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9-07
찌 라 도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이십 일이년 전에, 신학교를 다닐 때에 졸업여행으로 한센(Hansen)병을 앓다가 음성 환자가 된 분들이 함께 모여 사시는 전라남도 고흥군에 자리한 소록도를 방문한 때가있었다. 그 후에는 십 오륙년 전에 대전 평화의마을에서 가게 되는 봉사모임과 함께 그 소록도를 또 방문하였었다. 전보다는 후에 가게 되었던 모임에서 그 섬에 계신 어르신들과 며칠 동안 더 가까이에서 뵈올 수 있었다. 며칠 전에 라디오방송에서 그 소록도에 관해서 어느 목사님이 말씀 하시는 것을 들을 수 있었다. 소록도의 신성교회를 방문하여 그곳에서 예배모임을 가졌는데, 그 모임을 마쳤을 때, 그곳에 함께하셨던 그 교회의 장로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우리 소록도 옆에는 찌라도라는 작은 섬이 있습니다.”라고 이야기를 하셨다는 것이다. “그 섬이 어디에 있습니까? 우리들이 한번가보고 싶습니다.” 그렇게 말하자. “그 찌라도라는 섬을 가려면 성경의 지도를 따라가야 합니다.”라고 이야기를 하면서, 함께 있는 그곳의 한 사람 한 사람들을 가리키면서 “바로 여기 있는 우리들도 그 섬사람들 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른 것이 아니라 구약성서의 하박국서를 이야기하여 주는 것이었다. “비록 무화과나무가 무성치 못하며 포도나무에 열매가 없으며 감람나무에 소출이 없으며 밭에 식물이 없으며 우리에 양이 없으며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나는 여화와를 인하여즐거워하며 나의 구원의 하나님을 인하여기뻐하리로다”(하박국 3:17-18). “바로 그곳에 나오는 찌라도가 여기에 앉아있는 우리들에게는 있습니다.” 외양간에 소가 없을찌라도, 돈이 없을찌라도, 건강이 좋지 못할찌라도, 늙었을찌라도, 몸이 망가져 못생겼을찌라도, 다른 사람들에게 우리의 모습은 볼품없어 보일찌라도 감사하며 사는 것, 이것이 소록도의 또 다른 이름 ‘찌라도’이고, 이것이 곧 ‘찌라도 신앙’이다. 어느 선배님은 위기대처능력(危機對處能力) 혹은 위관리능력이라는 말을 선물하셨다. 또 다른 연세 많으신 선배님이, 다른 사람을 보고 술수(術數)라는 말을 쓰셨던 것이 갑자기 떠오른다. 그런데 우리말 중에 “제 꾀에 넘어 간다”라는 말이 있다. 성서는 거기에 대해서 “여호와를 인하여” 같은 말인 “하나님을 인하여 즐거워하고 기뻐한다”라고 말한다. 그 말은 하나님으로 기인(起因)해서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생각의 발로는 운명이 아닌 섭리(攝理)에 대한 흐뭇한 순응(順應)이고, 이것이 신앙(信仰)이다. 나는 그간에 여러 차례 가난한 생활 가운데에서도 편안한 마음으로 도를 즐긴다는 안빈낙도(安貧樂道)와 그 예전의 우리나라의 김 대통령이 써내려갔었던 큰 길에는 문이 없다는 대도무문(大道無門)을 이야기 했었다. 찌라도라는 말을 생각하니 당치 않게 젠체하며, 주제넘은 바로 건방진 네까짓 것의 말에 불과했던 것 같다. 누구말대로 배부른 말을 쏟아놓지는 않았는가? 하나님 앞에 무릎 꿇고 반성해본다. 나를 보면서 가슴에 손을 얹고 또 한 번 바울 선생의 말을 해본다.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내가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내가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에 배부르며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빌립보서 4:11-12). 나는 이제껏 그렇게 배고파 보지 않았다. 그러기에 더 경험해보고, 더 배워야한다. 배워야한다니 다른 한마디를 하자면, 곡굉지락(曲肱之樂)이라는 말이 또 있다. 그것은 베개마저 없어서 팔을 구부려 베고 잘 정도이지만 청빈에 만족하며 도를 닦는 즐거움의 말이다. 예수도 다음의 말씀으로 역설의 위로를 주며, 반대로는 경각을 던져준다. “가난한자는 복이 있나니 하나님의 나라가 너희 것임이요. 이제 주린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배부름을 얻을 것임이요. 이제 우는 자는 복이 있나니 너희가 웃을 것임이요”(누가복음 6:20-21). 또 한 번 말해본다. 찌라도를 말하는 그분들도 기뻐하는데, 건강이나 가정이나 살 집이나 일할 곳을 그분들보다 더 가지고 있는 우리들은 한없이 감사하고 있는가?
공 동 체 이 야 기
하 우 스 와 홈
새터공동체가 1999년 7월 16일에, 이곳 금산에서 시작이 되었다. 오늘이 십년 째가 되는 날이다. 그간의 나를 돌아보건 데 사람을 살려가는 교회 일을 했는가? 아니면 사업을 해왔던가? 자문하여 보지 않을 수 없다. 장마 비가 하늘이 뚫려진 것처럼 많이 내리던 먼저 주일에 살림교회에서 찾아 주셔서 밖의 일은 못하고, 안에서 나무판자를 가지고 개를 잘살려보자고 개집과 리어커 틀을 만들려고 하였으나, 면소재지에 나아가서 판자 재료를 구입하지 못 하여 만들지를 못하였다. 그래서 교회의 집사님께서 집에 가셔서 개집을 만들어 오겠다는 말씀대로, 이 집사님께서 두 개의 개집을 보기 좋게 만들어 오셨다. 예쁜 개집을 보면서, 영어 낱말을 가져다가 내가 말을 만들어보니 도그 하우스(dog house)라는 말이 연상이 되었다. 하루하루가 모아진 그간의 십년의 세월을 돌아보면서 새터공동체가 공동체성이 미흡한 바람막이만 되는 식구들의 머무름 자리에 불과한 하우스(house)의 역할 밖에 하지 못했나? 라는 자책을 해본다. 개들도 사람이 밥을 주고 귀여워해주면 좋아하는데? 공동체는 하우스를 넘은 가정 같은 홈(home)의 구실을 감당해야 했던 일일 것 같다. 그래서 우리 같은 모임을 장애인공동생활가정이라 하지 않던가? 어르신들이 생각하시기에 스스로의 우리를 생각하면 마음들이 평온하고, 항상 사랑하는 사람들이 곁에 있어서 힘이 넘치는 그런 모임이었는가? 무미건조라는 말처럼 성서는 다음의 얘기를 한다.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건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예레미야 17:6). 그러나 한절 건너서는 반대로 다음의 이야기를 한다.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예레미야 17:8). 이런 청청한 일의 한 방법으로 친구는 어르신들과 프로그램을 함께 진행해보라는 말도 하였다.
공 동 체 소 식
.
☻ 새터 공동체 가족
지명수 권희숙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새터공동체를 1999년 7월 16일에 시작하여 2009년 7월 16일에 10주년을 맞이하여 공동체 식구들이 기쁨의 모임을 가졌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동산교회.충전교회.금성교회.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진영택.최성재.김정화.김기홍.양오석.채윤기(박현실).추부제일교회.향림원푸드뱅크.최선희.수영교회.대덕교회.공주원로원.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3인).어려운사람들을사랑하는청춘같은모임(노흥방외3인).세광교회.진명구.대전성남교회.대전충남지방통계청.광덕교회(김정운외1인).새나루공동체(김수택).금산주부클럽(5인).대덕교회(이중삼.정진일).동춘교회4남선교회.이원교회.살림교회(박상용외9인).김경엽외3인.진주문교회여전도회.대전노회.살림교회(이종근외1인).향림원푸드뱅크.동춘교회6여전도회(황순자).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성삼순.강정숙).대성교회여전도회(5인).금산군모란회(5인)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