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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룩한 두려움의 회복: 포베도멘 오운 (φοβηθῶμεν οὖν, 그러므로 우리는 두려워할지니)
아더 핑크(A.W. Pink)가 값싼 은혜에 취해 영적 나태함에 빠진 현대 교회의 뇌수를 일깨웁니다! 기독교는 맹목적인 안일함의 종교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안식이 선포되었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구원받았다고 착각한 채 끝내 그 안식에 도달하지(이르지) 못하는 비극이 교회 안에 존재할 수 있다는 이 '거룩하고도 엄위한 두려움(포베도멘)'을 상실하는 순간, 신앙은 타락하기 시작합니다.
복음과 믿음의 화학적 융합: 슁케케라스메누스 (συγκεκερασμένους, 믿음과 결부시키지 / 화합하지)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육성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나 왜 멸망했습니까?
헬라어 '슁케케라스메누스'는 단순히 동의하는 것이 아닙니다! 위액이 음식물과 완벽하게 섞여 소화되듯, 혹은 두 가지의 액체가 섞여 완전히 새로운 화학물질로 폭발하듯, '들은 복음의 말씀이 내 영혼 깊은 곳의 믿음과 맹렬하게 융합하여 내 인격과 생명을 송두리째 뒤집어엎는 우주적 결합'을 의미합니다! 강단에서 쏟아지는 십자가의 피를 자신의 지성과 영혼으로 삼키지(믿지) 않는 자에게, 그 복음은 오히려 심판의 근거가 될 뿐입니다!
II. 수고를 그치는 영원한 안식 (4:3-11)
(히 4:8-10) "만일 여호수아가 그들에게 안식을 주었더라면 그 후에 다른 날을 말씀하지 아니하셨으리라 그런즉 안식할 때가 하나님의 백성에게 남아 있도다 이미 그의 안식에 들어간 자는 하나님이 자기의 일을 쉬심과 같이 그도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그림자를 넘어선 실체: 샆바티스모스 (σαββατισμὸς, 안식할 때가 / 영원한 안식)
유대인들은 안식일을 지키고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으로 모든 안식이 성취되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히브리서 저자는 여호수아(구약)가 준 안식은 모형에 불과함을 벼락같이 선언합니다!
이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하나님의 백성에게 도래한 진짜 안식은 단순히 육체가 쉬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하나님의 통치와 평강 속으로 빨려 들어가는 우주적인 축제, 즉 '샆바티스모스(영원하고도 절대적인 영광의 안식)'입니다!
자기의 일을 쉬느니라 (10절)
존 오웬(John Owen)의 가장 심오한 구원론적 통찰입니다! '자기의 일을 쉰다'는 것은 무엇입니까? 내 알량한 도덕과 율법의 행위로 구원을 얻어보려고 발버둥 치던 그 구역질 나는 인간의 공로주의(자력 구원)를 십자가에 완전히 못 박아버리고! 오직 십자가에서 "다 이루었다!" 선포하신 만왕의 왕 예수 그리스도의 그 완벽한 대속의 사역에 내 영혼을 1000% 내어 맡기는 가장 능동적이고도 찬란한 영적 휴식입니다!
III. 우주를 찢는 말씀의 해부학: 두 날 가진 검 (4:12-13)
히브리서 4장의 최고 절정이자, 성경 전체를 통틀어 가장 파괴적이고 웅장한 말씀의 영광이 폭발합니다!
(히 4:12-13)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죽은 문자가 아닌 살아 숨 쉬는 신적 실체: 존 카이 에네르게스 (ζῶν καὶ ἐνεργὴς,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강단에서 선포되는 말씀은 철학책의 죽은 활자가 아닙니다! '존(살아 숨 쉬며 박동하는)' 생명체이며, 세상을 뒤집어엎고 죄인의 뇌수를 부수어 회개케 하는 무시무시한 성령의 다이너마이트 에너지, '에네르게스(살아서 미친 듯이 폭발적으로 역사하는 활력)' 그 자체입니다!
가장 예리한 십자가의 수술 칼: 디이크누메노스 아크리 메리스무 (διϊκνούμενος ἄχρι μερισμοῦ,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이 살아있는 말씀이 우리 영혼을 어떻게 다룹니까? 로마 군단병들이 쓰던 좌우에 날 선 무자비한 양날 검(Machairan)보다 더 예리하게 우리의 가장 깊은 심연, 인간의 심리학으로도 닿을 수 없는 '혼과 영과 관절과 골수'의 그 깊숙하고도 은밀한 죄악의 암세포를 한 치의 오차도 없이 완벽하게 해부하고 쫙 갈라내어 '찔러 쪼갭니다(디이크누메노스)'!
심판자 앞에 강제로 드러난 목덜미: 테트라켈리스메나 (τετραχηλισμένα, 벌거벗은 것 같이 드러나느니라)
윌리엄 마운스(William D. Mounce)가 해설하는 가장 소름 돋는 심판의 단어입니다!
헬라어 '테트라켈리스메나'는 고대 레슬링 선수가 상대방의 목덜미(Trachēlos)를 꺾어버리거나, 사형수의 목을 뒤로 젖혀 망나니의 시퍼런 칼날 앞에 그 숨통을 무방비 상태로 강제로 노출시키는 가장 끔찍하고도 완벽한 발가벗겨짐을 의미합니다!
인간은 사람들 앞에서는 거룩한 척 위선으로 자신을 포장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주의 감찰자이신 만왕의 왕 앞에서는 단 1%의 변명이나 숨김도 없이 우리의 영혼의 실체가 그 시퍼런 심판의 칼날 앞에 목이 꺾인 채 완벽하게 까발려지고 폭로될 것입니다!
IV. 대제사장의 우주적 긍휼과 은혜의 보좌 (4:14-16)
그 무시무시한 말씀의 검 앞에 발가벗겨진 죄인은 이제 어떻게 해야 합니까? 절망입니까? 아닙니다! 성경 최고의 장엄한 복음의 반전이 터져 나옵니다!
(히 4:14, 16) "그러므로 우리에게 큰 대제사장이 계시니 승천하신 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시라 우리가 믿는 도리를 굳게 잡을지어다... 그러므로 우리는 긍휼하심을 받고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하여 은혜의 보좌 앞에 담대히 나아갈 것이니라"
하늘을 찢고 들어가신 큰 대제사장: 아르키에레아 메간 (ἀρχιερέα μέγαν, 큰 대제사장)
구약의 대제사장들은 1년에 단 한 번, 두려움에 떨며 짐승의 피를 가지고 지상 성소의 휘장을 열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예수 그리스도는 한낱 제사장이 아닙니다!
그분은 십자가에서 흘리신 당신의 무죄한 피를 들고, 지구의 대기권을 뚫고 천군 천사들의 호위를 받으며 영원한 하늘 성소의 휘장 자체를 갈기갈기 찢어버리며 통과하신(Dielēlythota tous ouranous) 우주 유일의 '아르키에레아 메간(The Great High Priest, 가장 위대한 큰 대제사장)'이십니다!
연약함을 품어내시는 우주적 동정: 쉼파데사이 (συμπαθῆσαι, 동정하지 / 체휼하지)
이토록 위대하신 분이 우리를 내려다보며 짓밟으십니까? 존 맥아더의 사자후입니다!
"결코 아닙니다! 그분은 우리의 비참한 연약함과 죄의 고통을 이론으로 아시는 분이 아니라, 친히 육신을 입으시고 십자가에서 피눈물을 흘려보셨기에! 우리의 모든 슬픔과 눈물을 그분의 심장으로 함께 느끼고 끌어안아 피 흘려 주시는 가장 깊은 차원의 우주적 긍휼, '쉼파데사이(Sympathize, 함께 고통을 체휼하시다)'를 베푸시는 만왕의 왕이십니다!"
십자가 군사의 담대한 돌격: 파르레시아스 (παρρησίας, 담대히)
4장의 가장 영광스러운 피날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무서워 도망치지 말고 어디로 가야 합니까? 심판의 보좌가 아닙니다! 십자가의 피가 강물처럼 흐르는 '은혜의 보좌(Thronō tēs charitos)'입니다!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오직 그 대제사장 예수 그리스도의 피만을 의지하여! 왕의 보좌를 향해 당당하게 고개를 들고, 1000%의 확신을 품고 '파르레시아스(조금의 두려움도 없는 담대한 발걸음과 거룩한 뻔뻔함으로)' 벼락같이 돌진하여 엎드립시다! 그곳에 때를 따라 우리를 도우시는 하나님의 폭발적인 은혜가 우주적으로 쏟아질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