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령과 성부와 성자의 삼위일체와 자유의지
전창수 지음
목차
1.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2. 사람은 자유롭게 행동하고 생각할 권리가 있습니다
3.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예수님은 어떤 분인가
전창수 지음
1. 예수님은 마음이 넓은 성인이시다
나는 이 글을 끝까지 보려 하지 않는 분에게 읽으라고 권하고 싶지 않다. 우선, 이 글을 읽기 시작했다면, 끝까지 읽으시라고 말하고 싶다. 그래야만, 예수님이 진짜 어떤 분인지 알게 될 테니까. 예수님이 태어나시고 사역을 하셨다. 아주 넓은 마음으로 많은 사람들을 도와주셨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고, 예수님은 진정한 성인으로 사역을 해 나가셨다. 이 어렵고 험난한 세상에서 예수님의 탄생은 그야말로 시대의 축복이었고, 예수님은 그렇게 성인이 되셨다. 오늘날 많은 곳에서 예수님은 4대 성인으로 자리 잡았다. 그렇다, 예수님은 성인 중의 한 분이시다. 그런데, 이 글의 주제는 예수님이 4대 성인 중의 한명이시기도 하지만, 예수님은 4대 성인이 아니기도 하다는 점을 강조하고 싶다. 도대체, 예수님은 누구인가?
2. 예수님은 예언 속의 인물이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보내시겠다고 약속하셨고, 많은 예언자들은 예수님의 탄생을 점쳤다. 예수님이 탄생하던 그 순간들에 점을 보는 많은 학자들이 예수님의 탄생을 축복하였다. 그렇게, 예수님은 축복 속에서 태어나시기도 했지만, 사실 예수님이 태어난 곳은 아주 열악한 환경 속에서 척박하게 태어나셨다. 그래서, 에수님의 탄생이 축복인 것은 맞지만, 예수님은 태어날 때부터 저주를 받은 것이 분명했다. 그런데, 예수님은 어떻게 태어나게 된 것일까?
3. 예수님이 하나님이실 수밖에 없는 이유
예수님은 성관계를 하지 않은 처녀의 몸에서 태어나셨다. 성관계를 하지 않은 처녀의 몸에서 아기가 태어난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그것은 하나님만이 하실 수 있는 기적이었다. 바로 여기서 이단 및 사이비종교와 정통교회와의 차이점이 생겨난다. 이단에서는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하면서 예수님을 우리의 희망적인 구세주라고 하긴 하지만, 실제로는 예수님의 우리의 하나님이심을 믿지 않는다. 그렇다면, 처녀의 몸에서 예수님이 태어났다는 것을 어떻게 믿을까?
4. 예수님은 놀라운 사역을 하셨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 예수님이 처녀의 몸에서 잉태한 것을 믿지 않게 되면, 성경에 나오는 모든 말이 거짓이 되어 버린다. 왜냐하면, 성경에 나오는 내용들은 기적적인 일들이 많다. 그 기적들은 하나님이 아니시면 하실 수 없는 것들이었다. 예수님이 태어나서 사역을 하실 때에도 기적은 일어났다. 대표적은 것이 오병이어의 기적이다. 그런 놀라운 기적들이 기록해 놓은 것이 성경인데, 예수님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믿지 않게 된다면, 이 기적들은 모두 거짓이 되어 버려 성경을 왜곡해서 해석하게 되는 어리석음을 범하게 된다.
5. 예수님이 4대 성인이 아닌 이유
예수님은 성인이 아니라, 우리의 구주이며,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인간의 몸으로 오셨지만, 사실은 하나님께서 직접 오신 것이기 때문에, 인간이 아니다. 예수님을 성인이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사람으로만 본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4대 성인에 포함되지 않는다. 하지만, 인간의 몸으로 오셨기에 4대 성인에 포함되기도 한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에 단 한 분일 수밖에 없다. 왜냐하면, 인간의 몸을 예수님이 또 다시 태어날 일이 없기 때문이다. 생각해 보시라. 지금의 나의 몸이 나중에 다시 태어나 또 다시 이 세상을 살아갈 자신이 있는가? 사람은 죽어서 천국에 간다. 그리고, 그곳에서 영원히 살아야 진짜 행복하다. 그런데, 사람이 또 다시 태어난다? 말이 되는가? 예수님도 사람의 몸을 태어나서 살다가 돌아가셨다. 예수님이라고 예외는 아니다. 예수님도 사람의 몸으로 다시 태어나고 싶지 않을 것이다. 예수님은 이제 하나님으로서 일을 하셔야 하고, 이제 다시 태어나야 하실 이유가 없다. 우리의 바람은 하나님께서 우리를 책임져 주시는 것이지, 하나님께서 다시 태어나 또다시 고난의 행군을 하시길 원하지 않는다.
6. 그러므로 우리가 바라는 것들
그러므로 나의 바람, 우리의 바람은 이제 예수님을 친근한 사람으로, 또한 나를 도와주는 구주로서 우리를 책임져 주기를 바란다. 나를 책임지고, 너를 책임지고, 사람을 책임져 주시기를. 사람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은 하나님으로서 우리의 주님으로서 그 역할을 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지 않을까. 나는 오늘도 예수님께 의지한다. 누군가 나를 의지하려 한다면, 나는 그분을 무시할지도 모른다. 왜냐하면, 나는 예수님이 아니라서, 누군가 나를 의지하려 한다면, 너무나 많이 부담스럽기 때문이다. 부담스러운 삶은 싫다. 나는 예수님을 의지하면서 편안하게 살아가고 싶다. 그러므로 사람에게 의지하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을, 나의 하나님을, 우리의 하나님을 의지할 때, 진짜 삶을 살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나는 지금 자신있게 말할 수 있다.
사람은 자유롭게 행동하고 생각할 권리가 있습니다
1.
누구나 한번쯤은 이 세상에 태어나 하고 싶은 일을 하려고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때로는 내가 하고 싶은 일을 못할 때가 많기에 너무 슬퍼질 때가 많다. 세상은 그렇게 나란 사람을 우리의 미래를 암울하게 만든다. 그 못함이 너무 슬퍼 삶은 무너져 내리게 마련이다.
2.
하나님은 왜 이토록 슬프게 사람을 만들었을까? 사실, 사람은 태어날 때부터 자유의지를 가지고 태어난다. 행동하는 것, 생각하는 것 모두 자유롭게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주실 때, 사람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도 자유롭게 하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믿고 의지하는 자에게 하나님의 도움의 손길을 뻗치신다.
3.
왜일까?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사람에게 부여하셨기 때문이다. 우리의 자유의지는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을 욕하게 하기도 한다. 하나님은 그런 욕을 그냥 받아들이신다. 하나님께서 자유롭게 사람에게 생각하라 하셨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으려면 기도를 해야 한다. 기도를 하지 않으면, 하나님은 사람을 도와주실 수가 없다. 기도를 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의 도움을 바라지 않는다는 것이고, 기도를 하지 않으면 사람을 도우지 않았을 때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자유가 실천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사람은 기도해야 하나님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기도를 하게 되면, 사람은 하나님의 도움을 받길 원하는 것이고, 그렇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때부터 그 사람에 대한 일을 시작하신다.
4.
사람에게 자유의지가 없다면, 사람은 얼마나 힘들게 살아갈까? 자유롭게 생각할 권리가 있고 자유롭게 행동할 권리가 있기에 사람은 축복된 삶을 살아갈 수 있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없는 시대이긴 하지만, 그러나 자유의지란 것이 있기에, 그래서 우리가 살아갈 날이 내 뜻대로 될 수 있는 희망이 있기에 우리의 현실은 편안하고 자유로울 수 있다. 누군가 나의 자유를 뺏어간다는 것, 그것처럼 슬픈 일은 없기에, 오늘 내게 주신 자유, 우리에게 주신 자유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다시금 깨닫는다. 내일은 더 많은 사람이 하나님께서 주신 자유의지를 누리게 되길 오늘도 기도하며 우리의 삶을, 우리의 앞날에 펼쳐질 희망을 바라본다. 그 바라보는 순간들에 많은 사람들이 자유로운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되고, 자유로움 속에서 조화로운 인생을 이어가기를 또한 간절하게 바라보기도 한다.
삼위일체란 무엇인가
1.
삼위일체의 뜻은 하나님과 예수님이 예수님의 영혼이신 성령이 하나란 의미가 된다. 하지만, 삼위일체를 마음속으로 받아들이기란 쉬운 일이 아니다. 어떻게 하나님이 예수님일 수 있는가. 예수님은 하나님이 보내신 하나님의 아들이지, 하나님이 직접 오실 리가 없지 않은가.
그렇게 생각하시는 분들에게 나는 삼위일체를 논리적으로 설득할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하지만, 나는 이렇게는 말할 수 있다.
2.
사람에겐 자유의지가 있다는 것을 앞서서 설명했다. 사람에겐 자유의지가 있고 기도할 자유가 있다. 그래서 내맘대로 모든 생활을 할 권리가 있고, 모든 사람들은 최소한 10프로는 자기 마음대로 행동한다. 나머지 90프로에서 자유가 구속되는 경우는 있지만.
3.
내가 하고 싶은 말은 이것이다. 예수님은 사람이 가진 자유의지대로 인생을 살아갈 수가 없으셨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시기에 하나님의 역할로서 하나님의 사역을 하실 수밖에 없었다.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에게는 자유의지대로 살아갈 자유가 없었다. 오직, 하나님의 뜻을 수행하기 위해 자신의 인생을 바쳐야 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이 지상에 직접 오셔서 사역을 하신 이유니까. 하나님은 자기 자신에게는 자유의지를 부여할 수가 없었다. 하나님이시기에 예수님이시기에 다른 생각을 하셔서는 안 되었다. 오직, 하나님의 뜻만을 세상에 전파하기 위해, 그리고 세상에 기적을 선물하기 위해 이 세상에 오셨다.
나는 논리적인 설명을 하는 대신, 이와 같은 발언으로 대신한다.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받아들이는 것 역시 자신의 자유의자라고. 예수님이 하나님이심을 받아들이는 순간, 우리 삶에는 기적이 일어나고 있다는 사실을 믿게 된다는 사실을 나는 이렇게 말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