자임을
로마의 성도들이 갖춘 성숙한 신앙의 또 다른 면을 말하고 있다.
'서로'(*, 알렐루스)는 약한 자들과 강한 자들 즉 유대인 신자들과 이방인 신자들을 가리킨다. 저희가 이렇게 서로 권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에게 선한 마음과 충분한 지식이 있어서 저희 믿음과 생활에 필요한 것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바울이 아직 방문하지 않은 로마 교회는 목회자들이 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들은 항상 피차 권면하여 진리에서 이탈하지 않고 그리스도의 은혜와 사랑 가운데 거할 수 있었던 것이다.
* 살전 5: 11 - 그러므로 피차 권면하고 서로 덕을 세우기를 너희가 하는 것 같이 하라.
4] 나도 확신하노라.
헬라어 성경에는 재귀 대명사 '아우토스'(*)가 삽입되어 '나 자신도 확신하노라'고 기록되어 있다. 이는 두 가지 뜻으로 해석할 수 있다.
Ⓐ 다른 사람의 객관적인 증거와 평가를 떠나서 바울 자신의 깊은 확신을 강조하는 표현이다(Meyer, Dunn).
Ⓑ 어떤 객관적인 자료에 근거해서 확증하고 확신한다는 표현이다(E. F. Harrison).
우리는 여기서 위의 두 견해가 다 작용한 가운데서 바울이 로마 교회에 대한 확신을 선언했다고 보아도 크게 잘못됨은 없겠으나 두 번째 견해가 좀 더 자연스런 해석이라 할 수 있겠다.
왜냐하면 '확신하노라'(*, 페페이스마이)가 수동 완료형이므로 자신의 추측에서라기보다는 로마 교회의 사정을 잘 알 수 있는 어떤 근거에 의해서 확신했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
바울의 이러한 선언이 믿을 만한 증거에 바탕을 둔 확신이 아니라면 이것은 마음에 없는 칭찬을 감추기 위한 과장된 말에 불과한 것이다.
롬 15: 15 생각나게 하려고 -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더욱 담대히 대략 너희에게 썼노니 (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더욱 담대히 대강 너희에게 썼노니)
바울은 로마 교인들이 복음에 대해 이미 알고 있고 믿고 있다고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에게 다시 생각나게 하기 위해 하나님께서 자기에게 주신 은혜를 인하여 담대히 몇 마디 썼다고 표현하였다.
이것은 바울 사도의 겸손한 태도이다. 사람이 하나님의 진리를 처음 배울 때도 있지만, 늘 새 것을 배우지는 않는다.
구원받은 성도는 이미 많은 것들을 배웠다. 오늘 우리도 아는 것을 다시 생각나게 하는 태도로 겸손히 피차 무엇을 권면해야 하고 또 아는 내용일지라도 복습하는 태도로 감사히 듣고 또 들어야 할 것이다.
1] 그러나 내가 너희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 에파나밈네스콘)는 잘 쓰지 않은 용어로 신약성경에서 본 절에만 나온다. 그 뜻은 '어떤 교리를 반복한다.'는 의미이다.
즉 그들이 알지 못한 어떤 새로운 것을 가르친다는 뜻이 아니고 이미 알고 있는 복음의 진리를 회상시킨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여기서 바울은 왜 '다시 생각나게 하려고'라고 했을까?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다.
(1) 복음의 원리와 명령을 안다고 하면서도 그들의 행함에 부족함이 있는 것을 보고 그것을 더 굳건히 세우기 위해서다.
물론 성숙한 신앙적 면모를 갖춘 로마 교회였지만 온전함에 이른 것이 아니었기에 바울은 다시 한 번 진리를 일깨워 주어 로마 교회를 튼튼하게 세우려고 하였을 것이다.
(2) 이미 그들이 잘 알고 있는 것이라는 점을 강조하기 위해서다.
이는 수신자들의 신앙의 질을 존중해 주는 예의 바른 태도이다(Dunn).
(3) 가르친다는 표현을 사용하지 않고 '생각나게 하려고'란 용어를 쓴 것은 바울의 신앙 인격의 겸손한 표현법이다(Hendriksen).
이는 형제를 권면할 때에 상대의 인격을 존중해 주는 모범을 보여준다.
2]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로 말미암아
로마의 성도들과 마찬가지로 바울에게 있어서도 하나님의 은혜는 특별한 의미와 감회를 주는 것이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은혜'(* 텐 카린 텐 도데이산 모이 휘포 투 데우)는 세 가지로 해석될 수 있다.
Ⓐ 그리스도 안에서 만세 전에 택정함을 입은 것을 말한다.
* 엡 1: 3-6 - 3 찬송하리로다. 하나님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속한 모든 신령한 복을 우리에게 주시되 4 곧 창세 전에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택하사 우리로 사랑 안에서 그 앞에 거룩하고 흠이 없게 하시려고 5 그 기쁘신 뜻대로 우리를 예정하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자기의 아들들이 되게 하셨으니 6 이는 그가 사랑하시는 자 안에서 우리에게 거저 주시는바 그의 은혜의 영광을 찬송하게 하려는 것이라.
자신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오직 하나님의 일반적인 주권으로 선택함을 받은 것을 바울은 언제나 하나님의 은혜라고 노래했다.
Ⓑ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으로 인해 구원함을 받은 것을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강조했다.
* 엡 2: 5, 8 - 5 허물로 죽은 우리를 그리스도와 함께 살리셨고 (너희는 은혜로 구원을 받은 것이라.) 8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지난 날 무지 가운데 있을 때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하고 믿는 자를 멸절(滅絶)시키려 했던 악한 자신을 부활하신 주님께서 다메섹 도상에서 친히 만나 주심으로 자기를 불러 회개시키고 구원해 주신 그 사건을 그는 평생 감격하며 하나님의 크신 은혜라고 찬송했다.
바울 사도는 누구보다도 하나님을 대적했던 자신이 구원을 받은 것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은혜라고 그의 서신 곳곳에서 고백하고 있다(3: 24).
* 딛 2: 11-14 - 11 모든 사람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나타나 12 우리를 양육하시되 경건하지 않은 것과 이 세상 정욕을 다 버리고 신중함과 의로움과 경건함으로 이 세상에 살고 13 복스러운 소망과 우리의 크신 하나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광이 나타나심을 기다리게 하셨으니 14 그가 우리를 대신하여 자신을 주심은 모든 불법에서 우리를 속량하시고 우리를 깨끗하게 하사 선한 일을 열심히 하는 자기 백성이 되게 하려 하심이라.
* 히 2: 9 - 오직 우리가 천사들보다 잠시 동안 못하게 하심을 입은 자. 곧 죽음의 고난 받으심으로 말미암아 영광과 존귀로 관을 쓰신 예수를 보니 이를 행하심은 하나님의 은혜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을 위하여 죽음을 맛보려 하심이라.
Ⓒ 사도적인 직분과 사역에 관련된 고백으로서 바울은 자기의 사도 직분을 하나님이 주신 은혜라고 말한다.
* 행 9: 15 -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고전 15: 9-11 - 9 나는 사도 중에 가장 작은 자라. 나는 하나님의 교회를 박해하였으므로 사도라 칭함 받기를 감당하지 못할 자니라. 10 그러나 내가 나 된 것은 하나님의 은혜로 된 것이니 내게 주신 그의 은혜가 헛되지 아니하여 내가 모든 사도보다 더 많이 수고하였으나 내가 한 것이 아니요 오직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은혜로라. 11 그러므로 나나 그들이나 이같이 전파하매 너희도 이같이 믿었느니라.
* 엡 3: 7-9 - 7 이 복음을 위하여 그의 능력이 역사하시는 대로 내게 주신 하나님의 은혜의 선물을 따라 내가 일꾼이 되었노라. 8 모든 성도 중에 지극히 작은 자보다 더 작은 나에게 이 은혜를 주신 것은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풍성함을 이방인에게 전하게 하시고 9 영원부터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 속에 감추어졌던 비밀의 경륜이 어떠한 것을 드러내게 하려 하심이라.
* 딤전 1: 12-13 - 12 나를 능하게 하신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께 내가 감사함은 나를 충성되이 여겨 내게 직분을 맡기심이니 13 내가 전에는 비방자요 박해자요 폭행자였으나 도리어 긍휼을 입은 것은 내가 믿지 아니할 때에 알지 못하고 행하였음이라.
교회와 믿는 자를 핍박하여 주님을 대적했던 죄인 중에 괴수인 자신을 불러 구원해 주실 뿐만 아니라 이방인들에게 복음을 전파하는 '이방인의 사도'로 삼아주신 것이야말로 은혜 중의 은혜라고 간증하는 것이다.
* 롬 1: 1, 5 - 1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5 그로 말미암아 우리가 은혜와 사도의 직분을 받아 그의 이름을 위하여 모든 이방인 중에서 믿어 순종하게 하나니
* 갈 1: 1, 15 - 1 사람들에게서 난 것도 아니요 사람으로 말미암은 것도 아니요 오직 예수 그리스도와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 아버지로 말미암아 사도 된 바울은 15 그러나 내 어머니의 태로부터 나를 택정하시고 그의 은혜로 나를 부르신 이가
* 갈 2: 9 - 또 기둥 같이 여기는 야고보와 게바와 요한도 내게 주신 은혜를 알므로 나와 바나바에게 친교의 악수를 하였으니 우리는 이방인에게로, 그들은 할례자에게로 가게 하려 함이라.
이중 본문에서 말하는 은혜는 문맥상 세 번째 견해가 가장 타당한 듯하다. 즉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예수께서 부르시고 세우신 사도적인 직분과 사역을 뜻한다(Murray, Dunn).
3] 더욱 담대히(*, 톨메로테론)
이 말은 비교적인 의미가 내포된 부사로서 바울 사도의 다른 서신보다도 본서를 '더욱 담대한 마음으로' 썼음을 나타낸다(12: 3. 14 장).
바울은 자신이 로마 교회를 세우지 않았고 또한 남의 터 위에 건축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갖고 있었으나 하나님께서 은혜로 택정하시고 이방인의 사도라는 막중한 사명을 맡겨 주심을 생각할 때 그들을 권면할 자격을 찾게 되었을 뿐만 아니라 '대담하게' 말할 수 있었다.
4] 대략(*, 아포 메루스)
이는 두 가지로 해석이 가능하다.
Ⓐ '부분적으로', 혹은 '어떤 곳에는'이라고 해석될 수 있다(Meyer).
Ⓑ '다소', 또는 '어느 정도'라고 해석될 수 있다(Murray, Godet).
여기서 우리는 두 번째 해석을 취한다 해도 크게 틀렸다고는 할 수 없겠으나 첫 번째 견해를 취함이 좀 더 적절한 해석이라 하겠다. 왜냐하면 앞에서 말한 '더욱 담대히'란 말은 Ⓐ의 해석과 연결시킬 때 비교적인 의미가 선명하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즉, '어느 곳에서는 내가 더 대담하게 썼다'고 자연스럽게 연결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여기서 '어느 곳에서'(부분적으로)란 6: 12,19. 8: 9. 12: 3. 13: 3,13,14. 14: 3,4,10,13,15,20 등을 들 수 있다(Meyer).
위와 같은 구절들에서 바울은 더욱 담대한 권면을 하고 있다.
5] 너희에게 썼노니(*, 에그랖사)
이 말은 '과거에 ~했다'는 단순 과거형 동사로서 바울 사도가 이제까지 로마서를 쓴 사실을 말한다.
여기서 우리는 본서 저자가 사도 바울임을 다시 한 번 확인하는 증거를 보게 된다.
롬 15: 16 복음의 제사장 -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군이 되어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그것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심직하게 하려 하심이라. )
바울 사도는 자신을 이방인을 위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고 표현하였다. 사도는 권위 있는 직분이지만 일꾼이다. 교회의 모든 직분은 봉사의 직분이다.
예수께서는 섬김을 받으러 오지 않으셨고 섬기러 오셨다. 그는 친히 자기 목숨을 우리의 대속물로 주셨다.
교회의 직분자는 주의 발자취를 따라야 한다. 바울은 자신의 사역을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라고 표현하였다. 그것은 그의 전도 사역을 가리킨 것이다.
그의 제물은 이방인들이었다. 그는 성령 안에서 이방인들을 거룩하게 구원하여 하나님께 드리는 일을 힘썼다. 바울의 사명은 분명하였다. 그것은 영혼을 구원하는 전도의 일이었다.
오늘날 교회는 이 일을 계승하여 이 일에 전념해야 한다. 전도는 교회의 최대의 사업이다. 바울은 그에게 허락된 하나님의 은혜를 본 절에서 구체적으로 약술하고 있다
1] 이 은혜는 곧 나로 이방인을 위하여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 되어
바울은 대제사장의 명을 받아 기독교도들을 결박하여 예루살렘으로 잡아오기 위해 다메섹으로 가던 중 부활하신 그리스도를 만나 이방인을 위한 복음의 사도로 부르심을 받게 되었다.
* 행 9: 15 - 주께서 이르시되, 가라. 이 사람은 내 이름을 이방인과 임금들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택한 나의 그릇이라.
* 행 26: 14-19 - 14 우리가 다 땅에 엎드러지매, 내가 소리를 들으니 히브리 말로 이르되, 사울아. 사울아. 네가 어찌하여 나를 박해하느냐? 가시채를 뒷발질하기가 네게 고생이니라. 15 내가 대답하되, 주님 누구시니이까? 주께서 이르시되, 나는 네가 박해하는 예수라. 16 일어나 너의 발로 서라. 내가 네게 나타난 것은 곧 네가 나를 본 일과 장차 내가 네게 나타날 일에 너로 종과 증인을 삼으려 함이니 17 이스라엘과 이방인들에게서 내가 너를 구원하여 그들에게 보내어 18 그 눈을 뜨게 하여 어둠에서 빛으로, 사탄의 권세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고 죄 사함과 나를 믿어 거룩하게 된 무리 가운데서 기업을 얻게 하리라 하더이다. 19 아그립바 왕이여! 그러므로 하늘에서 보이신 것을 내가 거스르지 아니하고
즉 사도직의 은혜가 이방인을 하나님께 인도하는 숭고한 사역의 성취를 위해 바울에게 주어진 것이다(Godet). 그 후에 바울은 이방인의 사도로 온 생애를 전략하였다.
'일꾼'에 해당하는 헬라어 '레이투르곤'(*)은 '레이토스'(*, '백성')와 '에르곤'(*, '일')이 합성된 단어로 공직자 곧, 공적인 관리를 뜻한다(Godet).
종종 '군대의 종이나 왕의 신하'나 '성소에 부리는 자'에 대해서도 사용된다.
* 히 8: 2 - 성소와 참 장막에서 섬기는 이시라 이 장막은 주께서 세우신 것이요 사람이 세운 것이 아니니라.
신약에서는 하나님에 의하여 임명된 일꾼을 표현하는 데 사용되고 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의 일꾼'이라는 것은 그리스도에 의해서 임명받은 일꾼을 말한다(Meyer).
바울은 이 단어를 그리스도의 일꾼 된 자신에게도 사용하지만 또한 바울 자신의 일꾼 된 에바브로 디도에 대해서도 사용하고 있다.
* 빌 2: 25 - 그러나 에바브로디도를 너희에게 보내는 것이 필요한 줄로 생각하노니 그는 나의 형제요 함께 수고하고 함께 군사 된 자요 너희 사자로 내가 쓸 것을 돕는 자라.
2]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분을 하게 하사
예수 그리스도께서 친히 바울에게 맡기신 사도직은 범세계적인 직무로서 복음 전파의 직무는 물론 제사장적 성격을 띤 직무였다. 즉 바울의 사명은 이방 세계를 하나님이 받으심 직한 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일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이러한 사실은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 히에루르군타)란 단어가 명백히 보여준다. 신약에서 본 절에서만 사용된 '히에루르군타'란 단어는 '히에로스'(*, '거룩한')와 '에르고'(*, '일')의 합성동사 '히에루르고스'(*)에서 파생한 동사로서 '거룩한 사명을 수행하다', '제사장으로 봉사하다'의 뜻을 가진다.
이러한 사명을 받은 바울의 역할은 다음과 같다.
(1) 제사장 직무를 맡은 바울의 역할은 언제나 자기 자신의 인격은 물론 모든 청중, 곧 이방인의 인격을 하나님께 바치는 구원의 메신저(messenger)로서의 봉헌(奉獻) 행위였다.
(2) 모든 교회들을 위해 끊임없이 기도하는 것이었다.
이것은 본서는 물론(1: 8-10) 모든 바울 서신의 첫머리에 나타나는 모습이다.
(3) 구체적으로 복음을 전파하는 행위를 포함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복음의 제사장 직무를 하게 하사'란 표현에서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다. 이와 같이 바울의 사도직은 제사장적 직무를 수행하는 기능이 있었다(Godet).
3] 이방인을 제물로 드리는 것이
이것은 신약에서 찾아볼 수 없는 독특한 비유적 표현으로서 아마도 사 66: 20로부터 발전된 개념일 가능성이 높다(Murray).
* 사 66: 20 -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뭇 나라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낙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바울은 여기서 '이방인'(*, 톤 에드논)과 '제물'(*, 헤 프로스포라)을 동격으로 취급하여 복음에 의하여 얻어진 이방인을 사도가 하나님께 드리는 제물 즉 영적인 희생 제물이라고 말하고 있다(Godet, Meyer).
'제물'이란 제사 의식에서 마지막으로 바쳐지는 것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심 직한 것이 되어야 한다. 따라서 이 비유적인 표현에서 우리는 복음 전파자의 사역의 목표를 보게 된다.
그것은 이방인들에게 단순히 복음을 전파할 뿐만 아니라 그들로 하여금 복음을 순종케 함으로 하나님께서 받으심 직한 제물이 되도록 그들의 영혼을 성결케 해야 한다는 사명인 것이다.
이런 뜻에서 사도직의 기능을 제사장의 직무를 수행함으로 묘사했고, 사역의 대상인 이방인을 구약의 제사에서 제사장이 드리는 제물로 비유하여 나타낸 것이다(Calvin).
4]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 받으실 만하게 하려 하심이라.
당시 복음을 통해 회개한 이방인 신자들이 할례를 받지 않았다고 하여 불결하다고 주장하는 유대인 신자들이 있었다. 여기에 대한 대답으로 바울은 이방인 신자들이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고 깨끗케 되어 하나님께서 받으심 직하게 된다고 말한 것이다(Blaiklock).
'성령 안에서 거룩하게 되어'의 헬라어 '헤기아스메네 엔 프뉴마티 하기오'(*)는 완료형 수동태 분사 구문을 취하고 있다. 성화(聖化)가 성령의 내주하시는 역사로 칭의와 최종적인 구원 사이에서 이루어져 가는 과정임을 보여준다.
여기서 우리는 또한 성령께서 신자를 하나님이 받으심 직한 상태로 창조해 가시는 주체임을 보게 된다(Harrison). 거룩한 삶은 오직 성령의 능력으로만 가능하다(8: 2, 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