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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 26:51) 예수와 함께 있던 자 중의 하나가 손을 펴 칼을 빼어 대제사장의 종을 쳐 그 귀를 떨어뜨리니
(마 26:52)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
(마 26:53) 너는 내가 내 아버지께 구하여 지금 열두 군단 더 되는 천사를 보내시게 할 수 없는 줄로 아느냐
(마 26:54)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 하시더라
(마 26:55) 그 때에 예수께서 무리에게 말씀하시되 너희가 강도를 잡는 것 같이 칼과 몽치를 가지고 나를 잡으러 나왔느냐 내가 날마다 성전에 앉아 가르쳤으되 너희가 나를 잡지 아니하였도다
(마 26:56) 그러나 이렇게 된 것은 다 선지자들의 글을 이루려 함이니라 하시더라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하니라
예수님이 대제사장의 집에서 보낸 민병대에게 체포 되려 할 때, 베드로는 자신의 주머니에서 칼을 빼내서 대제사장이 보낸 민병대 중 대제사장의 종 말고의 귀를 잘라버렸다. 그가 그렇게 살기등등했던 이유가 있다.
1. 제자들이 함께 있었기 때문에 해볼 만 한 싸움이라고 생각했다. 예수님의 주변에도 사람들이 있었다. 가룟 유다를 제외한 예수님의 제자 11명 이외에도 더 있었을 수 있다. 베드로의 충성심도 작용을 했을 것이다.
2. 예수님은 결코 만만하게 당할 분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실제로 싸움이 일어나면 예수님이 큰 능력을 발휘해서 자신을 도와 줄 것이라고 믿었기 때문이다.
베드로는 예수님의 능력을 잘 알고 있었다. 그동안 권력자들과 맞서서 조금도 약해지지 않으셨고, 권력자들도 예수님을 쉽게 건드릴 수 없었다. 또한 바람과 바다도 예수님의 명령에 복종했다. 그런 예수님을 빽으로 두고 있었으니 베드로가 칼을 빼들고 기세등등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3. 드디어 예수님이 대제사장 무리의 진압하시고 나라의 권력을 잡으실 때가 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제자들은 예수님이 권력을 잡으실 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있었다. 요한과 야고보는 예수님이 권력을 잡으실 때 두 번 째 서열에 들게 해 달라고 로비를 했던 사람들이다. 그들은 예수님이 칼의 힘으로 권력을 잡으실 줄 알았을 것이다.
그런데 분연히 일어난 제자들의 그런 모습을 막으신 것은 예수님이셨다. 예수님은 베드로가 잘라버린 말고의 귀를 다시 붙여 주시면서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라고 하셨다.
예수님의 그 말씀은 그야말로 풍선에 바람 빠지는 소리였다. 분연히 일어난 제자들을 위해 힘을 써 주실 줄 알았던 예수님이 칼을 도로 꽂으라고 하셨다. 칼을 빼서 살기등등하던 베드로는 도리어 머쓱해졌고,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다시 판단해야 했다. 다른 제자들도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 대하여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결정해야 했다. 그들이 대제사장이 보낸 민병대 앞에서 약해진 모습으로 서 계셨다. 그글이 결정해야 하는 것은 예수님과 함께 잡혀서 끌려갈 것이냐, 도망칠 것이냐였다. 그들은 약해지신 예수님을 보면서 신속히 도망치는 것을 선택했다. 그래서 본문은 이렇게 표현한다.
‘이에 제자들이 다 예수를 버리고 도망 하니라.’
예수님이 베드로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고 하신 것은 그 후로 교회가 당하게 될 수많은 핍박에 어떻게 대처해야 되는지 미리 알려 주신 것이다. 예수님이 하나님께로 돌아가신 후 교회는 로마 제국 내의 유대인들과 정치가들과 세상 사람들로부터 매우 큰 핍박을 받았다. 유대인들 역시 핍박을 당했는데, 그들은 로마 사람들의 칼에 맞서 칼을 들었다가 완전히 망했다. 그러나 기독교인들은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칼을 빼들지 않고 순순히 핍박을 감수했다. 그래서 기독교는 유대교를 초월하여 전 세계 사람들에게 퍼져 나갔다.
그러나 삼 백년 정도 흘러 교회의 세력이 커지고 로마 제국의 국교가 되었을 때, 교회는 칼집에서 칼을 빼내기 시작했다. 그리고 빼낸 칼을 휘둘러 수많은 사람들을 죽였다.
기독교의 변질된 역사에 대하여 몇 해 전 천주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 베네틱토는 이렇게 말했다.
“나는 한 사람의 기독교인으로서 흘러온 역사 속에서 기독교 신앙의 이름으로 폭력이 행해졌던 것이 사실임을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이 점에 대하여 큰 수치심을 가지고 인정합니다. 이는 분명히 기독교 신앙의 남용이며 기독교의 진정한 성격에 명백히 위배됩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칼을 도로 칼집에 꼽아 넣으라고 말씀하셨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신 고난을 거부하지 않겠다고 말씀하셨다.
(요 18:11) 예수께서 베드로더러 이르시되 칼을 칼집에 꽂으라 아버지께서 주신 잔을 내가 마시지 아니하겠느냐 하시니라
그러나 힘이 생긴 교회는 더 이상 핍박을 참지 않았다. 아니 오히려 칼을 들어 자신을 보호하려고 하였으며, 더 나아가서 자신의 이익까지 보호하려고 했다. 그러다가 더 나아가서 남의 이익까지 빼앗으려고 했다. 그러다보니 헤아릴 수 없는 많은 사람들을 죽이게 되었다.
교회가 로마 제국에서 세력을 얻게 되자 가장 먼저한 일은 로마 제국의 철학에 아부하는 것이었다. 그들은 성경을 로마의 철학인 그리스 철학에 맞추기 위하여 많은 노력을 했다. 필연적으로 교리 논쟁이 이어졌고, 그리이스 철학을 바탕으로한 교회 교리가 만들어졌다. 지금 우리가 기독교 철학이라고 말하며 배우는 교리들이다. 그 중 가장 많은 형제들을 이단으로 몰아 교회에서 추방하게 만든 교리가 삼위일체 교리이다. 삼위일체 교리는 그리이스 철학의 논리를 사용하여 만들어낸 교리이다. 지금도 우리는 그 교리를 생명처럼 지키려고 하며, 그 교리가 없으면 하나님과 예수님과 성령의 관계를 설명할 수 없다고 믿는다. 어떻게 믿든 그 때 만들어낸 삼위일체 교리를 가지고 교회는 그 교리에 동조하지 않는 형제들을 이단으로 내몰고 교회에서 추방해버렸다.
교회는 칼을 들어 자기를 보호하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다른 사람들의 이익도 빼앗으려고 하였다.
1484년 기독교 교회의 우두머리인 교황이
마녀가 있으니 색출해서 처단해야 한다고 하였다. 교황의 말은 곧 황제의 법과 같았다. 교회가 왜 마녀가 있다고 했을까? 그것은 돈 때문이었을 가능성이 매우 많다. 교회가 색출한 마녀는 주로 돈을 많이 가진 과부였다. 돈 많고 빽없는 여자는 돈을 빼앗기 위해서 마녀 사냥을 했던 것이다. 마녀로 지목되면 전 재산을 다 빼앗겼다. 자신의 전재산을 강제로 교회에 기부 당하고 사형을 당하는 것이었다. 교회로서는 매우 큰 이익이었다.
교회가 마녀인지 아닌지를 판별하는 기준은 애매했다.
"교회에 가기 싫어하는 여자는 마녀다. 열심히 다니는 사람도 마녀일지 모른다"
주로 이런 식으로 마녀를 색출했다.
알려진 마녀 판별법은 네 가지 정도였다.
1. 눈물 시험 - 마녀들은 악하기 때문에 눈물이 없다고 믿었다. 그래서 눈물을 흘려 보라고 해서 눈물이 나면 마녀의 혐의를 풀 수 있었다. 그러나 그런 두려운 상황에서 갑자기 눈물을 흘려 보일 수 있는 사람이 있을까?
2. 바늘 시험 - 마녀는 피가 없다고 생각해서 바늘로 찔러 보는 것이다. 혹은 마녀는 몸에 어떤 표식이 있다고 주장했다. 판사들은 마녀로 지목되어 끌려 온 여자들의 옷을 벗기고 몸에 난 점과 털, 사마귀, 기미, 주근깨 같은 것이 나오면 마녀로 판결했다.
3. 불 시험 - 판사는 끌려나온 여자에게 달구어진 프라이팬 위를 걸을 수 있는지, 불 위를 걸을 수 있는지 묻는다. 그녀가 그렇게 해 보겠다고 하면 그녀는 마녀로 판정했다. 마녀는 악마의 도움을 얻어 달구어진 프라이팬 위를 걸을 수 있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4. 물 시험 - 물은 깨끗하기 때문에 마녀가 빠지면 물 밖으로 내 던져진다고 믿었다. 그래서 물에 빠뜨려서 죽으면 마녀가 아닌 것이고, 물에서 떠오르면 마녀고 판정되어 불에 태워 죽였다.
그렇게 해서 마녀로 판정받아 수십만의 부자 여자들과 교회의 눈 밖에 난 여자들이 죽임을 당했다.
근세 유럽에서는 30년 전쟁이라고 불리는 전쟁이 일어났었다. 그 전쟁은 천주교회와 개신 교회가 벌인 전쟁이다. 다같이 예수님을 믿는 형제들이 칼을 들어 서로를 죽였는데, 인류 역사상 가장 잔혹한 전쟁이었다. 형제들이 서로 죽여서 사망자가 800만명이나 났다.
기독교 교회의 나라에서 온 콜럼버스 일행이 배를 타고 아메리카 대륙에 처음 도착했다. 인디언들은 신기한 배와 이상한 사람들이 바다를 건너오자 천사인 알고 자기들의 마을에 초대하여 잔치를 벌였다. 또한 콜럼버스가 타고 온 배 중 한 척이 폭풍우에 파선되자 성심껏 그들을 도와 주었다. 그들은 콜럼버스 일행에게는 생명의 은인이었다. 그런데 그 기독교인들은 며칠 후 칼을 빼들고 인디언 마을을 습격하여 인디언 왕국을 점령해버렸다. 그들을 위해 잔치를 벌여 주고 그들을 아낌없이 도와 주었던 왕도 모든 것을 잃고 도망을 쳐야 했다. 그러나 콜럼버스 일행은 그들마저 추격하여 다 죽여버렸다. 그 후 콜럼버스를 따라 기독교 국가에서 온 유럽인들은 1억명의 인디언들을 그렇게 학살했다.
오늘날도 우리는 교회의 권력을 이용해서 칼을 휘두르고 있다. 교회도 베드로처럼 권력을 위한 탐욕스러운 칼을 휘두르고 있다.
작년 11월 12일 오후 2시 30분에 잠실종합운동장에서 치러진 ‘국가와 민족, 평화를 위한 한국교회 연합기도회’는 하나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는 자리이기보다는 그 넓은 장소를 자신들의 신자들로 채울 수 있다는 자부심을 드러내는 대형교회들의 각축장이었다. 순서 순서마다 대형 교회 목회자들이 강단으로 나섰다. 그들은 마치 ‘우리 몇 교회만 모이면 뭐든지 할 수 있다’는 말을 하는 듯 했다.
그들은 10만 명을 모으기 위하여 노력했다. 그러나 잠실종합운동장 7만 석을 겨우 절반쯤 채웠다. 그런데 모인 숫자가 5만이었네, 7만이었네 숫자 불리기에 급급한 모습을 보였다. 이것은 권력을 향한 대형 교회들의 횡포였다.
내가 청년 때 여의도 순복음 교회는 대형 집회라든가 시가행진을 자주 계획했었다. 여의도에서 서울 시청 앞까지 수십만 성도가 도로를 행진하면서 교통을 방해하고 시청 앞에서 무슨 기도회인가를 하면서 세력을 과시했다. 그 모든 것이 교회에 다니지 않는 사람들에게는 세력의 과시와 횡포였고, 권력자들에게 자신들의 세력을 보여 주려는 것이었다.
깡패의 세력은 쪽수이듯, 교회의 세력은 교인수이다. 그래서 교인 쟁탈전을 한다. 아파트 단지가 세워지면, 공사를 할 때부터 이미 교회들이 그 옆에 예배당을 짓고 들어와 있다. 아파트에 입주가 시작되면, 각 교회 교인들은 전도지를 들고 각 집마다 떡을 돌리며 대대적으로 전도 전쟁을 벌인다. 매일 매일 입주한 집이 있나 돌아보고, 초인종을 누르고 또 누른다. 한 일곱 교회가 그렇게 경쟁적으로 아파트를 휘젓고 다니니, 다른 교회 전도대원과 복도에서 만나거나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는 일이 매우 자주 일어난다. 그러면 서로 경쟁하는 입장에서 인사하기도 뭐하고, 안하기도 뭐한 상황이 벌어진다. 입주한 가정들은 매일 교회의 경쟁적인 전도로 골치를 앓는다. 거기다가 우유며 신문이며 영업 사원들이 계속 초인종을 눌러댄다. 그래서 지금 지어지는 아파트들은 입구부터 이런 사람들을 막는다. 비밀번호를 눌어야 들어갈 수 있다. 그래서 교회들은 아파트 입구 게시판이나 엘리베이터에 많은 광고비를 주고 교회를 광고한다.
교회들이 이런 싸움을 하는 이유는 순수한 전도 목적이 아니다. 이사 온 가족을 자기의 교회로 끌어가기 위해서이다. 그것은 순수한 전도가 아니라 교회 간의 세력 차치를 위한 칼부림이다. 마치 깡패들이 자기 구역을 주장하면서 싸우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대형 교회는 더 탐욕스럽다. 몇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연세 중앙 교회라는 대형 교회에 다니던 김 씨는 원래 연세 중앙 교회 교인이었으나 5년 전에 근처에 있는 다른 교단의 작은 개척 교회로 옮겼다. 그리고 3500만원을 들여 김밥집을 시작했다. 그러자 연세 중앙 교회 교인들이 들이 닥쳐서 김 씨를 신천지로 몰고 갔다. 연세 중앙 교회 목사와 교인들은 김 씨가 교인들을 신천지로 끌고 가려고 김밥집을 열었다는 헛소문을 냈다. 김 씨는 연세 중앙 교회에 사과를 요구하며 윤석전 목사를 찾아 갔지만 만나주지도 않았다. 이 기사가 사실이라면 그 교회는 그 어떤 손해도, 그 어떤 고난도 거부하는 이기적이고 폭력적인 교회일 뿐이다.
권력은 이기적인 습성을 가지고 있다. 대형 교회는 이기적인 습성을 보인다. 청와대 게시판에 이런 글이 올라왔다. 부천시 원미동에 거주하는 사람인데 아들 둘의 아빠라고 한다. 자기 집 옆에 순복음 교회가 있는데, 교회 주차장 옆이 바로 집 배란다라고 한다. 대형 버스가 배란다로 연통을 드러내고 계속 공회전을 한다고 한다. 배기가스가 집 창문으로 계속 들어와서 4년 째 베란다 창문을 닫고 산다고 한다. 교회에 버스를 뒤로 돌려 시동을 걸어 놓으라고 말해도, 교회는 말을 듣지 않는다고 한다. 경찰과 시청에도 신고해 봤지만, 대형 교회의 세력 앞에서 별로 움직이지 않는다고 한다. 그는 말한다. “자기들은 하나님 믿고 천국가고 우리는 아이들과 배기가스 마시고 죽으라는 거냐?” 대형 교회는 이미 대기업 행세를 하면서 권력의 칼을 휘두르고 있다.
교회들은 헌금이 모이면 더 큰 예배당을 건설하고, 예배당 지어지면 기도원 짓고, 지도원 지어지면 묘지 짓는다. 그것은 마치 당연한 수순처럼 땅을 넓혀간다. 마치 제국이 칼로 영토를 넓혀나가는 것처럼 세력을 확장한다.
그 외에도 어떤 교회는 길거리에서 확성기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치기도 하고, 어떤 교인은 불교인들이 세워 놓은 불상을 깨뜨리거나 오물을 투척하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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