FTX가 뒤흔든 가상자산 시장… 다른 거래소들도 ‘연쇄 위험신호’
해외 거래소 자금 운용 현황 ‘깜깜이’… FTX와 같은 사태 재발 가능성 충분
거래소 본사, 바하마 등 ‘조세 회피처’에 … 관리·감독 어려워
“자체 발행 토큰 이용한 레버리지 상품은 도박… 사태 재발하면 코인 시장 공멸 우려”
세계 3위 가상자산 거래소 FTX가 유동성 위기 끝에 결국 파산을 신청하면서 전세계 가상자산 시장이 흔들리고 있다. 가상자산 시장에서는 다른 세계 주요 거래소들도 FTX와 같이 자체 발행 코인을 이용해 레버리지 투자에 나서고 있지만, 제대로 관리·감독이 이뤄지지 않아 같은 위기가 재발할 가능성이 크다는 경고가 잇따라 나온다.
/연합뉴스
21일 가상자산 업계 관계자에 따르면 세계 최대 거래소인 바이낸스와 크립토닷컴, 후오비, 오케이닷컴 등은 모두 코인을 자체 발행하고 있다. 이들 거래소는 코인의 가치가 올라가면 거래소의 자산 가치 증대 효과도 크고 이를 지렛대로 삼아 다양한 사업을 진행한다.
FTX도 FTT라는 코인을 자체 발행하고 이 코인의 가격이 올라 자산의 가치가 커지자 이를 이용해 과도한 차입 경영을 해 회사 규모를 키워왔다.
FTX가 유동성 위기를 겪다 결국 파산 보호를 신청하면서 FTT와 같은 거래소 자체 코인들의 가격도 전체적으로 크게 흔들리고 있다. 이 때문에 다른 거래소들마저 점차 재무 구조가 악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글로벌 가상자산 통계 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바이낸스 코인은 지난 9일 359.91달러에 거래됐지만, 지난 18일 기준 가격은 268.70달러까지 떨어졌다. 단 9일 만에 약 25.34% 하락한 수치다. FTX가 유동성 위기를 겪는다는 소식이 나온 후에도 바이낸스 코인 가격은 며칠간 안정적인 흐름을 보였지만, 다른 거래소 발행 코인들이 동시다발적으로 하락하자, 결국 버티지 못하고 함께 약세로 돌아섰다.
다른 거래소들의 자체 발행 코인 가격은 하락 폭이 더 큰 상황이다. 거래소별 자체 발행 코인은 ▲크립토닷컴 크로노스(CRO) ▲후오비토큰(HT) ▲비트파이넥스 코인(LEO) ▲스마트밸러 코인(VALOR) ▲쿠코인 토큰(KCS) 등이 있다.
그래픽=손민균
크립토닷컴의 자체 거래 코인인 크로노스(CRO)는 한 달 전 0.1달러 수준에서 거래됐으나, 18일 오후 기준 0.07달러에 거래되며 30% 가까이 떨어졌다. 후오비 토큰 역시 7.79달러에서 현재 4.64달러로 내려앉으며 40.4% 넘게 하락했다.
비트파이넥스와 쿠코인 등 다른 거래소도 약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비트파이넥스의 코인(LEO)은 한 달 전 4.27달러 선에서 거래됐으나 지난 10일 3.40달러에 거래되며 20% 넘게 하락했다. 18일 기준 LEO는 4.15달러에 거래되며 회복세를 보이는 모습이지만, 아직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쿠코인의 경우 같은 기간 9.60달러에서 7.24달러로 24.5% 정도 하락했다.
국내 가상자산 거래소 관계자는 “세계 3위 규모로 가장 영향력이 큰 거래소 중 하나였던 FTX가 자체 발행 코인인 FTT를 악용해 파산에 이르자, 이보다 규모가 작은 거래소들의 코인도 투자자들의 신뢰를 잃은 것”이라고 해석했다.
거래소들이 재정 상황을 제대로 검증받지 않고 있다는 점도 잠재적인 위험 발생 가능성이 큰 이유로 꼽힌다.
국내의 경우 특정 금융거래정보의 보고 및 이용 등에 관한 법률(특금법)에 의해 금융 당국이 거래소의 자금 거래 내역과 같은 정보를 들여다볼 수 있다. 반면 해외 주요 거래소들은 미국이나 유럽, 중국 등이 아닌, 상대적으로 규제와 감독이 느슨한 지역이나 조세 피난처에 거점을 두고 있어 금융 당국의 손길이 미치지 못한다. 바이낸스를 포함한 주요 해외 거래소는 케이먼 제도, 바하마, 셰이셀 공화국 등에 위치해 있다.
바하마에 거점을 둔 FTX의 경우 계열사인 알라메다 리서치를 통한 과도한 차입 거래와 회계 부정 의혹들이 결국 파산 보호 신청 직전에야 드러났다. 17일(현지시각) 뉴욕타임스(NYT)에 따르면 FTX의 새로운 최고경영자(CEO)로 임명된 존 J. 레이 3세는 이 회사의 장부를 확인한 후 “내 40년 구조조정 경력에서 이토록 완벽한 기업 통제 실패 사례는 본 적이 없었다”며 혀를 내두르기도 했다.
전문가들은 거래소가 코인을 직접 발행하고서 이를 상장하는 행태가 위험하다고 보고 있다. 언제든지 시세 조작과 같은 불공정 거래가 이뤄질 수 있기 때문이다. 또한 해외 거래소의 경우 국내와 다르게 자금 운용 현황을 알 수 없기에 투자자들의 각별한 주의를 요구하고 있다.
홍기훈 홍익대 교수는 “자체 발행 토큰을 이용해 투자 수익을 극대화하는 레버리지 상품은 말 그대로 도박과 비슷하다”며 “또한 비트코인 가격이 떨어지는 지금, 자체 발행 토큰들 역시 추가로 떨어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김동환 원더프레임 대표는 “최근 여러 해외 거래소들이 투자자들의 신뢰를 얻기 위해 자신들이 보유한 자금을 증명하려 애쓰고 있지만, 금융 당국이나 믿을 만한 회계 기관의 검증과 감독을 거치지 않는 이상 거래소의 자금 운영 현황을 제대로 파악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라고 말했다.