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주째 내리던 비가 그쳤다. 가꾸지 않고 내버려 둔 정원은 초록으로 무성하다. 어떤 것이 화초이고 잡초인지 분간이 가지 않는다. 잡초를 뽑아낼 요량으로 풀숲을 헤치니 민들레가 얼굴을 내민다. 아직 꽃대는 올라오지 않아서 이파리가 순하다. 이민 초기에 공원이나 학교 마당을 지나다 보면 풀밭에 사람들이 앉아서 뭔가 열심히 하는 모습이 보였다. 가까이 가보면 한국 아줌마들이 민들레를 캐고 있었다.
봄이면 들로 산으로 나물을 뜯으러 다녔던 세대의 눈에 민들레는 그냥 잡초가 아니다. 토끼풀, 민들레, 질경이를 볼 때면 잡초라는 생각보다 익히 알던 사람들을 만나는 느낌이다. 길가에서 흔하게 볼 수 있지만 내가 살던 땅에서도 보던 들풀이라 더 반갑다. 사철 푸른 나무와 이국적인 꽃들이 아무리 많아도 민들레나 질경이, 토끼풀이 없었더라면 조금 서운할 뻔했다.
민들레를 보면 생각나는 친구가 있다. 어느 날 친구의 남편이 간에 이상이 생겼다. 늘 혈기 왕성하던 얼굴이 흙빛으로 변하였다. 민들레가 간에 효험이 있다는 소리를 듣고, 친구는 서울 근교 들판으로 민들레를 찾아 헤맸다. 나도 친구 따라서 아이들을 데리고 나선 적이 있다.
안양 삼막사 가는 길이었던가, 지금은 이름도 가물거리는 어느 동네 밭두렁에 앉아 밥을 먹었다. 말로는 소풍이었지만 민들레를 캐는 일이 우선이었다. 친구는 집으로 가는 길모퉁이에 피어있는 민들레만 봐도 고개가 돌아갔다. 열심히 병구완한 덕분에 친구의 남편은 혈색이 좋아지고 병도 나았다. 그 후로 민들레는 내게 신통한 약으로 기억된다. 민들레가 해독작용을 하고 간이나 당뇨에 좋다는 효능은 인터넷을 조금만 뒤져봐도 알 수 있다. 그러나 그런 정보가 아니더라도 땅에 바짝 붙어서 땅의 기운을 끌어내며 버티는 걸 보면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호주에 처음 왔을 때 공원에서 민들레를 보자 친구 얼굴이 먼저 떠올랐다. 그토록 찾아 헤매던 민들레가 여기는 지천이었다. 호주는 사철 따뜻한 날씨 덕에 일 년 내내 민들레를 볼 수 있다. 가까이 살면서 평생 함께 지낼 거로 생각했던 친구는 지금 캐나다에 살고 있다.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 그곳에도 민들레가 이렇게 많이 있을까. 이제 우리는 각자의 땅에서 그리움만 전하고 있다.
이곳의 민들레 이파리는 데쳐서 나물로 먹거나 생 무침으로 먹어도 좋다. 길가에서 매연 속에 자란 것도 아니고 내 집 마당에서 뽑는 것이니 안심하고 먹어도 괜찮겠다는 생각이 든다. 갑자기 잡초를 뽑는 게 아니라 나물을 캐는 일로 바뀌었다. 마당에 쪼그리고 앉아서 한바탕 캐고 보니 제법 많다.
흐르는 물에 흙을 털고 뿌리에 붙은 검불을 떼어내고 문질러 닦는다. 물에 씻은 민들레는 식초를 넣은 물에 잠시 담가 두었다가 건져낸다. 깨끗하게 씻어낸 민들레 잎은 반으로 나누어 겉절이 양념을 해서 살살 버무려 도토리묵과 함께 담는다. 나머지는 데쳐서 액젓과 들기름을 넣고 조물조물 무친다. 금방 나물 밥상이 차려진다. 갓 지은 따끈한 밥에 민들레무침을 얹어 먹는다. 씹을수록 쌉싸름한 맛이 입안으로 퍼지고 코끝으로 민들레 향기가 스며든다.
민들레 겉절이는 김치처럼 익어도 맛있다. 잎이 조금 억센 것은 고들빼기김치처럼 담아 푹 삭히면 두고두고 귀한 반찬이 된다. 여린 잎은 고기쌈을 먹을 때 쌈 채소로 좋다.
올해는 병치레하면서 절반을 보냈다. 당연히 반찬 만드는 일도 소홀했다. 남편도 지방으로 일을 떠나고 집에 혼자 있다 보니 되는대로 한 가지 만들어 한 끼를 때우는 식이다. 아이들이 한창 크고 식구들이 많을 땐 얼굴 반찬만으로도 부족함을 못 느꼈다. 이즈음엔 밖에 나가서 특별한 음식을 사 먹어도 별맛을 느끼지 못한다. 그저 허기를 때우는 일에 불과하다.
오랜만에 입맛을 돋게 하는 민들레 나물로 밥 한 그릇 뚝딱 비웠다. 제멋대로 자란 풀잎 하나로 밥상이 풍성해졌다. 민들레를 솎아낸 마당은 덕분에 훤칠하다. 이제 눈에 띄는 민들레는 반찬거리로 보인다. 이쯤 되면 잡초라고 구박을 할 게 아니라 나물 밭이라고 해도 되겠다. 이 참에 마당 한 귀퉁이를 민들레나 질경이 밭으로 만들까 하는 생각이 든다. 야생의 정기를 몸에 저장하면 나도 좀 더 단단해질 것 같다.
김미경 (문학동인캥거루 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